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트메어:Double Gore 5부

그라시아스2013.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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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가 걸을때마다 검은색 트렌치코트가 바람에 펄럭거린다. 달빛조차 침범하지 못할것 같은, 무성한 나무들만이 가득한 숲속. 남자가 타고온 검정색 아반떼의 전조등마저 사라지자
그야말로 을씨년스럽기 그지없다. 전설의 고향의 단골손님인 구미호가 실제로 나온다고 해도 이상할것이 없어 보일 정도였다. 서울에 이런곳이 있었나?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할 무렵 아반떼
조수석의 차문이 열리며 짧은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두웠기에 정확한 가늠은 어려웠지만 여자의 얼굴이 무척 앳되어 보인다는것 하나만은 알수 있었다.
여자가 한발 한발 내딛을때마다 바닥에 흩뿌려져있는 나뭇잎들과 풀잎등이 저마다 외다미 비명을 질러덴다.

'바스락'

남자는 걸음을 멈추고는 코트 안주머니에서 담배각을 꺼내 한개피를 입으로 가져간다. 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려는 찰나, 이윽고 남자의 지척까지 당도한 여자가 불쑥 손을 내민다.
달빛을 받아 반짝이는 여자의 새하얀 손이 유독 돋보인다.

"나도 하나줘."

"미성년자가 이래도 되나?"

장난스럽게 남자가 씨익 웃자 여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힌다. 그 모습에 남자는 별수 없다는듯 입에 물고있던를 담배를 건내 주며 또 한번 씨익 웃는다. 여자는 그제서야 미간에 주름을 지우며 남자의
손에 들린 담배 한개피를 낚아채 입으로 가져간다. 여자가 입에 물은 담배에 손수 라이터 불까지 붙여주는 남자. '치익' 하는 소리와 함께 잠시동안 여자의 얼굴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후~'

여자의 입에서 새하얀 입김과 미적지근한 담배연기가 한데 뒤섞여 공기중으로 흩어진다. 그 모습이 마치 하늘을 얉게 뒤덮고 있는 구름의 그것과 흡사해 보였다. 이내 라이터의 작은 불꽃에
남자의 서글서글한 눈매가 고스란히 드러났을때 여자의 입이 작게 열렸다.

"그 여자 어떨것 같아?"

"고요좌라니?"

담배를 입에 물은상태로 말을 하는 탓에 남자의 음성이 어눌해 보이는건 둘째치고 알아듣기 조차 힘들어 보인다. 그러나 여자는 개의치 않는듯 재차 입을 놀린다. 알아들었다는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민기 누나 말이야. 오빠가 보기엔 어떻냐고."

"왜? 마음에 들어?"

뿌연 담배연기를 내뱉으며 남자가 되묻자 살짝 입꼬리가 올라가는 여자. 남자는 그 표정이 뭘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네가 원한다면 나쁠것도 없지. 후후"

"오빠도 그여자가 마음에 든거야?"

"적어도...미성년자랑 다니는 것보단 낮겠지..."

"침대위에서 맨날 '역시 야들야들한 어린애가 좋아' 라고 할땐 언제고! 그새 질려버린거야? 하여튼 남자들이란..."

"그게 아니라..."

여자는 살짝 토라진듯 반쯤 타들어간 담배꽁초를 바닥에 아무렇게나 던져버리고는 뒤돌아 차로 걸어간다. 자기가 먼저 얘기 꺼내놓고 토라지다니 정말이지 여자들이란 나이를 불문하고 알다가도
모르겠는 순간이었다. 남자는 돌아서 걸어가는 여자의 팔목을 낚아채곤 자신쪽으로 강하게 끌어 당겼다. 자연스럽게 남자의 품에 들어오는 여자. 남자는 그런 여자의 턱을 손으로 살며시 들어올리곤
여자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갠다. 여자 역시 싫지는 않았는지 아무런 저항없이 되려 남자를 감싸안는다. 여자의 희고 고운 손이 남자의 등을 부드럽게 쓸어 올림에 남자는 포갰던 입술을
천천히 떼고는 작게 속삭였다.

"이 박선우가 사랑하는건 오로지 '김지연' 너 하나뿐이야. 네가 어떤 모습이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아..."

"...오빠..."

그녀의 가늘고 긴 속눈썹이 파르르 떨린다. 어쩌면 그녀는 처음부터 토라지지 않았던건지도 모르겠다. 단지 그에게 사랑한다는 말 한마디를 듣고 싶었을 뿐.

