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여친과의 연락을 숨기는 남친..

sky052013.05.07
조회1,298
안녕하세요. 항상 눈팅만 하다가 처음으로 글 올려 봐요.
먼저 방탈 죄송합니다. 정말 이런 데에 제가 글을 올리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는데 너무 가슴이 답답하고 아무리 고민해 봐도 도저히 저 스스로 이성적인 방법을 떠올리지 못하겠어서 현명한 인생 선배님들의 조언을 구해보려고 용기 내서 한 번 써 봅니다..


저와 남친은 대학원에서 만난 27살 동갑내기 커플입니다. 사귄 기간은 그렇게 길지 않지만 둘 다 유학중이라, 일할 때나 잘 때를 제외하고는 거의 하루 종일 같이 있는 편입니다.

남 친은 평소에 저한테 애정표현도 잘 하고 요리도 잘 해 주고 제가 좀 사소한 것에 잘 서운해하는 편인데 그럴 때마다 자기가 미안하다고 달래주는 착하고 자상한 사람이에요. 조금 달래주다 제가 빨리 안 풀면 오히려 자기가 삐져버려서 제가 절절맬 때도 있긴 하지만; 그리고 저도 평소에 애정표현+애교 아낌없이 발사하고 사소한거에 잘 서운해하는 만큼 사소한거에 잘 감동하고 고마워하는 편이라 여태 그렇게 하루종일 붙어있는데도 별 트러블 없이 예쁘게 잘 사귀고 있었어요. 정말 제가 얘 때문에 이렇게 잠도 못 자고 속상한 마음에 뜬눈으로 날밤을 샐 줄은 꿈에도 몰랐죠...

저랑 사귀기 바로 전에 남친한테는 정말 좋아했던 여자가 있었어요.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저한테 고백하고 사귀게 되기 얼마 전에 헤어진 거라 마음이 남아있는 건 아닌데 문득문득 추억같은 게 생각이 나는 모양이더라구요. 제가 좀 이런 거에 쿨하...진 않지만, 솔직히 저도 처음 연애해보는 것도 아니고, 헤어진 지 얼마 안 되었으면 가끔씩 생각날 수도 있지 하는 맘에 왠만하면 바가지 안 긁고 장난스럽게 웃으며 잘 들어줬었어요. 저한테 숨기고 혼자 추억하면서 생각하는 것 보다는 생각 날 때마다 오히려 자연스럽게 저한테 얘기하고 같이 웃고 넘기는 게 남친이 더 빨리 전 여친을 잊고 말해도 무뎌지는 데에 더 나을 것 같아서 그랬죠. 왜, 막 엄청 슬픈 일도 혼자 묻어두고 생각하는 것보다 자꾸 다른사람이랑 그거에 대해 얘기하고 말하고 하는 게 더 빨리 잊혀지잖아요.

여튼 그래서 반 자의 반 타의로 남친과 전 여친분의 연애역사(?)를 많이 알게 되었어요. 어떻게 만났는데 누가 먼저 좋아했고 어떤 면에 반했고 사귀기 전에 데이트를 어디서 어떻게 했고 어떤 기분이었고 뭐때문에 어떻게 싸웠고 그러다가 어떻게 화해했고 뭐때문에 힘들었고 뭐라고 해서 얼마나 힘들었고 결국 어떻게 헤어졌는지까지... 디테일 다 빼고 대충 핵심만 말하면, 남친이랑 전 여친이랑은 정말 서로 너무 사랑하고 이 사람이다 싶어서 결혼까지 하려고 했었는데 양쪽 집에서 (특히 남친 집에서) 반대가 너무 심해서 같이 이걸 극복하네마네 하면서 버티다가 싸우다가, 갈수록 부모님께도 너무 죄송하고 정신적으로 지치기도 해서 남친이 연락을 그냥 며칠 끊었었는데 연락이 며칠동안 안 되니까 전 여친분이 헤어지자고 그래서 헤어졌대요.

이걸 다 한두번에 길게 얘기한 게 아니라 여러번에 나눠서 뭐 생각 날 때마다 말한 거라서, 그때마다 항상 웃으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들어주긴 했지만, 사실 속에서는 마음이 아팠죠 많이.. 다른 여자랑 좋았던거 싸웠던거 다 들어주면서 어느 여자친구가 안 속상했겠어요. 그래도 남친이 전 여친 얘기를 했다가도 꼭 마무리는 저랑 만나서 얼마나 자기가 지금 행복한지 얘기하면서 이런거 자꾸 얘기해서 미안하고 이해해줘서 고맙다고 꼭꼭 뽀뽀해주고 안아주고 그래서, 들으면서 속상했다가도 풀곤 했어요. 자기 할 말 다 해놓고 뒤늦게 수습하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정말 진심인 게 느껴졌거든요. 뭐 그러다가 좀 지나서 어느 순간부터는 전 여친 얘기를 안 하게 되더라구요. 그래서 저는 솔직히 좀 좋았죠. 아 얘가 전 여친을 진짜 잊어가는구나! 하구요.

