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작은 방 한켠. 브라운 색상의 고급스러운 문양이 장식되어있는 옷장이 열린 창틀사이로 드는 볕으로 인해 마치 색이 바랜듯 볼품없어 보인다. 그 옆으로 자리잡고 있는 컴퓨터책상 위에는 24인치 LCD 모니터가 빛을 뿜고있었는데, 그 아래로 무선 마우스를 잡은 누군가의 손이 분주하다.
'딸깍 딸깍'
대충 고등학생정도 되었을까? 위 아래 전부 빨간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한 소년. 나이에 비해 제법 남성미가 풍기는 그의 얼굴엔 왠지모를 수심이 가득하다. 진로의 대한 걱정 때문일까? 아니면 이성친구와의 갈등? 거기다 잠은 한숨도 못잔것인지 눈밑으로 돋아난 다크써클은 '나 지금 피곤해 죽겠어요' 라고 말하는것 같아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다.
'딸깍 딸깍'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마우스 클릭소리. 수많은 인터넷 창들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푸른색 '찰도우' 로고가 박혀있는 바탕화면을 감추기 바쁘다. 무슨 정보라도 찾고 있는건지 소년의 눈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분주하게 움직이던 소년의 손이 돌연 움직임을 멈춘다. 이내 그 빈자리를 메우는 깊은 한숨소리.
"아후..."
소년은 의자 목받이에 목을 기댄채 고개를 완전히 젖혀 천정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진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안되는건가...하긴...증거가 남아 있을리가 없지."
알수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소년. 그가 앉아있는 의자 앞 책상위에는 얉은 노트 하나가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엔 '간절한 염원', '자정', '거울'등의 단어들과 '정혜' 라는 이름이 휘갈겨 쓰여져 있었다. 순간 노트 옆에 놓여있는 '와플'사의 최신형 모델인 '아기폰5'의 액정화면에 새하얀 불빛이 들어오며 '지이잉' 하는 요란한 진동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강민기'라는 이름이 찍힌채 진동소리는 점점 거세질뿐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왠일인지 휴대폰엔 눈길조차 주지않은채 하염없이 천정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부재중 전화 3통' 이라는 문구와 함께 잠잠해 지는 휴대폰. 휴대폰 진동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소년은 돌연 뭔가 생각난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몸을 옮긴다. 앉아있을땐 몰랐는데 일어선 소년의 키가 무척 큰것이 마치 천정에 머리가 닿을것만 같다. 도데체 뭘먹으면 저렇게 자랄수 있단 말인가. 180센티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것이,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키를 감안한다면 제법 부러워할 사람들이 많을것 같아 보인다. 소년은 옷장문을 활짝 열고는 도톰한 브라운 색상의 더블자켓과 깔끔한 느낌의 화이트 목폴라티셔츠를 꺼내든다. 이내 꺼낸 옷가지들을 아이보리색 침대 매트리스 한쪽에 가지런히 놓은 소년은 그제서야 책상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든다. 그렇게 전화가 올때는 거들떠도 안보더니 이제와서 전화라도 해주려걸까? 소년은 휴대폰을 귀로 가져간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소년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머니 저예요 수현이, 다름이 아니라 오늘 찾아뵐까 해서요."
[나이트메어:Doublegore] 6부 - 인연의 고리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나도록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매 시간마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받질 않는다. 차라리 꺼놓든지,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으니 애간장이 타는건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견딜수 없었던 나는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담임교사에게 물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민기야 같이 밥이나 먹고 가지 않을래?"
"미안. 다음에 먹자!"
"어..."
처음으로 같이 밥먹지 않겠냐는 성호의 제안은 승낙할수 없었다. 살짝 미안한 감이 있긴했지만 지금 내겐 성호와 밥 한끼 먹는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맥이 빠진듯한 성호를 뒤로한채 가방을 어깨에 들처메곤 도망치다시피 교실을 빠져나왔다.
"선생님!!"
저만치 멀어저가는 담임교사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교직원 화장실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교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교무실을 드나드는건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에 특별한 호출을 제외하곤 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담임교사를 기다릴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하는수없이 교무실로 걸음을 옮긴다.
