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장 (일본군 만행 - '위안부'편)

Yuri~★2013.08.13
조회823

8.15 기념으로 올립니다. 

 

 

전 장 (전사와 장교)

 

- 장교는 한국군 위관급 군인이고, 전사는 북한군 이등병급 계급임 -

 

 

1부: 위안부 편

 

 

주의: 글 특성상, 표현을 거칠게 한 부분이 다수 있습니다.

 

 

 

 

들어가기 전에 -

 

 

우리는 너무도 편안한 세상에서 시답지도 않은 문제로 늘 고민하고 좌절한다.

혼돈의 세상이니, 괴로움의 시간이니, 도덕을 잃은 공허니...

 

지금 세대의 사람들은 잘 모른다.

진정한 고뇌란 무엇이며, 진짜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우리의 부모님에 부모님의 세대.

그들의 소원은 그다지 거창하지 않았다.

 

전쟁이 끝나는 것,

배고픔을 잊는 것,

글자를 배우는 것,

가족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것....

 

그런 사소한 것이 행복의 모든 것이라 생각했던 시절이다.

그들이 우리 앞에 없었다면, 지금 우리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그리고 지금의 우린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그들에게...

그리고 우리들이...

그리고 우리의 다음 세대까지 잊어서는 절대 아니 될 것이 있다.

 

일제강점기(日帝强占期) ...

 

어쩌면, 그때의 그 아픔을...

다시는 떠올리고 싶지 않은 그 통한의 기억을 애써 떠올릴 필요는 없을 진데,

하지만, 남의 영욕을 위해 겪어야했던 우리의 희생을 묻어버리기에는,

그런 아픔을 물 속 깊이 간직하기에는....

우리의 슬픔이 너무나도 크다.

 

잊어서는 안 된다.

그들에게 얻은 억울함과 분함이 있음을 절대 잊어서는 아니 된다.

절대로! 

 

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_

 

 

 

 

 

 

때는 일제 말기 어느 날...

 

자그마한 산등성이 위에 울창한 나뭇잎사이를 통과한 오색의 햇볕이 아름답게 쏟아지고, 그 언저리에는 작은 새들과 산짐승들이 한가로이 뛰어놀고 있다.

 

시대의 암울함과는 극과 극으로 비교가 되는 평화로운 시골의 경관 속에서 열다섯 소년 상혁이 그 산위로 헐레벌떡 뛰어 올랐다. 상혁은 뭐가 그리 급한지, 돌부리에 넘어지기도 하고 때로는 진흙에 미끄러지기도 했다. 팔과 다리는 나뭇가지 등에 긁힌 상처자국투성인데, 상혁은 아픈 기색도 없이 산꼭대기까지 부지런히 올라갔다.

이윽고 산 아래가 잘 내려다보이는 곳에 도착하자 상혁은 숨을 죽이고 산 밑을 주시하며 주머니를 뒤적거렸다. 열다섯의 소년이라고는 설명할 수 없는 진지한 표정의 그는 주머니에서 주황색 노리개를 꺼내 조그마하게 새겨진 이름을 바라봤다.

[ 갈현리 한상민 ]

 

‘이걸 왜 가지고 왔지? 잘못해서 흘리기라도 하면, 저놈들한테 들킬 수도 있을 텐데..’

 

상혁은 주변에서 쓸 만한 나뭇가지를 주워 근처 수풀이 우거진 곳에 땅을 팠다. 그리고 노리개를 그 안에 던져 넣었다. 그리고 손으로 파낸 흙을 덮으려다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럴 필요까지는 없겠지.’

 

같은 시간...

그곳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의 외진 비포장 길에 일본군 트럭이 먼지를 날리며 천천히 달리고 있었다.

뒷자리에는 열다섯 살 소녀와 열아홉 살 소녀 두 명이 타고 있었고, 바로 맞은편 간이의자에는 일본군 세 명이 나란히 앉아있었다. 두 명의 소녀 중에 열다섯 살 소녀의 이름은 연주고, 옆의 열아홉 소녀는 명자다.

세 명의 일본군들은 두 명의 소녀를 열심히 희롱했다.

명자는 연신 괴로운 표정을 짓고 있었으나 옆자리의 연주 표정은 멍하기만 했다. 지저분하게 수염을 기른 일등병(一等兵) 계급의 일본군은 놀리는 재미가 없는지 장난스럽게 연주의 젖가슴을 곤봉으로 꾹꾹 눌렀다.

 

“이 계집아이, 남자에 대해서 모르는 거야? 모르는 척 하는 거야?”

“그렇게 해서 흥분이 되겠어?”

 

옆에 있던 상등병(上等兵) 계급의 일본군이 킥킥거리며 연주의 윗옷 속에 손을 넣고는 손가락으로 가슴을 살살 자극했다. 그래도 연주의 표정에 변화가 없자 버럭 소리를 질렀다.

 

“너희는 대일본제국의 위대한 업적을 수행하고 있는 영웅들을 위해 아주 영광스런 일을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소녀들이다!”

 

옆에 그 모습을 보고 있던 명자가 벌벌 떨며 눈물을 글썽였다.

 

“연주야, 대꾸를 해봐. 제발...”

