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로 돌아간 남자 (운명의 새해)
“이 녀석아!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안 일어날 거야? 아이고...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을까? 새해 첫 날부터 쯧쯧. 초등학교 때부터 매일 꼴찌만 하고 말썽만 처부리더니...”
“알았어요. 일어나면 되잖아요.”
어머니의 호통소리에 상진은 겨우 눈을 비비며 일어났다.
“싹수부터 노랗더니만, 저렇게 게으르고 무능한 놈이 또 있을까? 집에서 노는 놈이 제방 정리도 못해. 꼴을 좀 봐. 이게 돼지우리지, 사람새끼 방이야?”
“왜 그러세요? 새해 첫날부터... 재수 없게!”
어머니는 들고 있던 빗자루를 상진의 입이 있는 쪽을 향해 위협적으로 휙휙 휘두르며 대답했다.
“재수? 네 입에서 재수라는 말이 튀어나와? 그럼 뭐가 재수있는 거야! 하는 일 없이 집에서 빈둥거리면서 부모 속 터지게 하는 것이 재수 있는 거야?”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이러는 거잖아요!”
어머니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생각이 있다고? 네깟 놈이 뭘 생각해! 당장 나가 노가다라도 해서 밥값이라도 해! 아니면 삼촌이 운영하는 빗자루 만드는 공장에라도 다니던지... 제발!”
어머니는 신경질이 나는지 들고 있던 빗자루를 상진 덮고 있던 이불 위에 집어던졌다. ‘퍼석~’하는 소리와 함께 먼지가 솟아올랐다. 빗자루의 솔에서 나온 먼지인지, 몇 개월 동안 방치되었던 이불속에서 나온 튀어나온 먼지인지 창문에서 쏟아지는 빛다발 속에서 그것들이 어지럽게 이리저리 흩어졌다.
상진은 그런 먼지들이 익숙한지 표정하나 변하지 않은 채 대꾸했다.
“내가 공장이나 다녔으면 좋겠어요?”
“엄마가 나가서 힘들게 장사를 하는데, 집안 살림이라도 다 해주지 못할 망정에. 이런 먼지구더기도 못 치워? 빨리 환기부터 시키지 못해!”
“그럼 춥단 말이에요!”
“저런 놈을 군대에 보냈어야 했는데. 어깨 아프다고 엄살 부리면서 군대에 못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가 미쳐!”
“에이... 또 잔소리...”
한심한지 어머니는 헛웃음을 치고는 문을 탕 닫고 나가버렸다. 상진은 고개를 돌려 어머니가 밖으로 나간 것을 확인하고는 쓰러지듯 침대에 털썩 누웠다. 아까처럼 먼지가 푹 피어올랐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어언 4년...
상진은 대학은 고사하고 아직까지 제대로 된 직장한번 구해보지도 못한 이른바 백수였고, 집안에서 천덕꾸러기로 몇 년째 비슷한 생활을 계속하고 있었다. 갖가지 핑계를 대면서 부모에게 손을 벌려 푼돈을 얻어내 싸구려 술집에서 술 한 잔 마시는 것이 가장 큰 낙인 구제불능 잉여인간에 불과했던 것이다.
‘쳇~ 누군 직장 얻기 싫어서 안 얻나? 내가 공부를 하기 싫어서 못한 거냐고? 다 세상이 잘못된 거라고! 잘못된 정치판에 잘못된 교육계에 불공평한 자본주의...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별 볼일 없는 유전자... 훌륭한 집안에 인재도 탄생하는 법이잖아!’
누워있는 채로 손을 더듬어 테이블 위에 놓인 피다만 담배 한 대를 입에 문 상진은 스마트폰을 들고 ‘가로세로낱말 맞추기’를 해보았다. 한두 개 빼고는 곧잘 맞출 수 있자, 자기가 남들보다 못하지는 않다는 착각에 빠졌고, 여느 때처럼 부질없는 작은 공상에 빠졌다.
‘봐, 내 지식이 결코 부족한 건 아니잖아. 지금 알고 있는 지식을 모조리 가지고 다시 초등학교 때로 돌아갈 수 있다 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니까 몸은 놔두고 딱 운동신경과 지식만 가지고 가는 거지. 밥 먹듯 일등 할 수 있을 텐데...’
상진은 손을 뻗어 창문 옆에 놓아둔 그릇을 끌어 침을 뱉고는 담배를 눌러 껐다. 상진의 게으름을 잘 알려주려는 듯 그 그릇에는 담배꽁초가 적어도 100여개는 쌓여있었다. 그 그릇이 놓여있던 곳 옆에도 빈 우유팩과 빈 깡통 따위가 있었는데, 그곳에도 마찬가지로 담배꽁초가 잔뜩 꽂혀있었고, 그 아래는 굴러떨어진 담배꽁초들로 매우 지저분했다.
