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같은 생물들의 괴성이 쉽사리 가라 앉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이 존재가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큰 것인가.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크크크큭.”
그의 모습은 영락 없이 늑대 부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곧 그의 두 눈이 타오르듯 빛나며 번뜩거린다.
“자, 움직일 때다.” “?” “녀석들은 한 번 나가면 꽤 오래 자리를 비워두거든.” “하지만 이 유리관이 너무 단단합니다.”
그는 유들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자네보다 오랜 시간을 갇혀 지내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지.” “..노하우?” “녀석들은 내가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지대한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에 소각시키지 않았어. 그게 오늘 날의 화를 불러올지는 녀석들도 꿈에도 모를거야. 끌끌끌.”
광기. 두 눈은 완전히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방금 전 온전히 대화를 나누던 차분하고 어쩐지 강인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커다랗게 웃어넘기며 유리관의 작은 모서리 부분을 강하게 걷어차기 시작한다. 콰앙. 콰앙. 소용없는 짓이다.
“갇혀 지낸 시간 동안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덕에 이렇게 금이 가게 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 아, 물론 녀석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적절한 연기가 필요 했어. 이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말이야.”
콰앙. 쾅. 콱. 낯선 소음과 함께 모서리 부분이 크게 균열이 가게 시작한다. 충격이 가증 될수록 그 균열은 유리관의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고 그는 더 빠르게 가격하기 시작한다.
“크아아아!” “크아아!”
그 소리와 행동에 잔뜩 흥분한 녀석들이 유리관을 마구 두드려대며 저 존재를 응원하는 것 같다. 퍽. 콰직. 계속되는 가격에 완전히 구멍이 뚫린 유리관. 그는 머리통만한 구멍을 물끄러미 보더니 크게 기합을 지르고는 다른 곳을 가격해 완전히 뚫어내는데 성공했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유리 조각들. 대충 조각들을 걸러낸 그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밖으로 걸어나와 내 앞에 섰다. 곧 가까이 다가와 예리한 손톱으로 유리관을 톡톡 두드린다.
“나와 함께하겠나?” “....” “여깄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에 타죽을 뿐이야. 정말 그러길 바라나? 이대로 개처럼 죽어버릴텐가?”
딱히 나갈 이유도 없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누가 반겨주겠는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
“아까 끌려가던 계집.” “!” “티가 너무 잘나는군. 그 계집이 저런 놈들한테 죽는다고 해도 상관 없나? 최근 저 계집만 데려가는게 영 찜찜한데 말야. 혹 노리개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몰라.” “그건..”
그럴 수 없다. 은혜만은.. 내 손으로 지켜주고 싶다. 그의 얼굴이 바짝 다가온다. 유리관에 철썩 붙은 그의 입이 좌우로 크게 벌려진다.
“어쩌면 오래 못 살지도 모른다구.”
그 말은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오래 생각하지 않고 단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 때 몸이 이미 반응해버린다. 그만큼 은혜가 나에게는 각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연약한 소녀는 내 삶의 이유가 되어버렸다.
“좋아. 기다려보라구.”
그는 양손을 살살 비벼가며 유리관 옆에 있는 버튼들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녀석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한게 바로 이 부분이지. 내가 온전히 생각할 수 있는걸 간과하고 적나라하게 버튼들을 눌러대니 말야. 어느 것들을 눌러야 하는지 눈 여겨 보기를 잘했어.”
마지막 버튼을 누르자 유리관이 서서히 옆으로 열린다. 취이익. 바깥 공기가 온 몸을 강타하는 느낌. 나쁘지 않다. 멍하니 유리관이 걷히는 것을 보고 있자 그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환영하네. 동지.”
동지라.. 나와 완전히 입장과 처지가 같은 그가 내뱉은 말은 전혀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을 강하게 잡고서 바닥을 내딛었다. 그리고 은혜가 사라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잠깐.” “?”“우리 둘만 가서 개죽음 당하는건 사양이다. 이 녀석들을 충분히 이용해주자구.”
그는 다른 유리관 속에서 발광을 하고 있는 생물들을 가리켰다. 찬찬히 검은 생물들을 바라본다. ‘꺼내줘.’, ‘도와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전에 모습은 온전한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생물들이었다. 길게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생물들 역시 자유로운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바로 옆 유리관에 다가가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그가 얼른 내게 다가와 방법을 알려준다.
