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서 영가의 상란을 일으킨 흉노족을 언급했기 때문에 흉노족에 대한 이야기를 쓰겠습니다. 1. 전조(前趙)와 후조(後趙)유총이 죽고 황태자인 유찬이 즉위합니다. 이에 태사공(법무장관)인 근준이 모반하여 황제 유찬을 죽이고 유총의 시체를 파내어 토막을 치고 종묘를 불사릅니다. 승상인 유요와 대장군인 석륵은 근준을 잡아 죽였습니다. 318년 유요(앞서 진나라 황제 민제를 사로잡은 인물)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한’이라는 국호를 썼던 흉노 제국은 유요의 시대 때 국호를 ‘조(趙)’로 바꿉니다. 그런데 갈족인 석륵은 그즈음 독립을 결심합니다. 이에 흉노제국은 동, 서로 분열이 됩니다. 그런데 석륵도 국호를 ‘조(趙)’라고 하니 유요(서쪽)의 나라를 전조(前趙)라 하고 석륵(동쪽)의 나라를 후조(後趙)라 합니다. 2. 전조(前趙) VS 후조(後趙)유요는 군대를 동쪽으로 진격하여 석륵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젊을 때의 총명한 유요가 아닌 술에 중독이 된 상태였습니다. 술에 취한 채 말에 탄 유요는 도중에 낙마하여 석륵군의 포로가 됩니다. 석륵 : “아들 유희에게 항복을 권하도록 하라.” 유요 : (‘나를 염려하지 말고 사직을 유지하도록 힘쓰라.’ 라는 문서를 씁니 다.) 그 결과 유요는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곧 전조는 곧 멸망합니다. 3. 석륵은 누구?오호십육국시대를 오호난화(五胡亂禍)라고도 부릅니다. 어지러울 난(亂)에 재난과 재앙을 뜻하는 화(禍)에서 그 시대가 얼마나 엿(?)같은 세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정치가 참혹했기 때문일 겁니다. 그러나 석륵은 훌륭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갈족이며 노예출신으로 온갖 어려움을 겪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자영을 만들었는데 학문을 아는 한족을 모아 놓은 고문 기관이었습니다. 그리고 중국의 고전이나 역사를 읽게 하여 그것을 조용히 들었다고 합니다. 학교를 만들고 학자를 등용하였으며 자신의 입장에선 이민족인 한족(漢族)과 융합을 꾀했습니다. 또한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스님인 불도징을 존경했다고 합니다. 석륵에 관한 일화로 신하와 역대 인물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대화를 하게 됩니다. 석륵 : "나와 조조중 누가 더 위대하느냐?"신하 : "당연히 폐하입니다."석륵 : "그럼 나와 유방중 누가 더 위대하느냐?"신하 : "당연히 폐하입니다."석륵 : "아첨일랑 그만두어라. 만약 유방이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의 시종이 되어야 한다. 광무제라면 겨뤄볼 수 있겠다. 그러나 조조 와 사마의 따위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 광무제, 조조, 사마의의 팬분들은 펄쩍 뒬 소리겠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통치와 역량을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졌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4. 석륵이 죽고 그 다음 후계자는? 석륵은 333년에 죽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인 석홍이 있어서 그 다음 황제가 됩니다. 그러나 석륵의 조카인 석호가 석홍을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됩니다. 석호는 성격이 매우 잔인해서 석륵이 죽이려고 하지만 전장에서의 능력은 독보적인 것이며 석륵의 어머니의 반대로 죽이지 않습니다. (그의 세력 또한 강대한 이유인 것도 있습니다.)다음편은 석호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추가) 다음편을 썼는데 확인해보니 삭제가 되었습니다. 잔인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인걸로 생각합니다. 역사에도 빛과 어둠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추악한 면도 직시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과없이 적었을 뿐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분들은 제가 댓글, 추천을 목적으로 자극적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심심풀이로 적은 글이 20편가까이 됩니다.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운 여름날 건강히 지내시길 바라며 하루 잘 마무리 하셨으면 합니다. 4
(추가)6. 5호(胡) 16국시대 - 전조(前趙)와 후조(後趙)
앞서 영가의 상란을 일으킨 흉노족을 언급했기 때문에 흉노족에 대한 이야
기를 쓰겠습니다.
1. 전조(前趙)와 후조(後趙)
유총이 죽고 황태자인 유찬이 즉위합니다. 이에 태사공(법무장관)인 근준
이 모반하여 황제 유찬을 죽이고 유총의 시체를 파내어 토막을 치고 종묘
를 불사릅니다. 승상인 유요와 대장군인 석륵은 근준을 잡아 죽였습니다.