'드르륵'
침넘김 소리조차 들릴듯 조용한 환경탓인지 교무실 문을 여는 '드르륵' 소리에 안에 계신 교사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꽃힌다. '뭐야!?' 라는듯한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창가끝에 뒤돌아 앉아 계시는 담임교사를 발견한 난 괜시리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인채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 선생님..."
기어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작게 말을 내뱉자 담임교사가 돌아보며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어, 민기군. 무슨 일이니?"
"저...수현이요..."
"응? 수현이 왜? 아...학교 안온것 때문에 그러는거야?"
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 아까 몸이 안좋다고 어머니께 연락 받았어."
"그럼...정혜는요...?"
내 입에서 정혜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의외라는듯 담임교사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오, 민기 정혜랑도 친했어? 선생님은 전혀 몰랐는데..."
"아...딱히 그런건 아니구요..."
"부끄러워 하기는, 후후. 걱정하덜덜덜마렴. 정혜도 사정이 있어서 못나온거라니까. 월요일이면 다시 볼텐데 그렇게 초조해 하지 말라고!"
"...누가 초조해 했다고 그래요..."
"얼굴에 다 써 있거든? 아무튼 그거 물어보려고 온거야?"
"네..."
"그럼 할말 끝난거지? 그럼 이만 가봐! 선생님 할일이 산더미다 산더미. 너희들은 주말이라고 아주 그냥 좋아죽지? 에효...너네때가 좋은거야..."
"...아...네...그럼, 가보겠습니다."
울상을 지으며 죽는 시늉을 하는 담임교사의 얼굴이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이런생각이 드는것도 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탓이겠지? 난 조심스럽게 교무실문을 옆으로 밀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아."
한결 공기가 상쾌하게 와닿는다. 역시 교무실 내부의 공기는 뭔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는게 체질적으로 안맞는것 같았다. 그나저나 정혜는 그렇다 쳐도 수현이 이자식은 괘씸하기 그지 없었다. 어디가 아프면 문자한통이라도 보내주던가. 매일같이 쪽지는 그렇게 쉬지않고 건내주더만 문자한통 보내는게 그렇게 어려운건지 걱정한 내가 한심해 보일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어제 싫은 소리좀 했기로서니 삐쳐가지고 사내자식이 어쩜 그렇게 쪼잔하냔 말이다.
'뭐...내가 살짝 심하긴 했지...'
아니다! 솔직히 친구라면 대놓고 좋아한다고 얘길 했으면 되는거 아닌가? 그럼 내가 그거 하나 이해 못해줄까봐? 왜 영문모를 소리까지 해대면서 핑계를 데냐고 핑계를!! 오죽했으면 나까지 정혜를 이상하게 보게되질 않나 끔찍한 꿈을 꾸질 않나...따지고보니 전부 이녀석 탓이잖아!? 걱정에서 분노로 바뀌는 순간 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쩌면 정혜 친척 오빠라는 그 작자의 눈빛이 기분나쁘다는 것도 다 이런 쓸데없는 노이로제에서 비롯된 막연한 느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에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뱉고 계단을 하나 둘 느릿느릿 내려가고 있을 무렵 주머니속에 넣어둔 휴대폰의 진동음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드는 나.
"'따가워톡'하지 왠 문자메시지람, 수현이 자식인가?...어라? 누나네."
살짝 실강감이 얼굴에 드리워진채 난 메시지 확인버튼을 눌렀다.
-민기야 선우씨한테 답장왔다!! 오늘 만나기로 해서 지금 나가는중~♡ 오늘 좀 늦을지도 모르니까 누나 기다리지마잉♥-
"결국 이렇게 되는군...아 몰라, 누나가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누나의 모습에 난 말려야겠단 생각은 당분간만이라도 접어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관여한다고 달라질것도 없을것이고, 무엇보다 그 작자의 기분나쁜 이미지는 내가 만들어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게다가 정말 내가 생각한대로 질 나쁜 인간이면 누나가 먼저 '뻥' 차버리겠지. 그러니 걱정할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 이렇게 간단한걸 아까 아침까지 왜그렇게 끙끙 뎄는지 모르겠다. 그까짓 꿈이 뭐라고. 괜히 교무실까지 들락거리질 않나...날 이렇게 만든 수현을 월요일날 기필코 한대 갈겨주겠다 다짐하며 난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띄운채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정혜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다 할때 그냥 알려달라고 할껄 그랬나? 하는 어이없는 후회도 하는 나였다. 3층 계단에서부터 2층을지나 그렇게 1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굵직한 음성의 욕설이 들리는가 싶더니 책상 의자등이 나뒹구는 요란한 소음도 이어 들려왔다.
