룸메이트 - (마지막화)

윙윙2013.05.27
조회2,402

출처 ; 웃대(인생사프리님)

제가읽었던 이야기들중 재미나게 본 이야기입니다.

스크롤 압박이 있어요..^^

룸메이트 이야기 마지막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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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속에서도 이 반장의 말을 생각했던 것만 같이, 잠에서 깬 뒤에서 이 반장의 목소리가 머릿속을 맴돌았다. 형님은 내 상태를 보고 걱정하며 말했다.



“생각이 많아지냐? 그럴 만도 하다.”


“아닙니다.”


“작전은 마무리 지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말해주마.”



작전이라는 말에 잠시나마 이 반장의 말이 머릿속을 떠나갔다. 이 부분은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나는 형님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건물 하나를 알아놨어. 우리는 거기에서 전선기를 볼 거야.”


“저는 뭘 하면 됩니까?”


“건물엔 경호원이 들어갈 수 없게 할 거야. 나와 전선기만 건물 안에서 이야기를 하는 거지. 너는 그 방에 잘 숨어있어라. 그리고 전선기에게 수면제를 먹이고 건물 뒷문을 통해서 나가면 우리가 렌트해둔 차가 있을 거야.”


“네.”


“그 이후론 알아서 해. 추궁을 하다가 죽이던지, 아니면 바로 죽여 버리던지.”



작전을 듣고 나는 할 일을 정할 수 있었다. 일단 이런 차림으론 사람들의 눈에 띄기 쉽기 때문에 양복을 입기로 했다.

 

 

그리고 권총을 한 번 더 정비하고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한 칼과 같은 흉기를 준비하기로 했다.

 

 

형님은 이미 준비를 마친 듯 한쪽에 자신이 즐겨 입던 양복이 놓여 있었다.



“그럼 갔다 오겠습니다.”



나는 형님에게 인사를 건네고 원룸으로 향했다. 원룸에 가니 희원이는 아직 잠을 자고 있는 중이었고 서주희는 얼굴이 꽤 부은 채 아침 준비를 하고 있었다.



“밥 먹을래요?”


“아니, 좀 바빠서.”



나는 원룸의 구석에 자리 잡고 앉아서 권총을 꺼내어 손질하기 시작했다.

 

 

형사 시절에 쓰던 권총과는 좀 다르게 생겼지만 분해는 그렇게 어렵지 않았다. 물에 빠진 채 그대로 놔둬서 그런지 녹이 많이 슬어있었다.

 

 

나는 총알부터 총열까지 정성스럽게 닦아냈다. 중요한 순간에 총이 나가지 않는다면 그것만큼 낭패는 없었다.

 

 

서주희가 조심스럽게 나에게 오더니, 어깨너머로 총을 보곤 깜짝 놀랐다.



“총?”


“별거 아니니 신경 쓰지 마.”



총 정비를 마친 나는 소지품을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꺼냈다. 핸드폰이며 찌그러진 담뱃갑이며 옷에 계속 넣어두다보니 지저분하지 않은게 없었다.

 

 

나는 녹물이 묻어있는 휴지로 대충 먼지를 제거하였다. 그리고 곧바로 화장실에서 옷을 갈아입었다.

 

 

꽤 오랜만에 입긴 했지만 민창수의 양복이 몸에 달라붙듯 잘 맞았다.

 

 

소지품을 다시 챙기려고 나오니, 서주희가 권총을 신기한 듯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나는 깜짝 놀라 소리쳤다.



“야! 그거 내려놔!”


“예?”



서주희는 내 고함소리에 눈이 커진 채 나를 바라보았다. 그래도 여전히 서주희의 손에는 권총이 쥐어져 있었다.

 

 

나는 몸을 날리다시피 해서 권총을 빼앗았다.



“진짜 권총이야. 위험하다고.”


“전 그냥 처음 보는 물건이라...”


“사람 죽이는 물건이니까 다음부턴 손대지 마.”



내가 다소 강경하게 이야기 하자 서주희는 조금 삐친 듯 궁시렁 거리며 다시 부엌으로 돌아갔다. 나는 한 차례 위기를 넘긴 듯 한숨을 푹 내쉬었다.

 

 

문득 고함쳤던 게 떠올라 희원이를 보니 약간 인상을 찌푸리고 있을 뿐, 잠에서 깨진 않았다. 나는 뒤늦게나마 조심조심 밖으로 나갔다.



“이제 필요한 게...”



시간을 확인해보니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서두르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나는 좀 더 긴장을 풀기 위해 먼저 목욕탕에 가기로 했다.

 

 

평소에 자주 가던 곳으로 갈까 생각을 해봤지만 이미 내 얼굴이 팔렸을지도 몰라서 아예 처음 가보는 곳으로 갔다.

 

 

동네 골목에 있는 목욕탕 이었다. 카운터에는 아직 잠에서 덜 깬 주인아주머니가 꾸벅꾸벅 졸고 있었다.

 

 

나는 목소리를 조금 높여서 주인아주머니를 불렀다.



“아주머니!”


“...응...?”


“지금 들어갈 수 있죠?”


“성인 남자는 6천원.”



아주머니는 졸린 눈을 굳이 뜨지도 않고 나에게 말했다. 나는 피식 웃으며 지갑에서 돈을 꺼내어 아주머니에게 주었다.

 

 

아주머니는 열쇠를 카운터 책상에 아무렇게나 내려놓고는 다시 숙면을 취하기 시작했다.

 

 

기분 나쁠 법도 하지만 오히려 내 상황에서는 참 다행스러운 일이다. 나는 안도하며 목욕탕으로 들어갔다.

 

 

탈의실엔 사람이 있지 않았다. 아무리 이 시간이라도 한명쯤 있을 법도 한데 한명도 있지 않았다.

 

 

그래서 그런지 발바닥이 바닥에서 떨어지는 소리가 쩍쩍 입을 벌려대며 공간을 울려댔다.

 

 

목욕탕 안에도 괴음 같은 물소리만 메아리 칠 뿐 그 누구도 있지 않았다.



“아무도 없으니 좋네.”



나는 나름대로 스스로를 위로하며 온탕에 몸을 담갔다. 거대한 지압 판으로 온몸을 꾹꾹 눌러대는 느낌이 들었지만 곧 적응이 되어서 탕 속에 몸을 녹였다.

