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 (32화)

윙윙2013.05.26
조회1,533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1화 ; http://pann.nate.com/b318390630

룸메이트 11화 ; http://pann.nate.com/b318393961

룸메이트 21화 ; http://pann.nate.com/b318396686

 

 

 

 

 

총성은 두발이 울렸다. 한 발은 어두운 밤하늘을 날고 있을 것이고 나머지 한 발은 내 오른쪽 팔에 파고들었다.

 

 

마치 나무 배트로 맞는 듯 몸이 뒤로 심하게 젖혀졌다. 나는 그 힘을 거스르지 않고 힘의 진행방향으로 몸을 맡겼다.

 

 

순간적인 충격에 쥐고 있던 권총을 놓칠 뻔 했지만, 고통을 이겨내고 꾹 쥐었다.

 

 

곧 내 몸이 난간 뒤로 미끄러지는 게 느껴졌고, 나는 눈을 스르르 감았다. 눈을 감자 한은이와 이 반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꺄악!! 오빠!!”


“오대수 이 새끼야! 뭐하는 짓이야!”



나도 그 대화에 끼고 싶었지만 지금 나에겐 떨어지는 시간밖에 주어지지 않았다. 나는 욱신거리는 팔의 고통을 안고 몸에 힘을 쭉 뺐다.

 

 

떨어지는 시간은 그렇게 길 수 없었다. 마치 몇 분 동안 공중에 매달려 있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그 기분을 만끽하려던 찰나에, 차가운 물이 온몸을 적셨다. 여름이라 물의 온도가 미지근할 줄 알았는데, 막상 빠지고 나니 그렇지만도 않았다.

 

 

게다가 비가 내린지 얼마 되지 않아서, 물살의 세기도 만만치 않았다.



“헉... 헉...!”



나는 호흡을 할 수 있도록 입을 위로 내놓고 다리를 열심히 저어서 최대한 빨리 도망치고자 노력했다.

 

 

지금은 날이 어두워 나를 금방 발견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곧 한강 지부의 실종 대응팀이 출동할 것이다.

 

 

그 사이에 최대한 멀리 달아날 필요가 있었다. 그렇다고 언제까지 물속에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총을 맞은 부위의 출혈은 계속 되고 있어서 얼른 지혈을 하지 않으면 위험한 상황에 빠질 수도 있다.

 

 

온몸의 힘이 생각보다 빠르게 빠져나가는 게 느껴졌다. 강물의 온도도 점차 추워지고 있었다.

 

 

나는 조금씩 물가 쪽으로 흘러가도록 유도를 한 뒤에 적당한 모래 위에 겨우 올라설 수 있었다.



“이게 무슨 꼴이람...”



어두운 저녁임에도 팔에서 검붉은 피가 솟는 것이 보였다. 마치 샘물이 나오는 것처럼 끊임이 없었다. 생각보다는 심각해 보였다.

 

 

하지만 내심 오대수놈에게 고마운 생각이 들었다. 물론 오대수의 의지는 아니었지만, 경찰은 범인이 즉사할 부위에 총을 겨누지 않는다.

 

 

일단은 오대수의 사격 솜씨에 감사를 해야 했다. 하지만 이대로 있다간 말라죽기 십상이었다. 나는 일단 셔츠를 입으로 물어 찢어냈다.



-지이익.



셔츠가 명품이라 그런지 찢어지는 소리도 꽤나 부드러운 것 같았다. 나는 조금은 아까움을 느꼈지만, 더 생각하지 않고 총 맞은 부위를 꽉 묶었다.



“......”



매듭을 조일수록 극심한 고통이 팔을 쑤셔댔다. 마치 커다란 각목을 억지로 팔 근육사이에 끼우는 느낌이 들었다.

 

 

소리는 지를 수 없었지만 이빨이 뭉개질 정도로 이를 악물었다.



“후유...!”



응급처치를 끝내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아직 묶은 셔츠에서 피가 배어 나오고 있었지만, 아까처럼 많은 양은 아니다.

 

 

나는 그제야 주변을 둘러볼 여유가 생겼다. 풀들이 무성하게 자라있었고, 풀벌레 소리와 개구리 소리만 들릴 뿐, 이 풍경에서 어색한 그림은 나뿐이었다.

 

 

나는 안도감을 느끼며 풀숲을 헤쳐서 포장이 엉망인 도로에 나왔다. 차가 많은 건 아니지만, 가끔씩 택시 한두 대는 지나다니고 있었다.

 

 

주머니를 확인해 보니 축축하게 젖은 지갑과 형식이가 준 핸드폰이 나왔다.



“젠장... 이제 못쓰겠네...”



혹시나 하는 바람 때문에 전원을 켜볼까 생각을 해봤지만, 추적을 당할 여지도 있고 핸드폰은 물에 빠뜨리고 바로 켜면 안 된다는 게 떠올랐다.

 

 

나는 핸드폰은 일단 다시 주머니에 넣어두고 지갑의 상태를 살폈다. 안에 있는 돈까지 축축하게 젖어버렸지만 다행히 카드가 있었다.

 

 

민창수의 집에서 가지고 나왔던 현금을 이 카드에 일단 다 넣어 두었다.



“미안해요 형. 나중에 다시 채워 넣을게요.”



이 돈은 희원이를 위해서만 쓰기로 했기 때문에 양심의 가책이 느껴졌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민창수에게 용서를 빌고 택시를 잡았다. 내 꼴을 본 택시 몇 대가 무시하고 지나쳤지만 겨우겨우 한 대를 잡을 수 있었다.

 

 

나는 다친 어깨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 앞좌석에 올라탔다. 택시 기사는 인상이 좋은 50대 남자였다.



“GG은행으로 가주세요.”


“네~”



차의 엔진소리가 이렇게 기분이 좋은지 처음 알았다. 마치 수면제 같아서 끔뻑 잠들 뻔 했지만 정신력으로 버텼다.

 

 

아마도 오른팔의 출혈 때문일 것이다. 차 내부는 열대야 현상 때문인지 에어컨이 틀어져 있었다.

 

 

에어컨 온도를 힐끗 보니 그렇게 낮게 설정되어 있지는 않았지만 자그만 바람에도 팔에 얼음을 쏟아붓는 한기가 느껴졌다.

 

 

나는 택시 기사에게 말했다.



“좀 추워서 그런데, 에어컨 좀 꺼도 될까요?”


“예, 그렇게 하시죠.”



택시 기사는 미소를 지으며 에어컨을 껐다. 그리고 사람좋은 인상을 쓰며 나에게 물었다.



“어쩌다 물에 빠지셨어요? 양복도 입은 점잖은 양반이.”


“음... 평소 강을 보는 걸 좋아해서 조금 피곤한 상태로 보다가 졸아버렸어요.”


“이그... 조심좀 하시지...”



차가운 바람이 나오지 않자 조금씩 체온이 올라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몸의 감각이 살아나자, 오른팔에 피가 흐르는 게 느껴졌다.

 

 

피가 아직 시트에 떨어진 건 아니었지만, 곧 떨어지고 말것이다.

 

 

그러면 언젠가는 택시기사가 이것을 눈치 챌 것이고 경찰에 신고하면 내가 내린 장소를 기점으로 수색이 진행 된다.

 

 

나는 코를 훌쩍이기 시작했다.



“훌쩍... 훌쩍...”


“감기 걸리셨어요? 휴지 드릴까?”


“예, 감사합니다.”



택시기사는 운전석 방향의 문에 붙은 주머니에서 휴지를 꺼내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약간의 휴지를 코에 가져다 대고 푸는 척을 했다.



“킁!”



그리고 나머지 휴지는 택시기사가 눈치 채지 못하게 피가 흘러나오는 걸 닦은 뒤, 더 흐르지 못하게 막았다.

 

 

양복 외투 밖으로 피가 배어나올 정도였다.

 

 

막상 눈으로 상태를 확인하자, 현기증이 나는 것 처럼 눈앞이 아찔해지기 시작했다. 그때, 고맙게도 택시기사가 말을 걸어 주었다.



“쓰레기는 조수석 앞 서랍에 넣으세요.”


“아닙니다. 폐를 끼칠 순없죠. 누가 남의 콧물을 치우고 싶겠어요? 제가 버리겠습니다.”


“그거 참, 흔치않은 젊은이구만?”



택시 기사는 흡족한 듯 허허 웃었고, 덕분에 나는 조금은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렇게 이 눈치 저 눈치 다 봐가며 결국 GG은행에 도착할 수 있었다. 나는 카드로 결제를 하고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게 택시에서 내렸다.

 

 

내가 내리자, 택시기사는 조수석 창문을 열고 나에게 기분좋게 말했다.



“조심히 들어가세요. 거, 내 사위로 삼으면 참 좋을 것 같은데 말이야.”


“감사합니다. 안전 운전 하세요.”


