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웃대
‘또각, 또각, 또각’
힘 없이 걷는 발걸음이 의도치 않게 칠흑 같은 골목길을 울렸다.
길가에 주차 되어 있는 차 운전석 유리에 비춰지는 내 모습에,
괜스레 귀신 같아서 놀란 적이 한 두 번.
가로등 불빛 하나 온전하지 못 한 이 골목길은
여자는커녕 건장한 사내도 움찔하게 만들 것 같았다.
피곤한 몸을 이끌고 길을 우회하기란 너무 고달픈 일이었기에
오늘 딱 한 번만 지나가기로 마음 먹었지만,
역시 괜한 생각이었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나는 위축되어 있었다.
‘오늘 따라 으스스 하네’
싸늘한 밤바람이 머리를 쓸어 넘기는 것 보다 더욱 소름이 끼치는 것은,
집집마다 불이 꺼져있는 음산한 풍경에 이따금 보이는 폐허 같은 건물들이었다.
건물 틈 사이마다 녹슨 철근이 기분 나쁘게 튀어나와 있었고,
공포 카페를 전전긍긍 하면서 한 번쯤 봤을 법한 폐잔물들은 제법 간담을 서늘하게 했다.
귀를 덮은 머리를 뒤로 넘겼다. 신경을 안테나처럼 바짝 곤두세우자,
오싹한 느낌이 피부를 타고 흘렀다.
어깨에 매고 있던 가방 끈을 꽉 쥐었다. 나도 모르게 힘이 바짝 들어갔다.
고요함 그 자체랄까. 가쁘게 내쉬는 숨소리, 걷는 소리 이외에는 아무 인기척이 없었는데
‘콜록’
확실하게 들리는 성인남성의 무거운 기침이 내 뒤통수를 찔렀다.
흥분한 심장은 마구 요동치기 시작했다.
머릿속에 꽂혀진 태엽이 빠르게 돌아가면서 대뇌에 가속이 붙기 시작했다.
‘콜록’
발작 비슷하게 일으키는 손으로 가방 속의 핸드폰을 뒤적거렸는데, 쉽게 잡히지 않았다.
그와 동시에, 발걸음이 반사적으로 빨라졌다.
‘또각, 또각또각, 또각또각또각’
‘터벅, 터벅터벅, 터벅터벅터벅’
내 걸음걸이에 맞춰 빨라진 발소리는 여전히 내 뒤에서 울리고 있었다.
결국 핸드폰을 찾는데 성공했으나 전혀 기쁘지 않았다.
덜덜 떨리는 손가락으로 주소록에 저장된 번호 아무거나 찍어서 통화 버튼을 누르는데
통화를 할 수가 없었다.
애석하게도 핸드폰은 내 손을 벗어나 이미 뒷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콜록’
다시 주울 생각은 엄두도 못 냈다.
저 멀리서 환하게 비추는 아파트 조명을 향해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어쩌면, 마지막엔 온 힘을 다해 달렸을 것이다. 도중에 구두 굽이 부러졌기 때문이었다.
눈물로 인해 마스카라가 번지면서 우스꽝스러운 얼굴로 변질되었다.
하지만 신경 쓰지 않았다.
더 이상 쫓아오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는데도, 아파트 단지 안으로 들어가기 까지 멈추지 않았다.
발목이 찌릿찌릿 아려왔다. 계단을 올라가면서 내딛는 발걸음이 천근만근 이었다.
너무 늦었지만 그 때 뒤를 돌아본 것도 큰 용기를 낸 것이었다.
물론 아무도 없는 황량한 놀이터와 밝은 아파트
단지 내 가로등만이 나를 불쌍하게 바라보고 있었을 뿐이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마자, 다리가 풀렸는지 나도 모르게 주저 앉았다.
목적지에 도착해서도 증상은 계속되었다.
거의 기어가다시피 도착한 문 앞에 서서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있는데,
문 손잡이에 쪽지 한 장이 붙어 있었다.
‘당신은 12시 정각에 죽는다.’
그 쪽지를 발견하자마자,
‘콜록’
허겁지겁 집 안으로 들어가 문에 달려있는 모든 잠금 장치는 다 채워 넣었다.
그것도 한참 모자랐는지 방으로 들어가 문을 이중으로 잠갔다.
확실한 것은, 나는 계속 감시 당하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어디서 지켜보고 있는 걸까?
옷과 가방을 대충 한 쪽에 집어 던졌다. 장롱 옆의 화장대에 명중하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애초에 관심이 그쪽으로 가지 않았던 나는 침대 위에서 이불을 꽁꽁 둘러싼 채로 엎드려 있었다.
시계를 보니 11시 50분이었다.
“꺄아아아아!!”
극도로 치솟은 공포감은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충분한 조미료가 되었다.
그리고 음식의 간을 보는 요리사는 자신의 입 맛에 맞을 때까지 조미료를 첨가했다.
아마 그 놈은 훌륭한 요리사가 틀림없었다.
나는 그 놈의 뜻대로 요리됐고, 훌륭한 먹잇감으로 완성되었다.
‘문을 다 잠갔으니 못 들어오겠지?’
12시가 다되어 갔지만 이불을 들추고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조심스런 발걸음에 채이는 먼지가 집 안을 어지럽히는 것은
숨 막히도록 무거운 거실 분위기에 위축된 듯 금새 사라져 버렸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해 부엌칼을 손에 들었지만 떨리는 손으로 인해 제대로 쥐어 잡을 수가 없었다.
