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좀비가 한국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장난일거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좀비, 드라큘라와 같은 서양 호러물의 주인공들은 영화에서조차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소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좀비는 사실이었다. 몇몇 나라와 동시 다발적으로 좀비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좀비에 물린 사람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썩은 악취를 풍기는 좀비로 변했다. 물론 좀비에 물리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생각보다 좀비는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성인 남녀 구분 없이 충분히 제압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 혹은 친구나 친척이 좀비로 변하자 많은 사람들은 절망감에 빠졌다.
좀비 현상이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자 한국 정부도 난색을 표했다. 곧이어 성명을 발표했는데 좀비 한 개체의 근력은 건장한 남성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정도며 따라서 필요에 따라 군대가 동원될 시에는 2주 만에 완전 소탕이 가능하다, 전국 각지에 피난 시설을 마련하고 있으니 안전한 생활도 가능할 것이고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그 내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 경력이 없고 신원이 확인한 선에서 총기 구입을 허용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 국민들은 정부의 발 빠른 대처에 만족했고 갓 대통령에 당선된 대통령의 지지도는 수직 상승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정부의 대대적인 포획, 소탕 작전 이후 좀비 현상은 인터넷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간간히 포획되지 않은 좀비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막상 경찰이 출동해 보니 그냥 일반 주민이었다는 뉴스만 대부분이었다. 히려 좀비 상태였던 아들이 언어를 되찾고 있다는 희망적인 뉴스가 매체를 통해 방영됐고, 어떤 좀비는 TV프로그램에까지 나왔다. (원래 이 좀비는 좀비가 되기 전에 개그맨이 꿈이었다고 한다. 사연을 접한 개그맨들이 그 어머니에 연락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것을 승낙했다. 유명세를 탄 이 좀비는 ‘좀비 치료제 1호 투약 대상자’로 지정되었다.) 또한 좀비 가족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의 청원으로 그들에 대한 호칭을 ‘좀비’에서 ‘가사자(假死子-일시적으로 사망한 자)’로 부르는 법안이 통과 중에 있다. 이제 한국은 완전히 평화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는 이런 와중에 시작된다.
올해 31세의 김근영은 오늘도 회사 사무실에 앉아 턱을 괴고 여유로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 넥타이는 반쯤 풀어져 대롱거렸고 두꺼운 뿔테 안경은 코 끝에 걸려 중력과 위태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류급 회사 이름에 걸맞는 널찍하고 깨끗한 사무실과는 달리 그의 책상은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그는 좀비가 등장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몰래 시청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재밌게 보시나?”
짜증을 꾸역꾸역 응축한 듯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김근영은 모니터를 끄고 넥타이를 고쳐 맸다. 안경을 올려 쓰니 부서 부장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부장 뒤로 자신의 동기 여직원들이 눈을 흘기며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좀비가 좋으면 좀비랑 결혼하지 그래. 일반 여성 중에 근영씨랑 결혼하고 싶어할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일거리가 없어서요.”
“일거리가 없다고?”
순간 부장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듯 그의 낯빛이 변했지만 무엇보다 체면을 우선시하는 그인지라 싸울 상대가 되지 않는 삼류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그저 여유 있게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있다가 내 자리로 잠깐 와요. 그럼 내가 직접 일거리를 주지.”
“네 죄송합니다.”
김근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어떻게 이 녀석 상관을 박살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부장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부장이 떠나고 김근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선천적인 사회 부적응자였다. 단 한번도 누군가, 혹은 집단과 제대로 어울려 본 일이 없었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늘 맞고 다니는 학생이었고 삼수 끝에 입학한 일류 대학교에서도 자신을 받아주는 친구는 없었다. 군대에서나 지금 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무도 김근영이 자라온 환경을 알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김근영의 어린 시절부터의 잦은 병치레로 거의 병원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갑자기 사회에 완벽히 적응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라는 건 갑자기 동네 개에게 날개 달려 날아가라는 말과 다름 없었다. 그저 그들은 김근영을 때리거나 힐난하거나 무시할 뿐이었다.
