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잘못이 아니야

Yuri2013.0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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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잘못이 아니야

 

 

 

 

나른한 오후, 눈꺼풀이 스르르 감겨온다. 잠깐이라도 책상에 엎드려 잠을 청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는 없다. 고입을 앞두고 있는 수험생 신분인 현재의 내 상황 때문만은 아니다. 교단에 앉아 책을 보고 계신 선생님의 따끔한 벌이 무서워서도 아니다.

그것은...

 

“쟤 또 자빠져 잔다. 미련해 보이지?”

“그러게, 저 계집애 꼭, 자기 생긴 대로 논다니까... 웃겨. 여기가 여관이니?”

“키도 열라 작은 년이 얼굴은 오크...”

“오크랑 비교하지 마, 오크들 충격 먹잖아. 킥킥...”

“어? 쟤도 인피니트 오빠들 사진 나온 연습장 가지고 있어.”

“진짜? 미친 거 아냐? 감히 우리 오빠들을?”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는 아이들의 저 삐뚤어진 시선이 때문이었다.

내 일거수일투족은 언제나 그들의 놀림감 대상이었다. 잠을 자든 깨어있든 그것이 못난 행동이든 잘난 행동이든 간에, 내가 하는 일련의 행동들은 언제나 그들의 타깃이었고, 그들의 ‘입’은 날 놀려먹기 위해 늘 장전(裝塡)되어 있었다.

방아쇠를 당기면 ‘텅’ 하며 순식간에 박히는 그들만의 독특한 놀이방식.

소리 없이 먹잇감을 낚아채는 수리부엉이의 발톱처럼, 당사자는 영문도 모른 채 그들만의 도마 위에서 사지(四肢)를 팔딱 띄우고 있다가 칼로 내려칠 때가 되어야 깨닫게 되는 셈이었다.

 

성적이 잘 나오면 '왕따가 따로 할 일이 없으니 공부나 해댔겠지. 그거라도 인정을 받기 위해서...'라는 비아냥거림이, 선생님이 칭찬이라도 하면 '얼마나 불쌍하면 선생님이 그 정도 가지고 칭찬동냥을 다 하겠냐?' 혹은, '일부러 잘 보이려고 갖가지 행동을 하는 것이 분명해.' 라는 갖가지 말도 되지 않는 뒷말들이 속사포처럼 교실에 난사되었다.

좋든 나쁘든, 잘하든 못하든, 상관이 있든 없든... 그 무엇이 되었든 간에 무조건 나는 아이들이 가지고 노는 장난감판대기 위에 올라갔다.

 

난 성격이 유난히 모가 난 애는 아니었다. 정신 연령이나 성적이 현저하게 떨어지는 것도 아니었다. 집안 환경이 어려운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이들이 나를 그런 식으로 몰아세우는 이유는 딱 한 가지.

내 자신조차 거울을 들여다보기 거북스러운 외모... 그 불균형적인 생김새! 바로 그것 때문이었다.

크고 뚜렷한 이목구비가 제자리에 자리 잡고 있지만, 130센티도 안 되는 키에 툭 불거진 광대뼈와 턱뼈의 괴기스런 어울림은 나의 얼굴을 마치 ‘에렌 엄마를 먹어치운 거인’처럼 보이게 했다. 내 스스로도 날 괴물 따위로 생각할 정도이니, 아이들이 내 쪽을 쳐다보며 소곤거리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그런 시선이 미치도록 싫으면서도 내가 이 지긋지긋한 학교에 나오는 까닭이 있었다.

‘외로움’...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과 어울릴 수 있는 곳이 이 학교밖에는 없었다. 아직 이곳 어느 누구하고도 따뜻한 대화를 나누지 못한 심리적 감옥과도 같은 곳이었지만, 그래도 내가 유일하게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곳이었다.

놀림을 당하든 외면을 당하든 왕따를 당하든 어떤 ‘무리’에 속해있다는 것과 그렇지 않다는 것은 확연하게 다르지 않은가? 언젠가는 나도 이 학교 내에 즐겁게 수다를 떨거나, 다정하게 인사를 할 수 있는 ‘친구’가 생길 거라고 스스로를 자위하며 하루하루 그렇게 견뎌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책과 가방 따위로 벽을 만들고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어차피 수업시간도 아닌데 선생님이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아이들이 뭔 화젯거리로 떠들고 있는지 내 알 바 아니었다.

