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태’와 ‘노가리’

참의부2013.08.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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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을 반대한다는 이유만으로, 무고한 시민 수 백만명 정도는 탱크로 깔아 버려도 문제없다는 경호실장의 말에 귀를 기울이다가 자신의 또 다른 심복 중앙정보부장의 총에 맞아 죽었다. 스무살 남짓한 미희와 유명가수를 동석시킨 술자리에서였다. 그의 나이 예순을 훌쩍 넘었을 때였다.


#그는 실제로 무고한 시민 8명을, 북한의 지령을 받아 국가를 전복하려 했다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씌워 죽였다. 그밖에도 유신정권을 반대했다는 이유로, 혹은 간첩혐의를 씌워 수많은 사람들을 죽이거나 고문하거나 감옥에 집어넣었다.


#그는 한번은 탱크를 앞세워 민주정부를 뒤집어 엎었고, 또 한번은 남북통일을 위해 ‘한국적 민주주의’를 확립한다는 협잡으로 영구집권을 꾀했다. 이 두 번의 성공한 쿠데타로 ‘한국적 민주주의’가 아닌 ‘한국의 민주주의’는 완전히 파괴됐다.


무고한 시민 죽이고 죽이려 했던 독재자


#그는 권력을 탈취하자마자 반공을 제1의 국시로 선언했지만 그가 원래부터 반공주의자는 아니었다. 그의 친형 중 한 사람이 ‘대구폭동’에 휘말려 경찰의 총에 맞아 죽은 좌파 지식인이었으며 그 자신 한때 군대 내 남로당 조직에 가담했던 적도 있다. 하지만 그는 조직을 배신했으며 그의 밀고로 군내 남로당 조직은 일망타진됐다. 그는 혼자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수많은 그의 동지들은 처형되거나 숙청당했다.


#그는 ‘민족중흥’을 입에 담고 살았다. 자신은 민족의 재단에 몸을 바쳤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젊었을 때 만주국 장교가 되기 위해 “일본인으로서 수치스럽지 않을 만큼의 정신과 기백으로 일사봉공(一死奉公)의 굳건한 결심”이라고 썼다. ‘한 번 죽음으로써 충성함(一死以テ御奉公 朴正熙)’이라는 혈서까지 썼다. 이 편지에 나오는 “한 명의 만주국군으로서 만주국을 위해, 나아가 조국을 위해 어떠한 일신의 영달을 바라지 않겠습니다. 멸사봉공, 견마의 충성을 다할 결심입니다”라는 대목에서의 ‘조국’은 안중근 의사의 ‘대한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그가 적어도 권력을 잡은 후에는 ‘멸사봉공’했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많다. 하지만 그는 전두환은 저리 가라할 정도로 엄청난 재산을 빼돌렸다. 영구집권을 획책했기 때문에, 그리고 갑자기 죽었기 때문에 법적으로 정리할 필요와 여유가 없어서 그랬지, 그가 챙긴 수 조원대의 재산은 지금도 각종 재단형태로 남아 자손들과 그 추종자들의 배를 불리고 있다. 후손들의 재산다툼 과정에서 고발과 고소, 깡패들을 동원한 폭력, 살인사건까지 벌어졌다.


이처럼 그의 일생은 드라마틱하긴 하지만 그건 결코 영웅담이 아니라 한편의 괴기극이다. 배신과 음모, 잔인함과 죽음으로 점철된 그로테스크한 ‘호러물’이다. 이런 드라마의 주인공을 강상중 교수가 그의 저서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귀태(鬼胎)’ 중의 하나라고 표현했다. 책이 나왔을 때는 전혀 눈길을 끌지 못했던 것이 민주당 홍익표 의원이 이를 인용하면서 문제가 됐다. 청와대와 새누리당이 난리법석을 치는 바람에 문제가 아닌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음모와 배신, 죽음으로 점철된 ‘귀태스러운’ 일생


‘귀태’란 ‘태어나서는 안 될, 불길한, 사위스러운’ 등의 부정적 뉘앙스를 풍기는 일본식 조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일본이 조선병탄에 이어 대륙침략을 위해 세운 식민지 만주국을 경영하고 충성한 자들은 ‘귀태’가 맞다. 그런데 왜 ‘鬼態’나 ‘귀자(鬼子)’ 혹은 ‘鬼者’가 아닌, 자궁을 뜻하는 ‘胎’를 쓴 것일까.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 등 만주인맥 그 자체가 아니라 이들이 권력자로서 남긴 정치적 유산, 그리고 그들의 후손들이 보이고 있는 정치적 행보에 더 주목하고자 한 것이 아닌가 짐작만 할 뿐이다.


그렇다면 아베 총리는 (만주에서 생체실험으로 악명을 떨친 731부대를 연상시키는) ‘731호’ 비행기를 타고 나타남으로써 그의 외조부가 ‘귀태’에 틀림없음을 만천하에 입증했다. 취임한 지 불과 5개월도 안된 박근혜 대통령은 아직 시간이 꽤 많다. 아버지를 모욕했다고 발끈할 게 아니라 친일문제 등 과거청산에 앞장서서 부친의 업보를 적극적으로 감당하려 할 때, 아버지의 유산인 국정원의 범죄행위를 단죄하는데 망설임이 없을 때, “주권을 빼앗겼다”는 시민들의 정당한 주장에 귀 기울일 때 부친이 ‘귀태’라는 소리는 저절로 사라질 것이다.


그것보다 먼저, 자신이 야당 대표 시절, 철없는 소속 국회의원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노가리’라 부르며 ‘육시럴 놈’ ‘부랄을 떼야 할 놈’이라며 찧고 까불 때 그 앞에서 깔깔대고 웃었던 일부터 사과해야 옳을 듯 하다.

 

☞ 강기석 오마이뉴스 기자 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