 

 

저절로 걸쭉한 고함소리가 났다. 그렇게 정신이 조금 혼미해질 때까지 온탕에 몸을 녹이고 나는 한쪽에 떨어져 있는 초록색 이태리타월로 온몸의 때를 벗겨냈다.

 

 

마치 허물을 벗어내듯 초록색 타월에 짙은 회색의 무언가가 묻어났다.

 

 

나는 몇 번 문지를 때마다 타월을 고의적으로 확인해서 희열을 느끼며 온몸 구석구석 때를 벗겨냈다.

 

 

온몸이 벌겋게 달아오를 때까지 때를 벗긴 후에 나는 곧장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이대로 나가기에는 돈도 아깝고 시간도 얼마 되지 않은 것 같아, 열탕을 누비며 시간을 보냈다.

 

 

하지만 그 짓도 얼마 못가 한심한 체력 탓에 나와야 했다. 열탕의 열기에 중독된 듯 공중에 붕 뜬 느낌이 들었다.

 

 

수건으로 물기를 대충 닦아 내고 옷을 입으려는데 문득 체중계가 보여 그 위에 올라봤다.



“또 빠졌네.”



살은 더 빠져 있었다. 거울을 보며 머리를 말리다 보니 살이 빠졌을 뿐만 아니라 근육도 같이 빠져나간 것 같았다.

 

 

나름 울긋불긋한 몸매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제는 울긋불긋한 뼈마디가 얼굴을 내밀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부끄러운 듯 얼른 옷을 입어버렸다.

 

 

살이 너무 빠져서 그런지 양복 맵시도 전과 같진 않다. 나는 실망감만 잔뜩 안은 채 목욕탕 건물을 빠져나왔다.

 

 

시간을 보니 2시간 정도 놀은 것 같다. 뜨거운 곳에서 밖으로 나오니 평소 같으면 보통 바람이 시원하게 느껴졌다.

 

 

덕분에 열기로 가득 차서 멍해진 머릿속이 약간이나마 정리가 되는 것 같았다.

 

 

정말 약간. 이제 해야 할 일이 있다면 칼과 같은 유사시에 대비한 물품을 사는 것이다. 나는 칼을 생각하니 문득 김경은 생각이 났다.

 

 

갑자기 그녀가 보고 싶었다. 보통이라면 고개를 저으며 생각을 바꿨겠지만, 오늘은 왠지 그러고 싶지 않았다.

 

 

나는 깊게 생각해 보지도 않고 바로 전선기의 가게로 향했다. 거리 끝에서부터 보이는 전선기의 가게는 온통 투명한 유리로 되어 있었다.

 

 

그래서 충분히 먼 거리에서도 가게 안을 잘 관찰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일부러 그렇게 만들어 놓은 것인지, 전선기가 주로 있는 사무실 같은 곳은 절묘하게 가려놓았다.

 

 

어찌 보면 접근하도록 덫을 놓은 것 같은 구조다. 하지만 지금은 정말 순수하게 칼을 사야겠다는 일념으로 전선기의 가게의 문을 열었다.

 

 

멀리에서부터 살펴보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나는 약간 흥분된 상태로 투명한 문을 밀고 들어섰다.


들어서자마자 시큼한 레몬향이 코를 자극했다. 아직 문을 연지 얼마 안 된 시간이라 그런지 에어컨도 틀어지지 않은 상태였다.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직 밖은 더울만한 수준이 아니라 알아채기는 쉽지 않았다. 가게 내부엔 손님은 나뿐이었다.

 

 

다들 나와 다른 흰색 계통의 유니폼을 입고 바쁘게 준비가 덜 된 부분을 손보고 있었고 곧 종업원 누군가가 종종걸음으로 나에게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아...”



나에게 다가오던 소리는 작은 탄식으로 바뀌며 멈췄고 나는 어느 정도 예상을 한 상태에서 종업원을 돌아보았다.

 

 

어떤 우연이 엮였는지도 모르게, 그녀가 나를 멀뚱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스스로가 놀라울 정도로 냉정하게 그녀를 바라보며 나지막이 말했다.



“뭐하세요? 안내 안하세요?”


“아, 예...”



그녀는 내 말에 습관적인 목소리로 대답을 했다. 그녀는 아차 싶은지 나의 손을 잡고 한쪽으로 이끌었다.

 

 

항상 가던 양식 전용 칼이 있는 코너였다.



“뭐에요?”


“뭐가요?”


“그런 말이 나와요? 대체 무슨 속셈이에요?”


“속셈?”


“다신 나 안볼 거 아니었어요? 그렇게 매정하게 가버리더니.”


“죄송하지만 오늘은 철저하게 칼을 사려고 왔어요. 일식으로.”



살을 찢고 가르기 위해서는 양식보단 일식이 훨씬 나았다. 애초에 일식 칼이 인간이 아닌 다른 생물의 살을 예술적으로 가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녀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일식 칼 코너로 앞서서 이동했다. 이동하는 동안에 씩씩 거리며 뒤도 돌아보질 않았다.

 

 

나는 마치 처음 온 장소인양 주변을 충분히 둘러보았다.

 

 

그녀는 일식 칼 중에서 하나를 거칠게 잡아들고 마치 나에게 겨누는 모습으로 설명을 시작했다.

 

 

물론 칼에 두터운 비닐이 씌워져 있긴 했지만 나로썬 충분한 위협이 되었다. 나는 조금 불쾌해져서 그녀에게 말했다.



“점원이 이래도 되는 겁니까?”


“너야말로 이러지 마세요.”


“너?”


“그래. 너.”



마지막 너라고 말하는 그녀의 목소리가 살짝 떨렸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자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한 방울 흘러내렸다.

 

 

덕분에 나는 열기로 멍해진 머리에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었다. 자는 사람에게 물을 끼얹은 듯 정신이 확 돌아왔다.

 

 

나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여기까지 기어왔단 말인가. 스스로 자문자답을 시작하려는 찰나에 눈앞이 번쩍 하였다.



“나쁜 새끼.”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젖어 있었다. 내 얼굴은 마치 오랜 해수욕으로 타버린 것처럼 따끔따끔했다.

