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는 부처의 제자 즉 만들어진 가짜 신

ㅇㅇ2013.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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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예수 태어나기 1세기는 더 전부터 불교는 그리스와 실크로드 등을 통해 이미 이스라엘 근방에도 퍼져 있었습니다. 로마와 한나라가 직접 교역하고 북인도와 이스라엘은 활발한 교류를 가졌고 불교 포교사들은 알렉산더의 진격로를 통해 로마, 안티오크, 알렉산드리아에 진출해있는 상태였는데 '미린다 왕의 문답'으로 유명한 그리스의 메난드로스와 승려 나가세나의 토론 또한 이런 활발한 대륙간 교역과 포교의 산물인데 뭐가 당시엔 불교가 이스라엘에 퍼지지도 않았다는 겁니까?

 

하물며 유대는 당시 그리스 문화와 그리스를 통한 온갖 이방 문물과 가르침이 흘러들어와 적극적으로 사람들을 유혹하고 있어서 유대인들은 고래 종교와 전통을 저버리는 사람까지 엄청 많아져 전통주의자들과 대립을 빚을 지경이었죠. 또한 예수 시대에 살았던 헤롯 왕가만 해도 활발한 교역과 적극적인 그리스 문화 전파에 앞장섰는데 말이죠. 불교는 현대 고고학적 발굴로는 브리튼까지 진출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더군요.  당시 불교는 널리 퍼지고있었고 굳이 인도까지 갈 것도 없이 유대나 중동에서는 얼마든지 불교를 접할 수 있었다는 얘깁니다. 예수가 불교를 인용했을 수도 있고 복음서 저자들이 근방에 퍼져있던 불교 경전을 카피해서 복음서에 집어넣었을 수도 있단 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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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들은 신약성경에서 불경이 표절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고도 남을 사람들이다 증거를 보여줘도 우격다짐으로 믿는 사람들이 우리나라 크리스천들이다

신약성경에서 제일먼저 쓰여진것은 데살로니가 전.후서이다 이것들은 필요없다

내가 말하는것은 불경에서 4복음서가 표절한것을 말하는것이다

 

4복음서중 최초로 쓰여진것이 마가복음(AD70~)이다 후에 마태,누가,요한 복음이 쓰여졌다 성경의 원본은 없어지고 사본만이 남아 있다고 한다 그리스어사본 중에 파피루스 사본(2~8세기)이 발견된 사본중에 가장 오래된것이라고 한다 따라서 4복음서중에 최초로 쓰인 마가복음이 기원후 70년 이후에 쓰여졌을수도 있다

 

불경은 석존 입멸후 마하가섭에 의해 결집이 이루어졌다 여기서 불경(율장)이 만들어진다 후에 400년에 걸쳐서 4번의 결집을 거쳐서 아함 남방 의 경전이 완성된다 (숫타니파타,아함경,상윳타니키야 등) 약 B.C 83년

 

그리고 석가 입멸 한지 300년 이후 4,5백년 경에 대승경전인 반야경계가 나왔다 후에 방등부의 경전이 나오고 또 (AD 2C)쯤에 법화부,화엄부가 차례로 나왔다

 

여기서 신약성경의 예수가 나오기 전인 기원전의 불경(아함 남방)경전에서만 보더라도 석가모니가 선정에 들어 깨달음을 얻으려할때의 악마의 유혹얘기, 석가모니가 제자들과 함께 물위를 걷는 얘기, 의식주를 걱정 말라는 얘기, 씨 뿌림의 비유 얘기, 가난한 여자 걸인이 돈을 바친 얘기, 등이 나온다 또 폭풍이 칠때 신앙심으로 잠재우는 얘기, 석가모니 제자들 보고 두벌의 옷이나 밥그릇을 가지지 말라고 한 얘기, 가짜 부처가 나올거라는 얘기, 나를 보는자는 법을 본다는 얘기, 남의 잘못은 보기쉬워도 자기의 잘못은 보기 어렵다는 얘기, 석가의 제자중 한명이 배반한 얘기, 진정한 보물 이야기 , 원수를 사랑하라는 얘기, 살인마와 신약성경의 길잃은양 얘기, 부처님이 곧 빛이라는 얘기, 말법시대 이야기 등이 나온다

 

더 있지만 여기까지만 쓰겠다 이 이야기들은 신약성경이 만들어지기전 그러니까 기원전에 쓰여진 이야기다. 이래도 우길것인가? 만약에 그래도 우긴다면 진짜 양심없는 종교인이다

 

라마다경 얘기서부터 무슨 업보중생제도불능 얘기 또 성철스님 열반송을 들먹이면서 사탄의 종교라고 하는 얘기 등을 많이 알고 있는 것을 보면 기독교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말도 안되는 것으로 불교를 깍아내리는것을 알수있다

 

기독교인들이 그런짓좀 안했으면 좋겠다

 

불경에서 신약성경이 표절했다는것을 많은 서양의 기독교 신학자들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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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대교의 경전인 토라, 미드라쉬, 오경, 구약, 외경,각종 탈무드...등을 잘 아는 사람은 신약을 보면 전혀 다른 문화권의 종교 칸텐츠라는 것을 단빡에 알 수 있다.