“예~”



택시는 흥겹게 자리를 떠났고, 나는 긴장이 풀려버린 탓인지 무릎이 꺾이고 말았다. 나는 비틀거리며 원룸을 향해서 천천히 걸었다.

 

 

휴지도 피에 다 젖어버렸는지, 다시 피가 손목 아래로 흘러나오고 있었다. 나는 주변에 사람이 없음을 보고 아예 외투를 벗어 팔을 감싸 버렸다.

 

 

결국 원룸에 도착하고 나는 겨우겨우 문을 두드렸다. 중력이 이렇게 강력한지, 난생 처음 느껴보았다.

 

 

결국 나는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바닥에 무너져 내렸다. 흐려져 가는 정신에 어렴풋이 서주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누구세...? ....! 형사님! 형사님 형사......”



서주희가 어떻게 말을 끝맺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았다. 기분 좋게 자고 있는데 너무 밝아 인상을 찌푸리며 눈을 뜨고 말았다.

 

 

어제 있었던 일들이 마치 꿈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팔의 통증이 현실을 말해주고 있었다.

 

 

잠깐 움직였을 뿐인데 통증은 내 팔안에서 미친 듯이 날뛰었다.



“으윽...!”


“일어났냐?”


“형님...?”



눈앞에 형님이 걱정스러운 눈을 하고는 날 바라보고 있었다. 그 옆에는 칠복이 아저씨도 함께였다.



“새끼, 깝치고 다닐 때부터 알아봤어. 어때 팔은 괜찮아?”


“아저씨는 어쩐 일로...”


“어쩐 일이라니, 내가 니 팔 고쳐줬는데...”


“예...?”



고개만 돌려 팔을 내려다보니 팔은 깨끗한 붕대로 잘 감겨 있었다.

 

 

팔을 슬쩍 움직여보니 고통은 여전했지만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여드름 알맹이를 짜낸 기분이랄까.



“어떻게... 의사에요?”


“의사긴 의사지. 수의사.”


“수의사가 어떻게 총상을...”


“시골에서 수의사 하다보면 총상을 입은 동물들을 치료하는 경우가 가끔 있거든. 사람은 처음이긴 하지만 어떻게 잘 된것 같다. 흉터는 남을 거고... 이거 받아라.”



칠복이 아저씨가 작은 쇳덩어리를 건네주었다.



“이게 뭔가요?”


“니 팔에서 나온 총알.”


“......”



총알은 손상은 거의 없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었다. 나는 미묘한 감정을 느끼며 내 손바닥에 놓인 총알을 바라보았다.

 

 

잠시 총알의 자태에 넋이 나가있는데, 불현듯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그러고 보니 희원이는?! 이런 모습을 보이면...!”


“걱정 마세요. 지금 시간이 새벽 4시에요.”



서주희가 가리키는 방향을 보니 희원이가 안대를 쓰고 자고 있었다.

 

 

나는 안대를 보고 저게 뭐냐며 불만을 표시했지만, 희원이가 한번 써보고 안대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고 한다.

 

 

이젠 안대 없으면 잠을 못 잔단다. 희원이의 존재를 눈치 채고 나의 목소리는 속삭이듯 변했다. 나는 문득 궁금한게 생겨서 서주희에게 물었다.



“내가... 현관 앞에서 쓰러졌던가?”


“네. 정말 깜짝 놀랐어요. 피를 그렇게 흘리고 오다니... 외투가 거의 보라색으로 변했을 정도였어요.”


“그래...”


“어떻게 된 일이에요?”



나는 한숨을 내쉬며 있었던 일을 말해주었다.

 

 

한은이를 만나러 지하철에 갔던 일, 다리까지 몰려서 총에 맞고 강물에 빠졌던 일, 피를 겨우겨우 지혈하며 택시를 탔던 일까지.

 

 

내 말을 듣고 형님을 비롯한 두 사람은 입을 다물지 못했다. 특히 어느 정도 의학에 지식이 있던 칠복이 아저씨는 어이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어이없을 정도로 생명력이 질긴 놈이군. 웬만한 사람이면 이 정도 출혈을 했으면 이미 쇼크 맞아 죽었을 거야.”


“그래도 뭐, 살아있으니...”


“철없는 소리 마라. 거울 한번 볼래? 너 지금 완전 뱀파이어야.”


“아... 그건 됐습니다.”



하얗게 질린 내 모습을 보면 더 충격이 클 것 같아서 나는 거절했다. 그 모습을 보고 형님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아직 죽을 때는 안 된 모양이구만... 잘 먹고 빨리 회복해라. 또 쓸데없이 돌아다니지 말고...”


“음...”


“대답안해?”


“형님, 아직은 대답을 할 수 없어요. 일단 내일 오전부터 약속이 있거든요.”


“약속? 공개 수배중인 놈이 무슨 약속?”


“데이트 나가야 되니까 너무 뭐라 하지 마세요.”



농담스러운 내 말투에 형님이 내 뒷통수를 가볍게 툭 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형님이 일어서자 칠복이 아저씨도 따라서 일어났다.



“알아서 몸 챙겨라. 힘들면 이야기 하고.”


“예!”



형님이 나가려고 하자 나는 몸을 일으키려 했다.

 

 

하지만 몸을 반쯤 일으켰을 때, 서주희가 내 가슴팍을 발로 차버리는 바람에 나는 다시 뒤로 넘어가고 말았다. 나는 토끼눈을 하고 서주희에게 말했다.



“무슨 짓이야?!”


“무송이 아저씨가 시킨 거예요. 꼼짝 말고 누워있으라고.”


“......”



나는 얌전히 베게에 누워있는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의식하지 않았지만 금세 잠들어 버렸다.

 

 

 

 

정말 오랜만에 꽤 오래 잤다고 생각이 되었다.

 

 

나는 옛날 버릇처럼, 잠에서 깼는데도 실눈을 뜨고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다가 문득 시간이 정말 오래됐다는 걸 느끼곤 벌떡 일어났다.

 

 

일어나서 주위를 살피니, 희원이가 내 옆에서 자고 있었다. 나는 시계를 꺼내어 시간을 보았다.



“후유...”



다행히 생각보다 많이 늦지 않은 시간이다. 좀만 서두르면, 전선기의 가게에 갈 수 있다.

 

 

나는 희원이가 깨지 않게 조심스럽게 일어나 곧장 세수를 하러 갔다. 오른쪽 팔은 욱신거려서 한쪽 팔로만 사용을 했다.

 

 

세수를 하다가 문득 거울을 보니 머리가 너무 많이 자라 있었다.

 

 

구걸을 할 땐 머리가 길면 얼굴도 가릴 수 있고 더욱 추접해 보이기 때문에 좋았지만, 이제는 이렇게 길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나는 머리를 매만지다가 미용실에 가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 떠올라 탄식이 나왔다.

 

 

생각을 해보니 명품 양복의 외투와 셔츠는 어제 총에 맞고, 찢어져 버려서 상태가 말이 아니다.

 

 

그런 걸 입고 점원을 만나봤자 의심만 살 것 같았다.

 

 

잠시 절망에 빠져 있던 나는 어쨌든 하고 있던 세수를 다하고 수건으로 얼굴을 닦으며 화장실에서 나왔다. 그런데 그때 서주희가 밖에서 들어오고 있었다.



“어? 벌써 일어났네요?”


“이 정도면 충분히 잤어. 어디 갔다 오는 거야?”



나는 어제 당한 발길질이 약간 마음에 남아있어서 퉁명스럽게 물어보았다.

 

 

하지만 서주희는 신경조차 쓰이지 않는지 가져온 것들을 나에게 보이며 말했다.



“옷이 이 꼴이 됐는데 수선정도는 해야 하지 않겠어요?”



서주희의 손에는 지난 밤 찢겨진 셔츠와 외투가 손에 들려 있었다.

 

 

다소 자랑처럼 말하던 그녀는, 내가 멍하게 옷들을 바라보자 곱게 접힌 옷을 쫙 펴고 몇 차례 휙휙 돌리며 내가 칭찬을 해주길 기다렸다.

 

 

나는 피식 웃으며 서주희가 들고 있는 옷을 받아서 갈아입으러 화장실에 들어갔다. 문을 닫자마자 서주희의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에이! 일부러 갔다 왔는데, 칭찬 좀 해주면 안돼요? 수선 다 될 때까지 기다리다 왔구만...”



나는 화장실 문을 살짝 열어 고개만 내민 채 말했다.



“고마워.”



그리고 문을 다시 닫았다. 너무 성의가 없었는지, 서주희의 궁시렁 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옷을 갈아입는데, 오른쪽 팔을 넣을 때 극심한 고통에 소리를 지르고 싶었지만, 이빨을 꽉 깨물고 참았다.

