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대체 어디에서 먹을까? 어떻게 먹을까?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김두송씨를 따라갔다.
처음 보는 이상한 길로 골목길의 줄기를 따라가자 전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공터가 나왔다.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잘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김두송 씨는 잘 보인다는 듯 손을 흔들며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잘 지냈나? 오늘은 어때?”
김두송 씨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어둠속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한 두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까 한 노숙자 연합이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닌듯 했다.
나는 김두송 씨의 뒤를 따라서 쭈뼛쭈볏 그들에게 다가갔다.
점차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하나 둘씩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 거 누구요?”
“아,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다.”
“신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사정이 있어.”
그들이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움츠러들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형사에 잔뼈가 상당히 굵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대통령 앞에 서도 절대 떨지 않겠노라고 자부했었건만, 이 노숙자의 집단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아무말도 없이 뻘쭘하게 서 있자 김두송 씨가 나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뭐해? 선배님들한테 인사를 해야지........ 사회생활 안해 봤나?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아, 예.......”
나는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고 조심스럽게 그들 앞에 섰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진짜 아픈 시선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의 눈이 나의 심장마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에....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 다소 유머스러운 어투로 말을 시작했다.
지나치게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목젖부터 벌벌 떨고 있었다.
머리가 계속해서 진정하라고 달랬지만 떨림은 멈추질 않았다.
“여기저기 떠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굵고 담백하게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인사가 끝난 뒤에도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입만 뻐끔거릴 뿐 가만히 서 있었다.
-짝.짝.짝.짝.
한참 뭘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새끼가 자신감이 없긴, 환영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희끗희끗한 수염을 가지고 있는 한 중년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하다 왔냐?”
“그게 질문이냐?...... 뭐 말아 먹고 왔냐?”
“새끼, 초면에 질문이 그게 뭐야?”
“하하하핫. 얌생이 같은 놈이군.”
“젊은 놈이 좋은 꼴이다!!”
한결같이 거친 언어였지만 알 수 없는 환영의 의미가 느껴졌다.
속에서 뭉클한게 코 끝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차마 우는 소리는 낼 수 없어서 오히려 크게 웃었다.
“와하하하하하!! 형님들! 정말 잘 부탁 드립니다!!”
조금 더 질문이 오고 간 뒤에 저녁 식사를 시작하였다.
먼저 수금을 하여 적정하게 돈을 분배를 하였고, 초과수익으로는 간식거리를 사와서 먹었다.
나는 지금까지 노숙자가 하루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밥을 먹으면서 김두송 씨는 나의 사정을 그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날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런 새끼는 쳐 죽여야 돼.”
“참 내. 세상 참 무섭구만?”
“어디 사는 새끼여? 내가 아작을 내줄게.”
그들은 진심으로 날 걱정해 주고 진심어린 말을 해 주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임을 해산하기 전에 김두송 씨가 앞에 나서서 말을 했다.
“식사들 잘 했나?”
“예!!”
“음, 그럼 한 가지 말하고 끝내겠어.”
평소에 유머있고, 장난스러웠던 김두송 씨가 정색을 하며 말을 시작하자 주변이 차갑게 내려 앉았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 조금은 멍 때리며 김두송 씨가 하는 일을 들었다.
“박선후의 원수인 전선기는 나와도 관계가 있다. 물론 본인은 아니지만 말이야. 지금부터 나눠줄 종이에 각자의 역할이 적혀 있으니 잘 확인하고 이행하길 바란다.”
“.......?”
갑자기 종이라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전에 들은 이야기도 없고 난데없이 벌어지는 일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종이는 다 돌려졌지만, 나에게는 종이가 배분 되지 않았다.
그대로 집단은 해산이 되었고 나는 김두송 씨를 따라서 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내 자리는 자판기 옆의 구석진 공간이었다. 드러누우니 바닥이 차가워 박스를 4겹 바닥에 깔았다.
그제서야 한기가 올라오는게 없어졌다. 눕는 자리가 조금 편해지자 피로가 갑자기 확 밀려들어왔다.
이곳은 아침도 저녁도 시간의 개념이 존재하질 않았다. 활동할 때가 낮이고 잠잘 때가 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일어나는 시간도 아침이었다. 나는 온몸이 욱씬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굼뱅이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챙겨온 자료 종이쪼가리를 가지고 잠시 생각을 했다.
모든게 풀리는데 성훈이의 메시지는 도대체 파악을 하질 못하겠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끙끙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툭 쳤다.
“뭐하냐?”
김두송 씨였다. 나는 어제 이후로 김두송 씨를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는 영락없는 노숙자였지만 지금 내눈에는 누더기를 걸쳤지만 마음만은 황금빛인 아름다운 혁명가의 모습이었다.
“잠시 사건에 대해.......”
“허, 그래서... 진전이 있나?”
“아뇨..... 계속 제자리걸음이네요.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아요.”
“넌 평소에 혼자 생각해서 안되면 어떻게하냐?”
“어떻게 하다뇨?”
살짝 웃으며 하는 그의 말이 신비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말이었겠지만 이미 김두송 씨는 나에게 거대한 존재였기 때문에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그야... 좀 똑똑한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래, 그럼 넌 누구한테 물어보면 좋겠냐?”
“글쎄요.... 딱히 그럴 사람이...”
“아니, 기억나는 대로 말해봐.”
“음... 형님한테 물어보나요?”
“새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대체...?”
“따라와.”
나는 군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는 평소에도 항상 즐거워 보였지만 오늘은 특히나 즐거워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무슨일인가 싶어 그를 따라갔다. 목적지는 아무래도 지하철의 인적이 드문 화장실인 것 같았다.
화장실 문 앞에 도착하자 히죽거리던 김두송 씨가 나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정말 알 수 없었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오자마자 문이 쾅 닫혔다.
분명 문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을 테지만, 이상하게 내 귀에는 철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읍...! 읍!!”
화장실 안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뒤에 묶여있었고,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나는 그를 보자 약간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형님이 옳았다.
나는 그의 입에 물린 재갈을 살살 빼줬다.
입이 열리자 마자 내 앞에 있던 놈은 격하게 반응하며 나에게 말했다.
“박.. 박 형사님! 살려주세요! 저 사람들이 절.......!”
“다물어 새끼야. 화장실이라서 울리잖아.”
나는 싸늘하게 그에게 말했다. 나의 말을 듣고 그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아래로 깔았다.
나는 갑작스런 이런 상황에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일단 물어봐야 할 질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이요? 그야... 전..선기 인데요.......?”
-빠각
“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발로 이 새끼의 대가리를 차버렸다.
한방에 코가 내려 앉아버렸고 내려앉은 코에선 코피가 격하게 흘렀다.
전선기는 비틀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다시 물었다.
“니 이름이 뭐라고?”
“아... 아... 전선기...”
-빠각
“우악!!”
나는 일부러 내려앉은 코를 겨냥해서 이번엔 주먹으로 직접 얼굴을 날렸다.
전선기는 매우 고통스러운지 양 손이 묶인채로 화장실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선기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셔츠가 화장실의 물때로 물들고 있었다.
한참을 비명 지르던 전선기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나는 조용해질 때 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자세를 낮췄다.
“니 이름이 뭐야?”
“대.. 대체 제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왜 이러긴, 이름 좀 제대로 알려고 그러지... 이름이 뭐냐고?”
“또... 때릴 거...”
“한마디만 더 헛소리 지껄여 봐라. 니가 해야할 말은 그리 길지 않아. 정확하게 진실되게 3글자만 말하면 돼.”
“전... 선기...”
-빠각
“으아아악!!”
아픈 곳을 만질 수 없는 아픔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전선기는 양 손이 묶여버려서 얼굴이 아무리 아파도.
코가 내려앉아도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이놈은 세뇌를 당한 것 같았다.
하기야 전선기로 변하기 전 시점에서도 정신적으로도 미숙했다니 그런 놈일 수록 더 쉽게 접근과 세뇌가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질문을 좀 바꾸기로 했다.
“그래, 그럼 고시원이 불타던 날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봐.”
“.......”
전선기는 두려움이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두려움 때문에 입술이 쉽사리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짜증을 느끼고 구석에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입이 안열어져?”
“.......”
이미 전선기는 완벽한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나는 불쌍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미 내려앉은 코를 잡고 한껏 비틀었다. 여느 코와같은 느낌이 나질 않는 게 성형한 게 맞았다.
어쩐지 아까 처음 발을 날렸을 때 한방에 코가 내려앉은 게 이상하긴 이상했다.
내가 코를 비틀면 비틀수록 끔찍한 비명소리가 화장실을 울렸고, 피도 철철 나왔다.
나는 코를 놓아주고 이상한 느낌이 묻은 손가락을 전선기의 셔츠에 슥슥 닦았다. 묻은 피가 그의 옷에 묻어 나왔다.
“다시 물을게, 이번에도 대답 안하면 코를 그냥 뽑아버릴거야.”
“예..! 예....!!”
“니네 고시원 불타던 날 뭘 하고 있었냐고.”
이번엔 대답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아니, 내가 말을 마치기 전에 나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저, 저는 그날 고시원에 가서... 카운터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내려왔어요...”
“그래서?”
“불이 났대요... 2층에서... 저는 당장 119에 신고를 하고 저도 밖으로...”
“그리고?”
“불길이 잘... 안 잡혔어요... 결국 전소 당했고... 그리고 경찰서로 가서... 방화사건 진술을...”
“진술 내용 좀 다시 말해줄래?”
전선기가 진술 내용을 머리에 떠올렸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동자에 박힌 두려움이 나의 눈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느순간에 그걸 즐기고 있었다.
“말해. 빨리.”
“죄.. 죄송... 죄송..... 죄....”
전선기의 입이 너무 떨려서 말을 제대로 하질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궁금한게 아니었다.
