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이에요. 선생님. 혹시나 저를 기억하실런지요.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적은 없지만 생활지도부실에서 여러 번 당신과 싸웠던, 그 여학생입니다. 저는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고, 나름 캠퍼스의 자유와 낭만을 누리면서 살고 있어요.
저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암울했던 시기였어요. 우리 사회에서 학생에게는 인권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계속 누군가와 부딪히던 시기였거든요. 당신하고만 싸운 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2학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집회에 나가지 말라고 선도하던 국어 선생님과도 싸웠고, 심화반 보충수업을 강제하던 학년 부장 선생님과도 싸웠고, 수업 시간마다 “예쁜 애들은 공부 못해도 돼”, “여자는 다리가 예뻐야 해”라고 하던 사회 선생님과도 싸웠고, 끊임없이 상위 50등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을 대자보로 인쇄해 교무실 앞에 붙이던 수학선생님과도 싸웠어요. 공부 잘한다고, 이번에 수학 성적 올랐다고 칭찬 받을 때도 몹시 기분이 나빴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제가 아니라 성적표에 적힌 등급과 등수로서의 저를 칭찬하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나 싫었던 선생님은 두발 단속할 때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각목으로 친구들을 때리던 생활지도 부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정도 지난 지금, 그 선생님들이 아직도 싫은 건 어쩔 수 없네요.
아침마다 지각, 치마길이, 머리, 교복 등 갖가지 이유로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무릎 꿇려두고 때리던 ‘생활지도’, 그리고 의자에 앉으면 교복 치마 위로 보이던 허벅지에 시퍼렇다 못해 검게 든 멍 자국. 때리는 소리와 맞는 소리가 번갈아 들리던 아침 자습시간. 공부 못하는 친구들은 알아서 뒷자리에 앉은 채 진행되던 수업들. 졸려서 몸을 비틀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먹고 있던 맛없는 급식. 강제로 진행되던 ‘선택’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그 때 생각은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아요.
고등학교 시절 저는 스스로를 너무 미워했습니다. 지긋지긋한 입시공부, 매일같이 반복되는 학원 수업들, 1달에 1번꼴로 보던 온갖 사설 모의고사와 성적표만 나오면 자꾸 나오던 눈물. 운동 부족과 스트레스 때문에 여기 저기 아픈 몸. 온갖 압박들이 여기저기서 가해져오는데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꾹 참고 이 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제가 너무 한심했거든요. 지금도 그 때의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친구들이 묵묵히 학교를 다니고 있겠죠.
대학에 와서 제가 학생운동 언저리에서 계속 맴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기의 온갖 ‘미움’들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그 미움들이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저는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혹은 예전에 침묵하던 저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언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집회에 나갔다가, 전경과 시위대가 엉겨 붙어 싸우는데, 그 때 당신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저에게 당신은 전경 같은 존재였고, 싸워서 이기고 싶은 존재였어요. 제가 당신을 이기면 이 학교가 좀 더 나아질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저희 엄마의 모습을 보면 또 한 번 당신이 겹쳐 보였습니다. 저희 엄마도 학교 선생님이시거든요. 엄마 주변의 선생님들이 한두 명씩 교직을 떠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학교 다니는 게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고 하고요. 그리고 제가 그토록 미워하던 당신도 누군가의 엄마이고, 우리 엄마만큼 힘들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젊은 여선생님이었고, 당신 역시 매 수업 시간 40명 넘는 학생들과 함께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겠죠. 또 당신은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누군가의 아내이고 퇴근 후 집에 가면 집안일도 해야 했을 거예요. 시어머니와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고요. 또 당신이라고 생활지도부 일을 하고 싶어서 했겠어요? 부장 교사가 시키는 일이고 부장 교사는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시키니까 해야 하는 일이었겠죠. 수업이 끝나면 온갖 회의와 서류에 시달렸을테고요. 방학 보충수업 때문에 우리가 쉬지 못했던 것처럼 당신도 방학 때 쉬지 못했을 거예요.