 

 

겨우 옷을 다 갈아입고 화장실 거울을 보며 옷이 손상되었던 부위를 잘 살폈다. 양복 외투와 셔츠의 팔은 아예 다시 만들어버린 것 같았다.

 

 

그리고 셔츠의 찢긴 부위는 천을 덧대서 만들었는데, 연결 부위는 깔끔한 무늬로 가려서 더 세련되어 보였다.

 

 

나는 흡족해 하며 화장실 밖으로 나왔다. 나와서 보니, 희원이가 잠에서 깼는지 몸을 일으키고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그 모습이 안쓰러워 조심스럽게 다시 눕혔다. 그러자 바로 서주희의 앙칼진 목소리가 쳐들어왔다.



“뭐하는 거예요? 겨우 깨워 놨더니...”


“왜? 아직 졸린 것 같은데 더 자게 둬.”


“안돼요. 더 자면 저녁에 안자서 내가 피곤하단 말이에요.”



밥상을 들고 있던 서주희는 상을 한쪽에 내려놓더니 누워있는 희원이를 일으켰다.

 

 

갑자기 일으키자 희원이의 눈이 번쩍 떠졌지만 그것도 잠시, 다시 눈을 감고 꾸벅꾸벅 졸았다.



“희원아! 밥먹어야지.”



서주희는 정신을 못차리는 희원이를 억지로 밥상 앞에 앉히고 숟가락을 손에 쥐어주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이상한 점이 있어서 물었다.



“근데 왜 밥이 3개야?”


“아침 안 먹어요? 그래서 3개 가져 왔는데?”


“음... 난 좀...”


“안돼요. 퍼놓은 걸 다시 밥통에 넣을 수 없어요. 먹고 가요.”


“음...”


“좋은 말로 할 때 먹고 가요. 옷 다 찢어버리기 전에...”


“......”



나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 앉았다. 생각을 해보니 요즘 서주희의 언행이 좀 거칠어 진 것 같았다. 왠지 아줌마의 거친 성격을 보는 것 같았다.

 

 

왼손으로 아슬아슬하게 밥을 먹으며 생각을 해보니, 이해를 할 것 같았다.

 

 

나는 집에 별로 없기에 희원이를 돌볼 시간이 없고, 서주희는 하루 종일 희원이와 함께 있다.

 

 

생각해 보면 말 그대로 전업 주부다. 아무래도 애를 보다보니 성격이 거칠게 변한 것 같았다.

 

 

나는 문득 서주희가 조금 불쌍해져서 그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한참 희원이를 챙기느라 정신없던 서주희가 뭔가 이상함을 느꼈는지 나를 보고 말했다.



“왜, 물 줘요?”


“......”


“아, 맞다. 이거요.”


“...?”



서주희가 나에게 건네준 건 형식이의 핸드폰이었다. 사실 나는 이 핸드폰을 포기하고 있었다.

 

 

물에 몇 분동안 빠져있었는데 회생이 될 리가 없었다. 내가 의아한 표정으로 서주희를 보자, 그녀가 말했다.



“드라이기로 거의 1시간 동안 말렸어요. 켜보니까 되던데요? 전보단 못하지만...”



버튼을 눌러보니 불이 들어왔다. 확실히 조작이 이전처럼 매끄럽진 않았지만, 작동이 된다는 것에 감사를 해야 했다.

 

 

밥을 다 먹은 나는 이를 닦고 아무렇지도 않게 신발을 신었다.

 

 

하지만 신발을 신자마자 나는 탄식을 뱉으며 다시 벗는 수밖에 없었다. 나의 짜증 섞인 목소리에 서주희가 와서 물었다.



“왜요?”


“구두가 덜 말랐어. 젠장. 뭐 신고 나간담?”



내가 짜증을 내며 다시 방으로 들어와 젖은 양말을 갈아 신고 있는데, 서주희가 어디에서 들고 왔는지 구두 한 켤레를 들고 나타났다.

 

 

나는 갑자기 나타난 구두가 궁금해서 물었다.



“어디에서 그런 걸 가져와?”


“이 원룸에 원래 있던 거예요. 구두랑 양복은 엄청 많아요.”


“뭐...?”


“이상하죠? 저도 좀 이상해요. 이 집에 다른 옷은 없고 양복만 엄청 많아요. 그것도 아예 검은 양복만.”


“검은 양복...?”


“예. 오늘 그 옷 수선 맡기기 전에 다른 양복을 줄까 생각을 했었는데, 다 검은색이라 그냥 주기도 뭐해서...”


“음...”



수상한 점이 많긴 했지만 지금은 시간이 별로 없었다.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나는 집을 나섰다.

 

 

아직 날씨가 덥긴 했지만 마스크를 꺼내어 착용을 했다. 집의 현관문을 보자마자 어제의 기억이 떠올라서 나는 어제 왔던 길로 가보기로 했다.

 

 

혹시나 흘렸을 혈흔이라던가, 내가 남겨놓은 흔적이 있을지도 모른다. 왔던 길을 되돌아가자니 웃음이 나왔다.

 

 

어제는 그렇게 위급한 상황이었는데, 불과 몇 시간 후에 이렇게 여유 있게 이 길을 걸을 줄은 생각도 못했다.



“없군...”



GG은행까지 꼼꼼하게 살펴본 나는 별다른게 없자 바로 전선기의 가게로 방향을 돌렸다. 여름의 끝물인 요즘이었지만, 매미소리가 시원하게 공간을 적셔주었다.

 

 

나는 그 소리를 충분히 감상하며 길을 걸었다. 곧 멀리서 차가운 인상의 전선기의 가게가 눈에 보였다.

 

 

나는 밖에서 잠시 가게 안의 동태를 살피고, 전선기가 한동안 보이지 않자 태연하게 마스크를 벗고 가게로 들어갔다.

 

 

들어가자마자 역시 점원이 붙었지만, 그때 보았던 그 점원이 아니었다.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카운터로 갔다.

 

 

카운터에는 안경을 쓴 깔끔한 인상의 점원이 있었다.



“김경은이란 점원 있습니까?”


“예, 그렇습니다만...”


“안내를 맡아주기로 하셨는데, 카운터에 문의를 하라고 해서...”


“네, 저쪽에 앉아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카운터 점원이 가리킨 곳에는 의자와 테이블이 몇 개 있었다.

 

 

나는 가장 눈에 띄지 않는 자리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가게 안의 상황은 어제와 다른 점이 없었다.



“기다리셨습니까?”


“아닙니다. 금방 오시는 군요.”


“죄송합니다. 이 시간에 오신다고 미리 말씀을 주셨는데...”


“아뇨, 됐습니다. 가시죠.”



점원은 저번과 마찬가지로 나를 양식 전용 칼이 진열되어 있는 곳으로 데려갔다. 하지만 내가 칼의 종류를 알 리가 없었다.

 

 

칼 모양은 분명 많았지만, 어디에 쓰는지 알 턱이 없었다. 나는 작은 칼 하나를 들고 날을 보는 척 했다. 그러자 점원이 물었다.



“왼손잡이세요?”


“아, 그게 오른손이 근육통 때문에 좀 불편한 상태라...”


“그러시군요.”



나는 이야기의 답답함을 느끼고 점원에게 말했다.



“사실 제가 아직 양식 요리를 시작한 건 아닙니다.”


“음... 왠지 그러실 것 같았어요.”


“예?”


“칼 잡는 법이라든가 나이프 명칭도 잘 모르시는 것 같아서... 앗...!”



점원은 자신이 실수했다는 걸 깨달았는지, 손으로 입을 감싸며 당혹스러워 했다. 그리곤 곧 연신 고개를 숙이며 사과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런 실례를... 정말 죄송합니다!”



하지만 난 오히려 답답하지 않고 좋았다. 차라리 이런 관계에서 이야기를 나누면 좀 더 친해질 지도 모른다.

 

 

나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미소를 띄며 말했다.



“괜찮습니다. 그쪽이 알려주시면 더 좋을 것 같군요. 사실 저는 이제 막 시작하는 단계라 이런 부분에 대해서 잘 모릅니다.”


“그러시군요...”


“그래서 그런데, 그 부분에 대해서 좀 알려주시겠습니까?”


“음 그건 어렵지 않지만...”



점원이 말끝을 흐리자 나는 기다리지 않고 형식이의 핸드폰을 내밀었다.



“다시 연락드리겠습니다.”


“아... 예...”



점원은 쭈뼛쭈뼛 번호를 눌러주었다. 가끔 인식이 잘 안되어 몇 차례 지우긴 했지만 겨우 번호를 받아내긴 했다.

 

 

겨우 목적을 달성한 나는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는데 카운터 쪽에서 소리가 들렸다.



“사장님, 오셨습니까?”

 

 

 

사장님이란 말에 나는 내가 보이지 않을 각도로 몸을 돌렸다. 내 갑작스러운 표정 변화에 점원은 놀란 표정을 짓고 나에게 물었다.



