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국의 군주 조선 26대 고종과 독살설

역사지킴이2013.07.26
조회3,139

안녕하세요

 

글쓰는 실력이 허접하고 별로라도 재미있게 봐주시고 좋은 의견 있으시면 댓글 적어주세요 ㅎㅎ

 

그럼 시작합니다. ㅎ

 

고종이 승하하기 며칠전 순종실록의 기록을 보면

 

순종실록 12년 1월 20일(1919년) 왕실의 친척과 귀족을 불려들여 만나서 태왕 전하(고종)의 병세

 

가 깊기 때문에 병문안하도록한 것이다. 그리고 자작(일본으로부터 작위를 받은 매국노들)이기용

 

과 이완용에게 별도로 들어와 숙직하도록 명하였다.

 

태왕 전하의 병이 깊어 동경(지금의 도쿄)에 있는 왕세자(여기서 왕세자는 영친왕)에게 전보로

 

알렸다.

 

1월 21일 묘시에 태왕 전하가 덕수궁 함녕전에서 승하하였다. 다음날 죽은 사람의 혼령을 부르는

 

의식을 거행하였다.

 

간단하게 실록을 살펴보면 석연치 않은 부분이 많은데요

 

과연 무슨일 이 있었던 것일까요?

 

천천히 알아 볼게요~~ ㅋㅋ

 

고종은 조선의 26대 왕으로 흥선군의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흥선군은 일부러 미친척을 하면서

 

기회를 틈틈히 봤었고 그 당시 왕실의 가장 웃어른이었던 순조의 아들 호명세자(후에 익종으로

 

추존됨)의 아내였던 신정왕후와 결탁하여 결국 자신의 아들을 왕위베 오르게 하였다. 12살의 나

 

이로 왕위에 올랐기 때문에 흥선대원군이 된 아버지가 약 10년동안 국정을 운영하였고 그 덕택에

 

개화가 늦어지고 결국 망국의 길에 들어 섰다고 해서 과언이 아니었다. 흥선대원군이 물러 났을

 

때는 마침 일본이 개화를 요구하며 쳐들어 왔고 결국 강화도 조약이라는 불평등 조약을 맺으며

 

불안한 출발을 하였다. 그 이후에는 외세의 침략에 의해 이렇게 털리고 저렇게 털리면서 나라는

 

점점 힘을 잃어 버리고.. 그 와중에 1895년에는 명성황후까지 시해 되는 일이 발생해서 고종의 스

 

트레스는 이만 저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그는 쓰러가자는 조선을 다시 일으켜 세우고자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자신이 황제에 등극 중립국을 주장하였지만 이미 국운은 되돌릴수 없을만

 

큼 기울어져있었다. 하나 둘 이권을 빼앗기고 1905년에는 을사늑약 체결로 인해 외교권까지

 

강탈당해 네덜란드 헤이그에 밀사를 파견해서 불공정을 알렸지만 결국 일본의 방해로 실패하고

 

그 결과 퇴위당하기에 이르렀다. 을사늑약이 지금도 무효로 주장되고 있는데 이유는 고종은 체결

 

서에 옥새로 날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07년 퇴위 및 순종에게 양위도 강제적으로 시행되어

 

양위식 당일 고종 순종 둘다 참여하지 않았는데도 진행되었다고 했다. 결국 1910년에 국권피탈이

 

되어 고종은 이태왕, 순종은 이왕으로 격하되고 이름만 허울뿐인 왕이 되어 궁에 유폐되어 지내게

 

되었다. 고종은 궁에 갇혀있으면서도 망명을 시도 한 적도 있었고, 독립군을 암암리에 도우려고

 

무지하게 애를 썼다. 그러던 중 갑자기 1919년에 갑자기 덜컥 급서해버렸다.

 

이제 독살설을 설명해보자면 이미 1897년에 한차례 독살사건이 일어 났었는데 고종은 개화이후

 

커피를 자주 즐겨 마셨다고 하는데 일본은 그 사실을 이용하여 고종과 순종의 커피에 치사량의 아

 

편을 넣은 사건인데 고종은 커피맛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여 바로 뱉어 냈지만 다량의 커피를 마신

 

순종은 지적장애를 일으켜 판단능력을 상실 나중에 왕이 되서도 아무런 능력을 발휘 하지 못하였

 

다고 한다. 조선을 식민지로 삼았어도 고종의 존재 자체가 일본에게는 가시같은 존재 였을 것이다.

 

순종실록과 여러 문헌을 살펴 보면 일본은 치밀하게 계획을 준비했고 고종이 즐겨 마시던 식혜에

 

궁녀들을 매수해 독약을 타게 했다는 설과 음식에도 눈에 띄지 않게 독약을 넣어 서서히 죽게 만들

 

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임종때는 가족들이 아닌 이완용과 이기용이 지키고 있었다는 사실

 

이다.(이완용은 정말 나쁜놈 같다.. 답이 없다 안끼이는 곳이 없으니 그리고 명도 타고 났는지

 

나중에 암살사건도 발생하나 바퀴벌레 같은 생명력으로 살아났다고 하니...)

