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개의 길이 막혔다. 남은 길은 ‘광장’뿐

참의부2013.0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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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20대 열혈청년(?)이었던 시절인 80년대 초반 친구들 사이에서 유행했던 우스갯소리가 있었다. 신문에서는 스포츠면만, 방송에서는 스포츠뉴스만 봐야 한다는 것이었다. 물론 3S정책에 충실하자는 것이 아니라 진실을 알려주는 것이 운동경기결과밖에 없다는 의미에서다. 어쩌면 그런 목마름이 우리의 언론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이어져 한겨레신문이 만들어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 시절에서 꼭 30년이 지났다. 그 당시 20대 열혈청년들은 이제 50대가 되었고, 다시 그 자식들이 20대 열혈청년으로 살아가는 시대가 되었다. 그러나 세상은 다양한 모양새로 이 20대 청년의 모습을 보여준다. 말도 안 되는 직접민주주의가 성행하여 대학생들의 시국선언에 대해 ‘내가 동의 안했는데 왜 학교이름을 쓰느냐’라는 항의가 버젓이 등장하고 심지어 총학생회를 공적 기관이라고 생각하여 정치적 입장을 표해서는 안 된다는 믿음을 가지는 집단까지 생겨나고 있다. 혹자는 이런 다양성을 민주주의, 또는 민주주의가 발전하는 모습이라고 할지도 모르겠다. 정말 이 시대는 민주주의가 발전하고 있는가?

무력한 3권 분립, 법 안 지키는 5대 권력 기관

우리가 초·중·고를 지나면서 사회나 역사 수업시간에 마르고 닳도록 배운 것 가운데 하나가 근대 시민사회가 만들어낸 업적이다. 그것은 자유와 평등이라는 이념이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 가운데 하나가 권력분립이라는 것이다. 처음 입법과 집행의 2권에서 입법, 사법, 행정의 3권으로 분리되었음을 누구나 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헌법은 이런 권력기관을 5개로 나누어 놓았다. 국회, 정부, 법원, 헌법재판소, 선거관리위원회가 그것이다. 이 5개의 권력기관이 서로 자신의 역할을 가지고 다른 권력을 견제하도록 헌법이 정하고 있다는 말이다. 국민은 자신들의 억울함을 하소연하거나 자신들의 의견을 피력하기 위하여 이 권력기관 가운데 어느 하나를 이용하는 것이 권력분립의 핵심이다. 그런데 지금 국민들은 그 어느 권력에도 호소하지 않고 광장으로 나섰다. 왜 그래야만 했을까?

사실 지난 대통령선거만큼 논란이 많은 선거는 흔치 않다. 선거운동과정에서부터 개표 후에 이르기까지 논란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모든 문제를 차치하고 딱 한 가지 지금 바로 문제가 되고 있는 국정원 관련 문제 하나만 두고 보더라도 국민이 광장에 나설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 수 있다.

 

 

국정원의 불법 선거개입사실이 알려진 것은 이미 선거 전인 12월 11일이다. 진보당 이상규의원이 밝힌 12월 13일부터 16일까지 경찰 사이버범죄수사대 분석관들의 조사과정에 대한 동영상 녹취록을 보면 따로 증거를 제시할 필요가 없을 정도다. 그러나 결과는 어땠을까? 12월 16일 경찰은 국정원의 개입에 대한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 이후 경찰의 축소·은폐에 대한 문제제기와 고발이 이어지면서 결국 지난 6월 14일 검찰은 국정원의 천 여 개의 댓글 가운데 대선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 판단한 67개의 댓글에 대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을 기소했다.

이 사실을 가지고 각각의 권력기관이 했어야 할 일과 실제 한 일을 보자. 우선 선관위는 분명 인터넷의 SNS를 통한 글 역시 선거운동임을 이미 밝힌 바 있다. 즉 SNS를 통해 후보자를 단 1회라도 비방해서는 안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선관위는 이미 12월 11일 경찰과 함께 널리 알려진 국정원 댓글녀의 오피스텔에 갔다 온 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더구나 공무원이 직접 선거에 개입한 사실에 대해서도 검찰에 고발하거나 경찰에 수사를 의뢰하는 등의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공직선거법 제60조 위반이 명백한 사안에 대해 경찰은 이를 국가정보원법 제9조의 정치관여금지를 이유로 검찰에 송치했다. 물론 검찰은 해당 직원에 대해 기소를 유예했다. 즉, 기소를 하지 않았단 말이다. 거기다 검찰은 오히려 당시 오피스텔 밖에서 이를 감시한 민주당에 대해 불법감금을 이유로 고소한 해당 직원의 손을 들어주기까지 했다. 이런 일련의 과정 속에서 국민은 더 이상 경찰과 검찰이라는 정부기관을 믿을 수 없게 된 것이다. 선관위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함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더군다나 선관위가 불법선거를 이유로 그동안 수사의뢰를 한 많은 사건들과 경중을 비교해 보면 선관위를 믿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결과이다.

