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8. 5호(胡) 16국시대 - 전진(前秦)

호경2013.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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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꾸 목록에서 제 글이 사라지길래 수정해보았습니다. 






http://pann.nate.com/talk/319075201 - 5호(胡) 16국시대 후조(後趙)

전편 주소입니다. 보실 분은 보시길 바랍니다. 


전진(前秦) - 351 ~ 394

 


1. 건국

 


티베트계 저족의 수장인 부홍은 후조의 석호 밑에 있엇으나 부홍의 아들인 


부건은 후조의 멸망을 기회로 자립해서 국가를 세우니 이것이 전진입니다. 


그리고 후에 부건의 아들인 부생이 즉위하게 됩니다.

 



2. 폭군 부생



부생은 애꾸눈이었습니다. 할아버지인 부홍이 그런 부생(부홍에게는 손자)



을 놀립니다.

 



부홍 : “애꾸눈인 사람은 한 쪽 눈으로만 눈물을 흘린다던데 정말로 그러



          하냐?”

 



부생 : “(칼을 빼들어 애꾸눈인 눈을 찌르며)이 눈에서 흐르는 피 또한 눈



          물입니다.”

 



천성적으로 잔인한 성품과 행동으로 뜨악한 부홍은 아들인 부건에게 부생



을 죽이라고 이릅니다. 부건 또한 부생을 죽이려 하나 주위사람이 ‘부생이 



자라게 되면 저절로 행동을 고치게 될 것입니다.’라는 말을 하니 죽이려는 



것을 그만둡니다.



부생은 장성하면서 천균을 들 수 있었다고 합니다.(1균은 30근이며 환산



하면 30000근, 이는 무려 18톤이라고 합니다. 그냥 힘이 장사였다고 보시



는 편이 좋을 듯 싶습니다.) 그리고 달리기도 말과 겨룰 수 있었고 맹수와 



격투하는 등 피지컬면에서도 최강이었고 무술과 전쟁에 있어서도 엄청난 



재능을 보인 인물이었습니다. 죽이기에는 아까운 재능이었습니다.



그런 부생이 즉위를 합니다.



그는 사람 죽이기를 좋아해서 즉위 하고나서 곧 위아래 가리지 않고 500



여명을 죽입니다. 이에 외삼촌 강평이 부생에게 직언을 하니 부생은 외삼



촌의 머리를 쳐서 죽여버립니다.



어느 날, 부생은 여동생이 어떤 사람과 함께 길을 걷고 있는 것을 보았습



니다. 부생은 그 사람에게 명하여 여동생을 강간하라고 명하니 따르지 않



자 죽여버립니다. 사람죽이기를 좋아할 뿐 아니라 술도 좋아하는 그는 병



이 듭니다. 그는 취해서 신하에게 묻습니다.

 

 


부생 : “내가 통치한 후에 사람들은 나에게 무어라고 말하는지 들었는가?”

 



신하1 : “폐하의 정치는 공명정대하고 태평성대입니다. 칭송만 있을 뿐 원



           망하는 말은 없사옵니다.”

 



부생 : “아첨하는 놈은 죽어야 한다.” (신하1을 죽여버립니다.)

 



신하2 : “폐하의 정치는 잔혹하옵니다.”

 



부생 : “나를 헐뜯는 놈도 죽어야 한다.” (신하2도 죽여버립니다.)

 



부생은 궁궐에서 일하는 남녀를 모아 벌거벗기고 성교를 하게해 이를 구경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얼굴가죽을 벗기고 노래와 춤을 추게 하고 신하들



에게 구경하게 합니다.(얼굴가죽 벗기고도 살 수 있나요?)



친척과 공신들을 무차별적으로 살육하니 그들에게는 하루가 마치 1년과 



같습니다. 또한 부생은  사람의 목을 자를 때 톱을 사용하는 것에 있어서



는 수천명을 헤아리게 됩니다.



부생은 또한 남아있는 친척들을 없애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부법과 



부견(부생의 아버지인 부건의 동생인 부웅의 아들들)은 군대를 일으켜 궁



궐에 침입하니 궁궐을 지키고 있던 군사들은 무기를 버리고 항복했다고 합



니다. 결국 부생을 폐하고 곧 죽여버립니다.(357)

 



부생(335 ~ 357) - 생각보다 엄청 젊네요. 재위 2년입니다.

 



3. 전진, 북중국의 패자(覇者)가 되다.

