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이걸 쓸까 말까 하다가 쓰게 되었네요 지금 쓰는 이 순간도 이 글을 올릴 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사람들이 비난 하는 것도 무섭고 자작이라고 할까봐 그것도 무서워서 ..전 되게 소심한 b형이거든요 ㅋㅋ
잠깐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올해 24살 된 무직인 여자입니다.
아무래도 이 이야길 하려면 글이 매우 길어 질 것 같으니까 보기 힘드신 분은 안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ㅋ
어디 제대로 말할 곳이 없어서 글을 씁니다.
저희집은 4식구가 삽니다. 엄마 아빠 저 남동생
남동생은 올해 22살이고 지금 현재 같이 살진 않습니다. 일찍이 자기 일을 정해서 대학 졸업하자 마자 직업군인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에 비하면 전 많이 방황을 했습니다. 동생한테 진짜 많이 미안합니다.
어릴때 부터 동생이나 저나 기댈때가 없었습니다.
엄마랑 아빠랑 연애 결혼은 한 것이 맞으나 엄마는 거의 강제로 사귀게 된거라 여러번 아빠를 도망갔지만 결국 고등학교 때 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많은 일이 있었죠
사실 친할머니가 매우 독한 분입니다.
전 한번 안아주거나 손은 잡아주거나 그런 적이 없었죠. 몇년에 한번봐도 다른 손자보다 잘하고 그러는데도 비교하고 무시당하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저희 엄마한테도 그랬구요
저희 엄마는 겉으로 보기엔 나이 답지 않게 고생도 안하고 살았을 것 같지 곱게 산듯 보이지만
아빠로 인해서 아픔이 많은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빠가 쫓아 다녀서 그게 엄청 싫었답니다. 그래서 도망도 다녀보고 했는데
아빠가 매우 끈질기게 따라 다녔답니다. 그러다가 아빠가 군대를 가고 엄마가 도망을 갔는데
저희 엄마를 매우 무시하던 저희 친할머니가 아빠가 엄마 안데리고 오면 탈영한다니까 우리엄마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임신을 하게 됐고 아빠가 군대 있을 때 엄마가 애를 홀로 나았습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그 애가 저인 줄 알겠지만 그 아니는 제가 아닙니다.
저희 친할머니까 아빠 없을 때 그 애를 어디 보내 버렸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가 남자라는 것 밖에 모릅니다. 찾으려 했으나 어디 갔는 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시누이가 6명이나 되는 집에 혼자 애를 낳자 마자 찬물에 손담그고 일을 했답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는 지금도 비가 오거나 그러면 힘들어 합니다. 선풍기 바람도 힘들어 하구요 손발 시리다고 전 이 이야길 초등학교 1학년때 엄마가 처음으로 술먹고 술주정으로 알게 되었죠 . 사실 이 이야기는 저 동생 엄마 아빠 할머니 빼고 외가집
아무래도 아빠가 후처의 자식이니까요 . 사실 저희 친가는 두곳입니다. 친할아버지 본부인이신 큰 할머니 집과 아빠를 낳은 친할머니 집 그리고 더 복잡하게 하면 아빠의 친엄마 이신 할머니의 본 남편 까지 매우 복잡합니다. 그래도 큰집이나 친할머니의 본남편의 집은 저희가 불쌍해서 그런지 매우 잘해주셨습니다. 몇번 보진 않았고 미울수 있는대도 잘 해주셨습니다.
문제는 그런 집에서 친할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자란 저희 아빠는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지 사랑해야 하는 지를 모릅니다. 그냥 자신의 물건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고등학교 때 까지 잘 몰랐습니다. 아빠란 존재가 어떤 건지 .
그렇다 보니 어릴 적 부터 가정환경은 매우 불안했습니다. 지금생각 해보면 그렇습니다.
엄마는 항상 학교 다녀 오면 온 불이 다 꺼진 방안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고 아빠가 올시간이 되면 밥준비를 했으니까요 아빠는 매번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윽박지르고 자기 기분에 맞춰야 했습니다. 매번 술먹고 들어와서 무기력한 엄마한테 푹언 하고 가끔은 폭행도 있었습니다.
