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는 옛날의 전형적인 아홉남매의 막내딸이셨고, 저희 아버지는 친모에게 버림받아서 큰할아버지 댁에서 막내로 자라셨고, 가난한 집사정에 친자식도 아닌지라 학비를 내지 못해 중학교 중퇴를 하셨어요.
그래도 학교다니실 적엔 공부도 곧잘 하셨고, 비록 못 배우셨을지라도 큰아버지(아버지의 큰형님)는 그 옛날 서울대 법대를 다니신지라 저희 아버지의 마음 속엔 꼭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크셨어요.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시다가, 택시기사를 하셨고 이후 선봐서 엄마를 만나 결혼도 하시고 제가 태어날 무렵 일하시면서 공부에 매진하셔서 검정고시를 치르셨어요.
내친 김에 대학교 졸업장까지 따시려 대학입시를 준비하시다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크셔서 학업을 관두고 저와 어머니를 위해 일만 하시기로 하셨대요.
뭐 이렇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셨죠.
지금도 기억나요. 성적이 떨어지면 아버지께서 소주를 드시며, 나는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못했는데 니가 이러면 안 된다고 한탄하시며 술에 취해 늘어놓으시던 지겨운 말들... 어렸을 적엔 왜 그리도 싫던지. 이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진 게.
어찌됐든 입시생활을 후, 운이 좋았던지 수능 점수가 잘 나왔어요. 원래 의사가 꿈이었던지라 아무곳이나 의대 들어가기만 하면 감사히 다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도 점수가 잘 나왔습니다. 욕심을 부려 메이저 의대에도 원서를 내고, 지방국립대의대에도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수능에 매진할 무렵, 아버지께서는 우울증세가 있으셨어요.
서울에서 택시를 하다가 친척들의 말에 휘둘려 사업한다고 집과 차까지 팔아 지방에 내려왔는데 사업에서 성공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결국 망하고는 다시 택시를 하게 되신 게 15년. 운전만 하다보니 자잘하게 난 접촉사고로 개인택시 나오는 게 쉽지 않으셨던 거에요. 우울증이 온 거죠. 3개월 가량 휴직을 하시고, 집에서 밤마다 거의 매일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렌트했던 차를 몰고 약수를 떠 오겠다고 나가시고는 그 길로 교통사고가 나셨어요. 아버지 말로는 옆좌석에 놓아둔 물통이 밑으로 떨어져 줍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고는 하시지만, 엄마와 저는 자살시도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요. 물론 그걸 아버지 앞에서 말한 적은 없지만... 그 무렵 자주 죽고 싶다는 말을 하셨거든요.
그 사고가 나신 게 대학교 원서 제출 다음 날이었습니다. 교통사고는 심각했고, 아버지는 6개월이상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살던 집 한 채를 팔아 아버지 병원비를 대고, 어느 2층집의 허름한 2층에 전세를 살게 되었습니다.
학교 등록 마감일까지 많이 힘들었습니다.
세 곳 다 합격발표가 났고, 메이저의대로 가느냐 6년장학금을 받고 지방국립의대를 가느냐의 문제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 욕심과 가정형편 사이에서 저는 결국 제 욕심을 선택했고, 이 때문에 친척집, 이웃들에게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집사정 생각 안하고 지 욕심만 앞세운 못된 년이라고.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네 꿈을 꺾지 말라며,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많이 배우라며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지요.
다행히도 입학 후, 저희 집사정만큼 힘든 아이들은 없었는지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의지와 다르게 입학 후 저는 좀 어두워졌습니다.
백화점도 없는 지방에서 살 적에는 잘 몰랐던 생활의 차이가 보이더라구요. 소위 거의 대부분이 잘 사는 집 아이들이었던 제 동기들과 어울리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집은 말할 것도 없고, 옷이며 신발, 생활습관 심지어 먹는 것까지 모든 게 저와 다른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해외에서 살다 온 친구들도 많았고, 거의 90% 이상 방학이면 해외여행을 하던 아이들과 달리, 예과 2년동안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대고, 돈을 아껴 모았어도 그 돈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는 없었어요. 곰팡이가 핀 우리 집, 불편한 몸에도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와 고시원 청소를 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아직 학생인 제 동생이 아른거렸으니까요. 방학이 끝나고 나면 방학동안 뭐했는지 물어보는 그 질문이 어찌나 그리 싫던지.... 이후 본1부터는 학업만 따라가기도 벅차 과외를 생활비만 유지할 정도로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아지지 않는 집안사정. 술에 찌든 아버지. 아픈 어머니.