“어디 안 좋으세요?”


“에어컨 바람이 좀 세군요. 실례 하겠습니다.”



나는 점원에게 양해를 구하고 마스크를 썼다. 나는 면이 넓적한 면을 들고 눈에 가져다 대었다.

 

 

점원이 이상한 눈으로 바라봤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고 칼 면을 거울로 활용해 전선기의 행동을 보았다.

 

 

걸음걸이를 보아하니 진짜 전선기는 아니었다. 가짜는 뒷짐을 지고 잔뜩 거드름을 피우며 안으로 들어왔다.

 

 

점원들이 2명 붙어서 전선기가 들고 있던 가방을 들어주었고, 가짜는 점원들과 이야기를 하며 가게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나 오기 전에 별일 없었나?”


“예, 사장님. 말썽을 일으키는 손님도 없었고 도난 사건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그래?”



가짜가 일식 칼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리고 곧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다.

 

 

멀리서 잘 들리진 않았지만, 가끔 들리는 웃음소리와 칼에 대한 단어가 들리는 걸 보아서 가볍게 나누는 담소 같았다.

 

 

나는 이때가 기회다 싶어서 칼을 내려놓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때 점원이 나를 불렀다.



“손님? 가시겠습니까?”


“네. 다음에 연락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일이 있어서 말이죠.”


“가시기 전에 저희 사장님과 이야기를 나눠 보시는 게 어떠십니까?”


“예?”


“저희 사장님은 칼에 대해서 많이 해박하십니다. 저보다 훨씬 많이요.”



점원이 살짝 웃음을 짓자 난 더욱 난처해 졌다. 이대로 가버리자니 점원이 뭔가 이상하게 생각할 것 같고 그렇다고 가짜를 만나면 들킬게 뻔했다.

 

 

나는 머리를 쥐어짜다가 미소를 잔뜩 머금고 말했다.



“지금 저분이랑 이야기 하면 안 되는 이유가 있습니다.”



내가 말을 하자 점원은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나는 일부로 한 박자를 기다렸다가 조금 쑥스럽게 말을 이었다.



“지금 저분하고 이야기 하면 나중에 그만큼 그쪽과 이야기를 못할테니까요.”


“예...?”


“가보겠습니다.”



나는 점원이 당황하고 있는 사이에 가게 문을 나섰다. 점원이 곧 정신을 차리고 큰 소리로 인사를 했다.



“방문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워낙 다급했는지 그 목소리가 문을 닫았음에도 밖에서 들릴 정도였다.

 

 

고개를 돌려 점원을 보니 자기 자신도 목소리가 너무 컸다는 걸 느꼈는지 입을 손으로 막으며 당황하고 있었다.

 

 

나는 웃음이 나왔지만 다음에 웃기로 하고 가게 근처를 빠른 걸음으로 벗어났다. 어느 정도 벗어났다 싶을 때, 나는 지하철로 들어갔다.

 

 

형님에게 물어볼게 많았다. 지하철로 들어오니, 그리운 공기가 온몸에 스며들었다. 지금이라도 당장 깡통을 구해서 자리에 앉아야 할 것 같았다.

 

 

그리고 약간은 들뜬 상태로 형님이 있는 구역으로 갔다. 형님은 처음 만났던 날과 같은 자리, 같은 자세로 있었다.

 

 

나는 장난을 칠까 생각을 했지만 후환이 두려워 져서 얌전히 형님 앞으로 갔다.



“응? 선후냐?”



형님은 나를 보지도 않고 내 이름을 부르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나는 바로 알아보는 게 신기해서 형님에게 물었다.



“와, 어떻게 바로 아셨어요?”


“구두가 내건데 당연한 거 아니겠냐? 앉아라.”



형님이 한쪽에 차곡차곡 쌓여있는 박스 중 하나를 꺼내어 옆에 깔아주었다.

 

 

나는 인사를 간단하게 하고 자리에 앉았다. 내가 앉자마자 형님이 먼저 말을 꺼냈다.



“팔은 괜찮냐?”


“괜찮지는 않지만, 움직일 순 있어요.”


“그래. 근데 왜 여기까지 왔냐? 또 쫓기면 어쩌려고.”


“물어볼게 있어서요.”


“그래. 뭔데?”


“형님 옷이랑 구두가 모두 검은색 밖에 없어서요. 혹시...”


“뭐, 내가 조폭 아니었냐고?”


“그, 그게...”


“그렇게 생각 할 만하지. 근데 어쩌냐, 난 건달이 아니다.”



형님이 피식 웃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그 사이에 누군가 동전을 깡통에 던져 주었다. 나는 찰랑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형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난 장의사다.”


“장의사요?”



정말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형님은 내 반응이 재밌는지 웃으며 말했다.



“왜, 의외야?”


“그, 그럼요! 그런데 어쩌다가 노숙을 하시는 거예요?”


“돈 문제는 아니야. 적어도 우리 모임에 참여하는 노숙인들 중에서 돈 문제로 노숙을 하는 사람들은 없어.”



형님은 쓴웃음을 지었다. 좋지 못한 사연이 있는 것 같았다. 나는 궁금하긴 했으나 더 물어보지 않았다.

 

 

순간 머쓱해져서 앞에 있는 지하철 벽만 쳐다볼 뿐이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보고 형님이 머리를 툭 치며 말했다.



“너도 우리 모임 사람이니 알아도 돼. 뭘 그렇게 미안해 하냐?”



나는 아무 말 없이 형님을 바라봤다. 형님이 그때 준 증표는 지갑에 넣고 있었다.

 

 

그냥 신문지를 찢어서 만든 거라 물에 젖어서 지갑에 딱 붙어 뺄 순 없었지만 언제나 간직하고 있었다. 형님은 한숨을 푹 내쉬더니 말했다.



“우리 모임 사람들은 거의 나에게 장례식을 맡겼던 사람들이야.”



형님의 말에 문득 궁금증이 일었다. 하지만 조금은 건방져 보일 것 같아서 나는 최대한 조용히 물었다.


“그런 사람들이 왜 노숙을 시작했죠?”


“사랑하던 사람을 잃은 충격에서 못 벗어난 거지.”


“그럼 칠복이 아저씨도...”


“그 양반은 부인을 잃었지.”



칠복이 아저씨 말고도 여러 사람이 많은 사연을 안고 있었다.

 

자식을 잃은 사람, 가족 전체를 잃은 사람,그리고 그 중에선 저번에 형님이 말했던 기 탓으로 가족들을 다 잃은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끝까지 형님에 대한 이야기는 해주지 않았다. 물어볼까 했지만 말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아 가만히 있기로 했다.

 

 

형님이 나를 받아준 이유도 누나가 죽은 이후에 자신을 찾아왔기 때문이라고 했다. 형님이 말을 마치고 나는 말을 할 수 없었다.

 

 

형님도 별 말을 하지 않고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가보겠습니다.”


“그래. 조심조심 다니고.”


“예.”



나는 갑자기 기분이 울적해져서 원룸으로 돌아갔다. 가는 길에 아무 생각도 나지 않았다. 집에 올 때쯤 되어서야 팔이 따끔거려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힘없이 원룸에 들어서자 반갑게 맞이하려던 서주희의 표정도 조심스러워졌다.



“무슨 일 있어요...?”


“아니, 별로.”



나는 힘없이 대답을 하고 양복의 외투를 벗었다.

 

 

땀 때문에 그런지 약간 젖은 것 같은 외투를 원룸 한쪽에 있는 의자에 아무렇게나 걸고 뒤를 돌아서는데, 서주희가 난데없이 소리를 질렀다.

 

 

나는 덩달아 깜짝 놀라 말했다.



“왜 그래?”


“파, 팔이...!”



나는 왜 아무렇지도 않게 다친 쪽의 팔을 내려다보았다. 흰 셔츠의 팔 부분이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나도 나름 충격에 빠졌지만, 침착하게 셔츠를 벗고 다친 부위를 확인했다. 붕대는 이미 다시 쓸 수 없을 만큼 젖어버렸었다.

 

 

아무래도 땀 때문에 상처가 덧난 것 같았다. 나는 벌벌 떨고 있는 서주희에게 말했다.



“구급상자좀 줄래?”


“예? 예.”



나는 희원이가 있기 때문에 일단 화장실로 갔다. 상처를 덮고 있는 거즈를 떼어보니 피가 스멀스멀 새어나오고, 고름도 나고 있었다.

 

 

땀 때문에 피가 굳지 않아서 거즈를 떼어낼 때 아픔은 없었지만, 물감에 물에 번지는 것처럼 피가 흐르는 걸 보자 현기증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과산화수소를 거즈에 묻혀 상처부위를 깨끗하게 닦았다. 부글부글 끓는 과산화수소만큼 고통도 끓었다.