 

하지만 연주는 여전히 먼 산이라도 쳐다보는 듯 초점 없는 눈동자에 무표정하기만 했다. 상등병은 화가 났는지 연주의 작은 가슴을 손가락으로 움켜잡았다.

 

“그런데도 표정이, 표정이 그게 뭔가? 기뻐하란 말이다! 기뻐하라고!! 환희에 찬 표정 모르나?”

 

그래도 별다른 반응이 없자, 상등병은 손을 빼고는 연주의 목 중앙부위를 곤봉으로 꾹꾹 누르다가 숨이 막히도록 강하게 밀쳤다.

‘헉’소리와 함께 연주가 의자아래 바닥으로 힘없이 넘어지자 옆에 있던 명자가 비명처럼 연주의 이름을 불렀다.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군조(軍曹) 계급의 그 중에 가장 우두머리 일본군이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넘어져 있는 연주 앞에 쪼그리고 앉아 연주의 턱을 손가락으로 잡아당기더니 속삭였다.

 

“친구끼리 아주 신파극을 찍는구나. 우린 너희를 창부로 데려가는 것이 아니다. 너흰 아주 훌륭한 일을 하러 가는 거야. 이번에 옮겨가는 곳은 예전의 그곳과는 확연히 달라. 둘이서 번갈아가며 딱 한분만 모시면 돼.”

 

우두머리는 나머지 손으로 연주의 저고리 옷섶을 들쳤다. 어린나이에 아직 몽우리도 오르지 못한 젖가슴 한쪽이 드러났다. 그걸 음흉하게 바라보더니 다시 입을 열었다.

 

“널 낳아준 부모에게 감사하라. 태생적으로 얼굴과 몸매가 좋아서 뽑혔으니까 말이다.”

 

우두머리는 올렸던 옷을 다시 내리고는 연주의 눈동자를 빤히 쳐다보다가 얼굴을 양손으로 덥석 잡고는 다시 격앙된 표정으로 마구 흔들며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니, 뭔가 반응을 하라! 전 세계를 집어삼키려는 미제 양키 놈들에게서 너희를 지키려는 대일본제국의 위대한 장군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기쁘지 않은가? 영광이잖아! 딴 애들은 가고 싶어도 못 간다고!”

 

명자가 벌떡 일어났다.

 

“연주야, 뭐라도 이야기를 해드려!”

 

명자의 다그침에 정신을 차렸는지 연주는 분노와 두려움이 반반씩 섞인 눈동자로 우두머리를 쏘아보았다.

 

“요년 봐라!”

 

우두머리가 기가 막힌 표정으로 연주와 눈을 마주치고 있는데, 옆에 상등병이 솥뚜껑만한 손으로 연주의 따귀를 그대로 올려 부쳤다. ‘짜악’하는 마찰음 소리와 함께 연주의 머릿속에 얼마 전의 일들이 번개처럼 스치고 지나갔다.

 

 

***

 

두 달 전...

 

연주와 같은 마을에 살고 있는 명자, 그리고 처음 보는 세 명의 소녀들이 대기실에 모여 앉아있었다. 소녀들은 저마다 긴장이 되는지 아무 말도 없었다. 잠시 후 두 명의 사내가 들어왔다. 소녀들은 그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머리나 옷매무새들을 매만졌다. 다들 형편이 어려운 집의 딸들이라 무조건 돈을 벌 목적으로 모인 것이었다.

그나마 그 중에 엄마와 아빠가 다 계신 연주가 다른 소녀들에 비해 가장 유복한 편이었다.

다른 소녀들도 마찬가지겠지만, 연주는 특히 조마조마했다. 일본인 사무소에 간다고 하면, 독립운동가들을 지원하는 아버지가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릴 것이 뻔했다. 하지만 일찍 철이 든 연주는 독립운동을 하느라 나날이 형편이 어려워지는 집안을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그들에게 어떤 기술을 배우는 것 정도가 매국(賣國)을 하는 건 아니지 않은가?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딱... 두 달만 참으면 되겠지.’

 

두 명의 사내들은 아무 말 없이 소녀들의 얼굴과 몸을 기분 나쁘게 훑더니 뭔가를 공책에 열심히 적었다. 다섯 소녀는 의아한 눈초리로 서로의 얼굴을 살폈다. 그중에 나이가 가장 많은 명자가 물어봤다.

 

“신식 간호(看護)기술을 배울 수 있다는 공고를 보고 왔는데요.”

 

그 중 좀 더 젊어 보이는 사내가 헛기침을 몇 번 하더니 입을 열었다.

 

“원하는 기술을 배우려면, 일본어도 완벽하게 익혀야 하고, 황국신민(皇國臣民)의 기본으로 일본문화도 제대로 터득해야한다. 미개한 조선의 문화로는 힘들지.”

“일본학교에 보내지나요?”

“다른 곳으로 간다. 일본어와 일본문화는 물론이고, 니들이 살아가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걸 배울 수 있는 곳이다. 바로 투입된다.”

 

소녀 중에 가장 뚱뚱하고 지저분한 행색의 소녀가 반색을 하며 물었다.

 

“다 배우면 돈도 많이 벌 수 있겠죠?”

