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아산에 거주중인 27남아 입니다 맨날 눈팅만 하다 처음으로 글을 올려보네요 참 제목이 간단 명료 하지요? 큰뜻은 없고 그냥 저같은 사람이 또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적어 봅니다.. 저희가족은 현재 5남매중 장남입니다. 요새 제나이 치곤 형제가 많으나 원래는 3남매였고 막내입니다 위로 누이 둘이구요..제가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이혼을 하시고.그후에는 저는 아버지와 서울에서둘이 살고 누이들은 친가에서 할머니와 학생시절을 보냈지요.. 그덕에 전 7살 이후로 누나들과 같이 살아본적이 없네요 그땐 아버지가 참 미웠지만 어린 저에게 제가 하고싶은거 입고싶은거 먹고싶은거 다하게 해주시더군요 아버지도 저에게 정말 미안하셨나 봅니다..뭐 이혼후에도 전 어머니는 자주 만낫었구요 그렇게 차츰 익숙해질때 초등학교 4학년때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어린나이에 전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무진장 울었었죠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런 힘든 시기가 지나고 아버지와 저에 사이는 누가봐도 부러운 부자사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돈독해졌고 물론 아버지에게 혼도 많이나고 많이 맞기도 했지만 서로 기댈사람이 아버지와 아들밖에 없으니 사이가 좋아질 수밖에요..ㅎㅎ 초등학교6학년때 아버지는 재혼을하셨고.(조선족분)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지요 두명이나 ㅎㅎ 그렇게 되서 저흰 5남매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재혼후에도 누이들과는 같이 살지를 못했습니다 형편이 그닥 좋은건 아니였으니까요 새어머니는 그렇게 좋은분은 아니였습니다 이부분은 생략할께요 시간이 지나 제가 스물다섯때 새어머니와 이혼을 했고 동생들과 저 아버지 이렇게 네식구가 살았었습니다.. 스무살 이후에는 평소 아버지와 저는 집에서 대화 를 잘하지 않았지만 그저 마음의 대화라고나 할까요.. 행동들과 눈치로도 알았으니까요.. 이혼하는날 저는 아버지께 딱한마디 했습니다 "아버지 전 아버지랑 단둘이 살았을때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습니다"라구요... 아버지는 그말을 들으신후 고개를 끄떡이셨습니다 ..아마 아버지 마음도 그러셨을 테니까요.. 작년일이네요... 작년 여름때 일이 없어 아버지가 노실때 동생들과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휴가비를 드렸습니다 전 일때문에 가질못했구요 그렇게 동생들과 사진도 많이 찍고 좋은 경치도 많이 찍어서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니 제기분도 참으로 좋았었습니다 그후 평소와 다르지않게 일을 하던 7월이였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심한 변비가 오셨었죠..전 대수롭게 생각을 안했고 아버지를 병원레 데려가 관장을 했었습니다 (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관장하면 싹다 나오지요..) 근데 이상한건 변이 나오질 않더군요... 관장을 두번 세번을 해도 약만 도로 나오는겁니다..그땐 정말 아차 싶었습니다... 머리를 세게 맞는것처럼 띵 하더군요 ..동네 병원을 간터라 얼른 다시 아버지를 데리고 큰 대학병원을 가 검사라는 검사는 싹다 해봤습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정말 칠흙 같았고... 아버지는 화장실을 가시는게 두려우셔서 식사도 못하셨지요..병원진단 결과는 정말 절 쓰러지게 만들더군요.. 위암4기..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랍니까.. 4기라니..전 정말 그날 아버지 모르게 엄청 울었네요... 서둘러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전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간호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병원 입원후에 시술과 수술을 몇차례 하시고 마약 진통제와 영양제로만 근근히 버티셨고..몸은 점점더 안좋기 시작했지요.... 폐에 물도 차기 시작하고 배도 불러오고..나중에는 소변도 나오지를 않더군요...