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당한 남녀 차별의 기억들이 잊혀지지가 않습니다.

어떻게할까요2013.05.15
조회68,781

 

판에서 이렇게 큰 위로를 받을 줄을 상상도 못했습니다. 정말 정말 감사드립니다.

남겨주신 댓글들은 모두 잘 읽어보고, 맘 속에서 되새기며 위로 받고 있습니다.

그리고 맞춤법 및 지적해 주신 나이는 정정하고 갑니다. 자작은 당치도 않구요!!! 

서른 넘은 처자가 한 살이라도 줄이고 싶은 맘에 만으로 나이를 적었던 것이오니,

그러려니 하시고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바라겠습니다. 정말 많이 감사드려요.

 

===========================================================================

 

 

안녕하세요. 일단 나님인(^^;) 제 소개부터 하고 시작하자면,

전 31살에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는 대구 출신의 미혼 女입니다.

(재테크 상담이 아니니, 자세한 업종이나 연봉 등등은 패스하겠습니다.)

 

 

제가 시친결 네티즌 선생님들에게 여쭙고 싶은 것은 지금의 저의 심리 상황에서

앞으로 가족들과의 관계를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지... 이미 훌쩍 어른이 되버린

나이라지만, 과거라고 마냥 덮고 웃으며 이해하기에는 제 상처가 너무 큽니다.

 


전 유교를 경전처럼 모시는 순수 100% 경상도 혈통의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랐습니다.

(많은 분들의 이해를 돕고자, 경상도 집안이라고 예를 들었지만 경상도 모든 집들이

저희 집안같다는 뜻은 절대 아니니~ 부디 오해 말아 달라고 말씀드리고 싶네요. ^^;)

 

일단 저의 형제 관계는 저(여자) - 남동생 - 여동생 이렇게 1남 2녀 입니다.

남동생은 연년생으로 일 년 차이가 나구요. 여동생은 저와 다섯 살 터울이라서 남여차별 이런거

거의 못 느끼고 자랐다고 본인도 이야기 하고, 예뻐서 어릴때 부터 귀여움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하지만, 남동생과 전의 처지는 태어나는 순간부터가 많이 달랐습니다.

 

 


1.

저와 제 남동생의 태어남의 순간은 어떻게 달랐냐면, 제가 태어났을 때는 엄마가

미안하고 챙피했는지 아무 소리도 못하고 한 손에는 갓난 아기인 저를 안고 나머지

한 손에는 출산 가방을 안고 출산한 지 이틀만에 혼자 집으로 오셨다고 했습니다.

 

반면 남동생을 낳았을 때는 아들 손주를 봐서 기분이 좋은 할머니가 간호사 분들에게

거금 오천원(지금 시세로 10만원쯤?)을 건넸더니 세 명의 간호사가 보조로 붙어서

한 명은 엄마 부축, 한 명은 아기 안고 걸어오고, 한 명은 출산 가방 들고 택시 잡고

이렇게 일주일 만에 보무도 당당하게 집에 입성하셨으며 집에 와서도 배를 부여잡고

아프타는 티를 팍팍 내면서 일주일 동안 당당하게 할머니 밥상을 받았다고 합니다.

 

위 이야기는 제가 열 살쯤 되었을 때, 아빠가 외갓집에가서 외삼촌들이 계신 자리에서

(저희 엄마는 3남 2녀 중에 맏이로, 중학교 시절 외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맥줏잔을 기울이며 그저 그냥 웃으면서 한 이야기였지만, 이 이야기를 옆에서 듣고 있던

전 어린 나이에도 마치 머리로 망치를 한 대 맞은 듯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헐;;;

(아~ 난 태어나면서 부터 딸이여서 엄마한테 실망감을 안겨 드린 자식이였구나!)

 

 

 

2.

