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외동아들이었던 필립 1세(펠리페 1세)는 한세대 전 가장 미녀공주로 소문난 어머니 마리의 유전자를 받아서인지 유럽에서 가장 꽃미남으로 불리던 왕자였다. 어머니의 영지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받아 네덜란드 공작이었다. 그는 스페인의 공주인 후아나와 결혼을 했는데 목적은 물론 스페인땅이었다. 하지만 후아나의 그림을 본 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남공이라는 별명답게 당시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여자들을 무척이나 건드려 15세에 이미 사생아가 있는 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아나와 결혼식을 했을 때 바로 침실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들을 낳은 후 다시 방탕한 나날을 보냈는데. 결국 이로 인해 후아나는 미쳐버리고 만다. 필립은 오로지 아내의 영지인 스페인을 가로첼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장인 페르난도 5세도 이를 눈치채고 경계하고 있었다. 결국 필립은 힘으로 스페인을 빼았으려고 직접 처들어왔다. 그러나 군영에서 훈련을 마치고 차가운 물 한잔을 마신 후 온 몸에 오한을 느끼다가 죽었다. 지금의 병명으로 폐결핵 이었다고 한다. 그의 시체는 미쳐버린 아내 후아나에 의해 스페인 남부를 일주하였는데... 후아나는 무더운 날씨에도 항상 관을 열어 그의 시체에 키스를 했다고 한다.
1. 포르투칼의 페르난도 1세는 왕세자 시절 사랑하는 애첩이 부왕의 손에 죽음을 당하자 통곡을 하며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위에 오른지 12년이 되는 1357년에 그녀의 무덤을 파서 해골을 맞춘 후 거기에 왕비복을 입혀 자신의 옆자리에 두었다. 그는 항상 신하들에게 왕후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해골에다가 충성의 키스를 요구했다. 결국 왕실은 얼마 못가 단절되었다. 이후 그의 또 다른 첩이 데리고 온 씨 다른 자식인 수도원장 아비스가 카스티야군을 격파하고 새왕조를 열어 조안 1세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들은 대항해시대를 연 왕과 왕자(항해왕 앤리케)가 되었다.
2. 루이14세는 당시 유명한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왜냐하면 당시 의학수준으로 충치가 전염되어 병을 유발한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식사를 하면 항상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더군다나 음식을 제대로 씹지못해 자주 줄줄 새어나갔다고 한다.
3. 루이 15세는 정숙한 여자보다는 난잡한 여자를 즐겼다. 물론 퐁파두르 부인같은 지식을 갖춘 애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의 첩 노릇을 하던 창녀출신들이었다.(대표적인 여성으로 뒤 바리 부인) 덕분에 말년에는 매독으로 크게 고생하였으며 고통속에 죽어갔다. 또한 그 방탕의 대가는 손자인 루이 16세가 대신 받아야만 했다. 루이 15세의 유언은 "될 대로 되라지..."
4. 잉글랜드의 핸리 8세는 튜더왕조의 번영을 다진 임금으로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의심이 많았으며 변덕스러웠다. 또한 아들덕후여서 아들을 낳지못한 왕비 2명의 목이 달아났다. 뒤늦게 아들 하나를 얻었으니 그가 바로 왕자와 거지의 모티브가 된 에드워드 6세이다. 그러나 그도 몸이 약해 곧 죽고 큰 딸인 피의 메리가 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둘째딸인 엘리자베스 1세에 들어와 겨우 안정과 번영의 길을 열었으나. 그녀가 죽은 후 튜더왕조는 단절되었다.
5. 프랑스 카페왕조의 왕이었던 필립4세(1285~1314)는 탬플기사단을 집단처형 시킨 왕으로 유명하다
그 때 기사단장은 필립 4세와 왕의 오른팔 노가레에게 저주를 걸었고 얼마 되지 않아 둘 다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후 그의 후계자들도 단명해 14년 후 카페왕조 직계는 단절되었으며 이후
백년전쟁이 발발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별명은 미남왕이었으며 또 다른 미남왕이라 불린 그의 아들 샤를 4세는 카페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되었다.
