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로 거리의 물대포, 민주주의를 향한 도발

참의부2013.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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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는 정말 어렵다. 그 목적은 인민의 뜻을 받드는 것이지만 인민의 뜻을 찾아내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다. 인민의 뜻은 신만이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민의 뜻을 찾아내기 위한 절차적 형식이 선거라는 제도이다. 하지만 완벽한 선거제도라는 것은 없으니, 민주주의란 출발점에서부터 절름발이일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절름발이라고 민주주의를 폄하하거나 내던질 수는 없다. 오히려 절름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더 탁월하게 기능할 수도 있다. 만약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완벽하다면 거기서부터 오만이 싹트기 때문이다. 인간의 눈으로 보면 완벽하게 보이지만 신의 눈으로 보면 엉망진창일 테니까 말이다. 반대로 민주주의가 절름발이기 때문에 민주주의 앞에서 사람들은 스스로 겸허해진다. 그래서 민주주의의 결함을 보완하기 위해 이리저리 노력해가는 가운데 신만이 안다는 인민의 뜻에 더욱 다가갈 수 있지 않을까?

‘광장’은 민주주의 제도의 결함 보완장치

예를 들어 보자. 민주주의의 나라라고 한다면 금방 우리는 미국 민주주의를 생각한다. 그러데 미국의 민주주의만큼 이상하고 엉성한 것은 없다. 단적인 예가 대통령을 선거하는 방식이다. 미국은 직접 선거도 아니고 간접 선거도 아닌 엉거주춤한 선거인단 제도를 택하고 있다. 선거인단 선거의 최종적인 결과가 과연 인민의 다수의 뜻과 합치하는 것일까? 아마 아무도 확신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미국은 선거인단 제도를 버리지 못한다. 그것은 그런 선거인단 제도가 미국의 역사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자본주의의 발전이 미국 역사의 씨줄이고 주와 연방 사이의 대립이 날줄이다. 주와 연방의 대립을 반영하는 것이 그런 선거인단 제도인 것이다.

그런데 미국 민주주의의 이런 근본적인 결함은 미국적 민주주의를 파산시키지 않고 오히려 미국적 민주주의를 더욱 건강하게 하는 데 기여했다. 미국인들은 선거인단 제도를 통해 발생하는 나머지는 신의 뜻으로 여기며 기꺼이 이런 결함을 받아들여 왔다. 그 결과 당장 눈앞에 나타나는 인민의 뜻이 아니라 먼 앞에 나타나는 인민의 뜻이 미국적 민주주의를 인도하는 나침반이 되어 왔던 것이다.

우리의 민주주의도 마찬가지이다. 약간의 부침이 있었지만 민주주의가 본격적으로 실시되기 시작했던 것은 1987년 민주화 이후였으니 30년도 못 미치는 역사를 가졌을 뿐이다. 제도적으로 본다면 이게 제대로 된 민주주의인가 하는 의심을 버릴 수 없다. 예를 들어 국회의원 선거제의 경우 지역 대표에 과도하게 치중하면서 삶의 근본적인 형식을 이루는 생산 현장의 뜻을 거의 반영하지 못한다. 비례대표 제도가 있어 이를 보완한다고 하지만 사실 이 제도는 한국 정치사를 지배해온 두 지배 정당의 정당적 이해를 반영하는 장치일 뿐이라 하겠다. 더구나 87년 민주화 혁명을 통해서 얻는 대통령 직선제조차 겉으로 보기에는 한 표, 한 표를 다투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역시 의심스럽기는 마찬가지이다. 무엇보다도 민주주의의 선거제도의 또 하나의 축을 이루는 공론의 장으로서 언론이 보수정부에 의해 장악되어 왔기 때문이다.

이처럼 제도적인 결함을 지니기 때문에 우리의 민주주의도 이를 보완하는 장치를 마련해 왔다. 그 장치가 바로 광장이라는 장치이다. 이는 바로 우리의 민주주의의 역사를 반영하는 것이다.

 

‘광장민주주의’ 경험한 나라 많지 않아

물론 모든 민주주의가 기본적으로 광장에서 시작하는 것이 아니냐 하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광장의 경험을 지닌 나라는 많지 않다. 바스티유 광장에서 시작되었다는 프랑스 민주주의만이 우리와 유사한 광장의 경험을 가지고 있다. 일본이나 독일의 민주주의에 광장의 경험이 있는가? 없다. 그러면 민주주의의 대표국가인 미국에 광장의 경험이 있는가? 아니다. 미국은 독립전쟁을 했지만 정작 민주주의는 광장에서 이루어지지지는 않았다.