그러던 어느 날, 한 보름 전쯤? 남친이 뭔가 말을 할까말까 고민하는 눈치더니 할 말이 있다고 하더라구요. 뭔가하니, 전 여친이 갑자기 페북 메세지로 남친이 한국에 가면 한 번 만나서 얘기를 하고 싶다고 했대요. 자기는 아직도 니가 왜 연락을 갑자기 끊었었는지, 우리가 왜 그렇게 헤어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그래서 마음정리가 안 된다고. 그래서 남친이 왜 우리는 안 되는지, 그 때 왜 연락을 안 했는지 다 말해줬대요. 자기가 할 말은 다 한 것 같다고, 만나더라도 너한테 더 해줄 말은 없을 것 같다고, 그리고 지금 나한테는 사랑하는 사람도 생겼다고. 그래도 그 전 여친분이 이런 건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했음 좋겠다고 자꾸 그래서, 남친이 그럼 알겠다고 이번 여름에 한국 가면 알려주겠다고 얘기했다며 저한테 말해주더라구요. 괜찮겠냐면서... 그래서 저는 뭐 그런걸 만나도 되냐고 물어보는 것도 아니고 이미 만나자고 오케이 했으면서 물어보냐고, 먼저 나한테 물어보고 말해준다고 하든지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했죠. 그리고 너 혹시 흔들리고 그런거면 나 상처받기 싫으니까 솔직히 말해달라고. 그랬더니 절대 아니래요. 자기가 사랑하는 건 저밖에 없다면서, 자기는 다 정리 하고 이제 맘 없는데 자기가 헤어질 때 일방적으로 연락 끊고 그래서 헤어지자는 걸 잡지도 않고 그래서, 자기가 확실히 해 주지 못해서 여태껏 마음 정리 못 하는 게 안쓰럽고 불쌍해서 만나주겠다고 했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저한테 먼저 물어보지 못한 건 미안하다고, 자기도 그 때 너무 갑작스럽고 당황해서 거기까지 생각을 못 했다고, 자기 생각이 짧아서 미안하다고. 그러면서 자기가 전 여친 만날 때 같이 가자고까지 하더라구요. 옆에 같이 있으라고. 근데 뭔가 그 자리에 같이 가는 걸 상상해보니까 부담스럽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뻘쭘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냥 가서 얘기 잘 하고 전 여친 맘 확실히 정리해주고 오라고 하고 넘어갔어요.

그런데... 이게 말이죠.... 아 정말 생각만 해도 가슴이 먹먹하네ㅠ
제가 원래 아무리 가까워도 프라이버시는 잘 존중해주는 편이라 평소에 남친 폰도 잘 안 보고 그래요.. 근데 왜 여자의 감? 촉? 이런 게 있잖아요.
제가 원래 엄청 눈치도 없고 둔한 편인데.. 이상하게 뭔가 찝찝하게 걸리더라구요.
그 래서, 저도 잘 한 건 아니지만ㅠ 남친이 컴터에 페북이랑 이런저런거 켜 놓고 잠시 자리 비웠을 때 전 여친이랑 나눈 페북 메세지를 몰래 봤어요. 남친이 평소에 좀 "헐.. 이렇게 일부러 얘기 안 해도 될 것까지 이렇게 얘기하나" 싶을 정도로 솔직하게 대놓고 얘기하는 편이라, 솔직히 의심하는 맘에서 본 건 아니었어요. 제가 그런 걸 이해 못 하고 바가지긁는 성격도 아닌데다, 전 여친이 만나고싶다고 한 것도 자기가 먼저 말해줬잖아요? 약간의 호기심+찝찝함해소의 의도로 본 거였는데...

남친이 저한테 말해줄 때에 제가 느꼈던 "단호함"은 전혀 찾아볼 수가 없더라구요. 전 여자친구도, 왜 헤어졌는지 이해가 안 된다고 한 건 맞는데, 애초에 연락한 의도가 정리하려는 게 아니더라구요. 왜 갑자기 연락을 끊었는지, 원인을 알아야 서로 노력해서 방법을 찾지 않겠냐. 헤어지면 정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그게 잘 안 되더라며, 남친이 아직도 좋다고. 보고싶다고. 정말 어이없던 건 남친의 반응이었어요. 제가 남친이 잠깐 나간 사이에 몰래 본 거라 찬찬히 보진 못했지만 일단 뉘앙스부터 단호한 게 아니라 다정함이 묻어있었고, 자기도 너랑 헤어진 뒤에 정리 못 하고 많이 힘들어 했었다며.. 심지어 여자친구 생겼다는 얘기도 안했더라구요. 정말 대화 전체 느낌으로는 서로 '우리 헤어졌지만 잊지 못하고 아직 마음 있으니까 만나서 얼굴 보고 얘기하면서 다시 만날 방법을 강구해보자' 였어요. 한 이틀에 걸쳐서 얘기하고, 마지막엔 전 여친분이 남친 카톡 아이디 물어보고 그 이후로는 대화 나눈 게 없더라구요. 정말.. 대화 내용 다 보고 얼른 다시 화면 돌려놓고 있는데 가슴이 철렁 내려앉더라구요. 잠시 후에 남친이 다시 돌아왔는데, 돌아와서 정말 환한 얼굴로 '오래 기다렸지 우리 애기~' 하는데 정말.......... 하아..

