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틈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괴물들을 기계적인 동작으로 처리한다. 대검을 휘둘러 뒤통수나 눈알 부분. 턱 아래 부분. 목 부분에 거침없이 박아 넣는다. 혼자라면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히 커서 부담이 되지만 우리는 여럿이고 남자의 공헌이 지대했다.
“크으으으.”
문틈 사이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괴물들의 시체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체들이 높게 쌓여서 자연스럽게 바리게이트가 만들어졌다.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녀석들을 이렇게 이용하는 날도 있다니..
“후..”
손과 발 옷.. 모두가 검붉은 피로 얼룩져있다. 해도 완전히 떨어져 어두워졌고 시체 너머에서는 아직도 괴물들의 소리가 생생히 들린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괴물로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동생의 말에 모두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적당한 때를 봐서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모두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했는지 자신의 상태를 살피지도 않고 바닥에 편하게 주저 앉았다. 은혜는 구석에 앉아 초코를 보듬기만 할 뿐,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은혜가 알려줬더라면 그렇게 문을 부수지는 않았을텐데..”
지나가는 말로 우민이 형이 말하자 준우 아저씨가 받아쳤다.
“그건 그렇고 대체 누가 우릴 이렇게 가둬둔걸까?” “피곤했나봐요. 그렇게 박아대는데 영 깨질 않았으니..”
소리.. 쿵쿵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문이 잠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 고의적으로 가둔거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정말 낮에 봤던 그 학생 녀석들의 짓인걸까?
“하지만 왜 그런 짓을..”
동생이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소총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것 때문이겠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개인화기니까 말이야.” “하지만 낮에는..” “그래. 하지만 좀 더 확실하고 강력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건지도 몰라.”
아저씨의 말에 모두 숙연해졌다. 남아 있는 생존자끼리 이렇게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다니.. 서로 도우면서 살아 갈수는 없는 건가? 탁. 탁. 준우 아저씨가 대검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내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음?” “우리가 여기서 사라지는 것.. 그게 아마 녀석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확실히. 우릴 없앨 속셈이었다면 자는 도중에 들어와 흉기를 휘둘렀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단순히 가둬두기만 했으니.. 경고 차원에서 그러는건가?”
뭔가 이상하다. 단지 우리가 떠나길 원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가둬두는 것일까. 그 정도로 움직이고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녀석들이 왜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어떻게 보면.. 우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막아둔 것이 아닐까.
“크으으으.”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시체 바리게이트 사이를 비집고 들춰내려는 팔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흔들거리는 시체 바리게이트를 가만히 보며 대검을 꽉 쥐었다.
남자의 커다란 소리로 녀석들을 움직이게 할까? 아니다. 괴물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상식이 다르다. 만약 실패한다면 주위에 있는 모든 괴물들까지 몰려드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인간 형태라지만 체력적인 한계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온다.”
그 말과 함께 바리게이트가 앞으로 무너지며 수 많은 괴물들의 붉은 눈동자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주르륵. 몸에 돋아나는 소름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지막 우두머리와의 일전에서 느꼈었던 검은 흑막 속에서 붉게 빛나는 무리들. 그것이 그대로 연상된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 앉을 수만도 없다. 강하게 대검을 움켜잡는다. 짧게 호흡을 하며 기다린다. 후.. 후우. 긴장하지마라 이진성.
“크으으.”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한 괴물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서 서서히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당장 녀석에게 달려가 대검을 목에 꽂아 넣고는 그대로 밀어버린다. 약하게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는 괴물은 그대로 동료들의 품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작은 여파로 인해 괴물들의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순식간에 틈이 생긴 것을 남자는 그대로 지나치지 않았다. 단숨의 그 사이로 뛰어든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괴물들의 머리를 부수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넋 놓고 볼 시간 조차 아깝다. 우린 본능적으로 남자가 뚫어놓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퍼벅. 퍼퍼퍽. 퍽. 깨지는 소리와 으깨지는 소리가 섞이면서 괴물들의 비명소리가 귓속 가득히 멤돈다. 바닥에 끈적하게 붙어 있는 살덩이와 핏덩이가 신발과 바지 사이로 스며드는 것 같아 찝찝함이 배가된다. 하지만 여기까지 겪어온 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대검을 소총에 착검시키고 남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걸어간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청 복도를 완전히 뚫었을 때 즈음 완전히 지친 남자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수고했어.”