 

 

나는 얼얼한 뺨을 만지며 그녀가 힘없이 쥐고 있는 일식 칼을 받아들고 몸을 돌렸다. 애초에 여기에 오면 안 되는 일이었다.

 

 

일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압박감에 못 이겨 이성이 잠시 흐트러졌던 것 같다. 이미 다른 점원들은 우리를 보고 있었고, 나는 서둘러 떠나야 했다.

 

 

멍하게 나를 쳐다보는 카운터 점원을 재촉하여 칼을 구매한 뒤에 유리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칼을 속주머니에 넣고 가려는데 누군가 뒤에서 나를 끌어안았다.




















“가지마요.”

 

 

 

 

 

나는 그녀에게 잡힌 상태로 움직일 수 없었다. 어쩌면 움직이기 싫었을 지도 모른다. 얇은 양복을 통해서 그녀의 온기가 느껴졌다.

 

 

작은 손으로 깍지를 낀 채 내 허리를 감고 있는 손은 숨이 막힐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감상에 젖어 있는 것도 잠시, 나는 그녀의 손을 풀어내려 했다. 하지만 힘을 꽉 주고 있는 듯 깍지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만 풀어줘요.”


“안돼요.”


“이러다 나 잡히면 어쩌려고?”



내 말에 그녀의 손가락이 살짝 풀어졌다. 나는 손을 풀어내고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의 얼굴은 눈물로 젖은 채 땅을 바라보고 있었다.

 

 

내가 그녀의 눈물을 닦아내고 얼굴을 보기 위해 손으로 얼굴을 들려는데 그녀가 내 손을 쳐냈다.

 

 

나는 약간의 충격에 휩싸여서 내쳐진 손을 그대로 둔 채 가만히 있었다. 그녀가 여전히 땅을 바라보며 말했다.



“화장 번졌을 거예요. 창피해.”



그녀의 대답에 이 사이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그녀는 주머니에서 물티슈를 꺼내더니 얼굴을 박박 문대기 시작했다.

 

 

나는 조금 어이가 없었지만 기다려주기로 했다. 그녀는 충분히 얼굴을 닦아내고서야 얼굴을 들었다.

 

 

그 사이에 어느 정도 냉정을 되찾은 나는 그녀가 말했다.



“저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아요.”


“이번 일 끝나고 다시 이야기 해보면 안 되겠습니까?”


“이번 일이 뭔데요?”


“미안해요. 그것까진 말할 수 없군요.”


“하지 말아요. 그 일.”


“예?”


“뭔가 불안하니까 하지 말라구요.”



그녀는 뭘 알고 이런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단순히 하지 말라는 말인데 나에게는 어떤 목소리보다 크게 들렸다.

 

 

나는 선뜻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녀는 내 반응에 힘을 얻었는지 재차 말했다.



“하지 말고 저랑 살아요.”


“무슨 소리에요? 난 수배중이라고요.”


“저 돈 많이 모아놨어요. 그러니까...”


“......”



나는 그대로 돌아섰다. 그리고 한쪽을 향해 뛰기 시작했다. 그 곳이 어디로 가는 길인지는 나도 알 수 없었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 도망치지 않으면 그녀에게서 벗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숨이 턱밑까지 차오르고 다리가 스스로 움직이길 거부할 때가 되어서야 나는 뛰는 걸 멈췄다.

 

 

고개를 숙이고 한참동안 호흡을 조절하고 나서야 겨우 주변이 어딘지 확인할 수 있었다.

 

 

익숙한 거리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거리도 아니었다. 나는 터벅터벅 걸으며 지하철역을 찾았다.

 

 

그리고 내가 구걸하던 구역으로 돌아왔다. 나는 주변의 벤치에 앉은 채 머리를 감싸고 고개를 푹 숙였다.

 

 

머릿속에 생각이 터져버릴 것 같았다.



“내가 지금 뭐하는 거지?”



지금 하고 있는 일이 옳은 일인지 알 수 없었다. 옳은 일이라고 쳐도 이 일이 끝나면 나에게 돌아오는 건 무엇인가? 살인죄가 추가되고 형량은 늘어날 것이다.

 

 

빈속이지만 속이 느글느글해 견딜 수가 없었다. 나는 화장실로 가서 손가락을 입에 넣어 억지로 토악질을 해댔다.

 

 

물때가 여기저기 엉겨 붙어 있는 화장실벽 타일에 역겨운 내 소리도 엉겨 붙었다.

 

 

한 차례 위액을 뱉어냈지만 어제 저녁부터 먹은 게 없는 터라 노란 진물만 나올 뿐이었다. 나는 몇 번을 더 시도를 하고 입을 물로 헹궈서 그만두기로 했다.

 

 

속은 계속 느글거렸다. 문득 이 일을 하기가 싫어졌다. 왜 하고 있는지도 이유도 잊어버린 것 같았다. 누나에 대한 복수? 사회 정의의 실현?



“아냐.”



나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머릿속을 울리는 단어들을 부정했다. 예전에는 한없이 숭고했었고, 삶의 이유라고 생각했던 단어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졌다.

 

 

나는 편의점에 가서 도시락 세트를 샀다. 평소 같으면 생각도 못할 고급 음식이었다.

 

 

나는 편의점 전자레인지로 도시락 세트를 1분정도 돌리고 도망치듯 편의점을 나왔다. 뭔가 먹으면 제정신으로 돌아올 것 같았다.

 

 

돌아오길 바랬다. 배가 일부러 부를 수 있도록 물로 배까지 채워가며 밥을 먹었지만 뱃속 느낌은 지워지지 않았다.

 

 

오히려 정신이 선명해질수록 이건 아니라는 느낌만 허공을 메워갔다.

 

 

나는 화가 치밀어 올라 빈 도시락을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 형님이 있는 곳으로 갔다. 형님은 꽤 멀리에서부터 보이기 시작했다.

 

 

작은 점 같은 사람은, 깡통을 앞에 모시고 구걸을 하고 있었다. 나는 여기까지 오면서 수도 없이 시뮬레이션 했던 못하겠다는 말을 다시 집어넣고 말았다.

 

 

형님을 보니 도저히 그런 생각이 나질 않았다. 분명 나의 일인데 자신의 일보다 훨씬 애를 쓰셨다. 심지어는 뒤를 돌아보지도 않고 이 일을 같이 하고 계셨다.

