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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21번 김원희씨, 3번 면접실로 입장해주십시오.” ]
“네, 알겠습니다.”
복도 한구석 나무의자에 앉아 초조한 듯 시계를 자꾸 들여다보던 짙은 회색의 깔끔한 정장차림의 사내는 기다렸다는 듯이 벌떡 일어나 차분하게 대답을 한 후 다소 긴장된 표정으로 빠르지만 조심스런 발걸음으로 면접실 쪽으로 향했다.
평소에는 2~3 명을 동시에 면접을 보는 회사였지만, 이번에는 무슨 일인지 아까부터 한 명씩만 부르고 있는 것이 아마 비밀면접이라도 하는 모양이었다.
~ 달칵, 퉁
사내가 들어서자마자 문이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분명 문이 살며시 닫히는 소리였지만 심장을 얼어붙게 만들 정도로 끔찍하게 들렸다.
면접실 안에는 꽤 높은 직책으로 보이는 2명의 중년 남자들과 30대 정도로 보이는 3명의 남자들, 그리고 나이를 파악하기 힘들 정도로 짙은 화장을 한 2명의 여자들이 약간은 건방져 보이는 눈빛으로 사내를 힐끔 쳐다보기도 하고 앞에 놓인 서류뭉치를 들척이기도 하면서 앉아있었다.
숨소리와 종이 넘기는 소리만 들리는 정적이 3초 정도 지났을까?
좀 전 복도에서 ‘김원희를 호명했던 목소리’와 동일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721번 김원희씨입니다.”
아마도 문을 열어준 그 여자인 것 같았다. 면접관 중에 한명이 고개를 끄떡이자 그녀는 사무적인 어투로 말했다.
“김원희씨는 자리에 착석해주십시오.”
그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뒷걸음질로 밖으로 나갔다.
~ 달칵, 퉁
또 다시 들려온 끔찍한 문소리, 그리고 2~3초간의 정적, 숨소리, 고립감... 진짜로 이번 한 번 뿐이다!
“안녕하십니까? 721번 김원희입니다.”
원희는 90도로 면접관들에게 정중하게 경례를 한 후 앞에 보이는 작은 의자에 바른 자세로 앉았다. 맨 오른쪽에 앉아있는 여자가 딱딱한 어투로 먼저 입을 열었다.
“김원희씨, 반갑습니다. 저는 새내기면접관이라 김원희씨를 처음 보지만 김원희씨의 자기 소개서를 보니 벌써 우리 회사에만 세 번째 지원을 한다고 나와 있군요.”
“그렇습니다.”
이번에는 중간쯤에 시큰둥하게 앉아서 서류뭉치를 뒤적이고 있던 중년의 남자가 원희의 얼굴을 자세히 보려는지 안경을 바꿔 쓰면서 질문을 했다.
“아하, 그래요?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많이 뵌 분 같기는 하네요. 그나저나 이렇게 꾸준하게 우리 회사로 계속 지원하는 특별한 이유라도 있나요?”
“어렸을 때부터 우리 가족 모두 이 회사의 제품을 좋아했으며 즐겼습니다. 매일 먹다시피 했을 정도니까요. 그러다보니 성장을 하면서 고객의 입장에서 벗어나 어느새 이 회사의 일원이 되는 것이 꿈이 되었고, 저의 영원한 터전으로 삼고자 목표를 정했습니다. 따라서 이렇게 삼 년간의 도전을 해오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본 S사의 라면류와 비스킷류는 아주 훌륭하지만, 전 이 회사의 먹거리를 더욱 발전시켜 ‘지상 최고의 상품’으로 만들 자신이 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작년, 이 회사에서 선택되지 못한 후 일본에 가서 식품에 대한 준비를 더욱 철저히 해왔습니다.”
“아아, 그만! 됐어요. 일본 간 동안 날렸다고 하더니만 그건 여기 서류에 잘 나와 있고만 그래. 추천서도 하루미, 쿠리하라, 아카호리... 이거 뭐, 그럼 다음 질문 할게요.”
이후로 이런 저런 몇 마디의 형식적인 질문과 대답이 이어졌다. 그렇게 어려운 질문은 없었으나 거기에 대한 대답은 이전의 대답보다는 다소 부족하고 유치한 것 같았다. 하지만 면접관들의 눈빛이 생각보다 밝았다.