난 그렇게 남자에게 말하고 앞으로 나서며 괴물들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었다. 아직 숫자는 꽤 되어보였다.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나가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수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공격적으로 나서며 괴물들을 천천히 쓰러트렸다.
왈왈.
그러던 중. 은혜 품안에서 조용히 있던 초코 녀석이 짖어대며 괴물들의 틈 속으로 쏘옥 들어가버렸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것일까. 하지만 녀석에게 신경 쓸 정도로 우리의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크으..”
눈 앞에서 비틀거리며 나를 먹기 위해 손을 뻗는 녀석의 이마에 대검을 강하게 꽂아 넣는다. 꾸르르. 요상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를 토하며 뒤로 넘어지는 녀석. 그리고 그 뒤를 바로 이어 다른 녀석이 내게 다가온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대검을 꽂아 넣을 준비를 한다.
“초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와 눈 앞을 가리는 은혜 때문에 대검을 휘두르지 못한다. 방금 초코가 사라진 방향으로 망설임 없이 향하는 은혜. 안돼 은혜야. 안돼. 그 쪽으로 가면.. 손을 뻗어 잡고 싶지만 뻗어나가려던 대검을 급히 다른 방향으로 트는 탓에 몸이 크게 옆으로 쏠렸다.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제길!”
바로 앞. 은혜를 발견한 괴물은 지체 없이 그쪽으로 달려들었고 난 돌아가는 반동을 이용하여 다른 발로 땅을 힘차게 밟아 앞으로 구르다시피 나아갔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숨쉬며 헐떡거리는 녀석의 턱에 대검을 꽂아 넣고 옆으로 밀쳐냈다.
하지만 녀석은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이 없는지 내 몸을 움켜잡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당연히 무게중심이 불안한 내 몸은 옆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고 그대로 넘어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은혜야!”
몸에 통증보다는 그 작은 틈 사이를 귀신 같이 비집고 나아가는 은혜에게 시선이 쏠렸다. 재빨리 녀석의 머리를 걷어차고 일어나 뒤에서 헐떡거리는 남자를 보며 말한다.
“어서! 은혜가 앞에 있어!”
남자는 말 없이 크게 도약하여 은혜가 있던 곳에 착지해 남은 괴물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한다. 작은 틈이 꽤 커다란 공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얼른 은혜를 잡아야한다. 소총을 꽉 쥐고 은혜가 뛰어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초코..” “은혜야!”
애타게 은혜를 부르지만 초코 생각에 완전히 정신이 팔린 은혜는 나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채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제길.. 제기랄! 그 놈에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크으..”
시청 골목 곳곳에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괴물들이 느리게 걸어나온다. 그 사이를 아슬하게 달려가고 있는 은혜와 그 뒤를 쫓는 나. 위험천만하다. 이대로 포위가 되면 속수무책이다.
“크아아!”
어느새 다가왔는지 내 옆에 다가온 녀석이 두 팔을 벌려 내 몸을 감싸려고 한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몸이 먼저 반응하다. 개머리판으로 녀석의 명치 부분을 힘껏 치고 팔꿈치로 머리를 강하게 내리 찍었다. 그 동작에 녀석은 옆으로 쓰러져버렸지만 은혜와의 거리는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은혜야!”
애가 탔다. 이대로 은혜를 놓쳐버리거나 녀석들에게 당할 꼴을 상상하니 절로 다급해지고 초조해졌다. 이를 악물고 은혜 뒤를 쫓는다.
“태성아, 여기!”
신은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나보다. 낮에 들리던 익숙한 목소리와 그 주인공이 은혜의 앞에 나타났다. 두 명뿐이었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나 다름 없었다. 태성이라고 불린 녀석과 그 친구로 보이는 녀석은 주위에 얼쩡거리는 괴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은혜와의 거리를 단박에 좁힐 수 있었고 마침내 따라잡을 수 있었다.
콰악. 은혜의 얇은 팔을 강하게 움켜쥔다. 버둥거리며 나아가려는 은혜를 강제로 껴안아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서 뒤로 슬슬 물러났다. 앞에는 아직 여럿의 괴물들이 있지만 당장 이쪽으로 올 모양은 아닌 것 같았다.
