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원강사다. 내 여자친구는 내가 근무하는 학원의 고3 여학생이다.

34235 2013.05.18
조회1,021

1. 나는 학원강사다. 내 여자친구는 내가 근무하는 학원의 고3 여학생이다. 나 좀 생겼다. 들어왔을떄부터 여자애들이랑 크게 친해졌다. 나이 차이는 6살이다. 난 25살 그녀는 19살.


2. 강사로서의 실력과 자질에 대해 스스로가 한참을 자책했던 적이 있다. 매일매일 수업이 두려웠고 질문이 무서웠다. 한시간 짜리 강의에 두-세시간을 투자해도 부족했다. 그렇게 고민하고 고민할때 친해진 아이들과 문득 수업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나누게 되었다. 지금 여자친구도 그렇게해서 친해졌다. 처음엔 이성으로 다가서지 않았다. 전혀. 

그러다 같이 있는 시간이 많아지고, 이 친구는 내가 선생으로서 책임감을 갖는 모습과 자상한 모습에 조금씩 녹아내렸다고한다. 아마 내가 학생들에 관심을 쏟아야하는 선생의 입장이다보니 그렇게 보였나보다.


3. 지난 주 일요일, 부원장과 원장이 우리 둘의 관계를 눈치까고 둘을 불렀다. 따로따로. 그 자리에서 둘이 왜 같이 나갔다 들어왔는지와 둘의 관계에 대해 캐물었다. 내게는 다시한번 조심하라는 말과 함께 크게 혼내셨다. 학생도 마찬가지다. 다행인건 이 친구가 공부를 잘해서 내신과 현재의 기타스펙만으로도 서성한 라인은 쉽게 갈 수 있다는 점이다. 참고로 얘는 재외국민 전형에 해당되는 자격이고 물론, 나도 외국에서 근무 중이다.


4. 그 때, 우리 둘은 서로의 관계에 대해 좀 친한 스승과 제자라고만 했고 극구 부인했다. 다행히도 사귀고 있다는 사실 그 하나만 빼고, 있었던 일들의 대부분을 적절한 수위조절과 함께 솔직히 말했기 때문에 또 다른 거짓말로 곤욕을 치루거나 덜미를 잡히지도 않았다. 

나는 그 이튿날, 자유를 제한당하는 답답한 현실에 못이겨 사직서를 제출했다. 교육자로서의 자질이 부족함을 통감한다는 짧은 글과 함께말이다. 그 아이를 절대 포기하고 싶지 않았다. 그 아이의 젊음과 아름다움은 둘째치고, 그녀는 내게 너무나 따듯하고 포근한 존재였기 때문이다. 먹구름에 절망하는 그 순간 비좁은 틈으로 흐르는 그 작은 빛줄기, 연약한 손 한마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아는 사람을 알겠지.


5. 다행히도, 사직을 각오했던 나와는 달리 학원측에서는 내 능력과 학원의 성황을 이유로 사표를 수리하지 않겠다고 했다. 나도 일에는 늘 최선을 다해왔던지라 내 능력에 자부심이 있었다. 대신 학생과의 관계를 정리, 혹은 조심해달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알겠다고 했다.

동시에, 수요일 날에는 그 학생의 어머니가 찾아왔다. 일요일날 있었던 일을 학생이 지레 겁먹고 엄마에게 솔직히 털어놨기 때문이다. 도대체 어떤 선생이길래 궁금해서 오신 것 같았다. 곧이어 나를 호출하셨고 나는 물 먹은 생쥐 꼬라지로 상담실에 들어갔다. 어머님의 말씀은 간단했다. 무엇보다 중요한건 학생이 공부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선생님도 그것을 잘 알테니까 잘 믿겠다고. 사실 이 친구는 지금 서울대 지원 자소서를 마무리 중이었다. 

한편으로는 묘했다. 선생님 얼굴을 보니 빠질 법도 하다고. 여고생들이 빠질 법한 인상을 가지고 있어서 그런 것 같다고. 어려보이고, 또 실제로 어린 나이라 놀라셨다고한다. 그러면서 선생과 학생과의 그런 관계는 크게 걱정 안한다는 이야기도 흘려 했던 것 같다. 물론 나를 배려하느라 그런 식으로 이야기한 것 같지만 말이다. 

걱정되는 마음에 여친에게 물어보니 집에가서도 별 다른 말 없이 위의 말을 자기에게 했다고 한다. 아, 아이돌같이 생겼다는 말도 추가하셨단다. 