 

사내는 그 소녀를 한동안 쳐다보다가 다시 공책에 적힌 걸 보더니, 고개를 가로젓고는 가방에서 몇 장의 종이를 꺼내 그 수를 헤아렸다. 그리고 뚱뚱한 소녀에게 대답했다.

 

“물론이지, 그런데 너는.. 흠, 아무래도 다음 기회에 가야겠다.”

“왜죠? 이 날짜를 얼마나 기다렸는데?”

“미안하게도 준비된 서류가 넉 장 뿐이다.”

“공고에는 ‘선착순’이라고 써져 있고, 제가 가장 먼저 왔는데요?”

 

사내는 한동안 대꾸를 못하더니만 얼버무렸다.

 

“자기 몸 관리도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어찌 환자를 간호할 수 있겠는가?”

“할 수 있어요!”

“몸매는 규정이다. 넌 쓸모가 없어. 오히려 방해만 될 뿐이다.”

 

뚱뚱한 소녀가 울먹이는 눈으로 황당해하며 들고 있던 공고문을 열심히 살피고 있을 때, 사내는 나머지 소녀들에게 서류를 나눠줬다.

 

“나머지 사람들은 여기에 서명을 하도록!”

 

사내가 내민 서류는 온통 알아보기 힘든 필체의 일본어로 되어있어 무슨 말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연주를 비롯한 네 명이 소녀들은 사내에게서 ‘서류가 부족하다’는 말을 이미 들었기에 서둘러 서명을 했다.

소녀들이 서명을 하는 도중, 젊은 사내가 늙은 사내에게 서류를 보여주며 속삭이듯 물어봤다.

 

“소장님, 얘들은 그냥 통으로 4355포병대에 넣어버리죠. 인원이 딱 맞겠는데요.”

“거긴 있잖아?”

“한번 싹 바꿔달라는 통보가 있었습니다. 오래되어 질린다고...”

 

늙은 사내가 미심쩍은 표정으로 젊은 사내를 쳐다봤다.

 

“자네, 그쪽에서 와이로 받고 그러는 건 아니지?”

“무슨 소리입니까? 4355는 너무 외진 곳에 있는 나머지, 그곳 병들이 다른 곳까지 가서 피로를 풀 수 없다고 전에 소장님께서...”

“알았네. 아무리 그래도 반씩만 바꿔야지, 한꺼번에 다 바꾸면 쟤들이 어떻게 감당해?”

“쉽진 않지만, 잘 교육시키면 될 겁니다.”

“너무 어리지 않나?”

“그렇진 않죠. 상부에서는 12세부터 보내라던데...”

“12세는 인간적으로 너무하고... 어쨌든 알겠네.”

 

그들이 무슨 대화를 했는지 알 수 없는 소녀들은 대기실에 나와 젊은 사내의 차를 타고 어디론가 반나절 이상을 이동했다. 그리고 어둑해질 무렵에 산속에 있는 낯선 군부대 앞에서 하차했다. 그리고 그 사내의 안내에 따라 두리번거리면서 군 막사가 펼쳐진 곳으로 들어갔다.

길거리에서 노닥거리던 일본 군인들은 소녀들이 탄 차를 힐끔거리더니 자기들끼리 대화를 하며 환호성을 치기도 하고 킬킬거리기도 했다.

나열된 막사 끝부분에 ‘군위안소(軍慰安婦)’라는 푯말이 있는 허름한 건물 앞에 도착하자 안내를 맡은 사내가 잠시 대기를 하라는 손짓을 했다. 가장 어린 14세 소녀가 물었다.

 

“군위안소가 뭔 뜻이죠?”

“일종의 정신대다. 너희가 살던 마을에서 ‘근로정신대’를 모집했던 걸로 아는데?”

“알아요. 우리 외삼촌도 뽑혀서 ‘나고야’란 곳으로 가셨어요.”

“맞다. 근데 그건 남성들과 여성들이 다함께 할 수 있는 일자리이고, 이곳 군위안소는 오직 여성들만의 일자리이다. 저기 첫 번째 방에 들어가 있으면 자세한 도움을 주실 분이 오실 거다.”

“일자리요? 기술도 안 배웠는데요?”

“기술도 같이 배운다.”

 

사내가 가리킨 쪽에는 대략 다섯 개 정도의 미닫이문이 있었고, 그 상단에는 ‘황국신민서사(皇國臣民誓詞)’의 세 가지 문구가 훈화처럼 걸려있었다.

 

첫 번째 방에 들어가니 4조 크기(1조는 다다미1기)의 방에 낡은 침대하나와 구리로 된 세숫대야 하나, 의자 하나, 거울 하나가 놓여있었다. 소녀들이 그곳에서 잠시 대기하고 있으니, 좀 전의 그 사내가 한 늙은 일본인 여자를 데리고 왔다. 여자는 소녀들을 보자마자 반색을 했다.

 

“이번 애들은 진짜 곱네.”

“잘 부탁드립니다.”

“간만에 물갈이 잘 되었다고 군인들이 좋아하겠네.”

“물갈이요?”

“아참, 너희들이 할 일을 아직 모르지?”

“네, 그게 뭔지..”

