출처 ; 어느날갑자기(유일한님)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단편이야기가 아니고 중장편이야기라 많이 길어요..^^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공부해 봤니?뭔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바로 옆에서 공부하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무엇이..봄이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게 벌써 장마가 시작된다고 일기예보에서는 떠들고 있었다. 계절도 바꿔고, 기분전환도 할 겸, 몇 년동안 손대지 않었던 책상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서랍 안을 정리하다 보니, 저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생각지도 않은 물건들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 학생증, 국민학교 개근상 메달, 중학교 수련회 사진 등등... 추억이 가득 찬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내며 미소를 지으며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그러다, 알 수 없는 열쇠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열쇠고리에 껴져 있을 뿐 처음 봤을 땐 이 열쇠를 용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용도를 잊어버린 열쇠를 발견하니, 그 열쇠가 어떤 문을 열었던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크기로 봐선 분명히 문을 여는 열쇠인데, 어디서 썼던 열쇠인지 통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 책상 서랍 구석에 처 박혀있던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내가 쓰던 열쇠가 맞는 것 같았다. 생각이 안 나면 안 날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나는 책상 정리는 뒷전으로 하고, 그 검은 플라스틱에 연결되어 있는 열쇠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몰두했다. 스텐드 밑으로 가져가 좀 더 환한 불 밑에서 그 검은 플라스틱의 열쇠 고리를 살폈다. 그걸 이리 저리 돌리면서 보다 보니, 그냥 밋밋한 플라스틱이 아니었다. 위에 뭔가가 붙어있다 떨어진 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글자 같은 것이 붙어있다 떨어진 자국 같았다.스텐드 밑에서 그 열쇠고리를 이리 저리 돌려보며, 그 희미한 자국의 글자들을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독....서.....실...나는 그 세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 열쇠가 지렁이라도 되는 듯이 내팽개치고 담배를 찾았다.한참을 잊으려고 애썼고, 어느새 잊어버린 그 끔찍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잊어버렸던 그 때 일이 갑자기 또렷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그 때의 무서움이 느껴졌는지,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등을 벽에 기대고 깊게 들이마셨다.그리고는 저기 떨어져 있는 열쇠를 바라보았다.벌써 9년전 얘기였다..... 9년 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의 일이었다. 남들은 배낭여행이다, 피서다, 공부다 하고 제각기 방학계획을 세웠지만, 군 입대를 2달 남긴 나로써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가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2달 남았으니, 실컷 놀다들어가라고 했지만, 이미 대학들어와서 1년반을 지칠 만큼 놀아버린 나로써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할 힘도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오히려 군대 갔다 와서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군대 가면 한참동안 못 읽은 책들이나 실컷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만화, 무협지, 사회 과학 할 것 없이 아무런 방해 없이 시원한 데서 책이나 읽고 싶었다. 그런 얘기를 친구들과 하다보니, 친구 한 놈이 독서실 총무로 아르바이트 하면 괜찮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에어콘이 나오는데서 책 읽으면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독서실 총무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독서실 총무 자리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고시생으로 채워져 있었다.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우연히 벼룩시장에 구인란에서 '독서실 총무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 번호가 서울이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밑져야 본전인 생각으로 한번 걸어봤다.아니나 다를까 독서실은 성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그냥 끊으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은 독서실 주인이 그래도 한번 와보라는 것이었다. 집과 너무 멀어 다니기 힘들다고 했다니, 그러면 자동차를 빌려줄테니 와보라는 것이었다.독서실 총무 자리에 차를 빌려 주다니...너무나 황당한 제의여서, 호기심까지 생겼다.위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그날로 찾아갔다.성남 공단 근처에 위치한 그 독서실은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다. 이런 데 있어도 독서실이 될까 할 정도의 생각까지 들었다. 덩그러니 상가 건물 하나가 있고, 주변에는 짓다만 아파트 공사장이 있었다. 아마 그 아파트를 겨냥하고 상가건물을 지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늦어진 모양 같았다. 독서실은 그 상가 건물 맨 위층인 4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 건물 임대도 잘 안되었는지, 3층은 아예 비어있었고, 2층도 작은 미술학원이 하나 있을 정도였다.