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2년 12월 13일 - 교구 주민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성당 폐쇄. 래리 맥켄지라는 부동산 업자가 사들여 B&B (Breakfast & Bed) 스타일의 여관으로 개조.
1953년 4월 7일 - 여관 투수객 중 첫 번째 사망자 발생. (사인 심장마비)
1953년 7월 9일 - 투수객 중 8 번째 심장마비 사망자 발생.
1953년 10월 4일 - 여관 소유자 래리 맥켄지의 10살 짜리 딸 줄리 맥켄지 실종.
1953년 10월 6일 - 여관 뒤 헛간에서 줄리 맥켄지 시체 발견. (사인: 심장 쇼크사)
1953년 10월 15일 - 래리 맥켄지의 방화로 인해 여관 전소.
정신 병원에 입원. 여관 패쇄.
1954년 2월 17일 - 래리 맥켄지 정신병원에서 자살. 자살 후에 발표한 담당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래리 맥켄지는 여관에 아이들 모양의 악령이 출몰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 존재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과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
1954 - 1979 - 불타버린 잔해와 폐허가 되었음.
주변 마을도 이주하는 바람에 인적이 드믈게 됨. 유령들린 곳(HAUNTING PLACE)으로 알려져, 접근하는 사람없음.
1980년 2월 16일 - 유명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을 포함한 일련의 과학자들이 유령의 정체를 규명을 목적으로 방문. 첨단 장비를 준비한 상태로 그 무언가의 출몰을 기다림. 밤 2시 30분 이상한 현상과 함께 기괴한 소리의 노래와 함께 아이들의 모습을 한 혼령들이 출현. 설치된 장비로 녹음하고, 촬영 성공. 그러나 나중에 촬영한 것을 현상해 보니 빛이 들어간 것처럼 보일 뿐 실체는 찍히지 않음. 적외선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음. 16mm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음. 녹음된 음성을 분석한 결과 7가지의 음색이 구분됨. 녹음된 노래는 폭격당시 수업에서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로 판명. 현장에 있던 과학자들은 모두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일련의 치료후 회복됨.
1980년 - 현재 - 폐허 그대로 보전됨. 정부에서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개발 참여 업체가 없음.
2. 도쿄 다까다노바바의 양로원
1960년 5월 13일 도쿄 다카다노바바의 한 유치원에 원인 모를 화재 발생하다.
그 화재로 유치원생 27명과 2명의 선생 사망하게 된다. 사체 발굴 도중, 가스 폭발로 사체 5구 발굴 할 수 없게 된다.
부모의 강력한 요청으로 3주간의 발굴을 더 했지만, 그 5명의 시체는 흔적도 없었다. 1960년 9월 10일 도쿄도청에서 그 자리에 작은 위령비를 세우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세우기로 결정한다.
1961년 3월 13일 - 무위탁 노인을 위한 시립 양로원 개원. 127명의 노인들 생활 시작.
1962년 3월 17일 - 71세 노인 이짜하라 고이찌 사망. 사인 심근 경색. 첫 번째 사망자
1961년 4월 30일 - 양로원에서 1달반동안 심장마비 및 원인 불명으로 사망한 노인의수가 21명이 됨.
시 보건 부서에서 조사 시작.
1961년 5월 14일 - 보건 부서 조사 결과 나옴 조사결과에 의하면, 양로원 시설 및 모든 보건 시설물에는 아무런이상 없음이 밝혀짐.
노인들의 연쇄적인 사망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함.
1961년 6월 15일 - 양로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보조원 마사오 다까히로 정신병원수감.
담당 의사에 의하면, 밤마다 아이들의 유령이 보였다고 함.
1962년 2월 3일 - 1년간 127명의 노인 중 62명이 사망시 당국 양로원 폐쇄를 결정. 1년동안 양로원에서 근무하던 직원중 12명이 신경쇠약 및 정신병 발병. 그 중 3명은 자살. 아이들에 관한 환각과 환청 증상을 호소하던 직원들은 양로원 폐쇄 후 자신들이 목격했다는 유령의 존재에 대해 부정함.
1963년 1월 5일 - 양로원을 철거하고, 도심 공원으로 개조.
1963년 2월 7일 - 공원에서 기거하던 부랑자들의 시체 발견. 사인이 쇼크사로 밝혀짐.
1963년 - 현재 -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에 인적없는 공원으로 남겨져 있음.