318년 유요(앞서 진나라 황제 민제를 사로잡은 인물)가 황제의 자리에 오
르게 됩니다.
‘한’이라는 국호를 썼던 흉노 제국은 유요의 시대 때 국호를 ‘조(趙)’로 바
꿉니다. 그런데 갈족인 석륵은 그즈음 독립을 결심합니다. 이에 흉노제국
은 동, 서로 분열이 됩니다. 그런데 석륵도 국호를 ‘조(趙)’라고 하니 유요(
서쪽)의 나라를 전조(前趙)라 하고 석륵(동쪽)의 나라를 후조(後趙)라 합
니다.
2. 전조(前趙) VS 후조(後趙)
유요는 군대를 동쪽으로 진격하여 석륵을 공격합니다. 그러나 젊을 때의
총명한 유요가 아닌 술에 중독이 된 상태였습니다. 술에 취한 채 말에 탄
유요는 도중에 낙마하여 석륵군의 포로가 됩니다.
석륵 : “아들 유희에게 항복을 권하도록 하라.”
유요 : (‘나를 염려하지 말고 사직을 유지하도록 힘쓰라.’ 라는 문서를 씁니
다.)
그 결과 유요는 죽음을 당합니다. 그리고 곧 전조는 곧 멸망합니다.
3. 석륵은 누구?
오호십육국시대를 오호난화(五胡亂禍)라고도 부릅니다. 어지러울 난(亂)에
재난과 재앙을 뜻하는 화(禍)에서 그 시대가 얼마나 엿(?)같은 세상인지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이유도 있겠지만 그 당시의 정치가 참혹했기 때문일 겁
니다. 그러나 석륵은 훌륭한 통치자였습니다. 그는 갈족이며 노예출신으로
온갖 어려움을 겪은 인물입니다. 그래서 글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군자영을 만들었는데 학문을 아는 한족을 모아 놓은 고문 기관이었습
니다. 그리고 중국의 고전이나 역사를 읽게 하여 그것을 조용히 들었다고
합니다. 학교를 만들고 학자를 등용하였으며 자신의 입장에선 이민족인 한
족(漢族)과 융합을 꾀했습니다. 또한 불교에도 관심을 두어 스님인 불도징
을 존경했다고 합니다.
석륵에 관한 일화로 신하와 역대 인물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대화를 하게
됩니다.
석륵 : "나와 조조중 누가 더 위대하느냐?"
신하 : "당연히 폐하입니다."
석륵 : "그럼 나와 유방중 누가 더 위대하느냐?"
신하 : "당연히 폐하입니다."
석륵 : "아첨일랑 그만두어라. 만약 유방이 내 앞에 있다면 나는 그의
시종이 되어야 한다. 광무제라면 겨뤄볼 수 있겠다. 그러나 조조
와 사마의 따위는 거론할 가치도 없다."
광무제, 조조, 사마의의 팬분들은 펄쩍 뒬 소리겠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통치와 역량을 스스로도 자부심을 가졌다고 봐도 될 것 같습니다.
4. 석륵이 죽고 그 다음 후계자는?
석륵은 333년에 죽었습니다. 그에게는 아들인 석홍이 있어서 그 다음 황
제가 됩니다. 그러나 석륵의 조카인 석호가 석홍을 죽이고 자신이 황제가
됩니다. 석호는 성격이 매우 잔인해서 석륵이 죽이려고 하지만 전장에서의
능력은 독보적인 것이며 석륵의 어머니의 반대로 죽이지 않습니다. (그의
세력 또한 강대한 이유인 것도 있습니다.)
다음편은 석호에 대해서 쓰겠습니다.
(추가) 다음편을 썼는데 확인해보니 삭제가 되었습니다.
잔인한 내용이 담겨 있기 때문인걸로 생각합니다.
역사에도 빛과 어둠이 있기 때문에 인간의 추악한 면도 직시해야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과없이 적었을 뿐입니다. 제 글을 읽어주신분들은 제가
댓글, 추천을 목적으로 자극적으로 쓰지 않았다는 것을 아실겁니다.
심심풀이로 적은 글이 20편가까이 됩니다. 제 글 읽어주시는 분들의
지지가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왔고 정말 감사드립니다.
더운 여름날 건강히 지내시길 바라며 하루 잘 마무리 하셨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