나를 반갑게 맞아준 독서실 주인은 푸근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눈빛이 좀 이상한 것이 마음이 걸렸지만,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그 주인 말로는, 이전에 있던 총무가 얘기도 안하고 무단으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독서실 운영에 좀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 자기는 다른 동네에서 다른 가게를 하고 있어서 독서실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다는 했다. 근무 조건은 내가 들었던 어떤 독서실 총무 자리보다 좋았다. 웬일인지 보수도 딴 데보다 1.5배 정도였다. 근무시간도 생각보다 짧았다.고시 공부하고,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독서실 열쇠를 다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찍 올 필요 없고, 일요일은 쉬고 보통 학생들이 학교 끝날 시간인 오후 3시에 와서 새벽 2시까지 총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 보충 수업후 학생들을 태우고 오는 용도의 봉고가 있는데, 그 시간 제외하고는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 특별히 필요하다는 얘기가 없으면 출퇴근에 몰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언제부터 시작하냐고 물어보았다. 그것이 얼마나 성급하고 잘못된 결정이었는지는 알게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내 질문에 주인은 가능하면 내일부터 시작하자며, 독서실의 구조를 안내해 주었다. 그 독서실은 전형적인 독서실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문을 열고 들어오면, 총무실 겸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컵라면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작은 휴게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총무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약간의 복도가 있고, 각각 남자방과 여자방이 나눠어져 있었다. 각각 40석정도 되는 크지 않은 크기였다. 그런데 여자방 쪽으로 난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보였다. 그 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안해 주길래 물어보았다.저 문은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부서진 책상이나 의자, 못쓰는 물건들 넣어두는 곳이니까, 열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열면 귀찮아 지기나 하고...?이상할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중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때문에 현재 거의 모든 자리가 찼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독서실을 나서다가, 무심결에 한 마디 했다.아무리 봐도 괜찮은 일같은데, 먼저 총무는 왜 그만 두었죠??특별한 뜻이 없게 내뱉은 질문에 독서실 주인의 표정이 좀 심각해지더니, 이상한 얘기를 해주었다.그 친구 좀 이상해졌어요.. 음...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잘 되었어요...어짜피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계속 둘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하여튼 그 사람 고시공부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좀 미친 것같았거든요..그러더니 어느날 아무 연락 없이 독서실에 나오는 것을 그만둔 거예요.얼마나 황당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공부 때려칠 생각으로 총무를 그만두었나 보죠.사법시험 공부라는 쉬운게 아닌가 봐요.붙으면 인생 피지만, 아까운 사람 수만명 갈아먹은 시험같아요...괜히 미친 사람이 했던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좀 오싹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단지 그 때는 운 좋게 좋은 자리 생겼다고 기분이 좋을 따름이었다. 내가 바라던 그런 독서실 총무 자리였다. 더구나 나게는 전에 일했던 총무처럼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이, 슬슬 놀면서 무협지나 실컷 보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로 생각되었다. 다음 날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독서실을 나서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아이와 문에서 마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자애는 무심코 지나가려던 나를 복잡한 표정을 하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지만, 그 여자애의 이상한 시선은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때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읽을 책을 쌓아들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시생과 유학 준비생들이 아침부터 공부할꺼라는 주인 어저씨의 말과는 달리 독서실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커피 자판기를 체크하고,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방안을 청소했다. 별로 시간 걸리지 않고 일을 끝내고 총무실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어제 창고라고 얘기했던 문이 보였다. 열 필요가 없다는 말 때문인지, 괜히 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몇번을 밀쳐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문에서 이상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기분이 들자, 문 열기를 포기하고 총무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4시가 되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독서실에 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총무를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아직은 좀 어려운지 대충 인사하고 지나들 갔다. 