‘생각해보니 정말 그럴 듯하네? 난 분명 어렸을 적 공부 때를 놓쳐서 아마 계속 못한 것이 분명해. 마라톤 같은 것도 봐봐, 한번 뒤처지면 계속 뒤처지잖아. 뒤집을 수는 없는 거라고... 맞아,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힘과 운동 신경과 지식을 전부 동시에 가지고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반장도 할 수 있을 테고 부모님께서도 나를 인정해 주실 거야.’
상진은 줄담배를 피기 위해 다시 테이블 위쪽으로 손을 뻗었다.
‘어디 부모님뿐이겠어? 주위에 여러 사람들이 날 멋진 놈으로 볼 거 아냐? 그렇다면 그때부터 내 스스로가 공부에 맛을 붙이게 되었을 테고... 최고가 될 수도 있어. 그렇다면 지금쯤은 아주 잘 나가는 놈이 될 수 있을 텐데...’
그렇게 공상에 빠져있던 상진은 테이블 위에 담배가 잡히지 않자 귀찮은 표정으로 몸을 반쯤 일으키려는데, 침대와 이불이 상당히 뽀송뽀송하단 느낌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침대의 장식도 무척 커보였다.
‘착시현상인가? 거참~ 이제는 별것들까지 다 이상하게 보이는군. 그나저나 담배는 또 어디로 간 거야? 이거 또 침대 밑으로 떨어졌나? 그쪽으로 떨어지면 손 넣어서 빼내기 귀찮은데...’
상진은 매우 짜증스럽다는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이며 자리에서 일어나 테이블 밑을 힐끔 보았다. 뭔가 이상했다.
‘어라?’
사용감이 심했던 테이블의 다리받침은 금방 산 새것같이 윤이 나고 있었으며, 벽지나 바닥 등이 갑자기 바뀐 듯 매우 낯설게 보이는 것이었다. 그러면서도 어디선가 본 듯한 기시감(旣視感)이 느껴졌다. 천장을 바라보니 분명 같은 방인데 방 자체도 1.5배는 넓어진 것 같았다.
‘뭐지? 지금 내가 착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다른 곳을 둘러보았다. 책상이나 테이블은 상진이 유치원 때쯤인가 샀던 것을 여태 쓰고 있었는데, 책꽂이에 꽂혀있는 책이며, 늘어져있는 학용품하며... 벽의 장식하며... 마치 어렸을 때의 자기의 방 모습과 흡사해보였다.
‘왜 이래? 내가 치매인가? 아니면 이게 꿈인가?’
상진은 가만히 자신의 양쪽 손등을 내려다봤다. 잠시 손을 뒤집기도 하고 펴보기도 하면서 이리저리 쳐다보던 상진은 기절이라도 할 듯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진짜네!”
그것은 분명 어린아이의 고사리 같은 손이었다. 팔이나 가슴, 그 어느 곳을 만져보거나 쳐다봐도 자신의 몸은 분명 어린아이 신체의 모습, 그대로였다. 상진은 황급히 일어나 거울 쪽으로 향했다. 몸이 가벼웠다. 매일 축 쳐져있던 게으른 몸이 아니었다. 평소 같으면 겨우 몸을 일으켰을 텐데, 몸에 스프링이라도 달린 것처럼 거울로 향하는 발걸음 또한 빨랐다. 뛰면 뛸수록 에너지가 넘쳐흐른다고나 할까?
잠시 후, 상진은 거울을 통해 어렸을 때의 자신에 얼굴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진짜로 유치원생처럼 어려진 모습이었다. 몸도 작아지고, 얼굴도 작아졌다. 피부도 전처럼 고와졌고, 솜털까지 다시 생겼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설마, 내 상상이 실제로 이뤄진 거야?’
상진은 그렇게 십분 넘게 넋이 나간 표정으로 거울을 쳐다보고 몸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볼을 잡아 당겨 봐도, ‘아에이오우, 가나다라마바사아...’를 외쳐 목소리를 확인해 봐도 성인의 모습이란 것은 그 어디에도 찾을 수가 없었고, 자신이 진짜로 과거로 돌아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꿈은 아닐 테지?’
너무나 어리둥절하기만 한 상진은 방안을 다시 유심히 살폈다. 책장이 보였다.
‘맞아, 예전에는 저쪽에 책장을 놓았었어. 그걸 몇 년 전인가 저쪽으로 옮겼었는데... 다시 저쪽 자리로 가 있는 거야. 놀라워!’