뭐, 그 시절 비슷 비슷 했겠지만 할머니로부터 시집살이가 꽤 심했던 엄마는 어느 정도

그 스트레스를 저한테 다 푸셨습니다. 남동생이 연년생이다 보니 조용하던 저와는 달리

늘 에너지가 넘쳤고 전 늘 칼싸움, 총싸움의 대상이 되어야 했습니다. 울고 짜증내면서

엄마에게 도움을 요청할때 마다 엄마는 귀찮고 성가셨던지 나가죽으라는 식의 말씀↓

 

할머니 친구 분이 놀러오셨을 때, 저를 낳을 때보다 남동생을 낳을 때 배가 많이 아팠다는

말씀을 하고 계시길래, "엄마~!! 나도 배 아파 낳은 자식이야!!!" 이러면서 남동생의 심한

괴롭힘을 좀 막아달라고 이야기 했는데, 할머니 친구분이 돌아가시자 마자 손님이 와계신

상황에서 "쥐죽은 듯" (당시 저희 엄마가 잘 사용하셨던 표현) 조용히 있지 못하고 시끄럽게

굴어서 너무 챙피하다며 "너 같은건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니라" 며 말씀하셔서 너무

충격을 받은 나머지 전 저녁도 안먹고 이불 속에서 엉엉 울다가 아무 말도 못하고 잤습니다.

 

그 뒤에 한 번 이게 너무 속상했다고 엄마한테 따지듯이 말하니, 히죽 히죽 웃으시면서

"내가 언제 널 배 아파 낳은 자식도 아니라고 했어? 그냥 버린자식이라 그랬지."

 

훗날 남동생한테 맞아 울고 있는 저한테 동네 시끄럽고 챙피해서 못 살겠다고 저보고

나가 죽어버리라면서 "너 같은건 그냥 나가서  죽어 버려도 땅 파고 묻으면 그만이지만,

OO이는 아들이라서 안된다, 그니까 니까 꺼져라"

등등 10살 정도의 어린 여아에게 입에 담지 못한 말들을  숱하게 듣고 자란건 사실입니다.

 

(크고 나서, 한 번 저랑 엄마가 악다구니를 쓰며 싸웠다는 이야기를 듣고 언니 성격 고치라며

여동생이 저에게 나즈막히 충고 했을때 난 어렸을 때 엄마한테 저런 소리를 들으면서 컸다.

이런 날 네가 100% 이해할 수는 없다며 여동생은 위의 이야기들을 고스란히 아빠에게 전했고

아빠는 깜짝 놀라면서 우리집에서 어떻게 그런 이야기를 했겠느냐며 믿지 않으셨다고 합니다.)

 

 

 

3.

열 살 시절 병원에 가야 할 일이 있었는데, 엄마가 일이 많으셨던지 귀찮으셨던지 저 혼자

병원에 다녀오면 비디오테잎을 빌려준다고 말씀하셔서 전 처음 가는 것도 아니고 못할것도

없어서 얼른 그러겠다고 하고 혼자서 씩씩하게 병원을 다녀왔습니다. 접수하던 간호사 언니가

"어머, 너 혼자서 왔어?" 라고 묻는 것도, 병원에서 마주친 같은 반 친구의 엄마가 저를 보시고

"역시 반의 회장은 다르네, 아직 어린데 병원도 혼자서 다 올줄 알고.." 이러면서

병원 나가는 길에 하얀색 자동차 뒷 문을 열어주며

"얼른타, 우리 공주~" 이러는데 전 그 날 그 친구가 그렇게 부러웠습니다." (공주래... ㅠ_ㅠ)

 

집에 와서 병원 혼자 다녀왔다고 비디오 빌려오게 돈을 달라고 했더니 선뜻 돈을 주셔서

왠일인가 싶어서 비디오를 빌려와서,(닥터 슬럼프ㅋㅋㅋ) 남동생과 재미있게 보고 났더니

비디오가 끝나자 마자, 남동생이 다른 비디오를 빌려 달라고 엄마를 조르기 시작했습니다.

 

이건 OO(제 별명, 어릴때 누나 소리 들어본 적 별로 없어서...-_-;)가 보고 싶은 거였지,

자기가 보고 싶은게 아니였다, 그러니 내가 보고 싶은 비디오 빌려 보게 빨리 돈을 달라.

 

엄마는 그 상황에서 "우리가 부자도 아니고, 하루에 하나씩 빌려 보면됐지, 어떻게 하루에

두 개씩 빌려보냐"며 남동생을 나무랐는데, 할머니가 대뜸 저를 나무라기 시작했습니다.