“군인들의 몸을 풀어주는 거다. 안마 같은 거지.”

 

늙은 여자의 미소 속에 알 수 없는 음흉한 색기가 넘쳐났다.

 

“안마라니요? 안마는 할 줄도 몰라요.”

“괜찮아, 괜찮아. 누구나 다 할 수 있어. 어렵지 않아.”

“근데 저흰 간호기술을 배우러 왔는데요.”

“심신이 지친 자들의 몸을 풀어주는 것이 ‘간호’의 기본이란다. 다 같은 거야.”

 

소녀 중에 한명이 대꾸했다.

 

“전 어렸을 때부터 팔힘이 약해서...”

“그런 거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

“유독 여자만이 할 수 있는 특수한 안마 기술이 있어.”

“그래요?”

“여기서 아직 남자를 경험하지 못한 아이가 있지?”

“무슨 말씀인지?”

“말로 설명하는 것보다, 직접 교육실습을 해야겠다. 너희들을 각각 가르칠 분들을 보낼 테니, 이걸 받고, 각자 방 하나씩 정해서 들어가거라.”

 

늙은 여자는 소녀들에게 치마저고리와 흰색 수건꾸러미가 들어있는 보따리를 한 개씩 나눠주더니 모퉁이로 사라졌다.

연주는 그걸 들고 순서대로 맨 끝 방을 차지하고 들어갔다. 그 방도 마찬가지 4조정도 크기였다. 낡은 침대와 의자 하나, 세숫대야 하나 그리고 거울이 있었다. 창문이 없는 방이라 분위기도 묘한데다가 처음 맡아보는 퀴퀴한 냄새까지 나는 것이 별로 좋지 않았다. 혼자 앉아있으려니 기분까지 음산했다.

그때, 옆방에서 드르륵하는 문소리가 들렸다. 연주가 침을 꿀꺽 삼키는 순간, 갑자기 옆방에서 비명소리가 들렸다. 분명 명자언니의 목소리였다. 연이어서 다른 방에서도 '꺅'하는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불안한 마음에 연주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려고 문을 열었는데, 바로 문 앞에 ‘사루마다’만 입고 있는 알몸의 남자 한명과 20세 전후의 젊은 여자 한명이 물동이를 들고 서 있었다. 깜짝 놀란 연주가 뒷걸음질 치자 여자가 말했다.

 

“들어가 앉아.”

 

연주는 겁을 먹고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그러자 알몸의 남자가 연주를 방속으로 강하게 밀쳤다. 연주는 비명을 지르며 힘없이 의자에 앉혀졌다. 여자는 방으로 들어와 물동이를 바닥에 내려놓고는 무릎을 꿇고 앉았다. 연주는 다급하게 물었다.

 

“왜, 왜 그러죠?”

“지금부터 넌 아주 중요한 일을 담당하게 돼.”

“저 아저씨는 누군가요?”

“그래도 모국에서 ‘니쿠이치’를 상대하니 다행으로 생각해. 중국까지 끌려가서 ‘햐쿠’를 상대하는 아이들도 있다니까...”

“무슨 말씀인지?”

“여긴 117명의 군인이 있어. 오늘 온 너희 넷이 맡을 인원이야.”

“뭘 맡아요?”

“말로 설명하기보다 직접 실습을 하자. 지금부터 가르쳐 줄 테니 옷부터 벗어.”

“여기서, 옷을.... 벗어요?”

“어서!”

 

연주가 남자와 여자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몸을 움츠렸다. 여자가 눈짓을 하자, 서 있던 남자가 연주 곁으로 다가오더니 연주의 양쪽손목을 침대기둥에 천으로 묶고는 비명을 지르는 연주의 입을 틀어막았다. 연주는 남자의 손아귀 안에서 ‘욱욱’ 하는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지만 덩치 큰 남자를 상대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연주가 남자에게 잡혀있는 동안에 여자가 재빨리 연주의 치마를 벗기고 저고리 옷고름을 풀더니 가위로 소매를 잘라냈다. 그러자 순식간에 연주는 알몸이 되고 말았다. 수치심에 몸이 벌벌 떨렸고, 눈물이 흘러내렸다.

여자는 보따리를 풀어 하얀색 수건을 꺼내더니 들고 온 물동이에 적셨다. 그리고 연주의 얼굴을 깔끔하게 닦더니 차례대로 가슴부위를 닦았다. 표정을 보니 그녀의 얼굴에는 미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넌 늘 청결해야 해. 그래야 성병이 옮지 않아.”

“.....!”

 

여자는 적신 수건 중 깨끗한 부분을 검지에 돌돌 말고는 아직 어리기만 한 연주의 그곳에 넣었다. 그리고 쓰다듬는 것처럼 닦고는 다시 다른 깨끗한 부분을 검지에 말고 또 닦았다.

연주는 터져 나오는 비명을 어찌할 수 없어 몸을 버둥거렸다. 그러는 동안 여자는 연주의 그곳을 다 닦았는지 다른 수건을 적시더니 이번엔 남자의 팬티를 벗겼다. 그리고는 숙련된 손놀림으로 남자의 중요부위를 적신 수건으로 열심히 닦았다. 그리고는 무슨 고무 같은 것을 꼈다. 연주는 그 모습을 보지 않기 위해 고개를 휙 돌렸다.