뭔가를 듣게 되면 열에 한번은 나에 대한 놀림과 어떻게든 연관이 되어 있으니, 아예 귀를 닫고 지내는 편이 좋았다. 그런데...

 

“선생님 저쪽 4분단 빈자리가 좋은데요. 칠판도 잘 보일 것 같고...”

 

한 남자애의 씩씩한 목소리였다. 귀가 번뜩였다.

‘4분단이라고? 여긴 빈자리가 내 옆에 하나뿐일 텐데...’

 

슬쩍 고개를 들어보니 처음 보는 남자아이가 손가락으로 내 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전학생인 모양이었다. 서글서글하게 생긴 ‘호남형’이었다. 아이들이 수군거리는 소리와 킥킥거리는 소리로 순식간에 교실이 어수선해졌다. 그렇게 하라며, 선생님이 교실 밖으로 나가자 교실은 더욱 아수라장이 되었다.

 

‘내 얼굴을 보면, 분명 자리를 바꿔달라고 할 텐데...’

 

다시 고개를 푹 숙이고 눈을 질끈 감았다. 그 아이가 걸어오는 걸음소리가 들렸다. 잠시 후...

 

“안녕? 만나서 반갑다.”

 

아주 가까운 곳에서 그 아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저 아이가 내 얼굴을 본다면...

난 어쩔 수 없이 고개를 푹 숙인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듣고 있니? 옆에 앉을 건데, 얼굴은 보고 인사를 해야 하지 않을까?”

 

순간,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교실에 정적이 흘렀다. 아이들의 따가운 시선이 느껴졌다. 아마도 ‘나의 반응’과 ‘전학 온 아이가 내 얼굴을 보고 난 후의 반응’을 동시에 보고 싶은 것일 게다. 여기서 내가 고개를 들지 않는다면, 애들의 따가운 시선이 계속될 것이다.

난 ‘될 대로 되라’란 식으로 고개를 들어 ‘성민’이라는 남자애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남자애는...

 

“네 이름은 뭐니? 난 네 짝이 될 성민이.”

 

그냥 일반적인 친구에게 말을 하듯 편안한 표정이었다. 나에게 어떤 거리낌도 없었다. 예상지 못한 반응에 나 뿐만 아니고 다른 아이들도 놀랐는지, 교실이 더욱 어수선해졌다.

 

“나..난 지..지혜라고 해. 반... 가워.”

“예쁜 이름이네, 전학을 와서 아무 것도 모른단다. 많이 도와줄래?”

“도.. 도와달..라고?”

“그래, 좀 도와주라.”

 

학급 친구와의 대화가 대체 얼마 만이던가? 게다가 나에게 도움까지 요청하다니... 두근거리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난 그의 눈도 못 마주친 채 겨우 대답했다.

“으..응”

 

다른 아이들은 성민이가 내 얼굴을 보고도 그 옆자리에 앉아서, 심지어 친구처럼 다정하게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보고는 자기들끼리 쑤군거렸다.

하루 정도겠지.. 라 생각을 했는데,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나고, 삼일이 지나가는데도 성민이가 날 대하는 태도가 변함이 없자 아이들의 이상한 눈초리도 점차 잦아들었다.

나랑 친하다는 이유로 벌써 몇 번이나 태클이 들어왔을 법도 하지만, 성민이가 또래보다 덩치가 커서 그런지 남자애들은 그에게 함부로 말도 걸지 못했고, 여자애들은 여자애들대로 가끔 이상한 눈길로 힐끔 쳐다볼 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진 못했다.

 

그렇게 한 달 여가 더 지날 때 즈음 난 보통 친한 친구들이 서로 대화하는 것처럼 그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 애 때문에 용기가 생겼다고 할까? 고개를 푹 숙이고 있을 때보다 들고 있는 시간도 많아졌고, 대인관계 전반에 대한 자신감도 생기기 시작했다. 가끔씩 몇몇 아이들이 모여 수다를 떨고 있을 때 나서서 한마디 정도 할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그러니 내게 있어 성민은 구세주 같은 존재일 수밖에...

마침, 사춘기도 찾아온 난 어느 날 부턴가 그 애가 자다가도 생각이 날 정도로 좋아진 것이었다. 학교를 가면서도 그 애의 얼굴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하루가 길었다가 짧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리고 겨울 방학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분명 그 애가 다른 애들에 비해 나에게 잘 대해 주고 있지만, 그냥 그것이 전부였다. 그 흔한 문자나 전화 한 통 없었다. 생각해보니 학교에서도 공부에 관련된 대화가 전부였을 뿐 사적인 대화는 거의 없었다.

