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 글이 될 것 같습니다..
기다림의 시간이 길었거든요..ㅎㅎ
현재 수도권에서 그리 멀지 않은 지방에 살고 있는 30대 3살 딸아이의 엄마입니다..
수도권에서는 멀지 않지만 면읍 단위 시골이랍니다.
주변엔 온통 논과 밭이 펼쳐져 있는..ㅎㅎ
그만큼 혼자 아이 키우기도 쉽지 않더군요..
직장을 다니려니 선택할 수 있는 어린이집 수도 한정되어 있고요..
서론이 길었고요...
이십대 후반 결혼 전 과수원을 하시던 친정 아버지가 농사철이던 때 농기계에 깔리는 사고로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나셨어요..
엄마와 이혼하신지가 10년이 넘으셨었고 간간이 연락만 하시고 서로 떨어져 사셨는데
저와 두살 터울 남동생이 둘 다 대학 진학으로 집에서 독립하자 마자
알고 지내셨던 분인 거 같아요..
왠 아주머니 한 분이 시골집으로 들어와 사시기 시작했었고...
그 후 대학 다니며 주말에 집에 오면 우리 물건은 하나도 없고 온통 그 아주머니 딸들의 물건이 내 방..동생방에 채워져 있고 (아주머니 딸들도 딴 지역에 있어 시골집에 같이 사는 것은 아니었습니다..다만 딸들이 쓰지 않는 가구라던지 옷들이 저희방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저와 동생 물건들은 창고에 들어가 있더군요..) 잠도 거실에서 자야했서 점점 시골집에 가지 않게 되더군요...
그래도 명절 때나 가끔 가보면 무슨 돈이 생기는지 (저희집 과수원을 하고 있었지만 토박이가 아니었고 아버지도 농사짓던 분이 아니라 늘 일을 힘들어 하셨고 수입도 많지 않았어요..) 수시로 냉장고며 김치냉장고가 최신형으로 바뀌어 있거나 아주머니 딸들에게 수십만원짜리 한약을 해주었다는 둥..하는 얘기를 들어야 했답니다..저는 아르바이트하며 하루하루 힘들게 학교를 다니고 있었지요...
어쨌든 그러게 지내던 중 사고가 나신 거였고 연락을 자주 안하다 보니 1시간 거리의 다른 곳에서 직장 다니며 자취를 했던 저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걸 다음날 알게 되었고 서울에서 학교 다니던 동생에게도 연락을 했고..동생은 오는 시간이 걸려 제가 도착하자마자 염을 하고 입관을 하실 수 있었지요..
머가 먼지도 모르게 장례를 치르고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이고 주말이었어서 중고등학교 친구들이 조믄을 만히 와주었답니다...
조문객들 90%이상이 제 지인들이었지요...
그러나 장례 후 누가 얼마를 냈는지 보지도 못한 부의금은 모두 그 아주머니께서 가져가셨고
아버지 49제가 되기도 전에 과수원에 가압류를 넣고 소송을 하시더군요...
덕분에 2년여의 시간동안 직장을 다니며 법원으로 은행으로 불려다니며 힘든 시간을 보냈지요...
은행이며 동네에 빚도 많이 지셨더라고요...
다행인지 불행인지..빚은 갚았고 과수원은 긴 소승 끝에 승소하여 남겨둘 수 있었지요...
허무함이 남아서 일까요..
그 후 직장을 다니면서 술을 많이 먹었고...혼자 사는 외로움이 너무 커져갔지요...
서울에 사시는 엄마는 순해빠지고 독하지 못한 아직 서울에서 학교를 다니는 남동생을 챙기느라 저한테까지 살갑게 해주시지는 못했고..30살이 다 되어 갈수록 외로움이 사무쳐 안정적인 가정을 가지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어요...