전 하루에 잠을 3~4시간 자며 두달을 그렇게 간호를 했고(환자 간호하는게 정말 힘들더군요 ...젊은 저도 드러누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애원 하고 또 했지만 끝내 10월 17일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습니다..폐내부에도 물이 차기시작하면서 심장이 견디질 못했다고.... 의사가 그러더군요..지금 생각하니 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 아버지의 발인전날 삼베 옷을 입히는데 상조 직원이 묻더군요.. 참석 하시겠냐고 ..전 그래서 그랬습니다" 네 참석합니다 근데 부탁하나만 드릴께요 제가 아버지 씻겨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고 그말을 들은 상조 직원분이 고개를 끄떡이며 우시더군요.. 병원에 있는 두달동안 아버지를 한번도 씻겨드릴수가 없었습니다.. 온몸에 호수가 꽂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아버지를 닦으면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상조 직원분들도 사람인지라 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나 봅니다 아무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예전에 아버지가 친가 선산에 납골당을 지어 놓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장남이고 또 직업이 석공사 셨기 때문에 대리석으로 의리의리 하진 않았지만 저희 조상님들이 다들어가고도 제 밑으로3대까진 들어갈수 있는 넉넉한 공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다만 제 살아 생전에 아버지가 먼저 들어 가실줄은 생각도 안해봤으니까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아직도 정정 하시거든요...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 보내드렸습니다.. 발인을 하면서 동시에 친어머니묘지를 꺼내어 어머니와 합장을 시켜드렸습니다...아버지와 발인날을 맞출려고 저희 친척모든 분들이 발뻗고 도와주신덕에 다행이 아무런 문제 없이 할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동생들은 새어머니한테 보냈습니다 제가 이나이에 어린동생들을 키울수는 없으니까요.. 아니 없다기보다..동생들이 엄마한테 가고 싶어 하더군요.. 뭐.. 당연한겁니다 저도 어렸을땐 엄마 껌딱지 였으니까요... 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아산에 있는 큰누이 집에서 살게 되었네요.. 올해 4월에 와서 적응중입니다.. 일끝나고 늦게와서 적은지라 맥락이 뒤죽 박죽이네요 ㅎㅎ 글쓰면서 많이 울었네요.. 모든분들이 잘 아실테지만 부모님께 효도 하는거 어려운거 아닙니다 .. 뭐 내가 사는게 형편이 어쩐다 저쩐다 하는데 그딴건 멍멍이나 주세요..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할수 있는 효도는 많습니다.. 저도 뒤늦게 후회했지만요.. 알면서도 안하는게 사람이니까요... 그런말 잊잖아요.. 사람은 간사하다..정말 맞는거 같네요.. 아버지 보내고 나서 서류정리를 하다보니 아버지 돌아가신날이 새어머니랑 이혼한지 딱 1년째 되는날이더군요..우연인지 악몽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서류를 보고 하루종일 멍때렸네요 ㅎㅎ 이만 줄여야겠네요 잠이 쏟아집니다
악플 다실꺼면 그냥 나가세요 왜냐구요? 그건 본인이 더 잘아실꺼 같네요 전 제 인생사를 풀이한것 뿐이고 또다른 사람들에게 이런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글을 보신분들은 오늘 하루 주무시기전에 내부모나 형제가 없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한번쯤은 생각해 봐주시길 바래요.. 자기 인생에 독이 될것같진 않을것 같네요.. 전 요새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아버지만 생각하면 힘이 나네요..아버지 몫까지 살아야하니 힘내야 되거든요^^ p.s 오타가 있다면 양해해 주세요 잠도오고 중요한건 아이뻐 입니다 ㅎㅎ
아.버.지
맨날 눈팅만 하다 처음으로 글을 올려보네요
참 제목이 간단 명료 하지요?
큰뜻은 없고 그냥 저같은 사람이 또나오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으로 적어 봅니다..