마치 갓쓴 양반의 마을에 갑자기 나타난 링컨의 양복과 파이프 같다.


유대교의 역사성이나 교리, 논리, 바탕과는 전혀 다르기 때문이다.

바빌로니아에 포로가 된 유대인들(BC 597~BC 538)이 거기서 배운 종교나 설화나 정치제도,경제,과학,수학,천문학의 규칙,조로아스터교.........등은 가히 충격적인 것이었다.

바빌로니아의 이런 문화를 조금씩 흡수하면서 유대교 내부에서 분파도 생기고 갈등도 생겨났다.
그 파당이 바로 바리새인들과 사두개,엣세네파들이다.

마치 구한말 조선의 선비들 사이에 개항파와 쇄국파가 극렬히 대립한 것과 같다.

이 역사적 갈등국면이 기원전후 2~5세기까지 지속되었다.

이 갈등의 내용이란 무엇인가?

이 갈등이 있던 시절은 그리스의 엄청난 헬라문명과 로마의 문화가 팔레스틴 지역을 휩쓸던 때이다.


마치 겨우 집신이나 신던 조선에 서양과 일본의 기차.전투기.영국제 자동차가 조선땅에 나타난 격이다.
충격을 넘어 아마 하늘이 내려앉아서 새세상이 열린듯 문화적 충격은 엄청났다.

유대인들도 그랬다.

그저 사제들이 독점하며 토라나 읽고 유대황야에 나무로 엮은 샌달이나 신고 성전에서 황소나 잡아 살고기를 태우며 거드름 피우며 제사나 드리던 자들 앞에 아리스토텔레스,플라톤,비너스,파르테논,알렉산더의 황금마차가 나타났다.
정치,경제,사회,철학,조각,미술,학문,과학,수학............면에서 상상을 할 수 없는 문화충격이 유대인들에게 다가온 것이다.

 

유대교인들의 종교적 자부심은 가히 거대 공룡앞의 개미신세처럼 처량한 것이었다.


이 문화충격기가 자체가 바로 예수라는 인물이 만들어지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는 결정적 계기다.

이 문화충격을 겪고 있던 기원후 80년에서 220년(마가, 마태 누가 요한 등의 복음서들이 쓰여진 기간!!) 사이에 인도의 불교는 어디까지 진출했을까?
알렉산더가 내준 진격로를 따라 이미 알렉산드리아까지 불교포교사들이 진출해 있었다.
아테네,마케토니아,로마,안디옥...까지 불경과 불교관련 모든 경전과 사상이 들어와 있었다.

요즘 고고학 발굴결과는 놀랍다.
영국의 런던의 문화층에서 불상이 나오기도 한다.

이 불교 외에 또 뭐가 있었을까?

그것은 다양한 기독교의 모태가 되는 종교들이다.

기독교가 만들어지기 전 지중해 유역과 소아시아(지금의 터키,유고.슬라비아 동부지역 중심)
북아프리카,그리스,로마........지역은 그 종교적 분위기가 어떠했을까?

당시 건축물이나 조각,파괴된 잔해와 동굴,음각된 벽화,항아리.........등에서 쏟아져 나온 것은 바로 배화교, 즉 조로아스터교와 디오니소스,아티스,이시스........신앙관련 유물들이다.

이 종교는 지금의 기독교와 그 교리가 거의 같다.

◇처녀가 아들을 낳는다.

◇별이 나타난다.
◇동박박사(페르시아 사제)가 예물을 드린다.

◇사상수훈을 한다.
◇사자 부활,오병이어...등 각종 기적을 베푼다.
◇잡혀죽는다.
◇십자가에 매달린다(십자가 형벌은 오래된 그리스.로마 사형제도)
◇부활한다.
◇심판한다(나중에 추가된 교리).
◇빵을 떼며 그를 기린다.

 

완전히 같다.

이미 이런 종교가 거의 모든 전역에 활발히 신앙되고 예배되고 있었다.
이런 종교 성전이 아테네,알렉산드리아,팔레스틴,소아시아,안티옥..등 특히 항구,학문의 도시에 집중적으로 활발히 조성되고 있었다.

이밖의 여타 각종 여신과 제우스,바다관련 신들도 수없이 경배되고 있었다.

 

      -십자가에 매달인 디오니소스 신인(예수의 모델이다.)-

 

위 외에도 수도없는 유적.유물(특히 경전은 거의 다 불살라짐)이 있지만 로마교황이 모조리 파괴했다.
그러나 아직 유물은 많이 남아있다.

