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정제는 청 세종이라고 불리는 황제로서 세종이라는 칭호가 전혀 아깝지 않을 대단한 황제입니다.우선 배경지식으로서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국가이며 신해혁명으로 멸망하기까지 약 270년간을 존속하는 나름 장수한 왕조입니다. 한국사를 보면 270년은 짧다고 보겠지만 대체로 왕조의 정상적인수명기간은 200~300년으로 볼 때 한국사의 왕조가 상당히 장수한 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왕조가 장수한 이유는 여러가지 들 수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왕들의 정치가 훌륭했다거나 백성들의 정치의식이 한없이 낮았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옹정제는 강건성세(강희제-제위 61년, 옹정제-제위13년, 건륭제-제위60년)로 이어지는 야구로 보면 4번타자역할을 충실히 해냅니다. 관료들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부정부패의 척결은 그 어느 중국왕조보다 훌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태자밀건법(황자들 가운데 눈여겨 보았다가 죽을 때쯤되어서 액자뒤에 황제계승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숨겨놓는 것)을 제정하여 황자들 가운데건전한 경쟁을 유발시킴으로써 청나라의 황제들은 이전 명나라 황제대부분이 암군, 폭군이었던데 비해 청나라 황제들은 못해도 평균은 해주었습니다. 잡소리가 길었지만 혹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내용을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을 알아야 하니불편하시더라도 이해해주시기 바랍니다. 청나라는 몽골족이 세웠던 원나라와 달리 한인(漢人)들을 적극 기용하며 포섭합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드렸던 강건성세의 영향으로 청나라는 세계최강국을 자처하게 되며 이를 통해 우리나라에서도 북벌론의 논의보다는 청나라의 문물은 인정하자는 북학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만주족과 한족이라는 대립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중화(中華)를 내세우며 다른 민족들을 오랑캐라 치부했던 한족은 만주족에 대해서 반항도 합니다. 그런 반응에 만주족 즉, 청나라는 확실히 밟아버리면서 통제를 합니다. 문자의 옥은 그러한 통제책의 일환으로서 책이나 문서와 같은 기록물에 만주족이나 청나라 황제등에 비판, 비난이 적혀있으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일족 또한 처벌한다는 한족에 대한 통제책입니다. 덧붙이자면 문자의 옥때문에 사상의 발전은 지체되어 고증학이 나오는 배경으로도 작용하게 됩니다. 이제 겨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옹정4년(여기서 옹정은 연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를 옹정제라고 당대에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종임금이라 한다면 세종임금생존시에는 세종이라고 부를 수 없잖아요? 돌아가신 후에 붙이는 칭호이니까요.) 사사정이란 인물이 출제한 과거의 시험제목을 문제삼아 그와 그아들을 사형에 처하고 일족을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떤 글자가 옹정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 지 살펴보겠습니다. 사사정은 <시경>에 있는 유민소지(維民所止- 백성의 근본바탕에 있어야 할 바)란 구절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감이 안잡히시죠? 그렇다면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옹정제(雍正帝)- 옹정제의 한자표기를 보여드렸습니다. 무었때문에 죽었을지 아시겠나요?그이유는?維民所止에서 維는 雍(옹정제의 옹)과 한자가 비슷하지 않나요? 維는 雍의 머리부분을 떼어낸 것이며, 止은 正(옹정제의 정)의 머리부분을 떼어낸 것이므로 옹정(雍正)황제의 머리를 자른 불경한내용이라고 해석하여 처형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사정이란 사람이 정말로 의도해서 그 문구를 사용했다면 천재라 생각되고 그가 의도했건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그것을 발견하여 저런식으로 해석하는 이도 여러의미로 천재라고 생각됩니다. 자못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들'이 맞겠죠?ㅎ) 감사합니다. 6
옹정제와 문자(文字)의 옥(獄) - 사상탄압의 극치
옹정제는 청 세종이라고 불리는 황제로서 세종이라는 칭호
가 전혀 아깝지 않을 대단한 황제입니다.