"처음부터 너만을 위해 손에 넣은 힘이야...그리고 이 힘을 얻은 지금의 나는 너무 행복하다. 그러니 괜한 걱정같은거 안해도 돼."

"오빠..."

"설령 남들이 손가락질을 한다 해도 상관없어. 너와 내 사랑을 위해서라면 그런 놈들따위 지워 버리는건 일도 아니니까...그러니 넌 아무런 걱정하지말고 그냥 내 옆에만 있으면 되는거야."

남자의 말에 그녀의 눈이 점차 촉촉하게 젖어 들어간다. 그 호수같이 깊은 눈망울에 하늘을 수놓은 별들이 전부 들어가 있는듯 눈부시게 반짝인다. 그 아름다운 모습을 보고있자니 남자의 마음을
백번 이해하고도 남을것만 같았다.

"알았어...오빠. 나 말야, 언제까지라도 항상 오빠 옆에 있을꺼야...그게 어디가 됐든...그곳이 설령 지옥이라도 상관없어..."

"사랑해...지연아."

"나도...너무너무 사랑해...오빠...!!"

그녀의 팔이 남자의 목을 휘감는다. 그리곤 그의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포개는 그녀. 남자는 그런 그녀의 잘록한 허리를 더욱 강하게 끌어 안는다. 그렇게 한동안 뜨거운 사랑을 나누는 두 남녀.
공허한 어둠도 싸늘한 바람결도 둘의 사랑을 가를수는 없을것만 같아 보였다. 고요한 적막이 어둠속에 뱀처럼 똬리를 튼채 도사리고 있는 한편 바닥에 이제는 전부다 타버려 까맣게 굳어버린
두개의 담배 꽁초만이 그들의 사랑을 묵묵히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나이트메어:Doublegore] 5부 - 인연의 고리




















마트에서 나와 사납게 치켜뜬 수많은 차들의 전조등과 마주했을때만 해도 참았다. 건조한 가로수들을 지나 으슥한 골목길로 들어설때까지도 참았다. 그런데 집앞 놀이터를 지나는 이 순간에도
헤벌레 입이 귀에 걸린채 선우씨 선우씨 하는 누나를 보고있자니 내 인내심은 결국 한계를 맞이할수밖에 없었다. 빌라 유리문까지 다섯발자국 남겨두고 난 그렇게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렇게 좋냐!!!!"

"깜짝이야!! 왜 소리는 지르고 그래!!"

"그렇게 좋으면 전화라도 하지 그러냐!!"

"아! 그럴까?!"

한술 더 뜨는 누나때문에 울화가 치밀었다. 지금 나이가 몇인데 그런 녀석에게 첫눈에 반하냔 말이다. 한눈에 척 봐도 겉과 속이 일반쓰레기와 재활용쓰레기로 나뉘는 쓰레기통 처럼 따로 존재하는걸
알수 있겠던데 말이다. 도데체 녀석의 정체가 뭘까. 정말 정혜의 말대로 평범한 친척 오빠일 뿐인가? 아직까지도 녀석의 기분나쁜 눈이 머릿속에 각인된듯 쉽사리 지워지지 않았다. 그런 와중에
녀석에게 완전히 빠져버린 누나의 모습이 달가울리가 없지않은가. 난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누나를 뒤로한채 빌라 안으로 들어섰다. 밝은 빛을 뿜으며 반갑게 맞이해주는 빌라 내부의 센서등만이
이런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것 같았다.

집으로 들어와 장 봐온것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쑤셔넣고 있는 순간에도 누나의 '선우씨 선우씨' 는 끊이질 않았다. 이정도면 반했다기 보단 병에 가까워 보였다. 짜증이 치밀대로 치민 난 방으로
들어가 침대에 벌러덩 드러누웠다. 눈을 질끈 감고 잠을 청해본다. 그러나 오히려 정신만 더 말똥말똥 하다. 아무래도 낮에 자버린 탓인것 같았다. 그렇게 멍하니 얼마나 누워있었을까?

"아휴"

무거운 한숨을 내뱉은 난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 너무 답답해 바람이라도 쐬고 와야 될것 같았다. 막 밖으로 나가려는 찰나, 돌연 문고리가 올라가며 누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민기야 누나랑 술한잔 하자!!"

한손에 연록색 '밤이슬' 병을 살랑살랑 흔들며 짖굿게 웃어보이는 누나. 평소같으면 술 소리만 들어도 질색하는 나였지만 오늘은 왠지 먹어야만 될것같은 기분이 든다.

