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4년 러일전쟁 시기 이미 외국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라고 공식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이를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여러가지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외국에 비웃음을 샀다 그것은 바로 과거 아관파천과 비슷하게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미국에게 일본을 무찔러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공사였던 알렌은 때가 이미 늦었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 때 영국의 한 기자는 이런 논평을 남긴다.
"조선의 어느 멍청한 왕은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까지 학습능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기회를 포착하려 했고 마침내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시아 사절당이 동양 각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귀한 한 아가씨가 타고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외동딸 앨리스였다.(그녀는 루즈벨트가 첫눈에 반해 결혼신청한 앨리스 리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이었으며 아이를 낳고 앨리스 리가 죽자 루즈벨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미국에서 앨리스 공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고종은 그녀의 환심을 사면 그녀가 아버지에게 호소해 루즈벨트가 미국군을 이끌고 일본을 박살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9월 21일 고종은 그녀와 일행들에게 성대한 파티를 벌여주었다. 여기에는 선교사를 비롯한 모든 주한 미국인이 참석했다
다음날 고종은 민씨의 무덤에 앨리스를 데려갔다. 아마 민씨의 무덤 앞에서 일본군의 잔혹함을 설명한 후 감정에 호소해 앨리스를 설득시키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앨리스는 자신의 자서전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땅딸막한 황제는 나의 팔을 먼저 잡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 좁은계단을 내려가 별 볼일 없는 만찬장에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 식이었으며 식사 후 그릇은 나에게 주었다. 궁전을 떠날 대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사진을 주었다. 그 두사람은 애처롭고 둔감한 인물이었으며 그들의 존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고종은 무척이나 불쌍해 보였나보다. 그녀의 글들은 이런 동정심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당시 파티를 주관한 독일의 엠마 크뢰벨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홍릉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엄청난 먼지폭풍이 몰아닥첬고 그 먼지 속에서 말을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무리의 선두에는 위세당당하게 말을 탄 하 여성이 있었는데 승마용 복장을 하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미스 루즈벨트였는데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을 본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중략) 우리 일행은 한국왕실의 격식대로 경의를 표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묘를 수호하는 동물석상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코끼리 석상위에 올라탄후 거칠게 그 석상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인 롱워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쳤다. 그보다 왕실의 모욕은 더 없는것 같았다. 이후에도 그녀는 어떠한 감사의 인사도 없이 모건공사의 부인과 잡담을 나누며 샴페인을 마시고 다른음식을 즐겼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나누기를 기대하는 왕의 기대와 달리 앨리스는 곧바로 말에 올라탄 뒤 그녀를 뒤따르는 남자들과 함께 버팔로 빌처럼 말을 타고 떠나갔다."
고종은 그녀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없었다. 모든것이 허사가 된 것이다.
당시 미국의 부영사였던 월러드 스트레이트는 고종의 앨리스에 대한 기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고 루스벨트양의 방문을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들고 매달렸다"
10월 10일 마침내 러시아와 일본은 미국의 중재하에 포츠머스 조약을 맺었다. 결국 미국의 권고로 조선은 일본의 영향력에 있음을 공식인증받게 되었고 얼마 뒤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
대한제국 멸망이야기 1편
한 미국 아가씨에게 짓밟힌 홍릉(명성황후 민씨의 무덤)
1904년 러일전쟁 시기 이미 외국은 조선이 일본의 식민지라고 공식 인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종은 이를 알고는 있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아 여러가지 행동을 취했다. 그러나 그 방법이 외국에 비웃음을 샀다 그것은 바로 과거 아관파천과 비슷하게 미국 대사관으로 도망가 그곳에서 미국에게 일본을 무찔러 달라고 한 것이다. 그러나 당시 미국의 공사였던 알렌은 때가 이미 늦었다며 이를 거절했다. 이 때 영국의 한 기자는 이런 논평을 남긴다.