나한테 있어 성민은 친구이상의 큰 존재였지만, 성민에게 있어 나라는 존재는 같은 반 친구 그 이상이하도 아니었던 것이다.

 

겨울방학이 지나면 고등학교로 진학을 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또 다른 새로운 사람들과 만나야 한다. 그 사람들 역시 나를 외면하고 따돌릴 것이다. 학교에서 만난 애들 중 지금까지 성민이 같은 사람은 없었다. 성민이를 다시는 만날 수 없을 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을 하니 점점 마음이 조급해져 갔다. 하루하루 지나가는 소리가 거친 사막의 풍성보다도 크고 빠르게 느껴졌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여느 때처럼 다른 아이들과 섞이지 않기 위해 보다 학교에 일찍 등교해 성민이 올 때가지 고개를 파묻고 있었다.

다른 때보다 유난히 졸업과 입학에 대한 불안감과 두려움이 더욱 더 머릿속으로 파고들었다. 그냥 책이라도 볼 양으로 책상서랍을 뒤지는데, 책상 서랍 속에 田자 모양으로 접혀진 쪽지 한 장이 들어있는 걸 발견했다. 아직 아이들이 등교를 할 시간이 아닌지라 나는 얼굴을 들고 그것을 얼른 꺼내보았다.

 

 

[ 넌 정말 좋은 친구야.

이제 곧 방학이네.

난 너를 알게 되어서 너무나 기뻤어.

이 학교로 오기를 잘 했다는 생각도 들고...

방학이 아쉬운 것은 널 보지 못하니까 그런 걸까?

다른 고등학교에 진학한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보다 친하게 지내자구나.

직접 말하지 못하는 것은 많이 쑥스럽기 때문이란다.

네가 친구면서도 이성으로 느껴져.

널 생각하며 쪽지를 쓰려니 기분이 좀 묘하네. ]

 

 

나는 그 쪽지를 황급히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그리고 몇 번이나 그것을 다시 꺼내 새겨 읽었다. 분명 성민이 쓴 쪽지일 것이다. 성민이가 아니면 이런 쪽지를 나에게 줄 사람이 없었다.

그러던 중에 아이들의 틈 속에 섞여 성민이 교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쪽지 때문인지 그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볼 수가 없었다. 곁눈질로 그의 표정을 살펴보았다. 그의 얼굴이 벌겋게 상기되어 있는 것 같았다. 진짜인가?

 

쪽지사건 때문에 안절부절 먼저 말도 붙이지 못하고 며칠이 흘렀다.

조급함 때문인지 그 애 감정을 인식했기 때문인지 성민과 대화가 생각보다 많지는 않았다.

그 아이가 없는 동안 외톨이로 오래 지내다보니 어떤 누군가의 한마디가 열 마디처럼 느껴지고, 두 마디가 백 마디로 느껴졌기 때문일 것이리라.

 

어쨌거나 방학은 하루 앞으로 다가왔는데, 쪽지를 보낸 성민이의 반응이 무덤덤해보였다. 답답했다. 이렇게 방학을 하면, 긴 방학기간 동안 그와 연락을 하지 못할 것이다. 2월 학기가 있기는 하지만, 쪽지를 보낸 성민의 마음이 어쩌면 방학동안 바뀌어버릴 수도 있다. 불안했다. 곰곰이 생각한 결과, 나도 좀 더 친하게 지내고 싶은 감정이 있다는 얘기를 해야 할 것만 같았다. 먼저 쪽지를 보냈는데도 응답이 없으면, ‘고등학교 가서도 친하게 지내자’는 그의 제의를 내가 거절한 걸로 오해할 수도 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학교에서의 일과가 모두 끝나고, 선생님께서는 3년 간 수고 많았다는 이야기와 함께 간단한 종례를 하셨다. 그에게 내 감정을 말해야 할 시간이 다가오자 가슴이 더욱 두근거렸다.

 

하교 길에 성민의 뒤를 몰래 따라갔다. 뛰는 가슴을 주체할 수가 없어서 가끔씩 두 손으로 가슴을 진정시켰다. 그렇게 십여 분 정도 지나자 다른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용히 그의 이름을 불렀다. 너무 소심하게 소리를 질렀는지, 성민이 내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았다. 다시 한 번 그의 이름을 불렀다. 그때서야 성민은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았다.