그런데 제가 남친을 좋아하긴 많이 좋아하나봐요. 그래도 남친이 워낙 착한 편이라서, 많이 좋아했던 사람이었는데 모질게 말할 수가 없어서 그랬겠지 하고 그냥 지냈어요. 남친도 저한테 너무 헌신적이고 다정하고 예뻐해주고 절 볼 때마다 완전 눈에서 하트가 보이고 (제가 콩깍지 씌여서 그래보인 거 아니에요;) 정말 사랑하고 아껴주는 마음이 안 느낄래야 안 느껴질 수가 없을정도여서, 솔직히 제가 본 걸 믿기 힘든 것도 있었어요. 그래도 마음에 걸리긴 하니까, 가끔씩 저랑 남친이랑 "만약에 ~면 어떡할거야?" 이런 질문 서로 하고 그러기도 하는데, 제가 은근슬쩍 떠보느라고 그런거 물어봤었어요.
만약에 내가 바람피다 걸리면 어떡할거야?
그럼, 만약에 내가 바람 핀 상대가 전 남친이면 어떡할거야?
그럼 바람 말고 내가 양다리면 어떡할거야?
만약에 니가 거짓말을 했는데 내가 그걸 어쩌다 알았어, 근데 내가 너 거짓말 한 걸 안다는 걸 니가 눈치챈거지. 그럼 어떡할거야?
... 물론 다른 질문들도 중간중간 섞어하고 그랬죠. 근데 얘가 대답을 하는데 내가 떠보는 건지를 알아챈건지 못 알아챈건지를 전혀 모르겠는거에요ㅠㅠ 제 나름에는 얘가 눈치가 빠른 편이니까, 눈치를 채고 저한테 "사실은 있잖아~" 하면서 자백해주길 바랬던 거였는데..

그러다가 오늘, 아니 이제 새벽이니까 어젯밤에, 남친 옆에서 폰으로 게임을 하고 있었는데 문득 남친이 자기 카톡 아이디를 전 여친한테 알려줬던 게 생각이 나서, 남친이 컴터에 몰두하고 있는 사이에 살짝 봤어요. 근데... 리스트 두번째에 있더라구요, 그 전 여친 이름이. 제가 좀 겁이 많아서; 이번엔 남친이 어디 자리 비운 것도 아니라 내용을 진짜 살짝 잠깐 봤는데... 지금 뭐하냐는 사소한 거, 자잘한 수다부터 시작해서 한국 언제오니, 빨리 보고싶다 뭐 이러는데... 남친이 거기다가 '나도' 하는 거까지만 보고 더 이상 도저히 못 보겠어서 얼른 껐어요.

그러고 나서 집에왔는데, 아무것도 손에 안 잡혀서 그냥 일찍 자려고 누웠는데...
제 가 원래 머리에 뭐만 닿으면 잠드는데, 너무 속상하고 답답하고 심장이 쿵쾅쿵쾅뛰고 먹먹하고 진짜 이걸 뭐라고 표현해야할지ㅠㅠ 그저께까지만 해도 같이 저녁에 산책하면서, 이번에 한국 가면 자기 가족들 소개시켜주겠다고 (남친 부모님은 저랑 남친이랑 사귀는 것도 아시고, 남친이 평소에 하도 제 자랑을 해서 벌써 저를 예뻐하시는 눈치에요;), 저랑 빨리 결혼하고 싶다고 그러면서 손 꼭 잡고 얘기했었는데... 남친이 막 사교성있거나 바람둥이 양다리 스타일은 절대 아닌데, 지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아서 뜬눈으로 밤을 새다가... 정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이렇게 새벽에 일어나서 주저리주저리 두서없는 장문을 쓰게 된 거에요.

정말, 페북 메세지까지만 봤을 때는 믿고 싶었는데.. 이렇게 되니까 더 상처받기 전에 정말 하루라도 더 빨리 헤어지고 싶은데.. 그런데도 아직 좋아하는 맘이 정리가 안 되고 남아있어서 더 혼란스러운 것 같아요ㅠ 아아...
내 일 분명히 만날 텐데,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어떻게 하고 싶은지도 모르겠어요.. 나한테 뭐 거짓말이나 숨기는 거 없는지 솔직히 말해보라고 하고 얘기를 들어볼지, 아니면 그냥 일방적으로 헤어지자고 말해버릴지, 남친 집에 사실은 나 다 알고 있다며 헤어지자는 편지를 써 두고 나와야 할지, 우리 잠시 만나지 말자고 해야 할지, 정말 머릿속에 수십가지 생각으로 가득차서 너무 힘들어요... 어떻게 하는 게 가장 현명한 방법일까요? 현명한 결시친 언니들, 저 좀 도와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