 

 

하지만 희원이가 들을까 이를 딱딱 부딪치며 고통을 참았다.

 

 

어느 정도 지혈이 되자, 깨끗하게 하고 구급상자에 있는 빨간약을 발랐다. 그리고 거즈를 댄 후 깨끗한 붕대로 상처를 감았다.



“후유...”



자신의 상처를 스스로 치료하는 것만큼 서러운 일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장실 거울을 바라보니 초라하게 어두운 화장실 조명 아래에서 붕대를 감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나는 억지로 거울 속 자신을 외면하며 깔끔하게 붕대 끝을 마무리하고 밖으로 나왔다. 문 바로 앞에는 초조해서 계속 왔다갔다 움직이는 서주희가 보였다.

 

 

나는 젖은 셔츠를 건네주고 후줄근한 긴팔 티를 입고 굴러다니는 베개를 베었다. 서주희가 한껏 걱정되는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 보며 말했다.



“괜찮아요?”


“어. 땀 때문에 좀 곪았을 뿐이야. 소독은 했어.”



최대한 태연하게 말하긴 했지만 머리는 어지러웠다. 눈을 뜨고 있으면 토악질이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잠이 오는 것처럼 스르륵 눈을 감았다.

 

 

서주희도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고, 나는 배가 고팠지만 일단은 졸려서 잠을 자기로 했다.

 

 

잠들기 전까지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버릴까 걱정이 되었지만 소리를 질러대는 창자들 때문에 눈을 뜨는 수밖에 없었다.

 

 

벌떡 일어나니, 서주희와 희원이는 상에 앉아서 무슨 책을 보고 있었다.

 

 

나는 방해되지 않게 조용히 일어나 냉장고를 열어보았다. 하지만 냉장고 여는 소리에 서주희가 내 쪽을 슥 바라보더니 말했다.



“배고파요? 밥 줄까요?”


“응. 부탁 좀 할게.”



서주희가 밥을 지으러 간 사이에 나는 희원이와 책을 같이 읽었다. 희원이가 보고 있던 책은 동화책이었다.

 

 

같이 책을 보고 있자니 문득 걱정이 생겼다. 나는 물론이고 서주희도 아마 이 일이 끝나고 나면 감옥에 가거나 할 텐데, 그 사이에 누가 돌봐줄지 걱정이 되었다.

 

 

한참 생각을 하는데, 서주희가 밥상을 들고 왔다. 나는 미간에 인상을 잔뜩 찌푸리며 한 숟가락을 들었다. 그러자 서주희가 나에게 말했다.



“반찬이 이상해요?”


“아니.”


“근데 왜 표정이 그래요? 기껏 차려줬는데...”


“반찬 때문이 아냐, 잠시 생각할 게 있어서.”



나도 모르게 서주희에게 민폐를 끼친 것 같아 미안하긴 했지만 일단은 배가 고픈 게 우선이기 때문에 밥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표정이 좋지 않던 서주희도 내가 밥을 꽤나 맛있게 먹어주자 표정이 점차 풀리는 것 같았다.

 

 

나는 밥을 다 먹고 형님의 셔츠 중 하나를 꺼내어 입었다. 셔츠를 입는 나를 보고 서주희가 물었다.



“또 나가요?”


“어. 마무리 지을 일이 있어서. 금방 올 거야.”



나는 외투는 걸치지 않는 대신 빨간색 수건을 하나 챙겼다. 외투를 걸치면 상처가 심각해져도 둔감해 지는 것 같았다.

 

 

물론 외투에 들어있던 권총이나 다른 물품들을 바지 주머니에 구겨 넣었다.

 

 

먼저 점원에게 연락을 할 건데 굳이 밖으로 나온 이유는 서주희가 보고 있으면 왠지 뭐라고 할 것 같았다.

 

 

나는 원룸을 나와, 골목길에서 바로 전화를 꺼냈다. 그리고 통화목록을 열어 점원의 전화번호를 찾았다.

 

 

아깐 상황이 급해서 저장을 하진 못했지만 이번에는 저장을 하고 바로 전화를 걸었다. 몇 차례 신호음이 가고, 곧 긴장한 듯한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세요...?


“네, 경은 씨 접니다. 기억하시겠어요?”


--근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 제가 실례를 했군요. 이름표에서 봤습니다. 기분 나쁘셨어요?”


--아뇨, 아니에요.


“끝날 시간이 된 것 같아서 전화했습니다. 통화 가능하신지요?”


--네. 괜찮아요.



내가 차분한 어조로 말을 이어가자, 처음엔 다소 긴장된 목소리였지만 점점 편안해지는 것 같았다. 나는 길게 끌지 않고 최대한 부담스럽지 않게 말을 꺼냈다.



“가까운 시일 내에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 괜찮은 시간 있으세요?”


--내일 모레에 주말이라 쉬어요.



생각했던 것보다 빠른 날짜였다. 나는 적어도 일주일 정도는 보고 있었는데, 이렇게 일이 쉽게 풀리니 기분이 좋았다.

 

 

혹시나 마음이 변할까봐 나는 얼른 시간을 잡았다.



“그럼 그날 몇 시가 괜찮으세요?”


--점심... 드실래요? 양식으로 괜찮은 곳을 알고 있어요. 도움이 될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장소는 가게 건너편 편의점 앞에서 만나기로 하죠.”


--네.



상대방의 전화가 끊길 때 까지 기다리던 나는 전화가 끊기고 핸드폰을 주머니에 넣었다.

 

 

그리고 한은이를 만나기로 했던 장소로 일단은 나가보기로 했다. 저번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또 경찰이 출동하진 않을 것이다.

 

 

그래도 혹시나 몰라 지하철역 주변을 서성이면서 동태를 살피고 공중전화로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는 즉시 받았다.



--네 XX경찰서입니다.



지루한 듯한 경찰의 목소리가 수화기를 통해 들려왔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주변 소리에 집중하며 상황을 살폈다.



--여보세요? 말씀하십쇼.



하지만 경찰서는 태평한 것 같았다. 저번에 쫓길 때 그렇게 많은 경찰차가 동원 되었으니, 이번에도 신고가 들어왔다면 주변 경찰서는 이미 출동을 마쳤어야 했다.

 

 

나는 그대로 전화를 끊었다. 이번엔 경찰이 출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혹시나 해서 근처를 배회하며 잠복하고 있을 형사들을 찾았다.

 

 

하지만 잠복하고 있지도 않았다. 나는 약속장소가 보이는 곳의 벤치에 앉아 혹시 올지 모르는 한은이를 기다렸다.

 

 

만약 만나게 된다면 할 이야기가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꽤 흘러도 한은이는 올 생각을 하지 않았다.

 

 

나는 이만 갈까 생각을 하는데 익숙한 얼굴이 눈에 보였다. 숨이 탁 막히는 것 같았다.



“전선기...!”



내 눈은 본능적으로 전선기의 행동을 살폈고, 한가지 결론에 도달할 수 있었다.






“진짜다...!!”

 

 

 

나는 전선기가 눈치 채지 못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바로 옆에 있는 기둥에 몸을 숨겼다.

 

 

원형으로 된 기둥은 내 모습을 가리기 충분한 크기였다. 전선기는 꽤나 여유 있는 걸음으로 지하철을 걸었고, 그 얼굴엔 살짝 미소까지 띠고 있었다.

 

 

나는 전선기의 웃는 얼굴을 보자 배알이 꼬였지만 일단은 사람들이 없는 곳 까지 미행을 하기로 했다.

 

 

전선기는 전화가 왔는지 핸드폰을 잠깐 보더니 전화를 받았다. 나는 다소 위험하더라도 통화 내용을 알기 위해서 전선기에게 접근했다.



"내일이요? 내일 오전은 좀 아슬아슬 할 것 같은데."



약속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어쩌면 이 이야기도 기회가 될지 몰라서 나는 잔뜩 긴장을 하고 통화 내용을 계속해서 엿들었다.

 

 

전선기는 뭐가 계속 기분이 좋은지, 실실 웃으며 통화를 이어갔다.



"알겠습니다. 어떻게든 시간을 맞춰보도록 하죠. 그럼 그때 뵙겠습니다. 장소는 저희 가게 사무실에서 하시죠. 정리를 해놓겠습니다."



전선기는 전화를 끊고 방향을 바꿔 이동을 했다. 방향과 통화 내용을 보니, 아무래도 가게로 가서 할 일이 있는 것 같았다.

 

 

가게 주변이 번화가 이긴 하지만, 가게 안엔 아마 아무도 없을 것이다. 나는 사무실에서 일을 처리할 생각을 했다.

 

 

나는 가만히 오른쪽 주머니에 있는 권총을 만졌다. 체온 때문에 권총에도 온기가 느껴졌다.