 

“어! 지혜네. 너희 집도 이쪽으로 가니?”

“으..응.”

“너도 방학 잘 보네.”

 

성민은 그 한마디를 내뱉은 후, 다시 고개를 돌리고 걸어갔다. 매정하게도 너무나 단순한 인사말이었다. 나는 그를 향해 뛰어갔다.

 

“서..성민아!”

 

성민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다.

 

“무슨 일 있니?”

“그..그게...”

“중요한 일이니?”

“포.. 폰 번호라도...”

“폰? 난 핸드폰 없는데... 몰랐니?”

“그.. 그럼 어떻게 여..연락을 하지?”

 

그런데 성민이 뜻밖이란 표정을 지었다. 그는 가방을 고쳐 매며 말했다.

 

“방학 때 뭐 하러 연락을 하게?”

“너..너도 나랑 가.. 각별하게 치..친하게 지..지내고 싶어 하잖아. 나..나도 너..너처럼 그러고 싶거든... 고..고등학교 가서도 다..다른 사람보다 더 치..친하게 지내고...”

 

성민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한동안 내 얼굴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각별하게?”

“무..무슨... 너..너도 나를.. 이.. 이성으로.. 조..좋아하잖아. 나..나도 그래. 그..그러니까.. 이..이런 말 쑥스러워서 머..먼저 하지 않으려고 했는데, 나..나도.. 너..너를 아주.. 마.. 많이 좋아해.”

 

성민이 팔짱을 꼈다.

 

“너 아주 골 때리는 애구나. 나중에 우연히 만나게 되면 친구처럼 지내는 것이야 당연하겠지만... 우리가 일부러 만날 필요가 있는 사이니? 내가 사람들하고 어울리는 것을 좋아하지 않아서 짝인 너하고 주로 이야기했던 거야. 그게 사귀자는 것으로 알았어? 그리고, 내가 널 이성으로 좋아한다고 했다고? 거울이나 보고 그런 이야기해라. 바쁘니까 나 먼저 간다.”

 

순간 초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코트 깃 속 깊은 곳까지 파고 들어왔다. 성민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뛰듯 걸어갔다. 나는 그곳을 쳐다보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얼굴을 타고 내리는 액체가 차가운 바람에 뒤섞여 온몸을 바들바들 떨게 만들었다.

 

그가 사라져버린 골목 옆에 작은 아파트가 눈에 들어왔다.

 

‘그래, 난 128센티밖에 되지 않은 괴물.. 내가 누구랑 친해질 수 있겠어. 이 세상엔 없어. 엄마아빠 미안해요. 전 세상에 짐인가 봐요.’

 

터덕터덕 그 아파트 쪽으로 향했다.

 

 

***

 

 

정신을 차렸을 때는 온통 암흑 천지였다. 뭔가가 얼굴을 뒤덮고 있었다. 몸도 꿈쩍하지 않았다. 낯익은 흐느낌 소리가 들렸고, 그 옆으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 “턱뼈와 광대뼈 부분과 척추신경이 심하게 손상되었습니다. 전체적으로 신경계통의 반응이 흐립니다. 최선을 다해 보겠지만, 정상으로 돌아오기는 힘든 상태입니다. 일단 수술을 한 후에 재활치료를...” ]

 

어렴풋이 아파트 5층 옥상에서 투신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엄마의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의 목소리가 들렸다.

 

“돈은 얼마가 들어도 좋소. 우리 애를 살려주시오. 사랑스러운 우리 딸을... 내 딸을.. 제발...”

 

뭉클했다. 나를 진정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버리고 잠깐 동안의 인연이었던 매정한 아이 때문에 목숨까지 끊으려 했던 자신이 죽도록 미웠다.

 

 

***

 

 

그렇게 3년이라는 시간이 흘러갔다. 엄마는 나에 대한 충격 때문인지 지병이 악화되어 1년 전에 세상을 떠났다. 아빠는 내 치료비를 위해 모든 사업을 모두 정리하고 집까지 팔아버렸다. 그리고 엄마 앞으로 되어있던 재산을 내 몫으로 돌리고 돈을 벌기 위해 중국으로 떠났다.

모든 것이 한꺼번에 잘못되어 버린 것이었다.