김근영은 부장이 일하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양 어깨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들어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근영이 짧게 대답하고 들어가자 얼굴이 벌겋게 물든 채로 방에서 나오는 팀장과 마주쳤다. 그는 성난 얼굴로 김근영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반대로 부장은 김근영을 향해 짐짓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근영씨가 요즘 일이 없다고 해서, 팀장한테 몇 마디 했어. 회사가 말이야. 그것도 우리 같은, 세계와 맞서는 회사가 일이 없으면 안 되잖아. 회장님이 우리가 일이 없다고 하면 과연 우리를 써 주겠어? 자, 받아.”
그는 김근영에게 두꺼운 서류철을 내밀었다.
“여기 있는 프로젝트, 오늘까지 다 정리하도록. 알겠지? 앞으로는 내가 직접 일 줄테니까. 알아서 해봐.”
“네 알겠습니다.”
김근영은 알았다. 오늘 자신이 집에 일찍 돌아가기 글렀다는 것을. 문을 닫고 나오니 자신을 향해 성난 얼굴로 손짓하는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김근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에게 향했다.
길게만 느껴졌던 20분이 지나고 김근영은 자신의 자리에 축 늘어졌다. 좀비. 이 단어가 김근영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자신은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 어쩌면 좀비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는 절망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밤 12시. 김근영은 그 시간이 되어서야 컴퓨터를 끌 수 있었다. 마침 같은 시간 회사를 빠져 나갈 채비를 하는 몇몇 동료들을 보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김근영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끼리만 웃고 떠들며 부장을 욕하는 한 두마디를 하고는, 김근영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김근영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론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김근영은 1층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자신의 차에 올라탄 그는 한참을 흐느꼈다. 온갖 종류의 서러움이 폭탄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얼마나 흐느꼈을까,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강남역 부근에서 만나는 거 맞죠? 네. 저 20분 뒤에 가요.”
김근영이 차를 몰고 약속 장소로 나가자 짧은 스커트를 입은 한 여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옆에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렸다.
“김유리씨, 김유리씨 맞으세요?”
“아, 안녕하세요.”
여성은 조심스러운 눈길로 그를 훑어보았다. 여성의 눈이 자신의 눈과 마주치자 김근영은 고개를 숙였다. 안심했는지 어땠는지 여성은 순순히 그의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김근영은 다시 자동차 페달을 밟았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오늘은 좀 편한 데 묵고 싶은데.”
김유리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 했다. 김근영은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그럼 저기 호텔로 갈게요.”
한차례 길지 않은 섹스가 끝나고 김근영은 여성의 위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를 김유리는 짜증 섞인 태도로 밀쳤다.
“미안해.”
“아 됐고, 거기 담배나 주세요.”
김유리가 이불을 끌어당기며 김근영에게 손짓했다. 그가 건네는 담배를 낚아채고 그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최악이야.”
김근영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아 그놈의 미안해 소리 그만 좀 할 수 없어요? 아저씨 애인 없죠?”
김근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물어보고 싶은데, 뭐가 최악이야?”
김유리는 약간 놀란 얼굴이 되어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쳐다본 그의 얼굴에 노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김유리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말이 없자 그는 재차 물었다.
“만약 말이야. 내가 그렇게 최악이면 말이지. 나랑 좀비랑 있다면 누굴 택하고 싶어?”
김유리는 인상을 쓰고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곤 팬티부터 집어들고 입기 시작했다.
“꼰대가 그러더라. 아저씨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 대답을 원해요?”
김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이없는 미소를 그를 향해 지어 보였다. 마치 흉물스러운 그 무언가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좀비.”
웃옷을 집어들며 그녀가 말했다.