내가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계속 하는 건 얼마나 세뇌가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분명 그날 고시원에 갔던 건 이 전선기가 아니라 다른 전선기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인 놈이 거짓말을 한다고 보긴 힘들고, 깊은 세뇌를 당한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신문하질 않았다. 이미 이 전선기는 패닉 상태였다.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온몸을 끊임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젠 이런 껍데기 놈은 필요가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형님이 화장실 문 앞에 있었다. 형님은 전선기의 상태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도 참 정도라는게 없구만? 저 정도로 패면 어떡하냐?”
“형님과 제가 당한 수모에 비하면 한참 더 패야할 놈이죠.”
“쳇, 처리하려면 귀찮겠구만.”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했다.
형님은 고개를 숙인 나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가 봐도 좋다는 손짓을 보냈다.
“후유.......”
약간 허무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형사였고, 연쇄살인을 하고 누나를 납치했던 놈에게 내리는 최고의 복수는 법에 따라 그 새끼를 잡고 감방에 쳐 넣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사를 하고 있을 때도 법에 걸리는 방법이라면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그 놈의 영장 한장 없다고 조사를 포기한 일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형사를 그만둔 때에도 나는 계속 정도를 지키며 전선기에게 대항했다.
증거를 찾는다고, 정확한 증거를 찾아 잡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옳은 것은 형님이다. 난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나는 구걸을 시작하기 위해서 나름 명당이라고 눈여겨본 곳에 가서 깡통을 놓고 앉았다.
모자도 푹 눌러썼으니 이 정도면 나름 훌륭한 거지 행색이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그때,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가짜 보스가 당하면 진짜 보스가 나타나는게 게임의 진리니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신발 새끼가!!“
“뭐야, 말이 거치네? 내가 뭘 했다고.”
--니가 납치한거 맞잖아? 강아지야. 빨리 안 돌려보내?
“어, 곧 있으면 갈 거다. 반 죽음이 되어서 말이야.”
--이 썩을 새끼.......!!!
나는 냉정할 수 있었다. 이 지겨운 술래잡기 놀이를 하면서 우위에 선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이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다. 곧 전화기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꽤 대담하오?
“뭐, 그렇지.”
--우리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들이라오.
“난 아직 받은 만큼 못 돌려 줘서 말이야.”
--꽤 많이 쫓아 온 것 같은데, 곧 댓가를.............. 뚝....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귀가 잘못들은게 아니라면 이 근처에 분명 이 새끼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지하철을 타려 하고 있다. 전화기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던 안내방송 소리가 흐릿하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게 들렸다.
한참을 미친 듯이 뛴 나는 지하철을 타는 곳에 오자 주변을 삥 둘러봤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라 찾기가 쉽질 않았다.
지하철이 도착했고 나는 입구에 몰리는 사람들을 살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
그때 멀리에서 많이 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얼굴이다.
방금까지 화장실에서 내가 묵사발을 만들어 놓기 전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쪽으로 달렸다. 빠르게 뛰자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으악.”
“앗!”
“뭐야 신발!”
“어이구!”
미안하다는 말은 나중에 하겠노라고 충분히 속으로 되뇌이고 그에게 뛰어갔다. 그는 이미 지하철에 탔고 문은 닫히고 있었다.
“제길!!”
나는 이미 닫혀버린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마음 같아선 유리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문득 안을 보니 전선기가 씨익 웃고 있었다. 나는 유리를 두드리는 걸 멈추고 그를 쏘아봤다.
전선기가 수첩을 꺼내고 뭔가를 적더니 나에게 비췄다.
-잘 지내.
나는 손톱을 물어 뜯었다. 반이 뜯겨버린 손톱에서 적지 않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유리창에 글씨를 쓰고 미련없이 뒤를 돌았다.
-성기까.
다른 전선기가 잡혀온 이후로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들을 없애버렸다.
물론 흔적이 남질 않도록 철저하게 불 질러 버렸다. 그 자료들의 결론은 이미 났다.
전선기는 2명이고 인격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인격이 많다는 건 확신이 잘 가지 않던 가설이었지만, 마지막에 지하철에서 전선기 혼자 있었다는 점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전선기를 패버린 건 효과가 좀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전선기를 패고 나서 돌려보낸 이후로 진짜 전선기는 실제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 동네를 왔다 갔다 하려면 지하철을 타야되는데, 진짜 전선기가 그러고 다니기에는 위험성이 많이 따를 것이다.
“돈벌이는 잘 되나?”
지하철 한 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형님이 나에게 왔다. 나는 게슴츠레한 눈을 벅벅 문지르며 그에게 말했다.
“이 역은 사람이 별로 없는데요... 잘 아시잖아요...”
“그거야 니가 하기 나름이지. 누가 아냐? 니가 조는 사이에 누군가 니 돈을 가져 갔을지...”
형님의 말에 나는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깡통을 흔들어봤다.
-찰랑찰랑.
“?!”
나는 잠이 확 깨며 깡통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깡통에선 찰랑거리는 소리 따위가 나면 안됐었다.
무려 3일동안 모아온 돈인데 철렁철렁 소리는 나야 했다. 나는 급하게 돈들을 손에 엎으며 돈을 세어 보았다.
하지만 돈을 세어봤자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확실히 돈의 양이 눈에 보일만큼 확 줄어 있었다.
이정도면 누가 내 돈을 꽉 찬 주먹으로 쥐어간 게 틀림없다.
“이런 신발! 어떤 새끼가 감히!”
이 돈을 어떻게 모아온 돈인가? 경찰 질을 할 때는 범인을 쫓으며 며칠을 잠복근무하고 범인한테 맞기도 하고 더러운 꼴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이 돈은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잠복이야 졸리면 교대로 자면 되고 범인에게 맞으면 나도 몇 배로 복수해 버리면 된다.
경찰은 확실히 범인의 우위인 만큼 복수할 수단이 많았다.
하지만 노숙자가 느끼는 서러움은 어느 직업보다 컸다.
가만히 있었는데도 밥 먹을 때가 되어 이동하려면 옷에 침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경우도 있었고, 괜히 젊은 놈들이 시비를 걸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덤볐다가는 다시는 이 자리에서 구걸을 하지 못한다.
나는 이 깡통의 단돈 백 원도 그 누구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욕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아오! 신발! 만나기만 해봐 죽여 버릴 거야!”
“이, 이봐 왜그렇게 욕을 해?”
“제가 이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아십니까?!”
“미안해...!”
“형님이 왜 미안해요? 아 신발 새끼 잡히기만 해봐 디질 줄 알아.”
내가 한참 욕을 날리고 있는데 형님이 쭈뼛쭈볏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깡통에 넣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었다.
-철렁
그래, 바로 이 소리다. 그 동안 모아왔던 내 집념과 통한이 담긴 소리는 바로 이것인 것이다.
근데 왜 지금 이런 소리가 나는가?
“흐, 흠..! 니가 자고 있길래 정신 좀 차리라고 장난 좀 친거야...! 너무 그러지 말아. 내 참 장난 한번 쳤다가 무안하긴 처음이네.”
“.......”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형님을 바라봤다.
형님은 아직도 무안한지 헛기침을 마구 해대며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내 등을 툭툭 두드리곤 다른데로 갔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렇게 욕을 했는데, 이 자리에 그냥 있기는 무안할 것 같았다.
나도 덩달아 무안해져서 조심히 가라는 인사도 굳이 하지 않았다.
나는 잃어버린 집문서를 되찾은 양 깡통의 돈을 다시 세 보았다.
그 동안 구걸을 하면서 정말 수십 차례 돈을 샜던 것 같다.
조금씩 커지는 돈이 신기하기도 했고 나름 보람도 있었다.
“100원... 200원... 750원...”
동전 하나 하나가 마치 자식처럼 여겨졌다.
자기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더니, 더러운 동전, 찌그러진 동전, 깨끗한 동전 모두가 소중했다.
“7480원.... 7580원.... 8080원....”
가만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수양을 온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이런 차림으로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자면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도 저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저 사람들은 앞일을 위해서 살지만 우리들은 단지 지금을 위해서 살고 있었다.
“15600원... 16600원... 17600원... 우와 끝...!”
3일동안 모은 돈은 무려 17600원이나 됐다. 일당 5800원 정도 될 것이다.
물론 작은 돈이겠지만 어찌 보면 작은 돈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 땀을 뻘뻘흘리며 부대에서 제초를 하고 있는 군인들 보다는 훨씬 많이 벌었다.
나는 구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깡통을 들고 지하철 내의 보관함으로 갔다.
“음....... 27번...”
나는 27번 보관함에 깡통을 넣었다. 꽤 무게가 있는 게 흐뭇하기 그지 업었다.
“아참...”
나는 다시 사물함을 열고 깡통에서 500원짜리 3개와 100원짜리 5개를 꺼내고 다시 열쇠로 보관함을 잠갔다.
그리고 담배를 사려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변의 편의점으로 갔다.
모자를 눌러쓰는 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보통은 꾀죄죄한 내 얼굴을 보면 어제 아침 먹은 것 까지 토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편의점에 갈 때는 항상 다른 편의점으로 간다. 맨날 가면 언젠간 욕을 먹기 일쑤였다.
-툭.
한참 가는 길인데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슬쩍 모자챙을 들어 얼굴을 보니 남자와 여자 한 커플이었다.
“어이고... 죄송합니다~”
“아 뭐야 신발, 재수없게?”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아 신발 진짜... 재수가 없을 라니까...”
“오빠, 그냥 가자~
“.......”
나는 조용히 있었다. 여자가 말려준다면 훨씬 매끄럽게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마치 죄인처럼 앞으로 가지런하게 손을 모아 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신발 새끼. 넌 내 여자친구 아니었으면 뒤졌어... 가자.”
“응! 오빠 어디로 갈거야?”
세상 살면서 어깨를 얼마나 부딪쳐 봤을까?
분명 내가 경찰이었던 시절에도 조금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선 하루에 몇 차례나 어깨를 부딪쳐 봤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지나가거나, 상대편에서 먼저 고개를 까딱거려 사과를 하는 등, 크게 마찰이 있는 경우는 없었다.
문득 내 행색을 슥 훑어보았다.
