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기 512년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는데,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라는 것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시 독도가 우산국에 소속된 섬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바로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입니다.
우산도는 독도의 옛 명칭이라는 것이 여러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울진의 정동방 해상에 울릉, 우산 두 섬이 있는데, 맑은 날이면 우산도가 보인다고 합니다. 실제로 울릉도의 20m 이상 올라가면 날씨가 화창할 경우 독도가 선명히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 말 일본의 울릉도불법도해가 심해지자 조선정부가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울릉도를 개척하기 위해 울릉도 실측단을 보냅니다. 거기에서
"울릉도 동쪽 '30리' 지점에 우산도가 있고, 또 송죽도가 있어 섬이 3개라고도 하니 이 것 역시 잘 조사하라"
고 실측단에게 지시합니다.
(이 말은 조선의 조정이 울릉도와 독도의 '2개의 섬' 지리개념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일본측이 죽도와 송도로 또한 울릉도 독도를 부르고 있었으므로 '3개의 섬' 이란 의문을 가짐, 즉 명칭에 의한 와전현상임. 이것의 사실여부를 조사할 것을 지시한 것임.)
현재 울릉도 동북쪽에 죽서도(죽도)란 아주 작은 암초가 있는데, 약 2km이므로 30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며,
일본의 오키도(은기도)의 서북방 '85리'지점에 독도가 있다고 하므로 울릉도 동쪽 30리지점에 우산도는 독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49해리라고 하지요.....아마도 '30리'의 거리는 '30해리'를 지칭하는 것일 것입니다.
또 안용복의 말 중에 "송도(松島)는 곧 자산도(子山島)로 이 역시 우리 영토이다" 라고 했는데, 송도는 곧 독도의 당시 일본측의 명칭인 것이 확실하고, 자산도(子山島)는 우산도(于山島)의 오기로 인한 와전임이 확실합니다. '자(子)'와 '우(于)'는 필사하면서 비슷한 글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즉 독도는 옛 우산도인데, 바로
우산국 소속의 섬이었으므로 우산도!
인 것입니다! 즉 우산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우산국의 섬이란 뜻인 '우산도'가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또한 울릉도와 독도를 한 제도(諸島)의 개념으로 파악하신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 시각으로 볼 때도 울릉도의 옛 유물은 고대 한반도 동남부의 유물양식과 같은 유물이 출토된다고 하며, 실제,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고, 은기도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울릉도의 주민이 독도를 먼저 발견하고 진출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울릉도는 독도와 같이 한 문화권이었고, 그것이 삼한의 사회문화권에 소속되어 있엇던 것입니다.
병신아 진짜 빠가새끼네 저거?
답변 드립니다.
서기 512년 신라의 이사부가 우산국을 정복하는데, 우산국은 지금의 울릉도라는 것이 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당시 독도가 우산국에 소속된 섬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 단서는 바로 우산도(于山島)라는 명칭입니다.
우산도는 독도의 옛 명칭이라는 것이 여러 역사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울진의 정동방 해상에 울릉, 우산 두 섬이 있는데, 맑은 날이면 우산도가 보인다고 합니다. 실제로 울릉도의 20m 이상 올라가면 날씨가 화창할 경우 독도가 선명히 보입니다.
그리고 조선 말 일본의 울릉도불법도해가 심해지자 조선정부가 공도정책을 폐기하고 울릉도를 개척하기 위해 울릉도 실측단을 보냅니다. 거기에서
"울릉도 동쪽 '30리' 지점에 우산도가 있고, 또 송죽도가 있어 섬이 3개라고도 하니 이 것 역시 잘 조사하라"
고 실측단에게 지시합니다.
(이 말은 조선의 조정이 울릉도와 독도의 '2개의 섬' 지리개념을 잘 알고 있었으나, 일본측이 죽도와 송도로 또한 울릉도 독도를 부르고 있었으므로 '3개의 섬' 이란 의문을 가짐, 즉 명칭에 의한 와전현상임. 이것의 사실여부를 조사할 것을 지시한 것임.)
현재 울릉도 동북쪽에 죽서도(죽도)란 아주 작은 암초가 있는데, 약 2km이므로 30리에는 미치지 못하는 아주 가까운 거리이며,
일본의 오키도(은기도)의 서북방 '85리'지점에 독도가 있다고 하므로 울릉도 동쪽 30리지점에 우산도는 독도를 지칭하는 것입니다. 지금도 울릉도에서 독도까지는 49해리라고 하지요.....아마도 '30리'의 거리는 '30해리'를 지칭하는 것일 것입니다.
또 안용복의 말 중에 "송도(松島)는 곧 자산도(子山島)로 이 역시 우리 영토이다" 라고 했는데, 송도는 곧 독도의 당시 일본측의 명칭인 것이 확실하고, 자산도(子山島)는 우산도(于山島)의 오기로 인한 와전임이 확실합니다. '자(子)'와 '우(于)'는 필사하면서 비슷한 글자로 오해받을 수도 있습니다.
즉 독도는 옛 우산도인데, 바로
우산국 소속의 섬이었으므로 우산도!
인 것입니다! 즉 우산국의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우산국의 섬이란 뜻인 '우산도'가 된 것입니다. 이는 우리 선조들이 또한 울릉도와 독도를 한 제도(諸島)의 개념으로 파악하신 것으로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사회문화적 시각으로 볼 때도 울릉도의 옛 유물은 고대 한반도 동남부의 유물양식과 같은 유물이 출토된다고 하며, 실제, 울릉도에서 독도가 보이고, 은기도에서는 보이지 않으므로 울릉도의 주민이 독도를 먼저 발견하고 진출했을 가능성은 매우 높습니다. 따라서 울릉도는 독도와 같이 한 문화권이었고, 그것이 삼한의 사회문화권에 소속되어 있엇던 것입니다.
혹시나 내가잘못안건가 해서 검색해보고왔다 븅신년아
얉은지식 자랑하다가 엿먹은꼴 ㅉㅉ; 알았으면 면상까 호구년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