그러다 같은 직장을 다니다 퇴사한 연하의 남자친구를 만나게 되었고 그 친구는 아들 셋 있는 잡안의 장남으로 자식들이 모두 집에서 생활하고 하는 것과 친척들이 가까운 곳에 살아 자주 사촌동생들과 교류하고 하는 것을 부러워했었지요...
계획했던 것은 아니나 저런 집에 가면 사람 냄새나는 삶을 살겠구나...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얼마되지 않아 아이가 생긴 걸 알게 되었고 둘다 적지 않은 나이였으니 결혼하자고 했지요...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런 저런일이 많았고...그래도 무난하게 결혼식도 치르고 안정되게 살겠구나 했는데..이제가 시작이더군요...
결혼 준비하면서 더 나은 직장을 옮기겠다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둔 애아빠가 결혼식 후에도 직장을 구할 생각을 안하더군요...나름 이력서도넣고 하는 것 같았으나 따지는 것이 얼마나 많은지...
어쩌다 들어온 면접을 보러가도 연락이 안오기가 일쑤...
배는 점점 불러오고 저 혼자 직장을 다니고 있었답니다...시댁은 알면서도 생활비는 보태주겠다는 말만...저희 친정엄마는 애아빠가 놀고 있다는 걸 몰랐어요...상견례 자리에서 시모는 눈 깜짝 안하고 거짓말 잘도 하시더군요...
예정일이 1월 말이라 배가 한참 불러올 때 그 추운 겨울날 애아빠는 집에서 놀면서 청소는 커녕 밤새 게임하거나 티비보고 아침에 저 출근할 시간이 되거나 출근하고 나면 자고...밤에 제가 자러 들어가면 혼자 치킨에 맥주 시켜서 배달이 와서 벨을 누르면 소리가 나니까 미리 나가서 밖에서 받아들고 조용히 들어와 딴 방에서 게임하며 혼자 먹더군요...저 치킨 좋아라 합니다...거기다 임산부 인데 애아빠와 사이가 안조아 혼자 밥 해먹기가 눈치보여 매일 과자며 과일로 때우고 말았는데...
담배피러 뻔질나게 밖에 왔다갔다하면서 아침에 출근 전에 제 차 한번 시동 걸어 따듯하게 해주지 않더군요...
눈 맞으며 그렇게 회사를 혼자 다녔고...주말이면 쉬고 싶은데 걸어서 10분거리 시댁에서는 툭하면 오라고 전화를 하시더군요...평소에도 전화 자주 하라고 하시고...
애아빠 혼자 계신 저희 친정엄마에게 안부 전화 결혼 후 한 번도 드린 적이 없었답니다...
오히려 저희 엄마가 애아빠 생일에 먼저 전화하고...애아빠는 저희 엄마 생일도 몰랐답니다..
하긴...본인 부모 생일도 몰라서 시댁에서 저에게 하루 전에 얘기하길래(시부.시모 생일이면 꼭 하루 전에 저녁에 전화해서 알려주더군요..) 애아빠가 말 안해주었다고 죄송하다고 몰랐다고 하면 본인아들 모른 것은 바빠서 잊어버렸다고 하더군요...집에서 노는 사람이 바쁠 일이 머 있다고...
애아빠테 물어보면 자랑인지 당당하게 모른다고 말하더군요...
애아빠는 가장의 도리를 못하고 있는데 시댁에서는 며느리의 도리만 하길 강요하셨고...
첫아이니 만큼 출산용품 제 눈으로 보며 고르고 싶었는데 어느날 애아빠가 새댁에 다녀오더니
한보따리 들고 들어와 거실 구석에 뿌려놓더군요...
먼지도 모르고 머라고 말도 없고 그냥 두었는데
알고보니 출산용품 아기용품 가게에서 사라는 대로 시모 혼자 가서 사오신 거더군요...
니네는 돈 없을테니..하시면서...
그 돈 저희 주시면서 같이 가서 골라봐라...하시면 묵었던 감정도 풀고 애아빠가 좀더 책임감을 가질 수도 있었을 텐데 말입니다...