무릎이 너덜너덜한 청바지에, 여기저기 헤진 겉옷에 목이 쭈욱 늘어난 반팔이었다.
모자의 챙엔 손때가 얼룩덜룩 묻어있었다. 이 옷을 입은 후론 어깨를 부딪친 다음에 시비를 걸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혹 그냥 지나치더라도 그의 표정을 보면 마치 똥이 부딪친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와 방금 부딪혔던 청년을 바라봤다. 흔치 않는 보라색 머리였다.
난 다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출구로 나와서 앞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디스 한 갑이요.”
“2000원입니다.”
“.......?”
가격을 말하는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었다.
나는 상대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모자챙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슬쩍 보고 다시 모자챙을 급하게 내렸다.
약간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아까 챙겨온 동전들을 꺼내 카운터 책상위에 올려놓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때, 뒤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오빠! 오빠 맞지? 그 동안 어디... 오빠! 오빠!”
나는 역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익숙한 목소리가 점점 흐릿해지며 내 귀를 울렸다.
사실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누군지 알고 있었다. 최한은. 한은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여기인지는 몰랐다.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한은이는 전선기 놈의 타깃이 된 적 있다. 나의 선택이 까딱 잘못 됐다가는 한은이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물론 전선기가 한은이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모든지 부셔버리는 악독한 놈이다.
지금 내가 누구와 가까이 했다간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하지 못했다. 지금은 서로를 찾아 죽이려고 하는 입장이니까.
“후우.......”
이번 담배연기는 참 많은 게 들어있다. 담배를 피우는 건 시름을 뱉어낸다는 말이 있다.
누가 그랬는지 정말 명언이라고 느껴졌다. 하얀 담배연기가 나의 썩은 속 훑어서 치유를 해주는 느낌이다.
이래서 내가 담배를 못 끊지.
-딱
“우앗!”
한참 폼을 잡으며 담배를 피우는데,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맛있게 때렸다.
아프진 않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아서 눈을 흘기며 뒤를 돌아봤다.
“어떤 새........ 뭐야?”
누군지 보니 칠복이 아저씨였다. 정확한 이름은 성칠복. 흔하지 않은 성씨인데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칠복이 아저씨는 실실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허, 어린놈의 새끼가 반말을?”
“거지는 나이가 없다며! 누가 그랬더라?”
“새끼 이상한 것만 기억하기는...”
노숙자들 중에선 물론 내가 가장 막내다.
30대도 한 두명 있을까 말까하고 거의 40대 이상이 대부분 이었다.
겉으론 다 거칠 것 같은 사람들 이지만 막상 만나보면 이렇게 푸근한 사람들도 없었다.
“담배 좀 끊어라! 새끼, 담배 4갑이면 10끼를 해치울 수 있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하루에 1개 밖에 안 펴. 이런 즐거움을 없애버릴 참이야?”
“이 새끼가? 공금 횡령해서 피는 주제에?”
“쳇...”
맞는 말이라 할말이 없었다. 우리들은 모아온 돈을 합쳐서 서로 알맞게 배분을 한다.
엄밀하게 보면 공산당하고 비슷하지만 한끼 먹기도 벅찬 우리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러지 않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한참 한은이 때문에 꿀꿀하던 참이었는데, 칠복이 아저씨 때문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인상만 찌푸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입 꼬리가 얼굴을 찢어버릴 기세였다.
나는 조금 더 칠복이 아저씨와 티격태격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디 가려구?”
“응, 목표치도 어느 정도 달성했는데, 할일은 해야지.”
“할일? 그 이상한 새끼 잡는다는 거?”
“이상한 새끼라니... 그렇게 말하니깐 좀 우습군. 하여튼 그래. 그렇다고 해두지.”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쉽게 마무리 될 텐데 왜 굳이 혼자 하는 거냐?”
“그냥. 민폐 끼치기 싫어서. 갈게!”
나는 다 핀 담배를 손가락으로 툭툭 털고 구석을 향해 던졌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주변에 경찰이 있나 눈치를 봤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칠복이 아저씨가 피식 웃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물론 노숙자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일은 쉽게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당해온걸 보면 전선기도 만만치 않은 인간이었다.
까딱하면 노숙자들이 다칠 수 있었다. 아니, 분명 2명 이상은 죽거나 다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저번에 다른 전선기를 패는 과정에서 형님이 개입된 게 조금 불안하던 참이었다.
“오랜만에 오려니 적응이 안되네.”
나는 전선기의 집에 와 있다. 내가 맡은 지하철 구역에서 전선기의 집과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다.
정체를 조금이라도 더 숨기기 위해서 모자를 더 눌러 썼다. 언제 뒤에서 벽돌이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적당한 바가지를 하나 구해서 자리를 잡고 구걸을 시작했다.
물론 그냥 구걸이 아니라 주변을 꼼꼼히 살피면서 했다.
맨 시멘트 바닥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10분도 앉아있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간질간질 아파왔다.
마침 주변에 스티로폼이 하나 떨어져 있어서 적당히 깔고 앉았다.
자리가 편안해서 그런지 잠이 왔지만 필사적으로 버티며 주변을 살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나는 조금더 긴장을 했다.
이 시간이라면 곧 전선기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
곧 전선기가 나타났다. 코는 치료를 받고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렇게 내려 앉아 버렸으니 저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게 신기한 것이다.
나는 살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나도 파악하는데 한참이 걸렸지만 형님이 말해 준 것이 있다.
언젠가 진짜 전선기랑, 다른 전선기랑 어떻게 구별을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다른 전선기 걸음이 약간 팔자걸음 이라고 했다.
처음엔 구별을 못했지만 몇 번 보니 알 것 같았다.
이놈은 진짜가 아니다. 진짜도 아닌 놈을 굳이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
다른 전선기는 그대로 아파트로 진입했고 나의 할 일도 이걸로 끝이었다.
저번에 마지막으로 지하철에서 본 이후론 진짜는 지하철에 나타나지 않았다.
“헛탕이 일상이구만.......”
맨날 허탕치고 돌아가니 허무할 따름이었다. 문득 바가지을 보니 그래도 2300원은 번 것 같았다.
나는 동전소리를 찰랑찰랑 내며 밥 먹는 곳으로 갔다. 어두워서 그런지 주변 시선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밤에 사람만 많다면 구걸을 밤에만 하고 싶을 정도다.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그들 중 칠복이 아저씨가 들뜬 목소리로 날 불렀다.
“어이 선후, 여기야.”
“예~”
나는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하고 먼저 형님에게 갔다. 형님은 좀 피곤한지 눈이 반쯤 감겨있는 상태였다.
나는 방금 벌어온 2300원을 형님에게 가져다주었다.
“2만원 채우면 가져오라니까.”
“아, 이건 따로 번거에요. 보관함으로 가기도 귀찮아서 왔어요.”
“그래? 알았다. 받아라.”
형님이 바가지 속의 돈을 큰 주머니에 담고 나에게 오늘 저녁밥을 주었다. 오늘은 무려 삼각김밥이 2개다.
“오, 요즘 벌이가 좋나보죠?”
“여름이라 그런가? 그늘이라도 찾아서 지하철로 오나봐. 그나저나, 일은 잘 되가냐?”
“음... 아뇨 별로 진전이 없네요. 이거 확 다시 잡아와서 까버릴까 보다!”
“꼬리가 길면 잡혀. 서두르지 말고 해.”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밥 먹고 나 좀 봐.”
“예? 뭔일 인데요?”
“와보면 알아. 마음 단단히 먹고 와라.”
“에이... 이래선 찝찝해서 밥도 안넘어 간다구요.”
나는 삼각 김밥을 받아들고 칠복이 아저씨가 있는 무리로 건너왔다.
뭔가 찝찝함이 있긴 했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칠복이 아저씨를 보니 웃음부터 튀어나왔다.
“어이 어린놈. 오늘은 뭔 사건 없냐?”
“제가 무슨 트러블 메이커에요? 없어요. 없어.”
“재미없는 놈이 됐군. 딴데가서 먹어라.”
“뭐요?!”
“하하핫! 농담이야!”
나도 덩달아 웃으며 삼각 김밥을 뜯어서 먹었다. 시끌벅적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모두들 돌아간 후에 나는 형님에게 갔다.
형님이 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따라와 봐.”
나는 일부러 대범한척 하며 형님을 따라갔다. 설마 이번에도 전선기가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도착한 곳은 벤치가 많은 공원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라서 사람도 없고 가로등만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 중에 몸을 외투로 가린 한 사람이 멀리있는 벤치에 있었다.
“가봐.”
“누군데요?”
“가보면 알아.”
“형님은 안가요?”
“난 안가. 가면 할 이야기가 많을 테니.”
“.......?”
나는 의문을 느끼고 그 사람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누구슈.......?”
나는 누군지 무척 궁금했지만 일부러 무심한척 뒤통수를 긁으며 앉아있는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앉아있던 사람은 내가 온 걸 이제 알았는지 움찔 하더니, 머리까지 쓰고 있던 외투를 스르르 내렸다.
“...서주희?!”
나는 서주희를 보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슨 이런 타이밍에 등장을 한단 말인가?
나는 황당함과 당황이 겹쳐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힘들게 정신을 추스르고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 그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정리가 안 되어 산발이었고 왼쪽 눈은 누구한테 얻어맞았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냥 시퍼런 게 아니고 시꺼멓게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찌나 부었는지 눈이 감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머리칼로 가린 이마는 콘크리트 바닥에 쓸렸는지 딱지가 커다랗게 앉아 있었다.
“박 형사님.......”
서주희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의 나머지 부분에도 자잘하게 상처가 있고 멍이 들어 있어서 눈물을 닦으면서도 고통이 오는지 제대로 닦질 못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달래는 게 우선 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객관적으로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했다.
“진정해라... 어디서 무슨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만........”
“.......”
아무래도 당분간은 울음이 계속될 것 같았다. 나는 손을 거두고 그냥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좀 생각을 해보니 나는 시간도 많은 사람이었다. 괜히 급하게 마음먹을 필요는 없었다.