"뭐지? 싸움이라도 났나."
소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듯 했고,갑자기 찾아온 궁금증이란 녀석으로 인해 난 조심스럽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다가가보기로했다. 층마다 화장실 옆에 배치되어있는 공용 정수기를 지나자 1학년 7반부터 1반까지의 팻말들이 줄을지어 메달린채 마치 날 환영 한다는듯 미세하게 달랑인다. 저만치 끝자락까지 텅 비어 아무도 없을뿐아니라 아무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감에 휩싸인 복도는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난 왠일인지 조금더 깊숙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마음의 여유라도 만끽하고 싶은것인지 평소같았음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1학년 교실들을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가 된 마냥 하나 하나 유심히 살펴본다. 어차피 주말이었고 시간은 남아돌았기에 걱정할건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안되보이기도 하네...)
그때였다.
1학년 3반 교실을 막 지나려는 찰나, 끊어졌던 소리가 다시 내 귓속으로 스며들어왔다.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탓에 소리는 매우 뚜렷해져 있었다. .
["야, 이 신발새끼야! 내말이 우스워? 우습냐고!!"]
정확히 옆반인 1학년 2반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아까 전에 들었던 굵직한 음성은 매우 격해져 있었고, 난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몸을 숙인채 1학년 2반의 뒷문으로 다가가 숨을 죽였다. 창문으로 엿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단숨에 들켜버릴것 같아 택한 방법이었다. 문고리에 손을 얹고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자 '끼익' 소리와 함께 작은 틈새가 벌어졌다. 이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교실 내부의 풍경. 다행히 녀석들은 문소리를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다. 책상과 의자등이 어지럽게 쓰러져있는 교실 뒷편에는 4명의 아이들이 고작 넷이서 강강술래라도 할 생각인지 둥글게 둘러서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가장 외소해 보이는 한명을 제법 덩치가 있는 셋이서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딱봐도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이나마 짐작할수 있었다. 교복재킷 왼쪽 가슴 상단에 붙어있는 노란색 명찰을 보니 1학년인건 분명한것 같다. 그렇게 내가 이런저런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와중에 외소한 녀석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녀석의 옷은 온통 흙먼지로 가득했고 입술엔 빨갛게 피가 맺혀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미 몇대 쥐어터진것 같았다.
"하지만...정말이야..."
"이 좃같은 새끼가 그래도!!"
외소한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3개의 덩치중 하나의 보기만해도 육중한 주먹이 바람을 가른다. '후웅~' 소리와 함께 녀석의 얼굴에 사정없이 꽃히는 주먹. 외소한 녀석은 그대로 공중에 붕 뜬채 날아가 사물함에 내동댕이 쳐진다.
'쾅!!'
'죽진 않았으려나...?' 가장먼저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었다. 그정도로 덩치의 주먹은 강해보였고 외소한 녀석은 높이 날았다. 마치 한마리의 날렵한 새 처럼.
'설마 죽은건...'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외소한 녀석은 아직 살아있음을 과시하듯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고통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나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으윽!!"
그러나 주먹을 날렸던 덩치놈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신음소리조차 신경에 거슬리는듯 성큼성큼 다가가 쓰러져있는 녀석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곤 번쩍 들어올렸다.
"다시 한번 지껄여봐!! 뭐? 귀신!? 앙?!!!"
얼굴에 덕지덕지 달린 살덩어리가 입을 열때마다 덜렁덜렁 춤을추며 씰룩거렸다. 그런 주제에 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힘껏 치켜뜨고 악을 쓰는 꼴이라니 여간 웃긴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었고 멱살이 잡힌 저 외소한 녀석의 입장에서는 덩치놈의 살에 파묻힌 눈도 더할나위 없이 공포스러워 보일것이 자명했다. 난 순간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수밖에 없었다. 가서 상황을 수습하고 저 녀석을 구해내느냐 아니면 못본채 뒤돌아 이곳을 빠져 나가느냐...구해 내자니 저 3개의 덩치를 확실하게 제압할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그냥 못본척 하자니 엄마를 잃은 새끼 고양이를 차들이 질주하는 고속 도로에 버리고 내빼는듯한 뭔가 찜찜한 이 기분.