그렇게 예정일은 다가 오는데 애아빠는 취직할 생각을 안하더군요...
혼자 애를 낳을 수도 없고 사이는 안 좋아지고...
출산 휴가 받고 한 달을 집에 있으면서 밤마다 혼자 울었답니다..
그러다 미혼모 시설에라도 가서 낳자는 결심을 하고 친정엄마에게 그동안 말안하고 있었던 애아빠와 시댁 얘기를 다 했지요...
당장에 엄마가 내려오셨고 시모와 담판을 지을 생각에 만나셨는데...
적반하장도 유분수지....
자기 등산하고 있으니까 기다리라고 하더니 저희 집에 오셔서는 삿대질에 난리를 치시고...
결국에는 자기 아들, 애아빠를 데리고 시댁으로 가버리더군요...
저 미혼모 시설 가면 짐 빼고 하실 생각이셨는지....
많은 자잘한 사건이 있었답니다...
그래도 애아빠고 첫 출산 혼자가 겁이 나서
눈보라 치던 날 눈 맞으며 혼자 걸어서 시댁가서 만삭에 무릎 꿇고 빌고 애아빠 데려와
3일 뒤 출산했어요...시댁은 모두 아들밖에 없어 한 대가 건너 딸이 태어난 건 저희 딸 하나 밖에 없어 더 이뻤겠지요...
애아빠 사촌 동생도 일찍 결혼을 했는데 그 집도 모두 아들이었어요...
애아빠는 내가 병원에 입원해서도 조리원에 있을 때도 내내 같이 놀다가
조리원 퇴원하는 날 친구 회사에 아르바이트로 처음 야간 일을 하게되었답니다...
그런데 퇴원해서 집에 와 그날 저녁에 일하러 가는 건데 일하러 가기 싫다고
얼마나 짜증을 부리고 하던지...7개월을 넘게 놀았으면서 얼마나 더 놀고 싶어 그러는지...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시작해서 이래저래 친구 빽으로 정사원이 되었는데..
이상한 것만 배워와서 술 값을 쓰기 시작하더군요...
애기가 4~5개월 될때까지 아르바이트생이라 급여는 100만원 조금 넘게 받고 했었고...모자라는 생활비는 제가 모아둔 돈과 육아휴직비로 충당했어요...
그 뒤에 급여가 오를만하니까 제 명의의 예비카드로 술값을 결제하는데...
한 달 새 38만원..53만원..73만원....
열할 사이로 이렇게 결제를 하더군요...
새벽 4시에 애기랑 자고 있는데 온 문자...잠결에 봐서 7만3천원 인 줄 알았는데
아침에 보니 73만원이더군요....
그 후 생활비도 얼마 안주는데 또 결제할까 무서워 카드 정지를 시켰고..
시댁에서는 그걸 알고 애아빠가 주유소에서 카드 정지가 되서 챙피를 당했다고
그 얘기로 저를 못된 년을 만들더군요...
제가 준 카드는 어디까지나 급할 때 쓰라고 준 예비카드 입니다...
애아빠는 본인 체크카드가 있었어요...
자기 돈은 다 쓰고 기름도 제 카드로 또 넣으려고 했던 거더군요...
시댁에 73만원을 제 카드로 결제했다고...생활비도 월급 전부를 주는 것이 아니라 늘 8~90만원만 이체해 주던 사람이다...라고 말씀 드렸더니
73만원은 직원들끼리 회식한 건데 현금으로 받기로 했다고 애아빠가 그랬다고 자기들은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런데 그 후에 카드 이체일이 되어도 생활비는 커녕 본인이 현금으로 받을 그 술값도 안 줄까요....
시댁에 얘기해도 계속 그 소리만....
결국 두달을 친정엄마에게 돈을 꾸어 메꾸었어요....
그 일 이후 애아빠는 또 집을 나가 시댁에 들어가 버렸고요...