한참을 혼자 훌쩍이던 서주희의 호흡이 점점 안정이 되어갔다.
진정이 되었을 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서주희였다.
“죄... 죄송해요...”
“뭐가?”
“이렇게 나타나서...”
“그게 뭐가 미안하냐?”
“.......”
말은 이렇게 해주었지만 답답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난 서주희가 그래도 생각이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길 바랬었다.
물론 이것도 내가 확신한 건 아니었지만 차라리 그렇게 되는 게 마음 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타나다니... 이 아무것도 해본 적 없는 부잣집 미대생을 어떻게 할지가 걱정이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이야기나 들어보자. 어떻게 된 일이야?”
“선... 선기 오빠를... 만났어요.”
“?!”
이건 꽤나 귀가 솔깃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방금 생각한 것을 본다면, 신세 가엾은 여자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냐고 신랄하게 비판했겠지만, 난 지금 서주희가 어떤 일을 당했느냐 보다는 전선기가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더 알고 싶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서주희의 말을 기다렸다.
아직도 훌쩍거리는 게 남아있어서 기다리는 게 짜증날 지경이었지만 정신 수양하는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고시원에 불이 났던 날에... 저는 방을 빠져나와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골목으로 달렸어요... 근데 가는 길목에 선기 오빠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는데... 보자마자 뺨을 맞고...”
나는 그 이상의 이야기는 차마 듣기 힘든 구타와 폭행의 이야기였다.
순수하게 맞는 이야기만 들어서 동정심이 생기는 게 처음일 정도로 서주희는 전선기의 집에 갇혀서 수 없이 많은 구타를 당했다.
“그럼 어떻게 탈출하게 된 거야?”
“언제 한번 선기 오빠가 크게 다쳐서 들어왔는데... 그때...”
아무래도 전선기는 서주희에게 2명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이때도 계속 차례를 달리하며 서주희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계속해서 전선기를 추격하며 느낀 건데, 이놈은 생각보다 완벽주의자였다. 아마도 결벽도 심할 것 같았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서주희 너는...”
“네...?”
“아직도 전선기를 사랑하냐?”
“.......”
그녀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내 시선에서 눈을 떼고 땅을 잠시 바라보더니 스스로도 웃긴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미친년.”
“하.. 하지만...! 분명 뭔가 있을 거예요! 정신적으로 뭔가 충격을 받았다거나! 누구에게 협박 같은 걸 당해서...!”
나는 더 이상 듣기 싫어서 손을 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미친 게 맞다.
나는 답답하고 짜증이 치밀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미친년아. 니 얼굴이 보이냐? 니 꼴을 한번이라도 봐봤어? 니가 아까 나한테 말했었지? 몇날 며칠을 어떻게 쳐 맞고 살았었는지 내가 다시 한번 너한테 말해줘? 니 얼굴만 해도 그 정도 인데 몸은 얼마나 10이 났을지 지금 안 봐도 뻔해. 아니면, 지금 홀랑 벗겨서 전신거울이라도 가져다줄까?”
내가 면전 앞에서 고함을 지르자, 서주희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는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그딴 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자의 최대 무기가 눈물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내 눈에는 눈물 따위 보이질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있는 답답한 인간을 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그치지 않고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정신 차려 이 화상아. 니가 무슨 종교를 믿냐? 선기교야? 신발, 내 기분이 성기같네. 너 나한테 왜왔냐? 그렇게 좋으면 지금 당장 꺼져서 다시 그 새끼한테 쳐 맞으면서 살아. 그러면 되겠네. 탈출은 왜했어? 신발, 니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전선기잖아? 그럼 그냥 쳐 맞으면서 살아! 왜? 사랑하니까! 어우, 신발.”
나는 이 답답함의 응어리를 풀어 헤치듯이 욕을 질렀다. 이제야 내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내 앞에선 서주희가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만큼 내 속도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냉정해지자, 좀 과했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들었다.
나는 하루에 한 개피만 피운다는 철칙을 깨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를 물자마자 콧속을 더듬는 담배의 아릿한 향이 나의 정신을 깨웠다.
-칙... 칙... 칙... 화륵!
라이터로 담배의 불을 붙이고 문득 라이터를 보니 가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싶더니 역시나 였다.
라이터는 300원이나 하지만,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서 그렇게 짜증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역시 귀찮은 일이었다.
나는 가로등에 라이터의 몸속을 이리저리 비추며 첫 번째 연기를 뱉어 냈다.
“후우.......”
나는 뭔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담배를 한대를 더 꺼내어 그녀에게 건냈다.
“한대 할래?”
“.......”
서주희는 말없이 내가 건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가지고 놀던 라이터를 그녀가 물고 있는 담배에 가져다 대고 불을 붙였다.
-칙... 화륵!
그녀는 처음과는 다르게 담배를 피웠다. 기침도 하지 않았고 얕게 빨아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능숙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너무 안돼 보여서 담배를 주긴 했지만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룸메이트 - (26화)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밥을 대체 어디에서 먹을까? 어떻게 먹을까? 나는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김두송씨를 따라갔다.
처음 보는 이상한 길로 골목길의 줄기를 따라가자 전등 하나 없는 어두컴컴한 공터가 나왔다.
누군가 있는 것 같은데, 잘 보이질 않았다.
하지만 김두송 씨는 잘 보인다는 듯 손을 흔들며 조금 큰 목소리로 말했다.
“잘 지냈나? 오늘은 어때?”
김두송 씨의 말에 반응이라도 하듯, 어둠속에서 웅성웅성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건 한 두명의 목소리가 아니었다. 아까 한 노숙자 연합이라는 말이 헛소리가 아닌듯 했다.
나는 김두송 씨의 뒤를 따라서 쭈뼛쭈볏 그들에게 다가갔다.
점차 눈이 어둠에 익숙해지자, 하나 둘씩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형님, 거 누구요?”
“아, 이번에 들어온 신입이다.”
“신입? 처음 보는 얼굴인데.......”
“사정이 있어.”
그들이 대화를 하는 동안 나는 움츠러들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나름대로 형사에 잔뼈가 상당히 굵다고 생각하며 살아왔고, 대통령 앞에 서도 절대 떨지 않겠노라고 자부했었건만, 이 노숙자의 집단에선 한없이 작아졌다.
내가 아무말도 없이 뻘쭘하게 서 있자 김두송 씨가 나의 옆구리를 툭 치며 말했다.
“뭐해? 선배님들한테 인사를 해야지........ 사회생활 안해 봤나? 한 두 살 먹은 어린애도 아닌데.”
“아, 예.......”
나는 스스로 파이팅을 외치고 조심스럽게 그들 앞에 섰다. 그들의 날카로운 시선이 나에게 꽂혔다.
진짜 아픈 시선이었다. 산전수전 다 겪은 그들의 눈이 나의 심장마저 꿰뚫어 보는 것 같았다.
“에.... 저로 말할 것 같으면...”
나는 긴장감을 풀기 위해 다소 유머스러운 어투로 말을 시작했다.
지나치게 긴장을 해서 그런지 목젖부터 벌벌 떨고 있었다.
머리가 계속해서 진정하라고 달랬지만 떨림은 멈추질 않았다.
“여기저기 떠돌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도 나름대로 굵고 담백하게 말을 한 것 같았다. 그들은 인사가 끝난 뒤에도 나를 한참 쳐다보았다.
나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어서 입만 뻐끔거릴 뿐 가만히 서 있었다.
-짝.짝.짝.짝.
한참 뭘 할지 생각하고 있는데 무리 속에서 한 사람의 박수소리가 들려왔다.
“남자 새끼가 자신감이 없긴, 환영한다!”
고개를 들어보니 희끗희끗한 수염을 가지고 있는 한 중년의 목소리였다.
그 목소리를 시작으로 여기저기에서 왁자지껄한 목소리가 터져나왔다.
“뭐하다 왔냐?”
“그게 질문이냐?...... 뭐 말아 먹고 왔냐?”
“새끼, 초면에 질문이 그게 뭐야?”
“하하하핫. 얌생이 같은 놈이군.”
“젊은 놈이 좋은 꼴이다!!”
한결같이 거친 언어였지만 알 수 없는 환영의 의미가 느껴졌다.
속에서 뭉클한게 코 끝까지 올라오는 기분이었다.
나는 차마 우는 소리는 낼 수 없어서 오히려 크게 웃었다.
“와하하하하하!! 형님들! 정말 잘 부탁 드립니다!!”
조금 더 질문이 오고 간 뒤에 저녁 식사를 시작하였다.
먼저 수금을 하여 적정하게 돈을 분배를 하였고, 초과수익으로는 간식거리를 사와서 먹었다.
나는 지금까지 노숙자가 하루 빌어먹고 사는 사람들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밥을 먹으면서 김두송 씨는 나의 사정을 그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고 모두가 한 목소리로 날 도와주겠다고 나섰다.
“그런 새끼는 쳐 죽여야 돼.”
“참 내. 세상 참 무섭구만?”
“어디 사는 새끼여? 내가 아작을 내줄게.”
그들은 진심으로 날 걱정해 주고 진심어린 말을 해 주었다.
저녁 식사가 끝나고 모임을 해산하기 전에 김두송 씨가 앞에 나서서 말을 했다.
“식사들 잘 했나?”
“예!!”
“음, 그럼 한 가지 말하고 끝내겠어.”
평소에 유머있고, 장난스러웠던 김두송 씨가 정색을 하며 말을 시작하자 주변이 차갑게 내려 앉았다.
나는 이런 분위기가 익숙하지 않아 조금은 멍 때리며 김두송 씨가 하는 일을 들었다.
“박선후의 원수인 전선기는 나와도 관계가 있다. 물론 본인은 아니지만 말이야. 지금부터 나눠줄 종이에 각자의 역할이 적혀 있으니 잘 확인하고 이행하길 바란다.”
“.......?”
갑자기 종이라니, 이해가 되질 않았다.
사전에 들은 이야기도 없고 난데없이 벌어지는 일에 어안이 벙벙해져서 낄 수가 없었다.