 

저보고 네가 그러는게 아니라고, 엄마가 비디오 빌려보라고 하면 으레 남동생을 데리고 가서

남동생이 보고 싶은걸 빌려와야지, 어디 네가 빌려 보고 싶은걸 빌려 오냐고 하셔서 전 너무

어이가 없어서, 아니~ 제가 혼자 병원에 다녀오는 조건으로 엄마가 빌려준건데 그것도 왜

제가 보고 싶은걸로 못보고 남동생한테 양보해야 하느냐 따지듯이 물었더니 그래도 그게

아니랍니다. 여자는 무조건 그래야 하고, 전 누나니까 남자인 동생에게 양보하는게 맞답니다.

 

 

 

4.

하루는 학교에서 친구가 "우리 할머니는 내가 일등으로 소중하고 이쁘데" 그래서 침대 사주셨어!

라며 자랑을 하길래 (침대는 당시 나의 가장 큰 로망이였으나, 집안 사정상 언감생심 꿈도 못꿈)

침대는 고사하고, 그날 밤 할머니한테 우리집에서 1등으로 중요한 사람이 누구냐며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할머니 말씀이 "우리집에서 1등으로 중요한 사람은 당연히 아빠다.  아빠는 남자고,

이 집안에 가장으로 돈도 벌어와서 그 돈으로 우리가 다 먹고 산다. 그러므로 1등 중요한 사람은

아빠고 다들 아빠한테 잘 해야하는거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럼 그 다음은요? 할머니 하니


"우리집에서 2등 중요한 사람은 OO 남동생이다. OO이는 이 집안의 대를 잇는 소중한 아들이다.

OO이가 없으면 너랑 △△(여동생) 니들은 ('니까지맹이들'이라고 표현, 너희들을 비하시켜서

부르는 경상도 사투리) 고만 아무짝에서 쓸모없다. 그럼 3등은 그러니, 3등은 너희 엄마,

엄마가 3등이라고 하셨고 그걸 옆에서 흐뭇하게 웃으며 듣고 있던 엄마는 그럼 4등은 하고

묻는 제 말씀에 △△(여동생)이 4등이고, 네가 꼴찌지 뭐~ 이렇게 웃고 넘어가셨습니다.

 

(당시는 그냥 그러려니 했는데, 생각해보면 우리집에서 누가 소중해라고 묻는 손녀의 질문에,

식구들 모두 소중하지라고 말씀해 주시는 할머니를 바랬던 건 저의 너무 큰 욕심이였나 봅니다. )

 

 

 

5.  
이 같은 상황에서 제가 할 수 있는 건 공부 밖에 없어서 학창 시절 공부 이외에서, 미술, 음악 등

예체능도 거의 대부분 잘했습니다. 하지만 제가 1등을 도맡아하고, 회장, 부회장을 번갈아 해도,

"집안에 아들이 공부를 잘 해야하는데, 남동생이 차라리 공부를 잘하고, 너야 어차피 크면 

남의 집 사람 될꺼니까 넌 공부 좀 못해도 상관 없는데" 라며 할머니가 못마땅해 하셨습니다.

"우리 OO이(남동생)가 머리가 늦게 깨칠꺼야, 지금 머리가 안깨쳐서 그렇지 머리만 깨치면,

너 같은거 금방 따라잡아~", "OO이가 너보다 머리는 좋은데, 노력을 안해서 공부를 못한다는 둥 

등등의 말씀으로 아들 손주만 챙기기에 여념이 없었습니다.

(빵도 늘 두 개 사와서 아들 손주는 하나 다 주고, 난 여동생이랑 나눠 먹으라고 그러고.....)  

 

또 그 시절 딸 하나 혹은 딸만 둘 있는 동네 집들을 손꼽아 가며 다들 무지랭이, 미친것들이라며

제가 열 살쯤 넘어서부터는 딸로 태어난 것이 내 선택이 아니였듯이 내 잘못이 아닌데,

이건 너무 불합리 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할머니와 엄마 아빠에게 엄청나게 대들기 시작했고,

그때마다 말대꾸 한다면서 손에 잡히는 걸로 엄청 많이 맞고 자랐습니다. 보수적인 아빠는 제가

고등학교까지도 가끔 육탄전을 하셔서 포도 접시까 깨지면서 청바지가 찢어진 적도 있습니다.

 

하지만 열 살 이전에는 OO이(남동생) 없으면 니들 아무것도 아니라는 생각에 남동생이 없거나,

잘못 되면 난 어떡하지? 고아원으로 가야하나??등의 고민으로 불안한 정서를 가지고 자랐습니다.