 

 

당장이라도 꺼내서 저놈의 뒤통수에 총알을 박아달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전선기는 흥얼거리면서 가게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혹시나 문을 잠궈버릴까 초조하긴 했지만 전선기는 뒤도 안돌아보고 문을 닫았다.



“다행이군.”



나는 안도하며 투명한 창을 통해서 안쪽을 살폈다. 가게 내부는 운영을 하지 않을 때 은은한 파랑조명을 사용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 진열되어 있는 칼들이 그 빛을 받아 한껏 예기를 뽐냈다. 나는 안에 전선기가 없는 걸 확인하고 안으로 들어갔다.

 

 

가게 내부는 칼을 판매하는 곳 이외에 여러 개의 방이 있었는데, 전선기는 이 방중 한 곳에 있을 것이다.

 

 

나는 혹시나 예상치 못한 곳에서 칼이 날아오는 것에 대비하여 기어서 이동했다. 여러 개의 판매대가 있어서 기어가면 마치 미로를 이동하는 것 같았다.

 

 

방문 틈에서 빛이 새어나올까 기대를 했지만, 빛은 새어나오지 않았다. 어쩔 수 없이 일일이 방을 확인해 보는 수밖에 없었다.

 

 

긴장이 최고조에 이르자 침 넘어가는 소리, 바닥에 옷이 끌리는 소리도 크게 들렸다.

 

 

 

첫 번째 방에 이르러 내부의 소리를 듣기 위해서 잠시 몸을 일으켜 문에 귀를 댔다.

 

 

그때, 바로 내 머리 옆에 무언가가 철문에 부딪혀 쾅 소리를 내며 바닥에 떨어졌다. 바닥에 떨어진 물체는 대리석을 뒹굴며 귀를 찢는 쇳소리를 냈다.



“젠장!”



나는 짧게 욕을 뱉고 자세를 다시 낮췄다. 그리고 엄폐물이 별로 없는 방 주변을 떠나 진열대가 많은 쪽으로 이동했다.

 

 

어디에서 날아올지는 모르겠지만, 전선기가 여기 어디선가 숨어있다. 방에 있는 게 아니었다. 고개를 들면 아마 칼이 또 머리 쪽으로 들이닥칠 것이다.

 

 

나는 주머니에서 총을 꺼내어 왼손에 단단히 파지했다.

 

 

왼손으론 조준이 힘들겠지만, 오른손은 들지도 못하는 상황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고개를 들 수 없어서 청각에 최대한 의존해 봤지만, 아무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혹시나 해서 거울을 찾아봤지만 CCTV만 잔뜩 있을 뿐 거울 같은 건 없었다.

 

 

아마도 전선기는 CCTV를 통해서 내 위치를 파악하고 있는 것 같다. 생각 같아선 총으로 다 쏴버리고 싶었지만, 총알을 구하기가 힘들다.



“14발 밖에 안 남았어.”



저번에 경찰에게 쫓길 때 공중으로 한발을 날려버렸으니 남은 발은 14발이다. 이정도면 턱없이 부족했다.

 

 

일단 한발을 맞춘다고 해서 죽일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나는 CCTV를 쏘는 건 포기했다.

 

 

일단은 전선기가 있는 방향을 아는 게 급선무 인 것 같았다.

 

 

나는 위험을 무릅쓰고 급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가 앉았다. 어김없이 칼이 한 자루가 날아와 바로 앞에 있는 광고용 모니터에 박혔다.



“역시 방 쪽인가?”



칼이 날아온 방향과 꽂힌 방향을 보니 역시 방이 많은 쪽이었다. 방향을 알기만 한다면 칼을 피하는 정도는 쉬웠다.

 

 

나는 호흡을 고르고 다시 벌떡 일어났다. 역시 예상했던 방향에서 전선기가 칼을 던지는게 보였다.

 

 

나는 가볍게 칼을 피하고 권총을 쥐고 있는 왼손을 들어 전선기에게 겨누었다. 전선기가 다시 칼을 던지려는 자세를 취하고 있었다.

 

 

나는 익숙하지 않은 왼팔이 조금 흔들리긴 했지만 최대한 집중력을 발휘해서 방아쇠를 당겼다. 건물 전체를 뒤흔들만한 총소리가 들렸다.

 

 

잡음이 없어서 그런지 귀가 먹먹해질 정도의 소리였다. 전선기가 피식 웃으며 몸을 숨겼다. 그리고 거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역시 왼손은 부족하군.”



전선기의 비웃는 말투에 열이 올라왔다. 덕분에 나는 여기 있지도 않은 오대수를 욕했다.



“멍청한 놈이 왼팔을 쏠 것이지!”



고개를 살짝 들어 전선기가 숨은 방향을 보니 더 이상 움직이는 기척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시간을 오래 끌 수는 없어서 도발을 하기로 했다.



“남자란 놈이 소심하게 숨어서 뭐하는 거야?”


“총 가지고 있는 놈한테 덤벼서 득될게 있냐? 어이없는 소리하지 마라.”


“내일 아침까지 그렇게 숨어 있으려고?”


“아니, 꼭 그럴 필요까진 없고.”



마지막 말을 마친 전선기의 목소리에서 약간의 웃음이 섞여 있었다. 나는 심장이 내려앉는 느낌을 받았다.

 

 

전선기는 지금 시간을 끌고 있었다. 아마 핸드폰으로 경찰에 신고를 했을 것이다. 나는 마음이 급해지기 시작했다.

 

 

남은시간은 아마 길어야 2분정도 일 것이다. 여기까지 생각이 이르자, 내 몸은 반사적으로 전선기가 있는 곳으로 뛰었다.

 

 

지금 이 기회가 아니면 언제 진짜 전선기를 잡을 수 있을지 모른다. 일어나자마자 역시 칼이 한 자루 날아왔다.

 

 

나는 뛰느라 제대로 피하지 못했다. 칼이 뺨을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갔다. 나는 전선기가 재차 던지지 못하게 숨어있는 곳을 향해 총을 한발 발포했다.

 

 

이번에도 귀를 찢는 소리가 났고, 효과는 충분했는지 전선기가 반대 방향으로 가는 소리가 났다. 나는 미끄러지며 코너를 돌았다.

 

 

그와 동시에 조금 앞에 있는 방의 문이 큰 소리를 내며 닫혔다.



“젠장할 새끼!”



나는 문손잡이를 잡고 세게 돌려봤지만 이미 문은 잠긴 상태였다. 안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어이쿠 핸드폰을 떨어트려 버렸네?”



무슨 수작인지는 모르겠지만 문 바로 앞에 핸드폰이 떨어져 있었다. 나는 핸드폰을 들어 통화기록부터 살폈다.

 

 

하지만 이상하게 경찰에 신고한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궁금증이 일어 문을 향해서 소리쳤다.



“무슨 수작이야?”



하지만 내 이야기를 듣고 있는 건지 문 안에서 나에게 들으라는 듯 전선기의 혼잣말이 크게 들렸다.



“큰일이네? 중요한 사진이 거기에 다 있는데?”



마치 콩트를 하는 것 같은 전선기의 말투에 짜증이 밀려왔지만 일단 핸드폰의 사진앨범을 보았다. 이상한 사진이 몇 장 있었다.

 

 

첫 번째 사진은 한 교실의 풍경이었다. 한 여학생이 교실 한가운데 책상에 엎드려 있었고, 바로 그 위에는 목을 매는 올가미가 드리워져 있었다.

 

 

꽤나 섬뜩한 사진이었다. 그리고 안쪽에서 목소리가 다시 흘러나왔다.



“게다가 그 사진은 2장이나 되는데! 정말 큰일이구나!”



나는 대꾸하지 않고 다음 사진으로 넘겨보았다. 순간 호흡이 멈출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다음 사진은 한 고등학교의 풍경이었는데, 많이 봤던 풍경이었다. 분명 한은이의 고등학교다.

 

 

나는 문을 권총으로 세게 두드리며 외쳤다.



“치사한 새끼! 한은이는 안 건드리기로 했잖아!”


“그래, 안 건드려. 현실은 보이는 게 다야. 난 그냥 그녀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그 위에 올가미를 걸어놨을 뿐이야.”



전선기의 말에 나는 조금은 안심이 되었다. 경찰도 오지 않으니, 나는 좀더 자신감 있게 외쳤다.



“그럼 이제 넌 죽는 일만 남았군.”


“근데 그거 아냐? 그 여고생 우울증이래.”


“뭐?”


“지 언니가 뒈지고, 우울증에 걸렸더군. 정신과 치료도 주기적으로 받았고. 치료 덕분인지, 어떤 사람 덕분인지 많이 나아지긴 했다더라.”


“그래서?”


“근데, 얼마 전에 그 사람이 총에 맞고 강에 떨어졌다네? 비온 뒤라 유속이 빨라서 시체도 못 찾고 죽은 지 살았는지 모르는 상태라고 하더군. 근데 웃긴 건 신고한 게 자신이라는 거래.”