당신은 저를 개념 없고 경우 없이 대들던 학생으로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제가 당신에게 대들었던 이유는 단순히 제가 나쁜 학생이라서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에게 대들었던 이유는 비교육적인 교육과 입시로부터 받는 온갖 압력들로 인한 미움이 ‘교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저에게 다가왔기 때문이거든요. 저를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는 당신이 아니었지만 그 때 제 눈에는 당신이 저를 괴롭히는 모든 것의 원인처럼 보였어요. 집회에서 시위대와 전경의 구도도 비슷하겠죠. 사실 따지고 보면 전경들이 제 또래의 친구들인 것처럼, 당신과 내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우린 싸우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의 고충, 이해할 수 있어요.
엄마와 이야기하다 보면 교사라는 직업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학부모가 선생님을 때리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는 것 같고, 점점 더 엽기적인 얘기들이 들려와요. 초등학생이 담임선생님을 째려보면서 욕했다거나, 선생님이 마실 물 좀 떠오라고 했더니 화장실 변기 물을 떠 왔다거나, 심지어 여교사들은 성희롱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지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온갖 학원과 숙제에 찌들어 학교 수업 시간에 피곤해서 꾸벅꾸벅 존다고 해요. 조기교육과 선행학습 때문에 학교 선생님한테는 배울 게 없다면서 대놓고 비웃는 학생들도 많고요. 가정폭력의 영향인지 친구와 싸울 때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욕들을 하는 학생도 있고, 커터칼로 책상을 박박 긁는다거나, 지우개를 잘게 잘라서 바닥에 뿌린다거나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수업 진행을 못하게 하는 일도 많대요.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반대하면서 교권조례를 주장하는 이유를, 엄마를 보면 공감되고 이해가요. 전국의 많은 교사들처럼 학교 안팎에서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당신을 생각하면 당신에게 대들고 화내던 저로서,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제가 당신을 힘들게 한 이유가 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저를 힘들게 한 이유가 당신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를 더 이상 미워해선 안 되겠죠. 오히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진짜 원인들에 대해 같은 편이 되어 함께 싸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기 부끄럽게도 저는 아직도 당신이 싫어요. 그리고 올해 스승의 날에도 역시 모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날까봐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저를 괴롭히던 온갖 것들과 다시 마주하면 그 때의 악몽들이 다시 저를 옥죌 것 같아요. 다른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5년 저의 저와 같은 상황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후배들을 보기가 두렵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책이 있었어요. 학생인권조례가 무산되고 차별금지법도 위태위태한 이 상황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춰있는 것 같아요. 지금의 학교는 생활지도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외모·성적·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온갖 차별이 이루어지는 곳이에요. 그 곳에서 학생들은 교사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학생의 정치적 판단과 참여를 인정하지 않고 여학생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학생들의 개인 정보인 성적을 대자보로 공개하고, 학생을 성적에 따라 분류해서 차별 대우하던 학교에서 제가 당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요. 교사가 학생을 보듬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들의 적이 되고, 학교가 학생들을 품어 안을 수 없게 된 것은 오늘날 입시 공부만을 외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저, 선도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학생이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때 교사는 더 이상 학생들의 적이 되지 않을 수 있겠죠. 지금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를 적대시키면서, 학생들의 교사에 대해 가지는 반감을 키우려 하는 저들이야 말로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닐까요.
올해 스승의 날도, 저는 모교를 찾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아직도 팍팍한 학교에서 당신도 제가 달갑지 않을 것 같고요. 제가 당신과 저의 후배들을 만날 용기가 생길 때, 그러니까 학교 현장의 학생과 교사들을 옭아매는 진짜 원인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저에게 진짜 스승의 날이 찾아올 것 같아요. 진짜 스승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를 괴롭히는 진짜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과 청소년들을 있는 힘껏 지지합니다. 덧붙여 5년 전의 저처럼 울면서 학교와 선생님과 세상을 미워하고 있을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힘내라고, 그리고 지금의 미움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바로 그 미움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말이에요.