 

 

 

 

 

최근에도, 여동생(현재 경기도 거주)과 제가 각각 이사를 했는데, 엄마가 여동생만 챙기는 것에

화가 나서는 (여동생은 저랑 다섯살 터울로, 제가 집 고르는거 부터 이사 계약, 입주 전 청소까지

다 옆에서 붙어서 도와줬습니다. 반면 제 이사는 제가 모두 다 알아서 하고, 입주 전에 손목을

다치는 바람에 청소 업체 불러서 청소하고, 원룸이지만 포장 이사로 모두 다 처리했습니다.)

 

내가 △△이(여동생) 다 챙겨준거 알지 않냐고? 안그래도 냄비하고 그릇도 좀 챙겨줄려고

생각 하고 있었는데 엄마 하는 소리에 짜증이 나서 챙겨줄려던 맘이 싹 다 사라진다고,

(이 날 주말에 업무상 굉장히 중요한 미팅이 있었는데 통화가 길어지는 바람에 지하철 역

구석에서 한 시간 삼 십분을 엉엉 울면서 엄마랑 이 이야기로 전화 통화를 했습니다.)

 

처음에는 이사 이야기가 나와서 "네가 지금 이사를 할 때야~ 결혼을 해야지!"에 욱해서 제가

지금 전화한 목적이 그게 아니지 않냐고, 싸웠다가 결국 결론은 지금 △△(여동생)이 사는거

보니 여전히 못 미덥다고, 너야 똑부러지게 뭐든 잘하니까 안심되는데, △△이는 그게 아니니

네가 좀 챙겨주라고~ 원래 장녀는 다른 형제들 챙겨주는 거고 다 그런거라고 엄마도 그랬다고...

 

"됐어, 학벌로 보면 △△(여동생)이 나보다도 더 좋은데, 왜 맨날 하나부터 열까지 나는 뭐든

잘 알아서 할꺼 같아 안심이 되고, △△(여동생)은 아직 뭘 모른다고 , 내가 챙겨주길 바라는

거냐고!!!" 내가 △△이 나이때 혼자서 고시원 살면서 혼자서 서울 올라와서 직장 생활 했다고,

그러면서 고시원 살면서 돈 모아서 원룸 들어가고 냄비랑 그릇들도 회사에서 보너스 타면

할인 매장 다니면서 하나 하나 사 모은거라고 절대 못 주겠다고!!! 그러고서는 또 여동생 편에

냄비랑 밀폐용기, 밥그릇, 국그릇 등 바리 바리 챙겨서 보내주고 그사진 엄마한테 보냈습니다. 

 

 

참고로 저 서울 생활 7년째 이지만, 아직 제가 살던 곳에 부모님이 방문하신 적 한 번도 없습니다.

원래 남동생 군대 있을때도 저보고 편지 좀 대신 써서 보내라고 할 정도로 잔정이 없으신 분이긴

하지만, TV에서 보니 대게의 다른 집들은 딸들이 타지 생활 한다고 하면 같이 타지로 와서 집

알아보고 이사도 같이 하고, 같이 저녁 먹고 반찬 챙겨서 냉장고 넣어주고 내려가시더라구요~

 

근데 전 가방 하나 들고 혼자 서울 올라와서 이사를 몇 번 하는 동안 엄마나 아빠가 직접 제 사는

곳을 보러 오신 적은 한 번도 없으셨습니다. 물론 중간 중간에 이불, 옷가지 반찬이나 건강 식품

등은 종종 챙겨서 택배로 보내 주시고는 했고, 저도 개인주의가 강한 편이라 불만은 없습니다. 

 

 


추가로 더 말씀드리자면, 남동생은 현재 몇 년째 공무원 준비중인 반 백수 상태로

30살 인 지금까지 아직 한 번도 직장 생활이나 사회 생활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몇 년째 제대로 공부를 안하고 거의 반 백수 상태인 모습에 지금은 부모님도 너무 화가 나신

상태라 금전적인 지원은 일절 끊으셔서 한 달에 만 원꼴로 생활하는 수준이라고 들었습니다.