딱 한 가지, 좋아진 것은 있었다.

사고 직후, 부서지고 무너진 턱뼈와 광대뼈를 깎고 일그러진 피부를 성형했더니 일부러 그런 것처럼 얼굴이 예쁘장하고 자연스럽게 바뀌어버린 것이었다. 게다가 척추신경을 다친 이후로 갑자기 성장도 빨라져 작았던 키가 168센티가 될 정도로 훌쩍 커버렸다.

보이지 않은 부분에만 약간에 흉터가 생겼을 뿐, 누가 봐도 한눈에 반할 정도의 미모의 소유자가 된 것이다.

하지만, 잃은 것이 더 많았기에 마음속에는 항상 슬픈 생각들이 응어리져 있었다.

 

‘이게 아니잖아...’

 

사고로 인해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진학을 하지 못한 나는 물려받은 유산으로 재활병원을 다니면서 따로 공부를 해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그리고 남들보다는 1년 늦었지만 대학에도 입학할 수 있었다. 아버지도 중국에서 일이 잘 되고 있다며, 3년만 기다려달라는 연락을 했다. 다시 삶이란 궤도로 진입하게 된 것이다.

 

대학 생활은 중학교 때와는 많이 달랐다. 바뀐 외모덕분인지 내 주위에는 항상 남학생을 들끓었으며, 여자아이들도 나를 무척 좋아해 주었다. 친구들을 사귄다는 것이 어떠한 느낌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알 수 있었다.

 

그러나 혹시나 중학교 때의 친구들을 이곳에서도 만나지 않을까. 만나게 돼서 그들이 나를 알아본다면... 그리고 중학교 때의 나를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고 다닌다면 어떻게 하나? 라는 두려움이 늘 따라다녔다. 그러나 다행히도 중학교 동창으로 보이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으며, 혹 보이더라도 내가 그 사람이란 사실은 알아채진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한참 대학 생활의 즐거움을 느끼면서 다른 여러 학교 친구도 만나보고 싶어 과선배를 따라 대학 연합 동아리에 가입을 하기 위해 다른 대학의 교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그때 누군가 낯익은 남자가 내 옆을 지나간 것이다. 뒤를 돌아보았다.

그 사람은 분명 성민이었다. 그 대학에 다니고 있는 모양이었다. 갑자기 얼굴이 달아올랐고, 가슴이 기차화통처럼 두근거렸다. 천 가지, 만 가지 생각이 스쳐갔다.

 

연합 동아리에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그 대학 쪽에 방문할 때면 나는 그 학교 교문이 잘 보이는 커피전문점이나 벤치에 앉아 일부러 성민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 그가 나타나면 우연처럼 그의 주변을 맴돌며 눈이 띄는 행동을 반복했다.

시간이 흐르자 차츰 그도 나에게 관심을 가지는 듯 보였다. 그런 일이 몇 번이나 계속되자 드디어 그가 내게 말을 걸어왔다.

 

“저.. 어디서 많이 만나 뵌.. 우리 학교 학생이신가요?”

“후훗.. 다른 학교 학생이에요. 그리고 전 신입생이에요.”

“그래요? 이상하다, 어서 봤더라?”

“제가 흔한 얼굴인가 봐요.”

“흔하다니요? 제가 원래 사람 얼굴은 절대 안 따지는 편인데, 꽤 미인이신데..”

 

그렇게 우연을 가장한 대화가 시작된 이후, 나는 작정한 것처럼 그를 오빠라고 부르며 유혹했다. 겉으로는 자기는 얼굴은 안 따지고, 착한 여자가 좋다고 하는 식으로 말하는 그가 얄미웠다. 예전에 그가 나에게 내 뱉었던 말이 떠올랐다.

 

‘거울이나 보고 그런 이야기해라. 바쁘니까 나 먼저 간다.’

‘거울이나 보고 그런 이야기해라. 바쁘니까’

‘거울이나 보고 그런 이야기해라.’

‘거울이나 보고....!!’

 

‘두고 보자!’