잠금 상태를 다시 한 번 확인했다. 물론 완벽했다.
마음이 어느 정도 진정되었는지 차분한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 놈에게서 경찰의 보호를 받아야 했다. 방으로 들어가서 수화기를 잡았다.
땀으로 젖은 수화기 너머로 112를 누르자, 버튼소리 대신에 익숙한 소리가 들렸다.
‘콜록’
다시 한 번 112를 입력했지만,
‘콜록’
아뿔싸, 전화선은 끊어져 있었다.
뒤에 있던 장롱이 스르르 열렸다.
나를 마주본 요리사는 방긋 웃어 보였다.
하지만 그의 손에 들린 몽둥이는 어째서인지 웃지 않았다.
“여.. 여긴…”
“박사님, C – 4745번 깨어났습니다”
“잠시만 기다리게”
눈을 뜨자마자 보이는 환한 형광등 조명은 눈부시게 밝았다.
침대 위에 누워있는 기분이 들자마자 바로 몸을 일으켰지만,
단단한 무언가에 고정되어 있어서 불가능했다.
흰색 가운을 입은 남자들이 분주하게 돌아다녔고,
그 사이에는 나와 같은 침대가 여러 군데 있었다.
고개를 들어 내 몸을 쳐다봤다. 팔뚝에는 큼지막한 주사가 꽂혀있었고,
머리를 포함해 각종 부위에는 알 수 없는 선이 꽂혀있었다.
그 선들을 따라가자 커다란 컴퓨터 하나가 자리잡고 있었다.
“이게 뭐지?”
“깨어났군”
가운을 입은 남자들 중에서도 우두머리 급으로 보이는 남자가 나에게 말을 걸어왔다.
자신을 짤막하게 연구소장 이라고 밝힌 남자는,
조수가 건넨 파일을 읽어보더니 얼굴을 찡그리면서 나를 돌아봤다.
“당신들 경찰인가요? 그 놈은요?”
“아직 덜 깨어났나?”
“뭐라고요? 제가 죽은 거 아니었어요?”
“이봐, 당신은 무고한 시민 37명을 살해한 연쇄살인범이야. 무기징역을 받고 이 곳에 들어왔지.”
“뭐라고?”
“너가 죽이면 죽였지, 죽진 않아”
처음 듣는 말들을 내 앞에서 지껄이는 남자는,
어이없어 하는 내 표정이 재미있기라도 한 듯 방긋 웃었다.
“제가 살인범이라뇨, 제가 오히려 살인범한테 죽을 뻔했다고요!”
“실험은 성공적이군. 완벽하게 피해자에게 빠져들었어.”
“내가 피해자인데 무슨 소리야?”
“아니, 넌 사형해도 시원찮을 연쇄살인범이야.
어차피 또 약때문에 잊어버리니까 특별히 알려주도록 하지.”
연구소장이란 남자는 손에 들고 있던 차트를 옆에 서 있는 조수에게 떠넘겼다.
“우리나라는 실질적 사형 폐지국인거 알고 있지? 사형이 없다 보니
살인범에게 내려지는 형벌은 사람에 따라서 솜방망이 처벌로 보이는 게 사실이지.
그래서 사형을 대체하는 끔찍한 형벌을 정부의 도움 하에 수십 년간 연구 해왔어.
결국 오늘에서야 완성되었지만, 강도는 가히 끔찍한 고통이라고 할 수 있지.”
남자는 나를 살인범으로 몰고 가는 것도 모자라
그 뻔뻔함이 창피하지도 않은 지 계속 웃음을 지었다.
이 새끼야, 내가 피해자란 말이야.
“너 팔뚝에 꽂혀 있는 이 주사의 액체는 너의 기억을 파헤쳐 낼 수 있어.
그 파헤친 기억은 액체 속의 화학물질과 결합해서,
계산화학을 바탕으로 한 시뮬레이션 컴퓨터에 입력이 되고,
너에게 당한 피해자를 시뮬레이션에서 가려낼 수 있지.
그리고 가려낸 피해자의 입장을 너에게 입력시키고,
피해자가 느꼈을 심리적 고통을 느껴보게 하는 거지.”
“그럼… 방금 전의 나는 나한테 당한 피해자였다고?”
“피해자 최 모씨, 23세. 살해당하기 전, 알 수 없는 스토킹을 당함.
결국 집 안에 숨어있던 용의자에게 둔기로 살해당함.
너 아주 악질이네, 감기 걸린 노숙자한테 밥을 사주면서 스토킹을 시키고,
너는 집 안에 숨어서 타겟을 죽인다. 결국, 혐의는 노숙자한테 씌우는 거잖아?”
“아냐.. 아냐! 이건 거짓말이야. 말도 안 돼…”
“아니, 이게 사실이야. 그리고 너는 또 다른 피해자인 이 모씨의 고통을 느낄 시간이야.”
“끄아아아아아아악!!”
마취제를 주사하는 조수의 얼굴은 아무 표정이 없었다.
참을 수 없는 졸음이 밀려오기 전, 온 힘을 다해 조수에게 물었다.
“이 실험은… 언제 끝 나는… 거지?”
“글쎄. 실험 시작한 지 5분도 안 지났으니까, 모르겠네요.”
그럼, 내가 겪었던 것들은 5분짜리도 안 된단 말이야?
난 무기징역인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