 

가끔 안되보이기도 해서 2~3달에 한 번씩 10만원씩 용돈으로 주고, 여동생도 가끔 오빠에게

용돈 주는거 같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키워졌고 서른 넘도록 밥벌이도 못하게 그렇게 만든건

저희 집안의 이런 보수적이고, 가부장 적이고, 남아 선호 사상적 환경도 한 몫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제가 절 알지만 대인배가 아니라서, 엄마가 다른 딸을 어쩌구 비교 하시거나 혹은 바라는 것

들이 있으시면 가끔 어린 시절 저한테 대했던 모습이나, "아들, 아들~ 하시면서, 나중에 나 똥닦아

줄 사람은 OO(남동생)이 밖에 없다." 하신 젊은 시절에 모습이 떠올라 썩 유쾌하고 달갑지만은

않습니다. 모자란건 같지만 힘들거나 속상한 일들이 있을 때면 자꾸 자꾸 이런 기억이 떠오르네요.

 


물론 평소에 남들이 보기에는 아무 문제 없는 모녀 사이입니다. 엄마 친구들도 다 저를 칭찬하시고

백화점이나 식당에 가도 사이좋은 모녀고, 부모님 생일이나, 어버이날 등은 꼭 챙기고 넘어갑니다.

 

 

가끔 케이크나 선물은 커녕 미역국도 없기도 했었던 제 생일이 떠오르지만,

그래도 나이드는 부모님 안쓰러운 마음 저도 가지고 사는 평범한 딸 입니다.

 

 

나름 평소에는 큰 문제가 없이 지내서 넘어가는데

가끔 견디기 힘든 일이 있거나 연예하는 중에 문제가 생길때면,

딸이라는 피해의식으로 힘들어 했던 제 유년 시절이 떠오릅니다.

 

 

 

언제 한 번 날잡고 집에가서 술마시고 펑펑 울면서 나 이렇게 힘들었다고 말해볼까요?

아님 이제는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그냥 용서하고 아무일 없는 듯 넘어가야 할까요??

 

 

결혼해서 엄마가 되기 전에는 정신과 치료를 한 번 받아봐야 할 것도 같고,

이 글을 읽으신 분들께서 댓글로 어떤 말씀이나 욕이라고 달게 듣겠습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아빠, 엄마 표현을 썼으나 감정으로 글을 쓰다보니 그렇게 되었네요.)

 

 

 

댓글 130

123오래 전

Best지금이라도 치료 꼭 받으시고요. 상처 받을 상황이었던거 맞습니다. 글쓴이님이 무슨 말을 해도 부모님의 귀에는 제대로 들리지도 않고, 그 상황을 인정해도 첫째 여자가 감수해야 하는 당연한 것이라 생각하실 겁니다. 더 이상은 부모님께 동생들에게 퍼주지 마세요. 인생은 기브앤 테이크에요. 사랑받지 못하는데 뭐하러 사랑을 더 줍니까. 기대가 없으면 실망도 없습니다. 냉정하지만 도리만 딱 지켜서 하는 딸이 되세요. 돈 필요하다면 돈만 일정금액 붙여주고. 본인이 주고도 바라지 않을 선에서요. 냉정하게 말해 전화도 굳이 자주 할 필요가 있나요? 자식된 도리라 생각하는 만큼만 딱 하시고 더 이상은 하지마세요.

ㅋㅋ오래 전

Best저기요 글쓴언니님.. 그냥 그러고 사세요..지금와서 진지하게 얘기해도 안먹혀요.. 적당히 거리두고 사세요 잘해줄 필요 없습니다 잘해주면 장녀는 당연히 받아야될 거 받는 겁니다 남동생 늙어죽을때까지 뒷바라지 하기싫으면 걍 적당히 하고 거리두고 사세요.. 에효ㅜㅜ 그노무 아들이 뭐라고..

오래 전

Best혼자살능력도되는거같은데 그렇게당해놓고 그 가족들이랑 연락하는게 신기하네요ㅋ 동생용돈부쳐줫다는거보고 식겁햇네ㅋㅋㅋ31살에 공무원준비생이라니 그다음 스토리는 뻔함 시험이라도붙으면다행이지ㅋ

오래 전

보니까 '불쌍한 호구' 네요

솔직한세상오래 전

엄마도 차별 받았던 피해자 일지도 또한 그 악습을 반복하는 가해자가 되기도 님이 자르면 됩니다 ------------- http://pann.nate.com/talk/332308767 ------------ 아들과 딸을 차별해 교육하지 않는 부모 세대… http://www.hani.co.kr/arti/opinion/editorial/745043.html

ㅇㅇ

삭제된 댓글입니다.