선생님. 당신과 제가 만나는 자리가 우리의 ‘진짜’ 적들과 싸우는 자리이길 바라요. 그 때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연대의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드리고 싶어요. 부디 반겨주시길.
스승의 날을 맞아, 당신께 쓰는 편지
네이트 판에서 주로 눈팅을 하던 사람입니다. 지금은 대학생이구요, <빨간우체부>라는 웹진의 편집일을 하고 있습니다. 스승의 날을 맞아 제가 쓴 글인데, 판 여러분들과도 공유하고 싶어서 이 곳에 올립니다. 읽어주시면 감사하겠어요. :)
*원문을 보시려면 ; http://redpostie.kr/?p=1316
오랜만이에요. 선생님. 혹시나 저를 기억하실런지요. 선생님의 수업을 들은 적은 없지만 생활지도부실에서 여러 번 당신과 싸웠던, 그 여학생입니다. 저는 지금 대학에 다니고 있고, 나름 캠퍼스의 자유와 낭만을 누리면서 살고 있어요.
저에게 고등학교 시절은 정말 암울했던 시기였어요. 우리 사회에서 학생에게는 인권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희미하게나마 알고 있었고, 그래서 계속 누군가와 부딪히던 시기였거든요. 당신하고만 싸운 건 아니에요. 고등학교 2학년 촛불시위가 한창일 때 집회에 나가지 말라고 선도하던 국어 선생님과도 싸웠고, 심화반 보충수업을 강제하던 학년 부장 선생님과도 싸웠고, 수업 시간마다 “예쁜 애들은 공부 못해도 돼”, “여자는 다리가 예뻐야 해”라고 하던 사회 선생님과도 싸웠고, 끊임없이 상위 50등 학생들의 모의고사 성적을 대자보로 인쇄해 교무실 앞에 붙이던 수학선생님과도 싸웠어요. 공부 잘한다고, 이번에 수학 성적 올랐다고 칭찬 받을 때도 몹시 기분이 나빴습니다. 한 사람으로서의 제가 아니라 성적표에 적힌 등급과 등수로서의 저를 칭찬하는 것 같았거든요. 특히나 싫었던 선생님은 두발 단속할 때 머리가 길다는 이유로 각목으로 친구들을 때리던 생활지도 부장 선생님이었습니다. 그리고 5년 정도 지난 지금, 그 선생님들이 아직도 싫은 건 어쩔 수 없네요.
아침마다 지각, 치마길이, 머리, 교복 등 갖가지 이유로 교문 앞에서 학생들을 무릎 꿇려두고 때리던 ‘생활지도’, 그리고 의자에 앉으면 교복 치마 위로 보이던 허벅지에 시퍼렇다 못해 검게 든 멍 자국. 때리는 소리와 맞는 소리가 번갈아 들리던 아침 자습시간. 공부 못하는 친구들은 알아서 뒷자리에 앉은 채 진행되던 수업들. 졸려서 몸을 비틀다가 정신 차리고 보니 먹고 있던 맛없는 급식. 강제로 진행되던 ‘선택’보충수업과 야간‘자율’학습. 그 때 생각은 다시 하고 싶지도 않아요.
고등학교 시절 저는 스스로를 너무 미워했습니다. 지긋지긋한 입시공부, 매일같이 반복되는 학원 수업들, 1달에 1번꼴로 보던 온갖 사설 모의고사와 성적표만 나오면 자꾸 나오던 눈물. 운동 부족과 스트레스 때문에 여기 저기 아픈 몸. 온갖 압박들이 여기저기서 가해져오는데 이게 잘못되었다는 걸 알면서도 꾹 참고 이 생활을 계속 하고 있는 제가 너무 한심했거든요. 지금도 그 때의 저와 같은 생각을 하면서 스스로를 미워하는 친구들이 묵묵히 학교를 다니고 있겠죠.