대통령선거 결과가 나오자마자 그 결과에 의문을 품은 많은 국민들은 스스로 ‘제18대 대통령선거무효 소송인단을 구성하였고 1월 4일과 1월 16일 두 차례에 걸쳐 약 7천여 명이 대법원에 선거무효소송을 제기했다. 공직선거법에 따르자면 이미 지난 7월 4일 이전에 대법원은 이에 대한 결과가 나왔어야 한다. 그러나 그로부터 1달이 더 지난 지금까지도 대법원은 그 어떤 재판진행의 의지도 보여주지 않고 있다. 결국 국민들에게 법원이라는 권력기관 역시 무용지물이라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국회에 이르러서는 더 가관이다. 지난 7월 1일 국정원 댓글관련 국정조사를 합의한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약속한 기간인 7월 2일부터 8월 15일까지의 45일의 기간 중 불과 열흘 남짓 남은 지금까지 국정조사라 할 만한 일을 하지 못하고 있다. 회의 첫 날 민주당 김현, 진선미 의원에 대한 제척 요구를 시작으로 홍익표 민주당 전 대변인의 '귀태' 발언을 이유로 국회 일정 중단 선언, 국정원 기관보고 비공개 주장에 증인은 아예 출석조차도 하지 않는 등의 파행에다 8월 첫 주에는 이런 중대 사안을 앞두고 휴가를 가는 의원까지, 별 일이 다 생기는 것이 국회이다. 앞으로 8일을 연장한다지만 과연 얼마나 진실에 접근할지, 의문을 갖는 건 나만이 아닐 것이다.

국정조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는 것에 대한 제1야당인 민주당의 대응은 때론 집권당인 새누리당의 행위보다 국민을 더 화나게 한다. 장외로 나온 민주당은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갈팡질팡하고 있다. 그 대표적인 것이 바로 영수회담이 제안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국민을 실망시키는 것은 사실 이 조사에서의 핵심인 증인채택에서 그야말로 몸통이라 할 수 있는 핵심이 빠진 것에 대해 동의를 했다는 점이다. 그것도 겨우 국정조사 일주일 늘리는 것에 대한 대가로 말이다.

그나마 진보당의 이상규의원이 제공해주는 정보가 현재까지 진행된 국정조사의 모든 것이다. 하루 반나절 정도 제대로 진행되었다는 국정조사, 그런데 그 하루 반나절만에 드러난 사실만도 엄청나다는 사실이 뻔히 눈앞에 보이는데도 국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그야말로 무사태평에 다름 아니다. 결국 국민은 그나마 자신들의 손으로 뽑은 국회에조차 기댈 수 없게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헌법재판소를 통한 헌법소원이다. 그러나 헌법소원을 위해서 넘어야 할 산이 법에는 정해져 있다. 바로 헌법재판소법 제68조에 의해 다른 법률구제절차를 모든 거친 후에라야 가능하다. 즉, 지금 현재 제기된 대통령선거무효소송이 끝나야만 가능하다는 말이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지만 대법원이 이 소송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서 알 길이 없다. 뿐만 아니라 헌법소원은 3명의 재판관으로 구성된 지정재판부의 사전심사를 거쳐야 하고 그 가운데 한 명이라도 이를 받아들여야 정식심판으로 갈 수 있다. 또한 정식심판으로 가더라도 6명 이상의 찬성을 얻어야 하는데 이미 헌법재판소의 재판관은 민주당이 추천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이명박, 박근혜, 새누리당에 의해 추천되거나 임명된 자들이다. 그러니 이런 헌법재판소에 대해 국민들이 기댈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언론 너마저도...믿을 것은 ‘광장’뿐

 

 

5개의 국가권력 어디에도 기댈 곳이 없다는 것이 이번 사건이 절차대로, 법대로 진행될 것이라는 기대를 국민들이 할 수 없는 이유다. 국정원의 대통령선거과정에서의 댓글사건은 이미 사실로 판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법 위반이라는 것 역시 자명하다. 그러나 반년 이상이 지나도록 국정원은 그 어떤 반성의 기미도 없다. 적어도 법 위반이라는 사실이 확인되고 그 위반의 정도가 대통령선거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미쳤는지의 여부가 확인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이를 끝까지 파헤칠 의지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러나 그 어떤 국가권력기관도 나서주지 않는다.

이도저도 할 수 없을 때 국민이 의존하는 것은 자신들의 현 상태를 대변해 줄 언론이다. 그 언론조차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는다면 결국 국민들은 그 어디에도 자신들의 일은 해결해 줄 곳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미 조·중·동으로 대변되는 보수언론은 이 문제를 댓글의 개수로 폄하하거나 NLL, 개성공단 등 전통적으로 써먹어 왔던 남북문제 등의 사안을 통해 물타기에 여념이 없다. 한·경·오·프로 대변되는 진보언론조차 국민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정확하게 언급하지 않는다. 더 나아가 광장에 모인 국민들의 뜻을 알리는 것조차 인색하다. 3개 공중파 방송은 말할 것도 없고 종편방송은 더욱 더 심하다. 스포츠 기사나 방송 말고는 믿을 게 없다는 지난 30년 전의 우스갯소리가 문득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실제 광장에서 만난 많은 이들 사이에서 새로운 언론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공공연히 나오고 있다.

민주주의는 다시 30년 전으로 돌아가 있다. 30년 전 10여 년에 걸친 민중의 노력으로 이루어 놓은 민주주의는 지금 이 땅에서 이미 사라진 지 오래다. 그때처럼 민중들은 그 어느 곳에도 의지할 곳이 없이 벼랑 끝에 몰려 있다. 이제 그 어느 곳에도 의지할 수 없는 국민이 선택할 수 있는 방법은 단 한가지이다. 직접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드러낼 수밖에 없다. 그런 국민들이 지금 광장에 모이고 있다. 시간이 갈수록 그 광장은 더 많은 국민을 부르고 있다.

법이, 법이 정한 권력들이 국민들의 뜻을 대변하지 않는 지금, 더 많은 이들이 광장에 모여 더 많은 외침을 만들어내야만 지금의 이 총체적 문제덩어리인 지난 대통령선거를 둘러싼 모든 문제들이 해결될 것이다. 법이 사라진 자리에서 법에 의지할 수 없는 국민들이 설 자리, 광장밖에 없지 않은가? 그리고 그 광장에서 들 촛불이 국민들의 뜻이다.

 

▶ 김은진 원광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민중의 소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