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까는 너무 열이 받아서 글을 제대로 쓰지 못했지만 제가 무지한 댁을 위해 컴퓨터로 다시 친절하게 설명할테니 앞으로는 이런 일제시대 식민사관인 식민지 근대화론을 가져와서 무식한 소리 찍찍 내뱉지마세요. 아시겠습니까? 어디서 통계와 수치만을 기반으로 하는 이론을 가져와서 이러는지 진짜 한심하네요. 제일 처음 설명하고 싶은건 우리나라의 근대화인데 조선시대 후기 우리나라에는 자체적인 근대화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19세기 후반 우리나라의 경제는 오히려 상공업자들이 성장하기 시작해 상품 생산과 이에 따른 시장 경제가 싹을 틔웠고, 개인 소유 제도가 진전했으며, 노동력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는 노비제도가 사라졌습니다. 이렇게 성장하고 있던 근대화의 싹을 일제의 식민지 지배로 짓밟혔습니다. 조선인 지식인 중 일부는 근대화를 이룩하면 독립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았고 계몽운동이 일어나 근대화를 이룩했으나 근대화가 되었다고 일본으로 부터 독립을 할 순 없었습니다. 설마 일본의 식민지배로 근대화를 더 빨리 이룩했으니 좋은거라고는 말씀은 안하시겠죠? 또한 일본은 우리나라의 근대화가 목적이 아닌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공업화를 추진했습니다. 일본의 대륙 침략을 위한 병참 기지화 정책의 여파로 식민지 시기 공업화는 북부지방에만 편중 되었고, 남부 지방에는 방직공업 등이 몰려있었습니다. 이런 지역적 편중과 왜곡된 공업구조가 광복 이후에는 큰 문제가 되었죠. 이 시기에 일제에 의해 마련된 철도와 항만, 도로 등의 기간 산업 또한 일제의 경제 수탈을 원활하게 전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설치된 것일뿐입니다. 또 일본은 일본 내의 초기 공업화로 인해 농촌의 노동력이 도시의 공장으로 이주하면서 심각한 식량 부족을 겪게 되자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나라에서 곡물을 대량으로 유출했고 결국 우리나라 국내 쌀 가격은 폭등했습니다. 일본은 이처럼 자신들의 근대화 조차 자국에서 해결하지 못하고 우리나라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기 위해 더 악랄하게 약탈해갔죠. 아무튼 이런 일본국내의 식량 부족 사태가 발생하자 산미 증식 계획으로 토지개량 사업과 농사개량사업을 추진했고 모든 비용은 우리 농민들에게 전가시켰고 이는 곧 농민의 몰락을 가져왔습니다. 그리고 증산량이 자신들이 계획한 양에 미치지 못하였으나 수탈은 계획대로 진행하였고 증산량보다 수탈량이 훨씬 많았고 이는 곧 만성적 식량부족으로 이어졌습니다. 또한 쌀 농사 중심의 단작형 농업 구조가 확립되어 우리 농업이 자연적, 경제적 변동에 취약하게 되었구요. 이렇게 우리나라에 발전은 커녕 인적물적 자원들만 더 수탈해 갔고 삶은 더 피폐해졌습니다. 조선인들은 기본적인 교육조차 받지 못했으며 남녀노소할 것 없이 모두 노동력을 착취 당했습니다. 나중에는 금속까지 죄다 공출해갔죠. 숟가락이랑 밥그릇 등등. 집에 일제시대 겪으신 어르신이 계시면 여쭤보세요. 아마 치를 떠실겁니다. 이렇듯 일제 식민지 시대에 대해 얘기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을 정도로 정말 참혹합니다.
님의 무지로 인해 올바른 역사관을 확립해야 할 학생들이 일제 식민지배를 왜곡되어 알게 될까 무섭습니다. 제발 이런 무식한 글로 선동도 하지 말고 선동도 되지 맙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