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인물록 - 의병장 고경명

신기제갈2013.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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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기담님의 글을 보고 저도 써봅니다.

 

그럼 바로 시작하죠.

 

역사스페셜과 백과사전에서 얘기를 따왔음을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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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병장 고경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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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2년에 임진왜란이 발발했음.

 

그 당시 조정은 감투를 쓴 놈이라면 패를 갈라 싸우는게 유행이었음.

 

그래도 율곡이이가 십만양병설을 주장하여 전쟁에 대비하고자했으나

반대파들의 반대로 그냥 흐지부지됨. (사실 십만양병설은 사실이 아님.)

 

200년간 평화롭게 살아오다가 전쟁이 터졌으니 경험이 없어 제대로 반항해보지 못했음.

 

게다가 200년만에 맞이한 적은 스케일이 장난이 아니었음.

 

자그마치 16만대군이 일거에 한반도를 휩쓸기 시작함.

 

왜군의 파죽지세로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보름만에 한양(지금의 서울)이 함락됨.

 

그때 광주(지금의 전라도 광주, 장흥) 에서 사직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분이 계셨으니

그분이 바로 제봉 고경명임. 여기서 제봉은 고경명의 호.

 

원래 문인이라 평생 글만 가르치다 그의 두 아들과 칼을 들고 일어남.

 

그때 고경명의 나이, 벌써 60 .

 

선조와 고관대작들이 피난가는 상황에서 붓을 잡던 사람이 칼을 들었음.

 

의병을 일으키기로 결심하고 그가 글을 씀.

 

' 병사들은 우왕좌왕하고 수령들은 도망치는구나.

  국가 존망의 위기에 어찌 제몸을 아낄수 있으랴.

                   오직 의(義)로 돌아가라. '

 

이 글 하나로 6000 명이 모여 왜군과 분연히 맞섬.

 

선조를 지키러 의주로 가던 중 금산에 집결하고 있던 왜군들과 충돌함.

 

금산전투를 지휘하던 도중 둘째 아들 고인후와 안타깝게 전사.

 

큰아들 고종후는 내년인 1593년 진주성이 위급해지자 의병을 모아 끝까지 맞서다 전사함.

 

펜은 칼보다 강하다는 말이 있는데.

 

정말 평생 붓을 잡던 사람이 그 붓으로 자그마치 6000 명이나 되는 칼들을 모았으니...

 

그렇게 결국 임진왜란이 일어난지 2년이 되는 때에 고경명 장군과 그 두 아들이 모두 전사.

 

그러나 고경명 장군으로 인해 의병활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신호를 세상에 터뜨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