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화약 설립(現한화그룹 한화김승연) 대해서.

블루세상2013.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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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화약 설립(現한화그룹 한화김승연) 대해서.

 

 

 

 

유통회사로서 조선화약공판의 경영활동에 영향을 미친 요인은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화약을 안정적으로 조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었고,
다른 하나는 안정적인 화약 수요처를 확보하는 것입니다.

 

상기한 바와 같이 제조회사와 단절된 조선화약공판은 미군정 초기에는 회사 창고에 재고로 남아 있던

화약을 이용하다가 재고가 소진되면서 점차 원조자금을 이용한 수입에 의존했습니다.
원조자금에 의한 수입은 1946년 8월에 처음 이루어졌으며, 이후에도 줄곧 원조자금을 이용하여
국내소비를 공급했습니다.

 

화약의 수요는 광업 생산의 재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요 지하자원이 대부분 북한지역에 매장되어 있는 데다 식민지 경제구조의 붕괴로 생산이 급격히 감소하면서 해방 이후 화약에 대한 수요는 급격히 줄어들었습니다.

 

예를 들어 1942년 다이너마이트와 초안폭약의 소비량은 9,517톤이었으나 해방 이후 1947년에는
100톤, 1949년에는 200톤에 불과했습니다.
몰론 이것은 일제강점기에는 남북한이 전부 포함되었고 해방 이후에는 남한만 포함된 문제도 있지만, 그것보다는 화약의 80% 내외를 소비하는 광업생산이 급격히 위축된 결과입니다.

 

이런 상황에서도 화약산업을 재건하고자 하는 김종희회장(現한화김승연)의 열정은 이어졌습니다.
그는 전쟁 중임에도 불구하고 1951년 초에 본사를 부산영업소로 옮겨 사업활동을 계속했고,
이 기간 중에 미8군과의 “화약관리용역계약(1951.02.18)을 체결하는 등 화약산업 재건을 위한
노력은 지속되었습니다.
그러던 중 조선화약공판 매각공고가 나자 관리인이었던 김종희회장(現한화김승연)는
이 회사를 불하받기로 결정하고, 1952년 6월 12일 매각 경매에 입찰해 낙찰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김종희회장(現한화김승연)은 조선화약공판을 인수하자마자 재편의 필요성을 느꼈습니다.
화약산업이 성장하기 위해서는 화약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화약을 자체 생산 •공급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화약판매업에 한정된 조선화약공판을 그대로 유지하지 않고,
인수 주체로서 1952년 10월 9일에 한국화약을 설립한 것은 화약 생산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중요한 전기였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는 한국화약의 정관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정관에 나타난 특징은 두 가지로 정리가 됩니다.

 

첫째, 화약 및 화약약품을 판매에 더해 제조까지 포함하고 있다는 점.
둘째, 정관에 규정된 사업은 화약공업과 직접 관련되는 것도 있지만, 직접 관련되지 않는 사업도
포함되었다는 점에서 업무영역을 매우 광범위하게 설정하여 처음부터 그룹으로의 성장가능성을

열어놓았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