유럽왕실의 미남 지배자로 불린 이들의 비극 1편
0. 신성로마제국 황제 막시밀리안 1세의 외동아들이었던 필립 1세(펠리페 1세)는 한세대 전 가장 미녀공주로 소문난 어머니 마리의 유전자를 받아서인지 유럽에서 가장 꽃미남으로 불리던 왕자였다. 어머니의 영지였던 네덜란드와 벨기에를 받아 네덜란드 공작이었다. 그는 스페인의 공주인 후아나와 결혼을 했는데 목적은 물론 스페인땅이었다. 하지만 후아나의 그림을 본 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고 한다. 하지만 미남공이라는 별명답게 당시 네덜란드나 벨기에의 여자들을 무척이나 건드려 15세에 이미 사생아가 있는 몸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후아나와 결혼식을 했을 때 바로 침실로 데리고 갔다고 한다. 하지만 자녀들을 낳은 후 다시 방탕한 나날을 보냈는데. 결국 이로 인해 후아나는 미쳐버리고 만다. 필립은 오로지 아내의 영지인 스페인을 가로첼 생각만 가득했다. 하지만 장인 페르난도 5세도 이를 눈치채고 경계하고 있었다. 결국 필립은 힘으로 스페인을 빼았으려고 직접 처들어왔다. 그러나 군영에서 훈련을 마치고 차가운 물 한잔을 마신 후 온 몸에 오한을 느끼다가 죽었다. 지금의 병명으로 폐결핵 이었다고 한다. 그의 시체는 미쳐버린 아내 후아나에 의해 스페인 남부를 일주하였는데... 후아나는 무더운 날씨에도 항상 관을 열어 그의 시체에 키스를 했다고 한다.
1. 포르투칼의 페르난도 1세는 왕세자 시절 사랑하는 애첩이 부왕의 손에 죽음을 당하자 통곡을 하며 이를 갈고 있었다. 그러다가 왕위에 오른지 12년이 되는 1357년에 그녀의 무덤을 파서 해골을 맞춘 후 거기에 왕비복을 입혀 자신의 옆자리에 두었다. 그는 항상 신하들에게 왕후에게 존경을 표시하는 의미에서 그녀의 해골에다가 충성의 키스를 요구했다. 결국 왕실은 얼마 못가 단절되었다. 이후 그의 또 다른 첩이 데리고 온 씨 다른 자식인 수도원장 아비스가 카스티야군을 격파하고 새왕조를 열어 조안 1세가 되었으며, 그의 아들들은 대항해시대를 연 왕과 왕자(항해왕 앤리케)가 되었다.
2. 루이14세는 당시 유명한 의사들의 권고에 따라 이빨을 모조리 뽑아버렸다. 왜냐하면 당시 의학수준으로 충치가 전염되어 병을 유발한다고 진단했기 때문이다. 때문에 식사를 하면 항상 오랜 시간이 걸렸으며 더군다나 음식을 제대로 씹지못해 자주 줄줄 새어나갔다고 한다.
3. 루이 15세는 정숙한 여자보다는 난잡한 여자를 즐겼다. 물론 퐁파두르 부인같은 지식을 갖춘 애첩도 있었지만 대부분은 남의 첩 노릇을 하던 창녀출신들이었다.(대표적인 여성으로 뒤 바리 부인) 덕분에 말년에는 매독으로 크게 고생하였으며 고통속에 죽어갔다. 또한 그 방탕의 대가는 손자인 루이 16세가 대신 받아야만 했다. 루이 15세의 유언은 "될 대로 되라지..."
4. 잉글랜드의 핸리 8세는 튜더왕조의 번영을 다진 임금으로 평가되지만 실제로는 의심이 많았으며 변덕스러웠다. 또한 아들덕후여서 아들을 낳지못한 왕비 2명의 목이 달아났다. 뒤늦게 아들 하나를 얻었으니 그가 바로 왕자와 거지의 모티브가 된 에드워드 6세이다. 그러나 그도 몸이 약해 곧 죽고 큰 딸인 피의 메리가 많은 사람을 죽였으며 둘째딸인 엘리자베스 1세에 들어와 겨우 안정과 번영의 길을 열었으나. 그녀가 죽은 후 튜더왕조는 단절되었다.
5. 프랑스 카페왕조의 왕이었던 필립4세(1285~1314)는 탬플기사단을 집단처형 시킨 왕으로 유명하다
그 때 기사단장은 필립 4세와 왕의 오른팔 노가레에게 저주를 걸었고 얼마 되지 않아 둘 다 시름시름 앓다가 숨을 거두었다. 이후 그의 후계자들도 단명해 14년 후 카페왕조 직계는 단절되었으며 이후
백년전쟁이 발발해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별명은 미남왕이었으며 또 다른 미남왕이라 불린 그의 아들 샤를 4세는 카페왕조의 마지막 군주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