"미성년자한테 막 이렇게 술 권해도 돼?"

"고럼고럼, 여기 보호자도 있으니까!!"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자신을 가르키는 누나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는다.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이나마 뻥 뚫리는 기분이다. 역시 내게 있어 누나는 유일한 안식처인지도 모르겠다.

바람쐬러 나가려던 건 까맣게 잊은채 거실로 나와 탁자에 딸린 의자를 빼내 자리에 털썩 앉는다. 탁자 중앙에는 뚜껑이 반쯤 젖혀진 일회용 고추참치캔과 아침에 먹다남은 뚝배기속 된짱찌개를 비롯한
반찬들, 그리고 마트에서 사온 감자칩등의 과자봉지가 어지럽게 올려져 있었고, 바로 앞에는 수북히 쌓여있는 밥공기와 수저,젓가락이 보인다. 아침에 맛없어서 냉장고에 처박아 두었던 것들을 고스란히
저녁 반찬으로 다시 접하는 기분이 썩 좋지는 않다. 역시 어묵탕을 끓여 놨어야 되는건데...마지봇해 수저를 들어 뚝배기로 가져간다. 껄죽한 국물을 입에 털어 넣고는 나도모르게 얼굴을 찌푸린다.

"왜! 많이짜? 재탕한다고 소금좀 더 넣었는데, 많이들어갔나..."

"....."

'재탕하는데 왜 소금만 더 넣는데!!!!' 라고 목구멍까지 올라온 말을 도로 꾸역꾸역 된장국물과 함께 삼켜버렸다. 지금껏 누나한테 계란프라이 반숙 외에는 음식가지고 타박한적이 없었던 이유에서 였다. 솔직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지금껏 모든 생활살림을 맡아 해온 누나인데 동생이 되서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짜다, 맛없다 타박할 권리 따위 있을턱이 없는게 당연하다고 생각해왔다. 그런데 요즘엔 낮선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면역력이 떨어진건지 점점 이 맛을 이겨내기가 힘들어 진다. 아무래도 이제는 말할때가 된 모양이었다.

"자, 한잔 받게나! 동생."

소주잔이 없어 아쉬운대로 난 귀여운 사자 대가리가 조각되어있는 머그잔을 들어보였다. 이내 '밤이슬' 뚜껑을 따기 무섭게 콸콸 들이붓는 누나. 아니 무슨 이게 맥주인줄 아나...이건 이미 반주의
영역을 벗어난지 오래였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러 내린다. 아직 입도 안데었는데 비릿한 알콜향에 취한듯 정신이 몽롱하다. 투명한 액체로 가득찬 머그잔을 내려놓고는 누나에게서 병을 건내 받은 내
눈이 번쩍 빛났다. 누나도 어디 한번 당해...

"......"

"누나 안 따라 줄꺼야?"

"......"

누나가 손에 들고있는건 다름아닌 소주잔이었다. 집에 소주잔 없는거 아니었나? 아니 그럼 왜 나만 머그잔인데!! 순간 뇌리를 스치는 무언가가 있었으니...난 울상을 지으며 하소연 하듯 메달렸다.

"누나...누난 내일 쉬는지 몰라도 난...내일 학교가야돼...봐줘...이건...아니잖아..."

"괜찮아! 누나도 네 나이땐 이모랑 머그잔에 마셨다구!"

너무도 태연스럽게 말하는 누나로 인해 난 할말을 잃어버렸다. 이건 뭐 이걸 다 먹고 골로 가라는건지...말없이 머그잔을 입에 갖다대고 한모금을 홀짝 마신다. 냄새만 맡았을때보다 훨씬 더 강렬한
알콜향과 뜨거운 기운이 목구멍을 적셨다. 아직 정식으로 술을 배워본건 아니었지만 역시 나는 맥주 체질인것 같았다. 이걸 대체 무슨맛으로 먹는건지, 나이를 불문하고 이해가 가지않는 나였다.
머그잔을 내려 놓기 무섭게 누난 언제 비웠는지 한잔을 더 따르고 있었다. 이내 또 단숨에 들이키곤 탁자에 잔을 '탁' 내려놓는 누나. 이 야리꾸리한 된장찌개는 나혼자 다 먹으라는 건지 누나는
입도 대지 않는다. 된장찌개는 고사하고 이 쓰디쓴 술을 넘기고나서 어떻게 안주 하나를 안집어 넣을수 있지? 새삼 누나가 다르게 보인다. 밥엔 손도 안데고 큼지막한 감자칩 하나를 꺼내 입에 집어넣는 순간
막 잔을 내려놓으며 누나가 입을 열었다.