보면 엄마가 같이 하거나 잘못한 경우는 못봤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희도 그렇게 지냈죠. 지금도 그렇지만 아빠가 일을 마치고 들어 오는 8시 반이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떨립니다. 앉아 있지도 못하고 서있구요 . 왜인지 모르지만 두려웠습니다.
그런 환경이 제 기억력을 매우 좋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어렴풋이 생각 나는데 단칸방에 아빠가 술을 마시고 아빠친구가 왜 그랬냐 하고 묻고 전 시장 한복판을 뛰어 다니면서 엄마를 찾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그게 제 꿈인 줄 알고 살았는데 뒤에 커서 보니 3-4살때 엄마가 그런적이 있다라고
제 기억을 확인 시켜 주었죠 .
그래서 전 5살때 부터 공황장애가 있었습니다. 어두우면 잠을 못자고 실제로 지금까지도 제 수면시간은 4시간도 안됩니다. 자더라도 깊은 잠을 못자고 가위나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누가 날 죽일 것 같고 숨도 못쉬겠고 온갖 상상이 다 되고 그런말 저희 아빠가 믿어 줄일도 없고 엄마는 자기도 힘든데 누구를 챙길 수 있겠습니까. 자기 무서우면 남동생이지만 동생 침대가서 자고 눈은 뜨고 밤을 새고 그랬습니다.
비가 와도 누가 데릴러 오는 부모도 없었구요 . 동생과 서로 의지 하며 살았습니다.
집은 경제력도 좋지 않았습니다. 아빠 혼자 버시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아토피가 심한 동생과 저는 매번 반지하에 살았었습니다. 방 두개 에요 .
중학교 졸업할때 까지 동생이랑 같은 방을 썼습니다. 아주 좁을 방이요 .
침대 밑에 땡기면 침대 나오는 그 침대를 다 꺼낼수도 없는 방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가게를 낸다고 하시고는 말아 먹고 결국 더 작은 집으로 안좋은 동네로
이사를 갔고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힘들단 내색 없이 도저히 밥먹고 살기 힘드니까 백화점을 다니셨습니다,.
그때 부터 밥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 하고 살았습니다. 아빠는 니네가 하는 일도 없으면서 뭐 하냐고 먹고 놀면서 청소나 설거지 하라고 안하면 그날 하루 종일 폭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오는 시간이면 살얼음 판이고 지옥 같았습니다.
아파 죽어도 학교는 가야했습니다. 독감이 걸린날 몇십년만에 폭설이 내리는데
아빠는 학교 가서 죽으라며 절 내보냈습니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 했습니다.
자기가 학교 다닐때 너무 놀아서 학교 빼먹는게 안좋은 거라고 .
엄마는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었죠 아빠가 무서우니 보낼 수 밖에요 .
그땐 다 아빠들이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
권위 적이고 자기 맘대로고 어디 한번 제대로 놀러 가본적도 없고 항상 제 주머니엔 동전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직장 다니고 마트에 다닐때 마트 특성상 물건이동도 많고 재고조사도 하고 야근도 하고 많이 바쁘셨습니다. 그때 마다 엄마가 일떄문에 늦는 건 대도 소리지르고 왜 늦냐고 직장 때려 치라고 돈도 안주면서 그랬습니다. 하루는 역앞에 살때 엄마가 그날 재고 조사 떄문에 늦는 날이였습니다. 그날도 아빠는 술을 왕창 마시고 들어 와서 동생과 저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니네 엄마 어디 갔냐고 뭐하냐고 왜 없냐고 찾아 오라고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각에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는데 일단 동생을 방에 두고 맨날 집에서 밥을 드시고 새벽에 술마시고 들어 와서도 식사를 차려 드려야 하는 분이기에 밥을 차려 드리고 방에 있는데 겁먹은 동생 이랑 저보고 나가라고
나가서 니네 엄마 찾아 오라고 전 너무 놀라서 엄마 재고조사라고 아빠한테 말했잖냐고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스산한 바람 불던 가을날 전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 까지 저는 8시 이후로 밖을 나가본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 아빠가 올시간이면 밥을 해야 해서 들어와 있었으니까요.
