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 {MARGIN-TOP:2px; MARGIN-BOTTOM:2px}매일 새벽이면 일어나서 아침 조깅을 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면 약간 다르다. 새벽에 일찌기 눈을 뜨기는 했지만 선뜻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질 못하였다.눈을 떳다가는 다시 감기를 여러차례 '일어나야지!' 머리에서만 일어 섰지 실제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를 못하였다. 어제부터는 '오일풀링'혹은 '오일 스위싱'이란 것을 시작하였다.이미 오래전에 '오일풀링'이란 것을 들은 바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데 2주전부터 미국인 중앙대 교수인 조지 알프레도에게 이 '오일풀링'에 대하여 설명을 하여주었다. '오일풀링'을 설명하여 주면서 스스로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작 나 자신이 해보지도 않고서 설명은 그럴싸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한국에 온지 4년이 넘어서 왠만한 한국말은 모두 구사하며 이해한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알게된 사이지만 아주 가깝게 깊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여느 미국인과 달리 한국에 대하여 애정이 깊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와 나아가서 한국의 전래 의학에 대하여까지 폭넓은 대화를 하였다.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나와같이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다. 음식도 아주 한국적으로 먹는 것을 즐겨한다. 식성이나 기호가 나와 매우 가까와서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햄버거같은 서양식 요리를 멀리하고 한국식 찌게나 국과 반찬을 더 좋아하였다. 그런데 아직 몇가지는 잘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생식과 자연식에 대한 정보를 더 나누어 주었다. 아주 좋아라 하면서 덥석 덥석 받아 들였다. 어쩌다가 '오일풀링'에 대하여 설명하면 의아해하면서도 호기심을 표시하였다. 그러다, 며칠전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덜컥 제안을 하였다. "함께 오일풀링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지 않아도 이구실 저구실로 해보지 않았던 터라서 흔쾌히 동의를 하여 맞장구를 쳤다. 함께 재래식 시장으로 가서 기름집을 찾았다. 올리브 기름이나 카놀라 기름도 무난하겠지만 이왕이면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나을듯 하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할머니 기름집을 찾아갔다. 마침 할머니는 들기름을 팔려고 짜놓고 일정리를 하시는 중이었다. 들기름을 두병 14000원에 사서 들고 장터를 나오는 길에 버섯, 가지나무등 야채도 사서 들었다. 기름 사러 나오면서 미리 점심으로 현미, 서리태와 팥을 물에 담그어 놓았다. 이왕이면 '임금님식 점심'을 먹자면서 사야 할 것을 내가 정하였다. 대추와 달걀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현미, 서리태, 팥을 밥통에 넣고 버섯, 대추, 양파와 호박등을 넣고 밥을 하였다. 밥이 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조지 발라레조 교수에게 한자성어를 이야기 하였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사자성어를 설명해 주면 너무 좋아하였다. 시간이 날때면 일반인이 자주 사용하지 않으나 중요한 한국말을 알려주곤 하였다. 밥솥에서 소리가 나면서 냄새가 수증기를 타고 올랐다. 냄새를 맡으면서 둘이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둘이는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른바 '왕의 음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하여 있는 것이다. 반찬은 필요 없게 느껴졌다. 단지, 미리 씻어 둔 당근, 오이 그리고 찍어 먹을 자연산 된장이면 족하다 여겨졌다. 상이나 테이블도 필요없는 심플성 점심을 선호한다. 이윽고 밥이 지어졌다는 신호가 왔다. 나는 손짓을 하여 잠시 더 기다리자고 했다. 서둘러 먹기 보다는 진미 앞에서 일종의 엄숙한 의식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뜸을 들이는 시간이 밥 짓는 시간보다 더 오래처럼 여겨졌다. 뜸이 들었다고 생각이 들자 함께 밥뚜껑을 열면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수증기 사이로 현미밥이 나타났다. "와!" 둘이는 거의 동시에 탄성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 질렀다. 엔돌핀이 터져나오는 기분이었다. 보기에도 수려하였고 냄새도 황홀하였다.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연장자인 나에게 먼저 밥을 뜨라며 권하였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나는 그러지 말고 함께 뜨자고 하여 함께 밥을 떴다. 밥을 밥그릇에 담으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유머를 섞어서 한마디 하여야 할 시간이었다. "오바마마도 이런 음식은 먹어보지 못하였을 겁니다!" 우리의 어바마마와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합성하여 만든 말이라며 부연 설명을 하여주었다. '어바마마'라는 단어를 미국식으로 설명하여 주니 더욱 기뻐하였다.엊그제 이홍영 사장님에게서 재래식 된장과 김치를 얻어다 놓은 것을 생각하니 더욱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
나의 어느하루
매일 새벽이면 일어나서 아침 조깅을 하는 것을 습관으로 삼고있다.
그런데 일요일 아침이면 약간 다르다.
새벽에 일찌기 눈을 뜨기는 했지만 선뜻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질 못하였다.
눈을 떳다가는 다시 감기를 여러차례 '일어나야지!' 머리에서만 일어 섰지 실제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서지를 못하였다.