이런 기독교 이전의 종교 바탕위에 더해진 것은 불교 컨텐츠다.
신약을 잘 보면 확실히 불경이라고 볼 만큼 불교적이다.
전혀 유대교하고는 거리가 멀다.
특히 더 역사성과 정통성이 확고한 영지주의 문서는 거의 확실히 불교적이다.
(도마복음서,유다복음서,마리아복음서...참조; 본카페 <영지주의교회복원운동>,<기독교의신학적정체> 메뉴참조)

위에 든 여러 교리는 유대교도들이 페르시아에서 배워온 것들 중 이미 거부한 것들이 대부분이고 이중 부활교리등을 놓고 갑론을박하던 때이다.

무르익을 대로 익어버린 기독교 창작의 배경이 충분히 완성되어 있었다.

마치 만삯이 되어 이미 아기의 머리가 보이는 누워있는 어머니의 생식기와 같이...

예수를 만들기에 충분한

디오니소스적 인물,

조로아스터교적 교리,
로고스 사상의 그리스 플라톤등의 철학,
신과 인간 구분이 모호한 매력적인 그리스 신인.신화 사상,
핵심을 가르는 불교의 획기적 컨텐츠........

그리고 중요한 위에서 언급한 예배와 종교양태가 이미 완성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미 초창기 기독교에서 드리던 예배양식이 디오니소스교나 조로아스터교나 그밖의 다양한 종교에서 완성되어 있었다.
이런 예배에 대한 문헌과 유물은 요즘 발굴이 한창인 알렉산더 해저 유물등에서 비교적 많이 발견된다.

이런 도저히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 유대교의 절망........

(유대교의 존폐의 기로)

문화적 충격속에 매몰되어 가는 유대교와 이 지역에 끼리끼리 모여살던 유대인들...종교적 정통성을 지킬수가 없게 되었다.

유대교가 살기 위한 몸부림이 기원전 300년 전 훨씬 전부터 본격화 되었다.

이 유대교의 위기를 유대인들은 어떻게 대처했는지 확실히 보여주는 인물들이 있다.

그사람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의 위대한 작가 '필론'(BC 15?-A45?)과 '힐렐'이다.
이들의 저작이 30여권 전한다.
그들의 저작속엔 도대체 뭐가 들어 있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신약속의 '주기도문'이나 그밖의 유대교의 로마화 작업들이다.
주기도문이란 당시 유대인들이 유대교 성전에서 하던 길고 복잡한 기도문이었다.
이 기도문의 핵심을 요약 정리한 것이 '주기도문'이다.
이 주기도문을 요약해서 만든 사람이 바로 힐렐이다
(예수는 신약에서 "너희는 이렇게 아버지께 기도하라"라고 자기가 기도문을 만든냥 도입설을 펴지만 사실은 예수라는 인물을 만들어낸 유대인 학파의 도입설이다. 이점을 명확히 기억하기 바란다.).

자!

이런 상황에서 유대인들이 착안한 것이 뭘까?

그것은 이 모든 충분.완벽한 방대 자료들를 모아 유대교가 로마권역에서 살아남을 획기적인 종교를 만드는 것이었다.

모두 지역 이름과 교주 이름만 바꾸면 간단한 것이었다.
거의 모든게 너무 잘 준비되어 있었고

풍부하게 자료가 널리고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이렇게 힐렐등 몇사람의 뇌와 손동작으로 탄생한 것이 바로 "예수"이며 "기독교"다.
이 예수라는 인물의 창작 캐리터를 완성한 사람은 테라페우테 유대인 신학자들 모임이었고 이것을 확포한 사람이 이레니우스이며 바울이다.

예수는 만들어진 디오니소스,조로아스터,부처이다.

신약의 모든 에피소드나 모든 일체의 컨텐츠는 모두 위에서 언급한 미리 준비된엄청난 자료를 정리 선별한 것들 뿐이다.
이러한 이유로 예수가 역사인물이 가능성은 10% 미만이다.
반면 예수가 이런 방대한 공짜 자료 위에서 유대인들이 만들어낸 신화적 영웅일 가능성은 80%이상이다.
예수가 역사인물일 가능성에 대한 증빙 자료는 단 하나도 없다.


단 하나,
단 하나도 없다.


공자나 석가모니는 그 역사성이나 역사적 유존 유물이 어제 죽은 옆집 할아버지 맷똥 앞 상여태운 부스러기와 떡쪼가리 보다 분명하다.
그 어떤 사학자도 공자나 석가모니 역사적 실재성을 부인할 수 없는 기록과 유물이 방대하다.
그러나 예수는 단 한 글자, 단 한점도 없다.
(유세비우스나 요세푸스에 대한 전문글은 예수신화 발본색원실 메뉴 참조)

부활할 때 다 갖고 올라가버려서인가?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얼마나 대륙간 무역과 종교 문화 전파가 활발했는지 이스라엘과 북인도가 교역했다는 것 등 학교 때 세계사 공부만 좀 열심히 했어도 어디 불경이 신약을 베꼈다는 개헛소리를 당당히 지껄이는 아메바 짓은 못 할 텐데 수준 드러내는 짓 좀 그만들 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