“무슨 말이 하고 싶은 거야!”



나는 불안감에 소리를 크게 질렀다. 하지만 안에선 여전히 침착한 전선기의 목소리가 들렸다.



“죄책감이 들지 않을까?”



나는 핸드폰을 힘껏 문을 향해 던져버리고, 밖으로 뛰어나왔다.

 

 

전선기가 시간을 끈 이유도, 여유가 넘쳤던 이유도 이제 알 것 같았다.



“한은아 제발...”

 

 

 

나는 한은이가 다니는 고등학교로 가기 위해서 지하철에 올랐다.

 

 

챙겨왔던 수건은 어디로 갔는지 있지 않았고, 급하게 뛰어오느라 권총을 들고 뛰었다는 사실도 지하철에서 숨을 고를때 알 수 있었다.

 

 

사람이 없는 지하철 구석에서 가쁜숨을 몰아쉬고 있는데, 누군가가 나에게 말을 걸었다.



“괜찮아요?”


“예. 왜 그러시죠?”


“팔에 피가...”



팔을 내려다보니 이미 셔츠는 빨갛게 물들어 있었다. 다시 상처가 도진것 같았다.

 

 

원래 같으면 얼른 원룸으로 돌아가 상처를 소독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시간이 없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말 걸어준 사람에게 말했다.



“걱정해 주신건 고맙습니다만, 이건 분장입니다. 제가 작은 극장에서 연극을 하고 있거든요.”


“그러세요?”



나는 일부러 주위사람들이 들으라고 좀 큰 목소리로 말했다. 이 사람과 대화를 하면서 주변을 가만히 살폈는데, 거의 모든 시선이 날 향하고 있었다.

 

 

나를 보지 않는 사람은 꾸벅꾸벅 졸거나, 귀에 호빵만한 헤드폰을 낀 사람들뿐이었다.

 

 

내가 웃기지도 않을 핑계를 대자 그나마 관심이 줄어들었다. 하지만 피는 계속해서 흘러나왔다.

 

 

내버려두면 바닥에 고일 정도가 될 것 같았다. 나는 왼손으로 상처부위를 세게 움켜쥐었다.

 

 

끔찍한 비명소리가 굳게 다문 입술을 뚫고 나오려 했지만, 참아낼 수밖에 없었다.

 

 

고통은 시간이 갈수록 줄어들긴 했지만 고통을 참을만할 정도가 되었을 때, 나는 다시 뛰기 시작했다.

 

 

지하철 밖은 이미 어두워졌고 그제야 나는 움켜쥔 팔을 놓을 수 있었다.

 

 

팔을 놓자마자 뜨거운 피가 팔목까지 쏟아지는 게 느껴졌지만 지금은 뛰었다.


학교는 불이 다 꺼진 상태였고, 수위실로 보이는 건물만 불이 켜져 있었다.

 

 

아까 전선기의 핸드폰에서 본 사진에서는 분명 교실의 불이 켜져 있었다. 불안감이 온몸을 감싸기 시작했다.



“깨어났다는 말인데...”



불을 끄고 집으로 돌아갔거나, 아니면 다른 일을 했을 것이다. 나는 다른 어떤일을 하더라도 그 선택만을 하지 않길 바라면서 한은이 교실로 뛰어갔다.

 

 

학교 안으로 들어오자, 내 구두소리가 허공을 두드렸다. 고등학교 교실은 3층이다. 나는 계단을 3칸씩 뛰어올랐다.

 

 

학교 안으론 달빛조차 들어오지 않아서 뛰는 동안 옆을 스쳐가는 교실의 내부는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한은이의 교실을 찾아내고, 문고리를 돌렸다. 하지만 문은 잠겨 있었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피로 물든 오른손으로 문에 있는 작은 유리 창문을 깨고 손을 안으로 집어넣어 문을 열었다.



“한은아!”



교실은 밖의 공기보다 조금 더 쌀쌀했다. 한은이를 불러봤지만 허공에 메아리만 울려 퍼질 뿐 대답은 들리지 않았다.

 

 

나는 칠판 옆을 더듬거리며 불을 켤 스위치를 찾았다. 겨우 손가락 끝에 플라스틱 느낌이 나자 나는 지체하지 않고 스위치를 눌렀다.



“한은...!”



좋지 않은 예감이 적중한 탓일까? 사진에서 보았던 올가미에 한은이가 목을 매고 있었다.

 

 

한은이의 몸은 움직이지 않았고 바로 아래엔 받침대로 썼던 책상이 아무렇게나 넘어져 있었다.

 

 

나는 교실의 책걸상을 쓰러뜨리며 한은이에게 달려갔다. 지금은 오른손의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리고 쓰러진 책상을 똑바로 새우고 올가미에 체중이 실리지 않도록 한은이의 몸을 들어올렸다. 팽팽하던 올가미 줄이 느슨해졌다.



“한은아! 정신차려!”



일단 더 이상 목이 압박을 받진 않겠지만, 줄을 어떻게 풀지가 의문이었다. 왼팔로는 이미 한은이를 지탱하고 있고 올가미까지는 손이 닿질 않는다.

 

 

나는 한참을 어쩔 줄 몰라 하다가 오른손으로 총을 꺼내어 줄을 겨누었다.

 

 

팔을 올리자 근육이 찢어지는 고통이 일었지만 나는 손을 벌벌 떨며 방아쇠를 당겼다.

 

 

큰 총소리가 따귀를 때리는 듯 교실에 울려 퍼졌지만, 총알은 빗겨나갔다.



“에잇! 침착해!”



나는 이를 악 물고 덜덜 떨리는 손을 진정시키고자 애썼지만 이미 나의 통제를 벗어난 오른팔은 떨리다 못해 총을 놓쳐버릴 것 같았다.

 

 

나는 시간이 얼마 없음을 알고 방아쇠를 한 번 더 당겼다. 총소리가 다시 울렸지만, 그런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손이 떨리는 탓인지 이번에는 줄을 살짝 스치긴 했지만 끊지는 못했다. 나는 체념하듯 오른팔을 내렸다.

 

 

출혈은 아까보다 심해지고 있었고, 흘러내리는 피에 은빛 총신이 붉게 물들었다.

 

 

팔을 내리고 조금이나마 휴식을 취하자 팔의 떨림이 멈췄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였다.



“제발!”



나는 오른손을 다시 올리고 근육이 힘겨워할 틈도 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총은 다시 큰 소리를 냈고 드디어 올가미 줄을 끊어 놓았다.

 

 

방아쇠를 당기자마자 권총의 반동을 견디지 못하고 권총을 놓쳐버렸고 한은이를 양 손으로 꼭 안았다.

 

 

하지만 긴장이 순간 풀려버리자 나는 책상위에서 균형을 잃고 같이 떨어지고 말았다. 나는 떨어지자마자 아픔도 잊은 채 한은이를 살폈다.

 

 

다행히 꼭 감싸고 떨어져서 그런지 한은이는 괜찮은 것 같았다. 나는 먼저 한은이의 손목을 잡고 맥을 짚었다.

 

 

맥박은 뛰지 않았다. 나는 벼랑에서 떨어진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손을 한은이의 뺨에 대고 체온을 확인했다.



“얼마 안됐어!”



체온은 보통 사람과 같이 유지하고 있었다. 심장이 멈춘 지 얼마 되지 않았다는 소리였다.

 

 

나는 얼른 한은이의 교복의 단추를 풀어 몸의 압박을 줄였다. 그리고 곧바로 CPR을 시도 했다.



“제발... 제발...”



있는 힘껏 흉부를 압박을 하고 인공호흡을 하였고, 4사이클을 돌 때, 한은이가 기침을 하며 숨을 쉬기 시작했다.

 

 

처음엔 거칠던 한은이의 호흡은 점차 안정을 찾아갔고, 나는 땀과 피로 범벅이 된 몸을 교실 바닥에 눕혔다.

 

 

오른팔을 의식하고 움직이려 해봤지만, 팔은 더 이상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때, 고요하던 교실에 누군가 뛰어오는 소리가 들렸다.

 

 

나는 그 소리에 벌떡 일어나 권총을 챙기고 교실을 나섰다.

 

 

불을 끄고 갈까 생각을 했지만 지금 오는 사람이 한은이를 발견해야 하기 때문에 그대로 두기로 했다.

 

 

나는 일단 소리가 들리는 반대쪽으로 뛰었다.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가자 앞이 잘 보이지 않았지만, 금방 적응이 되었다.

 

 

학교를 나서며 수위실을 흘끗 보니 수위실은 비어있었다. 아무래도 불이 켜진 교실에, 총소리까지 들리니 심각성을 느끼고 뛰어온 것 같았다.