3. 러시아 백색 악마가 남긴 흔적들...
1980년 7월 13일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농가에서, 소련 경찰은 러시아 백색 악마라고 불리는 미하일 코로모포를 살인혐의로 체포한다. 마하일 코로모프가 기거하던 농가 지하에서, 경찰은 형체를 알수 없을정도로 난도질 당한 3구의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농가 주변에서 심하게 부패한 17구의 어린이 시체를 발굴한다. 모든 시체들은 각각 신체 부위가 하나씩 없어진 채 발견된다.
부엌에서 발견된 흔적으로 경찰은 그 부위들은 미하일 코로모포가 먹어치웠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범인 미하일 코로모프는 호송도중 자살한다.
경찰은 범인의 일기장을 통해, 좀 더 많은 어린아이들이 살해되었으리라 확신을 했지만,
소련의 대외 선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수사가 종결된다.
1년후 그 농가 근처에서 온천이 발견된다...
1981년 2월 17일 - 소련 공산당 당국은 코로모포의 은신처 근처에서 발견된 온천에 고위급 당원전용 온천 휴양지로 개발하기로 결정.
1981년 12월 5일 - 공산당 당원 전용 온천 개발 완료.
1982년 2월 10일 - 온천 관리인 실리오프 카즐로바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 입원.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카즐로바는 환각과 환청 증세와 과대 망상증을 보임.
1982년 3월 8일 - 주말을 보내던 정치국원 코스코 스바브다 사망. 사인 원인불명. 정치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심장마비로 발표. 13명의 온천 관리인 숙청 당함
1982년 6월 21일 - 온천 관리인 중 3명이 이유 없이 근무를 거부. 당국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된 이들 3명은 비앙카 감옥에 투옥된후,
고문받았지만, 명확한 근무 거부 이유를 밝히지 못함. 단지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실토함.
1982년 12월 29일 - 연말 휴가를 보내던 공산당 고문 마쥬르 루진 심장마비 사망. 당국에서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휴양지 폐쇄 결정. 숙청된 관리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휴양지에서 아이들의 유령들이 출몰한다고 함.
1985년 12월 7일 - 모스크바 경비 사단의 동계 기갑 훈련중 3명의 낙오병이 추위를 피해 폐쇄된 온천 휴양지에 들어왔다가, 모두 시체로 발견된 사건 발생.
두명은 심장마비로, 나머지 한 사람은 총기 자살로 사인이 추정됨.
1989년 8월 17일 -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영향으로, 영국 개발업체 테일러 인더스트리에서 이 온천 휴양지를 관광객을 위한 위락시설로 개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냄.
1989년 9월 15일 - 철거 공사를 담당한 소련 공사 인부들이 파업. 유령들이 출몰을 이유를 들어 야간 작업 거부.
1989년 9월 30일 - 기초 공사를 하던 중, 아이들의 사체로 추정되는 유골 5구 발굴 유골들의 신체 부위 일부가 없어진 것으로 보아, 러시아의 하얀 백정 코로모프의 희생자로 추정.
1989년 10월 2일 - 근처에서 러시아의 하얀 백정 코로모프의 희생자로 보이는 유골 18구 더 발굴됨.
1990년 5월 2일 - 최신식 온천 휴양지 'The Spa' 오픈
1990년 5월 3일 - 현재 - 모스크바 근교의 주요 관광지로 아직까지 각광받고 있음. 특별한 사건 또는 유령 목격에 대한 보고 없음. 소련의 몇 개 안되는 서방 기업 진출의 성공사례로 남아 있음.
독서실 - (15화)
출처 ; 어느날갑자기(유일한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독서실 1화 ; http://pann.nate.com/b318278798
독서실 2화 ; http://pann.nate.com/b318295512
독서실 3화 ; http://pann.nate.com/b318295668
독서실 4화 ; http://pann.nate.com/b318297045
독서실 5화 ; http://pann.nate.com/b318297090
독서실 6화 ; http://pann.nate.com/b318300900
독서실 7화 ; http://pann.nate.com/b318300935
독서실 8화 ; http://pann.nate.com/b318300989
독서실 9화 ; http://pann.nate.com/b318302476
독서실 10화 ; http://pann.nate.com/b318302542
1952년 12월 13일
- 교구 주민이 줄어든다는 이유로 성당 폐쇄.