밖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겁이 많은데다가 역 주변이라 술마신 아저씨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마트 앞 까지 가야 해서 둘이 손 꼭 붙잡고 마트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마트는 걸어서 25분정도 ? 개천을 건너 가야 하니까요 .
5분쯤 걸었나 갑자기 동생이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휴지도 없었고 전 어째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동생도 놀라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 다행히 지나가던 대학생 오빠가 휴지를 꺼내주며 동생을 달래주며 니네 왜 여기서 이러냐고 위험하다고 집으로 가라고 그때 제가 긴장이 풀렸습니다.
울면서 말했죠 아빠가 엄마 찾아 오라고 그럤다고 저희 괜찮다고 고맙다고
데려다 준다는 그 오빠에게 괜찮다고 진짜 괜찮다고 하면서 집앞에 결국 둘이 앉아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어린 시적 기억은 이런거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학교에선 사고 안치고 모범생처럼 살았습니다. 부모님한테 실망 주기 싫어서 노력했습니다. 남들에게도 그런 소리 한번도 안했죠 .
대학교때 까지 제 친구들은 제가 되게 잘사는 집안에 행복하게 산 줄 압니다.
저나 엄마나 동생이나 자존심이 매우 쎄서 잘 감추고 다녔고
저희 아빠는 남들 앞에선 만점 짜리 아빠였습니다.
저희 아빠가 다른 아빠랑 다르나고 느낀건 고등학교때였습니다.
전 사실 디자인에 꿈이 있어서 중학교떄 부터 미술학원 보내달라 말씀 드렸으나 아빠는 됐다고 그러고 엄마는 일단 알겠다고 보내주겠다 보내 주겠다 그랬지만 결국 그 꿈은 무산됐죠
전 뻔히 저희 집 환경을 알아서 고등학교때 공고에 디자인 과에 갔습니다.
그때도 말이 많았죠 . 아무튼 중학교때 정말 친한 두 친구가 있는데
그중에 한 친구의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라는 건 저런 분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힘들면 데릴러 오고 딸과 친구처럼 지내고 딸을 위해서 라면 빛을 내서라도 미술학원도 보내고 그중 다른 친구의 아버지는 말없이 뒤에서 딸에게 용돈도 챙겨 주시고 무뚝뚝하지만 딸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셨죠 그때 알았습니다.
전 그때 까지 용돈을 따로 받아 본적도 없었고 집에도 돈이 없어서 준비물 사달라는 것도 눈치를 봤었고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가도 돈아깝다고 저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허리 디스크로 누워있는 엄마가 힘들어 하는데도 저랑 엄마를 응급실에 버려 두고 자기 친구랑 술마시러 갔었습니다.
미술학원을 다니지 못해서 4년제나 미술실기 치는대는 원서도 못넣었고 지방은 자취할 돈이 없어서 넣을 수가 없어서 결국 서우에 있는 전문대만 넣었고 운이 좋았는지 다 붙었습니다.
논술 학원 한번도 안다니고 혼자 독학해서 논술 시험보고도 다녔습니다.
저희아빠는 돈은 못대주지만 대학을 꼭 가야 한다 하셨습니다.
대학원서비 넣은 것도 아깝다고 뭐라 하시고 용돈도 한번 받아 본적이 없었습니다.
전문대고 디자인과다 보니 과제가 정말 쏟아졌습니다.
집과 학교는 같은 서울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하루에 왕복 3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월-금요일 까지 아침 9시 부터 저녁 6시까지 수업이였고 너무 힘들어서 자취하고 싶다 했지만
돈없다고 거절하시고 너무 힘들기도 하고 교수하나가 매번 방에 절 불러 놓고 너 남자친구는 있냐 성관계는 해봤냐 매번 물으며 이상한 이야길 해도 어디 말할 때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떄 까지 전 연애를 못했었거든요 남자 손도 못잡아봤는데 그이야기를 듣고
울고 그래도 엄마한테 말할 수 없었어요 속상하니까요 .