저희가족은 현재 5남매중 장남입니다. 요새 제나이 치곤 형제가 많으나 원래는 3남매였고 막내입니다 위로 누이 둘이구요..제가 초등학교때 아버지가 이혼을 하시고.그후에는 저는 아버지와 서울에서둘이 살고 누이들은 친가에서 할머니와 학생시절을 보냈지요.. 그덕에 전 7살 이후로 누나들과 같이 살아본적이 없네요 그땐 아버지가 참 미웠지만 어린 저에게 제가 하고싶은거 입고싶은거 먹고싶은거 다하게 해주시더군요 아버지도 저에게 정말 미안하셨나 봅니다..뭐 이혼후에도 전 어머니는 자주 만낫었구요 그렇게 차츰 익숙해질때 초등학교 4학년때 사고로 어머니가 돌아가셨고 그어린나이에 전 어머니의 영정사진을 들고 무진장 울었었죠 ..지금도 생생하네요.. 그런 힘든 시기가 지나고 아버지와 저에 사이는 누가봐도 부러운 부자사이라는 말을 들을 만큼 돈독해졌고 물론 아버지에게 혼도 많이나고 많이 맞기도 했지만 서로 기댈사람이 아버지와 아들밖에 없으니 사이가 좋아질 수밖에요..ㅎㅎ
초등학교6학년때 아버지는 재혼을하셨고.(조선족분)새로운 생명이 탄생했지요 두명이나 ㅎㅎ
그렇게 되서 저흰 5남매가 되어 버렸습니다..
하지만 재혼후에도 누이들과는 같이 살지를 못했습니다 형편이 그닥 좋은건 아니였으니까요
새어머니는 그렇게 좋은분은 아니였습니다 이부분은 생략할께요
시간이 지나 제가 스물다섯때 새어머니와 이혼을 했고 동생들과 저 아버지 이렇게 네식구가 살았었습니다..
스무살 이후에는 평소 아버지와 저는 집에서 대화
를 잘하지 않았지만 그저 마음의 대화라고나 할까요..
행동들과 눈치로도 알았으니까요.. 이혼하는날 저는 아버지께 딱한마디 했습니다
"아버지 전 아버지랑 단둘이 살았을때가 지금보다 훨씬 좋았습니다"라구요... 아버지는 그말을 들으신후 고개를 끄떡이셨습니다 ..아마 아버지 마음도 그러셨을 테니까요..
작년일이네요...
작년 여름때 일이 없어 아버지가 노실때 동생들과 어디 바람이라도 쐬고 오라고 휴가비를 드렸습니다 전 일때문에 가질못했구요 그렇게 동생들과 사진도 많이 찍고 좋은 경치도 많이 찍어서 함박웃음을 지으시면서 돌아오시는 모습을 보니 제기분도 참으로 좋았었습니다 그후 평소와 다르지않게 일을 하던 7월이였습니다 아버지가 갑자기 심한 변비가 오셨었죠..전 대수롭게 생각을 안했고 아버지를 병원레 데려가 관장을 했었습니다 (해보신분들은 아시겠지만 관장하면 싹다 나오지요..) 근데 이상한건 변이 나오질 않더군요... 관장을 두번 세번을 해도 약만 도로 나오는겁니다..그땐 정말 아차 싶었습니다... 머리를 세게 맞는것처럼 띵 하더군요 ..동네 병원을 간터라 얼른 다시 아버지를 데리고 큰 대학병원을 가 검사라는 검사는 싹다 해봤습니다.. 검사결과를 기다리는 일주일이 정말 칠흙 같았고... 아버지는 화장실을 가시는게 두려우셔서 식사도 못하셨지요..병원진단 결과는 정말 절 쓰러지게 만들더군요.. 위암4기.. 이게 대체 무슨 소리랍니까.. 4기라니..전 정말 그날 아버지 모르게 엄청 울었네요... 서둘러 아버지를 입원시키고 전 회사를 그만둬야 했습니다 ..아버지를 간호할 사람이 없으니까요...
병원 입원후에 시술과 수술을 몇차례 하시고 마약 진통제와 영양제로만 근근히 버티셨고..몸은 점점더 안좋기 시작했지요.... 폐에 물도 차기 시작하고 배도 불러오고..나중에는 소변도 나오지를 않더군요...전 하루에 잠을 3~4시간 자며 두달을 그렇게 간호를 했고(환자 간호하는게 정말 힘들더군요 ...젊은 저도 드러누울 정도였으니까요..)
