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 꿈

핫뇽2013.08.26
조회9,155

안녕하세요, 주말 잘 보내셨나요?

 

휴가는 본격적으로 끝났는지 조금 한산했던 출근길이

다시 북적거리더군요

 

하지만 난 수요일부터 휴가윙크

 

 

출처 : 웃대

 

 

 

 

 

 

 

 

꿈에서 깨어날 수가 없었다.


그 사실을 알아차린 것이 언제였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절망이라는 것은 이런 것일까? 앞이 보이지 않는 미래.

 

희망조차 생각할 수 없는 나락 같은 절망.


꿈속에 계속 있다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기 때문에 즐겁다고 말하는 이가 분명 있을 거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자신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꿈을 말하는 것이다.

 

내 꿈은 조금 다르다.


“쩝쩝…….”



생각하는 것을 잠시 멈추고 옆에 놓여있는 피자를 한 입 베어 물었다.

 

갓 만든 것처럼 모짜렐라 치즈가 길게 늘어졌다.

 

보통 사람이 봤다면 군침을 삼켰겠지만 난 아니다.

 

이 피자만 벌써 수 백판은 먹고 있으니까.


이렇게 무언가를 먹는 행위자체는 나에게 있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 쓸데없는 짓이다.

 

왜냐하면 꿈이라서 먹는다는 개념자체가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허기, 통증 등 사람이 육체적으로 느끼는 모든 고통이 없는 곳이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난 계속해서 무언가를 먹는다.

 

이것이 진짜 꿈이고 빠져나갈 수 없는 곳이라고 인지하는 순간 정말 미쳐버릴 테니까.

 


“맛없다.”

 


먹던 피자를 내려놓고 옆에 놓인 담배로 손을 옮겼다.

 

익숙한 손놀림으로 라이터를 돌려 불을 붙였다.


“후우.”


과거에는 피지 않던 담배를 입에 물고 긴 연기는 뿜어냈다.

 

담배에는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다.

 

몸에 해롭다고 인지해서 그런 걸까? 담배 연기에서 나오는 향과 맛.

 

아무 것도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 오늘도 한 입 물고 아무렇지도 않게 방구석으로 던져버렸다.

 

아직 불이 꺼지지 않는 담배꽁초가 카펫 위에 떨어졌고

 

그 작은 불씨가 점점 커졌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소파에서 일어났다.


“아휴, 밖에 나가야지.”


밖은 오늘도 어김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신발, 진짜 이 미친놈의 비.”



하늘을 원망하듯 노려보며 문 근처에 놓인 우산을 펼쳤다.

 

우산 위로 전을 굽는 소리가 들려왔다.

 

역시 너무 리얼한 꿈이었다.


집에서 100m 정도 멀어졌을 때 뒤를 돌아보니

 

집에서는 검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었다.

 

하지만 난 아무런 미련 없이 다시 앞으로 시선을 돌렸다.


나는 지금 시내 한복판에 서있다.

 

유명한 맛집, 고급 브랜드 마크가 그려진 신발 매장,

 

섹시한 외국 여자 모델이 그려진 속옷 가게. 누가 보더라도 평범한 번화가였다.

 

하지만 이 번화가에는 있어야할 것이 없었다.

 


“오늘도 한산하구만.”

 



그 어떤 곳에도 사람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이 번화가에 있는 거라고는 나라는 존재와 끊임없이 내리고 있는 비 뿐.


“오늘은 스테이크 먹으러 가볼까.”


가만히 번화가에 서있자니 심심해진 나는 곧장 옆에 있는 스테이크하우스로 발걸음을 옮겼다.

 

아무런 저항 없이 문을 열고, 익숙한 손놀림으로 우산 꽂이에 우산을 넣었다.


오늘도 어김없이 맨 구석 창가 자리로 걸어갔다.

 

그곳에는 마치 내가 오는 시간을 딱 맞춰 준비해둔 것 같은

 

스테이크와 디저트들이 차려져있었다.

 

아무런 거리낌 없이 그 자리에 앉아 포크를 들었다.

 

예전 같았으면 나이프로 고기를 잘라먹었겠지만 그것마저 귀찮아진 나는

 

그냥 포크로 큼지막한 고기를 찍어서 들고 뜯어먹었다.


창 밖에서는 끊임없이 비가 내리고 있다.

 

문득 이 꿈에 처음 들어섰을 때가 생각났다.


그 때도 어김없이 비는 내리고 있었다.

 

당시 비를 좋아하던 나는 그 비가 너무 좋아서 맞으면서 싸돌아다녔다.

 

처음 이 꿈이 시작되었을 때에도 딱 꿈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꼬집어도 아프지 않고, 주변에 아무런 사람도 없고……. 바보라도 알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비를 몇 번 맞고 나니 이제는 너무 지겨워졌다.

 

꿈속에서는 단, 하루도 맑은 날이 없었으니까.

 

그렇게 며칠이 더 흐르고 나서야 난 깨달았다.

 

이 꿈은 하루를 무한히 반복하는 것일 뿐이라는 사실을.


“아, 다 먹었네.”


평소라면 디저트로 나온 아이스크림을 먹을 테지만 오늘은 그냥 자리에서 일어났다.


“웨이터, 계산은 사장 이름 앞으로 해두게.”



라고 아무도 듣지 않는 헛소리를 지껄인 뒤에 밖으로 나왔다.


“자, 다음은 어디로 가볼까.”


오늘 저녁에 먹을 과자라도 사는 게 좋을까.

 

아니면 술집에 가서 술이나 한잔할까.


누가 본다면 행복한 고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에게 있어 이러한 고민은 아무런 의미 없는 고민이다.

 

밥을 먹지 않아도 죽지 않고 뭔가 스트레스를 받을 만한 사항도 전혀 없다.

 

그저 먹고 자기만 할 뿐이다.


이런 감각을 느껴본 사람이 없으니 내가 느끼는 이 미칠 것 같은 고민에 대해서 알 리가 없겠지.