어느새 종이는 다 돌려졌지만, 나에게는 종이가 배분 되지 않았다.
그대로 집단은 해산이 되었고 나는 김두송 씨를 따라서 잘 곳에 자리를 잡았다.
여전히 내 자리는 자판기 옆의 구석진 공간이었다. 드러누우니 바닥이 차가워 박스를 4겹 바닥에 깔았다.
그제서야 한기가 올라오는게 없어졌다. 눕는 자리가 조금 편해지자 피로가 갑자기 확 밀려들어왔다.
이곳은 아침도 저녁도 시간의 개념이 존재하질 않았다. 활동할 때가 낮이고 잠잘 때가 밤이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일어나는 시간도 아침이었다. 나는 온몸이 욱씬거리는 고통을 느끼며 굼뱅이처럼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눈을 비비며 챙겨온 자료 종이쪼가리를 가지고 잠시 생각을 했다.
모든게 풀리는데 성훈이의 메시지는 도대체 파악을 하질 못하겠다.
내가 인상을 찌푸리며 끙끙거리고 있는데, 옆에서 누군가 툭 쳤다.
“뭐하냐?”
김두송 씨였다. 나는 어제 이후로 김두송 씨를 완전 다른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처음 봤을 때는 영락없는 노숙자였지만 지금 내눈에는 누더기를 걸쳤지만 마음만은 황금빛인 아름다운 혁명가의 모습이었다.
“잠시 사건에 대해.......”
“허, 그래서... 진전이 있나?”
“아뇨..... 계속 제자리걸음이네요. 도저히 떠오르지가 않아요.”
“넌 평소에 혼자 생각해서 안되면 어떻게하냐?”
“어떻게 하다뇨?”
살짝 웃으며 하는 그의 말이 신비하기 짝이 없었다.
나는 평소라면 그냥 지나칠 말이었겠지만 이미 김두송 씨는 나에게 거대한 존재였기 때문에 한번 더 생각할 수 있었다.
“그야... 좀 똑똑한 사람한테 물어보면 되는거 아닌가요?”
“그래, 그럼 넌 누구한테 물어보면 좋겠냐?”
“글쎄요.... 딱히 그럴 사람이...”
“아니, 기억나는 대로 말해봐.”
“음... 형님한테 물어보나요?”
“새끼, 내가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대체...?”
“따라와.”
나는 군말없이 그를 따라갔다. 그는 평소에도 항상 즐거워 보였지만 오늘은 특히나 즐거워 보이는 것 같았다.
나는 무슨일인가 싶어 그를 따라갔다. 목적지는 아무래도 지하철의 인적이 드문 화장실인 것 같았다.
화장실 문 앞에 도착하자 히죽거리던 김두송 씨가 나에게 들어가라는 손짓을 했다.
나는 정말 알 수 없었지만 오래 생각하지 않고 화장실로 들어갔다.
화장실로 들어오자마자 문이 쾅 닫혔다.
분명 문 소리가 엄청 크게 들렸을 테지만, 이상하게 내 귀에는 철문이 거칠게 닫히는 소리 따윈 들리지 않았다.
“읍...! 읍!!”
화장실 안에는 어떤 사람이 있었다. 손은 가지런히 뒤에 묶여있었고, 재갈이 물려져 있었다.
나는 그를 보자 약간은 미묘한 감정이 들었다.
형님이 옳았다.
나는 그의 입에 물린 재갈을 살살 빼줬다.
입이 열리자 마자 내 앞에 있던 놈은 격하게 반응하며 나에게 말했다.
“박.. 박 형사님! 살려주세요! 저 사람들이 절.......!”
“다물어 새끼야. 화장실이라서 울리잖아.”
나는 싸늘하게 그에게 말했다. 나의 말을 듣고 그도 분위기를 파악했는지 몸을 부들부들 떨면서 눈을 아래로 깔았다.
나는 갑작스런 이런 상황에 뭐부터 해야 할지 몰랐다. 하지만 일단 물어봐야 할 질문 정도는 알고 있었다.
“너... 이름이 뭐냐?”
“제 이름이요? 그야... 전..선기 인데요.......?”
-빠각
“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나는 발로 이 새끼의 대가리를 차버렸다.
한방에 코가 내려 앉아버렸고 내려앉은 코에선 코피가 격하게 흘렀다.
전선기는 비틀거리며 비명을 질러댔다. 나는 자세를 낮추고 다시 물었다.
“니 이름이 뭐라고?”
“아... 아... 전선기...”
-빠각
“우악!!”
나는 일부러 내려앉은 코를 겨냥해서 이번엔 주먹으로 직접 얼굴을 날렸다.
전선기는 매우 고통스러운지 양 손이 묶인채로 화장실 바닥에서 꿈틀거리고 있었다.
전선기는 하얀 셔츠를 입고 있었는데 그 셔츠가 화장실의 물때로 물들고 있었다.
한참을 비명 지르던 전선기의 목소리가 점차 줄어들었다. 나는 조용해질 때 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자세를 낮췄다.
“니 이름이 뭐야?”
“대.. 대체 제게 왜... 이러시는 거예요.......”
“왜 이러긴, 이름 좀 제대로 알려고 그러지... 이름이 뭐냐고?”
“또... 때릴 거...”
“한마디만 더 헛소리 지껄여 봐라. 니가 해야할 말은 그리 길지 않아. 정확하게 진실되게 3글자만 말하면 돼.”
“전... 선기...”
-빠각
“으아아악!!”
아픈 곳을 만질 수 없는 아픔이란 정말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전선기는 양 손이 묶여버려서 얼굴이 아무리 아파도.
코가 내려앉아도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비명을 지르는 수밖에 없다. 나는 한숨을 푹 쉬었다.
아무래도 이놈은 세뇌를 당한 것 같았다.
하기야 전선기로 변하기 전 시점에서도 정신적으로도 미숙했다니 그런 놈일 수록 더 쉽게 접근과 세뇌가 가능했을 것이다.
나는 질문을 좀 바꾸기로 했다.
“그래, 그럼 고시원이 불타던 날 뭘 하고 있었는지 말해봐.”
“.......”
전선기는 두려움이 가득 찬 얼굴로 나를 바라봤다. 두려움 때문에 입술이 쉽사리 열리지 않는 것 같았다.
나는 짜증을 느끼고 구석에 누워있는 그에게 다가갔다.
“입이 안열어져?”
“.......”
이미 전선기는 완벽한 공포에 사로잡힌 것 같았다. 나는 불쌍한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이미 내려앉은 코를 잡고 한껏 비틀었다. 여느 코와같은 느낌이 나질 않는 게 성형한 게 맞았다.
어쩐지 아까 처음 발을 날렸을 때 한방에 코가 내려앉은 게 이상하긴 이상했다.
내가 코를 비틀면 비틀수록 끔찍한 비명소리가 화장실을 울렸고, 피도 철철 나왔다.
나는 코를 놓아주고 이상한 느낌이 묻은 손가락을 전선기의 셔츠에 슥슥 닦았다. 묻은 피가 그의 옷에 묻어 나왔다.
“다시 물을게, 이번에도 대답 안하면 코를 그냥 뽑아버릴거야.”
“예..! 예....!!”
“니네 고시원 불타던 날 뭘 하고 있었냐고.”
이번엔 대답이 즉각적으로 나왔다. 아니, 내가 말을 마치기 전에 나왔다고 보는 게 옳을 것 같았다.
“저, 저는 그날 고시원에 가서... 카운터를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내려왔어요...”
“그래서?”
“불이 났대요... 2층에서... 저는 당장 119에 신고를 하고 저도 밖으로...”
“그리고?”
“불길이 잘... 안 잡혔어요... 결국 전소 당했고... 그리고 경찰서로 가서... 방화사건 진술을...”
“진술 내용 좀 다시 말해줄래?”
전선기가 진술 내용을 머리에 떠올렸는지 몸을 부르르 떨었다.
그의 눈동자에 박힌 두려움이 나의 눈까지 전해졌다. 하지만 나는 어느순간에 그걸 즐기고 있었다.
“말해. 빨리.”
“죄.. 죄송... 죄송..... 죄....”
전선기의 입이 너무 떨려서 말을 제대로 하질 못했다. 하지만 나는 그게 궁금한게 아니었다.
내가 이런 쓸데없는 질문을 계속 하는 건 얼마나 세뇌가 됐는지 알아보기 위해서이다.
분명 그날 고시원에 갔던 건 이 전선기가 아니라 다른 전선기이다.
하지만 이 정도로 두려움에 휩싸인 놈이 거짓말을 한다고 보긴 힘들고, 깊은 세뇌를 당한 것 같았다.
나는 더 이상 신문하질 않았다. 이미 이 전선기는 패닉 상태였다.
헛소리를 하기 시작했고 온몸을 끊임없이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이젠 이런 껍데기 놈은 필요가 없었다.
나는 화장실에서 나왔다. 형님이 화장실 문 앞에 있었다. 형님은 전선기의 상태를 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너도 참 정도라는게 없구만? 저 정도로 패면 어떡하냐?”
“형님과 제가 당한 수모에 비하면 한참 더 패야할 놈이죠.”
“쳇, 처리하려면 귀찮겠구만.”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정말 오랜만에 진심으로 허리를 굽혀 감사를 표했다.
형님은 고개를 숙인 나의 머리를 가볍게 톡톡 두드리곤 화장실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제 가 봐도 좋다는 손짓을 보냈다.
“후유.......”
약간 허무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나는 형사였고, 연쇄살인을 하고 누나를 납치했던 놈에게 내리는 최고의 복수는 법에 따라 그 새끼를 잡고 감방에 쳐 넣는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형사를 하고 있을 때도 법에 걸리는 방법이라면 생각조차 하질 않았다. 그 놈의 영장 한장 없다고 조사를 포기한 일도 한 두 번이 아니다.
형사를 그만둔 때에도 나는 계속 정도를 지키며 전선기에게 대항했다.