너무 과제가 많아서 가끔 엄마가 제 과제를 도와주면 그걸 보고 소리 지르고 엄마랑 저랑 붙어 있는 걸 아빠가 싫어 했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휴학 하고 싶다고 해도 안된다고 돈없다고 지금 계속 다니라고 아빠는 그랬고 엄마는 제가 휴학 하면 아빠가 난리 피우고 절 괴롭힐 까봐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
일단 글이 너무길어져서 오늘은 여기까지 써봤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건 지금 제가 너무 힘들어서요 저보다 세상에 더 힘든 사람 많은 거 알지만
아빠와 그만 살고 싶습니다.
맨날 이걸 눈으로 보다가 제가 쓰게 되었네요 .
사실 이걸 쓸까 말까 하다가 쓰게 되었네요 지금 쓰는 이 순간도 이 글을 올릴 지는 모르겠어요.
사실 사람들이 비난 하는 것도 무섭고 자작이라고 할까봐 그것도 무서워서 ..전 되게 소심한 b형이거든요 ㅋㅋ
잠깐 제 소개를 하자면 전 올해 24살 된 무직인 여자입니다.
아무래도 이 이야길 하려면 글이 매우 길어 질 것 같으니까 보기 힘드신 분은 안보시는 게 좋을 것 같아요 ㅋ
어디 제대로 말할 곳이 없어서 글을 씁니다.
저희집은 4식구가 삽니다. 엄마 아빠 저 남동생
남동생은 올해 22살이고 지금 현재 같이 살진 않습니다. 일찍이 자기 일을 정해서 대학 졸업하자 마자 직업군인으로 들어 갔습니다.
그에 비하면 전 많이 방황을 했습니다. 동생한테 진짜 많이 미안합니다.
어릴때 부터 동생이나 저나 기댈때가 없었습니다.
엄마랑 아빠랑 연애 결혼은 한 것이 맞으나 엄마는 거의 강제로 사귀게 된거라 여러번 아빠를 도망갔지만 결국 고등학교 때 부터 지금까지 살고 있습니다.
그로 인해서 제가 태어나기도 전에 많은 일이 있었죠
사실 친할머니가 매우 독한 분입니다.
전 한번 안아주거나 손은 잡아주거나 그런 적이 없었죠. 몇년에 한번봐도 다른 손자보다 잘하고 그러는데도 비교하고 무시당하고 살았습니다. 당연히 저희 엄마한테도 그랬구요
저희 엄마는 겉으로 보기엔 나이 답지 않게 고생도 안하고 살았을 것 같지 곱게 산듯 보이지만
아빠로 인해서 아픔이 많은 사람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아빠가 쫓아 다녀서 그게 엄청 싫었답니다. 그래서 도망도 다녀보고 했는데
아빠가 매우 끈질기게 따라 다녔답니다. 그러다가 아빠가 군대를 가고 엄마가 도망을 갔는데
저희 엄마를 매우 무시하던 저희 친할머니가 아빠가 엄마 안데리고 오면 탈영한다니까 우리엄마를 잡아가지고 왔습니다. 그러다 엄마가 임신을 하게 됐고 아빠가 군대 있을 때 엄마가 애를 홀로 나았습니다. 이 글을 읽은 분들은 그 애가 저인 줄 알겠지만 그 아니는 제가 아닙니다.
저희 친할머니까 아빠 없을 때 그 애를 어디 보내 버렸습니다. 엄마는 그 아이가 남자라는 것 밖에 모릅니다. 찾으려 했으나 어디 갔는 지도 모르고 그러면서 시누이가 6명이나 되는 집에 혼자 애를 낳자 마자 찬물에 손담그고 일을 했답니다. 그래서 저희 엄마는 지금도 비가 오거나 그러면 힘들어 합니다. 선풍기 바람도 힘들어 하구요 손발 시리다고 전 이 이야길 초등학교 1학년때 엄마가 처음으로 술먹고 술주정으로 알게 되었죠 . 사실 이 이야기는 저 동생 엄마 아빠 할머니 빼고 외가집
아무도 모릅니다.
할머니의 시집살이가 엄청 났습니다. 엄마 아빠가 같은 동네 사람이라 시골에만 내려가면 거기 분들이 엄마 불쌍하다고 그럽니다.