‘성공이다!’
원희의 회사 생활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
“브라보! 하하하 이번에도 우리 부서가 일등을 했다고! 이렇게 보석 같은 직원이 우리 부서로 배치된 것은 정말 행운이었어. 하하하”
“정말 그래요. 호호. 저도 김원희씨한테 홀딱 반해 버렸어요. 나 괜히 빨리 결혼했나봐. 그런데 다음 주부터 식품화학연구실로 발령이 났다는 이야기는 진짜인가요?”
원희는 크게 잘못이나 한 사람처럼 얼굴이 새빨갛게 붉어지더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 겨우 대답했다.
“제가 뭐 한 일이나 있나요? 좋으신 선배님들 밑에서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인데요. 이렇게들 훌륭하신 분들인데, 저 같은 신출내기가 감히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나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도 이렇게 계속 칭찬 들을 해주시니 매우 감사할 따름입니다. 정말 이 부서에 계속 있고 싶었는데 다른 곳으로 간다는 것이 굉장히 서운합니다.”
겉으로는 그렇게 말을 하면서도 속으로는 쾌재를 부르고 있는 원희였다.
‘드디어 때가 온 거야.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려 왔던가? 역시 일본으로 갔던 것은 큰 행운이었어. 내 삶은 이제부터 시작이 되는 거라고!’
***
다시 2달 후, S사의 식품화학연구실 내 직원 휴게실. 네다섯의 연구원들이 차를 마시고 있었다. 그들의 얼굴에는 화색이 돌고 있었다. 선임연구원이 씩 웃더니 입을 열었다.
“이 자리에 김원희씨가 없어서 하는 말인데, 그 친구, 입사 때부터 내 알아봤다니까... 2달 사이에 판매 실적이 무려 80%나 늘었다고! 매년 5~6% 성장하면 많이 한 거고, 어떤 해는 오히려 11%가 떨어지기도 했는데... 말이 돼? 80%라는 수치가? 이건 엄청난 거라고... 다들 수고했지만, 원희씨 덕분에 우리 ‘식품화학연구실’이 다음 달부터는 ‘식품화학연구소’로 확장되는 것에 이의를 제기할 연구원은 없을 거야. 그만큼 독보적인 거지. 지원도 몇 배나 늘어날 테고, 그렇게 되면 이제부터 라면 맛을 내는 화학첨가물 분야에서는 우리를 따라올 팀은 없을 거야. 명실 공히 세계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셈이지.”
다른 연구원이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그러게 제가 뭐라고 그랬어요? 인사과에 가서 김원희씨를 우리 연구실로 슥 빼달라고 했었던 이유가 바로 오늘을 위해서 그랬던 것 아닙니까? 우연히 김원희라는 자가 일본에서 여러 가지 신기술에 대한 연구를 해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는 언젠가 스카우트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우연찮게 그 자가 우리 회사에 접수를 했다는 사실도 제가 먼저 알아냈고요. 하하하, 분명 저의 공도 있는 겁니다.”
다들 고개를 끄덕거리며 웃고 있는데, 선임 연구원이 두리번거렸다.
“그런데 원희 이 친구는 어디로 간 거야? ‘연구실’이 ‘연구소’로 업그레이드되었다는 이 기쁜 소식을 제일 먼저 들어야 할 장본인이?”
“글쎄요. 잠시 볼일이 있어서 요 앞에 좀 나갔다 오겠다고 했었는데... 문자라도 한 번 해볼까요?”
“놔두게. 나중에 알리는 것이 더욱 좋을 것 같아. 축하파티 겸 깜짝 놀라게 이 사실을 알리는 무슨 좋은 방법이 뭐 없을까?”
식품화학연구실의 연구원들이 대화를 나누던 바로 그 시간에 그들의 대화를 도청하는 어떤 두 명의 남자들이 있었다. 그들의 얼굴은 무표정했으나, 어딘가 모르게 음흉해 보이는 그들이었다. 그 중 도청기에 손을 올리고 있던 사람이 먼저 이야기를 꺼냈다.