“자, 이렇게 해서 누르는거야.”
간단했다. 여러 가지 버튼을 조합하면서 누르면 열리는 구조다. 삐빅. 비비빅. 몇 번의 조작 끝에 아까 전 나를 노려보던 생물의 유리관을 열어준다. 취이익. 생물은 나를 죽일 듯 노려보지만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쓸데 없는 분쟁은 사양이기에 다른 유리관으로 이동해 버튼을 조작한다.
삐비빅. 삑. 요령이 생기자 생물들을 풀어주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생물들은 저마다 풀려났다는 흥분감 때문인지 마구 괴성을 질러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오래 관찰할 시간이 없다. 이어 다른 유리관의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다.
‘고맙다.’, ‘서둘러.’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째서 저들의 의사가 더 분명히 전달되는 것일까. 쉴새 없이 버튼을 누르는 도중 낯선 소리가 들린다.
띵-동.
엘리베이터의 소리. 생물들의 괴성에 비하면 작은 소리지만 이런 소란 속에서도 생물들의 청각은 예민했다. 일제히 고개를 홱 돌려 엘리베이터로 시선이 집중된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하는 3명의 사람들.
“크와아아!” “크와우!”
그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앞뒤 다퉈가며 사람들에게 돌진하는 생물들. 놀란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며 총을 여러발 날려대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선두에 선 생물이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강하게 뜯어내고는 입안 가득 베어문다.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오르려고 하지만 생물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사람들의 사지를 완전히 잡은 생물들은 거칠게 그것을 비틀어 뜯어내고는 입속에 넣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사람들.
순식간에 사지를 잃은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었다. 으적대며 승리의 괴성을 질러대는 생물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생물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의 충실한 개들이지. 먹을 것만 주면 목숨 아까운줄 몰라.” “단순한 복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는 나를 빤히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나는 이곳에 사는 인간들을 모두 멸종시킬 것이야.” “..멸종?” “그래. 어서 하던 일을 계속하게. 나는 녀석들을 다독이고 있을테니.”
그는 남은 고깃덩어리 갖고 싸우는 생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차분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과 광기에 젖어 바닥에 흥건피 고인 피를 정신 없이 핥아대는 생물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내가 한 일이 과연 잘한 것일까. 그저 은혜만 안전히 빼내면 되는 일이었는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삐비빅. 삐빅. 계속 생각에 잠기지만 손은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완전히 유리관을 벗어난 검은 생물들이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중앙에는 단연 그가 서있었다. 수백은 되어 보이는 검은 생물들의 가운데서 포효를 하는 그의 모습은 악귀와도 같았다.
“크와아아!”
길게 포효를 마친 그의 명령에 따라 생물들이 여러 방면으로 갈라진다. 진즉에 열린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생물들이 있는가하면 한쪽에 마련된 비상구 쪽으로 이동하는 생물들이 전부다. 검은 물결과도 같은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니 문득 답답함이 느껴졌다.
벽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본다. 푸르고 넓은 숲과 그 너머에 있는 민가들. 이 생물들이 모조리 빠져나간다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멍하니 밖을 본다. 부르릉.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본다. 그리고 그곳엔..
“은..혜.”
낯선 사람 손에 끌려가는 연약한 은혜가 단 번에 눈에 잡힌다. 단숨에 뛰어내려 은혜를 데리고 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빠른 동작으로 차에 은혜를 태운 사람은 곧 차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부드득. 잡고 싶다. 은혜를 빼내고 싶다.
“크으..”
창틀을 강하게 움켜쥔다. 있는 힘껏 밀어낸다. 우두둑. 우둑. 뼈가 부러지고 갈리는 소리와 함께 조금씩 벽의 균열이 생긴다.
“크아아아!”
내가 낸 소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거대하다. 이미 내 몸은 제어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우두두둑.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낸 내 몸은 잔재들을 앞으로 밀어버리고는 작은 점이 되어 있는 차를 가만히 바라본다. 멈춰줘. 은혜를 지키게 해줘.
“....”
강렬한 염원이 닿았을까. 차가 멈춘다. 문이 열리며 낯선 사람이 고개를 내민다. 눈매를 좁히고 그 사람을 가만히 본다. 그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이 곳 연구의 담당자 송병헌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처음 나에게 임상 실험을 권했던..