차차 친해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읽고 있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대부분의 애들이 공부 30분 하고 나와서 잡담 2시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독서실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다. 10시정도 되니까 주인 아저씨가 보충수업 끝난 애들을 태우고 독서실에 나타났다. 별일 없냐고 묻고는 약속대로 출 퇴근때 쓰라며 봉고 열쇠를 내게 건냈다. 자기는 먼저 들어간다며 나가던 주인 아저씨는 갑자기 돌아다 보면서, 이상한 말을 던지고 가버렸다."음... 만약 공부하던 애들이 다 나가면, 학생도 퇴근해..괜히 아무도 없는데 늦게까지 있다가 무슨 일 당하지 말고...."나는 무의식중에 네 라고 대답했지만,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라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려 했을때는 이미 아저씨는 밖으로 나갔다.한참을 무협지의 결정적인 장면을 보다, 애들이 우르르 독서실을 떠나는 기척에 시계를 보니, 11시 반정도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 즈음해서 공부하던 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다들 가방을 싸들고 나오는 것이었다.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애들 말로는 자기들은 다 이때쯤 독서실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한 두명은 모를까 전부 나가려고 하니 이상하게 보였다. 기말 고사 며칠 안 남았다는 애들이 전부 일찍 나가는 것도 이상했고, 시계를 보고 무엇에 쫓기듯이 나가는 듯한 분위기도 좀 이상했다.마지막 아이가 나간 것은 11시 45분쯤이었다. 그런데 가방을 매고 황급히 나가던 그 애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보고 망설이다가 한마디 했다. 전날 독서실 앞에서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그 여자애였다."저.. 웬만하면 총무 오빠도 12시전에 독서실에서 나와요..?처음에는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왜? 12시에 정전이라도 되는 거야?내 질문에 그 애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한마디 툭 뱉어 놓고 나가 버렸다."12시 넘어서 독서실에 있다간 그 애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니까요!" 그 애들이라니....도대체 그 여자애가 뜬금없이 던진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줄 알 수 없었다. 아까 애들이 없으면 일찍 퇴근하라는 아저씨 말도 있고 해서 단지 생각보다 근무가 일찍 끝나서 좋을 뿐이었다. 읽던 책을 접고, 퇴근 준비를 했다.혹시 책상위에 졸고 있는 애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독서실안으로 들어가 살펴봤다. 남자방은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여자방쪽으로 가다가 무심결의 복도에 붙어있는 시계를 보게 되었다.12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괜히 아까 들은 얘기가 생각나면서, 이유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빨리 퇴근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여자 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싸늘한 느낌에 움칫하고 놀랐다. 아무리 에어콘을 틀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뼈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둘러 에어콘을 끄고, 독서실안을 대충 돌아봤다.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불을 끄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저쪽 구석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단지 '툭'하는 소리였지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빨라지는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며, 다시 불을 키고 소리난 쪽으로 돌아보려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불이 안켜지는 것이다. 총무실 불은 이상이 없는 것을 봐서는 정전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 쪽 방만 불이 켜지지 않았다. 문쪽을 등지고, 어두운 독서실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저 어둠 구석에서 무언가 나롤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덩그러니 비어있는 의자와 책상에 마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같은 생각도 들고, 도저히 깜깜한 독서실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등은 고치고, 그 소리가 뭔지는 알아봐야 했기에 손전등을 가져왔다. 손전등을 키고 독서실 안을 비춰봤다. 독서실이라 희미한 불빛이 켜져 있었던 곳이지만, 그 불마저 없으니 정말 음산했다. 손전등 불빛에 비춰지는 휭하고 비어있는 책상과 의자들은 기괴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스멀스멀하게 밀려오는 이유 모를 두려움을 꼭 참고,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구석구석 비추어 봤다. 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그 소리는 내가 잘 못 들은 소리겠지 하고, 천장에 붙어있는 형광등을 살펴봤다. 스타트 다마와 형광등을 바꿔 봤지만,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내일 수리공을 불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손전등을 챙겨들었다.그때였다.어디선가 희미하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괴기스러운 소리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움직일 수 없었다. 14
독서실 - (1화)
출처 ; 어느날갑자기(유일한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습니다.^^
단편이야기가 아니고 중장편이야기라 많이 길어요..^^
아무도 없는 독서실에서 공부해 봤니?
뭔가 같이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지...
바로 옆에서 공부하는 너를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무엇이..
봄이 언제 왔다 갔는지 모르게 벌써 장마가 시작된다고 일기예보에서는 떠들고 있었다.
계절도 바꿔고, 기분전환도 할 겸, 몇 년동안 손대지 않었던 책상 정리를 하기로 결심했다.
