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보는 역사이야기 6

역사지킴이2013.07.23
조회5,369

여러분의 추천과 댓글이 힘이 됩니다 ㅋㅋ

 

틀린사실을 적었을시에 언제든지 댓글 적어 주세요~

 

1.사야가 (본명 김충선)

 

임진왜란 당시 왜군이 이끄는 가토 기요마사의 한 조총부대를 이끄는 사야가라는 장수가 있었다.

 

그는 전쟁의 참혹함(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두 죽이고)과 조선의 문물 및 유교 사상에 감탄하여

 

항복을 선언하고 조선군에 조총 및 화약을 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역으로 왜군을 공격하여 큰

 

공을 세웠다 그 공로로 선조에게 사성 김해 김씨라는 성과 충선이라는 이름을 하사 받았다. 그 후

 

에도 나라에 우환이 있을시 언제든지 참여하여 활약하였고 특히 병자호란때 청의 군대에 자진하

 

여 쳐들어가 많은 청군을 죽였다. 인조가 항복을 했을떄 대성 통곡을 하면서 슬퍼 했다고 한다.

 

지금도 그의 후손들이 대구에 모여 집성촌을 이루면서 살고 있다고 한다.

 

2. 문종의 비 현덕왕후의 저주

 

현덕왕후는 왕비가 되기전 단종을 놓다가 산후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나고 단종은 세종의 후궁의

 

손에 키워졌다. 당시 문종은 병약했고 세종 그 자신도 몸이 불편했기 때문에 틈틈이 단종을 안고

 

산책하면서 집현전 학자들에게 늘 잘 보살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래서 단종 복위 운동떄

 

사육신들은 다 집현전 학자들이었다. 문종이 승하하고 단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나이가 매우 어렸

 

고 세조는 자신의 세력들을 규합하여 반대 세력을 하나 둘씩 제거해 나갔다. 결국 단종은 상왕으로

 

물러나고 후에 영월로 유배를 가서 살해당하였다.

 

그리고 이때부터 저주가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어느날 세조가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현덕왕후가

 

나타나 니가 내아들을 죽였으니 나도 너의 아들의 데려간다고 했고 그 순간 꿈에서 꺳는데 바로

 

세자가 급사했다고 연락을 받았다. 그리고 자기 자신도 원인을 알수 없는 피부병에 걸려 고통스럽

 

게 세상을 떠났고 그의 둘째아들 예종 역시 20살도 안되서 죽었고, 성종도 40살이 되기 전에 죽었

 

으며, 그후 연산군의 폭정까지 이어졌다.

 

아들에 대한 복수를 정말 한 것이었을까?

 

3. 비둘기 때문에 죽은 이의민

 

고려 무신정권 이의민이 집권했었고 그의 아들의 하인이 최충수라는 사람의 비둘기를 훔쳐서 달아

 

났고 그에 최충수는 바로 찾으러 갔지만 죽도록 맞고 며칠 갇혔다가 풀려났다. 이에 격분한 그와

 

형인 최충헌이 복수 하기를 다짐하고 결국 이의민 부자는 참혹하게 살해되었다.

 

4. 반역향

 

반역향은 반란을 일으킨 지역을 뜻하는 것으로 조선 초기 함경도에서 일어난 이시애의 난 선조떄

 

전라도에서 일어난 정여립의 모반사건 그리고 순조때 발생한 홍경래의 난이 대표적이다. 반역향

 

으로 지목되면 그 지역 사람들의 벼슬길이 거의 막혔으며 됫다고 한들 고위 관료는 될수가 없었다

 

특히 홍경래의 난이 일어난 주된 원인은 삼정의 문란도 있었지만 평안도 사람들에 대한 차별과

 

과거시험에 이미 합격자가 다 정해져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반란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5. 고려시대의 관제 및 호칭

 

고려는 몽고와의 화친을 맺기 전까지는 중국의 나라들과 대등한 관계였다. 간단히 말해서 왕이 

 

아닌 황제였다.  그러나 몽고의 침략을 받은 후 제후국으로 낮춰졌고 그것이 조선시대까지 이어

 

졌다.

 

6. 대군 vs 군

 

왕비가 낳은 아들은 ~대군이며 딸은 ~공주라고 불렀고 후궁의 아들은 ~군 딸은 ~옹주라고 불

 

렸다. 왕의 사위는 ~위라고 불리었으며 장인은 ~부원군이라는 명예직을 주었고 장모는 부대부인

 

다. 드물게 왕인데 아버지가 왕이 아닌 경우는 ~대원군이라고 불렀다.

 

ex) 세조=수양대군, 광해군=공빈 김씨의 아들,

 

      태종의 아들= 양녕대군, 효령대군, 충녕대군(세종)    

 

7. 영조의 편애

 

사도세자의 부인 혜경궁 홍씨가 쓴 한중록을 보면 이렇게 기술 되어 있다.

 

영조는 극도로 자식을 편애하였는데, 화평옹주와 화완옹주를 매우 사랑하여 화협옹주와 사도세

 

자는 곁에 오지도 못 하게 했을 정도로 심했다. 그리고 화평 화완 옹주를 만날때는 양치도 하고

 

세수도 하고 씻고 만났지만 화협옹주나 사도세자를 만날때는 전혀 씻지 않았다고 한다. 그리고

 

자신이 씼은 물을 화협옹주의 집으로 뿌렸다고 하니 자식편애가 매우 심했던걸 알 수 있다.

 

그래서 사도세자도 정신적 스트레스와 성격에 장애가 생겨서 옷을 입을때마다 다 찢어 버리는

 

등 매우 난폭해졌었다고 전한다.

댓글 5

25남자오래 전

최충헌의 형이 노비였다는사실..놀랍네요ㅎㅎ

쿠냥오래 전

아들에대한 복수를 정말 한 것이었을까? 순간적으로 서프라이즈 성우 인줄 ㅋㅋㅋㄱㅋㅋㅋㅋㅋㅋ

bluesolar오래 전

재밌어요~또 올려주세요~

나는나다오래 전

넘 유익한 내용입니다~~~~더더더더.부탁드려요~조선의 왕후들의 내용도 궁금해요~~~

사회복지사오래 전

정말 재미있게 보고있습니다.내용도 쉽게 풀어주셔서 이해도 잘되구요앞으로 계속 올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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