아무래도 아빠가 후처의 자식이니까요 . 사실 저희 친가는 두곳입니다. 친할아버지 본부인이신 큰 할머니 집과 아빠를 낳은 친할머니 집 그리고 더 복잡하게 하면 아빠의 친엄마 이신 할머니의 본 남편 까지 매우 복잡합니다. 그래도 큰집이나 친할머니의 본남편의 집은 저희가 불쌍해서 그런지 매우 잘해주셨습니다. 몇번 보진 않았고 미울수 있는대도 잘 해주셨습니다.
문제는 그런 집에서 친할아버지가 없는 집에서 자란 저희 아빠는 자식에게 어떤 식으로 해야 하는 지 사랑해야 하는 지를 모릅니다. 그냥 자신의 물건정도로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저도 고등학교 때 까지 잘 몰랐습니다. 아빠란 존재가 어떤 건지 .
그렇다 보니 어릴 적 부터 가정환경은 매우 불안했습니다. 지금생각 해보면 그렇습니다.
엄마는 항상 학교 다녀 오면 온 불이 다 꺼진 방안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고 아빠가 올시간이 되면 밥준비를 했으니까요 아빠는 매번 자기 기분에 맞지 않으면 윽박지르고 자기 기분에 맞춰야 했습니다. 매번 술먹고 들어와서 무기력한 엄마한테 푹언 하고 가끔은 폭행도 있었습니다.
보면 엄마가 같이 하거나 잘못한 경우는 못봤습니다.
그렇다 보니 저희도 그렇게 지냈죠. 지금도 그렇지만 아빠가 일을 마치고 들어 오는 8시 반이 되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떨립니다. 앉아 있지도 못하고 서있구요 . 왜인지 모르지만 두려웠습니다.
그런 환경이 제 기억력을 매우 좋게 해주었습니다. 사실 어렴풋이 생각 나는데 단칸방에 아빠가 술을 마시고 아빠친구가 왜 그랬냐 하고 묻고 전 시장 한복판을 뛰어 다니면서 엄마를 찾는 기억이 있습니다. 그냥 그게 제 꿈인 줄 알고 살았는데 뒤에 커서 보니 3-4살때 엄마가 그런적이 있다라고
제 기억을 확인 시켜 주었죠 .
그래서 전 5살때 부터 공황장애가 있었습니다. 어두우면 잠을 못자고 실제로 지금까지도 제 수면시간은 4시간도 안됩니다. 자더라도 깊은 잠을 못자고 가위나 악몽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누구에게도 말을 못했습니다. 잠을 자려고 누우면 누가 날 죽일 것 같고 숨도 못쉬겠고 온갖 상상이 다 되고 그런말 저희 아빠가 믿어 줄일도 없고 엄마는 자기도 힘든데 누구를 챙길 수 있겠습니까. 자기 무서우면 남동생이지만 동생 침대가서 자고 눈은 뜨고 밤을 새고 그랬습니다.
비가 와도 누가 데릴러 오는 부모도 없었구요 . 동생과 서로 의지 하며 살았습니다.
집은 경제력도 좋지 않았습니다. 아빠 혼자 버시는 돈이 그렇게 많지 않았습니다.
아토피가 심한 동생과 저는 매번 반지하에 살았었습니다. 방 두개 에요 .
중학교 졸업할때 까지 동생이랑 같은 방을 썼습니다. 아주 좁을 방이요 .
침대 밑에 땡기면 침대 나오는 그 침대를 다 꺼낼수도 없는 방에 살았습니다.
그러다 아빠가 가게를 낸다고 하시고는 말아 먹고 결국 더 작은 집으로 안좋은 동네로
이사를 갔고 제가 초등학교 5학년때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힘들단 내색 없이 도저히 밥먹고 살기 힘드니까 백화점을 다니셨습니다,.
그때 부터 밥하고 설거지 하고 청소 하고 살았습니다. 아빠는 니네가 하는 일도 없으면서 뭐 하냐고 먹고 놀면서 청소나 설거지 하라고 안하면 그날 하루 종일 폭언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래서 아빠가 오는 시간이면 살얼음 판이고 지옥 같았습니다.