금방 끝날 줄 알았지만 너무 오랜만에 해서 그런지 쉽게 끝나지 않았다.
서랍 안을 정리하다 보니, 저 구석에 먼지가 수북이 쌓인 생각지도 않은 물건들이 나왔다.
고등학교 때 학생증, 국민학교 개근상 메달, 중학교 수련회 사진 등등...
추억이 가득 찬 물건들의 먼지를 털어내며 미소를 지으며 옛 생각에 잠길 수 있었다.
그러다, 알 수 없는 열쇠 하나를 발견했다.
아무런 표식이 없는 검은 플라스틱으로 된 열쇠고리에 껴져 있을 뿐
처음 봤을 땐 이 열쇠를 용도를 짐작조차 할 수 없었다.
용도를 잊어버린 열쇠를 발견하니, 그 열쇠가 어떤 문을 열었던 것인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크기로 봐선 분명히 문을 여는 열쇠인데, 어디서 썼던 열쇠인지 통 생각해 낼 수 없었다.
내 책상 서랍 구석에 처 박혀있던 것으로 봐서는 분명히 내가 쓰던 열쇠가 맞는 것 같았다.
생각이 안 나면 안 날수록, 궁금증은 더 커졌다.
나는 책상 정리는 뒷전으로 하고, 그 검은 플라스틱에 연결되어 있는 열쇠의 정체를 밝히는 데 몰두했다.
스텐드 밑으로 가져가 좀 더 환한 불 밑에서 그 검은 플라스틱의 열쇠 고리를 살폈다.
그걸 이리 저리 돌리면서 보다 보니, 그냥 밋밋한 플라스틱이 아니었다.
위에 뭔가가 붙어있다 떨어진 자국이 보이는 것이다. 글자 같은 것이 붙어있다 떨어진 자국 같았다.
스텐드 밑에서 그 열쇠고리를 이리 저리 돌려보며, 그 희미한 자국의 글자들을 하나씩 읽어내려 갔다.
독....서.....실...
나는 그 세글자가 의미하는 것을 알아차렸을 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마치 그 열쇠가 지렁이라도 되는 듯이 내팽개치고 담배를 찾았다.
한참을 잊으려고 애썼고, 어느새 잊어버린 그 끔찍했던 일이 생각나는 것이었다.
잊어버렸던 그 때 일이 갑자기 또렷하게 기억나기 시작했다.
그 때의 무서움이 느껴졌는지, 저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담배에 불을 붙이고, 등을 벽에 기대고 깊게 들이마셨다.
그리고는 저기 떨어져 있는 열쇠를 바라보았다.
벌써 9년전 얘기였다.....
9년 전 그러니까 대학교 2학년 여름방학때의 일이었다.
남들은 배낭여행이다, 피서다, 공부다 하고 제각기 방학계획을 세웠지만,
군 입대를 2달 남긴 나로써는 특별한 계획을 세우기가 귀찮은 일처럼 느껴졌다.
친구들은 2달 남았으니, 실컷 놀다들어가라고 했지만,
이미 대학들어와서 1년반을 지칠 만큼 놀아버린 나로써는 더 이상 그런 식으로 시간을 낭비할 힘도 돈도 남아있지 않았다.
오히려 군대 갔다 와서 무엇을 해야할까라는 걱정이 벌써부터 들기 시작했다.
아무 생각 없이 군대 가면 한참동안 못 읽은 책들이나 실컷 읽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소설, 만화, 무협지, 사회 과학 할 것 없이 아무런 방해 없이 시원한 데서 책이나 읽고 싶었다.
그런 얘기를 친구들과 하다보니, 친구 한 놈이 독서실 총무로 아르바이트 하면 괜찮겠다고 하는 것이었다.
에어콘이 나오는데서 책 읽으면서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여기저기 독서실 총무 자리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하지만 거의 모든 독서실 총무 자리는 방학을 맞은 학생들과 고시생으로 채워져 있었다.
거의 포기하고 있을 때, 우연히 벼룩시장에 구인란에서 '독서실 총무 구함'이라는 광고를 보고 전화를 걸었다.
전화 번호가 서울이 아닌 것이 마음에 걸렸지만, 밑져야 본전인 생각으로 한번 걸어봤다.