증거를 찾는다고, 정확한 증거를 찾아 잡겠노라고 했다. 하지만 그것도 옳은 방법이 아니었다.
옳은 것은 형님이다. 난 왜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하지 못했는지, 스스로가 한심해 보였다.
나는 구걸을 시작하기 위해서 나름 명당이라고 눈여겨본 곳에 가서 깡통을 놓고 앉았다.
모자도 푹 눌러썼으니 이 정도면 나름 훌륭한 거지 행색이다.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위이이이잉.
그때, 바지 주머니에서 진동이 느껴졌다. 어느 정도는 예상을 하고 있었다.
가짜 보스가 당하면 진짜 보스가 나타나는게 게임의 진리니까.
“여보세요.”
--여보세요? 여보세요?! 이 신발 새끼가!!“
“뭐야, 말이 거치네? 내가 뭘 했다고.”
--니가 납치한거 맞잖아? 강아지야. 빨리 안 돌려보내?
“어, 곧 있으면 갈 거다. 반 죽음이 되어서 말이야.”
--이 썩을 새끼.......!!!
나는 냉정할 수 있었다. 이 지겨운 술래잡기 놀이를 하면서 우위에 선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나는 이 기분을 충분히 만끽하고 싶었다. 곧 전화기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꽤 대담하오?
“뭐, 그렇지.”
--우리는 받은 만큼 돌려주는 사람들이라오.
“난 아직 받은 만큼 못 돌려 줘서 말이야.”
--꽤 많이 쫓아 온 것 같은데, 곧 댓가를.............. 뚝....
나는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한쪽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내 귀가 잘못들은게 아니라면 이 근처에 분명 이 새끼가 있다.
아니 정확히는, 지하철을 타려 하고 있다. 전화기 목소리에서 흘러나오던 안내방송 소리가 흐릿하긴 하지만 알아들을 수 있게 들렸다.
한참을 미친 듯이 뛴 나는 지하철을 타는 곳에 오자 주변을 삥 둘러봤다.
하지만 사람이 많은 지하철이라 찾기가 쉽질 않았다.
지하철이 도착했고 나는 입구에 몰리는 사람들을 살폈다. 하지만 역시 쉽지 않은 일이었다.
“.......?!”
그때 멀리에서 많이 본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그 얼굴이다.
방금까지 화장실에서 내가 묵사발을 만들어 놓기 전의 얼굴이었다.
나는 그쪽으로 달렸다. 빠르게 뛰자 사람들과 부딪히는 일은 어쩔 수 없었다.
“으악.”
“앗!”
“뭐야 신발!”
“어이구!”
미안하다는 말은 나중에 하겠노라고 충분히 속으로 되뇌이고 그에게 뛰어갔다. 그는 이미 지하철에 탔고 문은 닫히고 있었다.
“제길!!”
나는 이미 닫혀버린 문을 거칠게 두드렸다. 마음 같아선 유리를 부숴버리고 싶었다.
문득 안을 보니 전선기가 씨익 웃고 있었다. 나는 유리를 두드리는 걸 멈추고 그를 쏘아봤다.
전선기가 수첩을 꺼내고 뭔가를 적더니 나에게 비췄다.
-잘 지내.
나는 손톱을 물어 뜯었다. 반이 뜯겨버린 손톱에서 적지 않은 양의 피가 흘러내렸다.
나는 유리창에 글씨를 쓰고 미련없이 뒤를 돌았다.
-성기까.
다른 전선기가 잡혀온 이후로 나는 가지고 있던 모든 자료들을 없애버렸다.
물론 흔적이 남질 않도록 철저하게 불 질러 버렸다. 그 자료들의 결론은 이미 났다.
전선기는 2명이고 인격을 여러 개 가지고 있었다.
인격이 많다는 건 확신이 잘 가지 않던 가설이었지만, 마지막에 지하철에서 전선기 혼자 있었다는 점이 그걸 말해주고 있었다.
다른 전선기를 패버린 건 효과가 좀 있었던 것 같았다.
그 전선기를 패고 나서 돌려보낸 이후로 진짜 전선기는 실제적으로 활동을 할 수 없었다.
어차피 그 동네를 왔다 갔다 하려면 지하철을 타야되는데, 진짜 전선기가 그러고 다니기에는 위험성이 많이 따를 것이다.
“돈벌이는 잘 되나?”
지하철 한 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데, 형님이 나에게 왔다. 나는 게슴츠레한 눈을 벅벅 문지르며 그에게 말했다.
“이 역은 사람이 별로 없는데요... 잘 아시잖아요...”
“그거야 니가 하기 나름이지. 누가 아냐? 니가 조는 사이에 누군가 니 돈을 가져 갔을지...”
형님의 말에 나는 그럴 리가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나의 깡통을 흔들어봤다.
-찰랑찰랑.
“?!”
나는 잠이 확 깨며 깡통을 들여다보았다. 분명 깡통에선 찰랑거리는 소리 따위가 나면 안됐었다.
무려 3일동안 모아온 돈인데 철렁철렁 소리는 나야 했다. 나는 급하게 돈들을 손에 엎으며 돈을 세어 보았다.
하지만 돈을 세어봤자 의미는 없을 것 같았다. 확실히 돈의 양이 눈에 보일만큼 확 줄어 있었다.
이정도면 누가 내 돈을 꽉 찬 주먹으로 쥐어간 게 틀림없다.
“이런 신발! 어떤 새끼가 감히!”
이 돈을 어떻게 모아온 돈인가? 경찰 질을 할 때는 범인을 쫓으며 며칠을 잠복근무하고 범인한테 맞기도 하고 더러운 꼴도 많이 봤다.
하지만 이 돈은 거기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잠복이야 졸리면 교대로 자면 되고 범인에게 맞으면 나도 몇 배로 복수해 버리면 된다.
경찰은 확실히 범인의 우위인 만큼 복수할 수단이 많았다.
하지만 노숙자가 느끼는 서러움은 어느 직업보다 컸다.
가만히 있었는데도 밥 먹을 때가 되어 이동하려면 옷에 침이 덕지덕지 묻어있는 경우도 있었고, 괜히 젊은 놈들이 시비를 걸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괜히 덤볐다가는 다시는 이 자리에서 구걸을 하지 못한다.
나는 이 깡통의 단돈 백 원도 그 누구에게 양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욕하는 방법밖엔 없었다.
“아오! 신발! 만나기만 해봐 죽여 버릴 거야!”
“이, 이봐 왜그렇게 욕을 해?”
“제가 이 돈을 어떻게 모았는지 아십니까?!”
“미안해...!”
“형님이 왜 미안해요? 아 신발 새끼 잡히기만 해봐 디질 줄 알아.”
내가 한참 욕을 날리고 있는데 형님이 쭈뼛쭈볏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더니 깡통에 넣었다.
나는 무슨 일인가 싶어 가만히 보고 있었다.
-철렁
그래, 바로 이 소리다. 그 동안 모아왔던 내 집념과 통한이 담긴 소리는 바로 이것인 것이다.
근데 왜 지금 이런 소리가 나는가?
“흐, 흠..! 니가 자고 있길래 정신 좀 차리라고 장난 좀 친거야...! 너무 그러지 말아. 내 참 장난 한번 쳤다가 무안하긴 처음이네.”
“.......”
나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형님을 바라봤다.
형님은 아직도 무안한지 헛기침을 마구 해대며 쭈뼛쭈뼛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곤 내 등을 툭툭 두드리곤 다른데로 갔다.
생각해 보니 내가 그렇게 욕을 했는데, 이 자리에 그냥 있기는 무안할 것 같았다.
나도 덩달아 무안해져서 조심히 가라는 인사도 굳이 하지 않았다.
나는 잃어버린 집문서를 되찾은 양 깡통의 돈을 다시 세 보았다.
그 동안 구걸을 하면서 정말 수십 차례 돈을 샜던 것 같다.
조금씩 커지는 돈이 신기하기도 했고 나름 보람도 있었다.
“100원... 200원... 750원...”
동전 하나 하나가 마치 자식처럼 여겨졌다.
자기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다더니, 더러운 동전, 찌그러진 동전, 깨끗한 동전 모두가 소중했다.
“7480원.... 7580원.... 8080원....”
가만 생각해 보면 나름대로 수양을 온 기분이었다.
하루종일 이런 차림으로 앉아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보자면 수만 가지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도 저 사람들 중 하나였는데 인생은 모르는 것이다.
저 사람들은 앞일을 위해서 살지만 우리들은 단지 지금을 위해서 살고 있었다.
“15600원... 16600원... 17600원... 우와 끝...!”
3일동안 모은 돈은 무려 17600원이나 됐다. 일당 5800원 정도 될 것이다.
물론 작은 돈이겠지만 어찌 보면 작은 돈도 아니다.
적어도 지금 땀을 뻘뻘흘리며 부대에서 제초를 하고 있는 군인들 보다는 훨씬 많이 벌었다.
나는 구걸을 접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깡통을 들고 지하철 내의 보관함으로 갔다.
“음....... 27번...”
나는 27번 보관함에 깡통을 넣었다. 꽤 무게가 있는 게 흐뭇하기 그지 업었다.
“아참...”
나는 다시 사물함을 열고 깡통에서 500원짜리 3개와 100원짜리 5개를 꺼내고 다시 열쇠로 보관함을 잠갔다.
그리고 담배를 사려고 모자를 푹 눌러쓰고 주변의 편의점으로 갔다.
모자를 눌러쓰는 건 다른 사람들에 대한 배려다.
보통은 꾀죄죄한 내 얼굴을 보면 어제 아침 먹은 것 까지 토해낼지도 모른다.
그리고 편의점에 갈 때는 항상 다른 편의점으로 간다. 맨날 가면 언젠간 욕을 먹기 일쑤였다.
-툭.
한참 가는 길인데 누군가와 어깨가 부딪혔다. 슬쩍 모자챙을 들어 얼굴을 보니 남자와 여자 한 커플이었다.
“어이고... 죄송합니다~”
“아 뭐야 신발, 재수없게?”