“윌 스미스도 이런 기분으로 영화를 찍었던 것일까.”


아무도 없는 넓은 번화가.

 

오직 들려오는 것이라고는 이제는 너무 익숙해진 빗소리.


“귀찮아. 그냥 집에 가서 TV나 봐야지.”


그 때 문득 연기가 모락모락 올라오던 집이 떠올랐다.

 

“아, 맞다.”


별 수 없이 다른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널린 게 집이니 아무 곳에 들어가서 잠을 자면 된다.

 

나에게 있어 마이 홈은 아무런 가치가 없는 곳이었다.


오늘 따라 낯선 집에 들어가고 싶은 모험심이 생긴 나는 평소에 거들떠도 보지 않던

 

원룸촌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요즘 원룸들은 전부 입구에 비밀번호가 걸려있기 때문에 쉽게 열 수 없다.

 

하지만 몇 십 년간 이곳에서 생활한 나는 간단히 그것을 열 수 있었다.

 

지문을 채취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냥 기계를 고장 내고 문을 밀면 된다.


안으로 들어가자 여러 개의 문이 시야에 들어왔다.

 

저 문들의 비밀번호도 열어야 한다는 생각에 조금 짜증이 났지만

 

오랜만에 느껴보는 스트레스에 콧노래가 나올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러한 짜증도 금방 수그러들었다.

 

말했다시피 문을 여는 방법은 거의 통달했기 때문이다.


간단히 비밀번호를 누르고 안으로 들어가자 기분 좋은 향기가 코를 자극했다.

 

여자의 방인 모양이다.


안에 들어가서 여기저기 훑어본 뒤 침대에 누웠다.


책상 위에 컴퓨터가 있기 때문에 게임을 할 수는 있지만

 

자고 일어나면 다시 리셋되는 게임 따위 하고 싶지 않았다.

 

아무리 잘 만든 게임이라도 하루가 지나면 다시 원래대로 돌아가기 때문에

 

하고픈 의욕이 생기지 않았다.


그렇게 누워서 여기저기 둘러보다보니 책상에 있는 액자가 눈에 들어왔다.

 

액자에는 젊은 여자와 젊은 남자가 서로 환하게 웃으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솔로는 서럽구만.”


차라리 사람들이 있는 상태에서 시간이 멈춰버렸다면 좋았을 것을.

 

왜 남자도 여자도 없는 세상에 떨어진 것일까.

 

이 혈기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이 세계에는 야동이라든지 리얼돌 같은 것들도 많기는 했지만 그것도 한두 달이다.

 

계속 보다보면 자연스럽게 진짜 여자를 원하게 된다.

 

더 이상은 그런 희망고문을 받고 싶지 않다.


그렇게 잡생각을 하자 점차 수면이라는 깊은 늪으로 빠져들어 갔다.

 

내일이면 또 다시 그 불타버린 집 소파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생각에 조금 두려웠지만.




*



눈을 떴다.

 

어김없이 소파 위에 앉아있었다.

 

옆에는 고소한 치즈냄새가 가득한 피자가 있었다.

 

한 조각을 먹을까 하다가 관뒀다.


밖으로 나가자 여전히 저주스러운 빗물이 아스팔트 바닥을 두드리고 있었다.

 

멍한 눈으로 그 빗물을 바라보았다.

 

아무런 의욕도 나지 않는다.

 

오늘은 그냥 이대로 시간을 죽이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또 다시 하루가 갔다.


*


오늘은 일어나자말자 상쾌한 아침을 맞이하기로 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지만 옆에 놓인 리모콘으로 TV를 켰다.

 

언제나 같은 방송에 같은 대사. 뉴스앵커의 대본마저 거의 외울 지경이었다.


-오늘은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오늘은 정말 안타까운 소식이 있습니다.”



-일명 늑대라고 불리는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또 다른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일명 늑대라고 불리는 유명한 연쇄살인마가 또 다른 희생자를 낳았습니다.”


계속 따라하려다가 그만두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윌 스미스도 아이와 만나서 TV에 나오는 슈렉 대사를 따라했었다.

 

처음에는 그 정도로 슈렉을 본 거야? 싶었지만 그건 보고 싶어서 외운 것이 아니다.

 

저주스럽게도 계속 봐서 머리에 각인된 것이다.


자리에서 일어나 또 다시 밖으로 나갔다.

 

오늘도 어제와 마찬가지로 밖을 쳐다보며 시간을 죽였다.


*

 


“으아아아아아!!!!!!!!!!!”


일어나자말자 폭발하는 분노를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손에 쥐고 있던 리모콘에서 시작해서 눈앞에서 뉴스를 보여주고 있는 TV까지.

 

있는 대로 부셔버렸다.

 

손에서 피가 흘러나오기는 했지만 전혀 아프지 않았다.

 

아플 리가 없는 곳이니까.


“아파……. 아프다고!!!”


손은 아프지 않지만 다른 곳이 너무 아파 아려올 지경이었다.


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 높은 곳에 뛰어내려 자살을 해본 적이 있었다.

 

하지만 결국 다시 이 소파로 돌아오게 될 뿐이었다.


“크흐흐흑…….”


당연히 메말랐을 거라 생각했던 눈에서 물이 쏟아져 나왔다.

 

계속 리셋 되는 것이기 때문에 메마를 리가 없는 눈이지만.



*

 


오늘은 웬일로 기분이 조금 나았다.

 

비가 내리고 있는 밖으로 그냥 나갔다.

 

우산도 필요 없이 그냥 무턱대로 어디론가 걸어갔다.

 

이렇게 무턱대로 다른 곳으로 간 적이 있었다.

 

하지만 그 지역에 도착해서 잠이 드는 순간 다시 원점이었다.

 

간단히 말해 난 멀리가 봤자 다시 돌아오게 된…….

 

이 저주받은 땅에서 벗어날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하~ 정말 지겹구나.”


그렇게 아무 생각 없이 비를 맞으며 걷고 있을 때 낯선 소리가 고막에 닿았다.

