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제와 요즘 남자

넋두리2013.0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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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 전 결혼을 염두하고 있던 여자친구랑 헤어진 후에, 다른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결혼을 준비하고, 또 어떤 갈등을 하고 있는지가 궁금해서 판을 눈팅하기 시작했습니다.

 

 기본적으로 여기 남성/여성들은 서로에게 날이 서 있는 것 같아서 보기가 참 안타깝습니다. 어떻게든 사회 속에서 함께 살아야 할 사람들인데, 여기는 틈만 보이면 득달같이 달려들어 물어뜯는것 같습니다. 각자가 가지고 있는 피해의식을 이런 익명게시판을 통해서 풀어내는 것은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다고 보이네요. 좀 더 생산적이고 성찰적인 방향으로 이야기들을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각설하고, 제 자신의 경험과 제가 느낀 요즘의 세태 변화를 바탕으로 가부장제와 요즘 남자들에 대해 몇마디 적어보겠습니다. 물론 제 자신은 요즘 남자를 충분히 대표할 수 없겠지만, 제가 느낀 점들을 부분적으로나마 공유하는  남성들은 많을거라 생각합니다.

 

 한국 사회에서의 결혼이라는 구조에 관련해 많은 문제들이 있습니다. 취업 및 고용불안(힘든 취업과 평생 직장 개념의 붕괴), 주거문제(오를 대로 올라버린 주거비용), 여성 취업 문제(직장 내 성차별 및 유리 천장, 출산 및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재취업 등), 육아 및 교육비용의 증대 등등이 대표적일 건데요. 이러한 문제들은 점점 심화되는 경향입니다. 남자가 어떻고 여자가 어떻고 하기 전에 이러한 문제들에 대해 곰곰히 생각해보는 게 우선이겠네요.

 

 저는 그 중에서도, '한국 남성의 성역할에 대한 인식'이라는 면에서 좀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은데요. 다들 말씀하시다시피 한국에서의 가부장제는 분명 해체되고 있고 그 대부분은 이미 해체된 것으로 생각이 됩니다. 이 상황에서, 기존의 가부장제가 개인적으로 내면화되는 방식, 즉 남성과 여성이 각각의 권리와 의무를 스스로 규정하는 방식 또한 급격하게 변하고 있는 상황입니다. 여기서, 남자의 경우에 결혼 후 스스로의 역할을 어떻게 규정하고, 권리와 의무들을 어떻게 규정하는지는 상당히 흥미있는 부분입니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소위 가부장제의 해체라는 사회구조적 변화를 좇는 여성의 반응이 남성의 그것보다 조금 지체되어 있다고 보구요. 쉽사리 일반화하지는 않으려 합니다만, 최소한 판의 여성/남성 유저 각각의 주류 의견은 그런 것 같습니다. 성대결로 몰고 가자는 의미는 아닙니다. 누가 옳고 누가 그르고에 관한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속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 거니까요.

 

 권리와 의무는 동전의 양면이니만큼, 권리만 행사하겠다/의무는 회피하겠다 는 바람직한 태도가 아닌 것은 분명하구요. 그런 덜 떨어진 케이스를 제외하고 보자면, 요즘 남자들은 권리와 의무를 점점 줄이고 싶어합니다. 예컨데, '내가 남자니까 이정도는 해줘야지' '내가 남자니까 이정도는 요구해야지'라는 식의 생각이 많이 희미해지고 있습니다. 최소한 성별의 측면에서, 누리고 싶은 것도 줄고/해야 하는 것도 줄고 있다고 생각이 되네요. 최소한 저는 그렇습니다. 메트로섹슈얼, 초식남 등의 키워드가 부상하는 것을 봐도 사회 트렌드도 비슷하다고 생각되구요.

 

집? 혼수?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다른 기준이 아니라 남자니까/여자니까라는 구분에서 남자는 집, 여자는 혼수 이런 식으로 경제적으로 불균등한 배분이 이루어지는 것은 사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둘이 사랑해서 결혼에 합의했는데, 형편이 괜찮은 사람이 좀 더 부담하겠다 식의 이해야 백번 가능합니다만, 단순히 성별을 기준으로 비용을 분담하는 것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만 그래도 수용은 불가능합니다. 더군다나 이를 부모님에게 전가하는 것은 더더욱 그렇구요. 구조적으로 보자면 여성의 입장에서 이는 장래에 불안한 전망, 특히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 단절 및 조기 퇴직으로 인한 손실을 남성에게 전가하는 메커니즘으로 이러한 결혼 비용 분담이 이루어질 것이므로, 조금은 이해는 갑니다만 개인적 차원에서 이러한 부분을 떠안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그건 사회구조의 문제고, 그 대가를 나라는 개인이 남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보상해야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거든요.