'아...이럴줄 알았으면 안보는건데...쩝...'
양단간의 선택을 강요당하며 노심초사 하고있던 난 순간 외소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덕분에 나도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내가 보고 있는걸 알고 있었던 건가? 누가봐도 '도와주세요' 라는 강렬한 의지를 내비치는 아이의 두 눈...너무나 부담스럽다. 그런데...
"새끼야 어딜쳐다봐...어?"
덩달아 나머지 덩치들의 시선도 저 외소한녀석의 눈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쪽을 향하고, 정말 짧은 시간에 어느새 모두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나.
"....."
졸지에 각기 다른 감정이 실려있는 8개의 부담스러운 눈과 마주한채 난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킬 뿐이었다.
나이트메어:Double Gore 6부
따사로운 햇볕이 드는 작은 방 한켠. 브라운 색상의 고급스러운 문양이 장식되어있는 옷장이 열린 창틀사이로 드는 볕으로 인해 마치 색이 바랜듯 볼품없어 보인다. 그 옆으로 자리잡고 있는
컴퓨터책상 위에는 24인치 LCD 모니터가 빛을 뿜고있었는데, 그 아래로 무선 마우스를 잡은 누군가의 손이 분주하다.
'딸깍 딸깍'
대충 고등학생정도 되었을까? 위 아래 전부 빨간색 트레이닝복 차림의 한 소년. 나이에 비해 제법 남성미가 풍기는 그의 얼굴엔 왠지모를 수심이 가득하다. 진로의 대한 걱정 때문일까? 아니면
이성친구와의 갈등? 거기다 잠은 한숨도 못잔것인지 눈밑으로 돋아난 다크써클은 '나 지금 피곤해 죽겠어요' 라고 말하는것 같아 안타까움을 불러 일으켰다.
'딸깍 딸깍'
쉴새없이 흘러나오는 마우스 클릭소리. 수많은 인터넷 창들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며 푸른색 '찰도우' 로고가 박혀있는 바탕화면을 감추기 바쁘다. 무슨 정보라도 찾고 있는건지 소년의 눈은
이리저리 빠르게 움직인다. 그렇게 얼마나 지났을까? 분주하게 움직이던 소년의 손이 돌연 움직임을 멈춘다. 이내 그 빈자리를 메우는 깊은 한숨소리.
"아후..."
소년은 의자 목받이에 목을 기댄채 고개를 완전히 젖혀 천정을 바라본다. 아무래도 생각처럼 일이 잘 풀리진 않는 모양이었다.
"역시 안되는건가...하긴...증거가 남아 있을리가 없지."
알수없는 말을 중얼거리는 소년. 그가 앉아있는 의자 앞 책상위에는 얉은 노트 하나가 펼쳐져 있었는데 거기엔 '간절한 염원', '자정', '거울'등의 단어들과 '정혜' 라는 이름이 휘갈겨 쓰여져 있었다.
순간 노트 옆에 놓여있는 '와플'사의 최신형 모델인 '아기폰5'의 액정화면에 새하얀 불빛이 들어오며 '지이잉' 하는 요란한 진동 소리가 방안을 가득 메운다.
'강민기'라는 이름이 찍힌채 진동소리는 점점 거세질뿐 멈출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소년은 왠일인지 휴대폰엔 눈길조차 주지않은채 하염없이 천정만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이윽고 '부재중 전화 3통' 이라는 문구와 함께 잠잠해 지는 휴대폰. 휴대폰 진동소리가 끝나기 무섭게 소년은 돌연 뭔가 생각난듯 자리에서 일어나 옷장으로 몸을 옮긴다. 앉아있을땐 몰랐는데 일어선 소년의 키가 무척 큰것이
마치 천정에 머리가 닿을것만 같다. 도데체 뭘먹으면 저렇게 자랄수 있단 말인가. 180센티미터는 훌쩍 넘어 보이는것이, 우리나라 남성의 평균키를 감안한다면 제법 부러워할 사람들이 많을것 같아 보인다. 소년은 옷장문을 활짝
열고는 도톰한 브라운 색상의 더블자켓과 깔끔한 느낌의 화이트 목폴라티셔츠를 꺼내든다. 이내 꺼낸 옷가지들을 아이보리색 침대 매트리스 한쪽에 가지런히 놓은 소년은 그제서야 책상위에 놓인 휴대폰을 집어든다.