과거 사물들의 모습을 둘러보니, 과거의 아련한 기억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책상 한쪽에 놓여있는 게임기를 본 상진은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어라? 이건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하던 게임기인데, 엄마는 분명 이걸 내게 사준 적이 없었어. 가지고 싶었지만, 가지지 못한 게임기야. 그렇다면??’
상진은 가만히 시선을 들어 문 쪽 벽을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그곳에는 각종 대회에서 수여받은 수많은 상장들이 액자로 잘 정리가 되어 빼곡히 장식되어있었다. 뒤통수라도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 본 어린이는 서울지역 유치원 글짓기 대회에서 다음과 같은... ]
[ 본 어린이는 전국 아동 웅변대회에서 다음과 같이 우수한... ]
[ 본 어린이는 전국 태권도 대회에서... ]
상진은 태어나 그런 것들을 받은 적이 결단코 단 한 번도 없었다. 딱히 잘하는 것도 없었지만, 그런 것들을 위해 노력한 적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는 사이 방문이 조용히 열렸다.
“호호호... 우리 상진이 일어났니? 더 자지 그랬어. 호홋.”
상진의 어머니였다. 적어도 십 수 년 이상은 젊어진 어머니였다.
바로 조금 전, 늙은 어머니가 나갔던 바로 그 문을 통해 젊어진 어머니가 들어온 것이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어머니가 자신을 대하는 태도였다. 상진의 기억으로는 분명, 어렸을 때 ‘말썽꾸러기’에 ‘노력하지 않는 아이’라며 온갖 잔소리이란 잔소리는 다 듣고 살았었는데, 지금의 이 어머니는 너무도 자상하고 상냥한 어머니의 모습이었다.
“우리 상진이, 무슨 생각을 그렇게 하고 있니? 오늘이 ‘새해 첫 날’이라고 일찍 일어난 거 맞지? 아고 착해라! 올해에는 초등학교에 들어가니까 엄마가 세뱃돈 더 많이 줄게. 좀 전에 이모가 전화했는데, 너 장관상 받은 거 축하한다더라. 친척이며, 동네사람들이며, 아빠 직장 동료들이며 할 거 없이 다들 네 칭찬들을 하니 엄마는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단다. 네가 너무 자랑스러워.”
“아, 네... 어, 어머니...”
“아이, 예뻐. 대답도 꼭 어른스럽게 하는구나. 똑똑하고 예의도 바르고... 엄마는 요즘에 우리 아들이 너무너무 멋지고 예뻐서 죽을 지경이란다. 일어났으니까 깨끗이 씻고 안방으로 올래? 엄마가 때때옷 입혀 줄게. 알았지? 올해도 백화점에서 새로 맞추었단다.”
“네? 아, 네.”
자신이 상상했던 그대로 ‘어려진 상태의 나’는 ‘어른의 지식’과 ‘어른의 능력’을 그대로 가지고 돌아온 것이었다. 그래서 상상했던 그대로 ‘대단한 어린이’가 되어 사랑을 독차지 하고 있었던 것이리라.
어머니가 밖으로 나간 후 상진은 자신의 볼을 다시 꼬집어보기도 하고, 쿵쾅대며 뛰어보기도 했다. 정말이지 모든 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진정 꿈이 아니었으면...’
능력만 그대로 가져왔을 뿐, 게임이나 담배, 술, 여자 등 ‘성인들만 가지는 있는 특정 욕구’는 이상하게 사라졌다. 그 부분만큼은 순수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간 것이었다.
***
그 날부터 상진은 꿈꿔왔던 너무나도 행복하고 즐거운 생활을 하며 살아가게 되었다. 모두가 상진이를 좋아했으며, 부러워했고 예뻐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그의 주위에는 항상 많은 친구들이 따라 다녔고, 집에서는 매일 칭찬만 들었으며, 각종 운동대회 및 경시대회에서도 수많은 상장도 따내니 방송에서도 인터뷰가 쇄도했다.
당연히 성적은 최상급이었고, 반에서는 계속 반장만 맡았다. 아무리 초등학교 때의 책이라고는 하지만 원래의 상진이가 공부와 담을 쌓고 지냈었으니, 가끔씩 모르는 부분이 나온 적도 있었다. 그러나 한두 번씩 대충 읽어보면, 금방 이해하고 암기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겨우 초등학교 1~2학년 교과서가 아닌가?
게다가 더욱 통쾌한 것은...
“너 한번 혼나볼래?”
“아냐. 미, 미안해. 상진아. 저, 정말... 미안해!!”