 

아무런 희망 없이 그쪽으로 슬그머니 고개를 돌렸다.


순간 내 눈을 의심했다.


그 곳에는 사람 크기 정도의 토끼가 있었다.


첫 경험을 했을 때보다 더욱 거칠게 심장이 요동쳤다.

 

지금껏 잊고 지냈던 흥분과 긴장이 온 몸을 지배했다.

 

호흡을 하는 것조차 잊어버릴 정도였다.

 

당장이라도 쫓아가고 싶은 마음을 억누르며 빠르지도 느리지도 않게 그 토끼의 뒤를 쫓았다.

 (만약 토끼가 놀라서 멀리 도망가 버리면 안 되니까.)


비가 내리고 있던 탓에 추적에 재능이 없는 나라도

 

쉽게 발소리를 없애며 토끼를 쫓을 수 있었다.


“으아! 늦었잖아! 큰일이다!”


순간 헛웃음이 흘러나왔다.

 

다행히 빗소리 묻혔다.
녀석은 말을 했다. 토끼 주제에.

 

그리고 보니 옷도 입고 있었다.

 

아래에는 큰 엉덩이와 큼지막한 허벅지 때문인지 펑퍼짐한 바지를 입고 있었고,

 

상의는 마치 서커스 단장이 입을 법한 조끼를 입고 있었다.


순간 외국 동화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가 떠올랐다.


‘토끼를 쫓아가면 여기서 나갈 수 있을 지도 몰라!’

 


탈출!

 

몇 십 년 동안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말이란 말인가!!

 

왜 이제야 나타났는지 알 수 없었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지금은 그저 나갈 수 있는 가능성에 잃었던 희망을 걸어보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다시 돌아오지 않을 지도 모르는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다.

 

흥분 때문에 미칠 지경이었지만 최대한 냉정하게 머리를 다스렸다.


그렇게 계속 토끼를 쫓아가자 녀석은 생전 처음 보는 동굴로 뛰어 들어갔다.


‘이런 곳이 있었나? 왜 이제까지 몰랐지?’


주변을 훑어본 뒤 녀석의 뒤를 따라 들어가려는 순간 알 수 없는 불쾌감이 피부를 자극했다.

 

지금까지 느껴본 적 없는 감각이었기 때문에 순간 두려워졌다.


‘지금 여기서 포기하겠다는 거야? 고작 이상한 느낌 때문에?’


만약 죽는다고 하더라도 다시 그 소파로 돌아갈 뿐이기 때문에

 

이를 악물고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어두컴컴한 동굴 안으로 들어간 지 1분 정도가 지났을까.

 

난 깜짝 놀라고 말았다. 그곳에는 사람들이 있었다.

 

아주 많은 사람들이.

 


“사, 사람?!”

 


나도 모르게 큰소리로 소리를 냈고, 자연스럽게 사람들의 시선이 나에게로 몰렸다.

 

순간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뒤통수를 자극했지만

 

그러한 감각이 무색하게도 사람들은 웃으며 말했다.

 

 



“자네 거기서 뭐하는 건가? 얼른 와서 술이나 한잔하게.”


“어머! 잘 생긴 오빠~ 나랑 한잔 안 할래?”

 


지금까지 있었던 나날들이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그렇게 울고 있음에도 그들은 나를 전혀 나무라지 않았다.

 

오히려 같이 놀자면서 그런 나를 위로해주었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지옥에서 벗어나는 건가?

 

이곳이 이상하기는 했지만 지금 상황에 냉정한 판단을 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렇게 그들과 몇 시간을 웃고 떠들고 있자니 잊었던 토끼가 떠올랐다.

 

나를 여기까지 데려와준 토끼가 고마워서 인사나 할까했다.

 

그래서 주변 사람들에게 토끼를 못 봤냐고 하자 그들의 웃던 얼굴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마치 동전 앞뒷면이 바뀌는 것처럼.

 


“왜 그를 찾지?”


“당신 뭐야?”

 


갑작스럽게 바뀐 그들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뒤로 주춤하고 말았다.

 

설마 토끼는 그들에게 있어 안 좋은 존재인가?

 

내가 말실수라도 한 건가?

 

몇 십 년 만에 만난 사람들을 이런 식으로 잃고 싶지 않았다.

 


"아, 아니! 토끼가 아니라 도끼~ 여기 혹시 도끼 없으려나? 하하하핫!“

 


농담으로 무마하려고 했지만 그들의 눈빛은 이미 바뀐 뒤였다.

 


“서, 설마 사람인가요?”

 


그 때 불현 듯이 토끼가 그들 사이에서 걸어 나왔다.

 

녀석은 상당히 흥분한 듯 말을 마구 더듬었다.

 


“어, 어?”


“저 정말 살아있는 사람이에요?!”

 



토끼는 그 털이 가득한 양손으로 나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러더니 그 큰 눈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고, 난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였다.

 


“드, 드디어 사람을 만나다니……. 크흐흑!”

 


느닷없이 울음을 터트리는 녀석 때문에 너무 혼란스러웠다.

 

그렇게 몇 분이나 지나고 나서야 진정이 된 녀석은 그제야 자신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저도 당신처럼 이 하루를 벗어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마치 자신도 사람인 마냥 자연스럽게 말을 시작했다.

 

나와 같은 입장의 사람(?)을 만난 것은 다행이었지만

 

 너무 얼떨떨해서 기쁨을 표현할 방법이 없었다.

 


“토끼인데…….”


“겉모습이 이렇지만 말이죠. 꿈을 꾸기 시작한 처음 모습이 이거더라고요.”

 


그는 씁쓸한 웃음을 보였다.

 


“그래도 처음으로 제대로 된 사람을 만나니 정말 너무 반갑네요.”


“여기에 다 사람이잖아요?”


“아뇨, 그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그의 말에 문득 주위를 둘러보았다.

 

가면을 쓰고 있는 자들은 아무리 봐도 사람이었다.

 

가면을 쓰고 웃고 떠들고 숨을 쉬는 사람.

 


“굳이 말하자면 유령?”


