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식 1달 남기고 파혼했던 사람입니다.

용기내기2013.05.13
조회20,643

안녕하세요.

오늘따라 잠도 안 오고.. 내일 출근해서 좀 수월해볼까 싶어 일 좀 하다보니 시간이 꽤 지났네요.

판은 가끔씩 들어와 보곤 했는데, 오늘따라 이렇게 시간도 있고 잠도 안 오고 해서 한 번 끄적여볼까 해요.

유독 지금 보는 실시간 글에 파혼했다는 글이 눈에 많이 보여서...

또 항상 이러이러한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 고민한다는 글들이 많이 올라오길래,

그냥 동생들에게 수다떠는 생각으로... 그냥 나는 이랬단다 하는 심정으로 쓰니 불쾌하신 분들은 뒤로가기 눌러주세요.

 

지금은 착한 남편과, 남편을 꼭 빼닮은 착한 아들 하나 낳아 잘 살고 있지만

저에게도 어려운 결정을 내렸던 시기가 있었어요.

 

 

저는 딸만 넷인 집안의 셋째로 태어났어요.

부유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괜찮은 직장을 다니시던 아버지와 억척스럽고 활발하신 어머니 덕분에

부족한 것 모르고 시끌벅적 복닥복닥 재미나게 살던 환경이였구요.

여중 - 여고 - 여대를 나온 저는 남자에 대해 잘 알지도 몰랐고,

집안에 형제가 많다보니 우리끼리 노는 재미에 정신이 팔려 굳이 연애를 할 생각도 안 했었어요.

그렇게 시간이 흘렀고, 첫째 언니는 외국에서 직업을 구해 평범한 삶과는 다소 거리가 멀었고,

둘째 언니는 객관적으로 말해 나이에 비해 직업과 외모가 이성의 관심을 끌기 힘들다고 생각해

집안에서 저의 결혼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저 또한 나이를 서른이 넘어갔기 때문에 걱정도 많으셨구요.

 

그러다 어른들 소개소개로 선을 보게 되었고 몇 번 만나게 되었습니다.

저보다 좋은 대학을 나오신(그렇다고 아주 명문대는 아니였구요) 분이였는데,

객관적으로 말해 키는 상당히 작으신 편이였고 얼굴 또한 매우 호감형은 아니였습니다.

허나 몇 번 만나본 결과 나름 이야기가 잘 통하고 크게 불편하지 않았고

무엇보다 남자분께서 저를 몹시 아껴주셨기에 저도 조금씩 마음이 생겨 교제를 하게 되었고

둘 다 나이가 있는지라 결혼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저희 집도 잘 사는 편은 아닙니다만,

그래도 서울에 작게나마 앞마당이 있는 지하 1층 지상 2층짜리 개인주택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아버님은 직장을 다니고 계셨고, 퇴직 후 연금이 보장되는 직장이였기 때문에

어머님이 전업주부 셨으나 두 분이 먹고 사는 데에는 큰 불편함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억척스러운 어머님이 재테크 및 제 월급 관리를 해주셔서 결혼 자금도 몇 천은 있었구요.

 

그 분은 솔직히 말해 그다지 가진 게 없는 분이였습니다.

하지만 성실함과 당당함이 좋았고, 제가 꾸준히 직장을 다니고 있기 때문에

저희 부모님 앞에서 예단 같은거 다 필요없다, 집 장만 해오지 못해 죄송하다,

XX씨(글쓴이)가 직장을 다니고 있으니 그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마운 지 모르겠다,

XX씨가 매달 벌어오는 월급이 혼수 지참금이나 마찬가지니 자기는 정말 행운아다...

 

저희 아버님은 평생을 학자로 살아오신 분이고, 허황된 욕심 따위는 절대 꿈꾸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월세에서 시작해도 너희만 열심히 살면 되고 사람만 성실하면 된다고 생각하셨기에

가진 거 없어도 근면성실하고 똑똑한 그 사람을 믿었고,

마찬가지로 그 사람의 저런 멋진 말에 저희 식구 모두 감동을 했네요.

 

그래서 결혼 준비는 물 흐르듯 흘러갔습니다.

서울 강북쪽에 전세를 구하고 살림살이 겸 혼수도 알아보고 하면서

점점 말이 바뀌는 걸 느낄 수 있었어요.

 

1. 예단 이런거 하나도 필요없다고 했던 집안에서 그래도 친척들이 있으니 이불 한 채씩은 해줬음 한다,

2. 한복은 입고 들어가야되는데 좋은 날 입는 한복을 대여하기가 좀 찝찝하다,

3. 지방에서 올라가야 되는데 버스 대절하고 간식 챙기는 돈을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

 

1) 여름 이불은 크게 비싸지 않으니 처음에 얘기 나왔을 때 그래, 친척들 보기도 뭣하실테니.. 하고 알겠다고 했어요.

2) 한복은 어차피 그 날 외에 입을 일이 그렇게 많지도 않고, 쓸데없이 돈 쓰기 싫어 저희 한복까지 모두 대여하기로 했었거든요.