 

 

지금까지 체한 듯 얹혀있던 한심한 생각들이 소화되어 내려가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다소 안정을 가진 채, 형님에게 다가갔다.



“어, 왔냐?”


“네.”



형님은 날 보자마자 살짝 미소 지은 채 옆에 자리를 내주었다. 나는 평소와 마찬가지로 살짝 고개를 숙여 감사를 표한 뒤 자리에 앉았다.

 

 

형님도 평소처럼 깡통을 응시한 채 나에게 말했다.



“그래, 준비는 어느 정도 했냐?”


“총도 다 점검했고, 칼도 한 자루 샀어요.”


“칼?”


“예. 유사시에 대비해서요.”



형님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왠지 모를 뿌듯함이 들었다. 형님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무슨 일 있었냐?”


“예?”


“표정이 별로 안 좋은데?”


형님에 말에 나도 모르게 손이 얼굴쪽으로 향했다. 형님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고 말했다.


“있었나보네.”

“아뇨, 별일 아니에요.”

“별일 아닌 것 치고는 심각해 보이는데?”



나는 아무것도 아닌 척 그냥 넘어가려 했지만 그것조차 들통 날 것 같았다. 내가 한숨을 푹 내쉬자 형님은 다시 입을 열었다.



“됐다. 말하기 곤란하면 나중에 안 곤란할 때 말해라.”


“감사합니다.”


“그런데 왜 왔냐?”


“그냥 지나는 길에 들렸어요.”


“지나는 길?”



형님이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머리를 최대한 굴려서 형님에게 대답했다.



“예. 내일 그 건물 주변좀 살펴보려구요.”


“그래?”



형님은 별 의심 없이 넘어가는 것 같았다. 나는 조금 더 형님과 이야기를 하다가 밖으로 나왔다.

 

 

정말 그 건물 주변을 한번쯤은 순찰을 돌아야 할 것 같았다. 형님이 말했던 건물은 생각외로 번화가에 있었다.



“여기에 이런 곳이 있었던가?”



번화가라 오히려 눈치를 못 챈 건지도 모른다. 번쩍이는 건물 틈 사이로 자동차에 깔린 쥐포처럼 끼어있는 오래된 간판이 하나 보였다.

 

 

가게는 꽤 오랫동안 닫혀 있었던 것처럼 셔터 사이사이에 녹이 슬어있었다. 나는 형님이 건네준 열쇠로 셔터의 자물쇠를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와...”



내부는 예상 외로 아주 깨끗했다. 마치 접대를 위한 공간인 듯 공포스러운 외관과는 달리 화사한 분위기였다.

 

 

방을 한번 둘러보니 숨을 곳은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적당한 옷장이 방 전체를 볼 수 있는 각도로 배치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출입문 반대편의 벽에는 자세히 보면 보이지 않는 문이 있었다. 보통 가게들의 구조가 뒷문이 조그맣게 있는데, 그걸 조금 개조한 것 같았다.

 

 

문을 열고 나가보니 키가 꽂힌 채로 차량이 한 대 주차되어져 있었다. 그리고 바로 앞은 큰길가였다.



“엄청난 준비인걸.”



나는 잠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가 어떻게 준비를 해왔는지 한눈에 알 수 있었다.

 

 

나는 주변을 거듭 확인하고 동선을 세밀하게 체크하였다. 정신없이 한 곳에 집중을 하니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았다.

 

 

해는 순식간에 저물어 버렸고 나는 잠을 자기 위해 내 자리로 돌아왔다. 형님도 방금 왔는지 이제 막 잘 준비를 하고 있었다.



“형님, 가봤어요. 엄청 놀랐습니다.”


“그래?”


“정말요.”



나는 일부러 한참동안 형님에게 말을 걸며 잠에 들었다. 잠시라도 입을 멈추면 다른 생각이 들것만 같았다.

 

 

마지막으로 생각났던 말은, 형님에게 차종이 무엇인지 물어본 것이었다. 다만 형님의 대답은 기억나질 않았다.

 

 

 

 

나를 흔들어 깨운 사람은 형님이었다. 형님은 이미 깨끗하게 정장으로 갈아입은 상태였고 그 옆에 있는 칠복이 아저씨도 마찬가지였다.

 

 

 

칠복이 아저씨는 아직 눈도 못 뜨고 있는 내 머리를 툭 건드리며 말했다.



“빨리 일어나, 언제까지 자려고?”


“지금이 몇 시죠?”



나는 눈을 뜨려 안간힘을 쓰며 물었다. 어느 정도 시력을 회복하자 웃는 얼굴로 시계를 확인하고 있는 칠복이 아저씨의 형상이 보였다. 그 형상은 다시 나를 보더니 말했다.



“6시.”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가 직접 행차할 정도면 꽤 늦잠을 잤다고 생각했는데 맥이 빠져 버렸다. 나는 툴툴거리며 신문지를 다시 어깨까지 뒤집어썼다.



“근데 왜 이렇게 빨리 움직여요? 더 잘게요.”


“미리미리 준비해야지. 일어나.”



칠복이 형님이 두꺼운 둔기로 다시 한 번 내 머리를 툭툭 쳤다.

 

 

짜증이 치밀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니, 그 둔기는 내가 전에 건네주었던 파일철이었다. 칠복이 아저씨는 그 파일철을 내 눈앞에 흔들며 말했다.



“그런데 이건 어떻게 처리할 거냐?”


“일이 끝난 직후에 경찰에 넘기면 될 거에요.”



파일철을 보자 잠이 싹 달아났다.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나는 잠결에 움직이다가 먼지가 묻은 곳을 적당히 털어냈다.

 

 

신경을 꽤나 쓰고 자서 그런지 주름은 잡히지 않았다. 넥타이가 조금 어긋나 있었지만 금방 바로잡았다.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는 나를 기다려주었다. 우리는 먼저 준비해온 물건들을 잘 확인하고 움직였다. 형님의 주머니에서 흰색의 작은 가루약이 나왔다.



“그게 수면제예요?”


“그래. 먹고 나면 안자고는 못 베기지.”



우리는 곧바로 알아둔 장소로 이동을 했다. 지하철을 나오자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다.

 

 

형님은 언제 준비했는지 들고 있던 우산 중 하나를 나에게 건네주었다. 우산은 조금 큰 검은색으로 양복과 상당히 잘 어울렸다.