 


부생을 죽인다음 형인 부법에게 제위를 물려주려고 합니다. 그러나 형인 



부법은 한사코 제위를 사양하니 ‘아름다운 형제의 우애를 볼 수 있겠습니



다’는 개뿔, 부견은 형을 의심해서 부법을 죽여버립니다.



부견의 통치기는 당시 참혹했던 5호 16국의 정치에 있어서는 이레적일 정



도로 평온했으며 가장 안정된 시기였습니다. 그 이유는 부견자신에게서도 



찾을 수 있으나 부견의 제갈공명이라고 일컬어지는(부견이 실제로 왕맹을 



자신의 제갈공명이라고 말합니다.) 왕맹이라는 인물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왕맹은 한족(漢族)입니다. 5호 16국의 이민족이 세운 국가들은 



이민족인 한족과 다른 이민족을 차별합니다. 당연하다면 당연할 수 있겠지



만 국가의 통치에 있어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닐 것입니다. 저족인 부견은 



이민족임에도 불구하고 한족인 왕맹을 등용합니다. 왕맹은 엄격한 법집행



을 통해서 백성들과 관리들의 멘탈을 바로 잡기 시작합니다. 이에 불만을 



가진 사람들 중 한 사람이 드러내놓고 왕맹을 욕하자 왕맹은 그 사람에게 



채찍질을 가해서 죽여버립니다.

 

 

 

부견 : “그대의 법이 너무 가혹한 것이 아니오?”

 


왕맹 : “나라의 편안함은 예로 다스리고, 나라의 혼란은 법으로 다스려야 



합니다. 흉악하고 잔악한 자들을 제거하는 데 처음 간신 한명만 죽이면 일



은 저절로 풀리게 됩니다. 신이 포악하고 흉악한 자들을 제거하지 못한다



면 어떻게 국가를 통치 할 수 있겠습니까? 저의 법이 잔혹하다고 말씀하신 


주군의 말씀은 받들지 못하겠습니다.”

 



왕맹의 말이 맘에든 부견은 왕맹을 칭찬하면서 1년에 무려 5번 승진을 시



킵니다. 이때 그의 나이 서른여섯 살이라고 합니다. 왕맹은 이번에는 토착



세력인 저족의 권한을 약화시키려고 합니다. 이에 불만을 품은 개국공신중 


번세가 부견이 보는 앞에서 왕맹과 말다툼을 합니다. 왕맹이 얄밉게 말을 



잘했는지는 몰라도 번세가 칼을 빼들어 왕맹을 죽이려고 하나 궁중에서 칼



을 빼든 것은 역모에 해당하므로 번세는 처형당합니다. 또한 승상을 비롯



하여 관리들이 왕맹을 비방하자 부견은 관리들을 파면시킵니다. 그리고 왕



맹은 부견의 친척이 전횡을 일삼자 그를 목 베어 죽이고 효수(머리를 내다 


걸어 전시)하니 저족과 이민조간의 차별은 물론 국가의 기강이 잡히게 됩



니다.



내치를 닦고 이제는 밖으로 영토를 도모할 때가 왔습니다. 미리 양해의 말



씀을 드립니다. 전진의 영토확장을 엄청나게 대강 쓰겠습니다. 제 능력 밖



이기도 하고 글이 길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부견은 망명하는 자와 투항하는 자, 적이라해도 용서해서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관대함을 보여줍니다. 이런 관대함을 통해서 그는 영토를 확대



해 갈 수 있었지만 마찬가지로 왕맹의 능력은 내치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탁월한 병법가로서 북중국을 통일해 나갑니다. 그즈음 북방에서 가장 강력



한 국가는 전진과 모용씨의 연나라입니다. 마침 연나라는 쇠약해져 있는 



상태로 모용씨의 일족중 모용수가 전진에 귀부합니다. 왕맹은 그런 연나라



를 땅굴과 화공 등으로 각개격파를 하여 연나라를 멸망시키게 되니 북중국



의 패자는 전진으로 남쪽의 동진(東晉)정권과 함께 남북의 형세를 이룹니



다.