"민기야."

"어."

"엄마 아빠 얼굴 생각나?"

바사삭 입안에서 소리를 내며 부숴지는 감자칩을 뒤로한채 의아한 눈초리로 누나를 바라본다. 뜬금없이 갑자기 엄마 아빠 얼굴이 기억나냐니.

"어릴적 같이 찍은 사진속 모습 말고...네 기억속 모습은 어떤지 궁금해서."

"글쎄...솔직히 기억이 전혀 안나...근데 그건 왜?"

내가 되묻자 누나는 거의 바닥을 보이는 '밤이슬' 병을 잔에 탈탈 털어넣고는 단숨에 들이킨다.

"아까 그사람 있잖아...박선우라는."

"....."

또 그녀석 이름을 입에 담는 누나. 난 말없이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누나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사람을 보면 있잖아...왠지 오래전 아빠 얼굴이 생각나더라..."

"....."

"외모가 닮은것도 아닌데 뭐랄까...느낌이랄까? 분위기가 되게 비슷해...그래서 물어본거야. 민기 넌 어떤가 해서..."

"그냥 좋아 죽겠다고 하셔! 괜히 아빠 걸고 넘어지지 말고! 에휴..."

"거기다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지내던 사람같은 그런 친근함이 느껴지는거 있지..."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아까전 마트에서의 일을 회상하듯 나긋나긋하게 말하는 누나가 얄미워 보이기 까지 했다. 오늘 처음 그것도 몇분 말을 주고받은것 뿐인데 도데체 왜이러는지 모르겠다.
난 짜증스럽게 머그잔을 입으로 가져가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구멍이 타들어가는것 같은 느낌에 인상을 찌푸린다.

"민기 넌 그사람에 대해서 몰라? 정혜한테 못들은거야?"

"또 그얘기야? 나 정혜랑 안친하다니까!?"

머그잔을 탁자에 '쾅' 놓으며 소리쳤다.

"에이~ 아까 걔 보고 얼어있는거 누나가 다 봤는데? 좋아하는거 아냐? 후후"

"아...아니라고!"

누나는 다 안다는듯 실실 웃으며 냉장고에서 '밤이슬' 한병을 더 꺼낸다. 아무래도 오늘 제대로 마실 모양인것 같았다. 조그마한 소주잔을 비웠다 채우기를 여러번 어느덧 탁자위에는 연록색
소주병만이 하나 둘 쌓여가고 있었다. 난 슬슬 혀가 꼬부러지는 누나를 뒤로한채 '먼저 잘께' 란 한마디를 끝으로 내방으로 들어갔다. 술을 잘 못하는 탓에 머그잔의 반을 비웠을 뿐인데 벌써
머리가 어질어질 하다. 취기가 올라오는 모양이었다. 한편으론 그 덕분에 그 기분나쁜 놈의 대한 생각 그리고 수현 과 정혜, 꿈 등의 안좋은 생각들이 어느정도 옅어지는것 같았다.
쓰러지듯 침대로가 몸을 눕힌다. 그나저나 누날 정말 어떻게 말려야 되는건지 모르겠다. 아니 이게 말려야 하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솔직히 누나못지않게 나 역시 그녀석에 대해 아는건 전무했으니까.
단지 기분나쁜 눈빛을 가졌다는것 외엔 막연한 내 상상인것인지도 몰랐다. 이런저런 생각을 뒤로한채 거실에서 누나의 인기척을 느끼며 그렇게 난 금새 잠에 빠져들었다.





의외로 제시간에 눈이 떠졌다. 매일같이 누나의 비명과도 같은 고함소리에도 이불을 뒤척이며 일어날 생각을 못해 주걱으로 볼기짝을 맞고 일어나던 평소의 나를 감안한다면 정말이지 대단한 일이 아닐수 없었다.
약간은 묵직한 몸을 일으켜 거실로 향했다. 탁자위는 물론 깨끗하게 정돈되어 어젯밤과는 천지차이를 보이고 있는 주방의 모습. 누나는 그렇게 술을 마셔놓고도 뒷정리를 다 해놓고 잠든 모양이었다.
화장실로가 대충 세안과 양치질을 하고 방으로 들어가 교복셔츠와 바지를 꺼내 입는다. 교복재킷을 몸에 걸치며 한손엔 가방을 틀어쥐고 방을 나섰다. 어차피 아침은 항상 먹지않는 나였기에 배가
고프다거나 그럴일은 없었다. 매번 누나의 반 강제적 권유로 먹는둥 마는둥 하는거였으니까. 오늘같은 날은 어찌보면 내게 있어 드문 일이라고 할수 있었다.
살며시 누나의 방문을 열고 문틈으로 들여다 본다. 깊게 잠든 누나의 숨소리만이 방안을 가득 메운다.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누나의 허리까지 내려와 흐트러진 이불을 가지런히 가슴까지 덮어준다.