시모는 제가 밥도 안주고 빨래도 안해줘서 애아빠가 살이 빠진다는 이유였고요...
밥을 왜 안주겠습니까...
애아빠 그렇게 술 먹고 다니며 매일 빨라야 새벽 2시 귀가...
아침 차려도 먹기는 커녕 세수도 안하고 나갈 때가 더 많았고...저녁 먹을 시간에 들어온 적은 한번도 없었고요...주말에는 느지막히 일어나 해장한다고 짬뽕시켜 먹고 저녁시간 되면 또 동네 친구들 만난다고 나가 술 먹고....
빨래는 안해준 적 한번도 없었습니다...
저 깨끗한 거 좋아하고 옷에서 냄새나는 거 정말 싫어하는 사람입니다..
애기 돌때까지 애기 내복 손수건 목욕수건 모두 매일 삶아 입혔어요...
그 후 전화도 안받고 본인 필요한 거 있을 때만 들어와 가지고 나가더군요...
물론 생활비 전혀 주지 않았고요..본인 술값으로 써서 친정엄마한테 빌린 돈도 마찬가지구요...
어느날 머 가지러 왔길래 붙들고 생활비 달라고 했더니
비웃으면서 저한테 집에서 놀면서 하는 일이 머가 있다고 생활비를 달래냐고 하더군요...
저는 너무 충격이었어요...
처음부터 놀던 저도 아니었고 애아빠 놀때도
만삭때까지 혼자 회사다니고 주말마다 집들이 치루고 그 때도 육아휴직 받아 보조금도 달달이 받는 상태였으니까요...
그리고 아무것도 안하고 뺑뺑 노는 건 아니잖아요...
모유수유 중이던 젖먹이 키우고 청소 빨래 집안일 다 하고 있는데...
그럼 젖먹이 아기도 없이 성인이 된 아들들만 있는 집에 계신 시모는 밥도 드시면 안되겠네요...
어떻게 식구들이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는지....
그러면서 자기는 가진 것 아무것도 없으니 맘대로 하라더군요...
느낌이 이상했어요...
차 명의는 원래 시부 앞이었고 알아보니 집 명의를 시모 앞으로 증여해 놨더군요...
그래서 저렇게 능글능글 비웃으면서 자신만만해했구나...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기 돌이 다가오고 어짜피 애아빠는 아기 태어나고 혼자 30분 이상을 안아줘 본 적이 없었어요..
목욕은 커녕 기저귀 한 번 갈아준 적이 없었고요...
아기가 기어다닐때 애아빠가 게임하던 방에 들어간 적이 있었는데 바로 안아데리고 나와
거실에 앉혀놓더군요...
아기가 다기 방으로 따라 들어가니까 문지방앞에서 애기 코앞에서 방문을 꽝 닫아버렸어요...
애가 놀래서 울고 불고 제가 안아주고 있어도 문도 안 열어보더군요...
그때도 진짜 인간되긴 글렀구나 했어요...
그래서 애기 돌도 안 챙길꺼고...저 혼자 준비해서 했어요...
그래도 친구들이 많이 와줘 쓸쓸하진 않게 했었어요...너무 고마웠져....
돌도 지나고 애아빠는 집나가 시댁에서 생활비를 안주니 육아휴직도 끝나가고 일을 해야 했어요...
하루는 고민 끝에 아기를 시댁에 데려다 줘봤어요...
일해야 한다고..
하루도 못 견디고 다시 데리러 갔는데 난리를 피우더군요...
애를 버렸다느니 하면서 시모는 애기 보는데서 집어던지시고 애는 그거 보고 또 놀래 자지러지고...애 달래서 방에 들어갔더니 시동생 따라 들어와 어른 말씀하시는데 머하는거냐고 애가 중요하냐고 소리 지르데요...물건 집어던지고 하는게 이 집에서는 말씀을 하시는 거였나봐요...
세시간을 애가 안고 서서 시부모 애아빠 시동생에게 마녀 사냥 당하듯 폭언 들었어요....
