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와 문자(文字)의 옥(獄) - 사상탄압의 극치

호경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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옹정제는 청 세종이라고 불리는 황제로서 세종이라는 칭호

가 전혀 아깝지 않을 대단한 황제입니다.

우선 배경지식으로서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국가이며 신

해혁명으로 멸망하기까지 약 270년간을 

존속하는 나름 장수한 왕조입니다. 한국사를 보면 270년은 

짧다고 보겠지만 대체로 왕조의 정상적


인수명기간은 200~300년으로 볼 때 한국사의 왕조가 상당

히 장수한 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왕조가 장수한 이유는 여러가지 들 수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왕들의 정치가 훌륭했다거나 백성들의 


정치의식이 한없이 낮았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옹정제는 강건성세(강희제-제위 61년, 옹정제-제위13년, 건

륭제-제위60년)로 이어지는 야구로 보면 4번타자역할을 충

실히 해냅니다. 관료들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부정부패의 척

결은 그 어느 중국왕조보다 훌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태자밀건법(황자들 가운데 눈여겨 보았다가 죽을 때쯤되어

서  액자뒤에 황제계승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숨겨놓는 것

)을 제정하여 황자들 가운데건전한 경쟁을 유발시킴으로써 

청나라의 황제들은 이전 명나라 황제대부분이 암군, 폭군이

었던데 비해 청나라 황제들은 못해도 평균은 해주었습니다. 


잡소리가 길었지만 혹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내용

을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을 알아야 하니불편하시더라도 이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청나라는 몽골족이 세웠던 원나라와 달리 한인(漢人)들을 적

극 기용하며 포섭합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드렸던 강건성세

의 영향으로 청나라는 세계최강국을 자처하게 되며 이를 통

해 우리나라에서도 북벌론의 논의보다는 청나라의 문물은 

인정하자는 북학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만주족과 한족이라는 대립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중화(中華)를 내세우며 다른 민족들을 오랑캐라 치부했던 한

족은 만주족에 대해서 반항도 합니다. 그런 반응에 만주족 

즉, 청나라는 확실히 밟아버리면서 통제를 합니다. 


문자의 옥은 그러한 통제책의 일환으로서 책이나 문서와 같

은 기록물에 만주족이나 청나라 황제등에 비판, 비난이 적혀

있으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일족 또한 처벌한다는 한족에 대

한 통제책입니다. 


덧붙이자면 문자의 옥때문에 사상의 발전은 지체되어 고증


학이 나오는 배경으로도 작용하게 됩니다. 



이제 겨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옹정4년(여기서 옹정은 연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를 

옹정제라고 당대에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종임금이라 한다면 세종임금생존시에는 세종이라고 부를 수 

없잖아요? 돌아가신 후에 붙이는 칭호이니까요.) 사사정이란 

인물이 출제한 과거의 시험제목을 문제삼아 그와 그아들을 

사형에 처하고 일족을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


떤 글자가 옹정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 지 살펴보겠습니


다. 


사사정은 <시경>에 있는 유민소지(維民所止- 백성의 근본

바탕에 있어야 할 바)란 구절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감이 안

잡히시죠? 그렇다면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옹정제(雍正帝)- 옹정제의 한자표기를 보여드렸습니다. 무

었때문에 죽었을지 아시겠나요?





















?











維民所止에서 維는 雍(옹정제의 옹)과 한자가 비슷하지 않

나요? 
維는 雍의 머리부분을 떼어낸 것이며, 止은 正(옹정제의 정)

의 머리부분을 떼어낸 것이므로 옹정(雍正)황제의 머리를 자

른 불경한내용이라고 해석하여 처형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사정이란 사람이 정말로 의도

해서 그 문구를 사용했다면 천재라 생각되고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그것을 발견하여 저런식으로 해석하

는 이도 여러의미로 천재라고 생각됩니다. 

 자못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들'이 맞겠죠?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