오래 전

보면서 참 눈물이나네요...저도 장녀인데 그놈의 장녀가뭔지...항상동생이니까 언니인 니가 양보해야지...동생이잘못해도 언니인내가...사소한거 하나부터 모두 상처라..저도 반쯤은 마음닫고 살아요...그런데 부모한테서 받은 상처라 아직도 은연중 이제는 날 더 예뻐해주지 않을까 그런 헛된 생각으로 마음을 완전히 닫지 못하고 그렇게 살죠...

ㅡㅡ오래 전

글쓴님 아무리 글쓴님이 부모한테 잘해줘도 부모님은 글쓴님을 집안에 돈 벌어다주는 노예로만 여기지 자식으로 여기지 않아요. 지금이라도 정신차리시고,글쓴님 자신을 챙기세요.

유유유오래 전

저희 친가에서 제가 세번째 딸이고 제 남동생이 첫 아들 장손인데 차별한적 없으셨어요 학교 졸업식에 항상오셨고 용돈도 항상 내가 큰아이니까 더 주시고 학교올라갈때 고모들 몰래 제 중학교 교복값을 주셨는데 어린나이에 뭣도모르고 제가 나불거렸다가 들키시고 ㅋㅋㅋ; 애교가 없는 성격인데도 무난히 사랑해주신거 같음. 반대로 외가에서는 20대 중반이 되도록 나혼자 여자였음. 이쁨 받았을거 같은데 할아버지는 이뻐해주셨지만 할머니는 애교가 없다고 데면데면해 하셨음ㅋ 외가에 하나인 삼촌이 아들 낳았다 하니 외손주면 몰라도 친손주인데 딸보단 아들이지 이 말 듣고 굉장히 서운했음 우리집에 이사오던날도 난 내가 맏이라 동생보다 큰 방을 받았는데 집들이온 작은할머니가 남자애한테 큰 방을 줘야지 왜 얘한테 큰방줬냐고 뭐라했는데 너무 서운해서 다들 가고 난 후에 엄마한테 하소연했음... 이 정도로도 난 정말 치가 떨리게 남아선호사상이 싫었는데 글쓴이는 정말 어땠을지 상상도 안됨.... 힘내요.. 레진 코믹스에 단지라는 만화가 있는데 그 만화가 딱 글쓴님같은 차별 받고 자란 맏딸 이야기에요ㅠ 그분은 오빠 본인 남동생 이렇게 인데 만화보면 먹먹하더라구요ㅠㅠ 힘내시고 단지 그분도 상담받으러 다니셨던데 꼭 가보시구요. 힘내요ㅠ_ㅠ

오래 전

치료가 필요하실 것 같아요. 왜냐면 앞으로 쓰니께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기 전에 정말 멀쩡한 사람을 만나기 위한 준비인거에요.. ㅜㅜ

ㄷㄷ오래 전

어렸을적 트라우마는 커서도 쉽게 잊혀지지 않더라구요. 글쓴이님 힘드시겠지만 당분간은 연을 끊고 지내보시는게 좋을듯해요. 철없는 아들 좀 더 데리고 사셔봐야 소중한 딸이 생각나실듯요.. 힘내세요!

오래 전

저도 그래요. 전 엄마가 때리고 끓는물도 붓고 다리도 부러뜨리고 치료도 안해줬어요. 사과하라니까 엄마 자존심에 못하겠대요. 지금은 이민와서 연락끊고 사는데도 가끔 울화병이 터져요

오래 전

전 엄마가 주변에서 신기해할 정도로 언니와 저에게 희생적이셨어요 어려서는 장사를 하느라 바쁘셨지만 그 와중에도 항상 저희에서 신경쓰며 화초처럼 자랐고, 금전적으로도 항상 여유로웠구요. 전 태어나자마자 봐주는 할머니가 키워주셨죠 저는 할머니를 엄마이자 친할머니처럼 따라서 그랬는지, 커갈 수록 언니와의 차별이 있었지만 나이가 드니 더 아픈 손가락있을 수 있다고 엄마를 이해하게 되더라구요 그런데 머리만 그랬는지.. 아직도 엄마가 저보다 언니를 위해주는 모습을 보면 울컥해요 나이가 먹어도 엄마에게 사랑받고싶어하는 마음은 어린아이 그대로인가 봅니다 ^^

닉네임을 다르게 변경할 수 있어요!
 님이
어떻게할까요님에게 댓글을 남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