대학에 와서 제가 학생운동 언저리에서 계속 맴돌게 된 것은 고등학교 시기의 온갖 ‘미움’들 때문이었던 것 같네요. 그 미움들이 저를 움직이는 원동력이 아니었을까요. 그렇게 저는 스스로를 미워하지 않기 위해, 혹은 예전에 침묵하던 저의 모습을 지우기 위해 노력해왔습니다.
그리고 언제였는지 모르겠습니다. 한 집회에 나갔다가, 전경과 시위대가 엉겨 붙어 싸우는데, 그 때 당신과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았어요. 저에게 당신은 전경 같은 존재였고, 싸워서 이기고 싶은 존재였어요. 제가 당신을 이기면 이 학교가 좀 더 나아질 것 같았어요.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저희 엄마의 모습을 보면 또 한 번 당신이 겹쳐 보였습니다. 저희 엄마도 학교 선생님이시거든요. 엄마 주변의 선생님들이 한두 명씩 교직을 떠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엄마도 학교 다니는 게 점점 힘들어 지고 있다고 하고요. 그리고 제가 그토록 미워하던 당신도 누군가의 엄마이고, 우리 엄마만큼 힘들었겠구나,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당신은 젊은 여선생님이었고, 당신 역시 매 수업 시간 40명 넘는 학생들과 함께 입시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겠죠. 또 당신은 아이를 낳고 복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상태였어요. 누군가의 아내이고 퇴근 후 집에 가면 집안일도 해야 했을 거예요. 시어머니와 남편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았을 수도 있고요. 또 당신이라고 생활지도부 일을 하고 싶어서 했겠어요? 부장 교사가 시키는 일이고 부장 교사는 교감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이 시키니까 해야 하는 일이었겠죠. 수업이 끝나면 온갖 회의와 서류에 시달렸을테고요. 방학 보충수업 때문에 우리가 쉬지 못했던 것처럼 당신도 방학 때 쉬지 못했을 거예요.
당신은 저를 개념 없고 경우 없이 대들던 학생으로 기억할지도 모르지만 제가 당신에게 대들었던 이유는 단순히 제가 나쁜 학생이라서는 아닌 것 같아요. 제가 당신뿐만 아니라 다른 선생님들에게 대들었던 이유는 비교육적인 교육과 입시로부터 받는 온갖 압력들로 인한 미움이 ‘교사’라는 매개체를 통해 저에게 다가왔기 때문이거든요. 저를 힘들게 하는 진짜 이유는 당신이 아니었지만 그 때 제 눈에는 당신이 저를 괴롭히는 모든 것의 원인처럼 보였어요. 집회에서 시위대와 전경의 구도도 비슷하겠죠. 사실 따지고 보면 전경들이 제 또래의 친구들인 것처럼, 당신과 내가 학교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우린 싸우지 않았을 거예요.
당신의 고충, 이해할 수 있어요.
엄마와 이야기하다 보면 교사라는 직업이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는 것 같아요. 학부모가 선생님을 때리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안 되는 것 같고, 점점 더 엽기적인 얘기들이 들려와요. 초등학생이 담임선생님을 째려보면서 욕했다거나, 선생님이 마실 물 좀 떠오라고 했더니 화장실 변기 물을 떠 왔다거나, 심지어 여교사들은 성희롱 피해자가 되기도 한다지요. 요즘은 초등학생들도 온갖 학원과 숙제에 찌들어 학교 수업 시간에 피곤해서 꾸벅꾸벅 존다고 해요. 조기교육과 선행학습 때문에 학교 선생님한테는 배울 게 없다면서 대놓고 비웃는 학생들도 많고요. 가정폭력의 영향인지 친구와 싸울 때 어디서 들었는지 모를 욕들을 하는 학생도 있고, 커터칼로 책상을 박박 긁는다거나, 지우개를 잘게 잘라서 바닥에 뿌린다거나 하는 등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수업 진행을 못하게 하는 일도 많대요. 많은 선생님들이 학생인권조례에 대해 반대하면서 교권조례를 주장하는 이유를, 엄마를 보면 공감되고 이해가요. 전국의 많은 교사들처럼 학교 안팎에서 힘든 일상을 보내고 있었을 당신을 생각하면 당신에게 대들고 화내던 저로서, 조금 미안해지기도 하네요.