잠시 후...

모든 것이 마쳐졌는지, 남자가 연주를 번쩍 들어 침대에 눕혔다. 연주는 그곳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안간힘을 썼지만 남자의 완력에는 아무래도 역부족이었다.

남자는 주저 없이 연주 몸 위에 올라타더니 강제로 능욕(陵辱)을 하기 시작했다. 연주는 자기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사, 살려주세요.”

 

남자의 알몸을 본적도 없었고, 남자와의 성관계가 뭔지도 전혀 모르는 백지장 같은 어린 연주였다. 이윽고 남자의 커다란 것이 순수하기만 한 연주의 그곳에 닿자 연주는 이를 악물었다.

미칠 거 같았다. 미쳐서 죽을 것만 같았다. 살이 찢어지는 통증보다 당하고 있다는 수치심과 증오가 가슴을 더욱 아프게 했다. 그 위에서 남자는 열심히 허리를 상하로 움직였다. 남자가 움직일 때마다 내장이 뒤틀리고, 살점이 예리한 칼에 베어지는 느낌이었다.

 

“우우우, 우우우욱!”

 

그리고 잠시 후, 포기랄까? 더 이상의 저항도 무의미해지자 연주는 온몸의 힘을 풀어버렸다. 눈에서 흘러내리는 것이 눈물인지 핏물인지 영혼인지 알 수 없었다. 그 위에서 남자는 짐승처럼 한참이나 날뛰더니 만족했는지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본 젊은 여자가 연주의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

 

“이 방은 내가 쓰던 방이야. 너도 ‘표’를 천장 모으면, 나처럼 여기서 나갈 기회가 생길 거야.”

“......”

“나도 첨에는 미용기술을 익힐 수 있다고 해서 왔어. 그런데 그 기술 배우기 위해서는 여길 거쳐야 한다는구나. 그것도 모르고 서류에 서명을 했었네.”

 

연주는 터질 거 같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여자는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제 이 자리를 너에게 물려줬으니, 홀가분하구나. 너한테는 정말이지...”

 

그 여자의 목소리가 점점 메아리처럼 들리는 듯하더니, 연주는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

 

얼마나 지났을까?

정신을 차리고 나니 문밖에서 남자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밑 부분이 욱신거리는 것이 찢어질 거 같이 아팠다. 손을 내려 보니 침대보 위에 깔린 수건에 끈끈한 것이 흘러내려 딱딱하게 굳어있었다.

눈물도 나오지 않는데, 목구멍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컥컥 새어나왔다. 목이 메었다.

고개를 돌려 머리맡을 보니 쪽지 하나와 환약 몇 알갱이, 그리고 물그릇이 놓여있었다. 힘겹게 손을 뻗어 종이를 펴보니 작은 글씨로 편지가 적혀있었다. 여자가 남기고 간 모양이었다.

 

- 그 약을 먹으면 감각이 둔해져서 덜 아플 거야.

- 남자가 들어오면 물동이에 담겨둔 수건으로 꼭 닦아.

  소독약제가 들어있으니 잊지 말고 그걸로 그 부분을 꼭 닦아야 해.

  되도록 삿쿠(サック)라는 싸개를 꼭 끼도록 해.

  성병이 생기면, 음도(陰道)에 수은(水銀)을 쬐어야 할 수도 있어.

  그걸 쬐다가 살이 썩어서 죽은 사람도 있으니 조심해야 해.

- 미안하다. 같은 조선인끼리...

 

세상, 아니... 전 우주의 모든 서러움 일 것이다. 그것들이 순식간에 연주에게 쏟아졌다.

모든 것이 꿈인 줄 알았는데... 꿈이었으면 했는데.... 전부 현실이었다.

멈춰있던 몸이 다시 덜덜 떨렸다. 어떻게 해야 하는지... 빠져나갈 길은 없는지... 여기서 얼마나 더 있어야 하는지... 사방이 어둡기만 했다.

 

연주는 몸을 일으켜 약을 먹고 물을 마셨다. 울분이 복받쳐 올라왔다. 다시 샘솟듯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 순간 드르륵 방문이 열렸다. 얼굴에 개기름이 잔뜩 흐르고 있는 일본 군인이 들어와 씨익 웃었다. 열린 문틈 사이로 줄을 서 있는 군인들이 보였다. 모두들 기대에 찬 얼굴들이었다.

그 악마들을 보자니, 그냥 이 자리에서 생을 포기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개기름이 흐르는 군인은 문을 닫자마자 바지부터 벗어던졌다. 그리고 물동이에 있는 수건을 꺼내더니 연주에게 던졌다. 다리 사이에 마른 피를 봤는지 개기름이 게걸스러운 환호성을 쳤다.

 

“오! 으부(うぶ)! 삿쿠(サック) 같은 건 필요없겠네!”

 

그 소리에 문틈으로 다른 군인들이 안을 들여다보며 저마다 외쳐댔다.

 

“진짜?”

“이쪽에 줄 서길 잘 했군.”

“오늘 교육 담당한 오장(伍長) 엄청 부럽네.”