그 후로 김근영은 시간 날 때마다 좀비에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그것은 후각으로 서로를 탐색하는 개처럼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때때로 그는 아예 ‘좀비가 될까’ 하는 충동마저 느끼곤 했다. 밤새 좀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 직장에 늦는 일도 허다했다. 어차피 팀장과 부장의 눈 밖에 난 지는 오래고, 이미 회사에 김근영의 자리가 없다는 것은 갓 입사한 인턴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자신이 가입해 있던 인터넷 사이트에 [전남 명영읍 주변엔 사람보다 좀비가 더 많다. 그들은 스스로 방위대라 부르며 좀비랑 싸우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좀비 인터넷 사이트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한 그는 다행히 그 글을 볼 수 있었지만 그 글은 곧바로 삭제되었다.
좀비형 인간
처음 좀비가 한국에 발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한 사람들은 모두 누군가의 장난일거라 여겼다. 그도 그럴 것이 좀비, 드라큘라와 같은 서양 호러물의 주인공들은 영화에서조차 한국과는 전혀 상관없는 소재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좀비는 사실이었다. 몇몇 나라와 동시 다발적으로 좀비 현상이 일어나고 있었다. 영화에서 보던 것과 마찬가지로 좀비에 물린 사람은 한 시간이 채 되지 않아 썩은 악취를 풍기는 좀비로 변했다. 물론 좀비에 물리는 것 자체가 힘들 정도로 생각보다 좀비는 빠르지도, 강하지도 않았다. 성인 남녀 구분 없이 충분히 제압 가능할 정도였다. 하지만 자신의 가족, 혹은 친구나 친척이 좀비로 변하자 많은 사람들은 절망감에 빠졌다.
좀비 현상이 그치지 않고 사회 문제로 대두되기 시작하자 한국 정부도 난색을 표했다. 곧이어 성명을 발표했는데 좀비 한 개체의 근력은 건장한 남성이 충분히 제압할 수 있는 정도며 따라서 필요에 따라 군대가 동원될 시에는 2주 만에 완전 소탕이 가능하다, 전국 각지에 피난 시설을 마련하고 있으니 안전한 생활도 가능할 것이고 치료법을 개발하고 있기에 얼마 지나지 않아 좀비를 다시 사람으로 되돌리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는 게 그 내용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범죄 경력이 없고 신원이 확인한 선에서 총기 구입을 허용하겠다는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한국 국민들은 정부의 발 빠른 대처에 만족했고 갓 대통령에 당선된 대통령의 지지도는 수직 상승했다.
그리고 1년이 지났다. 정부의 대대적인 포획, 소탕 작전 이후 좀비 현상은 인터넷에서나 볼 수 있는 일이 되었다. 간간히 포획되지 않은 좀비가 나타났다는 소식이 있었지만 막상 경찰이 출동해 보니 그냥 일반 주민이었다는 뉴스만 대부분이었다. 히려 좀비 상태였던 아들이 언어를 되찾고 있다는 희망적인 뉴스가 매체를 통해 방영됐고, 어떤 좀비는 TV프로그램에까지 나왔다. (원래 이 좀비는 좀비가 되기 전에 개그맨이 꿈이었다고 한다. 사연을 접한 개그맨들이 그 어머니에 연락했고, 어머니는 아들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그것을 승낙했다. 유명세를 탄 이 좀비는 ‘좀비 치료제 1호 투약 대상자’로 지정되었다.) 또한 좀비 가족을 가지고 있는 가족들의 청원으로 그들에 대한 호칭을 ‘좀비’에서 ‘가사자(假死子-일시적으로 사망한 자)’로 부르는 법안이 통과 중에 있다. 이제 한국은 완전히 평화를 되찾은 것처럼 보였다.
이야기는 이런 와중에 시작된다.
올해 31세의 김근영은 오늘도 회사 사무실에 앉아 턱을 괴고 여유로이 인터넷 서핑을 하고 있다. 넥타이는 반쯤 풀어져 대롱거렸고 두꺼운 뿔테 안경은 코 끝에 걸려 중력과 위태로운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일류급 회사 이름에 걸맞는 널찍하고 깨끗한 사무실과는 달리 그의 책상은 온갖 쓰레기와 잡동사니들로 가득했다. 그는 좀비가 등장하는 오락 프로그램을 몰래 시청하고 있었다.