“후.. 은혜야.” “초코. 초코..”
울컥. 순식간에 뭔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버둥거리는 은혜를 힘으로 고정시킨다.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집착을 하는거야. 하마터면..
휘잉.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꽤 생생하게 들린다. 문득 은혜의 표정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밖에나가지마시오 78화
밖에나가지마시오 76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http://pann.nate.com/talk/318421259
출처 - 웃대 삶이무의미함 님 -
문틈으로 꾸역꾸역 몰려드는 괴물들을 기계적인 동작으로 처리한다. 대검을 휘둘러 뒤통수나 눈알 부분. 턱 아래 부분. 목 부분에 거침없이 박아 넣는다. 혼자라면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히 커서 부담이 되지만 우리는 여럿이고 남자의 공헌이 지대했다.
“크으으으.”
문틈 사이로 차곡차곡 쌓여가는 괴물들의 시체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시체들이 높게 쌓여서 자연스럽게 바리게이트가 만들어졌다. 다행인건지 불행인건지.. 녀석들을 이렇게 이용하는 날도 있다니..
“후..”
손과 발 옷.. 모두가 검붉은 피로 얼룩져있다. 해도 완전히 떨어져 어두워졌고 시체 너머에서는 아직도 괴물들의 소리가 생생히 들린다.
“그래도 다행이에요. 괴물로 변하지는 않으니까요.”
동생의 말에 모두 한숨을 쉬며 동의했다. 당장은 무리겠지만 적당한 때를 봐서 밖으로 나가야 할 것 같았다. 모두 체력적인 소모가 상당했는지 자신의 상태를 살피지도 않고 바닥에 편하게 주저 앉았다. 은혜는 구석에 앉아 초코를 보듬기만 할 뿐, 다른 말을 하지는 않았다.
“은혜가 알려줬더라면 그렇게 문을 부수지는 않았을텐데..”
지나가는 말로 우민이 형이 말하자 준우 아저씨가 받아쳤다.
“그건 그렇고 대체 누가 우릴 이렇게 가둬둔걸까?”
“피곤했나봐요. 그렇게 박아대는데 영 깨질 않았으니..”
소리.. 쿵쿵 거리는 소리를 들었을 때는 이미 문이 잠겨져 있는 상태였다. 그렇다면 분명 누군가가 우리를 발견하고 고의적으로 가둔거라고 밖에 설명되지 않는다. 정말 낮에 봤던 그 학생 녀석들의 짓인걸까?
“하지만 왜 그런 짓을..”
동생이 말하자 옆에 앉아 있던 아저씨가 소총을 두드리며 말했다.
“이것 때문이겠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없는 개인화기니까 말이야.”
“하지만 낮에는..”
“그래. 하지만 좀 더 확실하고 강력한 뭔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건지도 몰라.”
아저씨의 말에 모두 숙연해졌다. 남아 있는 생존자끼리 이렇게 눈치를 보며 살아가야 하다니.. 서로 도우면서 살아 갈수는 없는 건가? 탁. 탁. 준우 아저씨가 대검에 묻은 피와 살점을 털어내며 말했다.
“어디까지나 제 생각인데요..”
“음?”
“우리가 여기서 사라지는 것.. 그게 아마 녀석들이 바라는 것이 아닐까요?”
“..확실히. 우릴 없앨 속셈이었다면 자는 도중에 들어와 흉기를 휘둘렀겠지. 하지만 그러지 않았어. 단순히 가둬두기만 했으니.. 경고 차원에서 그러는건가?”
뭔가 이상하다. 단지 우리가 떠나길 원하다는 이유로 이렇게 가둬두는 것일까. 그 정도로 움직이고 무기들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녀석들이 왜 우리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았을까. 어떻게 보면 어떻게 보면.. 우리들을 보호하기 위해 문을 막아둔 것이 아닐까.
“크으으으.”
오래 생각할 시간이 없었다. 시체 바리게이트 사이를 비집고 들춰내려는 팔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다.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난 우리는 흔들거리는 시체 바리게이트를 가만히 보며 대검을 꽉 쥐었다.