제가 당신을 힘들게 한 이유가 저로부터 비롯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이 저를 힘들게 한 이유가 당신 때문이 아니라면, 우리는 서로를 더 이상 미워해선 안 되겠죠. 오히려 우리는 우리를 괴롭히는 진짜 원인들에 대해 같은 편이 되어 함께 싸워나갈 수 있지 않을까요?
그런데 이런 말을 하기 부끄럽게도 저는 아직도 당신이 싫어요. 그리고 올해 스승의 날에도 역시 모교에 가고 싶지 않아요. 당신을 만날까봐 두렵기 때문이기도 하고, 무엇보다도 저를 괴롭히던 온갖 것들과 다시 마주하면 그 때의 악몽들이 다시 저를 옥죌 것 같아요. 다른 이유를 하나 덧붙이자면, 5년 저의 저와 같은 상황 속에서 힘들어 하고 있을 후배들을 보기가 두렵기 때문이에요.
지금은 절판되었지만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춘다』라는 책이 있었어요. 학생인권조례가 무산되고 차별금지법도 위태위태한 이 상황을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에서 인권은 교문 앞에서 멈춰있는 것 같아요. 지금의 학교는 생활지도라는 이름으로 학생들의 소지품을 검사하고 외모·성적·성적 지향 등을 이유로 온갖 차별이 이루어지는 곳이에요. 그 곳에서 학생들은 교사에 대한 반감이 커질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학생의 정치적 판단과 참여를 인정하지 않고 여학생의 신체를 대상화하고, 학생들의 개인 정보인 성적을 대자보로 공개하고, 학생을 성적에 따라 분류해서 차별 대우하던 학교에서 제가 당신을 미워할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요. 교사가 학생을 보듬는 존재가 아니라 학생들의 적이 되고, 학교가 학생들을 품어 안을 수 없게 된 것은 오늘날 입시 공부만을 외치는 학교에서 학생들은 그저, 선도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학생이 학교라는 공동체 안에서 동등한 구성원으로 존중받을 수 있을 때 교사는 더 이상 학생들의 적이 되지 않을 수 있겠죠. 지금 학생인권조례와 교권조례를 적대시키면서, 학생들의 교사에 대해 가지는 반감을 키우려 하는 저들이야 말로 우리가 싸워 이겨야 할 상대가 아닐까요.
올해 스승의 날도, 저는 모교를 찾아가지 못할 것 같아요. 아직도 팍팍한 학교에서 당신도 제가 달갑지 않을 것 같고요. 제가 당신과 저의 후배들을 만날 용기가 생길 때, 그러니까 학교 현장의 학생과 교사들을 옭아매는 진짜 원인이 사라질 때 비로소 저에게 진짜 스승의 날이 찾아올 것 같아요. 진짜 스승의 날을 앞당기기 위해, 우리를 괴롭히는 진짜 적들과 싸워 이기기 위해 노력하는 선생님들과 청소년들을 있는 힘껏 지지합니다. 덧붙여 5년 전의 저처럼 울면서 학교와 선생님과 세상을 미워하고 있을 전국의 수많은 학생들에게 전하고 싶어요. 힘내라고, 그리고 지금의 미움을 절대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바로 그 미움이 세상을 바꾸는 힘이라고 말이에요.
선생님. 당신과 제가 만나는 자리가 우리의 ‘진짜’ 적들과 싸우는 자리이길 바라요. 그 때 제 마음 속에 간직하고 있던 연대의 카네이션 한 송이를 드리고 싶어요. 부디 반겨주시길.
원문을 보시려면 ; http://redpostie.kr/?p=1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