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I'm Alive

정상규2013.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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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요가 몰려온다. 세상은 멈추어 있고 이 하얀 것에 나는 혼자 누워있다. 새하얀 천장이 나에게 전부이고, 가끔마다 어두워지고 또 밝아지고 그렇게 하루가 반복된다. 

따분해서 견딜 수가 없다. 이 무료함과 생명의 동작임이라고는 볼 수 없는 인간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삶을 살고 있다. 나에게 주어진 권한이라고는 고개를 몇 번 돌릴 수 있는 것과 그저 두 눈을 깜빡일 수 있는 것뿐이다.

나는 인간이다. 그렇다면 인간인
행세를 해야한다. 하지만 운명이라는 작자가 인간에서 인간이 아닌 것으로 타락시키고 몰락시켰다. 

나의 길은 이것 뿐인가. 

아아, 하고 나는 생각한다. 두 눈을 깜빡여 희뿌연 눈물을 뿌리고 싶어도 이미 말라버린 눈물은 운명이 모두 마셔버렸다.

나는 이곳에 있다. 이곳에서 나는 살아있다. 나는 생명체다.

끼이익- 

알 수 없는 재질로 이루어진 문이 마찰음을 이며 열리기 시작한다. 그 문을 연 자는 고개를 빼꼼히 내밀어 초라한, 아니 어떻게 생긴 것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 나를 바라본다. 긴 생머리, 갈색 눈동자, 크림색의 매니큐어, 그녀다. 나의 아내다. 그녀는 미소를 지으며 나에게 다가온다. 아무것도 없는 천장에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겹쳐져 하나의 군상을 만든다. 손을 뻗어 부드러운 얼굴을 만지고 싶다.

젠장. 

움직이지 않는 손을 원망하며 째려봤다. 제발 움직여라. 손가락과 손등에 모든 힘을 준다. 그러나 초라한 힘은 그곳에 가지도 않는다. 애초에 힘이란 것이 느껴지지도 않는다. 나는 탄식의 뜻으로 고개를 두 번 가로 젓는다. 

“심심했죠? 미안해요, 조금 늦었어요.
그 새, 주름살이 하나 늘었군요.” 

그녀가 물에 적신 수건으로 나의 얼굴을 닦아줬다. 눈이며, 코며, 입술이며 정성스레 얼굴 곳곳을 닦아준다. 얼굴을 닦을 때 마다 그녀의 부드러운 손등이 느껴졌다. 이것이 얼마 만에 느끼는 인간의 감촉인가. 거친 숨결을 내뱉는다. 그 감촉을 조금이라도 더 느끼고 싶었다.

“힘들겠지만 참아야 해요.” 

그렇다. 나는 당신 때문에 이 지독한 현실을 버티는 것이다. 이 답답하고도 어지러운 나만의 세상에서 살아있는 것이다. 그녀가 나의 손을 잡아주었다. 이 순간이 영원하기를 기원하며 나는 눈을 감는다. 주변이 어둠에 감춰지고 점점 정지하기 시작했다. 

“눈을 뜨세요.” 

걸쭉한 목소리. 이 목소리는 익숙하게 들어왔던 목소리다. 나를 구원해주는 당신의 목소리겠지. 흰 가운을 입고 내가 죽었나, 살아있나 상태체크를 하고 우리들이 낸 세금을 받고 가족을 부양하는 당신이겠지. 나도 가족이 있다. 나는 당신이 부러워서 견딜 수가 없어. 내가 당신이라면 얼마나 좋을지 뼈저리게 느끼고 생각하고 있어.

“이 빛을 보세요.” 

아아, 항상 보는 빛이다. 아주 노랗고 부서져가는 현실에서 잠시나마 나를 구원해주는 눈부신 빛이다. 그 빛은 천천히 원을 그리며 새하얀 천장에서 춤을 춘다. 놓치고 싶지 않아 눈동자를 있는 힘껏 굴린다. 그러나 빛은 순식간에 촛불이 꺼지듯이 사라져버린다. 

“괜찮군요. 오늘 기분은 어떠신가요?” 

아주 끔찍하지. 그것도 이 세상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기분이야. 담배 한 대만 피울 수 있다면 영혼이라도 팔겠어. 그것을 입에 댄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도 않는구먼. 