래리 맥켄지라는 부동산 업자가 사들여 B&B (Breakfast & Bed) 스타일의 여관으로 개조.
1953년 4월 7일
- 여관 투수객 중 첫 번째 사망자 발생. (사인 심장마비)
1953년 7월 9일
- 투수객 중 8 번째 심장마비 사망자 발생.
1953년 10월 4일
- 여관 소유자 래리 맥켄지의 10살 짜리 딸 줄리 맥켄지 실종.
1953년 10월 6일
- 여관 뒤 헛간에서 줄리 맥켄지 시체 발견. (사인: 심장 쇼크사)
1953년 10월 15일
- 래리 맥켄지의 방화로 인해 여관 전소.
정신 병원에 입원. 여관 패쇄.
1954년 2월 17일
- 래리 맥켄지 정신병원에서 자살.
자살 후에 발표한 담당 의사의 진단에 따르면,
래리 맥켄지는 여관에 아이들 모양의 악령이 출몰하다고 믿고 있었으며,
그 존재에 대한 극도의 공포심과 증오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결론.
1954 - 1979
- 불타버린 잔해와 폐허가 되었음.
주변 마을도 이주하는 바람에 인적이 드믈게 됨.
유령들린 곳(HAUNTING PLACE)으로 알려져, 접근하는 사람없음.
1980년 2월 16일
- 유명작가 마이클 크라이튼을 포함한 일련의 과학자들이 유령의 정체를 규명을 목적으로 방문.
첨단 장비를 준비한 상태로 그 무언가의 출몰을 기다림.
밤 2시 30분 이상한 현상과 함께 기괴한 소리의 노래와 함께 아이들의 모습을 한 혼령들이 출현.
설치된 장비로 녹음하고, 촬영 성공.
그러나 나중에 촬영한 것을 현상해 보니 빛이 들어간 것처럼 보일 뿐 실체는 찍히지 않음.
적외선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음.
16mm 카메라에도 잡히지 않음.
녹음된 음성을 분석한 결과 7가지의 음색이 구분됨.
녹음된 노래는 폭격당시 수업에서 아이들이 불렀던 노래로 판명.
현장에 있던 과학자들은 모두 정신적 충격을 받아, 일련의 치료후 회복됨.
1980년 - 현재
- 폐허 그대로 보전됨. 정부에서 개발 계획을 세웠지만, 개발 참여 업체가 없음.
2. 도쿄 다까다노바바의 양로원
1960년 5월 13일 도쿄 다카다노바바의 한 유치원에 원인 모를 화재 발생하다.
그 화재로 유치원생 27명과 2명의 선생 사망하게 된다.
사체 발굴 도중, 가스 폭발로 사체 5구 발굴 할 수 없게 된다.
부모의 강력한 요청으로 3주간의 발굴을 더 했지만, 그 5명의 시체는 흔적도 없었다.
1960년 9월 10일 도쿄도청에서 그 자리에 작은 위령비를 세우고.
갈 곳 없는 노인들을 위한 양로원을 세우기로 결정한다.
1961년 3월 13일
- 무위탁 노인을 위한 시립 양로원 개원.
127명의 노인들 생활 시작.
1962년 3월 17일
- 71세 노인 이짜하라 고이찌 사망.
사인 심근 경색. 첫 번째 사망자
1961년 4월 30일
- 양로원에서 1달반동안 심장마비 및 원인 불명으로 사망한 노인의수가 21명이 됨.
시 보건 부서에서 조사 시작.
1961년 5월 14일
- 보건 부서 조사 결과 나옴
조사결과에 의하면, 양로원 시설 및 모든 보건 시설물에는 아무런이상 없음이 밝혀짐.
노인들의 연쇄적인 사망에 대해서는 아무 것도 밝혀내지 못함.
1961년 6월 15일
- 양로원에서 근무하고 있던 보조원 마사오 다까히로 정신병원수감.
담당 의사에 의하면, 밤마다 아이들의 유령이 보였다고 함.
1962년 2월 3일
- 1년간 127명의 노인 중 62명이 사망시 당국 양로원 폐쇄를 결정.
1년동안 양로원에서 근무하던 직원중 12명이 신경쇠약 및 정신병 발병. 그 중 3명은 자살.
아이들에 관한 환각과 환청 증상을 호소하던 직원들은 양로원 폐쇄 후 자신들이 목격했다는 유령의 존재에 대해 부정함.