아파 죽어도 학교는 가야했습니다. 독감이 걸린날 몇십년만에 폭설이 내리는데
아빠는 학교 가서 죽으라며 절 내보냈습니다. 그러는 이유는 간단 했습니다.
자기가 학교 다닐때 너무 놀아서 학교 빼먹는게 안좋은 거라고 .
엄마는 안타까워도 어쩔 수 없었죠 아빠가 무서우니 보낼 수 밖에요 .
그땐 다 아빠들이 그러는 줄 알았습니다 ,.
권위 적이고 자기 맘대로고 어디 한번 제대로 놀러 가본적도 없고 항상 제 주머니엔 동전 하나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직장 다니고 마트에 다닐때 마트 특성상 물건이동도 많고 재고조사도 하고 야근도 하고 많이 바쁘셨습니다. 그때 마다 엄마가 일떄문에 늦는 건 대도 소리지르고 왜 늦냐고 직장 때려 치라고 돈도 안주면서 그랬습니다. 하루는 역앞에 살때 엄마가 그날 재고 조사 떄문에 늦는 날이였습니다. 그날도 아빠는 술을 왕창 마시고 들어 와서 동생과 저에게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습니다. 니네 엄마 어디 갔냐고 뭐하냐고 왜 없냐고 찾아 오라고 새벽 두시가 넘은 시각에 다음날 학교를 가야 하는데 일단 동생을 방에 두고 맨날 집에서 밥을 드시고 새벽에 술마시고 들어 와서도 식사를 차려 드려야 하는 분이기에 밥을 차려 드리고 방에 있는데 겁먹은 동생 이랑 저보고 나가라고
나가서 니네 엄마 찾아 오라고 전 너무 놀라서 엄마 재고조사라고 아빠한테 말했잖냐고
했지만 소용 없었습니다.
스산한 바람 불던 가을날 전 동생을 데리고 집을 나왔습니다. 사실 그때 까지 저는 8시 이후로 밖을 나가본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 아빠가 올시간이면 밥을 해야 해서 들어와 있었으니까요.
밖은 너무 무서웠습니다 겁이 많은데다가 역 주변이라 술마신 아저씨를이 많았습니다.
그래도 마트 앞 까지 가야 해서 둘이 손 꼭 붙잡고 마트 쪽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저희 집에서 마트는 걸어서 25분정도 ? 개천을 건너 가야 하니까요 .
5분쯤 걸었나 갑자기 동생이 코피를 흘리기 시작했습니다. 휴지도 없었고 전 어째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동생도 놀라서 울기 시작했습니다 . 다행히 지나가던 대학생 오빠가 휴지를 꺼내주며 동생을 달래주며 니네 왜 여기서 이러냐고 위험하다고 집으로 가라고 그때 제가 긴장이 풀렸습니다.
울면서 말했죠 아빠가 엄마 찾아 오라고 그럤다고 저희 괜찮다고 고맙다고
데려다 준다는 그 오빠에게 괜찮다고 진짜 괜찮다고 하면서 집앞에 결국 둘이 앉아 있었습니다.
제 기억에 어린 시적 기억은 이런거 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학교에선 사고 안치고 모범생처럼 살았습니다. 부모님한테 실망 주기 싫어서 노력했습니다. 남들에게도 그런 소리 한번도 안했죠 .
대학교때 까지 제 친구들은 제가 되게 잘사는 집안에 행복하게 산 줄 압니다.
저나 엄마나 동생이나 자존심이 매우 쎄서 잘 감추고 다녔고
저희 아빠는 남들 앞에선 만점 짜리 아빠였습니다.
저희 아빠가 다른 아빠랑 다르나고 느낀건 고등학교때였습니다.
전 사실 디자인에 꿈이 있어서 중학교떄 부터 미술학원 보내달라 말씀 드렸으나 아빠는 됐다고 그러고 엄마는 일단 알겠다고 보내주겠다 보내 주겠다 그랬지만 결국 그 꿈은 무산됐죠
전 뻔히 저희 집 환경을 알아서 고등학교때 공고에 디자인 과에 갔습니다.