“아내 분이 가시면서 이 사진을 당신에게 전해주라고 하더군요.”

그가 가운 주머니에서 액자 하나를 꺼내 나에게 보여준다. 액자 속에는 해바라기를 들고 웃으며 서 있는 딸이 있다. 벌써 이렇게 컸구나. 초등학교 3학년 정도 되었겠지. 딸이 커서 이런 아버지를 보고는 무슨 생각을 할까. 그제서야 운명은 훔쳐간 눈물을 내 두 눈에 돌려준다. 

“힘내세요. 자식 분의 사진은 보이는 곳에 놓고 가겠습니다.” 

딸은 이제 내 머리맡에 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 현실 속의 딸이 아닌 추억 속의 딸이 되어버릴 것이다. 내가 깨어있지 않고 혼수상태였다면 이런 지독한 현실에서 벗어나 기억 속에서만 존재하는 무의식의 세계에서 가정을 꾸리고 행복하게 살 것이다.

끼이익- 

마찰음을 내며 문이 닫히고 나는 또 다시 혼자가 된다. 고독함은
익숙해지지 않는다. 그것은 하나의 암세포와도 같아서 내비두면 급격히 퍼져 결국에는 파멸해버리는 것이다. 이제 새하얀 천장에는 아무것도 없다. 그리고 그 천장을 바라보며 끊임없는 생각을 한다. 항상 하는 생각이 있다. 내가 처음으로 이 길을 걸었던 순간의 기억이다. 

아아, 그래. 놀이공원에서였다. 아름다운 아내와 귀여운 딸이 있는 어느 평범한 가정의 가장이었다. 흐릿해져가는 노을빛이 비추는 회전목마와 짜릿한 롤러코스터가 있는 놀이공원에서 딸 아이와 함께 회전목마를 탔다. 딸은 함박웃음을 지었었지. 이제 그것이 너무나 아련하게 느껴진다. 아름다운 아내는 딸과 나의 즐거웠던 추억을 담으려 사진을 찍는다. 즐거운 배경음과 위로 올라갔다가 아래로 내려가는 회전목마가 계속 돈다. 한 바퀴를 돌 때 딸의 머리가 찰랑거렸고 두 바퀴를 돌 때 딸의 입가에 미소가 번졌고 세 바퀴를 돌 때 부서져가는 노을빛이 딸을 비추었다. 

회전목마를 탄 후, 딸을 내 목에 목마를 태운다. 그녀의 손에는 소프트 아이스크림콘이 들려있고 다른 한 손에는 빛을 머금은 노란 풍선이 들려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로 행복한 남자였다. 그 때가 너무나 그리웠다. 너무 그리워 기억 속으로 들어가고 싶을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 가다가 딸아이를 목마에서 내려놨을 때 일이 벌어진다. 그것은 내 실수였다. 정말로 큰 실수였다. 그녀는 멋대로 뛰어가 차에 치일 위기를 맞는다. 그 때의 나는 화들짝 놀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녀에게 뛰어가 그녀를 있는 힘껏 밀어낸다. 그리고 내가 고개를 돌렸을 때 새하얀 빛이 나를 감싸고돌아 악몽으로 끌고 간다.

이것은 단 십초만의 결과였다. 나는 그 십초와 영원을 바꾸었다. 

눈을 감다가 다시 떴다. 달라진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생각을 한 천 이백 번쯤 한 것 같다. 하지만 단지 그것은 생각속의 기억일 뿐이다. 이제 그 기억도 흐릿해져 다른 기억의 파편에 의해 묻혀져 간다. 가족과의 행복했던 기억이 그 악몽 같던 기억에 의해 파묻혀간다.

잊지 않으려고 딸의 사진을 계속 본다. 그러다가 문득 액자 뒤에 메모가 붙여져 있는 것을 보았다.

다음에는 현서 데려올게요. 

나는 고개를 다시 돌린다. 그러고는 새하얀 천장을 다시 보았다. 딸을 보게 된다면 어떤 감정을 느끼게 될 것인가 하고 나 자신에게 묻는다. 기쁨? 옹졸함? 처절함? 사실 모르겠다. 딸을 사랑한다. 하지만 막상 그녀를 본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나는 느끼고 생각할 수 있다. 나는 살아있다. 

그 생각만이 머릿속에 가득 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