‘아하하하. 이거 원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군요.’
기분 좋은 웃음으로 나를 반기던..
‘은혜를 잘 부탁합니다.’
나에게 은혜를 맡기던 남자. 송병헌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괴물의 모습인 나보다 그가 은혜를 보살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그의 마음이라면 분명 은혜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잠시. 그와 눈이 마주친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타앙- 탕. 처음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총소리가 들린다. 뒤로 조금씩 물러난다. 마지막 은혜의 모습을 보고 싶지만 금세 떠나버리는 차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밖에나가지마시오2 10화
출처 - 웃대 삶이무의미함 님 -
나와 같은 생물들의 괴성이 쉽사리 가라 앉지 않는다. 그 정도로 이 존재가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큰 것인가. 가만히 그를 바라본다.
“크크크큭.”
그의 모습은 영락 없이 늑대 부족을 다스리는 우두머리와 비슷해 보였다. 그리고 그것을 즐기고 있었다. 곧 그의 두 눈이 타오르듯 빛나며 번뜩거린다.
“자, 움직일 때다.”
“?”
“녀석들은 한 번 나가면 꽤 오래 자리를 비워두거든.”
“하지만 이 유리관이 너무 단단합니다.”
그는 유들하게 웃으며 손을 저었다.
“자네보다 오랜 시간을 갇혀 지내면서 쌓은 노하우가 있지.”
“..노하우?”
“녀석들은 내가 온전히 정신을 유지하는 것에 대해 지대한 호기심을 가졌기 때문에 소각시키지 않았어. 그게 오늘 날의 화를 불러올지는 녀석들도 꿈에도 모를거야. 끌끌끌.”
광기. 두 눈은 완전히 광기로 물들어 있었다. 방금 전 온전히 대화를 나누던 차분하고 어쩐지 강인해 보이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다. 커다랗게 웃어넘기며 유리관의 작은 모서리 부분을 강하게 걷어차기 시작한다. 콰앙. 콰앙. 소용없는 짓이다.
“갇혀 지낸 시간 동안 한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략한 덕에 이렇게 금이 가게 되는 성과를 얻을 수 있었지. 아, 물론 녀석들이 눈치 채지 못하게 적절한 연기가 필요 했어. 이젠 그럴 필요도 없지만 말이야.”
콰앙. 쾅. 콱. 낯선 소음과 함께 모서리 부분이 크게 균열이 가게 시작한다. 충격이 가증 될수록 그 균열은 유리관의 전체를 뒤덮기 시작했고 그는 더 빠르게 가격하기 시작한다.
“크아아아!”
“크아아!”
그 소리와 행동에 잔뜩 흥분한 녀석들이 유리관을 마구 두드려대며 저 존재를 응원하는 것 같다. 퍽. 콰직. 계속되는 가격에 완전히 구멍이 뚫린 유리관. 그는 머리통만한 구멍을 물끄러미 보더니 크게 기합을 지르고는 다른 곳을 가격해 완전히 뚫어내는데 성공했다.
쨍그랑 소리를 내며 바닥에 우수수 떨어지는 유리 조각들. 대충 조각들을 걸러낸 그는 여유로운 동작으로 밖으로 걸어나와 내 앞에 섰다. 곧 가까이 다가와 예리한 손톱으로 유리관을 톡톡 두드린다.
“나와 함께하겠나?”
“....”
“여깄으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불에 타죽을 뿐이야. 정말 그러길 바라나? 이대로 개처럼 죽어버릴텐가?”
딱히 나갈 이유도 없다. 이런 모습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누가 반겨주겠는가. 더 이상 인간이 아니다. 그들과 어울릴 수 없다.
“아까 끌려가던 계집.”
“!”
“티가 너무 잘나는군. 그 계집이 저런 놈들한테 죽는다고 해도 상관 없나? 최근 저 계집만 데려가는게 영 찜찜한데 말야. 혹 노리개로 쓰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몰라.”
“그건..”
그럴 수 없다. 은혜만은.. 내 손으로 지켜주고 싶다. 그의 얼굴이 바짝 다가온다. 유리관에 철썩 붙은 그의 입이 좌우로 크게 벌려진다.
“어쩌면 오래 못 살지도 모른다구.”