 



4. 왕맹



승진을 거듭하여 그는 마침내 승상의 자리에 오르게 됩니다. 연을 멸망시



킨 뒤 내치에 힘을 쏟습니다. 관료들에 있어서는 엄격한 법집행으로 부정



과 비리를 저지를 수 없었고 일정한 기준에 합격하지 못하면 파면이나 좌



천시키는 등 능력 있는 관료를 등용하고자 하였습니다. 경제에 있어서는 



농사와 누에치기를 장려하였고 상공업을 장려하여 경제발전을 이룩하였습



니다. 그리고 빈민구제에 힘써 세금과 부역을 줄였습니다. 교육부문에서도 


유학을 장려하여 학교를 지었는데 성적이 좋으면 관리에 임용되었지만 그



렇지 못한 자는 퇴학시켰다고 합니다.  민족 간의 화합을 꾀해 민족갈등을 


완화시킵니다. 이에 다른 민족이나 국가가 전진에 귀부하는 일이 발생합니



다. 이렇게 왕맹은 올라운드 플레이어로서 전진을 부강하게 만들지만 오히



려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아 날로 쇠약해져만 갑니다.

 

 

 

 

5. 하늘이 나에게 천하를 통일하라고 하면서 어찌 왕맹을 이렇게 빨리 빼



앗아 가는가!

 



왕맹의 병이 위중해지자 부견은 직접 종묘사직에 제사를 지내며 신하들에



게는 각지의 산천에 기도를 하게 합니다. 그러나 왕맹의 병에는 차도가 없



어 부견은 마지막으로 왕맹의 조언을 듣고자 합니다.

 



왕맹 : “신이 죽으면 동진(東晉)을 치려고 하지 마십시오. 동진은 손을 잡



아야 할 대상이지 도모해야 할 대상이 아닙니다.”

 


왕맹은 이 말 뒤에 곧 죽었고 부견은 “하늘이 나에게 천하를 통일하라고 



하면서 어찌 왕맹을 이렇게 빨리 빼앗아 가는가!”라고 말하며 울부짖었다



고 합니다.


왕맹(325 ~ 375)

 


6. 왕맹에 대한 평가



어느 역사학자는 19세기까지의 중국의 위대한 정치가를 관중(관포지교의 



주인공), 공손앙(상앙이란 이름으로 유명합니다.), 제갈량, 왕안석(송나라)



, 장거정(명나라)와 함께 왕맹을 들고 있습니다. 민족 간의 화합을 도모하



고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모든 면에서 발전을 이룩한 그는 오늘날 위정자



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여겨집니다.

 

 



7. 맺음말

 



어쩌다보니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은 왕맹이 되버린듯한 느낌입니다. 언제



나 글을 쓸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제 자신의 글솜씨가 부족한 것을 느낍



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 



편은 중국을 뒤흔들었던 비수대전(중국의 3대 대전 - 관도대전, 적벽대전, 


비수대전)을 쓰겠으나 아마 비수대전을 길게 쓰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역시 


제 자신의 능력부족인 이유입니다. 비수대전의 내용이 짧다고여겨지면 비



수대전에 이어서 다시 눈을 남쪽으로 돌려 동진(東晉)정권에 대해 대략 쓰



겠습니다. 좋은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추가)



혹시 잔인한 내용이 있어서 달갑지 않으신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역사에는 좋은 면만 있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순신장군의 찬란한



승전보가 있다면 그 반면에는 왜군들이 전리품으로 조선인의 코를 자르기



도하였습니다. '코무덤' 이라고 지금도 남아있다고 들은 적이 있습니다. 



역시 중국의 역사에도 특히 5호 16국시대를 비롯한 위진남북조시대에는 



참혹한 시기이기도 하였지만 도연명, 왕희지, 고개지를 비롯한 문화면에서



찬란한 시기였습니다. 특히 남조의 양(梁)나라의 문화는 중국의 문화사에



도 손꼽을만한 것이어서 이는 우리나라, 특히 백제에 영향을 끼치니 우리



나라 무덤양식에서는 볼 수 없는 벽돌양식의 무덤이 만들어집니다. 이것



이 백제 무령왕릉입니다. 또한 양나라의 소명태자가 지은 <문선文選>이



라는 책은 소명태자가 훌륭한 시문들을 엮어 만든 것인데 이에 영향을 받



아 조선의 서거정이 중심이되어 해동의 문선이라고 해서 <동문선東文選>



을 편찬하게 됩니다. 그리고 고사성어 화룡점정(畵龍點睛)의 배경이 되는 



나라이기도 합니다.  북조의 북위(北魏)역시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돈황석



굴, 운강석굴이만들어집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잔인한 내용역시 담고



자 하는 것이며 이 판의 이름이 엽기호러판이기 때문에 그에 부합될 수 있



는 내용을 포함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