“조금 거리가 있긴 하지만 걸어가지.”



형님에 말에 칠복이 아저씨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는 별 반응 없이 형님의 뒤를 따랐다. 비가 온 시간이 그렇게 오래되진 않았는지 땅은 젖어있지 않았다.

 

 

시간이 걸리긴 했지만 곧 그 장소에 도착했고, 형님은 내가 들어갔던 방식과는 다르게 처음부터 뒷문으로 들어갔다. 내가 그 이유를 묻자 형님이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괜히 셔터 열었다가 노출되면 안 되잖아.”



문득 셔터를 열어놓고 마음껏 건물을 활개 쳤던 어제가 생각났다. 창피하긴 했지만 표정을 숨기고 모른 척 했다.

 

 

우리들은 들어가자마자 테이블에 둘러앉았다. 형님은 속주머니에서 수첩을 꺼내어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만나기로 한 시간은 11시야. 저번하고 같아.”


“어디서 만난 다음에 여기로 들어오시는 거죠?”


“그래야지. 그래야 경호원들을 떼어낼 수 있을 테니까.”



형님의 수첩엔 이것저것 많이 적혀있었다. 남들이 보면 알아보기 힘들 정도 였다. 나는 잠자코 형님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일단 너는 우리가 여기에서 나가면 저 옷장에 숨어있어.”


“역시 저 옷장이 맞군요.”


“그래. 내가 요란을 떨어서 정신없게 하면 전선기는 주변 환경에 신경 쓰지 않을 거야.”


“알겠습니다. 그런데 아직 11시가 되려면 한참 남았는데요?”


“만약의 사태에 대비를 하는 거야. 우리가 이동하는 중에 만나면 곧바로 올 수도 있으니까.”


“그렇군요.”


“칠복이랑 나는 전선기를 만나서 이 앞까지 온 다음에 나랑 전선기만 들어오게 될 거야.”



칠복이 아저씨가 왜 그런 무기들을 준비해 놨는지 짐작이 갔다.

 

 

칠복이 아저씨의 역할은 경호원들을 묶어 놓는 건데, 경호원들이 이상한 낌새를 느끼면 곧바로 위협을 가해올 것이다.

 

 

그런 상황에 대비한 것 같았다.



“그런 후에 물이나 음료를 먹게 하면 끝나는 거지.”


“차는 왜 렌트하신 거예요? 정말 추궁하라고?”


“그거야 너 하기 나름 아니겠냐?”


“무슨 소리예요?”


“묻고 싶은 거 없냐? 그런 놈한테.”



물론 기회만 된다면 할 말은 많았다. 묻고 싶은 게 한 두 개가 아니라 오히려 혼란스러울 정도였다.

 

 

너무 당연한 일이지만 현실성이 없어서 생각도 못하고 있었다. 내가 잠시 고민하는 동안 형님은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말했다.



“니 알아서 해. 죽이고 싶으면 바로 쏴 죽이고 아니면 같이 드라이브나 하면서 이야기 나눠, 어차피 깨어나 봤자 굵은 줄로 묶어놓으니까.”


“알겠습니다.”



알 수 없는 느낌이 뒷덜미를 통해서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이게 흥분인지 두려움인지는 알 길이 없었다.



“그럼 좀 있다가 보자.”



형님과 칠복이 아저씨가 가벼운 미소를 짓고 문 밖으로 나갔다. 나는 곧장 옷장의 문을 열었다. 미세한 곰팡이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얼굴이 절로 찌푸려졌지만 그다지 강하지 않은 냄새에 금방 익숙해 졌다. 나는 옷장 속에 몸을 구겨넣고 문을 닫았다.

 

 

옷장을 닫아버리자 문 사이로 미세하게 빛이 빗금처럼 들어왔다. 그 공간에 눈을 접촉하자 미세하게나마 밖이 보였다. 하지만 곧 관두고 말았다.



“불편해 죽겠군.”



옷장 문에 눈을 가까이 붙이려면 몸의 중심을 앞으로 해야 하는데, 그 자세를 유지하기엔 너무 옷장이 좁았다.

 

 

나는 이내 포기하고 옷장 내부 벽에 몸을 기댔다. 다행이 불편하진 않았다. 이 자세로 있다면 몇 시간이고 옷장 속에 있어도 될 것 같았다. 곧 체온 때문에 옷장 안이 적당히 따뜻할 정도가 되었다.



“큰일인데?”



자세도 편안하고 온도까지 적당하자 잠이 슬슬 오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오늘 아침은 너무 빨리 일어난 것 같았다.

 

 

나는 계속 하품을 쩍쩍 해대며 졸음을 쫓기 위해 별 수단을 다썼다. 허벅지를 꼬집어보기도 하고, 자세를 조금 불편하도록 바꿔보기도 했다.

 

 

하지만 한번 찾아온 졸음은 쉽게 달아나질 않았다.


한참 졸음과 싸우고 있는데, 허리춤에서 뭔가 걸리는 게 있었다.

 

 

처음엔 뭔가 하였지만 전선기의 가게에서 사온 칼이라는 사실을 아는 데는 그렇게 오래 걸리진 않았다. 나는 낑낑대며 칼을 꺼내보았다.

 

 

칼은 일회용처럼 보이는 비닐로 된 칼자루에 곱게 싸져 있었다. 나는 칼자루를 벗겨내듯 칼을 뽑아 좁은 빛에 의지해서 칼을 바라보았다.

 

 

칼은 내 얼굴을 양분하고 있던 빛을 받아 옷장 벽에 찬란하게 뿜어댔다.

 

 

나는 황홀한 표정으로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금세 질려 다시 넣으려 하다가 순간적으로 일그러지는 빛들을 보고 인상을 찌푸렸다.



“지문이 묻어 있잖아?”



보통 진열된 칼은 그 예기를 손님들에게 뽐내기 위해서 칼 면을 먼지 하나 내려앉지 못하게 닦아놓는 게 보통이었다. 하물며 지문은 상상할 수도 없다.



“언제 묻었지?”



곰곰이 그 장면을 되돌아보다가 김경은이 칼을 나에게 겨눈 채 설명을 하던 때가 떠올랐다. 아무래도 그때 묻은 모양이었다.