그 말은 내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데 충분했다. 오래 생각하지 않고 단번에 고개를 끄덕인다. 아니, 저절로 몸이 움직였다. 머리로 생각하고 있을 때 몸이 이미 반응해버린다. 그만큼 은혜가 나에게는 각별한 존재로 다가왔다. 짧은 시간이지만 그 연약한 소녀는 내 삶의 이유가 되어버렸다.
“좋아. 기다려보라구.”
그는 양손을 살살 비벼가며 유리관 옆에 있는 버튼들을 조작하기 시작한다.
“녀석들이 치명적인 실수를 한게 바로 이 부분이지. 내가 온전히 생각할 수 있는걸 간과하고 적나라하게 버튼들을 눌러대니 말야. 어느 것들을 눌러야 하는지 눈 여겨 보기를 잘했어.”
마지막 버튼을 누르자 유리관이 서서히 옆으로 열린다. 취이익. 바깥 공기가 온 몸을 강타하는 느낌. 나쁘지 않다. 멍하니 유리관이 걷히는 것을 보고 있자 그가 내게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환영하네. 동지.”
동지라.. 나와 완전히 입장과 처지가 같은 그가 내뱉은 말은 전혀 의심할 수가 없었다. 그의 손을 강하게 잡고서 바닥을 내딛었다. 그리고 은혜가 사라진 엘리베이터 쪽으로 걸어간다.
“잠깐.”
“?”“우리 둘만 가서 개죽음 당하는건 사양이다. 이 녀석들을 충분히 이용해주자구.”
그는 다른 유리관 속에서 발광을 하고 있는 생물들을 가리켰다. 찬찬히 검은 생물들을 바라본다. ‘꺼내줘.’, ‘도와줘.’라고 말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래도 전에 모습은 온전한 사람의 형태를 취하고 있던 생물들이었다. 길게 고민하지 않기로 한다. 생물들 역시 자유로운 쪽이 더 나을지도 모른다. 바로 옆 유리관에 다가가 버튼을 누른다. 그러자 그가 얼른 내게 다가와 방법을 알려준다.
“자, 이렇게 해서 누르는거야.”
간단했다. 여러 가지 버튼을 조합하면서 누르면 열리는 구조다. 삐빅. 비비빅. 몇 번의 조작 끝에 아까 전 나를 노려보던 생물의 유리관을 열어준다. 취이익. 생물은 나를 죽일 듯 노려보지만 공격을 하지는 않았다. 쓸데 없는 분쟁은 사양이기에 다른 유리관으로 이동해 버튼을 조작한다.
삐비빅. 삑. 요령이 생기자 생물들을 풀어주는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생물들은 저마다 풀려났다는 흥분감 때문인지 마구 괴성을 질러대며 이리저리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오래 관찰할 시간이 없다. 이어 다른 유리관의 버튼을 누르기 시작한다.
‘고맙다.’, ‘서둘러.’ 라고 말하는 것 같다. 어째서 저들의 의사가 더 분명히 전달되는 것일까. 쉴새 없이 버튼을 누르는 도중 낯선 소리가 들린다.
띵-동.
엘리베이터의 소리. 생물들의 괴성에 비하면 작은 소리지만 이런 소란 속에서도 생물들의 청각은 예민했다. 일제히 고개를 홱 돌려 엘리베이터로 시선이 집중된다. 그리고 보이기 시작하는 3명의 사람들.
“크와아아!”
“크와우!”
그것이 시발점이 되었다. 앞뒤 다퉈가며 사람들에게 돌진하는 생물들. 놀란 사람들이 뒤로 물러나며 총을 여러발 날려대지만 소용없는 짓이었다. 순식간에 거리를 좁힌 선두에 선 생물이 가장 왼쪽에 있는 사람의 머리를 강하게 뜯어내고는 입안 가득 베어문다.
“으아아악!”
공포에 질린 사람들이 서둘러 엘리베이터에 오르려고 하지만 생물들의 움직임이 더 빨랐다. 사람들의 사지를 완전히 잡은 생물들은 거칠게 그것을 비틀어 뜯어내고는 입속에 넣기 시작한다.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리는 사람들.
순식간에 사지를 잃은 그들에게 남은 것은 죽음 뿐이었다. 으적대며 승리의 괴성을 질러대는 생물들. 그는 흡족한 표정으로 생물들을 바라보며 말한다.