“빨리 하고 나와!”

“조심해서 살살해. 흐흐.. 나도 느낄 수 있게..”

 

기쁜 모양인지 개기름이 직접 무릎을 꿇고 연주의 그곳을 닦았다. 따끔거리는 것이 죽을 거만 같았지만, 어떤 비명이나 저항도 소용이 없을 거 같았고, 그렇게 하면 오히려 더욱 비참해질 것 같아 속으로 삭히고 또 삭혔다.

다 끝났는지 개기름이 몸 위에 올라탔다. 그리고 악마의 더러운 잔치를 시작했다. 문틈 사이로 적어도 다섯 명의 눈빛이 개기름과 연주에게 쏟아졌다. 악마의 개 같은 움직임에 따라 침대에서 삐꺽삐꺽하는 소리가 났다. 그럴 때마다 연주는 온몸이 찢어질 듯 아팠고, 머리는 점점 혼미해졌다.

 

그냥 죽어버릴까!

다들 짐승이야. 인간이 아니야.

아냐, 설마.. 이건 꿈일 거야. 난 아직 어리다고!

보고 싶다. 가족, 친구... 심지어 날 미워했던 사람들까지도.. 전부 다!

죄송해요. 아버지, 엄마...

정말..

죄송해요.

 

 

***

 

두 달 전의 그 치욕스런 기억이 연주의 뇌리(腦裏)를 스치고 지나가자 그녀의 눈에서는 눈물이 주룩 흘러내렸다. 연주는 소리가 나지 않게 입을 움직였다.

 

‘다시.. 뵐 수 있을까요? 엄마, 아빠.... 웃는 얼굴...’

 

여전히 트럭은 먼지를 일으키며 달리고 있었고, 연주는 트럭 바닥에 넘어져 흐느끼고 있었다. 그때 우두머리가 연주의 따귀를 때린 상등병을 나무라면서 나무막대기로 그의 머리를 내리쳤다.

 

“야 이 무식한 놈아, 따귀를 때리면 되나? 애가 울잖아!”

“죄송합니다!”

“소장님께 바치는 뇌물이라잖아! 얼굴에 상처라도 나면, 자네가 책임질 건가?”

“반항적이라서... 앞으로는 주의하겠습니다.”

“당장, 부대에 도착하면 우리에게 심부름을 시킨 ‘이토’ 준위가 볼 텐데, 뭐라 대답해야 하는지.. 쯧쯧”

 

우두머리는 연주를 부축하면서 말했다.

 

“거칠게 다뤄서 미안하다. 그러게 말을 잘 듣지 그랬나? 자, 이쪽에 앉아.”

 

바로 그 시간...

 

그들이 타고 있는 트럭이 상혁이 숨어있는 산등성이를 바로 앞에 거의 이르렀다.

산등성이에 앉아있던 상혁은 먼지 속에서 일본군의 트럭이 시끄러운 엔진소리와 함께 그 모습을 드러내자 나무 뒤로 몸을 숨기고 숨을 돌렸다. 이마에 굵은 땀방울 하나가 주룩 흘러내렸다. 찻소리와 함께 심장소리도 점점 커져만 갔다.

상혁은 마음속으로 셈을 했다.

 

‘하나, 둘, 셋... 바로 지금이다!’

 

우두머리가 연주를 일으켜 다시 의자에 앉힌 그 순간, ‘덜컹’ 소리와 함께 트럭이 한쪽으로 심하게 쏠리면서 멈췄다. 미처 몸을 지탱하지 못한 우두머리가 연주를 품에 안고는 데구루루 굴러 쇠모서리에 머리를 강하게 부딪쳤다. 피가 터져 나왔다. 명자를 비롯한 나머지 사람들도 충격에 이리저리 넘어졌다.

 

“으윽, 무슨 일이야!”

 

트럭의 한쪽 바퀴가 상혁이 만들어 놓은 함정에 빠진 것이다.

 

“길이 왜 이러지?”

운전병이 내려서 그쪽을 보고는 한숨을 쉬었다. 바퀴하나가 완전히 빠져서 누군가 들어 올리지 않으면 차를 뺄 수 없을 지경이 된 것이다. 우두머리가 한손으로 자기 머리에 지혈을 하고는 차에서 뛰어내려 그 상태를 보고 운전병의 다리를 힘껏 발로 찼다.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못 보고 뭐 했나?”

“죄송합니다. 안 보였습니다.”

“다들 내려와서 어떻게 해보자!”

 

그 말을 들은 상등병은 투덜거리며 연주와 명자를 트럭 기둥에 묶어놓고는 내려왔다.

네 명의 일본군들이 힘을 합쳐서 트럭을 밀치는 동안, 트럭이 있는 쪽에 몰래 다가온 상혁이 다람쥐처럼 재빨리 트럭 뒤로 올라가 소녀들에게 ‘쉿’동작을 하고는 소녀들을 묶고 있던 끈을 칼로 뚝뚝 끊었다. 그리고는 소녀들을 일본군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쪽으로 내리게 하고 그녀들에게 도망가라는 손짓을 했다.

소년과 소녀의 동작이 있을 거의 비슷한 시간에 일본군들은 트럭을 밀어서 바퀴를 구덩이에서 빼내는데 성공했다.

