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 (9화)

윙윙2013.05.23
조회3,852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더 이상 여기에서 지체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보일러 켜는 일은 개나 줘버리고 방으로 뛰어왔다.

 

 

문을 힘껏 열자, 수갑을 가지고 씨름을 하던 지혜가 큰일을 걸린 듯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하지만 그런 걸 신경 쓸 때가 아니다.

 

 

나는 집안 정리를 완벽하게 한 후에 짐을 싸기 시작했다.


몇 십 분을 혼자서 하다가 신기한 듯 나를 쳐다보는 지혜에게 성큼성큼 다가섰다.



“.......!!!”



갑자기 내가 다가오자 적지 않게 깜짝 놀랬나보다.

 

 

하지만 나는 개의치 않고 수갑을 풀어줬다.



“보고만 있을 거야? 같이 안 해??”



내가 벼락같이 말하자, 지혜는 얼른 일어나서 나의 일을 돕기 시작했다.

 

 

그녀에겐 짐을 담을 박스를 만들게 했고, 나는 옷장부터 차곡차곡 정리해갔다.



“후유....... 끝났군.”



둘이 하니 시간이 얼마 걸리지 않고 끝이 났다.

 

 

나는 숨을 고르는 지혜를 아무 말 않고 다시 수갑을 채운 뒤, 아까 처박아 두었던 모자를 꾹 눌러쓰고 방을 나섰다.

 

 

급하게 나가야 하니, 현관에 아무렇게나 굴러다니던 삼선 슬리퍼를 신고 뛰었다.


이 주변이 고시촌이다 보니 원룸과 관련된 전단지가 사방에 뿌려져 있었다.

 

 

나는 정신없는 와중에도 월세나 보증금을 꼼꼼하게 따져가며 방을 찾았다.

 

 

그중에 맘에 드는 방을 찾아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네


“전단지 보고 전화 드렸는데요, 방 있나요?”


-전단지 붙인지가 꽤 됐는데... 이미 나갔어요.


“아, 네...”


-뚝.



그 이후로 눈을 좀 낮춰 봐도 방을 구하기란 쉽지 않았다.

 

 

평소에 금방 구할 거 돈이나 더 모아서 구하자 싶었는데, 시기가 너무 지나버린 것 같았다.

 

 

순간, 편의점 사장님의 얼굴이 스쳐 지나갔다.

 

 

전에 분명, 원룸이 하나 있다고, 고시원 질리면 말하란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다.



“사장님?”


-어, 선기냐 무슨 일... 또 알바 펑크 내려고??


“그런 거 아니에요, 혹시 전에 말해주신 방 아직도 있을까요?”


-어 아직 안나갔다. 염병 맞을, 사실 구한다는 놈이 하나 있었는데, 살인사건 터지고 취소해버렸어. 남자도 아닌 새끼, 배알도 없는 새끼.


“아, 그럼 제가 들어갈게요.”


-오, 그래? 골치 아팠는데 다행이네.. 언제쯤 들어오려고?


“오늘 돼요?”


-오늘? 뭐가 그렇게 급해 임마, 청소도 안됐는데... 일주일 정도에 와, 청소 다해놓을 테니까


“청소는 제가 할 테니까 오늘 들어갈게요.”


-고집하고는! 지금 시간이 몇 신지 아냐?! 짐 옮기고 그러려면 차도 필요할텐데, 나보고 지금 그걸 하라고?


“아... 그럼 내일은...”


-알았어! 내일 오전 중에 전화해, 트럭 몰고 갈 테니까.... 뚝....




의외로 일은 쉽게 풀리는 것 같았다. 이렇게 집구하기를 서두르는 이유는 한가지뿐이었다.

 

 

고시원 주인아줌마를 한시라도 더 빨리 후드새끼한테 처리하게 해야 한다.

 

 

제대로 본 것 같진 않은데 한마디 때문에 다음 목표를 정하게 되었다



‘얼굴을 직접 보면 알 텐디...’



비만 오면 고시원을 제집처럼 드나드는데, 언제까지 안마주칠거란 보장은 없다.

 

 

혹시라도 후드새끼가 내 방에 들어오는 걸 주인아줌마가 보기라도 한다면... 끝이다.

 

 

게다가 내가 고시원에 있는데 아줌마가 죽어버리면 경찰은 고시원부터 뒤질 것이다.


일단 급한 불부터 꺼버리자, 마음이 한결 편해졌다.

 

 

급하게 나간 것과는 달리 돌아올 때의 발걸음은 몹시 가벼웠다.


방에 돌아오자, 문젯거리가 하나 더 떠올랐다.

 

 

박지혜. 이건 대체 어떻게 옮겨야 할 것인가? 같이 걸어서 옮기는 건 당연히 안 될 말이고, 업히는 것도 위험하다.

 

 

일단 밖에 나가버리면 그녀는 무슨 저항을 할지 몰랐다.

 

 

내색은 안하고 있지만, 내가 없는 동안 얼마나 수갑을 풀려고 애를 썼으면, 수갑에 묶인 손목에 시퍼런 멍이 들어있었다.

 

 

발버둥칠수록 더 옥죄는 수갑이라, 고통이 상당할 것이다.


나는 지혜를 지긋이 쳐다보며 대체 이것을 어떻게 옮길까 생각을 했다.

 

 

내가 가만히 자신을 쳐다보고만 있자 지혜는 왈칵 겁이 나는지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한 채 눈물만 글썽거렸다.

 

곰곰이 생각한 나는, 김치냉장고를 넣는 큰 박스를 폐품처리장에서 가져왔다.

 

 

크기가 생각보다 훌륭했다. 여기저기 조금 찢어진 부분이 있긴 했지만, 이정도면 만족이었다.