“유, 유령이요?”

“네,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은 우리처럼 인격을 지닌 존재가 아닙니다.

꿈속에서 나오는 허상일 뿐이에요.

언제나 대화 패턴도 같고 행동도 같은……. 게임에서 흔히 나오는 npc 같은 존재입니다.”

 


방금 전까지 같이 웃고 떠들던 사람들이…….

 

허상이라고? 놀랍지만 그의 진지한 말투 때문에 믿을 수 밖에 없었다.

 


“여기까지 온 걸 보니 꿈에서 탈출할 생각인 모양이네요.”

 



방금 전까지 생각하던 잡념들이 순식간에 날아갈 만큼 강력한 한마디였다.

 



“꾸, 꿈에서 나갈 수 있는 겁니까?”


“저도 며칠 전에 받은 편지 때문에 알았어요.

이들이 허상이라는 것도 편지에 적혀있어서 알고 있었고요.

어, 그쪽은 편지 안 받았나 봐요?”


문득 집 안에 꽂혀있던 편지를 한 번도 읽어보지 않았던 자신이 떠올랐다.

 

매번 같은 편지이기 때문에 언제부턴가 읽지 않았었는데…….

 


“시간에 맞춰 이곳에 오게 되면 출구가 나타난다고 하던데…….”

 


그는 그렇게 말하져 여기저기 시선을 굴렸다.

 

나도 그의 눈을 따라 주변을 둘러보자 방금 전까지 있던 사람들이 전부 사라지고 없었다.

 

마치 원래부터 없었던 마냥. 그 직후 큰 진동이 일어났다.

 


“어어어??!”

 


그 진동은 점차 강해지더니 결국 엉덩방아를 찍고 말았다.

 

그렇게 앉아서 그 진동의 근원을 찾기 위해 고개를 이리저리 돌렸다.

 

죽음의 두려움이 없다고 하더라도 새로운 상황에서 느껴지는 공포는 어찌할 수 없었다.


그 진동은 무도회장 바닥 가운데에 그려져 있는 큰 원에서 나는 소리였다.

 

그 큰 원 크기에 맞춰 원통형 모양으로 무언가가 올라오고 있었다.

 

이내 진동이 잦아들었을 때에는 어안이 벙벙해졌다.

 


“허, 허허……. 정말 출구다.”

 


헛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 원통형 옆구리에 뻥 뚫어져있는 작은 문 때문에.

 


“자, 빨리 나가죠.”

 


녀석은 나에게 손을 내밀었고, 난 그 털북숭이 손을 잡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런데 조금 무섭네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녀석은 조금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

 

나도 무섭기는 마찬가지다.

 

저 문을 연다고 해서 무조건 밖으로 나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 편지가 거짓일 수도 있고, 혹은 이 꿈에 내가 모르는 위험이 도사리고 있을 지도 모르니까.


하지만 그러한 걱정에도 불구하고 나의 몸은 그 문을 향해 다가갔다.

 

문은 평범했다. 흔히 가정집에서 볼 수 있는 나무문이었다.

 



“자, 열어볼게요.”

 


녀석에게 동의를 구한 뒤 문고리를 잡았다.

 

하지만 막상 열려고 하니 알 수 없는 공포감이 나를 사로잡았다.

 

말도 안 되는 부정적인 상상들이 머리를 마구 헤집었고,

 

그로인해 점점 문을 열고자 하는 마음이 사리지고 있었다.

 


“안 열고 뭐하세요?”

 


그렇게 말하면서 어느 새 다가온 녀석이 멋대로 문고리를 돌렸다.

 

“앗!” 하는 순간 문은 열리고 말았다.

 

나도 모르게 두 눈을 질끈 감고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다.


하지만 내가 걱정하던 일들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고, 무안하게 들어 올린 손을 천천히 내렸다.

 


“하하, 보기보다 겁이 많으시네요.”


“초식동물한테 그런 소리 듣긴 싫군요.”


“하하…….”

 



녀석은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살짝 열린 문을 더욱 활짝 열었다.

 

겁 많은 나에게 작은 불만을 표출하는 것이리라.

 


“와.”
“오.”

 


우리 둘의 입에서는 감탄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꿈이라지만 이렇게 화려하고 아름다운 풍경은 처음 보았다.

 


“꿈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네요.”


“그러게요.”

 



말로 설명하기 힘들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이었다.

 

하늘은 영농한 분홍빛으로 빛나고 있고, 잔디는 마치 에메랄드를 갈아서 만든 듯 했다.

 

눈앞의 흐르는 큰 강은 성수를 모아서 만든 것처럼 성스러워보였다.

 

 표현력이 부족해서 더 설명하기는 힘들었지만 아무튼 CG를 사용한 것보다 엄청났다.


토끼는 천천히 앞으로 나아갔고, 나도 그의 뒤를 따랐다.

 

주변 풍경에 눈 굴리기에 여념이 없던 우리 둘은 갑자기 들려온 목소리에 화들짝 놀랐다.

 

 

 

 



“안녕하세요? 여길 나가려는 분들인가 보네요?”

 

 

 

 



놀란 시선이 머문 곳에는 살벌하게 큰 턱과 이빨을 가진 늑대가 서있었다.

 

그를 덮고 있는 털은 누가 보더라도 인조 모피 따위가 아니었다.

 


“느, 늑대?”

 



놀라서 외친 목소리에 그는 어색한 웃음을 띠었다.

 


“하하하, 그래도 인간이랍니다. 그렇게 무서워하실 것 없어요.”

 


그 큰 턱으로 짓는 미소는 참으로 괴이했다.

 


“혹시 다른 사람도 더 있나요?”


“아, 저쪽에 풀 씨도 있어요.”


“풀?”

 


녀석은 굵직한 손톱이 있는 엄지로 자신의 어깨너머를 가리켰다.

 

고개를 쑥 빼고 녀석의 등 뒤를 바라보았다.

 

풀은 사람 이름일까라고 생각하고 쳐다본 나로서는 또 다시 놀라고 말았다.