아니나 다를까 독서실은 성남에 위치하고 있었다.
너무 멀어서 그냥 끊으려고 했는데, 전화를 받은 독서실 주인이 그래도 한번 와보라는 것이었다.
집과 너무 멀어 다니기 힘들다고 했다니, 그러면 자동차를 빌려줄테니 와보라는 것이었다.
독서실 총무 자리에 차를 빌려 주다니...
너무나 황당한 제의여서, 호기심까지 생겼다.
위치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듣고 그날로 찾아갔다.
성남 공단 근처에 위치한 그 독서실은 찾아가기 힘들 정도로 외진 곳에 있었다.
이런 데 있어도 독서실이 될까 할 정도의 생각까지 들었다.
덩그러니 상가 건물 하나가 있고, 주변에는 짓다만 아파트 공사장이 있었다.
아마 그 아파트를 겨냥하고 상가건물을 지었는데, 아파트가 들어서는 것이 늦어진 모양 같았다.
독서실은 그 상가 건물 맨 위층인 4층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었다.
그 건물 임대도 잘 안되었는지, 3층은 아예 비어있었고, 2층도 작은 미술학원이 하나 있을 정도였다.
나를 반갑게 맞아준 독서실 주인은 푸근한 인상의 40대 남자였다.
눈빛이 좀 이상한 것이 마음이 걸렸지만, 부드러운 말투 때문인지 별로 개의치 않게 되었다.
그 주인 말로는, 이전에 있던 총무가 얘기도 안하고 무단으로 나오지 않는 바람에 독서실 운영에 좀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원래 자기는 다른 동네에서 다른 가게를 하고 있어서 독서실을 지키고 있을 수가 없다는 했다.
근무 조건은 내가 들었던 어떤 독서실 총무 자리보다 좋았다.
웬일인지 보수도 딴 데보다 1.5배 정도였다. 근무시간도 생각보다 짧았다.
고시 공부하고, 유학 준비하는 사람들에게 독서실 열쇠를 다 나누어주었기 때문에 아침에는 일찍 올 필요 없고,
일요일은 쉬고 보통 학생들이 학교 끝날 시간인 오후 3시에 와서 새벽 2시까지 총무 역할을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학교 보충 수업후 학생들을 태우고 오는 용도의 봉고가 있는데, 그 시간 제외하고는 별로 쓸 일이
없으니까 특별히 필요하다는 얘기가 없으면 출퇴근에 몰고 다니라는 것이었다.
생각지도 않은 좋은 조건이었다.
나는 길게 생각할 것도 없이 언제부터 시작하냐고 물어보았다.
그것이 얼마나 성급하고 잘못된 결정이었는지는 알게된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언제부터 출근할 수 있냐는 내 질문에 주인은 가능하면 내일부터 시작하자며, 독서실의 구조를 안내해 주었다.
그 독서실은 전형적인 독서실 구조를 가지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총무실 겸 사무실이 있었고, 그 옆에는 컵라면 같은 것을 먹을 수 있는 작은 휴게실이 붙어 있었다.
그리고 총무실을 가운데 두고 양쪽으로 약간의 복도가 있고, 각각 남자방과 여자방이 나눠어져 있었다.
각각 40석정도 되는 크지 않은 크기였다.
그런데 여자방 쪽으로 난 복도 끝에 문이 하나 보였다.
그 문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도 안해 주길래 물어보았다.
저 문은 신경 안 써도 됩니다.
부서진 책상이나 의자, 못쓰는 물건들 넣어두는 곳이니까, 열 필요도 없어요.
오히려 열면 귀찮아 지기나 하고...?
이상할 정도로 단호한 어조로 대답해주었다.
나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갔다.
중고등학교 기말고사가 다가오기 때문에 현재 거의 모든 자리가 찼다는 얘기를 마지막으로 독서실을 나서다가,
무심결에 한 마디 했다.
아무리 봐도 괜찮은 일같은데, 먼저 총무는 왜 그만 두었죠??
특별한 뜻이 없게 내뱉은 질문에 독서실 주인의 표정이 좀 심각해지더니, 이상한 얘기를 해주었다.
