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나가지마시오 88화

메시아2013.07.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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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에나가지마시오 76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http://pann.nate.com/talk/318421259

밖에나가지마시오  86화 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ㅡ>http://pann.nate.com/talk/318636985

 

 

출처 - 웃대 삶이무의미함 님 -

 

 

백색. 넓고 끝이 보이지 않는 공간 안에서 숨을 내쉰다. 흰색.. 옅고 아름다운 은은한 서리가 입에서 나온다. 후우. 그것을 가만히 바라본다. 주위를 둘러본다. 익숙한 공간이다. 하지만 생각나지 않는다. 어디.. 어디였지?

“....”

또 다른 내가 있다. 언제 나타났는지 모르겠다. 그저 눈으로 보고 인식하고 있었을 때 이미 다른 내가 나를 보며 서있었다. 천천히 입술이 위로 올라간다. ‘나’는 나를 보고 웃는다. 입술틈을 비집고 나오는 날카로운 송곳니. 분명 본적이 있다. 어디선가 분명..

“....”

기억이 나지 않는다. 여기에 왜 있는지 왜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하는지.. 갑갑하고 답답하다. 부드득. 송곳니가 갈리며 ‘나’가 내 쪽으로 걸어온다. 사람의 모습이 아니다. 검은 털을 뒤덮고 있는 것이 흡사 늑대와도 같았다. 언제 저렇게 변해버린 것이지? 천천히 걸어오는 늑대. 입을 벌리며 두터운 손을 뻗는다. 꽈악. 단단히 내 어깨를 잡는다.

“크르르르.”

짐승의 낮은 소리가 온 몸을 따갑게 두드려댄다. 이상하게도 무섭지 않았다. 떨리지 않았다. 가만히 그 늑대를 본다. 그저 가만히. 붉은 진홍색의 눈동자에서 내 모습이 투명하게 반사된다.

“크으..아!”

늑대의 두터운 손이 내 몸을 꿰뚫는다. 푸욱! 낯선 소리와 함께 상체가 앞으로 크게 쏠린다. 아프지가 않다. 이상하다. 뭔가가 공허한 느낌.. 한없이 공허한 무언가가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것 같다.

투둑. 투두둑.

비가 내린다. 하늘에서 비가 내린다. 백색의 공간이 서서히 녹색으로 물들기 시작한다. 멍하니 그것을 바라본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편해 진다. 이대로 눈을 감고 싶었다. ‘크르르르’ 늑대가 낮게 울부짖는다.

“....”

힘겹게 고개를 들어 늑대를 바라본다. 녹색으로 물들어가는 공간을 보며 포효하던 늑대가 나를 보며 입을 벌린다. 진홍색의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본다. 투명한.. 투명한 액체가 가득 흘러내리고 있다. 왜.. 왜? 그렇게 나를 보는거지?

“크아아!”

녹색으로 변해버린 하늘과 땅이 꺼진다. 우루루 무너져내리는 공간과 함께 내 몸도 갈기갈기 찢겨진다. 아프지 않았다. 그저 내 몸에서 하염없이 흐르는 녹색의 물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자연스럽다. 처음부터 내 몸에 흐르는 것 같다.

“크아아아!”

울고 있다. 그것은 나를 보며 울고 있는 것이다. 슬퍼하고 있는 것이다. 왜. 왜 나를 보며 우는것일까. 그런 모습을 하고도.. 나를 갈기갈기 찢어 놓고서 왜.. 왜.


**


“흐음..”

자연스레 눈이 떠진다. 아마 그대로 바닥에서 잠이든 것 같다. 천천히 몸을 일으킨다. 약간 쑤시기는 하지만 움직이는데 지장은 없다. 주위를 둘러본다. 아저씨와 남자는 벽 쪽에 대충 앉아서 고개를 푹 숙이고 있었고 그 옆에는 은혜가 죽은 듯이 누워있는게 보인다.

“후.”

숨을 크게 내쉬며 창문 쪽으로 다가간다. 광고 표지로 코팅된 틈 사이로 언뜻 보이는 밝은 빛이 희끄무레하게 보인다. 날이 밝았다. 창문을 열어 공기를 마시고 싶지만 참기로 한다. 괴물들이 모여 있을지도 모르니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

그러고보니 뭔가 허전하다. 분명 무언가를 본 것 같았는데.. 꿈을 꾼 것 같았는데 기억이 나지 않는다. 뭐지? 이상하게 찝찝하다. 머릿속에 깊게 남은 것 같았는데 왜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것일까.

“흐음.”

그나저나 의외다. 남자가 자는 모습은 아마 함께 지내는 동안 처음 보는 것 같다. 항상 은혜 곁에 시중을 들면서 일체 잠도.. 아니, 마음 편히 쉬는 꼴을 못 봤다. 그런 남자가 벽에 기대어 잠을 자고 있다니.. 점점 사람과 가까워지고 있는 것인가? 그래. 그럴지도 모른다. 최근 남자는 부쩍 쉬는 시간도 많아졌고 먹을 것 역시 자주 챙겨 먹곤 했었다. 처음 대면했을 때와 천지차이인 것은 분명하다.

“그나저나..”

다들 어디에 있는 걸까. 이 근처가 아니라면 좋겠는데.. 뭐, 안전한 곳에 있으니 아저씨와 남자가 왔겠지. 지금은 그런 걱정일랑 하지 말고 어서 합류할 생각이나 하자. 그리고 은혜가 빨리 일어나기를 기도하자.

“으음..”

굵은 눈썹을 꿈틀거리며 아저씨가 눈을 떴다. 제일 먼저 하는 일은 역시 은혜의 상태를 살피는 일. 어제와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은혜 상태에 아저씨는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며 나를 보았다.