연주와 명자가 손을 잡고 산이 있는 쪽으로 뛰어가려는 순간, 상혁이 일본군 운전병과 눈을 마주치면서 발각되었다. 불과 십여 걸음 내외였다. 상혁은 자신의 주머니에 있던 ‘갈현리 한상민’이라고 적힌 노리개를 연주의 주머니 속에 쑤셔 넣었다. 연주가 의아한 눈으로 쳐다보자 상혁이 일본군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들면서 소녀들에게 소리를 쳤다.

 

“쳐다보지 말고 빨리 도망가라고!”

 

연주과 명자는 겁먹은 표정으로 쳐다보다 도망치기 시작했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우두머리가 일본군들이 있는 쪽으로 달려온 상혁을 잡았다. 나머지 군인들은 연주와 명자가 있는 쪽으로 뛰기 시작했다. 상혁은 자기를 잡고 있던 우두머리의 머리상처를 껑충 뛰면서 이마로 강하게 들이받았다. 그러자 팍 소리와 함께 그 부분에 피가 튀어 흩어졌다.

 

“으윽!”

 

우두머리가 고통스런 표정으로 머리를 움켜잡자, 상혁은 그의 품에서 빠져나와 옆에 있던 나무에 걸쳐진 끈을 재빨리 잡아당겼다. 그러자 소녀들을 따라가던 일본군들 앞에 팽팽한 끈이 생기면서 그것에 걸린 일본군이 앞으로 꼬꾸라졌다.

그 모습을 본 연주가 주춤했다.

하지만 상혁은 자꾸 도망가라는 손짓을 할 뿐이었다. 연주는 어쩔 수 없이 명자와 손을 잡고 근처 숲속으로 뛰어갔다. 바로 그 순간에 ‘따앙’ 하는 총성 소리가 산에 메아리쳤다. 그러자 명자가 단말마의 비명을 지르며 앞으로 꼬꾸라졌다. 연주의 눈이 커다래졌다. 명자는 그 자리에서 즉사를 했는지 미동도 없었다. 머리를 관통한 것이었다.

연주의 뺨에는 소녀에게서 튄 핏방울이 흘러내렸다. 연주는 순간 쏟아지는 눈물이 앞을 가려져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지만 두려움에 뛰고 또 뛰었다.

그렇게 얼마를 뛰고 또 뛰었을까? 멀리서 소년의 비명소리가 들렸다. 그에게 미안해서 심장이 멈출 것만 같았다. 하지만 살기 위해서는 계속해서 달릴 수밖에는 없었다.

 

발바닥이 물집이 생기고 여기저기가 터져 더 이상 걸어갈 수조차 없게 되었을 때, 연주는 그 자리에 쓰러져 기절을 했다.

 

 

***

 

연주가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어둑어둑해진 밤이었다.

연주는 집이 있는 방향을 대충 잡아보고는 그쪽으로 걸어갔다. 민가도 없었고, 그 흔한 짐승들도 없는 그저 고독한 산길이었다. 가끔 칡뿌리 같은 걸을 갉아먹으면서 금방이라도 뭐가 튀어나올 것만 같은 으스스한 공포의 숲길을 걷고 또 걸었다.

 

그렇게 얼마나 걸었을까? 날이 다시 밝아왔다. 녹초가 된 연주는 산길을 이리저리 헤매다가 시냇물을 발견했다. 연주는 반가운 나머지 얼굴을 풍덩 담그고는 배고픔에 그 시냇물을 마시고 또 마셨다. 그제야 자신의 얼굴이 엉망이란 것을 깨달았다. 양손에 충분히 물을 떠서 세수를 했다. 그때 가슴팍에서 노리개가 빠져나와 물속에 떨어졌다. 연주는 그걸 다시 건지려다가 눈물을 글썽였다. 시냇물에 얼굴이 비쳤기 때문이다. 고난과 아픔이 범벅이 되어 있는 얼굴... 그 한쪽 편은 심하게 부어올라 있었다. 그 부분을 만져보았다. 손바닥에 쓸린 피부에 따끔한 자극이 올라왔다.

 

“나 때문에...”

 

흐르는 시냇물을 역류시킬 기세로 몸이 떨렸다. 명자언니의 죽음, 그리고 대신 잡힌 비슷한 또래의 이름 모를 소년... 영사기가 돌아가듯 연주의 얼굴이 비쳤던 자리에 이름 모를 소년의 얼굴이 나타났다가 다시 명자의 얼굴이 나타나기를 반복했다. 희생된 그들을 생각하자니 더욱 괴로워졌다. 그 기억들을 잊기 위해선지 연주는 다시 물에 파동을 일으키며 세수를 하고 몸을 닦았다. 그래도 복 받쳐 오르는 서러움을 참을 수가 없었다. 자신을 유린했던 일본군들의 짐승 같은 행동들이 또다시 떠올랐다. 미칠 것 같았다. 아예 시냇물 속에 들어가 그 부분을 씻고 또 씻었다. 하지만 아무리 씻어내도 더러운 기분과 상처뿐인 심장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고, 계속해 울부짖어도 눈물조차 그것들을 흘려보내지 못했다.