혹시라도 모를 탈출에 대비하기 위해서 나는 박스 자체를 테이프로 모두 둘러버렸다.

 

 

청테이프로 덕지덕지 발라놓으니 무슨 금고 같았다.

 

 

땀까지 흘려가며 작업을 마무리 한 나는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지혜에게 말했다.



“들어가.”



내가 다소 무섭게 말하자, 지혜는 부들부들 떨며 별 반항 없이 박스 안으로 들어갔다.

 

 

나는 혹시 몰라 양손을 수갑으로 채우고, 발과 손을 끈으로 묶어버렸다.

 

 

이걸로 안에서 박스를 차버린다는 행위는 하지 못할 것이다.

 

 

나는 상당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박스의 입구까지 막아버렸다.



“답답하더라도 오늘은 그렇게 자라, 언제 차가올지 모르니까 말이야”




나는 안심하고 잠을 청했다. 만약에 위기가 있다면, 오늘 밤에 뜬금없이 비가 내려 후드새끼가 우리 집으로 오는 것인데, 날씨는 확실하게 체크해 두었다.

 

 

오늘 밤엔 무조건 비가 내리지 않는다.

 

 

나의 완벽함에 도취하며 집들이 여기저기 쌓여져 있는 틈새에서 언제 잠들었는지도 모르게 잠들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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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쾅쾅



“어이 일어나지? 분명 오전 중에 연락하라고 했는데!”



시끄러운 소리에 눈을 떠보니, 누군가가 문을 발로 차고 있었다. 문득 시계를 보니 낮 12시가 넘어있었다.



“예, 예 나갑니다.”



나는 부스스해진 머리로 문을 열었다. 문 앞엔 사장이 불만 가득 섞인 표정으로 나를 보고 있었다.



“지금이 몇 시야? 아직도 자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어제 짐 싸느라 고생깨나 했다고요.”


“혼자 사는데 뭔 짐이 이렇게 많아? 근데 이건 뭐냐.”



사장이 지혜가 들어있는 박스를 발로 툭툭 건들었다. 나는 화들짝 놀라며 말을 돌렸다.



“하핫, 짐 옮기는 거 도와주실 거죠?”


“내가 미쳤냐? 이 많은 걸... 난 꿈쩍 안 하고 운전만 할 테니, 빨리 트럭에 올려라.”


“예옙!”



나는 지혜를 들키지 않기 위해서 그 박스부터 옮기기로 했다. 하지만 박스가 워낙 커서 옮기기가 쉽지 않았다.



“뭘 그렇게 힘들어하냐? 도와주지.”


“아, 아니요! 저 혼자 할 수 있어요!”


“뭘 혼자 해? 전혀 못하는구먼.”



사장과 함께 들자 확실히 편하긴 했는데,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게다가 지혜가 안에서 깨어났는지 약간의 흔들림도 느껴졌다.



“뭐가 이렇게 흔들려? 니가 흔드냐?”


“아, 죄송합니다... 팔에 힘이 없어서...”


“약해 빠진 놈.”



사장은 나를 보며 혀를 찼다. 하지만 다행이도, 지혜는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갈 수 있었다.

 

 

트럭에 올리기 전에 지혜가 안에서 난리를 쳤지만, 이미 내려놓은 후였다.

 

 

만약 조금만 더 늦었더라면 꼼짝없이 들켰을 판이었다.


가장 힘든 걸 끝내 놓으니, 나머진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었다. 물론, 사장이 도와준 것도 크다.



“자, 타라 얼른가자.”



원룸의 위치는, 편의점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편의점이 사건 현장 가까이 있어서 기피하는 사람들이 많은 모양이었다.

 

 

이런 중에 내가 온다고 하자, 사장은 몹시 마음에 들었는지 휘파람까지 휘휘 불며, 운전을 했다.

 

 

가까운 거리라, 가는데 는 10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나는 내리자마자, 얼른 트럭 뒤로 이동했다. 그리고 사장이 오기 전에 지혜가 들어있는 박스에 대고 나지막이 속삭였다.



“한번만 더 그딴 짓 해봐... 죽는다...”



나의 속삭임에 박스의 흔들림도 동시에 멈췄다.

 

 

사장이 오자 나는 다시 히죽거리며 짐을 옮겨 방안에 두었다.


“감사합니다. 도와주셔서....... 근데 돈은 어떻게 하죠?”


“돈은 무슨돈이야. 알바하는 거로 퉁쳐.”


“와, 정말요?”


“싫으면 돈 받을까??”


“감사합니다!”



나는 사장의 트럭이 눈앞에서 보이지 않을 때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이제 한숨 놓았다.

 

 

나는 이제야 제대로 된 집에서 쉬려고 문고리를 돌렸다.



-툭, 투뚝.


“어....?”


-툭, 툭, 툭.......



“비...? 온단 말이 없었는데...?”



기상청이 구라청이라고 불린다더니, 정말인가보다. 정말 상상도 못할 타이밍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후드새끼가 이사한 집을 알지가 더 궁금했다.



“그럼 이젠 안 오는 건가?”



나는 혹시나 올까 싶어서 집에 들어가지 않고 문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하지만 이슬비만 내려도 곧잘 오던 후드새끼는 오질 않았다.

 

 

조금은 기대를 하고 있었는데, 필요할 때 오질 않자, 실망감이 들었다.

 

 

나는 마지막으로 담배 한 까치를 다 태우고 집으로 들어갔다.



“그럼 짐 정리를 해볼........!!”


“이사라도 하면 어떻게 될 줄 알았나보지?”


“...헉...!”


불이 꺼진 내 방에서, 한 쌍의 눈빛이 차갑게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