말 그대로 ‘식물’이었던 것이다.

 


“아, 안녕하세요?”

 


설마 식물로 이뤄진 인간도 있을 줄은…….

 

내 표정을 읽은 것인지 녀석도 늑대처럼 어색한 웃음을 띠었다.

 

풀에 달린 눈썹과 표정은 내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괴이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두렵거나 공포스럽지는 않았다.

 

속은 인간이라서 그런 것일까.

 


“여기에서 사람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는 분은 그쪽뿐이네요. 하하하…….”

 



그리고 보니 정말 그랬다.

 

나 혼자만이 유일하게 사람의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거기에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 생각하려는데 또 다른 음성이 들려왔다.

 



- 이 끝없는 꿈에서 나가고자 하시는 분들은 모두 강 쪽으로 모여주시기 바랍니다. -

 



귀로 들려오는 소리가 아닌 머릿속에서 들려오는 듯한 소리였다.

 


“바, 방금 들었어요?”


“네, 네……. 늑대 씨랑 풀 씨도 들으셨나요?”

 



둘은 동의의 표시로 고개를 끄덕였다.

 


“드, 드디어 나갈 수 있는 건가요? 편지를 받았을 때에는 장난인가 했는데…….”

 



토끼가 그리 말하자 다른 이들도 기쁜 모양인지 입가가 쭉 벌어졌다.

 

그 와중에 늑대의 웃는 모습에 섬뜩함이 느껴졌다.

 

역시 늑대 자체는 육식동물인가보다.

 

 



“드디어 이 지긋지긋한 곳에서!!”

 

“빨리 부모님을 보고 싶어요. 아마 꿈에서 깨어나면 전 제 방에서 자고 있겠죠?”

 


다들 탈출할 생각에 많이 기쁜 모양이었다.

 

나 역시 이들처럼 그 누구보다도 밖으로 나가길 갈망하는 사람이었다.

 



“일단 강으로 가보죠.”

 


더 이상 기다릴 수 없었던 늑대가 먼저 가자는 말을 꺼냈다.

 

우리들은 늑대의 뒤를 따라 강변 쪽으로 향했다.


물살은 그리 강하지는 않았지만 상당히 깊은 모양인지 바닥이 전혀 비치지 않았다.

 

조금 심해공포증이 있는 나로서는 살이 떨릴 정도로 두려운 광경이었다.

 

하지만 다른 이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방금 들렸던 음성을 기다리고 있었다.

 


- 이 꿈에서 나갈 수 있는 자는 단 한 사람뿐입니다. -

 


그 말에 우리들은 갑자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뭐, 뭐라고!?”


“그걸 말이라고 하는 거야!?”


“다들 얼마나 기다렸는데!!”

 



탈출할 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는 자에게 욕을 할 수도 없는 노릇.

 

우리들은 우리 선에서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분노를 표출했다.

 

하지만 그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계속 자신이 할 말만 하기 시작했다.

 



- 하지만 모두가 협력해서 이 강을 건넌다면 모두 이 꿈에서 나갈 수 있습니다. -

 


그의 뒷말에 우리는 모두 안도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협력해서’ 라는 말이 걸렸다.

 

 



- 앞에 배가 보입니까? -

 


방금 전까지 아무것도 없던 강에 나룻배가 나타났다.

 

사람 두 사람 겨우 태울 수 있을 정도로 작은 나룻배였다.

 



- 저 나룻배는 2명을 태울 수 있습니다. -

 



보기에도 2명 이상 태우면 가라앉게 생긴 배다.

 



- 하지만 이 배에 탈 수 있는 규칙이 있습니다. -

 


우리들은 숨을 죽이며 그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 사람이 없으면 늑대는 토끼를 먹게 됩니다.

사람이 있으면 마음이 놓친 토끼는 풀을 먹게 됩니다.

이 규칙을 이용해 강을 건너 주십시오. -

 


아주 짧고 간결한 문제였다.

 

이 문제는 아주 옛날부터 내려오던 문제였다.

 

 



“뭐야? 간단하잖아?”

 


가장 먼저 입을 연 것은 풀이었다.

 

우리들의 시선은 전부 그에게 향했다.

 



“너무 간단한 문제애요.

먼저 늑대와 사람이 배를 건너고 사람이 다시 배를 타고 돌아옵니다.

그리고 이번엔 저를 태우는 거죠.

늑대는 풀을 먹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저와 늑대가 건너편에 있으면 다시 사람이 돌아와서 토끼를 태우러 오면 되죠.

그리고 태우고 가면 끝이 나는 거죠.”

 


“오오.”


“그렇군요. 보기보다 간단한 문제로군요?”

 



정말 다행이었다.

 

문제가 생각보다 상당히 쉬웠던 것이다.


문제의 답을 순식간에 해결한 우리들은 곧장 그 답을 행하기로 했다.

 

일분일초라도 빨리 나가고 싶었던 우리들로서는 자연스러운 행동이었다.


노를 젓는 것은 아무래도 양손이 멀쩡한 내가 좋다는 결론이 났다.

 



“그럼 금방 다녀올게요.”

 


그렇게 말하며 노를 이용해 육지에서 배를 떨어뜨려 놨다.

 

점점 멀어져가는 풀과 토끼를 보며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드디어……. 이 꿈에서 빠져나갈 수 있다니…….’

 


황홀한 기분을 만끽하며 천천히 배를 몰았다.

 

너무 급히 몰았다가 배라도 뒤집혔다가는 큰일이니까 말이다.


배를 몰며 물끄러미 늑대에게로 시선을 내렸다.

 

다시 봐도 그는 정말 늑대였다.

 

만약 늑대인간이 있다면 이런 모습일까?

 

작은 호기심이 생겨 그의 모습을 이리저리 살폈다.


아무리 봐도 저 날카로운 이빨과 손톱은

 

누군가를 해치기 위한 용도로 밖에는 보이지 않았다.

 

거기다가 저 본능에 충실할 것 같은 눈동자를 봐라.