 

 

나는 그녀의 작은 실수를 발견하게 되자, 절로 미소가 피어올랐다.



“프로가 칠칠치 못하기는...”



나는 칼을 다시 넣어두려는 걸 멈추고 그녀의 지문이 묻은 칼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곧 머릿속에는 절대로 생각나지 않길 바랐던 감정들이 얇디얇은 실처럼 뿜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실들은 점점 뭉쳐서 소리가 되었다. 그 소리는 분명 그녀가 나에게 마지막으로 했던 말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새끼손가락으로 그녀의 지문에 내 지문을 포개보았다.

 

 

얼음장처럼 차가운 칼 면이 마치 물을 만진 듯한 착각을 주었고, 두 개의 작은 물결은 포개져서 마치 그물처럼 되었다.

 

 

다시 조심스럽게 손가락을 떼어보자, 그녀의 지문과 내 지문은 겹쳐져서 보잘 것 없는 얼룩이 되어 있었다.



“......!”



나는 옷장을 뛰쳐나왔다. 옷장 문은 팔 빠진 사람처럼 덜렁거렸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그대로 나는 뒷문의 자동차에 올라타서 시동을 걸었다.

 

 

마치 허공을 올라탄 것처럼 아슬아슬한 쾌락이 목구멍까지 차갑게 올라왔다.

 

 

 

 

운전대는 정신없이 흔들렸다. 하지만 차는 차선을 따라 반듯하게 이동하고 있었다. 귓 속의 고막이 터진 듯 끊임없이 누군가 중얼대는 소리가 귀에 들렸다.

 

 

내가 차를 운전을 하고 있는 건지, 차가 나를 운전하고 있는 건지 알 수 없었다. 엔진소리도 못 느낄 만큼의 중얼거림이 지난 후에 나는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머릿속으로는 수십 번 왔었던 곳에 드디어 처음 왔다.


나는 차에서 내렸다. 점점 두터워진 물방울이 머릿속을 해집고 두피를 두들겼다. 나는 조금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꺼내보았다.

 

 

이미 배터리가 없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는 무엇에 이끌린 듯 전원을 켰다. 침묵만을 지켰던 전화기가 어둡게 빛나며 켜졌다.

 

 

하지만 다시 꺼져버릴 것처럼 위태위태하게만 비춰졌다. 나는 고민하지 않고 전화를 했다. 전화기에서 그리워질 목소리가 울렸다.



--여보세요...?


“경은아.”


--선후 씨?


“할 이야기가 있어 잠깐만...”



나는 목소리를 더 낼 수 없었다. 더 말해봤자 의미는 없었다. 핸드폰은 비루한 소리를 내며 꺼져버렸고 나는 그제야 온몸의 추위를 느낄 수 있었다.

 

 

양복은 어제 저녁의 공을 들인 것도 무참할 정도로 속절없이 빗물에 젖어갔다.

 

 

고개를 들어 그녀가 있는 가게가 있는 방향을 보니 흐린 하늘 아래에서 형광등을 켜놓은 듯 밝게 사방을 비추고 있었다.

 

 

주변의 어떤 형형색색의 유혹에서도, 점점 거세지는 빗줄기 속에서도 가게의 문 밖에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이 이상 다가갈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자리에서 한참을 움직일 생각을 하지 못했다.


나는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는 가게 문을 하염없이 바라보다가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칼을 꺼냈다.

 

 

비닐속에서 깨끗한 광채를 뽐내던 칼은 빗방울 몇 번 맞고 그 광채가 흐려지고 말았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칼을 그 자리에 내려놓았다. 날씨가 추워지는지 한숨을 내쉬자 하얀 연기가 되어 밖으로 나타났다.


비를 얼마나 맞았는지는 모르겠다. 차에 다시 오르고도 한참동안 시동을 걸지 못한 채 앉아 있었다. 다시 돌아가기가 문득 겁이 났다.

 

 

돌아가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곳으로 가버리는 것 같았다. 그 생각은 몸이 덜덜 떨리기 시작해서야 흐릿해졌다.

 

 

문득 깜짝 놀라 손목시계를 바라보았을 때는 이미 11시가 조금 넘어 있었다.



“제기랄!”



운전대를 수차례 내려치고 내가 내린 결정은 다시 돌아가는 것이었다. 이젠 잃을게 없었다.

 

 

사고를 몇 차례 아슬아슬하게 넘기고 나는 그 건물 후문에 다시 주차를 시키고 급하게 후문의 문을 열었다.

 

 

안에선 형님이 초조한 표정으로 방안을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전선기는 이미 포박에 수갑까지 채워진 채로 곤히 잠들어 있었다. 형님은 나를 보곤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왔냐?”


“죄송합니다.”


“얼른 데려가기나 해라.”


“이 이야기는 나중에 반드시 해명을...”


“해명 필요 없으니까 얼른 데려가.”



형님과 나는 전선기를 들어 올려서 차의 조수석에 태웠다. 나는 약간 얼이 빠진 채로 운전석에 올랐다.

 

 

창문을 통해서 형님을 보자, 추궁이 아닌 걱정의 눈으로 날 쳐다보고 있는 게 빗물로 일그러진 창문을 통해 보였다.

 

 

형님은 나에게 무슨 말을 했지만 차창을 내리지 않는 한 그 소리가 들릴 리가 없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끄덕거리고 시동을 걸었다.

 

 

시동은 기다렸다는 듯, 한 번에 걸려들었고 나는 차를 출발 시켰다.



“어디로 갈까?”



나는 곤히 잠들어서 대답할 리 없는 전선기에게 물었다. 전선기는 입을 반쯤 벌린 채 잠든 사람 특유의 거친 호흡을 뱉어내고 있었다.

 

 

내가 갈 곳은 이미 정해져 있었다. 그 곳에서 끝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막상 이렇게 일이 됐음에도 아무런 저항도 받질 않아 조금 의아하긴 했지만 애써 냉정해지며 운전대를 놓지 않았다.

 

 

꽤 오랜 시간 운전을 하고 도착한 곳은 얼마 전에 왔었던 곳이었다. 나는 차에서 내려 주변 광경을 바라보았다.

 

 

비가 오고 있긴 했지만 내린지 얼마 안 되어 강의 수위는 높지 않았다.



“높군.”