 

 

***

 

얼마 후, 우리 둘은 자연스럽게(?)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이때를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는 여전히 내가 중학교 때의 짝이었다는 것을 까맣게 모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러던 며칠 후, 그는 자기 집이 빈다며 나를 초대했다. 기회가 온 것이다. 나는 그를 따라가며 가방 속 깊은 공간에 보관하고 있던 독극물 든 앰플을 손에 꼭 쥐었다. 꼭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지 주저하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지만, 돌아가신 엄마와 그날의 치욕을 생각했다.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그의 동네로 들어가면서 난 최대한 사람들에 눈에 뜨이지 않게 조심했다. 내 거사를 도와주려는 듯 길거리에는 다행히 아무도 없었고, 흔한 CCTV도 볼 수 없었다.

그는 나를 자기의 방에 안내했다.

내가 침대에 걸쳐 앉자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밖으로 나가며 말했다.

 

“우리 집에 온 여자는 네가 처음이네. 음료수 가지고 올게. 기다려.”

“네, 알았어요. 참, 오빠 우리 커피 먹자. 커피 있어요?”

“당연하지!”

 

성민이 나가자 난 핸드백을 열고 앰플을 꺼냈다.

 

지금이라도 하지 말까? 아니야, 해야 해! 지저분하게 생긴 파키스탄인과 몸까지 섞으면서 겨우 구해온 독약이 아닌가?

 

그 독약은 ‘아이오켄’이란 것으로 무색무취라고 했다.

율법을 어기면 아빠가 자식이 마시는 차에도 독약을 타서 살해한다는 무슬림인 전해준 독약. 허나 믿을 수는 없었다. 맛이 있는지 없는지 직접 먹어보고 효과는 확실한지, 직접 확인을 할 수 없어 일단 커피로 정했다. 커피는 향과 색이 혼탁하기 때문에 독약을 타도 눈치 채지 못할 것이다. 게다가 그는 커피를 살짝 식혔다가 단숨에 마시는 버릇을 가지고 있었다. 매우 적격이었다.

성민이 커피를 쟁반에 받쳐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나는 그에게 능청스럽게 말했다.

 

“앨범이 안보이네. 오빠 옛날 사진보고 싶어.”

“그럴까?”

 

성민이 앨범을 찾으러 나간 동안 나는 재빠르게 앰플에 든 액체방울을 그의 커피 잔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티스푼으로 열심히 저었다. 손가락이 떨려와 티스푼이 틱틱~ 소리를 내며 잔에 부딪혔다. 땀이 났다.

 

잠시 후에 그가 방으로 들어왔다. 그는 앨범을 나에게 펼쳐 보이면서 열심히 설명을 했다. 커피가 식을 무렵, 그가 잔을 들었다. 나는 침을 꼴깍 삼키며 식은땀을 흘렸다. 예상대로 그는 커피를 단숨에 마셨다.

 

“커피 맛이 왜 이렇지? 내 입맛이 이상한가? 특별히 맛있게 탄다고 탔는데, 미안하다.”

“맛있는데요. 뭐..”

“그래?”

 

무색무취라더니... 그 파키스탄 놈이 사기를 치고 내 몸을 가진 건가? 게다가 아무 반응이 없는 거 같아 숨이 막혔다.

그렇게... 몇 분이 흐르자 땀을 흘리기 시작한 그가 갑자기 한손으로 목을 잡더니 그 자리에 털썩 쓰려져 괴로워하는 것이었다.

 

“너.. 너.. 무..무슨 짓을... 하..한 거야...”

 

나는 내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차분하고 냉정하게 그를 쳐다보며 말했다. 온몸이 바르르 떨렸다.

 

“네가 죽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야. 내 외모가 못생긴 것 또한 내 잘못이 아니야.”

 

성민은 눈을 뒤집으며 몸에 심한 경련을 일으켰다. 어차피 그의 부모님은 여행을 가셔서 일주일 후에나 온다고 했다.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준비한 장갑을 끼고는 책상 위에 있던 둔기로 그의 머리를 내려쳤다. 그리고 앨범을 그의 얼굴에 집어던졌다. 독약이 아닌 강도사건으로 위장하기 위한 트릭이었다.