어제부터는 '오일풀링'혹은 '오일 스위싱'이란 것을 시작하였다.
이미 오래전에 '오일풀링'이란 것을 들은 바 있지만 대수롭지 않게 여겼었다.
그런데 2주전부터 미국인 중앙대 교수인 조지 알프레도에게 이 '오일풀링'에 대하여 설명을 하여주었다.
'오일풀링'을 설명하여 주면서 스스로 우습다는 생각도 들었다.
정작 나 자신이 해보지도 않고서 설명은 그럴싸하게 하고 있으니 말이다.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한국에 온지 4년이 넘어서 왠만한 한국말은 모두 구사하며 이해한다.
같은 동네에 살면서 알게된 사이지만 아주 가깝게 깊이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그런 사람이다.
여느 미국인과 달리 한국에 대하여 애정이 깊다.
그래서 한국에 대한 정치, 경제, 문화와 나아가서 한국의 전래 의학에 대하여까지 폭넓은 대화를 하였다.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나와같이 술과 담배는 하지 않았다.
음식도 아주 한국적으로 먹는 것을 즐겨한다.
식성이나 기호가 나와 매우 가까와서 더욱 친근감을 느낀다.
햄버거같은 서양식 요리를 멀리하고 한국식 찌게나 국과 반찬을 더 좋아하였다.
그런데 아직 몇가지는 잘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래서 생식과 자연식에 대한 정보를 더 나누어 주었다.
아주 좋아라 하면서 덥석 덥석 받아 들였다.
어쩌다가 '오일풀링'에 대하여 설명하면 의아해하면서도 호기심을 표시하였다.
그러다, 며칠전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덜컥 제안을 하였다.
"함께 오일풀링을 해보면 어떨까요?"
그러지 않아도 이구실 저구실로 해보지 않았던 터라서 흔쾌히 동의를 하여 맞장구를 쳤다.
함께 재래식 시장으로 가서 기름집을 찾았다.
올리브 기름이나 카놀라 기름도 무난하겠지만 이왕이면 참기름이나 들기름이 나을듯 하였다.
그래서 오래전부터 알고 있던 할머니 기름집을 찾아갔다.
마침 할머니는 들기름을 팔려고 짜놓고 일정리를 하시는 중이었다.
들기름을 두병 14000원에 사서 들고 장터를 나오는 길에 버섯, 가지나무등 야채도 사서 들었다.
기름 사러 나오면서 미리 점심으로 현미, 서리태와 팥을 물에 담그어 놓았다.
이왕이면 '임금님식 점심'을 먹자면서 사야 할 것을 내가 정하였다.
대추와 달걀도 사서 집으로 돌아왔다.
먼저 현미, 서리태, 팥을 밥통에 넣고 버섯, 대추, 양파와 호박등을 넣고 밥을 하였다.
밥이 되는 시간을 기다리면서 조지 발라레조 교수에게 한자성어를 이야기 하였다.
시간이 있을 때마다 사자성어를 설명해 주면 너무 좋아하였다.
시간이 날때면 일반인이 자주 사용하지 않으나 중요한 한국말을 알려주곤 하였다.
밥솥에서 소리가 나면서 냄새가 수증기를 타고 올랐다.
냄새를 맡으면서 둘이는 만면에 미소를 지었다.
둘이는 말을 하지 않고 있지만 이른바 '왕의 음식?'에 대한 기대감으로 충만하여 있는 것이다.
반찬은 필요 없게 느껴졌다.
단지, 미리 씻어 둔 당근, 오이 그리고 찍어 먹을 자연산 된장이면 족하다 여겨졌다.
상이나 테이블도 필요없는 심플성 점심을 선호한다.
이윽고 밥이 지어졌다는 신호가 왔다.
나는 손짓을 하여 잠시 더 기다리자고 했다.
서둘러 먹기 보다는 진미 앞에서 일종의 엄숙한 의식의 시간이 필요하였다.
뜸을 들이는 시간이 밥 짓는 시간보다 더 오래처럼 여겨졌다.
뜸이 들었다고 생각이 들자 함께 밥뚜껑을 열면서 안을 들여다 보았다.
수증기 사이로 현미밥이 나타났다.
"와!" 둘이는 거의 동시에 탄성을 들리지 않을 정도로 내 질렀다.
엔돌핀이 터져나오는 기분이었다.
보기에도 수려하였고 냄새도 황홀하였다.
조지 발라레조 교수는 연장자인 나에게 먼저 밥을 뜨라며 권하였다.
진수성찬이 따로 없었다.
나는 그러지 말고 함께 뜨자고 하여 함께 밥을 떴다.
밥을 밥그릇에 담으면서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유머를 섞어서 한마디 하여야 할 시간이었다.
"오바마마도 이런 음식은 먹어보지 못하였을 겁니다!"
우리의 어바마마와 미국 대통령 오바마를 합성하여 만든 말이라며 부연 설명을 하여주었다.
'어바마마'라는 단어를 미국식으로 설명하여 주니 더욱 기뻐하였다.
엊그제 이홍영 사장님에게서 재래식 된장과 김치를 얻어다 놓은 것을 생각하니 더욱 감사의 마음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