그렇게 전화가 올때는 거들떠도 안보더니 이제와서 전화라도 해주려걸까? 소년은 휴대폰을 귀로 가져간다. 그리고 얼마 안있어 소년의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할머니 저예요 수현이, 다름이 아니라 오늘 찾아뵐까 해서요."
[나이트메어:Doublegore] 6부 - 인연의 고리
오늘 수업이 모두 끝나도록 녀석은 나타나지 않았다. 매 시간마다 수시로 전화를 걸어 봤지만 받질 않는다. 차라리 꺼놓든지, 신호는 가는데 받질 않으니 애간장이 타는건 이루 말할수가 없었다.
아무래도 불안해서 견딜수 없었던 나는 종례가 끝나기 무섭게 담임교사에게 물어보기로 마음 먹었다.
"민기야 같이 밥이나 먹고 가지 않을래?"
"미안. 다음에 먹자!"
"어..."
처음으로 같이 밥먹지 않겠냐는 성호의 제안은 승낙할수 없었다. 살짝 미안한 감이 있긴했지만 지금 내겐 성호와 밥 한끼 먹는것 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었으니 어쩔수 없는 선택이었다.
맥이 빠진듯한 성호를 뒤로한채 가방을 어깨에 들처메곤 도망치다시피 교실을 빠져나왔다.
"선생님!!"
저만치 멀어저가는 담임교사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했는지 교직원 화장실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교무실로 들어가 버렸다. 교무실을 드나드는건 딱히 좋아하지 않는 나였기에 특별한 호출을 제외하곤
출입을 삼가고 있었다. 하지만 무턱대고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담임교사를 기다릴수도 없는 노릇이기에 하는수없이 교무실로 걸음을 옮긴다.
'드르륵'
침넘김 소리조차 들릴듯 조용한 환경탓인지 교무실 문을 여는 '드르륵' 소리에 안에 계신 교사분들의 시선이 일제히 내게 꽃힌다. '뭐야!?' 라는듯한 따가운 시선을 뒤로하고 창가끝에 뒤돌아 앉아 계시는
담임교사를 발견한 난 괜시리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푹 숙인채 황급히 발걸음을 재촉했다.
"저, 선생님..."
기어들어가는듯한 목소리로 작게 말을 내뱉자 담임교사가 돌아보며 의아한 눈초리를 보낸다.
"어, 민기군. 무슨 일이니?"
"저...수현이요..."
"응? 수현이 왜? 아...학교 안온것 때문에 그러는거야?"
난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걱정마. 아까 몸이 안좋다고 어머니께 연락 받았어."
"그럼...정혜는요...?"
내 입에서 정혜의 이름이 나오자 살짝 의외라는듯 담임교사의 눈이 가늘게 떠졌다.
"오, 민기 정혜랑도 친했어? 선생님은 전혀 몰랐는데..."
"아...딱히 그런건 아니구요..."
"부끄러워 하기는, 후후. 걱정하덜덜덜마렴. 정혜도 사정이 있어서 못나온거라니까. 월요일이면 다시 볼텐데 그렇게 초조해 하지 말라고!"
"...누가 초조해 했다고 그래요..."
"얼굴에 다 써 있거든? 아무튼 그거 물어보려고 온거야?"
"네..."
"그럼 할말 끝난거지? 그럼 이만 가봐! 선생님 할일이 산더미다 산더미. 너희들은 주말이라고 아주 그냥 좋아죽지? 에효...너네때가 좋은거야..."
"...아...네...그럼, 가보겠습니다."
울상을 지으며 죽는 시늉을 하는 담임교사의 얼굴이 새삼 귀엽게 느껴졌다. 이런생각이 드는것도 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탓이겠지? 난 조심스럽게 교무실문을 옆으로 밀며 밖으로 빠져나왔다.
"후아."