“죄송합니다~”
“죄송하면 다야? 아 신발 진짜... 재수가 없을 라니까...”
“오빠, 그냥 가자~
“.......”
나는 조용히 있었다. 여자가 말려준다면 훨씬 매끄럽게 이런 상황을 벗어날 수 있었다.
나는 마치 죄인처럼 앞으로 가지런하게 손을 모아 쥐고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다.
“신발 새끼. 넌 내 여자친구 아니었으면 뒤졌어... 가자.”
“응! 오빠 어디로 갈거야?”
세상 살면서 어깨를 얼마나 부딪쳐 봤을까?
분명 내가 경찰이었던 시절에도 조금 사람이 많은 지하철에선 하루에 몇 차례나 어깨를 부딪쳐 봤다.
하지만 그때는 그냥 지나가거나, 상대편에서 먼저 고개를 까딱거려 사과를 하는 등, 크게 마찰이 있는 경우는 없었다.
문득 내 행색을 슥 훑어보았다.
무릎이 너덜너덜한 청바지에, 여기저기 헤진 겉옷에 목이 쭈욱 늘어난 반팔이었다.
모자의 챙엔 손때가 얼룩덜룩 묻어있었다. 이 옷을 입은 후론 어깨를 부딪친 다음에 시비를 걸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혹 그냥 지나치더라도 그의 표정을 보면 마치 똥이 부딪친 표정이었다.
나는 고개를 돌려 나와 방금 부딪혔던 청년을 바라봤다. 흔치 않는 보라색 머리였다.
난 다시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출구로 나와서 앞의 편의점으로 들어갔다.
“디스 한 갑이요.”
“2000원입니다.”
“.......?”
가격을 말하는 목소리가 왠지 귀에 익었다.
나는 상대가 놀라지 않게 조심스럽게 모자챙을 들었다. 그리고 그녀를 슬쩍 보고 다시 모자챙을 급하게 내렸다.
약간 떨리는 손으로 주머니에서 아까 챙겨온 동전들을 꺼내 카운터 책상위에 올려놓고 편의점을 나왔다.
그때, 뒤에서 그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오빠! 오빠 맞지? 그 동안 어디... 오빠! 오빠!”
나는 역 입구로 뛰어 들어갔다. 익숙한 목소리가 점점 흐릿해지며 내 귀를 울렸다.
사실 목소리를 들었을 때부터 누군지 알고 있었다. 최한은. 한은이다.
편의점 알바를 하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여기인지는 몰랐다. 알았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다.
이미 한은이는 전선기 놈의 타깃이 된 적 있다. 나의 선택이 까딱 잘못 됐다가는 한은이의 목숨이 위태로웠을 것이다.
물론 전선기가 한은이는 건드리지 않겠다고 약속은 했지만 그걸 곧이곧대로 믿을 순 없었다.
내가 가지고 있는 건 모든지 부셔버리는 악독한 놈이다.
지금 내가 누구와 가까이 했다간 어떻게 될지 나도 장담하지 못했다. 지금은 서로를 찾아 죽이려고 하는 입장이니까.
“후우.......”
이번 담배연기는 참 많은 게 들어있다. 담배를 피우는 건 시름을 뱉어낸다는 말이 있다.
누가 그랬는지 정말 명언이라고 느껴졌다. 하얀 담배연기가 나의 썩은 속 훑어서 치유를 해주는 느낌이다.
이래서 내가 담배를 못 끊지.
-딱
“우앗!”
한참 폼을 잡으며 담배를 피우는데, 누군가가 내 뒤통수를 맛있게 때렸다.
아프진 않지만 기분이 썩 좋진 않아서 눈을 흘기며 뒤를 돌아봤다.
“어떤 새........ 뭐야?”
누군지 보니 칠복이 아저씨였다. 정확한 이름은 성칠복. 흔하지 않은 성씨인데 흔하지 않은 이름이었다.
칠복이 아저씨는 실실 웃으며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허, 어린놈의 새끼가 반말을?”
“거지는 나이가 없다며! 누가 그랬더라?”
“새끼 이상한 것만 기억하기는...”
노숙자들 중에선 물론 내가 가장 막내다.
30대도 한 두명 있을까 말까하고 거의 40대 이상이 대부분 이었다.
겉으론 다 거칠 것 같은 사람들 이지만 막상 만나보면 이렇게 푸근한 사람들도 없었다.
“담배 좀 끊어라! 새끼, 담배 4갑이면 10끼를 해치울 수 있어.”
“신경 쓰지 마, 어차피 하루에 1개 밖에 안 펴. 이런 즐거움을 없애버릴 참이야?”
“이 새끼가? 공금 횡령해서 피는 주제에?”
“쳇...”
맞는 말이라 할말이 없었다. 우리들은 모아온 돈을 합쳐서 서로 알맞게 배분을 한다.
엄밀하게 보면 공산당하고 비슷하지만 한끼 먹기도 벅찬 우리들에게는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이다.
이러지 않으면 밥을 못 먹는 사람이 생기기 때문이었다.
한참 한은이 때문에 꿀꿀하던 참이었는데, 칠복이 아저씨 때문에 기분이 많이 나아졌다.
인상만 찌푸리고 있었는데, 어느새 내 입 꼬리가 얼굴을 찢어버릴 기세였다.
나는 조금 더 칠복이 아저씨와 티격태격하다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어? 어디 가려구?”
“응, 목표치도 어느 정도 달성했는데, 할일은 해야지.”
“할일? 그 이상한 새끼 잡는다는 거?”
“이상한 새끼라니... 그렇게 말하니깐 좀 우습군. 하여튼 그래. 그렇다고 해두지.”
“우리한테 도와달라고 하면 쉽게 마무리 될 텐데 왜 굳이 혼자 하는 거냐?”
“그냥. 민폐 끼치기 싫어서. 갈게!”
나는 다 핀 담배를 손가락으로 툭툭 털고 구석을 향해 던졌다.
그러면서도 혹시나 주변에 경찰이 있나 눈치를 봤다.
이런 내 모습을 보고 칠복이 아저씨가 피식 웃고 있었다. 나는 그에게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하고 길을 나섰다.
물론 노숙자들에게 도와달라고 하면 일은 쉽게 끝날 것이다.
하지만 내가 지금까지 당해온걸 보면 전선기도 만만치 않은 인간이었다.
까딱하면 노숙자들이 다칠 수 있었다. 아니, 분명 2명 이상은 죽거나 다칠 것이다.
나는 더 이상 그런 걸 원하지 않았다. 안 그래도 저번에 다른 전선기를 패는 과정에서 형님이 개입된 게 조금 불안하던 참이었다.
“오랜만에 오려니 적응이 안되네.”
나는 전선기의 집에 와 있다. 내가 맡은 지하철 구역에서 전선기의 집과의 거리는 그렇게 멀지 않은 거리다.
정체를 조금이라도 더 숨기기 위해서 모자를 더 눌러 썼다. 언제 뒤에서 벽돌이 날아올지 모르니 항상 조심해야 한다.
그래도 혹시나 해서 적당한 바가지를 하나 구해서 자리를 잡고 구걸을 시작했다.
물론 그냥 구걸이 아니라 주변을 꼼꼼히 살피면서 했다.
맨 시멘트 바닥에 자리를 잡아서 그런지 10분도 앉아있지 않았는데 엉덩이가 간질간질 아파왔다.
마침 주변에 스티로폼이 하나 떨어져 있어서 적당히 깔고 앉았다.
자리가 편안해서 그런지 잠이 왔지만 필사적으로 버티며 주변을 살폈다.
얼마나 지났는지 모르겠다. 어느새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었고 나는 조금더 긴장을 했다.
이 시간이라면 곧 전선기가 돌아올 시간이었다.
“.......!”
곧 전선기가 나타났다. 코는 치료를 받고 보호대를 착용하고 있었다.
하기야, 그렇게 내려 앉아 버렸으니 저렇게 되지 않는다면 그게 신기한 것이다.
나는 살짝 웃음이 나오려는 걸 참고 그의 행동을 주시했다.
나도 파악하는데 한참이 걸렸지만 형님이 말해 준 것이 있다.
언젠가 진짜 전선기랑, 다른 전선기랑 어떻게 구별을 하느냐고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 다른 전선기 걸음이 약간 팔자걸음 이라고 했다.
처음엔 구별을 못했지만 몇 번 보니 알 것 같았다.
이놈은 진짜가 아니다. 진짜도 아닌 놈을 굳이 몰아붙일 필요는 없었다.
다른 전선기는 그대로 아파트로 진입했고 나의 할 일도 이걸로 끝이었다.
저번에 마지막으로 지하철에서 본 이후론 진짜는 지하철에 나타나지 않았다.
“헛탕이 일상이구만.......”
맨날 허탕치고 돌아가니 허무할 따름이었다. 문득 바가지을 보니 그래도 2300원은 번 것 같았다.
나는 동전소리를 찰랑찰랑 내며 밥 먹는 곳으로 갔다. 어두워서 그런지 주변 시선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밤에 사람만 많다면 구걸을 밤에만 하고 싶을 정도다. 장소에 도착하니 이미 꽤 많은 사람들이 와있었다.
그들 중 칠복이 아저씨가 들뜬 목소리로 날 불렀다.
“어이 선후, 여기야.”
“예~”
나는 손을 살짝 들어 인사를 하고 먼저 형님에게 갔다. 형님은 좀 피곤한지 눈이 반쯤 감겨있는 상태였다.
나는 방금 벌어온 2300원을 형님에게 가져다주었다.
“2만원 채우면 가져오라니까.”
“아, 이건 따로 번거에요. 보관함으로 가기도 귀찮아서 왔어요.”
“그래? 알았다. 받아라.”
형님이 바가지 속의 돈을 큰 주머니에 담고 나에게 오늘 저녁밥을 주었다. 오늘은 무려 삼각김밥이 2개다.
“오, 요즘 벌이가 좋나보죠?”
“여름이라 그런가? 그늘이라도 찾아서 지하철로 오나봐. 그나저나, 일은 잘 되가냐?”
