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만 봐도 눈물 나는 뮤직비디오

대한민국사람2013.05.28
조회142

 

 

조수미의 나 가거든 이다.

그냥 볼때마다 왠지 마음이 아프다.

명성황후께서 시해당하시기 전 정말로 나는 조선의 국모다. 라고 하셨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저 말이 그렇게 아프고 그렇게 뜨겁다.

 

벌써 이 뮤비가 나온지 10년이 지났는데도.. 아직도 가끔 돌려본다.

 

요즘들어 더 생각나는건 시국이 이래서인지......

 

 

 

캐릭터 하나하나도 전부 너무 딱 맞듯이 보였고..

문근영의 어린시절도.... 정말 예쁜거 같긴 하다. 여전히..

 

아무튼지간.. 볼적마다 애국심이 마구마구 온 몸을 휘감는다.

 

 

 

 

 

<<마지막까지 꼭 보세요>>

 

 

나는 조선의 국모다.

비록 타오르고 타올라 그저 한줌의 재로 흩어져

바람을 타고 빗물에 쓸려 외롭게 떠돌지라도

이것이 어찌 내 마지막이라 하겠는가

 

 

명성황후 [1851~1895]

 

본관은 여흥. 성은 민씨로.

1951년 (철종2) 경기도 여주에서 태어났다.

증 여의정 치록의 딸이다.

9세 때 고아가 되어 본가에서 가난하게 자라다가

흥성대원군의 부인 부대부인 민씨의 추천으로 왕비에 간택 책봉되었다.

 

1894년 7월 일본 세력을 등에 업은 흥선대원군이 재등장하면서

갑오개혁이 시작되자,

러시아에 접근하여 일본 세력을 추방하려고 했다.

이에 일본 정부의 사주를 받은 주한 일본공사 미우라 고로가 1895년 10월 8일

일본 낭인을 궁중에 잠입시켜 경복궁 옥호루에서 그녀를 난자시해 하고,

시신은 궁궐 밖으로 운반하여 소각하였다.

이 사건이 바로 을미사변이다.

 

하지만 최근 시해장소가 옥호루가 아니라 경복궁 장안당과 곤령합사이에 있는 마당이라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했다.

 

그 뒤 폐위되어 서인으로 강등되었다가,

같은해 10월 복호되었고,

1897년(광무 1) 명성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그해 11월 국장으로 청량리 밖 홍릉에 묻혔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명성황후에 대해 재평가작업이 일어나면서,

을미사변이 미우라 고로의 단독범행 또는 그의 후원을 받은 민간인들이나 일본 낭인들의 범행,

흥선대원군과 명성황후의 권력투쟁의 산물이라는 설이 지배적이었는데,

차츰 이러한 통설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