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시절, 태양은 어디에서 뜨는가.

김가긴2013.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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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암리 교회. (2)

 

  제암리는 그다지 넓은 동네가 아니다. 그러다보니 허씨네도 그다지 멀지는 않았다. 그치만 그날은 허씨아저씨 댁에 가는 길이 유난히도 멀게 느껴졌다.

  이내, 허씨아저씨댁에 도착하고, 지태아버지는 무엇이 그리도 다급하신지 대문이 부셔져라 두드리셨다. 곧, 허씨아저씨댁 아주머니가 누구나며 대문을 열어주셨고, 곧바로 지태아버지는 지태어머니가 머리에 이고 계시던 짐 보따리를 낚아채듯 가져가시더니 아주머니에게 보따리를 풀어 보여드렸다.

  “우리집 재산을 탈탈 털어왔어요. 우리 아이들과 우리부부도 좀 살려주세요.”

  불안한 듯 지태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이게 뭔가?”

  아주머니는 지태아버지께 물으셨고, 지태아버지는 식은땀을 옷소매로 닦으며 주절주절 말을 늘어놨다. 좀 우습다면 우스운 광경이기도 했지만, 지태아버지의 표정은 그리도 심각할 수가 없었다.

  문제는, 너무 횡설수설 하는 바람에 그곳에 있는 누구도 지태아버지의 말이 무슨 말인지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 이었다.

  그때, 열려진 대문으로 허씨아저씨가 들어오셨다.

  “무슨일인가?”

  고운 비단옷을 입고 계신 허씨아저씨는 진중한 목소리와 말투로 물으셨다.

  폼새가 딱, 조선 양반이었다.

  “아이고 어르신, 저흰 제암리 사는 사람들입니다만... 저희좀 살려주세요.”

  “무슨소린가?”
  “아까 어르신과 야노순사가 하는 말을 지나가는길에 다 들었습니다...”

  “뭐라고?”

  허씨아저씨는 조금 놀란 듯 했다. 머리에 쓴 양모자를 고쳐쓰시더니 무언가 고민하는 듯 보였다. 그런 허씨아저씨의 옷소매를 붙잡고 지태아버지는 계속해서 사정하셨다.

  “아이고 어르신... 저희좀 살려주세요 어르신....! 저 어린아이들 좀 보세요...불쌍하지도 않으십니까..?”

  지태아버지는 우리를 손가락으로 가르키며 말씀하셨다. 아니, 애원에 가까웠다.

  사실, 지태아버지는 어디가서든 면이 서네 안서네를 많이 따지시는 분이신지라, 허씨아저씨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그리 애원하는 모습이 좀 우스꽝스럽긴 했다.

  허씨아저씨는 그런 지태아버지가 귀찮은 듯 가벼운 발길질을 하며 지태아버지를 떨궈내려 애를 쓰셨다. 그럼 그럴수록 지태아버지는 더 세게 매달리는 덕분에 떨궈내진 못했지만 말이다.

  “아휴.. 참나... 알았네. 내일 다시오게나. 아침 일찍 와야하네.”

  “네? 아이고! 어르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결국 이골이 난 듯 한 허씨아저씨가 포기했다는 말투로 말씀하셨고, 지태아버지는 그런 허씨아저씨의 바짓가랑이를 놓더니 큰 절을 계속해서 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감사합니다!”

  허씨아저씨가 지태아버지가 아까 풀어놓은 짐보따리를 거둬서 가지고 들어가실 때 까지 지태아버지는 그렇게 몇분을 계속해서 감사하다며 큰 절을 해댔고, 우린 그 모습만 가만히 지켜봤다.

  고개를 돌려 보니, 지태의 얼굴은 불이라도 난 듯 붉어져 있었다.

  아버지의 그런 모습이 어찌나 창피할까를 생각하니, 난 지태를 오래 쳐다볼 수가 없었다.

  그렇게 허씨아저씨 댁에서 나온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지태아버지는 일찍 서둘러야 하니, 잠 또한 같이 자자고 했지만, 누이가 오늘은 꼭 집에서 자야한다고 고집을 피우는 덕에 우린 곧장 집으로 향했다. 집에 도착하자 어머니와 아버지는 잠에 들지도 못하신 채 마당을 서성이고 계셨고, 나는 그런 어머니께 곧장 달려가 안겼다.

  “형님, 아이들이 집에서 잠을 자고 싶다고 해서... 내일 아침 일찍 데릴러 오겠습니다. 형님”

  지태아버지는 그 말만 남기시고는 그렇게 가셨다.

  그 날의 밤은 그렇게 흘러갔다.

  나와 누이는 부모님 사이에서 그토록 행복한 밤을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