이러다보니 연애라고 제대로 했을까요. 남자친구라고는 입시준비할 때 50일 정도 사귀어 본 게 다고, 의대 6년동안 남자친구 한 번 사귀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딱 한 번, 우리 과에서 제가 제일 예쁘다던 친구가 있었지만 (취향 참 독특한 듯) 제 곰같은 성격 탓에 잘 되지 않았고, 오로지 학업과 과외, 제 대학생활은 그게 다였어요. 졸업 후 병원에 있으면서도 썸은 있었지만 역시 잘 되진 않더라구요. 연애도 못했지만, 자신감도 없었어요. 나 빼고는 다 잘 사는 것 같은 친구들. 가끔 동기들이나 선배들 결혼식 가면 왜 그리 으리으리한지. 연예인들 결혼하는 호텔에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곧잘 있고. 그런 걸 보니 답답해지더라구요. 연애감정보다 조건이 먼저인 선보는 건 당연히 할 수조차 없지만, 소극적이고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제가 우연히 연애를 하게 된다 해도 개룡녀인 저와 결혼할 사람이 있을까. 결혼은 현실이라는데. 나보다 예쁘고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도 서로 좋아하다가 파혼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렇다고 제 눈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의사라고 전문직 찾는 것도 아니구요. 겉멋들지 않고, 착하고, 성실하고, 마음 맞는 평범한 사람과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참 힘드네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희 엄마는 자꾸 혼자 살아라 하십니다. 결혼한다고 다 행복한 거 아니다. 안 맞아서 이혼하는 경우도 많다. 혼자 사는 것 나쁘지 않다. 니 돈 벌어 너한테 쓰고, 자유롭게 살아라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대학 온 뒤 줄곧 가족과 떨어져 사는 저는 결혼해서 알콩달콩 외롭지 않게 살고 싶네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좋더라구요.
저희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래 금수저는 랜덤 아닙니까. 오히려 힘든 상황 속에서 저를 이만큼 뒷바라지 해 주시고, 올바르게 키우려 노력하고, 사랑해주신 저희 부모님은 제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최고십니다. 비록 가방끈이 짧고, 칼질 한 번 못해보고 사셨지만 현명하신 분들이세요. 하지만, 다른 이의 눈으로 보면, 알콜중독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의 가난한 집 자식일 뿐이라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런 게 요즘 제가 하는 생각들입니다. 여자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데. 나도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연애도 못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 서로 좋아서 연애하는 사람들은 영웅 같아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신처럼 보이구요.
사는 게 답답하네요.
안녕하세요. 처음으로 이런 곳에 글을 다 써보네요.
전 계란 한 판 되기 직전의 여자입니다.
그냥.. 답답한데.. 어디 얘기할 곳도 없고 해서 익명의 힘을 빌어 이곳에 글을 써요.
글솜씨가 없어서 죄송합니다. (--)(__) 글이 많이 길어요.
전 그다지 풍족하지 않은 집에서 자랐습니다.
어머니는 옛날의 전형적인 아홉남매의 막내딸이셨고, 저희 아버지는 친모에게 버림받아서 큰할아버지 댁에서 막내로 자라셨고, 가난한 집사정에 친자식도 아닌지라 학비를 내지 못해 중학교 중퇴를 하셨어요.
그래도 학교다니실 적엔 공부도 곧잘 하셨고, 비록 못 배우셨을지라도 큰아버지(아버지의 큰형님)는 그 옛날 서울대 법대를 다니신지라 저희 아버지의 마음 속엔 꼭 배워야한다는 생각이 크셨어요.
