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말이 되면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트리 및 조형물이 설치가 되고 캐롤이 들리기 시작하지.
사랑하는 사람 혹은 가족과 멋진 호텔에서 분위기 있는 성탄절을 보내는 것은 만인의 로망일 거야.
대연각 호텔은 21층 고급 호텔로서 당시 서울에서 가장 잘 나가는 호텔 중 하나였어.
성탄절 아침, 누구는 이브날의 추억을 되뇌어보고 꼬마 숙녀들은 크리스마스 선물에 한창 들떠있
고, 누구는 오늘은 어떻게 하루를 보낼까? 라는 즐거운 고민을 할 때 재앙은 시작되었어.
아침 9시 50분, 대연각호텔 2층 커피숍에 세워두었던 프로판 가스통이 폭발하였고, 근처에 있던 가
스레인지가 인화하면서 화재가 시작되었어.
불은 바닥의 나일론 카펫과 건물 내부의 목조실에 번지면서 삽시간에 위층으로
솟구치기 시작하였어.
환기 시설을 타고, 20분만에 80m 높이 21층(스카이라운지)까지 불길이 번졌다고해.
화재경보기가 작동하였으나 이를 들은 사람들은 거의 없었다고해. 스프링쿨러는 설치되어 있지않
아서 초기진압이나 불이 번지지 못하게 막는 것은 꿈도 꿀 수 없었지.
투숙객들 중 일부는 화재가 났음을 알아채고 비상 계단으로 탈출을 시도 했다고 해. 그런데 방화
시설이 되어 있지 않아 불길이 거세 탈출을 하지 못하였나봐. 그래서 옥상으로 올라 갔는데 옥상
문이 잠겨있었대.(화재 진압 후 희생자들을 찾으러 갔을 때, 옥상에서 20여구의 시신이 발견되었다
고해. 상상할수록 끔찍한 일이지.)
박정희 대통령은 서울에 있는 최대한의 소방 전력을 대연각 화재 진압에 사용하였어. 그러나 당시
시에 가장 높은 소방차의 사다리는 31~32m였다고해. 이는 호텔에 접근하였을 때, 7층 이하의 사
람들을 구할 수 있는 정도였대.
국군과 미군의 헬리콥터 8대가 접근 하였는 데, 옥상에 헬리포트 시설이 있지 않고, 화재로 인해 주변 기류가 불안정하여 헬리콥터로 인한 인명구조가 어려움을 겪었대.(헬기로 구조하던 중 투숙객 2명이 추락사를 당했다고해)
7층 이하 사람들은 사다리차를 통해, 구조가 가능하였지만 그보다 상층의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밖에 없었대. 사람들이 창가에서 밖으로 도움을 요청하였지만 당시로는 도와줄 수 있는 방
법이 없었대. 창가에 매달리다 떨어진사람, 뜨거운 불길을 못참고 뛰어내린 사람들이 속출하였대.
매트에 매달려 뛰어내린 사람들이 있었는 데, 그 중 한사람은 기적적으로 무사하였대.
화재진압에는 소방관 528명, 의용소방대원 113명, 경찰관 750명, 구청직원 400명, 군인 115명, 의
료반원 30명이 동원되었는 데 길을 막고 서 있는 수천명의 구경꾼들을 통제하는데
200여명의 경찰이 동원되었대.
(200명이나 되는 경찰력이 겨우 구경꾼 통제에 사용되었다는 데 이건 좀 아닌 거 같아. 호텔 안은 아비규환이고 불길을 참다 못해 밖으로 투신하는 사람들도 있었는 데, 남의 재앙을 구경만 할게 아니라 손좀 내밀어 줬으면 어땠을까 싶어. 수천명의 구경꾼이 물 한동이라도 길어오던가 바닥에 매트라도 좀 깔았으면 한 두명이 기적적으로 더 살았을지도 모르는 일이잖아.)
이 화재로 숨진 163명의 희생자중 121명은 발굴현장에서 발견되었으며, 38명은 화재시 뛰어내리
다가 사망했고, 2명은 헬리콥터로 구조되던 중 떨어졌으며, 2명은 병원에서 숨졌대.
국적별로 보면 한국인 147명, 일본인 10명, 중국인 3명, 미국·인도인등이 3명이었어.
화재이후, 스프링쿨러, 비상구, 환기 시설, 헬리포트 등 대연각호텔 화재를 재앙으로 만든 요인들
이 분석되었고, 이를 개선하는 움직임이 일어나 현재의 의무화 된 시스템이 존재하는 거야.
이 화재는 10시간동안 생방송되었는 데, 미국, 일본, 유럽 등 세계 각지의 특파원이
현장에 몰렸다고해.
이 화재를 모티브로 삼아 '타워링'이라는 영화가 만들어졌어. 대연각 호텔화재는 지금까
지 세계 최악의 호텔 화재 사고로 기억되고 있어.
현재의 대연각건물이야
작성하는 데 생각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어버렸어. ㅠ 화재로 고통스럽게 사망한 사람들을 잊지말
고 다시는 이런 재앙이 없었으면 해. 그럼 빠이
출처)구글, 네이버 블로그, 다음블로그, 국가기록원 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