“뭘 그렇게 재밌게 보시나?”
짜증을 꾸역꾸역 응축한 듯한 목소리에 화들짝 놀란 김근영은 모니터를 끄고 넥타이를 고쳐 맸다. 안경을 올려 쓰니 부서 부장이 팔짱을 끼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는 것을 깨달았다. 부장 뒤로 자신의 동기 여직원들이 눈을 흘기며 지나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렇게 좀비가 좋으면 좀비랑 결혼하지 그래. 일반 여성 중에 근영씨랑 결혼하고 싶어할 사람도 없을 것 같은데.”
“죄송합니다. 지금 당장 일거리가 없어서요.”
“일거리가 없다고?”
순간 부장의 인내가 한계에 다다른 듯 그의 낯빛이 변했지만 무엇보다 체면을 우선시하는 그인지라 싸울 상대가 되지 않는 삼류 직원에게 목소리를 높일 수는 없었다. 그저 여유 있게 한마디 던질 뿐이었다.
“있다가 내 자리로 잠깐 와요. 그럼 내가 직접 일거리를 주지.”
“네 죄송합니다.”
김근영이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어떻게 이 녀석 상관을 박살낼까 하는 생각으로 가득 찬 부장 눈에는 들어오지 않았다. 부장이 떠나고 김근영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선천적인 사회 부적응자였다. 단 한번도 누군가, 혹은 집단과 제대로 어울려 본 일이 없었다. 중, 고등학교에서는 늘 맞고 다니는 학생이었고 삼수 끝에 입학한 일류 대학교에서도 자신을 받아주는 친구는 없었다. 군대에서나 지금 이 회사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아무도 김근영이 자라온 환경을 알아주지 않았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김근영의 어린 시절부터의 잦은 병치레로 거의 병원에서 지내다시피 했다. 그는 그의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할머니 밑에서 자랐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갑자기 사회에 완벽히 적응해서 자신들의 입맛에 맞게 행동하라는 건 갑자기 동네 개에게 날개 달려 날아가라는 말과 다름 없었다. 그저 그들은 김근영을 때리거나 힐난하거나 무시할 뿐이었다.
김근영은 부장이 일하는 방의 문을 두드렸다. 그의 양 어깨가 오늘따라 더욱 무겁게 느껴졌다.
“들어와.”
부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김근영이 짧게 대답하고 들어가자 얼굴이 벌겋게 물든 채로 방에서 나오는 팀장과 마주쳤다. 그는 성난 얼굴로 김근영의 아래 위를 훑어보았다. 반대로 부장은 김근영을 향해 짐짓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근영씨가 요즘 일이 없다고 해서, 팀장한테 몇 마디 했어. 회사가 말이야. 그것도 우리 같은, 세계와 맞서는 회사가 일이 없으면 안 되잖아. 회장님이 우리가 일이 없다고 하면 과연 우리를 써 주겠어? 자, 받아.”
그는 김근영에게 두꺼운 서류철을 내밀었다.
“여기 있는 프로젝트, 오늘까지 다 정리하도록. 알겠지? 앞으로는 내가 직접 일 줄테니까. 알아서 해봐.”
“네 알겠습니다.”
김근영은 알았다. 오늘 자신이 집에 일찍 돌아가기 글렀다는 것을. 문을 닫고 나오니 자신을 향해 성난 얼굴로 손짓하는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 김근영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에게 향했다.
길게만 느껴졌던 20분이 지나고 김근영은 자신의 자리에 축 늘어졌다. 좀비. 이 단어가 김근영의 머릿속을 관통했다. 자신은 좀비와 다를 바 없는 인간이라는 것, 어쩌면 좀비보다 못한 인간이라고 스스로를 생각했다. 그는 절망적으로 머리를 감쌌다.