 

이렇게 고종이 승하하고 결국은 거국적인 3.1 운동의 시발점이 됬다고 하니 고종의 영향력은 그

 

당시 백성들에게는 정신적지주였을거라는 생각이 든다.

 

명성황후도 을미사변으로 의병이 일어나게 된 계기를 마련했고 고종도 독살설로 인해 3.1운동의

 

출발점이 됬으니 이 두 분은 죽음으로써 일본에 복수할 수 있는 비극적인 운명을 타고 난 것인지

 

도 모르겠다..

 

역사는 그를 무능하고 나약하다고 설명할지 모르겠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은 독립군 못지 않

 

게 최고였다고 생각한다.

댓글 5

아기곰오래 전

고종이 백성들의 정신적 지주이면 뭐합니까 고종은 백성을 못믿고 일이 생길때마다 외세를 찾았잖아요...

사람오래 전

좋은글에 실수로 반대를 눌럿네요ㅜㅜ

하얀국화오래 전

흥선대원군만 욕할수는 없습니다, 고종도 청에서 실패한 양무운동, 즉 중체서용,동도서기론이 실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때 줄곧 동도서기론에 입각한 개혁만 추진했습니다, 그리고 대원군때문에 개화가 늦어졌다? 10년간 쇄국정책으로 개화가 늦춰지긴 하였으나, 민비도 1884년 급진개화파의 갑신정변을 청을 끌고 들어와 무산시켯죠, 물론 급진개화파가 일본을 등에업고 정변을 일으켜, 백성들의 지지를 얻지 못했지만요..

호경오래 전

흥선대원군역시 양면성을 지닌 인물이며 그의 정책과 성향을 따져보아야 할 것이며 그는 왜 쇄국정책을 하였는지 한번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흥선대원군은 안동김씨의 세도정책을 불식시킨 인물로 당파와 신분의 구별없이 인재를 등용을 하며 비변사의 비대화로 인하여 비변사를 폐지시킵니다. 삼정의 문란 중 전정의 개혁에 있어서는 토지겸병을 금지시키며 군정의 개혁에 있어서는 호포제를 실시합니다. 이는 종래 농민에게만 부과했던 군역을 양반에게도 징수를 하면서 조세부담 공평화를 이룩합니다. 마찬가지로 환곡도 사창제를 실시하면서 농민들이 실제로 구휼의 혜택을 입도록 합니다. 그리고 그는 영조때 서원의 축소화를 더욱 강화시켜 대부분의 서원을 철폐시킵니다. 흥선대원군에 대해서 비판적 입장을 가진 분도 이러한 업적들은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왕권의 강화를 꾀한 그의 정책은 경복궁 중건으로 인한 백성들의 심한 원성을 듣게 됩니다. 대외정책으로 시점을 돌려보도록 하겠습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를 통한 쇄국정책에 대해서는 널리 알려진 사실이니 적지 않겠습니다. 일본과의 관계를 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본은 메이지 유신을 단행하면서 새로 수교할 것을 요청하나 대원군은 일본이 보낸 국서의 형식이 관례에 벗어나기 때문에 외교문서 수리를 거부합니다. 이는 조선은 아직도 일본에 관해서 상국으로 자청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병인양요, 신미양요, 그리고 오페르트의 남연군(흥선대원군 아버지)묘 도굴 미수 사건은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을 확실히 뒷받침하게 됩니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보면 흥선대원군의 쇄국정책도 이해가 않되는 정책만은 아닙니다. 개화는 당연히 해야만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또한 근대적 조약에 관한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불평등 조약을 맺었다고 이해하고 싶습니다. (최초의 서양의 근대적 조약은 17c베스트팔렌 조약, 일본또한 거쳐야 했던 조약의 형식) 그러나 흥선대원군이 왜 쇄국정책을 펼쳤는지의 당위성을 한번쯤은 생각해 주시길 바랍니다. 흥선대원군 역시 양면성을 지닌 인물로 각기 장단점이 있는데 흥선대원군이란 인물의 행동을 가지고 망국의 길로 접어 들었다는 말씀은 엄청난 비약이며 그 인물에 대한 가혹한 포폄입니다 . 그는 전통사회의 각종 폐단을 과감히 개혁한 인물이며 외세의 침투 위협에 대항해서 국가의 자주권을 지키려고 노력한 인물입니다. 사람들은 각자의 역사관을 지니고 있으며 그렇기 때문에 제 나름의 역사가라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작성자의 역사관을 두고 매도할 생각은 추호도 없으며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하려 합니다.그러나 제가 우려한 점은 이 글을 읽으신분들이 흥선대원군은 나쁜 x이구나, 흥선대원군때문에 조선이 망했다라는 생각은 지양하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시기전에 자신이 한번 흥선대원군에관한 기록들을 살펴보고 철저한 비판과 분석이 이루어진다음에 흥선대원군에대한 평가를 해보시길 바랍니다. 그런 과정을 거친후에 생겨난 흥선대원군에대한 평가는 자기 자신만의 역사관에 도움이 될 것이며 자주적 역사의식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오래 전

아...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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