“김원희란 놈이 뭐가 그리 대단하다고... 흐흐”
이번에는 뒤에서 의자에 다리를 꼬고 있던 남자가 바지춤에서 라이터를 꺼내 담뱃불을 붙이면서 대답했다.
“하하하, 실제의 김원희는 지질한 녀석이었죠. 저렇게 허접한 회사에서 연거푸 두 번이나 면접에서 떨어진 병신! 하지만 세 번째의 김원희는 진짜 대단한 사람이 맞잖습니까? 말이 나왔으니 말인데, 그 병신 같은 놈을 일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되었던 것은 우리로서는 정말 큰 행운이었어요. 덕분에 일이 아주 쉽게 풀렸으니까요. 내 생전 김원희란 이름으로 면접을 보지 않나, 거지같은 저따위 회사를 몇 달 동안이나 다니면서 멍청이들 비위나 맞춰주질 않나! 어찌되었든, 그 김원희란 사람 때문에 덕은 좀 봤으니 이제는 좋은 곳으로 가라고 명복이나 빌어주어야겠습니다.”
“그래, 명복은 충분히 빌어주지. 아예 비서를 시켜서 큰 절에서 천도제도 아주 화려하게 지내주는 것으로 하지.”
“개 같이 죽었어도 그렇게 억울하진 않겠군요.”
“난 참 자비로운 사람 같아. 허접한 인간 천도제도 지내줄 정도니까 말이지. 그나저나 이 바보 같은 놈들은 세 번째 면접이라면서 얼굴도 제대로 분간 못하고 정말 어리석지 않나? 그전 면접에서 썼던 서류는 다 불살라서 처 잡수셨나?”
“그런가 봅니다.”
뒤에 있던 남자가 다리를 풀더니 일어났다.
“이제 제 임무는 다 끝났으니 약속했던 900백만 달러를 제 스위스 은행 계좌로 입금해주세요. 전 이 사실이 조금이라도 알려지기 전에 조속히 이 나라를 떠야겠습니다.”
바로 그때, 도청기에 손을 올리고 있던 남자가 천천히 몸을 뒤로 돌리더니 뒤에 있던 남자를 쳐다보았다. 그리고 안주머니에서 어떤 볼펜 비슷한 것을 꺼내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래 자네도 임무는 아주 깨끗하게 끝냈어. 가짜 김원희 행세하느라 고생이 많았네. 그런데 말이지. 다 끝났는데 내가 왜 미쳤다고 자네에게 돈을 줘야 하지?”
“무슨 말씀을? 그건 약속이... ”
뒤에 있던 사내가 뭔가 말을 이어가려는 도중 도청기를 쥐고 있던 남자는 들고 있던 볼펜같이 생긴 무언가의 버튼을 피식 눌렀다. 그러자 그 촉끝에서 작은 바늘이 빠르게 발사되었고, 그것을 미처 피하지 못한 사내의 목덜미에 정확히 꽂혔다.
“헉. 이, 이게.. 무....... 슨............... 지............ 잇”
“자네가 살아있으면 안 되지. 내가 왜 증거를 남기겠나? 게다가 900만불이라는 거액까지 써가면서 자네를 살려줄 이유는 없지. 잘 가게나 친구! 명복을 비네. 천도제는 지내줄게. 난 자비로운 사람이니까...”
***
그리고 3개월이 흐른 어느 날.
암 전문가인 김민성 박사는 태블릿을 통해 TV를 시청하고 있었다. 김민성 박사는 손가락으로 화면의 크기를 조정하면서 채널을 돌렸다. 마침 한 방송국의 뉴스속보가 시작하고 있었다.
“뉴스속보를 말씀 드리겠습니다. 굴지의 라면업계인 S사에서 5개월 전부터 출시된 각종 라면에 인체에 너무나도 치명적인 발암성 첨가물이 있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그 첨가물의 연구자인 '김원희'씨는 1개월 째 행방불명이 되어 경찰이 수사에 나섰습니다. 그 발암성 물질이 첨가된 라면을 한 달 새에 약 10여 개 이상 먹은 사람들 중 9% 이상에서 특이성 암인 신종 W암이 발병되었다고 합니다. 전국의 병원은 이미 그 신종 암이 걸린 피해자들과 그 신종 암 진단을 받기 위해 찾아온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습니다. 다행히도 그 라면에 발암성 유해 첨가물이 있다는 것을 최초로 밝힌 B대학의 김민성 교수가 치료제를 개발해 화제가 되고 있는데요, 이 소식 더욱 자세하게 알려드리겠습니다. 김문경 기자 나와 주세요.”