 

성민이 미칠 듯이 비명을 질렀다. 난 바로 그의 입에 테이프를 붙였다. 그리고 다시 앨범으로 얼굴을 가격하려는데... 앨범에서 무엇인가가 튀어나오는 것이었다. 얇은 노트였다. 그 노트 겉장에는 서투른 필체로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 XX중학교 3학년 4반 한성민 ]

 

나는 그것을 집어 들었다. 그리고 죽어 가는 성민의 앞에서 그것을 펼쳤다. 그것은 일기장이었다. 나는 건성으로 그것을 뒤적거렸다. 나에 대한 이야기는 역시나 단 한마디도 적혀있지 않았다. 일기장의 뒷부분을 뒤적거릴 때었다.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리고 침대에 걸쳐 앉아 그것을 자세히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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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6일

 

오늘은 방학식이다. 학교에서 성적표를 받았다.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 고등학교 가는 놈의 성적이 이렇게 나쁘냐며 야단을 맞을 것이 뻔하다. 잘하면 내년에 삼촌이 살고 있는 미국 유타에 있는 고등학교에 가게 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영어 점수는 특히 엉망이다. 이걸 어떻게 보여드리지? 보여드리지 말까? 기분이 좋지 않다.

집에 가는 길에 내 짝꿍인 지혜가 나를 불렀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말을 했다. 나는 홧김에 그 애에게 심한 말을 했다. 공부도 잘 하고 좋은 친구인데... 내일은 내가 그 애 전화번호를 알아내 사과해야겠다. 너무도 미안하다. 너무도...

 

 

12월 17일

 

지혜도 나처럼 핸드폰이 없나보다. 아는 사람이 없다. 나야 미국에 갈지 모르니 사지 않은 거지만, 그 아이는 친구가 많지 않아서 사지 않은 모양이다.

어쩔 수 없이 그 애 집에 전화했는데, 하루 종일 전화를 받지 않는다. 엄마가 가방을 뒤져 성적표를 찾아냈다. 그러나 크게 야단을 맞지 않았다.

 

 

12월 24일

 

크리스마스이브 날이다. 그러나 기분이 매우 좋지 않다. 오락실에서 우리 반 남자애들을 만났다가 이상한 소리를 들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애들을 찾아가 두들겨 팼다. 지혜가 방학식날 나에게 했던 말도 다 그 녀석들이 쓴 ‘장난편지’ 때문이란다. 지혜는 그날 얼마나 자존심이 상했을까? 먼저 전화해서 사과하고 싶어도 미안해서 도저히 못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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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7일

 

내 짝인 지혜가 학교에 나오지 않았다. 선생님께서 지혜는 사고로 병원에 입원했다고 말씀하셨다. 걱정이 되었다. 키득거리는 놈이 눈에 띄었다. 친구가 아프다는데 웃다니.. 나는 그 녀석을 화장실로 데리고 가 두들겨 팼다. 어찌되었든 문병은 가야 하는데, 여건상 갈 수가 없다. 수업이 끝나는 대로 선생님이 주신 서류를 가지고 집에 갔다가 바로 공항으로 가야한다. 하필이면 비행기표를 그렇게 끊다니! 왜 나를 미국으로 보내려는 걸까? 이것이 한국에서 쓰는 마지막 일기가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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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일기장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 성민을 쳐다보았다. 간헐적으로 떨리던 그의 몸이 마지막으로 심한 경련을 일으키더니 축 늘어졌다.

 

 

 

- THE END -

 

 

 

(제가 쓴 저작물이므로 불펌 및 상업적으로 이용하면 안 됩니다.)

 

 

 

 

 

 

 

 

 주말에는 대학 선후배들끼리 모여서 야유회를 가기로 했습니다.

담 주에는 사무실에 일도 많고

그래서 언제 또 글을 올리게 될 지 모르겠습니다.

변변치 않은 소설인데,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시는 거 같아 좋네요. ^^;

 

그리고...

 

'딸을 위한 선물'이 삭제가 되었네요.

예전에도 삭제가 되서 문의를 했더니,

컴퓨터가 제목만 보고 자동으로 삭제를 한 거라며

불편을 끼쳐서 죄송하다고 복구해줬는데,

역시 그 제목이 문제인 걸까요?

 

혹시나 보고 싶은 분들은 아래 링크를 통해서는 들어갈 수 있어요.

 

 

 

 

1화: 말하는 거울

2화: 포스터를 그리면서

3화: 하얀 원피스

4화: 딸을 위한 선물 (19)

5화: 천재 작가 (19)

6화: 소름끼치는 목소리

7화: 뫼비우스의 운명

8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을 때...

9화: 최고의 상품

10화: 과거로 돌아간 남자 (운명의 새해)

11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上

12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下

13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14화: 내 잘못이 아니야

15화: 파우스트의 진실

16화: 그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는...

17화: 상류층의 놀이거리

18화: 피 흘리는 산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