어릴 때부터 안 해본 일 없을 정도로 열심히 사시다가, 택시기사를 하셨고 이후 선봐서 엄마를 만나 결혼도 하시고 제가 태어날 무렵 일하시면서 공부에 매진하셔서 검정고시를 치르셨어요.
내친 김에 대학교 졸업장까지 따시려 대학입시를 준비하시다가 가장으로서의 책임감이 더 크셔서 학업을 관두고 저와 어머니를 위해 일만 하시기로 하셨대요.
뭐 이렇다보니 어렸을 때부터 저에게도 학업에 대한 열정을 불태우셨죠.
지금도 기억나요. 성적이 떨어지면 아버지께서 소주를 드시며, 나는 학비가 없어서 공부를 못했는데 니가 이러면 안 된다고 한탄하시며 술에 취해 늘어놓으시던 지겨운 말들... 어렸을 적엔 왜 그리도 싫던지. 이 때부터였던 것 같아요. 아버지와 사이가 멀어진 게.
어찌됐든 입시생활을 후, 운이 좋았던지 수능 점수가 잘 나왔어요. 원래 의사가 꿈이었던지라 아무곳이나 의대 들어가기만 하면 감사히 다니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보다도 점수가 잘 나왔습니다. 욕심을 부려 메이저 의대에도 원서를 내고, 지방국립대의대에도 원서를 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수능에 매진할 무렵, 아버지께서는 우울증세가 있으셨어요.
서울에서 택시를 하다가 친척들의 말에 휘둘려 사업한다고 집과 차까지 팔아 지방에 내려왔는데 사업에서 성공하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요. 결국 망하고는 다시 택시를 하게 되신 게 15년. 운전만 하다보니 자잘하게 난 접촉사고로 개인택시 나오는 게 쉽지 않으셨던 거에요. 우울증이 온 거죠. 3개월 가량 휴직을 하시고, 집에서 밤마다 거의 매일 술을 드셨습니다. 그리고는 렌트했던 차를 몰고 약수를 떠 오겠다고 나가시고는 그 길로 교통사고가 나셨어요. 아버지 말로는 옆좌석에 놓아둔 물통이 밑으로 떨어져 줍다가 가로수를 들이받았다고는 하시지만, 엄마와 저는 자살시도였을 수도 있겠다 생각해요. 물론 그걸 아버지 앞에서 말한 적은 없지만... 그 무렵 자주 죽고 싶다는 말을 하셨거든요.
그 사고가 나신 게 대학교 원서 제출 다음 날이었습니다. 교통사고는 심각했고, 아버지는 6개월이상 병원에 입원해 계셨습니다. 저희 가족이 살던 집 한 채를 팔아 아버지 병원비를 대고, 어느 2층집의 허름한 2층에 전세를 살게 되었습니다.
학교 등록 마감일까지 많이 힘들었습니다.
세 곳 다 합격발표가 났고, 메이저의대로 가느냐 6년장학금을 받고 지방국립의대를 가느냐의 문제로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 욕심과 가정형편 사이에서 저는 결국 제 욕심을 선택했고, 이 때문에 친척집, 이웃들에게 많은 욕을 먹었습니다. 집사정 생각 안하고 지 욕심만 앞세운 못된 년이라고. 하지만, 저희 어머니께서는 현재의 상황 때문에 네 꿈을 꺾지 말라며,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많이 배우라며 제 의견을 존중해 주셨지요.
다행히도 입학 후, 저희 집사정만큼 힘든 아이들은 없었는지 그다지 좋은 성적은 아니었음에도 불구하고 졸업 때까지 장학금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의지와 다르게 입학 후 저는 좀 어두워졌습니다.