“네 김문경입니다. 저는 지금 김민성 박사의 연구실에 와 있습니다. 제 곁에는 그 신종 암의 확대 모형이 있습니다. 김민성 박사님 안녕하세요? 박사님 그 성분에 대해서 간략하게 말씀해 주십시오.”
뉴스를 보고 있는 김민성 박사는 화면 속의 본인의 모습을 보더니 불만스런 표정으로 뺨에 있는 점을 만지작거렸다. 뉴스 소리는 계속해서 들렸다.
“평소 식품의학(食品醫學)에도 관심이 많았던 제가 그 라면의 맛이 너무도 독특해서 연구를 시작했고, 그것이 치명적인 발암물질이란 것을 밝혀냈습니다. 그 와중에 그것으로 인한 암 환자들이 생겨났고요. 다행히도 제가 예전부터 연구해오던 암 치료제가 이번 신종 암과 흡사하다는 것을 발견하고 몇 명의 지원자를 뽑아 임상실험을 거친 결과, 큰 효과가 있다고 하니 천만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도 신종 W암으로 고생하는 분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기존의 암 치료제보다 훨씬 저렴한 비용으로...”
김민성 박사는 TV를 꺼버리고 말았다.
“점 때문에 인물 다 버렸군.”
이때 옆에서 같이 TV를 시청하던 기름진 얼굴의 다른 사내가 미소를 지으며 김민성 박사에게 이야기했다.
“아닙니다. 그 점이 오히려 매력인데요. 그보다 난 형님이 둥글넓적하게 생기셔서 TV에 좀 이상하게 나올까 걱정했었는데, 진짜 잘 나왔습니다. 하하하. 이제 그 치료제가 불티나게 팔려 엄청난 부자가 된 것은 물론이고, 전 세계적으로 유명인사가 될 날이 며칠 남지 않으셨습니다. 세계의 구세주가 되신 거죠.”
“에끼, 이 사람아! 자네가 자네회사 라면이 S사 보다 적게 팔린다고 예전의 우지파동 같은 비슷한 사건을 기획해 달라고 해서 난 그렇게 해준 것 아닌가? 아무리 보험에 들었다고는 하지만 S사가 그 수많은 피해자를 보상해 주려면... 아마 회사를 팔아야 할 걸세. 자네는 경쟁사를 제거하면서, 헐값에 큰 라면회사 하나를 손에 쥐게 되었잖아!”
“하하. 그렇죠. 저도 큰 이익이 생기겠군요. 하지만 형님은 국민적인 영웅이 되셨잖아요. 어찌되었든 그 새끼는 어디다가 묻었소? 참! 그 새끼의 진짜 이름은 뭐라고 하던가요?”
“흐흐. 글쎄? 난 그자가 난 김원희란 가명을 써서 S사에 취직을 했던 자라는 것 밖에는 기억이 나질 않네.”
“천도제 지내주신다면서요?”
“미쳤나? 내가 그 자의 천도제를 지내주게? 돈도 들어가고, 분명 단서도 남는 개 같은 헛짓거리를 내가 왜 하겠는가?”
“그럼 천도제 약속은 왜 했나요?”
“죽기 전에 선물이지. 조금이라도 편하게 보내기 위한... 난 자비로운 사람이니까!”
옆의 남자는 자지러지게 웃으며 말했다.
“형님은 진짜 세상에서 가장 자비로운 분이군요. 이 세상에 형님 같은 분만 계시다면, 얼마나 살기 좋아질까요? 하하하하”
- THE END -
< Ending message >
정말 머리만 잘 쓰면 돈 벌기가 무진장 쉽습니다. 이 세상에는 이용해 먹을 것이 아주 많으니까요. 여러분도 약간의 시간을 투자해서 조금만 생각해 보십시오. 돈이 물 쏟아지듯 할 겁니다. 진짜입니다.
남이야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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