절벽 아래를 내려다보자, 꽤 높은 낭떠리지가 보였다. 낭떠러지 밑에는 아직 물이 충분히 차오르지 않아 맨땅이 그대로 빗물에 젖고 있었다.

 

 

나는 조금 더 주변을 돌아보다가 채념하듯 차에 다시 올라탔다. 차에 타자마자 나는 양복 안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어 내 무릎위에 올려두었다.

 

 

비는 점점 거세졌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세의 불편함을 느낀 전선기가 새끼 고양이 같은 울음소리를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정면만 응시한 채로 그에게 말했다. 눈을 뜨고 있는 전선기의 얼굴을 보면 바로 방아쇠를 당겨버릴 것 같았다.



“일어났냐?”


“응...? 뭐, 뭐야 이건!”


“뭐긴 뭐야. 묶여있는 거지.”



전선기는 온몸을 비틀어대며 발버둥 쳤지만 엄지손가락 2개 굵기의 포승을 풀기엔 그는 너무나 약한 인간이었다.

 

 

나는 그의 발악을 충분히 맛보며 가만히 있었다. 결국 전선기는 소리를 크게 질러대기 시작했다.

 

 

나는 그 목소리를 마치 클래식 음악을 듣는 것처럼 음미하다가 그가 멈추자 말했다.



“왜, 더하지. 빗소리에 묻히는 것 좀 더 보게.”


“너 이 새끼. 그 유통업자 놈이랑...”


“유통업자는 아니고 한패긴 한패지.”



전선기는 눈을 부라리며 나를 쳐다보았다. 나는 여유롭게 그에게 말했다.



“내가 너를 여기까지 끌고 온 건 니 말에 대답하려고 그런 게 아니야.”


“무슨 소리야?”


“여기가 어딘지 알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우리 누나랑 성훈이가 있는 곳이다.”




나는 내심 무언가를 기대하며 전선기를 흘끗 바라봤지만 그의 표정은 변하지 않았다. 나는 기대한 스스로를 병신이라고 속으로 외치고 말했다.



“왜 그랬어?”


“뭘?”


“왜 죽였냐고.”



내 말이 끝나자마자 멀리에서 익숙한 소리가 들려왔다. 빗소리 때문에 제대로 들리진 않았지만 분명 익숙한 소리였다.

 

 

내 표정이 저절로 일그러졌다. 나의 이 반응을 놓치지 않고 전선기가 외쳤다.



“경찰차 소리!”



나는 총을 오른손에 제대로 쥐었다. 경찰들이 어떻게 이 장소를 알았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결론은 이 반장이었다.

 

 

이젠 정말 뒤를 돌아볼 여지조차 없어진 것 같았다.


전선기는 마치 이 상황을 즐기듯 나의 얼굴에 침을 튀기며 말했다.



“어쩔 건데? 여기서 날 죽이려고?”


“......”


“왜 죽였냐고 물어봤지? 내가 그 연놈들을 왜 죽였냐고?”



전선기의 모습은 흡사 광신도의 모습이었다. 나는 잠자코 그의 이야기를 계속 들었다. 그는 신이난 듯 웃음을 섞어가며 말했다.



“심심해서! 재밌으니까! 경찰들의 반응도 재밌고, 니 반응도 재밌고 죽인 새끼들 반응도 재밌고!”




그의 횡설수설은 계속 되었고 사이렌 소리는 어느새 차 바로 뒤편에서 들려왔다.

 

 

빗소리와 함께 울리던 사이렌 소리에는 곧 다른 소리가 끼어들었다.



--너는 지금 완전히 포위되었다. 지금 자수하면...



확성기에 대고 수십 번 내가 외쳤던 그 말이었다. 그리고 이 목소리는 분명 이 반장의 목소리다.

 

 

전선기는 기분 좋은 듯 박장대소 하고 있었고 나는 총을 들어 그의 관자놀이를 겨냥했다. 그의 얼굴은 곧바로 사색이 되었다.



“자, 잠깐 니가 지금 이러면 무조건 무기징역이야.”


“사형이어도 상관없어.”


“뭐?”


“잘 가라.”



나는 천천히 힘을 주어 권총 방아쇠를 당겼다. 전선기의 눈이 인간의 한계를 넘으며 커지는 것 같았다. 나는 결국 권총을 당겼다.



“어?”



권총은 나가질 않았다. 나는 몇 차례 더 방아쇠를 당겨봤지만 의미없는 소리만 틱틱거릴 뿐이었다.

 

 

전선기는 한껏 경직되어 있다가 상황을 알아챈 듯 웃었다.



“하하하핫, 이런 병신! 이런 것도 제대로 못하는 병신!”



나는 손을 덜덜 떨면서 탄알 집을 꺼내보았다.



“...!”



탄알이 하나도 있지 않았다. 심지어 미리 장전해 두었던 탄알조차 있지 않았다. 나는 당황스러워 하며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 생각을 해봤다.

 

 

분명 어제 정비를 할 때까지 탄알은 남아 있었다. 순간 머릿속을 스쳐지나가는 장면이 있었다.



“서주희!”



어설펐다. 분명 어설펐다. 서주희를 끝까지 믿지 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이렇게 되어버리고 말았다.

 

 

내가 잠깐 자리를 비운 틈에 서주희가 탄알을 다 빼버린 것이었다. 그때 이외에는 누구에게도 권총을 맡긴 적도 없고 보인적도 없었다.

 

 

나는 이빨을 으득으득 갈며 나불대는 전선기의 얼굴을 날려버렸다. 그는 아파서 고함을 지르다가도 다시 신나게 웃으며 나를 약 올렸다.

 

 

주변을 돌아보니 경찰들의 포위망은 점점 좁혀 들어오고 있었고 이제 와서 빠져나갈 구멍도 있질 않았다.

 

 

경찰들은 총을 나에게 겨눈 채 한걸음씩 다가오고 있었다.



“제길!”



나는 클랙슨을 길게 한번 울렸다. 덕분에 경찰들은 호들갑을 떨며 한발 물러섰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그리고 길이 없는 절벽을 향해서 액셀을 밟았다. 자동차 엔진도 각오를 한 듯 특유의 묵직함을 내며 속도를 냈다. 뒤에서 총성이 몇 발 울렸다.