“음... 아뇨 별로 진전이 없네요. 이거 확 다시 잡아와서 까버릴까 보다!”
“꼬리가 길면 잡혀. 서두르지 말고 해.”
“물론입니다~”
“아, 그리고 밥 먹고 나 좀 봐.”
“예? 뭔일 인데요?”
“와보면 알아. 마음 단단히 먹고 와라.”
“에이... 이래선 찝찝해서 밥도 안넘어 간다구요.”
나는 삼각 김밥을 받아들고 칠복이 아저씨가 있는 무리로 건너왔다.
뭔가 찝찝함이 있긴 했지만 해맑게 웃고 있는 칠복이 아저씨를 보니 웃음부터 튀어나왔다.
“어이 어린놈. 오늘은 뭔 사건 없냐?”
“제가 무슨 트러블 메이커에요? 없어요. 없어.”
“재미없는 놈이 됐군. 딴데가서 먹어라.”
“뭐요?!”
“하하핫! 농담이야!”
나도 덩달아 웃으며 삼각 김밥을 뜯어서 먹었다. 시끌벅적한 식사시간이 끝나고 모두들 돌아간 후에 나는 형님에게 갔다.
형님이 꽤 심각한 표정으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무슨 일인데요?”
“따라와 봐.”
나는 일부러 대범한척 하며 형님을 따라갔다. 설마 이번에도 전선기가 있는 건가 싶었지만 그럴 리가 없었다.
도착한 곳은 벤치가 많은 공원이었다. 시간이 시간이라서 사람도 없고 가로등만 주변을 밝히고 있었다.
그 중에 몸을 외투로 가린 한 사람이 멀리있는 벤치에 있었다.
“가봐.”
“누군데요?”
“가보면 알아.”
“형님은 안가요?”
“난 안가. 가면 할 이야기가 많을 테니.”
“.......?”
나는 의문을 느끼고 그 사람에게 천천히 걸어갔다.
“누구슈.......?”
나는 누군지 무척 궁금했지만 일부러 무심한척 뒤통수를 긁으며 앉아있는 사람을 내려다보았다.
앉아있던 사람은 내가 온 걸 이제 알았는지 움찔 하더니, 머리까지 쓰고 있던 외투를 스르르 내렸다.
“...서주희?!”
나는 서주희를 보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무슨 이런 타이밍에 등장을 한단 말인가?
나는 황당함과 당황이 겹쳐 제대로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
나는 힘들게 정신을 추스르고 그녀를 자세히 보았다. 그녀의 꼴은 말이 아니었다.
머리는 정리가 안 되어 산발이었고 왼쪽 눈은 누구한테 얻어맞았는지 시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
그냥 시퍼런 게 아니고 시꺼멓게 눈이 퉁퉁 부어있었다. 어찌나 부었는지 눈이 감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았다.
아슬아슬하게 머리칼로 가린 이마는 콘크리트 바닥에 쓸렸는지 딱지가 커다랗게 앉아 있었다.
“박 형사님.......”
서주희는 나를 보자마자 울음을 터뜨렸다.
얼굴의 나머지 부분에도 자잘하게 상처가 있고 멍이 들어 있어서 눈물을 닦으면서도 고통이 오는지 제대로 닦질 못했다.
나는 그녀의 옆에 앉아 그녀의 어깨를 잡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지금은 달래는 게 우선 인 것 같았다.
무슨 일인지 객관적으로 듣기 위해서는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중요했다.
“진정해라... 어디서 무슨일을 당했는지 모르겠다만........”
“.......”
아무래도 당분간은 울음이 계속될 것 같았다. 나는 손을 거두고 그냥 진정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좀 생각을 해보니 나는 시간도 많은 사람이었다. 괜히 급하게 마음먹을 필요는 없었다.
한참을 혼자 훌쩍이던 서주희의 호흡이 점점 안정이 되어갔다.
진정이 되었을 때,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서주희였다.
“죄... 죄송해요...”
“뭐가?”
“이렇게 나타나서...”
“그게 뭐가 미안하냐?”
“.......”
말은 이렇게 해주었지만 답답한 상황이 되어버렸다.
난 서주희가 그래도 생각이 있다면 내가 가지고 있던 현금을 들고 다른 곳으로 가길 바랬었다.
물론 이것도 내가 확신한 건 아니었지만 차라리 그렇게 되는 게 마음 편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나타나다니... 이 아무것도 해본 적 없는 부잣집 미대생을 어떻게 할지가 걱정이었다.
“다른 건 필요 없고... 이야기나 들어보자. 어떻게 된 일이야?”
“선... 선기 오빠를... 만났어요.”
“?!”
이건 꽤나 귀가 솔깃한 이야기가 될 것 같았다.
만약 누군가가 내가 방금 생각한 것을 본다면, 신세 가엾은 여자를 앞에 두고 무슨 생각을 하냐고 신랄하게 비판했겠지만, 난 지금 서주희가 어떤 일을 당했느냐 보다는 전선기가 어떤 행동을 했느냐가 더 알고 싶었다.
나는 침을 꿀꺽 삼키며 서주희의 말을 기다렸다.
아직도 훌쩍거리는 게 남아있어서 기다리는 게 짜증날 지경이었지만 정신 수양하는 자세로 마음을 가다듬었다.
“고시원에 불이 났던 날에... 저는 방을 빠져나와서... 다른 사람의 눈에 띄지 않으려고 골목으로 달렸어요... 근데 가는 길목에 선기 오빠가 있어서... 반가운 마음에 달려갔는데... 보자마자 뺨을 맞고...”
나는 그 이상의 이야기는 차마 듣기 힘든 구타와 폭행의 이야기였다.
순수하게 맞는 이야기만 들어서 동정심이 생기는 게 처음일 정도로 서주희는 전선기의 집에 갇혀서 수 없이 많은 구타를 당했다.
“그럼 어떻게 탈출하게 된 거야?”
“언제 한번 선기 오빠가 크게 다쳐서 들어왔는데... 그때...”
아무래도 전선기는 서주희에게 2명의 모습을 모두 보여준 것 같진 않았다.
아마 이때도 계속 차례를 달리하며 서주희에게 자신의 모습을 보여줬을 것이다.
계속해서 전선기를 추격하며 느낀 건데, 이놈은 생각보다 완벽주의자였다. 아마도 결벽도 심할 것 같았다.
문득 궁금한 게 생겼다.
“서주희 너는...”
“네...?”
“아직도 전선기를 사랑하냐?”
“.......”
그녀는 의외의 질문이었는지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리고 내 시선에서 눈을 떼고 땅을 잠시 바라보더니 스스로도 웃긴지 피식 웃으며 말을 이었다.
“네.......”
“미친년.”
“하.. 하지만...! 분명 뭔가 있을 거예요! 정신적으로 뭔가 충격을 받았다거나! 누구에게 협박 같은 걸 당해서...!”
나는 더 이상 듣기 싫어서 손을 저으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건 미친 게 맞다.
나는 답답하고 짜증이 치밀어 고함을 질렀다.
“야 이 미친년아. 니 얼굴이 보이냐? 니 꼴을 한번이라도 봐봤어? 니가 아까 나한테 말했었지? 몇날 며칠을 어떻게 쳐 맞고 살았었는지 내가 다시 한번 너한테 말해줘? 니 얼굴만 해도 그 정도 인데 몸은 얼마나 10이 났을지 지금 안 봐도 뻔해. 아니면, 지금 홀랑 벗겨서 전신거울이라도 가져다줄까?”
내가 면전 앞에서 고함을 지르자, 서주희는 적지 않게 충격을 받았는지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하지만 나는 그딴 건 눈에 보이지 않았다. 여자의 최대 무기가 눈물이라고 했던가? 하지만 내 눈에는 눈물 따위 보이질 않았다.
그저 내 앞에 있는 답답한 인간을 욕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나는 그치지 않고 소리를 지르듯 말했다.
“정신 차려 이 화상아. 니가 무슨 종교를 믿냐? 선기교야? 신발, 내 기분이 성기같네. 너 나한테 왜왔냐? 그렇게 좋으면 지금 당장 꺼져서 다시 그 새끼한테 쳐 맞으면서 살아. 그러면 되겠네. 탈출은 왜했어? 신발, 니가 좋아하는, 사랑하는 전선기잖아? 그럼 그냥 쳐 맞으면서 살아! 왜? 사랑하니까! 어우, 신발.”
나는 이 답답함의 응어리를 풀어 헤치듯이 욕을 질렀다. 이제야 내 속이 조금 풀리는 것 같았다.
내 앞에선 서주희가 하염없이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지만, 그녀가 눈물을 흘리는 만큼 내 속도 후련해지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내가 좀 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조금 냉정해지자, 좀 과했다는 생각이 없지 않아 들었다.
나는 하루에 한 개피만 피운다는 철칙을 깨고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담배를 물자마자 콧속을 더듬는 담배의 아릿한 향이 나의 정신을 깨웠다.
-칙... 칙... 칙... 화륵!
라이터로 담배의 불을 붙이고 문득 라이터를 보니 가스가 얼마 남지 않았다.
요즘에 불이 잘 붙지 않는다 싶더니 역시나 였다.
라이터는 300원이나 하지만, 얼마든지 구할 수 있어서 그렇게 짜증나는 일은 아니었지만 역시 귀찮은 일이었다.
나는 가로등에 라이터의 몸속을 이리저리 비추며 첫 번째 연기를 뱉어 냈다.
“후우.......”
나는 뭔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리고 담배를 한대를 더 꺼내어 그녀에게 건냈다.
“한대 할래?”
“.......”
서주희는 말없이 내가 건낸 담배를 입에 물었다.
나는 가지고 놀던 라이터를 그녀가 물고 있는 담배에 가져다 대고 불을 붙였다.
-칙... 화륵!
그녀는 처음과는 다르게 담배를 피웠다. 기침도 하지 않았고 얕게 빨아들이긴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능숙해진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너무 안돼 보여서 담배를 주긴 했지만 아까운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야, 담배값 100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