6. 그 일이 있은 뒤 일주일이 지났다. 그게 오늘이다. 여자친구는 재외국민 입시전형에 필요한 토플시험을 오늘 마지막으로 응시했다. 오늘 이후로 예정된 시험들은 어차피 원서접수 기간까지 리포팅이 안된다. 수능으로 비교하자면 사실상 이 친구는 수능을 본거고 이제 면접과 자소서 준비만하면 되는거다. 당연히 둘은 어린아이처럼 들떳고, 게다가 주말아닌가! 무심코 우리는 오늘 데이트를 약속했다.

분명히 조심한다고 조심한 것 같은데 데이트 중 여친의 핸드폰을 보니 여친의 친구로부터 5통의 전화 원장 전화로 2통이 와있다. 먼저 여친의 학원친구에게 되걸어보니 오늘 네가 학원에 오지 않은 것을 보고 원장과 부원장이 우리 둘의 관계를 의심하고 있다고한다. 심지어 자기에게 와서 나와 여친의 관례를 캐묻기도 했단다. 시치미를 떼려고 원장에게 전화를 걸어보니 엄마에게는 학원간다고 말하고 어디갔느냐고 하신다. 당황한 여자친구는 친구랑 좀 나와서 저녁먹으러 왔다고 한다. 죽었다, 싶었다.


7. 헐레벌떡 택시를 잡고 학원으로 가는 도중, 알리바이를 수없이 만든다. 전화기는 바쁘고 문자도 쉴새가 없다. 심지어 학원앞에서 둘이 내리면 누군가 잠복해있을거 같다는 망상에 나는 저 멀리 대형마트앞에서 내리고 여친만 홀로 보냈다. 그 길을. 

사십분쯤 지났을까, 벨이 울려 받아보니 상황은 더 심각해졌다. 준비했던 알리바이는 말하지도 못했다. 이미 원장이 어린 학생을 상대로 고단수의 심리전을 펼쳐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실 오늘 나와 밥을 먹으러 갔었고 그에 대한 적절한 핑계만 대었다고 한다. 엄마한테는 자기가 다 설명하겠다고. 원장은 격노한 분위기고 무엇보다 내가 자기를 속였다는데에 화가 난 거 같다. 조금 있다가는 부원장이 올거라고, 부원장과 이야기 할건데 앞서 말한거랑 비슷하게 둘러대겠다고 한다. 아무 할말도 없는 나는 알겠다며, 끝나고 보자며 까르푸 앞에 있는 스타벅스에 들어왔다.



8. 자 이 일이 오늘 하루, 한국 시각으로 말하자면 4시30분부터 10시까지 있었던 일이다. 내 판단으로는 원장,부원장 그리고 학생의 엄마도 우리 둘의 관계를 의심, 아니 확신하고 있는 것 같다. 우리 둘은 이에 대고 일주일을 거짓말로 버텼다. 작금의 상황은 모든 것을 들킨 우리의 탓이지만 근본적으로 과연 우리가 크게 잘못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도 문득문득 떠오른다. 


물론 학원 입장이 이해 안가는거 아니다. 지금 학원으로서도 최악의 입장이다. 유능한 조직원과 전도유망한 학생이 다소간 불안한 관계를 맺고 있고 이는 자칫 잘못된 소문으로 재생산될 시 학원은 물론이고 학생마저 파멸의 길로 빠질 수 있는 상황이다. 


9. 더 이상 거짓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모두가 확신하는 상태에서 부정해봐야 우스워지는건 둘 뿐 아닌가. 

자, 이제 어떻게 할텐가? 내가 생각한 방식은 이렇다. 첫째로 어머님께 사실대로 말한다. 서로가 정말 인간으로서 사랑하고 있다고 그래서 이렇게 까지 왔다고. 그간 숨기느라 힘들었지만 염려하실 것은 염려하여 말씀드리지 않았던 것 뿐이라고. 그럼에도 어머니께서 얹짢으시고 제가 싫으시다면 미련없이 이 지역을 떠나겠다고 말씀드리려한다. 조금 있다가 말이다. 그리고 연이어 원장께도 직접 일대일로 말하고자 한다. 사실은 우리가 이렇게 사랑에 빠졌다에서부터 시작해서 타인들의 눈에 띄지 않겠다고 절대로. 나는 모든걸 솔직히 말씀드렸으니 결정은 원장님께 맡기겠다고. 


안다. 무모하고 조카 한심한 짓거리라는거. 언뜻언뜻 후회가 밀려오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그런데, 거짓말처럼 그렇다. 막 이 아이를 놓치고 포기하고 싶지는 않다. 마치 내 인생을 내가 놓지 못하는 것 처럼...




어떻게 해야되냐. 



조언 좀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