“고생하셨어요.”


“그래.”

느릿하게 몸을 일으킨 아저씨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하고는 소총과 대검을 점검했다.

“쓸만할거야.”

대검을 건네는 아저씨. 그것을 조심스레 받아 들고 대충 허리춤에 끼워 넣었다. 파이프보다는 사거리가 짧지만 확실히 치명상을 줄 수 있는 무기다.

“바로 출발할건가요?”


“그래야겠지.”


“다들 어디에 있어요?”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어. 그나저나 전에 봤던 학생들은 어찌 되었나?”

퍼억. 잠시 잊고 있었던 소리가 뇌리를 흔든다. 은혜를 따라 가다 녀석들에게 당한 후 정신 없이 도망쳤지만 결국 은혜를 상처 입혔다. 괴물인 놈도 있었지만 착해보이는 학생들도 있었다. 하지만 이미 죽어버린 후. 지나간 일이다. 더 이상 나와는 관계없는 일. 길게 생각하지 말자.

“어떻게 아셨어요?”


“그 많은 괴물들을 진성군 혼자 헤쳐나가진 못했을거야. 아마 타인의 도움이 있었을거라고 생각했지. 이곳에 얼마나 많은 생존자들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괴물들 상대로 대등히 싸울 수 있는 건 그 때 보았던 학생들 밖에 없었어.”


“..떠나갔어요. 괴물들에게 쫓겨서.”


“그렇군.”

그 중 한 놈이 괴물이 되어 은혜에게 치명상을 입혔다고는 말 못한다. 만약 그랬다면 아저씨는 우리 외에 생존자들 모두를 의심하며 냉정히 뿌리칠지도 모르는 일이다. 물론 다 안전하다고는 볼 수 없지만 선량한 사람들까지 저버릴 수는 없는 일이다. 미안해요. 아저씨..

“은혜.. 괜찮을까요.”

아저씨의 시선을 분산시키려면 은혜 얘기면 된다. 아저씨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 더 두고 봐야해.”


“그렇군요. 아, 아래 있던 괴물들은 다 처리한건가요?”


“우리가 왔을 땐 이미 없더군.”

그 정도로 시간이 흐른 건가? 그렇다면 밖은 아직 위험하다는 소리다. 짧게 생각을 하는 도중 남자도 몸을 일으키고는 은혜를 살폈다. 어제와 전혀 달라지지 않은 상태에 남자는 무표정하게 은혜를 바라볼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이 너무나 사람과 똑같아서 잠시 남자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가지. 진성군이 은혜를 업고가게.”


“네.”

몸이 성하지 않은 것도 있지만 둘에 비하면 내가 은혜를 데리고 가는 것이 낫다. 길게 생각하지 않고 은혜에게 다가간다. 남자가 은혜를 안아 올려 내 등쪽에 조심스럽게 올려준다. 그리고 겉옷을 벗어 내 몸과 은혜의 몸을 단단히 동여맨다.

“은혜야..”

가볍다. 너무나 가벼운 무게다. 이런 상태로 어떻게 거리를 활보했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서두르지.”

아저씨는 거침 없이 문을 열고 나갔다. 남자 역시 그 뒤를 빠르게 따르며 나를 바라본다. 그래, 서두르는 편이 좋다. 낮이라고는 하나 이곳은 괴물들의 수가 월등히 많은 지역. 위험하다. 재빨리 이동하여 엘리베이터에 오른다.

띵-동.

문이 열리자 역하고 비릿한 피냄새가 난다. 어젯밤 사이.. 아니, 어제 무슨 일이 있던건가? 아니다. 신경쓰지 말자. 지이잉. 문이 닫히고 서서히 내려가는 엘리베이터. 순식간에 1층에 다다른 엘리베이터의 문이 열린다. 지이잉.

“....”

눈 앞에 펼쳐진 상황에 자동적으로 침묵하게 된다. 다섯.. 정도의 괴물 놈들이 몸을 웅크린채로 바닥에 아무렇게나 누워있다. 역시 희미하지만 분명한 먹이의 냄새를 맡고 온 것이 분명하다. 이대로 지나갈 것인가? 전부 처리할 것인가? 아저씨라면..?

“....”

아저씨도 선뜻 나설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는지 잠시 상황을 지켜본다. 하지만 남자는 달랐다. 주저 없이 내 허리춤에 있는 대검을 꺼내 빠르게 괴물들에게 뛰다시피 다가간다.

푸슉. 푸슈슉.

눈에 보이지도 않는 빠르기로 괴물들의 머리를 꿰뚫고 나서야 사태를 파악할 수 있었다. 작은 일말의 비명도 없이 진득한 피를 흘리며 죽어버린 괴물 놈들을 보며 걸음을 옮겼다. 일단 작은 고비는 넘긴 셈이다.

저벅. 저벅.

건물 밖으로 나오니 환한 햇빛과 선선한 공기가 기분을 좋게 해준다. 맘껏 폐 속에 공기를 밀어 넣으며 주위를 둘러본다. 어제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보여주는 작은 핏자국들과 검은 털들이 여기저기 뜯겨져 있다. 그리 좋은 광경은 아니다.

“15분정도 걸어가면 되네. 힘들면 얘기하고.”


“네.”

사주경계를 하며 빠르지만 조용히 이동하는 아저씨의 뒤를 따른다. 남자는 내 뒤에서 바짝 붙어 주변을 경계한다. 가끔 건물 틈새로 보이는 생명체들이 보이기는 하지만 아침이라 그런지 큰 움직임은 없는 상태다. 이대로 가기만 하면 된다. 조금만 기다려 은혜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