우선 배경지식으로서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운 국가이며 신
해혁명으로 멸망하기까지 약 270년간을
존속하는 나름 장수한 왕조입니다. 한국사를 보면 270년은
짧다고 보겠지만 대체로 왕조의 정상적
인수명기간은 200~300년으로 볼 때 한국사의 왕조가 상당
히 장수한 편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왕조가 장수한 이유는 여러가지 들 수 있겠지만 극단적으로
왕들의 정치가 훌륭했다거나 백성들의
정치의식이 한없이 낮았다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만 판단은
각자의 몫입니다.
옹정제는 강건성세(강희제-제위 61년, 옹정제-제위13년, 건
륭제-제위60년)로 이어지는 야구로 보면 4번타자역할을 충
실히 해냅니다. 관료들에 대한 엄격한 통제와 부정부패의 척
결은 그 어느 중국왕조보다 훌륭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는
태자밀건법(황자들 가운데 눈여겨 보았다가 죽을 때쯤되어
서 액자뒤에 황제계승자의 이름이 적힌 쪽지를 숨겨놓는 것
)을 제정하여 황자들 가운데건전한 경쟁을 유발시킴으로써
청나라의 황제들은 이전 명나라 황제대부분이 암군, 폭군이
었던데 비해 청나라 황제들은 못해도 평균은 해주었습니다.
잡소리가 길었지만 혹시 이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서 내용
을 이해하려면 배경지식을 알아야 하니불편하시더라도 이해
해주시기 바랍니다.
청나라는 몽골족이 세웠던 원나라와 달리 한인(漢人)들을 적
극 기용하며 포섭합니다. 그리고 위에 말씀드렸던 강건성세
의 영향으로 청나라는 세계최강국을 자처하게 되며 이를 통
해 우리나라에서도 북벌론의 논의보다는 청나라의 문물은
인정하자는 북학론이 나오게 됩니다.
그러나 만주족과 한족이라는 대립은 있을 수 밖에 없습니다.
중화(中華)를 내세우며 다른 민족들을 오랑캐라 치부했던 한
족은 만주족에 대해서 반항도 합니다. 그런 반응에 만주족
즉, 청나라는 확실히 밟아버리면서 통제를 합니다.
문자의 옥은 그러한 통제책의 일환으로서 책이나 문서와 같
은 기록물에 만주족이나 청나라 황제등에 비판, 비난이 적혀
있으면 당사자는 물론이고 일족 또한 처벌한다는 한족에 대
한 통제책입니다.
덧붙이자면 문자의 옥때문에 사상의 발전은 지체되어 고증
학이 나오는 배경으로도 작용하게 됩니다.
이제 겨우 본론으로 들어가겠습니다.
옹정4년(여기서 옹정은 연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황제를
옹정제라고 당대에도 부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세
종임금이라 한다면 세종임금생존시에는 세종이라고 부를 수
없잖아요? 돌아가신 후에 붙이는 칭호이니까요.) 사사정이란
인물이 출제한 과거의 시험제목을 문제삼아 그와 그아들을
사형에 처하고 일족을 귀양을 보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어
떤 글자가 옹정제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는 지 살펴보겠습니
다.
사사정은 <시경>에 있는 유민소지(維民所止- 백성의 근본
바탕에 있어야 할 바)란 구절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감이 안
잡히시죠? 그렇다면 힌트를 드리겠습니다.
옹정제(雍正帝)- 옹정제의 한자표기를 보여드렸습니다. 무
었때문에 죽었을지 아시겠나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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는
?
維民所止에서 維는 雍(옹정제의 옹)과 한자가 비슷하지 않
나요?
維는 雍의 머리부분을 떼어낸 것이며, 止은 正(옹정제의 정)
의 머리부분을 떼어낸 것이므로 옹정(雍正)황제의 머리를 자
른 불경한내용이라고 해석하여 처형한 것입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사사정이란 사람이 정말로 의도
해서 그 문구를 사용했다면 천재라 생각되고 그가 의도했건
의도하지 않았던 간에 그것을 발견하여 저런식으로 해석하
는 이도 여러의미로 천재라고 생각됩니다.
자못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이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분들('들'이 맞겠죠?ㅎ)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