"조선의 어느 멍청한 왕은 그렇게 당하고도 아직까지 학습능력이 부족하거나 아예 이성이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종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그는 끊임없이 기회를 포착하려 했고 마침내 자신이 생각하는 최고의 기회를 잡았다고 여겼다. 당시 미국에서는 아시아 사절당이 동양 각국을 방문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귀한 한 아가씨가 타고 있었는데 그녀는 바로 미국의 대통령 시어도어 루즈벨트의 외동딸 앨리스였다.(그녀는 루즈벨트가 첫눈에 반해 결혼신청한 앨리스 리 사이에서 낳은 외동딸이었으며 아이를 낳고 앨리스 리가 죽자 루즈벨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녀는 미국에서 앨리스 공주라고 불릴 정도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고종은 그녀의 환심을 사면 그녀가 아버지에게 호소해 루즈벨트가 미국군을 이끌고 일본을 박살내 줄 것이라는 희망을 가진 것이다. 9월 21일 고종은 그녀와 일행들에게 성대한 파티를 벌여주었다. 여기에는 선교사를 비롯한 모든 주한 미국인이 참석했다
다음날 고종은 민씨의 무덤에 앨리스를 데려갔다. 아마 민씨의 무덤 앞에서 일본군의 잔혹함을 설명한 후 감정에 호소해 앨리스를 설득시키려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앨리스는 자신의 자서전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땅딸막한 황제는 나의 팔을 먼저 잡았다 그러고 나서 우리는 서둘러 좁은계단을 내려가 별 볼일 없는 만찬장에 들어갔다 음식은 한국 식이었으며 식사 후 그릇은 나에게 주었다. 궁전을 떠날 대 황제와 그의 아들은 각자 나에게 사진을 주었다. 그 두사람은 애처롭고 둔감한 인물이었으며 그들의 존재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녀가 보기에도 고종은 무척이나 불쌍해 보였나보다. 그녀의 글들은 이런 동정심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당시 파티를 주관한 독일의 엠마 크뢰벨은 다음과 같은 기록을 남겼다.
"우리가 홍릉에 도착한지 얼마되지 않아 엄청난 먼지폭풍이 몰아닥첬고 그 먼지 속에서 말을 탄 한 무리의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 무리의 선두에는 위세당당하게 말을 탄 하 여성이 있었는데 승마용 복장을 하고 입에는 시가를 물고 있었다. 그녀는 바로 미스 루즈벨트였는데 전혀 상상하지 못한 모습을 본 우리는 벌어진 입을 다물 수 없었다..(중략) 우리 일행은 한국왕실의 격식대로 경의를 표했으나 그녀는 오히려 묘를 수호하는 동물석상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그녀는 코끼리 석상위에 올라탄후 거칠게 그 석상을 흔들어댔다 그리고 그녀의 약혼자인 롱워스에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쳤다. 그보다 왕실의 모욕은 더 없는것 같았다. 이후에도 그녀는 어떠한 감사의 인사도 없이 모건공사의 부인과 잡담을 나누며 샴페인을 마시고 다른음식을 즐겼다. 그러다가 이야기를 나누기를 기대하는 왕의 기대와 달리 앨리스는 곧바로 말에 올라탄 뒤 그녀를 뒤따르는 남자들과 함께 버팔로 빌처럼 말을 타고 떠나갔다."
고종은 그녀의 모습에 아무런 말도 없었다. 모든것이 허사가 된 것이다.
당시 미국의 부영사였던 월러드 스트레이트는 고종의 앨리스에 대한 기대를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이 사람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 했고 루스벨트양의 방문을 마치 생명줄이라도 되는 것처럼 붙들고 매달렸다"
10월 10일 마침내 러시아와 일본은 미국의 중재하에 포츠머스 조약을 맺었다. 결국 미국의 권고로 조선은 일본의 영향력에 있음을 공식인증받게 되었고 얼마 뒤 을사늑약이 체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