결국엔 제가 버티니까 나가라고 하더라고요...
집에 와서 애기 눕혀 재우고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 오데요...
그 때가 애기가 돌 막 지났을 때였는데 지금 31개월이에요...
시댁에서는 누구도 어떤 연락도 없이 찾아오는 사람도 없어요...
살던 집에서는 여지껏 저와 딸아이가 회사로 어린이집으로 왔다갔다하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간간히 들리는 얘기로는 시모가 당장 쫓아와서 저희 내쫓고 싶어서 안달이라는데 애아빠가 자기가 알아서 한다고만 하고 있어 주변 식구들 모두 답답해 하고 있다는 얘기가 들리더군요...
집 번호키로 머라 할까바 안바꾸고 있었더니 필요한 게 잇을때마다 저희 없을때 몰래 들어와 가져가고 뒤져보고 하더군요..제가 예민한 것도 있고 냄새를 잘 맡거든요..은근히 티가 나더라고요...
올초 아직 추울 때 제 예물이 없어졌더군요...
예물이 있던 자리 저와 애아빠 밖에 모르는데 아이 돌반지며 현금은 그래도 인거 보면 도둑은 아니고요...얼마 되지도 않아요..다이아3부..금목걸이 가락지 8돈..큐빅세트...그래도 금목걸이 가락지는 아이 키우며 정말 급한일..힘든 일 생기면 쓸려고 했던 건데 말이에요...
애아빠 금목걸이는 진즉에 결혼 초에 어짜피 하지도 않는다고 본인 밪 갚는다고 제가 말리고 말렸는데 팔았거든요...그 빚도 결혼 전에 차 사고 내서 차 명의가 시부 앞이라 보험처리하면 안된다고 현금 수리할려고 진 빚이에요...
너무 화가 나서 번호키로 바꿔버렸어요..
머라하던지 말던지...
이제 아이도 커가고.. 말을 빨리 배워 저랑 얘기를 많이 해요..딸아이라 그런지..
그런 아이가 유일하게 하지 않는 말..아빠..라는 단어에요....
예전엔 아빠라는 소리를 들을 일이 없어 안했는데...
작년 요맘때 저와 애아빠 결혼 액자 사진을 보고 앞에 앉아 자기 발을 보면서 아가발..엄마발..삼촌발...하더라고요...
이제는 아빠가 어떤 뜻인 단어라는 거 알면서 안하는 게 티가 나요....
맘이 많이 아프져....
이대로 언제까지 살아야 하는 건지...
내년 봄이 되면 제가 다닌는 회사가 이사를 간데요...
수도권근방 경기도로요...
결혼 전부터 다니던 회사 상사분이 제 사정을 다 알고 친하게 지내고 있어 같이 가야지..하시는데...
저도 친정엄마도 서울에,,친한 친구들도 거의 수도권에 살고 있어 이사 가고 싶어요...
이번이 기회인 건지...
근데 한편으로는 제가 먼저 서류 정리하자..하는 걸 시댁에서 기다리고 있는 거 같은데...
그럼 양육비며 안줘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애아빠가 본인친구들에게 제가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 양육비 안주는 거라고 했다더라고요...
무슨 생각으로 그런 소리를 하고 다니는지...
그냥 홀가분하게 바라지 말고 이사갈까 허다가도...
아이와 제 미래를 이렇게 해버리고....제 몇 년 인생을 눈물로 망쳐버린 저 집안이
아무일 없는 듯이...주변 남들이 다 욕해도 자기네 끼리 뭉쳐서 저만 이상한 시댁에 불효하는 나쁜 년 만들어 버린...저 식구들이 그냥 편안하게 사는 거 못 볼 껏 같아요...
적어도 아이가 있으니 그 아이의 미래 정도는 책임져야 하는 책임감 정도는 알려주고 싶은데 말이에요...
어떻게 하는 것이 저와 아이의 삶을 밝게 유지할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