지금 상진이 만난 아이는 예전에 상진을 유난히도 괴롭혔던 윤석이라는 덩치가 산만큼 크고 성격이 불같이 안 좋은 못된 아이였다. ‘변한 세상’에서는 상진이가 오히려 윤석이의 멱살을 강하게 잡고 있는 중이었다.
상진은 몸만 작았지 ‘성인의 지식’은 물론이고, ‘힘이나 운동능력’ 또한 어른이었을 때의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있기에 아무리 덩치가 아무리 커도 초등학교 저학년 밖에 되지 않는 아이 하나 제압하는 건 일도 아니었던 것이다. 때문에 다른 애들을 괴롭히는 못된 아이들까지 단 한 주먹에 혼내주는 ‘정의의 사도’ 역할까지 맡게 되었던 것이었다. 덕분에 친구들로부터 ‘울트라맨’ 이상 가는 ‘영웅’ 대접까지 덤으로 받았다.
“한번만 더 애들 괴롭히면, 진짜 혼날 줄 알아!”
그 한마디에 윤석이가 바로 줄행랑을 쳐버리는 모습을 보고 상진은 통쾌함을 느낄 수 있었다.
복수도 이런 복수가 없었다. 이것이 대체 어떤 세상에서나 가능할까?
모든 것이 그렇게 상진에게 맞춰진 나날들...
상진은 생전 처음으로 최고로 행복한 기분이 어떤 것인지를 몸소 깨닫고 있었다. 이런 맛이 있기 때문에 다들 공부든, 싸움이든, 경쟁이든, 명예든... 남을 이기기 위해서 그렇게 열심히 공부하고 노력하며 살아가는 것이 아니던가?
주위에 모든 아이들은 상진을 부러워하며, 동경의 대상으로 삼았고, 그럴 때마다 상진의 묘한 자부심이 커져만 갔다.
***
그렇게 꿈만 같았던 또 한해가 흘러 12월 31일... 보신각종이 타종되기 직전.
부모님과 함께 한해 마무리 파티를 마친 상진은 자기 방으로 돌아와 자리에 누워서 ‘워크맨’이라는 휴대용카세트플레이어에 달려있는 FM라디오를 켰다. 타종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아나운서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클론’이라는 그룹의 ‘쿵따리샤바라’라는 노래가 흘러나왔다. 상진은 음악에 맞춰 고개를 끄덕거리며 자기 멋대로 가사를 개사해 따라 불렀다.
“사는 게 신나고 째질 거 같을 땐~ 산으로 올라가 소릴 한번 질러봐~ 나처럼 이렇게 잘난 사람 없다~ 꿍따리 샤바라 빠빠빠빠”
일 년 동안 칭찬, 동경, 거만함... 등 180도 바뀐 나날에 익숙해져 있던 상진이었다.
노래가 끝나자 상진은 상장들을 쳐다보며 소리 없이 웃었다. 그리고는 예전에 자신의 모습과 바뀐 현실을 비교해가며 잠시 생각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것이 만약 꿈이라면 이렇게 길지가 않을 텐데... 딱 2년째이군. 하하하... 내 소원이 바로 이런 거라니까! 이젠 모든 것이 자신 있어. 난 슈퍼천재니까!’
잠시 후에 ‘소니 워크맨 휴대용카세트플레이어’ 라디오를 통해 ‘카운트다운’ 소리가 들리더니 타종소리가 울렸다.
떵, 떵, 떵... 그렇게 또 새로운 한 해가 찾아왔다.
‘그래! 올해도 멋지게 보내보자!’
속으로 파이팅을 외친 상진은 들뜨는 마음으로 자신도 모르게 침대 옆의 테이블을 더듬으며 ‘담배를 찾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리고는 바로 깨달았다.
‘내가 담배를 왜 찾지? 과거로 돌아오면서, 담배 욕구를 잊었었는데, 내가 지금 뭘 하는 거야?’
상진은 테이블 위로 향했던 손을 아래로 내렸다. 그러다가 뭔가가 손등에 걸리는 느낌이 나더니 동시에 그것이 바닥에 툭 떨어졌다. ‘삼성 갤럭시 스마트폰’이었다.
스마트폰의 화면에서는 타종이 끝나고, 서로 축하를 건네는 소리가 들렸다.
‘어! 내 손에 들고 있던 건, 분명 옛날 물건인 소니 워크맨이었는데...’
잠시 후, 그 스마트폰의 화면에서는 새해 첫 곡이라면서 싸이의 ‘강남스타일’ 노래가 나오기 시작했다.