“우리의 충실한 개들이지. 먹을 것만 주면 목숨 아까운줄 몰라.”
“단순한 복수가 아닌 것 같습니다만.”
그는 나를 빤히 보더니 곧 고개를 끄덕인다.
“그래. 나는 이곳에 사는 인간들을 모두 멸종시킬 것이야.”
“..멸종?”
“그래. 어서 하던 일을 계속하게. 나는 녀석들을 다독이고 있을테니.”
그는 남은 고깃덩어리 갖고 싸우는 생물들에게 다가가기 시작한다. 차분히 걸어가는 그의 모습과 광기에 젖어 바닥에 흥건피 고인 피를 정신 없이 핥아대는 생물들을 번갈아 바라본다. 내가 한 일이 과연 잘한 것일까. 그저 은혜만 안전히 빼내면 되는 일이었는데.. 엄청난 일이 벌어진 것은 아닐까.
삐비빅. 삐빅. 계속 생각에 잠기지만 손은 계속 버튼을 누르고 있었다. 그렇게 30분 정도 지났을까. 완전히 유리관을 벗어난 검은 생물들이 한 곳에 모이기 시작했다. 그 중앙에는 단연 그가 서있었다. 수백은 되어 보이는 검은 생물들의 가운데서 포효를 하는 그의 모습은 악귀와도 같았다.
“크와아아!”
길게 포효를 마친 그의 명령에 따라 생물들이 여러 방면으로 갈라진다. 진즉에 열린 엘리베이터에 오르는 생물들이 있는가하면 한쪽에 마련된 비상구 쪽으로 이동하는 생물들이 전부다. 검은 물결과도 같은 움직임이 활발히 이루어진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니 문득 답답함이 느껴졌다.
벽 쪽으로 걸어가 창문을 통해 밖을 바라본다. 푸르고 넓은 숲과 그 너머에 있는 민가들. 이 생물들이 모조리 빠져나간다면 사람들이 죽어나가는 것은 시간문제다. 나는 무엇을 해야 할까.
멍하니 밖을 본다. 부르릉. 이곳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소리에 살짝 고개를 내밀어 아래를 본다. 그리고 그곳엔..
“은..혜.”
낯선 사람 손에 끌려가는 연약한 은혜가 단 번에 눈에 잡힌다. 단숨에 뛰어내려 은혜를 데리고 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다. 빠른 동작으로 차에 은혜를 태운 사람은 곧 차를 끌고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한다. 부드득. 잡고 싶다. 은혜를 빼내고 싶다.
“크으..”
창틀을 강하게 움켜쥔다. 있는 힘껏 밀어낸다. 우두둑. 우둑. 뼈가 부러지고 갈리는 소리와 함께 조금씩 벽의 균열이 생긴다.
“크아아아!”
내가 낸 소리가 맞는지 의심이 될 정도로 거대하다. 이미 내 몸은 제어를 한참 벗어나 있었다. 우두두둑. 거대한 구멍을 만들어낸 내 몸은 잔재들을 앞으로 밀어버리고는 작은 점이 되어 있는 차를 가만히 바라본다. 멈춰줘. 은혜를 지키게 해줘.
“....”
강렬한 염원이 닿았을까. 차가 멈춘다. 문이 열리며 낯선 사람이 고개를 내민다. 눈매를 좁히고 그 사람을 가만히 본다. 그 사람은..
‘안녕하십니까. 이 곳 연구의 담당자 송병헌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처음 나에게 임상 실험을 권했던..
‘아하하하. 이거 원 사람을 민망하게 만드는 재주도 있군요.’
기분 좋은 웃음으로 나를 반기던..
‘은혜를 잘 부탁합니다.’
나에게 은혜를 맡기던 남자. 송병헌이다. 차라리 잘 된 일일지도 모른다. 괴물의 모습인 나보다 그가 은혜를 보살피는 것이 더 나은 선택이다. 그의 마음이라면 분명 은혜를 함부로 대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주 잠시. 그와 눈이 마주친다.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타앙- 탕. 처음 나에게 치명적인 상처를 입혔던 총소리가 들린다. 뒤로 조금씩 물러난다. 마지막 은혜의 모습을 보고 싶지만 금세 떠나버리는 차 때문에 그러지 못한다.
“크아아아!”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