1963년 1월 5일
- 양로원을 철거하고, 도심 공원으로 개조.
1963년 2월 7일
- 공원에서 기거하던 부랑자들의 시체 발견.
사인이 쇼크사로 밝혀짐.
1963년 - 현재
- 유령이 나온다는 소문에 인적없는 공원으로 남겨져 있음.
3. 러시아 백색 악마가 남긴 흔적들...
1980년 7월 13일 모스크바에서 북쪽으로 50km 떨어진 농가에서,
소련 경찰은 러시아 백색 악마라고 불리는 미하일 코로모포를 살인혐의로 체포한다.
마하일 코로모프가 기거하던 농가 지하에서, 경찰은 형체를 알수 없을정도로 난도질 당한 3구의 어린아이들의 시체를 발견하고, 농가 주변에서 심하게 부패한 17구의 어린이 시체를 발굴한다.
모든 시체들은 각각 신체 부위가 하나씩 없어진 채 발견된다.
부엌에서 발견된 흔적으로 경찰은 그 부위들은 미하일 코로모포가 먹어치웠다고 추정한다.
그런데 범인 미하일 코로모프는 호송도중 자살한다.
경찰은 범인의 일기장을 통해, 좀 더 많은 어린아이들이 살해되었으리라 확신을 했지만,
소련의 대외 선전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이유로 수사가 종결된다.
1년후 그 농가 근처에서 온천이 발견된다...
1981년 2월 17일
- 소련 공산당 당국은 코로모포의 은신처 근처에서 발견된 온천에 고위급 당원전용 온천 휴양지로 개발하기로 결정.
1981년 12월 5일
- 공산당 당원 전용 온천 개발 완료.
1982년 2월 10일
- 온천 관리인 실리오프 카즐로바 신경쇠약으로 정신병원 입원.
의사의 진단에 의하면, 카즐로바는 환각과 환청 증세와 과대 망상증을 보임.
1982년 3월 8일
- 주말을 보내던 정치국원 코스코 스바브다 사망.
사인 원인불명. 정치적인 문제를 피하기 위해 심장마비로 발표.
13명의 온천 관리인 숙청 당함
1982년 6월 21일
- 온천 관리인 중 3명이 이유 없이 근무를 거부.
당국에 대한 반항으로 간주된 이들 3명은 비앙카 감옥에 투옥된후,
고문받았지만, 명확한 근무 거부 이유를 밝히지 못함.
단지 무서워서 못하겠다고 실토함.
1982년 12월 29일
- 연말 휴가를 보내던 공산당 고문 마쥬르 루진 심장마비 사망.
당국에서는 뚜렷한 이유를 밝히지 않은채, 휴양지 폐쇄 결정.
숙청된 관리인들의 주장에 따르면, 그 휴양지에서 아이들의 유령들이 출몰한다고 함.
1985년 12월 7일
- 모스크바 경비 사단의 동계 기갑 훈련중 3명의 낙오병이 추위를 피해 폐쇄된 온천 휴양지에 들어왔다가, 모두 시체로 발견된 사건 발생.
두명은 심장마비로, 나머지 한 사람은 총기 자살로 사인이 추정됨.
1989년 8월 17일
-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의 영향으로,
영국 개발업체 테일러 인더스트리에서 이 온천 휴양지를 관광객을 위한 위락시설로 개발할 수 있는 허가를 받아냄.
1989년 9월 15일
- 철거 공사를 담당한 소련 공사 인부들이 파업. 유령들이 출몰을 이유를 들어 야간 작업 거부.
1989년 9월 30일
- 기초 공사를 하던 중, 아이들의 사체로 추정되는 유골 5구 발굴 유골들의 신체 부위 일부가 없어진 것으로 보아, 러시아의 하얀 백정 코로모프의 희생자로 추정.
1989년 10월 2일
- 근처에서 러시아의 하얀 백정 코로모프의 희생자로 보이는 유골 18구 더 발굴됨.
1990년 5월 2일
- 최신식 온천 휴양지 'The Spa' 오픈
1990년 5월 3일 - 현재
- 모스크바 근교의 주요 관광지로 아직까지 각광받고 있음.
특별한 사건 또는 유령 목격에 대한 보고 없음.
소련의 몇 개 안되는 서방 기업 진출의 성공사례로 남아 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