 

만약 이 규칙만 아니었다면 진작 잡아먹혔을 지도 모르겠다.

 

늑대는 인간도 덮칠 수 있으니까.

 

 


‘어?’

 

 


그 때 갑자기 오싹한 감각이 등골을 타고 흘렀다.

‘규칙이 과연 날 지켜줄 수 있을까? 만약 저 늑대가 나쁜 마음을 먹고 나를 덮치면 어쩌지?’

한 번 시작된 부정적인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다.

‘설마…….’

이것은 단순한 강 건너기 게임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우리들의 믿음과 본능을 확인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믿음과 본능 중에 강한 것은……. 당연히 본능이다.


늑대가 마음만 먹는다면 나를 죽이고 배를 몰 수 있을 거다.

 

거기다가 게임 진행자가 처음에 말하지 않았나.

‘이 게임에서는 단 한 사람만이 탈출할 수 있다……고’

 


이걸 바꿔 말하자면 처음 늑대와 사람이 강을 건널 때

 

늑대가 사람을 배신할 가능성을 넣었다는 결론이 난다.

 

그러니까 진행자는 애당초 늑대가 사람을 덮칠 수밖에 없는 배경을 깔아준 것이다.

 

늑대가 본능에 따라 사람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그는 이 꿈에서 빠져나갈 수 있으니까.

 

즉, 이 게임은 늑대의 선택에 맡겨진 것이다.

 


‘그걸 이제야 알다니!! 이런 병신 새끼!!’

 


노를 젓고 있던 손에 어느 새 땀이 범벅이가 되었다.

 

이상하리만큼 식은땀이 이마를 타고 흘렀고,

 

이 미칠 듯한 긴장감 속에 호흡마저 거칠어졌다.

 


“노 젓는 거 많이 힘든 건가 봐요? 땀을 뻘뻘 흘리시네.”


“아, 아!! 아니요!! 괜찮아요!”

 



늑대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던 터라 그의 말 한마디에 하마터면 심장이 멎을 뻔 했다.


허둥대며 멍청한 태도를 취한 자신에게 화가 났다.

 

바보가 아니라면 내 태도에 이상함을 알아 차렸을 텐데!

 

만약 그가 나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면?

 

더 이상 시간을 끌 수 없다.

 

늑대가 나를 덮치기 전에 그를 없애버려야 한다.

 


‘꿀꺽.’

 


마른침이 목구멍을 타고 흐르는데 마치 당구공이 목으로 넘어가는 기분이었다.

 

식도에 느껴지는 따끔함에 눈살이 찌푸려졌다.


문득 우리가 건너고 있는 강이 엄청 깊다는 사실을 떠올랐다.

 

거기다가 노를 저은 지도 한참이 지났는데도 아직 육지가 보이지 않는 걸로 봐서

 

강 역시 엄청 클 것이다.

 

늑대가 헤엄을 잘 친다고 하더라도 이 먼 거리를 주파할 수 있을까?

 

절대 무리다.

 

 



‘할 수 있다.’

 

 


젓고 있던 노를 천천히 멈추고 슬그머니 들어 올려 등을 보이고 있는 그를 후려칠 준비를 했다.

천만다행이었다.

 

만약 내가 노를 젓는 것이 아니라 늑대가 노를 저었다면 분명 내가 늑대에게 당했으리라.


그 때였다.

 

갑자기 이마에 맺힌 땀이 내 왼쪽 눈에 떨어졌고, 아주 짧은 순간 시야가 차단되었다.

 

하지만 눈을 감기 바로 0.03초 정도의 찰나의 순간.

 

늑대가 나에게로 달려들었다.

 


“크헝!!”


“우아아악!!”

 



깜짝 놀란 나는 그대로 들고 있던 노를 늑대에게 휘둘렀고,

 

나에게 달려들던 늑대는 갑작스럽게 휘둘러진 노를 맞았다.

 

달려들던 상대에게 공격을 한 덕분에 얼떨결에 카운터를 성공시켰다.

 

늑대는 카운터의 데미지로 인해 주춤거렸고, 난 그 틈을 놓치지 않았다.

 

만약 제대로 싸운다면 인간이 늑대를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으니까.

 


"아, 안돼……."

 



늑대는 그 정신없는 상태에서 안타까운 신음을 흘렸지만 가볍게 무시했다.

 


“으아아아!!”

 


다시 한 번 있는 힘껏 늑대의 머리통을 향해 노를 휘둘렀고,

 

묵직한 노는 정확히 늑대의 관자놀이를 향해 날아갔다.

 

늑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나룻배에서 떨어졌다.

 

큰 덩어리가 강에 떨어지자 엄청난 파동으로 나룻배가 뒤집힐 뻔 했다.


머리통을 제대로 맞은 탓에 늑대는 다시 떠오르기는 했지만 아무런 미동조차 하지 않았다.

 

아마 즉사했으리라.

 


“서, 성공이다!!”

 


짧은 쾌재를 부르며 재빨리 멈춰져있던 나룻배를 움직였다.

 

늑대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헤엄을 칠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에

 

배가 뒤집힐 정도로 노를 마구 저어댔다.

 

다행히 건너편에 도달할 때까지 배가 뒤집히지도 늑대가 쫓아오지도 않았다.

 



“하악! 하악! 히익! 하억!”

 


거친 숨을 몰아쉬며 육지에 대자로 누웠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 듯 그 음성이 들려왔다.

 

 


- 늑대가 사망했으므로 건너편에 있는 사람 혼자 탈출할 수 있는 권한을 얻었습니다.

다음 게임은 87600시간 후에 있을 예정이오니 이 점 유의해주시기 바랍니다. -

 



아직 뒤에 남겨진 토끼와 풀이 있기는 했지만 솔직히 아무렇지도 않았다.

 

생전 처음 보는 자들인데 굳이 내가 그들에게 선의를 베풀 필요가 있을까?

 

누군가에게 선의를 베푸는 것은 어디까지나 선택이지 의무가 아니다.