그렇게 애원 하고 또 했지만 끝내 10월 17일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습니다..폐내부에도 물이 차기시작하면서 심장이 견디질 못했다고.... 의사가 그러더군요..지금 생각하니 또 눈시울이 붉어지네요 ..
아버지의 발인전날 삼베 옷을 입히는데 상조 직원이 묻더군요.. 참석 하시겠냐고 ..전 그래서 그랬습니다" 네 참석합니다 근데 부탁하나만 드릴께요 제가 아버지 씻겨 드리고 싶습니다"라고 했고 그말을 들은 상조 직원분이 고개를 끄떡이며 우시더군요..
병원에 있는 두달동안 아버지를 한번도 씻겨드릴수가 없었습니다.. 온몸에 호수가 꽂혀 있었으니까요.. 그렇게 아버지를 닦으면서 참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상조 직원분들도 사람인지라 제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보였나 봅니다 아무소리 없이 눈물을 흘리시더군요... 예전에 아버지가 친가 선산에 납골당을 지어 놓으셨습니다... 아버지가 장남이고 또 직업이 석공사 셨기 때문에 대리석으로 의리의리 하진 않았지만 저희 조상님들이 다들어가고도 제 밑으로3대까진 들어갈수 있는 넉넉한 공간으로 만드셨습니다.. 다만 제 살아 생전에 아버지가 먼저 들어 가실줄은 생각도 안해봤으니까요... 저희 할아버지 할머니 아직도 정정 하시거든요...
그렇게 아버지를 떠나 보내드렸습니다.. 발인을 하면서 동시에 친어머니묘지를 꺼내어 어머니와 합장을 시켜드렸습니다...아버지와 발인날을 맞출려고 저희 친척모든 분들이 발뻗고 도와주신덕에 다행이 아무런 문제 없이 할수가 있었습니다..
지금 현재는 동생들은 새어머니한테 보냈습니다 제가 이나이에 어린동생들을 키울수는 없으니까요..
아니 없다기보다..동생들이 엄마한테 가고 싶어 하더군요.. 뭐.. 당연한겁니다 저도 어렸을땐 엄마 껌딱지 였으니까요... 전 서울생활을 청산하고 아산에 있는 큰누이 집에서 살게 되었네요.. 올해 4월에 와서 적응중입니다.. 일끝나고 늦게와서 적은지라 맥락이 뒤죽 박죽이네요 ㅎㅎ 글쓰면서 많이 울었네요..
모든분들이 잘 아실테지만 부모님께 효도 하는거 어려운거 아닙니다 .. 뭐 내가 사는게 형편이 어쩐다 저쩐다 하는데 그딴건 멍멍이나 주세요.. 굳이 돈이 아니더라도 할수 있는 효도는 많습니다.. 저도 뒤늦게 후회했지만요.. 알면서도 안하는게 사람이니까요... 그런말 잊잖아요.. 사람은 간사하다..정말 맞는거 같네요.. 아버지 보내고 나서 서류정리를 하다보니 아버지 돌아가신날이 새어머니랑 이혼한지 딱 1년째 되는날이더군요..우연인지 악몽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서류를 보고 하루종일 멍때렸네요 ㅎㅎ
이만 줄여야겠네요 잠이 쏟아집니다
악플 다실꺼면 그냥 나가세요 왜냐구요? 그건 본인이 더 잘아실꺼 같네요
전 제 인생사를 풀이한것 뿐이고 또다른 사람들에게 이런일들이 일어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이글을 보신분들은 오늘 하루 주무시기전에 내부모나 형제가 없어진다면 어떤 기분일까 어떤 마음을 갖게 될까 ..한번쯤은 생각해 봐주시길 바래요.. 자기 인생에 독이 될것같진 않을것 같네요..
전 요새 일이 고되고 힘들어도 아버지만 생각하면 힘이 나네요..아버지 몫까지 살아야하니 힘내야 되거든요^^
p.s 오타가 있다면 양해해 주세요 잠도오고 중요한건 아이뻐 입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