광장이라는 것은 독특한 의미를 지닌다. 광장은 인민의 뜻이 발화되는 곳이다. 언론을 통해 인민의 뜻이 반영되지 못하는 경우 언론을 대신해서 광장이 인민의 뜻을 알린다.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형식을 통해 인민의 뜻이 실현되지 못할 때 광장에서 인민의 뜻을 직접 실현하려는 의지가 출현한다. 정부가 끝내 인민의 뜻을 거부하는 경우 광장은 정부를 대신하는 잠재적인 힘을 가지기도 한다.

우리나라의 경우 해방 이후 87년까지 무려 40년간, 각종 각양의 독재정부 시절, 신문도 지식인도 침묵하고 아부하던 시절부터 광장은 인민의 뜻과 의지가 표출되던 유일한 통로이었다. 특히 4.19 혁명이나 87년 민주화 혁명 시절 광장은 정당성을 상실한 정부를 대신하여 민주주의적 정부가 탄생하는 모태가 되기도 했다.

왜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주의가 광장을 통해서 출현했을까? 생각해보면 우리의 역사에는 수백 년에 걸친 광장의 경험이 있었지 않을까? 조선시대에도 선비들은 왕이 백성의 뜻을 보살피지 못하면 광장에 연좌하면서 백성의 뜻을 고하여 왔다. 전제적인 왕조차 광장에서 나타난 백성들의 뜻을 결국 거부하지 못했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있었기에 우리의 역사에서 4.19와 87년 혁명이 광장에서 이루어지지 않았을까?

광장에 나선 이들의 마음은 조선 시대 백성의 뜻을 고하기 위해 자기 목을 내놓은 선비들을 품고 있지 않았을까? 사람들은 광장에 나선 자를 그 뜻이 자기와 일치하든 않든 간에 일단 의인이라 보았으니, 그런 광장에 나선 자의 배후에 선비들의 역사적 후광이 어려 있지 않았을까? 무소불위의 독재정권조차도 감히 광장에서 들려오는 의인들의 함성을 거부할 수 없었던 것이니, 독재정권조차 조선시대 왕들의 운명을 역사를 통해 배웠기 때문이 아닐까?

이런 기나긴 광장의 역사적 경험이 있기에 87년 이후 민주주의가 제도적으로 정착된 이후에도 그 불완전성을 보완하기 위해 광장이라는 장치가 활용되어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광우병 파동 당시의 촛불이다. 당시 광장에 나선 누구도 광장이 4.19 혁명이나 87년 혁명에서처럼 정부를 대신한다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다만 정부가 인민의 뜻과 의지를 거스르고 있기에 그 뜻과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촛불을 들었다. 그러므로 광장이라는 이름도 촛불이라는 이름으로 변경되었다. 하지만 촛불이 광장의 기나긴 역사적 경험을 이어간다는 것은 촛불이 켜지는 곳이 바로 87년 민주화 투쟁의 시청 광장이고 조선 시대 선비들의 광화문 광장이라는 데서 잘 나타난다.

물대포는 민주주의에 대한 부정

2013년 여름, 폭염 아래 다시 촛불이 켜졌다. 이번 촛불은 광우병 파동 당시의 촛불과 또 다른 촛불이다. 이번에 사람들은 불완전한 민주적인 제도조차 침해되었다는 것에 대하여 경악하고 있다. 엄정한 중립을 지켜야 할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하여 인민의 뜻과 의지를 농락했기 때문이다. 그것도 박정희 시대 이래로 온갖 불법과 고문을 통해 민주주의를 유린해왔던 전통을 지닌 국정원이라는 조직이 말이다. 더구나 현 정권이 국정원의 민주주의 침해를 통해 이익을 얻은 당사자이기에 촛불은 더욱 분노한다. 그러니 이번 촛불은 단순한 촛불이 아니다. 그 촛불은 과거 4.19 혁명이나 87년 민주화 혁명 시절의 광장을 닮아가는 촛불이다.

일부 논자들은 광장이 민주주의에 배치되는 것이라고 말한다. 민주적 제도가 수립되었으니 우리는 선거를 통해서 자신의 뜻을 실현해야 한다고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의 경우 민주주의란 제도는 선거라는 제도에만 그치지 않고 광장까지 포괄하는 장치라고 보아야 한다. 광장에는 우리의 기나긴 역사적 전통이 담겨져 있다. 우리의 절름발이 민주주의는 광장을 포괄해야만 인민의 뜻을 반영하는 민주주의 정치로 거듭 날 수 있다.

그런데 얼마 전 듣자니 광장에 나선 촛불들에게 현 정권은 물대포를 발포하였다고 한다. 어리석은 짓이 아닐 수 없다. 그것은 인민의 뜻과 의지의 실현을 방해하여 민주주의를 기능정지 시키려는 행위이다.

 

 

☞ 이동철 동아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민중의 소리》칼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