 



- 지금 탈출하겠습니까? -

 



방금 전까지 머리에 울리던 음성이 이번에는 귀에 들려왔다.

 

아마 나에게만 들리는 음성이리라.

 


“네.”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외쳤다.

 

그 직후 기절을 한 것처럼 의식이 끊어졌다.








*

 

 



“여, 여보!!!!”

 


비명에 가까운 소리와 함께 의식이 깨어났다.

 

천근같은 눈꺼풀을 천천히 들어 올리자

 

가장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순백에 가까운 색이었다.

 

그 색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몇 분이 지나서야 겨우 알 수 있었다.

 

숨쉬기 껄끄럽게 만드는 도구와 링겔.

 

그리고 울먹이는 얼굴로 날 보고 있는 어머니.


그제야 안도할 수 있었다.

 


‘돌아왔구나.’

 


*

 


난 식물인간이었다.

 

어떻게 식물인간이 되었냐고 물었더니 처음에는 아무 말씀 없으시더니

 

몇 달이 지나고서야 겨우 말씀해주셨다. (참고로 난 꿈으로 가기 전을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우리 집안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매일 술을 마시며 나를 때렸고,

 

그것이 학교까지 소문이 퍼져 나는 왕따를 당했다.

 

그리고 그 괴롭힘이 점점 심해지고 집이란 곳도 안식처가 되지 못한 나는

 

어린 나이에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고 말았다.


나의 자살 소식을 들은 아버지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온 모든 만행을 깨닫고

 

정신을 차리셨다고 한다.

 

다시 일어선 아버지는 과거에 사업을 하면서 생긴 노하우와 경험으로 금방 다시 일어나셨고,

 

전에 있던 모든 빚도 갚았다고 한다.

 

지금은 그 때 있었던 일들을 술안주가 될 만큼 가슴의 상처도 아물었다.


꿈에서 빠져나온 나에게 찾아온 것은 행복이었다.

 

너무나도 과분할 정도로 넘치는 행복.


그렇게 몇 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는 30살이 되었다.


아버지의 일을 도우면서 얻은 노하우와 사업 경험을 바탕으로 나는

 

금방 엄청난 수입률을 자랑하는 기업을 만들었고,

 

그 기업이 대기업으로 변한 것은 번갯불에 콩 볶듯 순식간이었다.

 



*

 


“아하하, 그럼 사장님을 여기까지 올려주신 것이 아버지 덕분이라 이 말씀이시죠?”


“네, 아버지가 없었다면 지금 저는 여기에 없었겠지요.

아마 군밤이나 팔고 있었을 지도 모르죠. 하하핫”


인터뷰를 하고 있는 그에게 그렇게 말하자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맞장구를 쳤다.

 


“그리고 보니 사장님께서는 과거 식물인간이었던 불행한 과거가 있었는데요.”


“아, 그거 말이군요.”


“대부분 그렇게 깨어나고 나면 삶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는데 사장님께서는 어떠셨는지요?”


“저도 당연히 무서웠습니다.

하지만 아버지와 어머니의 정성 어린 보살핌 덕분에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습니다.”


“아~ 정말 대단한 아버지셨군요.”


“네, 저에게 있어 아버지는 아주 훌륭한 분이셨죠.”


“그거 말고 또 다른 도움이 된 사람이 있다면 누가 있을까요?”


“글쎄요……. 늑대라고나 할까요.”


“네? 늑대요?”


“아, 아무 것도 아닙니다. 하하핫. 말이 헛 나왔네요. 편집 좀 해주세요.”



*

 

 


그렇게 하루하루 분에 겨운 행복을 얻으며 살아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아름다운 여자와 결혼을 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자식도 낳았다.


나는 너무나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하지만……. 누가 그랬던가.

 

행복한 만큼 불행이 다시 찾아올 거라고.

 

나에게 있어 그 불행은 지금까지 얻은 행복과 맞바꿀 만큼 거대한 것이었다.


이제 갓 중학교를 올라간 딸아이가 어느 날 밤늦게 집에 들어왔다.

 

야단이라도 쳐야겠다는 마음에 대뜸 소리를 질렀다.

 


“너!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이제 들어오는 거야!?”

 


이러면 평소의 활기찬 딸아이라면 미안하다면서 애교를 부려야한다.

 

하지만 그날따라 아이의 반응이 이상했다.

 


“아, 아아아아……. 아빠.”

 


둥지에서 떨어진 새끼 새처럼 떨고 있는 아이를 보는 순간

 

심장을 파고드는 끔찍한 통증을 느꼈다. 그제야 알 수 있었다.

 

딸아이가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그 충격으로 난 회사 일을 할 수 없게 되었다.

 

어떻게든 딸아이의 충격을 완화시켜주고 싶어 회사도 다른 사람에게 넘겨버리고

 

딸아이에게만 정성을 쏟았다.

 

아내와 나는 그렇게 딸을 지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했다.


하지만 나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그 날은……. 조금씩 쌓이던 스트레스가 결국 폭발해서 혼자 술을 엄청 마시고 집에 들어왔다.

 

스트레스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이렇게 노력함에도 불구하고 딸아이는 원래대로 돌아올 기색조차 없었으니까.


하늘이 아래에 있고 땅이 위에 있는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남자가 술을 마시면 성욕이 끌어 오른다는 말이 있는데…….

 

나 역시 그런 본능에서 벗어날 수 없었고,

 

방에 자고 있던 아내의 이불 속에 몰래 들어가 뜨거운 밤을 보냈다.

 



이것이……. 내가 또 다시 자살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으으, 머리 아파라.”

 


정신을 차리고 눈을 떴을 때 머리가 아파서 죽을 것만 같았다.

 

난 평소처럼 아내를 불렀다.


“여보, 나 해장국 좀 끓여줘. 토할 것 같아.”


하지만 이상하리만큼 집안에 적막이 맴돌았다.

 

아내는 일을 안 하고 딸아이 때문에 밖의 외출도 잘 하지 않는다.

 

그런 그녀가 집 안에 없다니. 있을 수가 없다.