 

 데이트 비용의 문제도 비슷합니다. 보통 여자분들이 '남자들에 비해 여자들은 치장하는 비용이 많이 들어간다'라는 이야기를 하시는데요. 그것도 어느정도 공감합니다. 똑같이 백만원을 용돈으로 쓰는 남성/여성에 있어서, 여성은 외모에 치장하는 기본적인 비용이 많이 들어갈 겁니다. 기본적인 속성이 그런 부분도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외모에 관한 비상식적 압력이 여성에게 훨씬 많이 가해지니까요. 꾸미는 남성들의 등장은 이슈가 되지만, 꾸미는 여성은 당연한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그 예가 될 거 같네요. 하지만, 이 또한 구조적 차원의 문제입니다. 이에 대한 비용을 남성에게 개인적 차원에서 전가해야될 이유도, 남성이 이를 지불해야할 이유도 없습니다. 극단적으로, '나는 예쁘니까 나를 만나는 남자는 그만큼의 가치를 지불해야 해'라는 생각은 진짜 남녀(여남)관계를 물질적 매매의 차원으로 끌어내리는 천박한 생각입니다. 이런 생각이 안좋은 방향으로 심화된 것이 '나는 섹스를 제공하잖아' '나는 아이를 낳아주잖아'라는 것들인데요. 정말 이는 여자들 스스로가 자신을 남성에게 종속된 존재, 심하게 얘기해서 창녀 혹은 대리모로 스스로를 낮추는 격입니다. 무엇보다, 요즘같은 세태에서 이런 생각을 가진 여자분들을 감당할만한 마초들은 급격히 줄고 있습니다. 위와 같은 마인드들이 예전에는 '여자니까' '남자니까'라는 역할 규정 속에서 작동하고 있었다면, 요즘은 그것 자체가 허물어지고 있으니까요.

 

 우리나라, 아직 성적으로 많이 불평등합니다. 여자들 취업 문제만 봐도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피해를 남성 일방에게 전가하는 것은 논리적으로도 말이 안되고, 현실적으로도 그렇습니다. 구조적 불평등에 대한 책임을 개인적 차원에서 미루는 것(남성이 여성에게 보상하는 것)이 가부장제 하의 균형이었다고 한다면, 이미 가부장 시스템이 무너지는 만큼 그러한 전가를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는 남자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차라리, 이러한 불평등을 사회적인 차원에서 운동이나 정치를 하시든지, 그것이 힘들면 제대로 된 여성운동에 기부를 하시든지, 그것도 힘들다면 친구들과 술마시면서 푸시든지 하시지 이를 남자친구/혹은 남편에게 전가하는 것은 점점 불가능할 겁니다.

 

 여기서 적지않은 사람들이 고부갈등이니 가사분담이니 이런 부분에 불만이 많은 것 충분히 이해갑니다. 대한민국 남성들 그런 문제 참 많죠. 더군다나 맞벌이인 경우에도 그런 생각을 가진다면 확실히 잘못된 부분입니다. 명절에 친정/시댁 방문하는 문제도 그렇구요. 하지만, 그런 문제를 제기하기에 앞서 나는 내 파트너(남편,아내)와 얼마나 대등한 관계에서 결혼을 치뤘고 결혼 생활을 하고 있는가에 대한 것이 우선입니다. 무슨 결혼 비용을 칼같이 5:5로 끊자는 것이 아니라, '남자인 너는 여자인 나를 조금이라도 책임져야되'라는 생각이 있으면 안된다는 겁니다. 각자가 성인으로서, 좀 더 독립적이고 주체적으로 스스로에 대한 책임을 스스로가 져야한다는 거죠. '남자가 왜그래' '여자가 왜그래' 이게 아니라 '너는 나에게 왜그래' 이렇게 되어야하고, 이렇게 되고 있습니다.

 

 간단히 정리하자면, 요즘(?) 남자들은 성별관계에 있어 의무가 뒤따르는 권리를 부담스러워 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권리를 위해 그 대가를 지불하는게 아니라, 권리를 덜 누려도 좋으니 대가를 지불하기 싫다라는 마인드겠죠. 가장이라는 역할을 수행하기 위해 평생 스스로를 바쳐야 하는 것도 싫습니다. 나 혼자 벌어서 가족을 먹여살려야지라는 생각도 부담스럽습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서구와 같은 임신 없는 혼전 동거가 많아질 수 있겠지만 한국 사회에서 동거로 인해 짊어져야할 비용이 특히 여성에게 너무 큰 많큼 이것이 일반적인 변화의 추세가 되긴 힘들 것이고 오히려 초식남, 비혼주의자 같은 형식으로 점점 남성들의 인식이 변화될 것 같습니다. 십년정도만 지나도, 이러한 변화들이 현실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물론 동거도 많이 늘겠지만요.

 

 연애를 끝내고 든 이런 저런 생각들을 적어봤습니다. 의견 기다릴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