"학교 다녀올께"

"....."

돌아올리 없는 대답을 기다린건 아니었기에 난 망설임 없이 몸을 돌린다. 혹여라도 깰까 조심스럽게 까치발을 드는것도 잊지 않았다. 검정색 '니 밸런스' 운동화에 발을 구겨넣으며 현관문을 열고 집을 나선다.
차가운 아침 공기가 오늘 역시 날 반갑게 맞이해준다. 계단을 내려가 두툼한 빌라 유리문을 밀어제끼며 오늘도 여지없이 한마디 뱉는 나.

"아씨...겁나춥네..."

하루 빨리 진짜베기 봄이 왔으면 하는 바램 뿐이었다.



어제 등교할때 분명 앞으로는 꼭 '걸어가자' 다짐했던 나였지만 역시 사람 습관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것 같다. 여느때와 다를것 없는 불쾌감과의 전쟁속에서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교실에 들어섰을때
왠일인지 난 교실 풍경이 낮설게만 느껴졌다. 재잘재잘 시끄럽게 떠느는 아이들의 모습은 늘상 봐오던 것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석연치가 않았다. 내 자리로 들어가 가방을 내려놓자 앞자리의 성호가 뒤를
돌아보며 반갑게 말을 건냈다.

"여~ 왔어?"

"어...안녕."

의자에 앉으며 가볍게 화답하는 나. 말주변이 없는 것 역시 고치기는 힘들어 보인다. 언제나처럼 잇몸을 훤히 드러내며 웃던 성호는 다시 고개를 돌려 앉는다. 잘은 모르겠지만 꽤 착한 녀석임은
분명해 보인다.

'앞으론 좀 친하게 지내보도록 해볼까...'

자리에 앉기 무섭게 교실 앞문이 열리며 담임교사가 모습을 드러냈다. 일사분란하게 자리에 바로앉으며 조용해지는 아이들. 담임은 평소와 다를것 없이 교탁위에 있는 출석부를 펼치고는 하나 둘 이름을 불렀다.
그 무미건조한 음성이 교실안을 온통 뒤 덮는다.

"김갑수."

"예!"

"박진영."

"에압!"

"한이수."

"...네."

"박이슬"

"네!"

"이수현."

"....."

"이수현 안왔어?!"

"....."

"박정혜."

"....."

"뭐야, 정혜도 안왔어?? 얘는 지각한번 안하던 애가...무슨일 있나?."

"....."

"김성호."

"네넵!"


난 그제서야 오늘 아침 교실에 들어섰을때 느꼈던 낮선 위화감의 정체를 알수 있었다. 덕분에 앞자리 성호의 우렁찬 목소리따위는 내 귀에 전혀 들리지 않았다.

[정혜, 조심하는게 좋을거야.]
[내가 힘 닿는데까지 막아보겠지만 말이야...만에하나 내게 무슨일이 생긴다 하더라도, 네 영혼만은 소중히 하도록해. 그 어떤 간절한 염원보다 그게 먼저야. 알았지?"]

[학교에서 봐]

수현이 했던 알수없는 말들과, 어제 저녁 마트에서 정혜를 만났던 기억들이 엉킨 실타래처럼 얽히고 섥혀 내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어갔다. 단순히 '지각하는 모양이네' 라고 넘기기에는 어제
내게 일어난 불미스러운 사건들이 너무나 강렬했다. 마치 꿈속에서 보았던 일들이 현실이고 지금 이 순간이 꿈이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불러 일으킬 정도였다. 난 멍하니 넋을 잃은 사람처럼 쾡한
눈으로 수현의 빈자리를 바라보며 녀석의 이름을 입에 담는다. 내 이름을 부르는 담임교사의 건조한 목소리마저 무시한채...난 그렇게 작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이수현..."

















6부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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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웃대 -못된야옹-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