 

깨질 듯한 머리를 부여잡으며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 때 비릿한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고,

 

조금 철분냄새 같기도 한 것이 뭐지 싶은 마음에 고개를 돌려보자...............................



거기에는......................



딸아이가 알몸이 된 채로 쓰러져있었다.................................

 


그 순간 어제의 기억이 구식 비디오처럼 되살아났다.

 


“으어어!! 아, 아빠!! 그, 그만해!! 끼야아악!!”


“신발, 나도 스트레스 좀 풀어야지!!?”

 



순간 구역질이 올라와서 참았던 위액을 쏟아내고 말았다.

 

순식간에 집안에는 진득한 악취가 풍겼다.

 

겨우 속을 진정시키고 딸아이에게 다가갔다.

 

미친 듯이 떨리는 손으로 엎드려있는 딸아이의 몸을 뒤집어보았다.


딸아이는 생전 처음 보는 절망과 두려움에 찌든 얼굴로 죽어있었다.

 

입가에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내 사랑스러운 딸은……. 나 때문에……. 혀를 깨물고 죽었다.


마치 힘줄을 모두 끊어버린 것처럼 침대 앉아서 그 처참한 광경을 멍하니 볼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멍하니 몇 분 정도 흐르자 아내가 떠올랐다.

 


“여, 여보……. 어디 있어……. 어디 있어?”

 



아내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았다.

 

어디 있을까 계속 집 안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끝끝내 보이지 않았고,

 

망연자실한 상태로 거실에 주저앉아있는데 문득 활짝 열려있는 베란다가 눈에 들어왔다.

그 순간 또 다시 몸이 사시나무처럼 미친 듯이 떨려왔다.

 

호흡이 거칠어지면서 속이 울렁거렸다.

 

겨우 속을 다스리며 베란다에 도착했을 때에는 그녀가 자주 신던 실내화가 보였다.

 

나는 그 실내화의 존재를 최대한 무시하며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아래로 떨궜다.


거기에는…….


아내의 옷을 입은 고깃덩어리가 붉은 웅덩이 위에 놓여있었다.

 


“우웩!!”

 



더 이상 나오지 않을 것 같던 위액이 베란다 바닥을 흥건히 적셨고,

 

한 번 시작된 위액은 끊임없이 입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겨우 그것이 잦아들었을 때에는 식도가 타는 것처럼 따가웠다.

 

하지만 그런 통증은 지금 나에게 아무런 의미가 되지 못했다.

 


“하, 하하하하하핫!!”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이상하게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이 모든 것이 내가 저지른 일이니까.

 

내가 눈물을 흘릴 자격이 있을까? 그리고 내가 더 이상 살 가치가 있을까?

 

이런 쓰레기인간이?


그 직후 나는 아내의 옆으로 몸을 눕혔다.

 




*

 

 

 

 


익숙한 느낌에 눈을 뜨니 난 소파에 앉아있었다.

 

손에는 리모콘이 있었고,

 

옆에는 고소한 향기가 나는 피자가 놓여있었다.

 


‘여기는…….’

 


무심결에 손을 쳐다보았다.

 

그런데 손 전체가 마치 장갑이라도 낀 것처럼 털북숭이였다.

 

뭐지 싶은 마음에 거울 앞으로 다가갔다.

 

거기에는 날카로운 이빨과 툭 튀어나온 턱을 가진 늑대가 있었다.

 


‘이번에는 늑대인가.’

 


그 꿈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번에는 늑대로 이 생활을 시작하게 된 모양이다.


뭔가 허망했다. 죽음으로 그녀들에게 보답하고 싶었는데.


그렇게 나는 이곳의 생활을 하기 시작했다.

 

어차피 이곳에서는 죽을 수도 없으니 말이다.

 

사는 것이 사는 것이 아니었던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렇게라도 살면서 그녀들에게 사죄하고 싶었다.

 

 


*

 

 


그렇게 몇 십 년이 흘렀을까.

 

어느 날 편지 봉투 사이에 한 번도 본 적 없는 봉투가 눈에 들어왔다.

 

그것이 과거 토끼에게 들었던 초대권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 편지에 적힌 내용은 과거 토끼가 나에게 말해준 것과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

 

 


[ 당신은 과거 꿈에서 나간 적이 있는 사람입니다.

하지만 또 다시 이곳으로 오게 되었죠.

아마도 지금 당신이라면 밖으로 나가봐야 당신은 또 다시 죽음을 택하겠지요.

그렇기 때문에 당신에게만 더 큰 보상을 드리겠습니다.

꿈에서 깨어나게 된다면 당신이 원하는 곳에서 깨어날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원하신다면 그 때 그 강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

 

 


눈알이 튀어나오는 줄 알았다.

 

눈을 몇 번이나 비비며 수십 번이나 그 편지를 되읽었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


몇 년간 참아왔던 눈물과 오열이 부서진 댐처럼 터져 나왔다.

 

딸아이와 아내를 볼 수 있다. 또 다시 시작할 수 있다.

 

과거로 돌아가서 딸아이를 지킬 수 있다.

 

다시............... 그들과 행복해질 수 있다.


난 곧장 그곳으로 향했다.

 

 



*

 

 


“안녕하세요?”


비 사이를 뚫고 도착한 그곳에는 온 몸이 식물로 되어있는 풀이 먼저 와있었다.

 

아마 이곳에서 탈출하게 될 멤버는 그대로인 모양이다.

 

그렇게 된다면 탈출하는 법도 전과 동일하겠지?


이번에도 나는 나 혼자만의 탈출을 원했다.

 

불확실한 성공에는 가능성을 걸지 않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에는 아내와 딸의 운명이 걸린 것이니까!

 

저번처럼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놈이 반드시 있을 테니까.


시간이 지나자 사람과 토끼 모습을 한 녀석이 나타났다.

 

나는 자연스럽게 적대심을 없애기 위해 그들을 향해 먼저 말을 걸었다.


 

 

 

 

 



“안녕하세요? 여길 나가려는 분들인가 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