남자의 커다란 소리로 녀석들을 움직이게 할까? 아니다. 괴물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것과 상식이 다르다. 만약 실패한다면 주위에 있는 모든 괴물들까지 몰려드는 상황이 될지도 모른다. 아무리 인간 형태라지만 체력적인 한계에 있는 우리들에게는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다.
“온다.”
그 말과 함께 바리게이트가 앞으로 무너지며 수 많은 괴물들의 붉은 눈동자가 빛나는 것이 보였다. 주르륵. 몸에 돋아나는 소름이 그대로 느껴진다. 마지막 우두머리와의 일전에서 느꼈었던 검은 흑막 속에서 붉게 빛나는 무리들. 그것이 그대로 연상된다. 하지만 이대로 주저 앉을 수만도 없다. 강하게 대검을 움켜잡는다. 짧게 호흡을 하며 기다린다. 후.. 후우. 긴장하지마라 이진성.
“크으으.”
구멍이 뚫린 것을 확인한 괴물들은 동료들의 시체를 밟고서 서서히 우리들에게 다가오기 시작한다. 그것을 가만히 보고 있을 수는 없다. 당장 녀석에게 달려가 대검을 목에 꽂아 넣고는 그대로 밀어버린다. 약하게 비명을 지르며 허우적거리는 괴물은 그대로 동료들의 품에서 허우적거리기 시작했고 그 작은 여파로 인해 괴물들의 사이에 작은 틈이 생겨났다.
순식간에 틈이 생긴 것을 남자는 그대로 지나치지 않았다. 단숨의 그 사이로 뛰어든 그는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괴물들의 머리를 부수며 길을 뚫기 시작했다. 넋 놓고 볼 시간 조차 아깝다. 우린 본능적으로 남자가 뚫어놓는 길을 따라 이동했다.
퍼벅. 퍼퍼퍽. 퍽. 깨지는 소리와 으깨지는 소리가 섞이면서 괴물들의 비명소리가 귓속 가득히 멤돈다. 바닥에 끈적하게 붙어 있는 살덩이와 핏덩이가 신발과 바지 사이로 스며드는 것 같아 찝찝함이 배가된다. 하지만 여기까지 겪어온 일들에 비하면 이 정도는 약과다. 대검을 소총에 착검시키고 남자와의 거리를 유지하며 천천히 걸어간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시청 복도를 완전히 뚫었을 때 즈음 완전히 지친 남자는 더 이상 나아가지 못했다.
“수고했어.”
난 그렇게 남자에게 말하고 앞으로 나서며 괴물들의 머리통에 구멍을 내주었다. 아직 숫자는 꽤 되어보였다. 할 수 있다. 이 정도의 숫자라면 우리 모두가 힘을 합쳐 나가면 충분히 물리칠 수 있는 수다. 그것을 잘 알고 있는 우리들은 공격적으로 나서며 괴물들을 천천히 쓰러트렸다.
왈왈.
그러던 중. 은혜 품안에서 조용히 있던 초코 녀석이 짖어대며 괴물들의 틈 속으로 쏘옥 들어가버렸다. 두려움을 이기지 못하고 도망친 것일까. 하지만 녀석에게 신경 쓸 정도로 우리의 상황은 그리 여유롭지 못하다.
“크으..”
눈 앞에서 비틀거리며 나를 먹기 위해 손을 뻗는 녀석의 이마에 대검을 강하게 꽂아 넣는다. 꾸르르. 요상한 소리와 함께 검붉은 피를 토하며 뒤로 넘어지는 녀석. 그리고 그 뒤를 바로 이어 다른 녀석이 내게 다가온다. 가볍게 심호흡을 하고 대검을 꽂아 넣을 준비를 한다.
“초코..”
갑자기 들려오는 소리와 눈 앞을 가리는 은혜 때문에 대검을 휘두르지 못한다. 방금 초코가 사라진 방향으로 망설임 없이 향하는 은혜. 안돼 은혜야. 안돼. 그 쪽으로 가면.. 손을 뻗어 잡고 싶지만 뻗어나가려던 대검을 급히 다른 방향으로 트는 탓에 몸이 크게 옆으로 쏠렸다. 소리를 질러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청하고 싶지만 그럴 상황이 아니다.