백화점도 없는 지방에서 살 적에는 잘 몰랐던 생활의 차이가 보이더라구요. 소위 거의 대부분이 잘 사는 집 아이들이었던 제 동기들과 어울리는 것은 힘들었습니다. 집은 말할 것도 없고, 옷이며 신발, 생활습관 심지어 먹는 것까지 모든 게 저와 다른 아이들은 달랐습니다. 해외에서 살다 온 친구들도 많았고, 거의 90% 이상 방학이면 해외여행을 하던 아이들과 달리, 예과 2년동안 과외를 하며 생활비를 대고, 돈을 아껴 모았어도 그 돈으로 해외여행을 갈 수는 없었어요. 곰팡이가 핀 우리 집, 불편한 몸에도 막노동을 하시는 아버지와 고시원 청소를 하시는 어머니, 그리고 아직 학생인 제 동생이 아른거렸으니까요. 방학이 끝나고 나면 방학동안 뭐했는지 물어보는 그 질문이 어찌나 그리 싫던지.... 이후 본1부터는 학업만 따라가기도 벅차 과외를 생활비만 유지할 정도로 줄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아지지 않는 집안사정. 술에 찌든 아버지. 아픈 어머니.
이러다보니 연애라고 제대로 했을까요. 남자친구라고는 입시준비할 때 50일 정도 사귀어 본 게 다고, 의대 6년동안 남자친구 한 번 사귀지 못하고 끝났습니다. 딱 한 번, 우리 과에서 제가 제일 예쁘다던 친구가 있었지만 (취향 참 독특한 듯) 제 곰같은 성격 탓에 잘 되지 않았고, 오로지 학업과 과외, 제 대학생활은 그게 다였어요. 졸업 후 병원에 있으면서도 썸은 있었지만 역시 잘 되진 않더라구요. 연애도 못했지만, 자신감도 없었어요. 나 빼고는 다 잘 사는 것 같은 친구들. 가끔 동기들이나 선배들 결혼식 가면 왜 그리 으리으리한지. 연예인들 결혼하는 호텔에서 결혼하는 사람들도 곧잘 있고. 그런 걸 보니 답답해지더라구요. 연애감정보다 조건이 먼저인 선보는 건 당연히 할 수조차 없지만, 소극적이고 그다지 예쁘지도 않은 제가 우연히 연애를 하게 된다 해도 개룡녀인 저와 결혼할 사람이 있을까. 결혼은 현실이라는데. 나보다 예쁘고 나보다 잘사는 사람들도 서로 좋아하다가 파혼하는 경우도 있던데.
그렇다고 제 눈이 높은 것도 아닙니다. 제가 의사라고 전문직 찾는 것도 아니구요. 겉멋들지 않고, 착하고, 성실하고, 마음 맞는 평범한 사람과 서로 사랑하면서 사는 게 최고라고 생각하는데, 그게 참 힘드네요.
상황이 이렇다보니 저희 엄마는 자꾸 혼자 살아라 하십니다. 결혼한다고 다 행복한 거 아니다. 안 맞아서 이혼하는 경우도 많다. 혼자 사는 것 나쁘지 않다. 니 돈 벌어 너한테 쓰고, 자유롭게 살아라고 말씀하세요. 하지만, 대학 온 뒤 줄곧 가족과 떨어져 사는 저는 결혼해서 알콩달콩 외롭지 않게 살고 싶네요. 남들처럼 평범하게 사는 게 좋더라구요.
저희 부모님을 원망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습니다. 원래 금수저는 랜덤 아닙니까. 오히려 힘든 상황 속에서 저를 이만큼 뒷바라지 해 주시고, 올바르게 키우려 노력하고, 사랑해주신 저희 부모님은 제 마음 속에서는 언제나 최고십니다. 비록 가방끈이 짧고, 칼질 한 번 못해보고 사셨지만 현명하신 분들이세요. 하지만, 다른 이의 눈으로 보면, 알콜중독 아버지와 아픈 어머니의 가난한 집 자식일 뿐이라는 게 안타깝습니다.
이런 게 요즘 제가 하는 생각들입니다. 여자로서는 결코 적지 않은 나이인데. 나도 과연 결혼할 수 있을까. 연애도 못하고 있는데. 제가 보기에 서로 좋아서 연애하는 사람들은 영웅 같아요. 결혼해서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은 신처럼 보이구요.
답답해서 적어보네요. 지금까지 두서없고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