 

 

아마 이미 경찰에 신고도 들어왔을 것이다. 나는 학교 근처를 벗어나 이 반장에게 전화를 했다. 통화음이 길게 가지 않아서 전화를 받았다.



--선후냐?


“반장님, 지금 출동 중이십니까?”


--그래, 학교에서 무슨 시덥지 않은 신고가 들어왔어. 분명 학생이 심심해서 들어온 거겠지. 무슨 일이냐?


“구급차도 같이 가주세요. 한은이가 다쳤어요.”


--뭐? 너 지금 어디냐?


“나중에 자세히 말씀드릴게요. 일단 제 말대로 해주세요.”


--알았다.



전화는 끊겼고, 눈앞이 팽팽 돌기 시작했다. 왼팔로 다시 오른팔을 세게 움켜쥐었지만, 이미 많은 피가 빠져나간것 같았다.

 

 

분명 어두운 저녁일 텐데 눈앞에는 무지개가 일렁거리고 있었다. 나는 토악질이 나올 걸 억지로 참으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다.

 

 

아무래도 무지개 때문에 속이 울렁거리는 것 같아 한쪽 눈을 감고 이동을 했다. 마치 높은 파도가 치고 있는 유람선 안에 타고 있는 기분이었다.

 

벽을 짚고 겨우 도착한 원룸의 문을 두드리자 서주희가 얼굴을 내밀었다.

 

 

분명 문을 두드렸는데도 두드리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고, 문이 열리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서주희가 나를 보고 소리를 지르려 하자, 나는 피투성이가 된 왼손으로 서주희의 입을 막았다.

 

 

피 덕분에 끈적거리는 손이 서주희의 입에 감기듯 붙었고, 나는 조용히 속삭였다.



“희원이 깨니까. 조용히.”



분명 성대를 통해 목소리가 흘러나와야 하는데, 내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아니, 들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남은 기억이라곤 얼굴이 피투성이가 되어 눈을 크게 뜨고 있는 서주희의 모습이었다.

 

일어났을 때 처음 느낀 감각은 고기 굽는 냄새였다. 나는 피가 모자라다보니 별 이상한 냄새를 맡게 된다고 생각하며 몸을 일으켰다.

 

 

일어나자마자 누군가 내 관자놀이를 손톱으로 찌르는 것 같은 고통이 느껴졌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서주희가 고기를 굽고 있었다.



“어? 일어났네요?”


“뭐 하는 거야?”


“보면 몰라요? 고기 굽잖아요. 몇 시간이나 잤는지 알아요? 지금이 6시니까, 18시간이나 잤어요. 안 그래도 깨우려고 했는데, 잘 일어났네. 와서 고기나 먹어요.”



나는 이게 꿈인가 싶어 머리를 감싸며 고개를 흔들었다. 그때, 뭔가 푹 안기는 느낌이 들어 눈을 떠보니 희원이가 나에게 안겨 있었다.



“희원아?”


“삼촌, 얼른 고기 먹어.”



희원이는 나를 안고 고개를 들어 내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미 고기를 입에 넣었는지, 양 볼은 풍선처럼 부풀어져 있고, 입술을 기름 때문에 번들거리는 채 우물우물 거리고 있었다.

 

 

나는 그 모습을 보고 서주희를 따지는 건 나중에 하기로 하고 왼팔로 희원이를 번쩍 안으며 고기를 굽는 서주희의 옆으로왔다.

 

 

앉자마자 기름장의 고소한 냄새가 입맛을 자극했다. 나는 폐 속을 고기 냄새로 가득 채우며 젓가락을 들었다.

 

 

희원이가 따로 고기가 가득 담긴 앞 접시를 주었다. 나는 고기를 보고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쇠고기 아냐?”


“맞아요. 보고도 몰라요?”


“내가 왜 모르겠어? 믿을 수 없어서 그렇지.”



의문은 더욱 더 심해졌지만, 지금은 일단 이 행복감을 만끽하기로 했다. 가족이 생긴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았다.

 

 

물론 전선기가 좋다는 서주희에게는 눈곱만큼의 애정이 생기진 않았지만, 희원이를 가만히 보다가 나도 모르게 흐뭇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자식이 먹는 걸 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다더니, 그 마음이 이해가 갔다.

 

 

나는 어느새 고기를 씹는 것 보다 희원이를 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서주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으이그, 조카바보 나셨네. 고기나 먹어요. 많이 먹어야 기운도 좀 차리지.”



고기를 다 먹고 나는 밖으로 서주희를 잠깐 불렀다. 대체 쇠고기 살 돈을 어디에서 났는지 궁금했다.

 

 

물론 생각해 준 건 고맙긴 한데 확실하게 할 건 해야 했다. 나는 밖에서 담배를 한 대 피웠고, 그동안 서주희는 뒷정리를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왜요?”


“쇠고기 살 돈은 어디서 난거야?”


“희원이 계좌에서 뺐어요.”


“뭐? 그건 희원이를 위해서만 쓴다고 했었잖아.”



난 다소 목소리가 격해지려는 걸 겨우겨우 참으며 말했다. 하지만 서주희는 다 예상했다는 듯 차분하게 말을 이었다.



“알아요. 그것쯤은.”


“근데, 왜 그랬어?”


“고기 먹자고 한 거, 희원이가 그런 거예요. 요즘 형사님 혈색도 안 좋고 살도 많이 빠진 것 같다면서 고기 먹자고 했어요.”



서주희의 말에 내가 아무 말도 못하자 서주희는 피식 웃더니 말을 돌렸다.



“어제 어디 간 거예요? 금방 온다면서. 아니, 금방오긴 했지만 왜 밖에 나갔다만 오면 피를 그렇게 흘리면서 들어오는 거예요?”


“내가 그렇게 될 줄 알고 나가냐? 나가보니까 그런 일이 생기는 거야.”


“어이구, 말이나 못하면... 이제 다 나을 때까지 방안에 계세요. 이렇게 무리하다간 언젠가 큰일나요.”


“됐어. 내가 알아서 해. 당장 내일도 약속 있고.”



그 이후로 우리는 희원이에 대한 이야기를 가볍게 했다.

 

 

희원이는 아직 어리지만 서주희는 조기교육이 중요하다며 여기저기에서 책을 얻어다 오는것 같았다.

 

 

그래봤자 동화책뿐이었지만 서주희는 나름대로 열심히 하는 것 같았다.


이야기를 마치고 나는 서주희를 안으로 들여보낸 후에 전화기를 꺼냈다.

 

 

지금까지 아무렇지도 않은 척을 했지만 나는 깨어난 순간부터 한은이 걱정을 하고 있었다.

 

 

나는 이 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전화를 받자마자 이 반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야, 너 괜찮냐?


“예?”


--학교에 뿌려진 거 니꺼 피 아니냐?


“그런데요?”


--양이 엄청나, 이건 뭐 살아있는 게 기적인가 싶을 정도다. 정말 괜찮냐? 병원 관계자들도 현장을 보고 혀를 내둘렀어. 사방에 피칠이 되어있어서.


“전 괜찮아요. 제가 전화를 한건 한은이 상태를 여쭤보려고 한겁니다.”



내가 한은이의 이야기를 꺼내자 이 반장의 한숨소리부터 들려왔다. 왠지 좋지 않은 예감이 들었다. 이 반장은 잠시 침묵을 지키더니 말했다.



--생명에는 지장 없다. 네가 정확하게 응급처치를 해서 심장이 멈췄었지만 다시 회생하긴 했지.


“그럼 잘 지내고 있는 거예요?”


--근데 깨어나질 못하고 있어. 그렇게 긴 시간은 아니지만 잠시 동안 뇌에 산소가 공급되지 않아서 뇌의 훼손이 좀 있다고 하더라.



이 반장은 최대한 내가 상처를 받지 않도록 돌려서 말하고 있었다. 하지만 나는 이 말뜻을 알고 있다.

 

 

물론 하루밖에 지나지 않아 결론지을 수 없겠지만, 이미 뇌 손상이 확인되었다면 이건 식물인간이 되었다는 소리다.

 

 

나는 울컥 올라오는 걸 꾹 억누르며 말했다.



“제가 가봐도 될까요?”


--그래, 언제 한번 같이 가자. 한은이 어머니께는 다 말씀드렸다.



이 말 이후로는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기껏해야 이 반장의 안부를 묻는 대화였다.

 

 

나는 벽에 기대고 앉아 담배를 하나 더 꺼내들었다. 바람도 불지 않아 담배 연기를 뱉어내도 한참동안 내 주변에 머물러 있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담배를 크게 한 모금 빨아들였다. 몸이 약해진 탓인지, 이제 2대째 인데 머리가 어질어질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담배를 피우지 않으면 견디지 못할 것 같았다.

 

 

나는 끝내 끝까지 담배를 태우고 들어가자마자 쓰러지듯 베개에 누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