 

“집에 가면... 엄마아빠 얼굴을 뵈면... 터질 거 같은... 죽을 거 같은.... 이 심정이 조금은 나아질까? 근데.... 나는.. ”

 

젖은 옷차림으로 나온 연주는 지친 몸을 이끌고 산위로 올라갔다. 그리고 가장 높아 보이는 바위 위에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봤다. 불행 중 다행인지 멀리 연주의 고향마을이 보였다.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았지만 연주는 다시 힘을 내서 마을을 향해 열심히 걸어갔다.

입에서는 계속 반복해서 같은 말만 새어나왔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진짜 어떻게 말하지.... 어떡해야하지........

 

마을이 가까워지면서 연주는 안도감과 미안함, 두려움이 가득한 만감의 표정이 되었다. 부모님을 무슨 낯으로 뵐 수 있으랴? 다른 곳으로 갈까? 이런 모습 보여드리지 말고, 그냥 평생 혼자 살아버릴까? 산속에 숨어버릴까? 그것도 아니면.... 목숨을 끊어버릴까?

그렇게 한참을 망설이던 연주였지만, 그래도 저 언덕을 넘으면 그리운 고향집이 나올 것이라 생각하니 발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그렇게 한 걸음 두 걸음... 잠시 후, 언덕 너머가 보일 때 즈음...

 

‘어? 집이 왜 이래?’

 

거의 폐허가 되다시피 한 연주의 집은 한쪽으로 불에 탄 흔적까지 있었다. 연주는 그 안으로 뛰어 들어가며 소리를 쳤다.

 

“엄마!”

 

하지만 들려오는 것은 공허한 바람소리 밖에는 없었다. 연주는 덜렁거리는 안방 문을 열고 그 안으로 들어갔다. 누군가 떼로 몰려와 뒤졌는지 집안 집기들이 엉망진창이 되어있었다. 부엌도 마찬가지였고, 연주가 쓰던 방도 난장판이 되어있었다. 다시 밖으로 나가보니 마루 여기저기에 낙서가 보였다.

 

[ 나라를 팔아먹은 신태준! ]

[ 일본새끼들의 앞잡이 ]

[ 삼족을 멸하고 천벌을 받아라! ]

 

연주는 눈이 동그래졌다. 그리고 잠시 후, 망연자실한 표정으로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빤 독립투사야. 그런데, 이게 다 뭐야? 대체 어찌된 영문이냐고!!”

 

때마침 집 밖 멀리 떨어진 곳으로 마을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수군거리며 어디론가 걸어가는 모습이 보였다. 연주는 그들 근처로 달려갔다. 거지꼴을 하고 있는 연주는 알아보는 사람은 없는 거 같았다. 마침 마을사람들이 연주의 집 앞을 지나면서 한마디씩 해댔다.

 

“몰살을 당해도 싸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냐고?”

“그 집 딸년은 살아있을까?”

 

그들이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지 어리둥절해 하는 동안, 누군가 연주의 손을 낚아챘다. 보니 평소에 친분이 매우 두터웠던 원주댁 아주머니였다. 원주댁은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연주를 끌고 마을 뒤편으로 데리고 갔다.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곳에 도착하자 원주댁은 쌈지에서 돈을 꺼내 다짜고짜 연주의 손에 쥐어주었다.

 

“이유 묻지 말고, 빨리 다른 곳으로 떠나.”

“왜요? 아주머니..”

“너도 여기 있으면 어떤 변을 당할지 몰라.”

“어떻게 떠나요? 제가 태어난 곳인데... 그리고 우리 부모님은요?”

 

한참을 망설이던 원주댁은 어렵게 입을 열었다.

 

“네 아버지와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뭐요? 무, 무슨 농담을... 설마, 아니죠? 다시 말씀해 주세요. 네? 아줌마!”

“세상을... 떠나셨다고... 너희 부모님과 명자 부모님 모두....”

“그럴 리가.. 그럴 리가 없어요. 농담이죠? 네?”

“내 이야기를 잘 들어라. 실은...”

 

원주댁은 고개를 들고 주변을 살피더니 다시 말을 꺼냈다.

 

 

 

 

                                                                                  - 다음 편에 계속

 

 

 

 

정신이 없이 바쁘네요.

2부는 언제 올려야 하나. 휴..... 

 

 

 

 

 

 

1화: 말하는 거울

2화: 포스터를 그리면서

3화: 하얀 원피스

4화: 딸을 위한 선물 (19)

5화: 천재 작가 (19)

6화: 소름끼치는 목소리

7화: 뫼비우스의 운명

8화: 온 세상이 하얗게 변해가고 있을 때...

9화: 최고의 상품

10화: 과거로 돌아간 남자 (운명의 새해)

11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上

12화: 사이버 세계로 떠난 웹툰작가 下

13화: 그것이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

14화: 내 잘못이 아니야

15화: 파우스트의 진실

16화: 그의 노래가 들리는 곳에는...

17화: 상류층의 놀잇거리

18화: 피 흘리는 산행

19화: 누군가의 화분에 옮겨져 죽어가는 그것이 그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은 것

20화: 눈 물

21화: 전 장1 - 위안부 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