그때도 말이 많았죠 . 아무튼 중학교때 정말 친한 두 친구가 있는데
그중에 한 친구의 아버지를 보며 아버지라는 건 저런 분이란 걸 알게 되었습니다.
친구가 힘들면 데릴러 오고 딸과 친구처럼 지내고 딸을 위해서 라면 빛을 내서라도 미술학원도 보내고 그중 다른 친구의 아버지는 말없이 뒤에서 딸에게 용돈도 챙겨 주시고 무뚝뚝하지만 딸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해주셨죠 그때 알았습니다.
전 그때 까지 용돈을 따로 받아 본적도 없었고 집에도 돈이 없어서 준비물 사달라는 것도 눈치를 봤었고 아파서 응급실에 실려가도 돈아깝다고 저에게 그런 말을 하면서 허리 디스크로 누워있는 엄마가 힘들어 하는데도 저랑 엄마를 응급실에 버려 두고 자기 친구랑 술마시러 갔었습니다.
제가 그날 병명도 모른체 진통제를 두대나 맞고도 고통스러웠지만 엄마가 걱정되서 제가 앉아있고
결국 침대에 엄마를 눕혔습니다.
계속 그렇게 살다 보니 저에게 생기는 건 병과 심리적 불안이더군요 .
다행히 엄마 직장을 다니시면서 우울증도 많이 줄고 자존감도 많이 찾으셨습니다.
그렇게 살았습니다. 십수년을 아빠에게 벗어 나고픈 생각 밖에 없습니다.
전 그렇게 대학을 가고 대학 가서도 돈이 없어서 학교를 못간날도 있었습니다.
대학을 다니면서 단한번도 술자리를 갖거나 나이트 클럽 도 못가봤고
학교 집 집 학교를 매번 통학했습니다.
돈이 없어서 전문대를 갔고 그것도 학자금을 받아 갔습니다.
미술학원을 다니지 못해서 4년제나 미술실기 치는대는 원서도 못넣었고 지방은 자취할 돈이 없어서 넣을 수가 없어서 결국 서우에 있는 전문대만 넣었고 운이 좋았는지 다 붙었습니다.
논술 학원 한번도 안다니고 혼자 독학해서 논술 시험보고도 다녔습니다.
저희아빠는 돈은 못대주지만 대학을 꼭 가야 한다 하셨습니다.
대학원서비 넣은 것도 아깝다고 뭐라 하시고 용돈도 한번 받아 본적이 없었습니다.
전문대고 디자인과다 보니 과제가 정말 쏟아졌습니다.
집과 학교는 같은 서울이지만 대중교통을 이용하면 하루에 왕복 3시간 정도가 걸렸습니다.
월-금요일 까지 아침 9시 부터 저녁 6시까지 수업이였고 너무 힘들어서 자취하고 싶다 했지만
돈없다고 거절하시고 너무 힘들기도 하고 교수하나가 매번 방에 절 불러 놓고 너 남자친구는 있냐 성관계는 해봤냐 매번 물으며 이상한 이야길 해도 어디 말할 때가 없었습니다.
사실 그떄 까지 전 연애를 못했었거든요 남자 손도 못잡아봤는데 그이야기를 듣고
울고 그래도 엄마한테 말할 수 없었어요 속상하니까요 .
너무 과제가 많아서 가끔 엄마가 제 과제를 도와주면 그걸 보고 소리 지르고 엄마랑 저랑 붙어 있는 걸 아빠가 싫어 했습니다. 그런 이유때문에 휴학 하고 싶다고 해도 안된다고 돈없다고 지금 계속 다니라고 아빠는 그랬고 엄마는 제가 휴학 하면 아빠가 난리 피우고 절 괴롭힐 까봐 다니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학교를 간신히 졸업했습니다 .
일단 글이 너무길어져서 오늘은 여기까지 써봤습니다.
이 글을 쓰게 된건 지금 제가 너무 힘들어서요 저보다 세상에 더 힘든 사람 많은 거 알지만
어디 말할 때가 없어서 용기내서 씁니다.
그러니 너무 뭐라고 하지 말아 주세요 죄송합니다.
일단 오늘은 글을 이만 줄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