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울컥해 진 날

제제로이2013.08.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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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일요일 오랜만에 와이프랑 요즘 천만관객을 돌파할 거라는 “설국열차” 영화를 보러 같다. 신혼 초 에는 둘이 다 영화를 좋아해서 거의 매일 영화관엘 가거나 비디오를 빌려서 보던지 하면서 하루도 빠짐없이 영화를 보곤 했는데,, 사는 거에 치여 살다 보니 함께 영화를 보러 가는 게 몇 년 만에 어쩌다 한번 갖게 되는 특별한 행사가 된지 오래이다.

 

일요일 오후 방송도 많이 타고 세간에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이니 사람이 붐빌 거라 예상을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4시에 도착해서 표를 알아보니 여섯 시 상영 분 그것도 맨 앞자리 몇 개가 겨우 남아 있다. 

남들은 예매도 하고 할인카드나 쿠폰을 이용해서 싸게 영화를 본 다는데,,  이건 한 장에 거금 만원이나 되는 표를 이 만원 씩이나 제돈 다 주고 두 시간씩이나 기다려서 봐야 하니,,,,

시간이 없어서라는 스스로의 변명을 하면서도 점점 시대에 뒤쳐 저 사는 나이가 된 건지 하는 생각에다가, 점심도 먹은 상태라 정작 와이프랑 두시간을 때울 꺼리가 마땅치 않아 조금은 찝찝한 기분에 난감해 하고 있는데,,

 

“아래 백화점이 있는데 우리 쇼핑이나 하자,,”

 

일년 열두 달이 가도 자기 옷을 사는 법이 거의 없는 데다가 필요한 거 이외에는 쇼핑도 안 하는 걸 잘 아는 내게 이런 와이프의 제안이 조금은 의아 했지만 딱히 갈 데도 없는 데다 둘이서 까페에 앉아 비싼 커피를 시켜 놓고 마주앉아 있을 이유도 별로 없는 터라 조금 피로할 것 같지만 그러자고 했다.

 

지나 가던 중에 시원해 보이는 남성용 여름용 반팔 셔츠가 눈에 들어와 가격표를 보고 있는데 뒤에서 와이프가 부른다.

 

“어느 게 어울리는 것 같아 ? “

 

수북이 쌓여 있는 백화점 할인매대 옷 더미 속에서 마 재질의 노란색 셔츠와 녹색 가을용 블라우스 두 개를 들고 득템 했다는 표정으로 좋아라 하며 내 의견을 물어 왔다.

노란색은 예뻐 보이지만 마로 된 재질이라 관리도 어렵고 쉽게 질릴 수 있으니 녹색 옷을 사라고 했다.

이 만원 밖에 안 한다고 아주 만족해 하면서 옷을 사 들고는 자기 옷만 사서 미안한지 조금 전 내가 들쳐 보던 옷을 이리저리 펼쳐 본다.

여름도 다 지났는데 필요 없을 것 같아 와이프 팔을 잡아 끌어 다른 곳으로 향했다.

쇼핑을 하고 옥상에 있는 옥상정원에서 8월 오후의 햇빛을 피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시간이 되어 영화를 보고 돌아 왔다.

 

어제는 와이프 생일이었다.

여기저기 빚을 내어 꾸려가던 사업을 폐업하는 와중에 와이프 생일선물로 인터넷 쇼핑몰에서 몇만원짜리 조그마한 인조 보석 목걸이를 선물로 내 놓았더니 그 어려운 상황에 무슨 생일선물을 챙기냐며 자신은 보석 목걸이 싫어 한다며 눈물 흘리던 그 생일 이후, 몇 년째 간신히 내 용돈과 차비나 겨우 버는 처지에 돈 들어가는 선물은 올 해도 생략하기로 하고 일찍 집에 들어와 미역국을 끓였다.

오늘도 몇 푼 더 벌겠다고 열두시가 넘어서야 와이프가 들어왔고 애들이랑 준비한 조그마한 케익으로 심야 생일파티를 시작했다. 올 해 생일에는 애들 도 다들 대학에 들어가 성인이 되었다고 기특하게도 얼마 되지도 않는 용돈을 모아 엄마 피로회복 건강식품을 준비했단다.

 

“당신도 고마워 ! 이번 생일 옷 선물은 정말 너무 마음에 들어 ^^”

 

와이프는 지난주 백화점 할인매대에서 샀던 녹색 블라우스를 입고 있었다. 조금은 쑥스러운 생각에 자기가 벌어 자기 돈으로 산 게 무슨 선물이냐고 타박을 하니, 내가 골라 준 게 사 준거나 마찬 가리란다.

 

오늘 오후,,

퇴근하기에는 조금 이른 시간이지만 사무실로 들어가보았자 할 일도 없고, 딱히 만나 볼 사람도 없고, 집에 가자니 너무 이른 시간이라 광화문에 있는 교보서적으로 방향을 잡고 지하철에 올랐다. 자리가 있기에 앉아서 멍하니 맞은편을 바라보는데 갑자기 아랫배에서부터 가슴으로 뜨거운 기운이 훅하고 올라온다.

 

물려 받은 재산도 없고 써먹을 만한 변변한 인맥 하나 없다고 생각 했는데,,, 

이렇게 바보 같을 수가,,,,

내게는 누구보다도 믿을 만하고 대가 없이 뒤에서 힘이 되어 주는 이 세상에서 가장 든든한 빽이 있었던 거다.

 

앞으로 아직도 살아갈 날이 길게 남아 있는데 이런 든든한 빽이 있다면 난 남들보다 더 훨씬 잘 해나갈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뭔가 복받쳐 올라오면서 울컥 해 진다. 난 너무도 감사한 삶을 잘 살고 있었던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