상진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심장이 미친 것처럼 뛰었다. 잠시 동안 어쩔 줄을 몰라 하던 상진은 눈을 감았다가 뜨기를 반복했다. 그리고는 마음의 준비를 했다는 표정으로 ‘상장’이 걸려있던 벽을 쳐다보았다. 다행이 상장들은 고스란히 벽에 걸려있었다. 좀 이상한 것이 있다면, 상패와 액자에 먼지 같은 것이 끼여 있고, 액자가 좀 바래져있었다는 점이었다. 상진은 다른 곳을 쳐다보았다. 사물들이 작아져 보였다. 예전처럼 그렇게...
‘설마!’
땀방울 하나가 이마를 타고 내려왔다. 상진이 자신의 양 손을 보고 확인을 하려는 찰나...
방문이 덜컥 열리더니 얼굴이 잔뜩 일그러진... 그리고 갑자기 팍 늙으신 것 같은 어머니께서 방으로 들어오셨다.
“이 녀석아! 해가 중천에 떠 있는데도 안 일어날 거야? 아이고... 뭐 저런 새끼가 다 있을까? 새해 첫 날부터 쯧쯧. 초등학교 때에는 운동도 잘하고, 공부도 전교 1등만 하던 놈이 어째서 커가면서 무능력하고 멍청한 애가 된 걸까? 그래서 해달라는 거 다 해줬더니만, 내가 속 터져.”
“어, 어머니 무슨 소리세요?”
“시끄러워! 세상에 저렇게 게으른 놈이 또 있을까? 집에서 노는 놈이 제방 정리도 못해. 꼴을 좀 봐. 이게 돼지우리지, 사람새끼 방이야?”
“그러니까... 제 말은...”
“나가 노가다라도 해서 밥값이라도 해! 아니면 삼촌이 운영하는 빗자루 만드는 공장에라도 다니던지... 제발!”
“잠시만 요. 제가 과거에서 다시 돌아온 건가요? 현실로?”
“염병! 일어나기 싫으니까 이젠 헛소리하는 연기까지 하네. 저런 놈을 군대에 보냈어야 했는데. 어깨 아프다고 엄살 부리면서 군대에 못 가겠다고 했을 때부터 알아봤어야 했는데. 내가 미쳐!”
어머니는 빗자루를 집어던지고는 쾅 소리를 내며 밖으로 나갔다.
문이 부서질 듯 닫히는 소리가 나자 상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자신의 손등을 쳐다보았다. 그것은 어른의 손이었다. 상진은 그제야 자신의 목소리가 어른처럼 굵게 변해있단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다시 예전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상진이 과거로 돌아가기 전의 모습과 과거를 바꾸고 난 후의 지금의 모습은 다를 것이 없었다. ‘천재 소리’를 들으며 노는 것에 더욱 익숙해진 상진은 뒤바뀐 세상에서도 시간이 흐르자 역시나 똑같이 무능한 인간으로 성장해 버린 것이다.
하긴 몇 가지 변화가 있긴 했다.
자기 방 벽에 ‘없던 상장’이 걸려있다는 것과 ‘공부와 운동 모두 잘하는 장래가 촉망되는 천재소년’이었었다는 뒤바뀐 과거사.
그리고 바뀐 것 하나가 더 있다면...
상진의 동네로 이사 온 조폭 한명이 상진의 얼굴을 알아본 것이었다.
“저거 그 새끼 아냐?”
“누, 누구십니까?”
“나 윤석이다.”
“윤석이?”
“오늘 나한테 잘 걸렸다! 천재처럼 싸움도 잘하고 공부도 잘해서, 지금쯤은 아주 잘나갈 줄 알았는데, 찐따가 되었다는 소문이 있어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 완전 쪼다에 바보가 되었군. 크하하하”
“뭔가 오해가...”
“오해? 이게 뒤지려고 환장했나? 네가 분명 내 멱살을 잡고 네 주둥아리로 ‘한번만 더 애들 괴롭히면, 진짜 혼날 줄 알아!’라고 날 위협했었지? 난 그때의 치욕을 절대 못 잊고 살아왔다. 나한테 그렇게 함부로 한 놈이 네가 처음이자 마지막이었거든? 여기서 다시 한 번 그 주둥아리 놀려봐. 너한테 당했던 수모를 언젠가는 꼭 갚기 위해서 네 얼굴을 뚜렷하게 기억해놨었지!”
“그게...”
“시끄러워! 그렇잖아도 지난주에 출소해서 주먹이 근질거리던 참에 잘 되었네! 나 스트레스 풀릴 때까지 매일 맞아라! 한 십년 걸릴거다.”
윤석은 이야기가 끝나자 솥뚜껑만한 주먹을 움켜쥐고 상진에게 점점 다가왔다.
- THE EN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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