“제길!”
바로 앞. 은혜를 발견한 괴물은 지체 없이 그쪽으로 달려들었고 난 돌아가는 반동을 이용하여 다른 발로 땅을 힘차게 밟아 앞으로 구르다시피 나아갔다. 그리고 바로 위에서 숨쉬며 헐떡거리는 녀석의 턱에 대검을 꽂아 넣고 옆으로 밀쳐냈다.
하지만 녀석은 호락호락하게 당할 생각이 없는지 내 몸을 움켜잡고 그대로 옆으로 쓰러져버렸다. 당연히 무게중심이 불안한 내 몸은 옆으로 쏠릴 수 밖에 없었고 그대로 넘어지는 것으로 이어졌다.
“은혜야!”
몸에 통증보다는 그 작은 틈 사이를 귀신 같이 비집고 나아가는 은혜에게 시선이 쏠렸다. 재빨리 녀석의 머리를 걷어차고 일어나 뒤에서 헐떡거리는 남자를 보며 말한다.
“어서! 은혜가 앞에 있어!”
남자는 말 없이 크게 도약하여 은혜가 있던 곳에 착지해 남은 괴물들을 쓰러트리기 시작한다. 작은 틈이 꽤 커다란 공간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얼른 은혜를 잡아야한다. 소총을 꽉 쥐고 은혜가 뛰어가고 있는 곳으로 달려간다.
“초코..”
“은혜야!”
애타게 은혜를 부르지만 초코 생각에 완전히 정신이 팔린 은혜는 나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않은채로 앞으로만 나아간다. 제길.. 제기랄! 그 놈에 강아지를 데려오는 것이 아니었는데!
“크으..”
시청 골목 곳곳에 붉은 안광이 번뜩이며 괴물들이 느리게 걸어나온다. 그 사이를 아슬하게 달려가고 있는 은혜와 그 뒤를 쫓는 나. 위험천만하다. 이대로 포위가 되면 속수무책이다.
“크아아!”
어느새 다가왔는지 내 옆에 다가온 녀석이 두 팔을 벌려 내 몸을 감싸려고 한다. 생각할 겨를이 없다. 몸이 먼저 반응하다. 개머리판으로 녀석의 명치 부분을 힘껏 치고 팔꿈치로 머리를 강하게 내리 찍었다. 그 동작에 녀석은 옆으로 쓰러져버렸지만 은혜와의 거리는 더욱 벌어질 수 밖에 없었다.
“은혜야!”
애가 탔다. 이대로 은혜를 놓쳐버리거나 녀석들에게 당할 꼴을 상상하니 절로 다급해지고 초조해졌다. 이를 악물고 은혜 뒤를 쫓는다.
“태성아, 여기!”
신은 나를 완전히 버리지 않았나보다. 낮에 들리던 익숙한 목소리와 그 주인공이 은혜의 앞에 나타났다. 두 명뿐이었지만 나에게는 천군만마나 다름 없었다. 태성이라고 불린 녀석과 그 친구로 보이는 녀석은 주위에 얼쩡거리는 괴물들을 처리하기 시작했다. 그 덕에 은혜와의 거리를 단박에 좁힐 수 있었고 마침내 따라잡을 수 있었다.
콰악. 은혜의 얇은 팔을 강하게 움켜쥔다. 버둥거리며 나아가려는 은혜를 강제로 껴안아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서 뒤로 슬슬 물러났다. 앞에는 아직 여럿의 괴물들이 있지만 당장 이쪽으로 올 모양은 아닌 것 같았다.
“후.. 은혜야.”
“초코. 초코..”
울컥. 순식간에 뭔가가 치밀어 올랐지만 크게 심호흡을 하고 버둥거리는 은혜를 힘으로 고정시킨다. 대체 왜.. 왜 이렇게까지 집착을 하는거야. 하마터면..
휘잉.
바람을 가르는 파공음이 꽤 생생하게 들린다. 문득 은혜의 표정이 크게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퍼억.
꽤 가까운 소리에서 들려오는 타격음이다. 근처에 괴물놈이 있었나?
“으.. 은혜.”
왜.. 눈이 감기는 것일까.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은혜야.. 은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