 

 

차에 맞은 듯 빗소리와는 다른 거친 소리가 몇 번 울렸지만 곧 나와 전선기는 허공에 있었다.

 

 

차는 앞으로 쏠리며 오직 바닥만을 우리 눈앞에 비춰주었고 그 바닥은 순식간에 눈앞까지 들이닥쳤다.

 

 

엄청난 굉음이 귓속으로 쏟아졌고 나는 순간 정신을 잃을 것만 같았다.



“윽...!”



애써 정신을 차려보니 내 주변은 온통 붉게 물들어 있었다.

 

 

금속으로 만들어진 차체의 찢어진 파편은 내 오른쪽 복부에 파고들어 있었고, 허리 밑은 그 작은 공간에 끼어버렸는지 감각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앞이 흐려져 고개를 흔들어보았지만 이미 시야도 반쪽 밖에 보이지 않았다. 나는 필사적으로 전선기를 바라보았다.


전선기는 얼굴에 긁힌 자국이 조금 있었지만 그 외엔 심각해 보이지 않았다. 숨소리도 상당히 안정적인 상태였다.

 

 

하지만 정신을 잃었는지 숨을 쉬는 상태로 고개를 떨구고 있었다. 나는 아무생각도 하지 않고 그나마 멀쩡한 두 팔로 내 복부에 박힌 파편을 뽑아 들었다.

 

 

그리고 되는대로 몸을 틀어 그의 심장이 있을법한 부위에 파편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파편이 어느 정도 들어가자 전신기의 눈이 확 떠지더니 부들부들 떨기 시작했다. 입과 코에선 피가 흘러나왔다.



“히히...”



나는 나도 알 수 없는 웃음을 뱉어내며 더욱 깊숙이 찔러 넣었다. 계속 떨어대던 전선기의 몸이 멈추었고 곧 그의 호흡도 멈추었다.

 

 

나는 그 이후에도 한참동안 파편을 눌러댔던 것 같았다. 머리끝부터 뭔가 비어져 가는 게 느껴졌다.

 

 

아무런 고통도 없이, 고통이 있다면 내 몸을 채워가던 무언가가 빠져나가는 고통뿐이었다.
















비가 아직도 오고 있던가? 비가 그친 것 같았다.

 

 

 

 

어제까지 무려 3일동안 내리던 비가 그쳤어요. 저는 벌써 초등학교 2학년 2학기 첫 수업을 마치고 집에 가는 길입니다.



“희원아! 같이 가!”



멀리서 벌써 2년째 단짝 친구가 날 부르네요. 쟤는 쓸데없이 키만 커요. 그래서 요즘엔 옆에 같이 있기가 좀 싫어지더라고요. 너무 커.



“응!”



멀리서 뛰어오는 친구는 활짝 웃으며 저에게 물었어요.



“우리 집으로 놀러 올래? 숙제도 같이 좀 하구...”


“안돼. 오늘은 외식하기로 했어.”


“외식? 부럽다. 외식이면 가족들 다 가겠네?”


“당연하지!”



친구는 나를 엄청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봤어요. 왜냐면 우리 아빠는 친구들 사이에서 멋쟁이로 소문이 자자하거든요.

 

 

저번에 학예회에서인가? 그때 엄마가 바빠서 아빠가 회사도 제쳐놓고 오셨어요.



“어? 저기 너희 엄마 아니야?”


“응? 어디?”



친구가 가리키는 곳을 보니 엄마가 나를 보고 웃고 있어요. 저는 이럴때마다 머리 위로 손을 흔들며 인사를 해요.



“엄마!”



나는 친구를 보며 말해요.



“나 가볼게. 내일 보자!”


“부럽다. 내일 봐!”



나는 친구에게 인사를 하고 엄마에게 달려갔어요. 엄마는 웃을 때가 정말 이쁜데, 항상 절 볼 때 활짝 웃어주세요.



“엄마! 아빠는?”


“아빠는 조금 늦게 오신다고 하셨어.”


“응? 왜?”


“일이 있으셔서.”


“무슨 일?”


“그런 일이 있어.”



엄마가 이렇게 말하면 더 물어보면 안돼요. 더 물어보면 조금 곤란해 하시는 것 같아요.

 

 

바로 외식하러 갈 것 같았는데, 아빠 일 때문에 못가게 될 것 같아요. 나는 잔뜩 삐쳐서 공부방에서 책을 읽고 있었어요.

 

 

저녁은 이미 먹었구요. 일부러 아빠 올때까지 안자고 있었는데, 그냥 자려고 할 때 아빠가 오는 소리가 들렸어요.

 

 

나는 일부러 나가지 않고 있었어요.



“희원아! 아빠 오셨는데 나와야지.”



문 밖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렸어요. 하지만 전 움직이지 않았답니다. 그리고 곧 아빠 목소리가 들렸어요.



“주희야, 희원이 무슨일 있었어?”


“외식 안해서 그런가봐요. 대체 누구 장례식 이었어요?”


“응, 가게 직원이야. 그냥 직원도 아니고 맨 처음부터 같이 했던 직원이라.”


“그럼 젊겠는데?”


“응. 아직 20대였지. 자살했데.”


“아휴. 왜 그랬데요?”


“모르겠어. 하필 우리 가게 칼로 손목을 그었어. 일식 칼로.”


“그거에 베이면 큰일일 텐데.”


“그러게 말이야. 나는 희원이랑 좀 이야기좀 해 볼까?”



아빠가 들어오려나 봐요. 나는 최대한 삐친 표정으로 자리에 앉아 있었어요.

 

 

근데 들어오기 직전에 전화가 와요. 아빠는 항상 소리가 크게 들리도록 전화를 받으세요.



“여보세요?”


--아, 예. 죄송합니다만. 박선후가 이번 사건에 연관된 걸 아십니까?


“음... 잘 모르겠는데요.”


--그러시면 됐습니다. 사실 이번 자살 건에서 칼에서 박선후의 지문이 같이 나와서요.


“그럼 타살인가요?”


--아닙니다. 확실히 자살입니다. 지문은 예전에 묻었던 것 같더군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내 방 문이 열렸어요. 아빠는 오자마자 나를 와락 안아 줬어요.

 

 

나는 기분이 바로 풀리긴 했지만 아빠가 나를 안아주는 건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아빠는 다 좋은데 귀 모양이 좀 이상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