그 친구 좀 이상해졌어요.. 음...
좀 실성한 사람처럼 행동하고... 잘 되었어요...
어짜피 그런 이상한 행동을 하는 사람을 계속 둘 수도 없는 형편이었는데..
하여튼 그 사람 고시공부하다 스트레스 받아서 그런지 좀 미친 것같았거든요..
그러더니 어느날 아무 연락 없이 독서실에 나오는 것을 그만둔 거예요.
얼마나 황당했는지...
잘 모르겠지만, 아마 공부 때려칠 생각으로 총무를 그만두었나 보죠.
사법시험 공부라는 쉬운게 아닌가 봐요.
붙으면 인생 피지만, 아까운 사람 수만명 갈아먹은 시험같아요...
괜히 미친 사람이 했던 일을 해야한다는 생각에 좀 오싹했지만, 별로 개의치 않았다.
단지 그 때는 운 좋게 좋은 자리 생겼다고 기분이 좋을 따름이었다.
내가 바라던 그런 독서실 총무 자리였다.
더구나 나게는 전에 일했던 총무처럼 스트레스 받을 필요 없이,
슬슬 놀면서 무협지나 실컷 보면 되는 일이었기 때문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로 생각되었다.
다음 날부터 출근하기로 하고 아저씨에게 인사하고 독서실을 나서는데,
중학생으로 보이는 예쁘장한 여자아이와 문에서 마주쳤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여자애는 무심코 지나가려던 나를 복잡한 표정을 하고 쳐다보는 것이었다.
아무 생각없이 지나쳤지만, 그 여자애의 이상한 시선은 그날 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할때까지 잊혀지지 않았다.
다음날 나는 읽을 책을 쌓아들고, 독서실로 향했다.
고시생과 유학 준비생들이 아침부터 공부할꺼라는 주인 어저씨의 말과는 달리 독서실은 아무도 없었다.
먼저 커피 자판기를 체크하고, 청소기를 들고 독서실 방안을 청소했다.
별로 시간 걸리지 않고 일을 끝내고 총무실로 돌아가는데, 갑자기 어제 창고라고 얘기했던 문이 보였다.
열 필요가 없다는 말 때문인지, 괜히 열고 싶어졌다.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문은 굳게 닫혀져 있었다.
몇번을 밀쳐보았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그 문에서 이상할 정도로 한기가 느껴지는 것이었다.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까지 했다.
그런 기분이 들자, 문 열기를 포기하고 총무자리에 앉아 책을 읽기 시작했다.
4시가 되니, 중학생으로 보이는 애들이 독서실에 오기 시작했다.
새로운 총무를 호기심 가득찬 눈으로 바라보았지만, 아직은 좀 어려운지 대충 인사하고 지나들 갔다.
차차 친해지겠지 라는 생각을 하고, 읽고 있던 책으로 눈을 돌렸다.
대부분의 애들이 공부 30분 하고 나와서 잡담 2시간 하는 것을 보니
내가 독서실 다니던 시절이 생각나서 혼자서 쓴 웃음을 지었다.
10시정도 되니까 주인 아저씨가 보충수업 끝난 애들을 태우고 독서실에 나타났다.
별일 없냐고 묻고는 약속대로 출 퇴근때 쓰라며 봉고 열쇠를 내게 건냈다.
자기는 먼저 들어간다며 나가던 주인 아저씨는 갑자기 돌아다 보면서, 이상한 말을 던지고 가버렸다.
"음... 만약 공부하던 애들이 다 나가면, 학생도 퇴근해..
괜히 아무도 없는데 늦게까지 있다가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나는 무의식중에 네 라고 대답했지만, 무슨 일 당하지 말고...? 라는 소리를 이해할 수 없었다.
물어보려 했을때는 이미 아저씨는 밖으로 나갔다.
한참을 무협지의 결정적인 장면을 보다, 애들이 우르르 독서실을 떠나는 기척에 시계를 보니,
11시 반정도를 가르키고 있었다.
그 즈음해서 공부하던 애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다들 가방을 싸들고 나오는 것이었다.
무슨 일 있냐고 물어보니, 애들 말로는 자기들은 다 이때쯤 독서실을 나간다는 것이었다.