그래 어르신들이라.. 좋은 날 새 옷 입고 싶으시겠지.. 대여하면 찝찝하시겠지 복 나간다고... 싶어

조금 기분이 그랬지만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이해하려고 했어요.

3) 버스 대절비를 도와달라는 말이 나오는 순간 어라-_- 하고 기분이 안 좋아지기 시작했어요.

지방에서 올라오시는 거라 서울에 있는 우리 집 쪽에서 어느정도 시댁 되실 분들께 죄송한 마음이 있긴 했지만 처음에 저희가 드리겠다고 했을 때 괜찮다고 손사래를 치셨었거든요.

 

결혼 준비하시는 분들, 이렇게 자꾸 말이 조금씩 바뀌는 집 혹은 사람과는 결혼 다시 생각해보세요.

여름이불, 한복, 버스 대절비까지 사실 요즘 혼수에 비하면 크게 비싼 돈은 아니예요.

그래서 야금야금 정말 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른다고

응? 하면서도 에이.. 뭐 이정도는 그래.... 하고 하나씩 둘씩 시댁의 요구를 들어주게 되더라구요.

0 이 1되는 거 어렵지 않고, 1이 2 되고 2가 3이 되도 1씩 증가하기 때문에 그때는 잘 몰라요.

정신을 차리고 보면 0이였던 상황이 3이 되어있는거..

 

그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어요.

이건 좀 아니지 않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조금씩 불쾌하게 생각하던 제가 결심을 굳힌 계기가 있었어요.

조금씩 남자가 저에게 집안의 재산에 대해 물어보더라구요.

부모님이 살고 계시는 동네가 재개발 예정이긴 한데 그게 언제 될지는 모르는 거잖아요.

그래도 문득 문득 '부모님이 주택을 사시니 땅이 있어서 평수가 꽤 넓겠다'

'재개발은 언제 된대? 그럼 시세가 많이 오르겠지?'

... 라며 틈틈이 부모님의 집에 대해 묻던 그가 결정적인 말을 했어요.

 

" 너희 집은 딸만 있어서 부모님 돌아가시면 똑같이 나눠주시겠네. "

 

이게 어떻게 보면 별 말 아닌데요,

결혼 준비하는 내내 조금씩 말이 바뀌고 요구하는 게 늘어나던 그 상황에서

저렇게 부모님 재산 및 유산에 대한 말이 자꾸 많아졌던 제 상황에서는 눈이 번쩍 뜨이는 말이였어요.

처음에는 자기에게 결혼만 해줘도 감사하다며 내 월급이 곧 지참금이라는 말을 하던 놈이

결국은 딸만 있는 우리집이니 제 몫으로 떨어질 부모님 재산에 대한 꿈을 꾸고 있더라구요.

 

 

아니다 싶었어요.

내가 결혼이 급하다고 해도 이런 식으로 초반부터 말이 바뀌고

더욱이 결혼에 대한 본질마저 의심되는 사람과 굳이 내가 결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했어요.

나는 이미 충분히 혼자 먹고 살 만큼 돈을 벌고 가족과 함께 화목하게 살고 있는데

내 월급과 장래의 부모님 유산까지 갖다바치면서 누군가의 집안에 들어갈 이유가 없거든요.

 

그래서 파혼했습니다.

청첩장까지 다 찍어나온, 결혼식 3주를 앞둔 상황이였어요.

 

어려운 결정이였지만 반대로 몹시 쉬운 결정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사람보다 더 키가 작지만 착하고 근면성실한 노총각ㅋ 우리 신랑 만나서

그 사람보다 더 많은 월급을 받음에도 불구하고

키도 작고 나이도 많은 자기와 결혼해 준 제게 몹시 감사해하며

역시 제가 맞벌이 하는 걸 황송해하며 시댁의 모든 쉴드를 쳐주는 (그렇다고 시댁이 시월드는 아님^^)

착하디 착한 남편 만나, 똑 닮은 아들 하나 낳고 너무나도 잘 살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그때 청첩장까지 찍었으니 어떻해... 하며 그냥 그 많은 불안과 의심을 가슴에 안은 채

결혼했다면 과연 이렇게 행복하게 살 수 있었을까요.

 

 

 

결혼을 고민하는 분들께 감히 말씀드립니다.

 

쪽팔린 건 한 달이면 됩니다.

그 순간 쪽팔린 게 창피해서 참는다면 남은 인생 평생을 쪽팔리게 살게 될 거예요.

 

모두 자기 먹고살기 바빠서 그렇게 오래 기억하지도 않아요.

파혼은 파혼해 버리고 끝이지만 이혼은 평생 쫓아다니는 꼬리표가 될 거라는 거 잊지 마세요.

 

 

 

 

(그냥 짤막하게 써볼까 했는데 쓰다보니 감정이 이입됐는지 글이 좀 길어졌네요.... 죄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