밤 12시. 김근영은 그 시간이 되어서야 컴퓨터를 끌 수 있었다. 마침 같은 시간 회사를 빠져 나갈 채비를 하는 몇몇 동료들을 보았지만 그들 중 아무도 김근영과 눈을 마주치지 않았다. 그들끼리만 웃고 떠들며 부장을 욕하는 한 두마디를 하고는, 김근영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김근영에게는 익숙한 상황이었지만 한편으론 절대 익숙해질 수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김근영은 1층 버튼을 눌렀다. 이윽고 자신의 차에 올라탄 그는 한참을 흐느꼈다. 온갖 종류의 서러움이 폭탄처럼 한꺼번에 쏟아져 내렸다. 얼마나 흐느꼈을까, 그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안녕하세요. 오늘은 강남역 부근에서 만나는 거 맞죠? 네. 저 20분 뒤에 가요.”
김근영이 차를 몰고 약속 장소로 나가자 짧은 스커트를 입은 한 여성을 볼 수 있었다. 그는 그 옆에 차를 세우고 차창을 내렸다.
“김유리씨, 김유리씨 맞으세요?”
“아, 안녕하세요.”
여성은 조심스러운 눈길로 그를 훑어보았다. 여성의 눈이 자신의 눈과 마주치자 김근영은 고개를 숙였다. 안심했는지 어땠는지 여성은 순순히 그의 차 문을 열고 올라탔다. 김근영은 다시 자동차 페달을 밟았다.
“장소는 어디가 좋을까요?”
“오늘은 좀 편한 데 묵고 싶은데.”
김유리는 그를 쳐다보지도 않고 말 했다. 김근영은 마른 입술을 침으로 적셨다.
“그럼 저기 호텔로 갈게요.”
한차례 길지 않은 섹스가 끝나고 김근영은 여성의 위에서 숨을 몰아쉬었다. 그런 그를 김유리는 짜증 섞인 태도로 밀쳤다.
“미안해.”
“아 됐고, 거기 담배나 주세요.”
김유리가 이불을 끌어당기며 김근영에게 손짓했다. 그가 건네는 담배를 낚아채고 그녀는 담배를 꺼내 물었다.
“최악이야.”
김근영은 다시 고개를 숙였다.
“미안해.”
“아 그놈의 미안해 소리 그만 좀 할 수 없어요? 아저씨 애인 없죠?”
김근영이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김유리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근데 물어보고 싶은데, 뭐가 최악이야?”
김유리는 약간 놀란 얼굴이 되어서는 그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쳐다본 그의 얼굴에 노기가 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김유리는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가 말이 없자 그는 재차 물었다.
“만약 말이야. 내가 그렇게 최악이면 말이지. 나랑 좀비랑 있다면 누굴 택하고 싶어?”
김유리는 인상을 쓰고는 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껐다. 그리곤 팬티부터 집어들고 입기 시작했다.
“꼰대가 그러더라. 아저씨 좀 이상한 사람이라고. 그런데 이정도일 줄은 몰랐네. 대답을 원해요?”
김근영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는 어이없는 미소를 그를 향해 지어 보였다. 마치 흉물스러운 그 무언가를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좀비.”
웃옷을 집어들며 그녀가 말했다.
그 후로 김근영은 시간 날 때마다 좀비에 관련된 정보를 인터넷으로 검색했다. 그것은 후각으로 서로를 탐색하는 개처럼 거의 본능적인 행동이었다. 때때로 그는 아예 ‘좀비가 될까’ 하는 충동마저 느끼곤 했다. 밤새 좀비에 대한 정보를 검색하다 직장에 늦는 일도 허다했다. 어차피 팀장과 부장의 눈 밖에 난 지는 오래고, 이미 회사에 김근영의 자리가 없다는 것은 갓 입사한 인턴들도 알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자신이 가입해 있던 인터넷 사이트에 [전남 명영읍 주변엔 사람보다 좀비가 더 많다. 그들은 스스로 방위대라 부르며 좀비랑 싸우고 있다.]는 글이 올라온 것이다. 좀비 인터넷 사이트에 거의 상주하다시피 한 그는 다행히 그 글을 볼 수 있었지만 그 글은 곧바로 삭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