한 두명은 모를까 전부 나가려고 하니 이상하게 보였다.
기말 고사 며칠 안 남았다는 애들이 전부 일찍 나가는 것도 이상했고,
시계를 보고 무엇에 쫓기듯이 나가는 듯한 분위기도 좀 이상했다.
마지막 아이가 나간 것은 11시 45분쯤이었다.
그런데 가방을 매고 황급히 나가던 그 애는 뭔가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는 것처럼 다시 돌아와
나를 보고 망설이다가 한마디 했다.
전날 독서실 앞에서 나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봤던 그 여자애였다.
"저.. 웬만하면 총무 오빠도 12시전에 독서실에서 나와요..?
처음에는 얘가 무슨 말을 하는지 이해 할 수 없었다.
"왜? 12시에 정전이라도 되는 거야?
내 질문에 그 애는 말할까 말까 망설이더니, 한마디 툭 뱉어 놓고 나가 버렸다.
"12시 넘어서 독서실에 있다간 그 애들이 나타날지도 모른다니까요!"
그 애들이라니....
도대체 그 여자애가 뜬금없이 던진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왠지 모르게 오싹한 기분이 들었지만, 도무지 무슨 얘기를 하는 줄 알 수 없었다.
아까 애들이 없으면 일찍 퇴근하라는 아저씨 말도 있고 해서
단지 생각보다 근무가 일찍 끝나서 좋을 뿐이었다.
읽던 책을 접고, 퇴근 준비를 했다.
혹시 책상위에 졸고 있는 애라도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독서실안으로 들어가 살펴봤다.
남자방은 아무도 없었다.
불을 끄고 여자방쪽으로 가다가 무심결의 복도에 붙어있는 시계를 보게 되었다.
12시 20분을 가르키고 있었다.
괜히 아까 들은 얘기가 생각나면서, 이유도 모르게 무서운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빨리 퇴근해야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 애 방문을 열고 들어가다가 나는 생각지도 못한 싸늘한 느낌에 움칫하고 놀랐다.
아무리 에어콘을 틀었다고 하더라도 이상할정도로 차가운 기운이 느껴졌다.
뼈속까지 파고 들어오는 한기가 느껴질 정도였다.
서둘러 에어콘을 끄고, 독서실안을 대충 돌아봤다.
역시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불을 끄고 문을 닫으려는 순간이었다.
저쪽 구석에서 '툭' 하는 소리가 들렸다.
단지 '툭'하는 소리였지만,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쳤다.
빨라지는 심장 박동소리를 느끼며, 다시 불을 키고 소리난 쪽으로 돌아보려 했다.
그런데, 왠일인지 불이 안켜지는 것이다.
총무실 불은 이상이 없는 것을 봐서는 정전 같지는 않은 것 같은데, 이 쪽 방만 불이 켜지지 않았다.
문쪽을 등지고, 어두운 독서실안을 바라보고 있으려니
저 어둠 구석에서 무언가 나롤 노려보는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덩그러니 비어있는 의자와 책상에 마치 사람들이 앉아 있는 것같은 생각도 들고,
도저히 깜깜한 독서실 안에 들어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래도 전등은 고치고, 그 소리가 뭔지는 알아봐야 했기에 손전등을 가져왔다.
손전등을 키고 독서실 안을 비춰봤다.
독서실이라 희미한 불빛이 켜져 있었던 곳이지만, 그 불마저 없으니 정말 음산했다.
손전등 불빛에 비춰지는 휭하고 비어있는 책상과 의자들은 기괴한 느낌마저 들게 했다.
스멀스멀하게 밀려오는 이유 모를 두려움을 꼭 참고, 손전등으로 독서실 안을 구석구석 비추어 봤다.
하지만 역시 아무 것도 없었다.
아까 그 소리는 내가 잘 못 들은 소리겠지 하고, 천장에 붙어있는 형광등을 살펴봤다.
스타트 다마와 형광등을 바꿔 봤지만, 불은 여전히 켜지지 않았다.
내일 수리공을 불러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손전등을 챙겨들었다.
그때였다.
어디선가 희미하지만, 아이들이 재잘거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그 괴기스러운 소리에 나는 등골이 오싹해지고 움직일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