한결 공기가 상쾌하게 와닿는다. 역시 교무실 내부의 공기는 뭔가 묵직하게 가라앉아 있는게 체질적으로 안맞는것 같았다. 그나저나 정혜는 그렇다 쳐도 수현이 이자식은 괘씸하기 그지 없었다.
어디가 아프면 문자한통이라도 보내주던가. 매일같이 쪽지는 그렇게 쉬지않고 건내주더만 문자한통 보내는게 그렇게 어려운건지 걱정한 내가 한심해 보일 지경이었다. 더군다나 어제 싫은 소리좀
했기로서니 삐쳐가지고 사내자식이 어쩜 그렇게 쪼잔하냔 말이다.
'뭐...내가 살짝 심하긴 했지...'
아니다! 솔직히 친구라면 대놓고 좋아한다고 얘길 했으면 되는거 아닌가? 그럼 내가 그거 하나 이해 못해줄까봐? 왜 영문모를 소리까지 해대면서 핑계를 데냐고 핑계를!! 오죽했으면 나까지 정혜를
이상하게 보게되질 않나 끔찍한 꿈을 꾸질 않나...따지고보니 전부 이녀석 탓이잖아!? 걱정에서 분노로 바뀌는 순간 이었다.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어쩌면 정혜 친척 오빠라는 그 작자의 눈빛이
기분나쁘다는 것도 다 이런 쓸데없는 노이로제에서 비롯된 막연한 느낌인지도 모른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에휴~"
짜증스러운 한숨을 내뱉고 계단을 하나 둘 느릿느릿 내려가고 있을 무렵 주머니속에 넣어둔 휴대폰의 진동음이 느껴졌다. 자연스럽게 걸음을 멈추고 휴대폰을 꺼내드는 나.
"'따가워톡'하지 왠 문자메시지람, 수현이 자식인가?...어라? 누나네."
살짝 실강감이 얼굴에 드리워진채 난 메시지 확인버튼을 눌렀다.
-민기야 선우씨한테 답장왔다!! 오늘 만나기로 해서 지금 나가는중~♡ 오늘 좀 늦을지도 모르니까 누나 기다리지마잉♥-
"결국 이렇게 되는군...아 몰라, 누나가 알아서 하겠지!!"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누나의 모습에 난 말려야겠단 생각은 당분간만이라도 접어 두기로 했다. 어차피 내가 관여한다고 달라질것도 없을것이고, 무엇보다 그 작자의 기분나쁜 이미지는 내가 만들어냈을
확률이 높았으니까. 게다가 정말 내가 생각한대로 질 나쁜 인간이면 누나가 먼저 '뻥' 차버리겠지. 그러니 걱정할건 아무것도 없는 셈이나 마찬가지. 이렇게 간단한걸 아까 아침까지 왜그렇게 끙끙 뎄는지 모르겠다.
그까짓 꿈이 뭐라고. 괜히 교무실까지 들락거리질 않나...날 이렇게 만든 수현을 월요일날 기필코 한대 갈겨주겠다 다짐하며 난 입가에 사악한 미소를 띄운채 종종걸음으로 계단을 내려간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정혜의 휴대폰 번호를 알려준다 할때 그냥 알려달라고 할껄 그랬나? 하는 어이없는 후회도 하는 나였다. 3층 계단에서부터 2층을지나 그렇게 1층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을 때였다.
어디선가 굵직한 음성의 욕설이 들리는가 싶더니 책상 의자등이 나뒹구는 요란한 소음도 이어 들려왔다.
"뭐지? 싸움이라도 났나."
소리는 비교적 가까운 곳에서 들려온듯 했고,갑자기 찾아온 궁금증이란 녀석으로 인해 난 조심스럽게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다가가보기로했다. 층마다 화장실 옆에 배치되어있는 공용 정수기를 지나자
1학년 7반부터 1반까지의 팻말들이 줄을지어 메달린채 마치 날 환영 한다는듯 미세하게 달랑인다. 저만치 끝자락까지 텅 비어 아무도 없을뿐아니라 아무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적막감에 휩싸인 복도는
내 귀를 의심하게 만들기 충분해 보였다. 하지만 난 왠일인지 조금더 깊숙히 들어가 보기로 했다. 마음의 여유라도 만끽하고 싶은것인지 평소같았음 관심도 가지지 않았을 1학년 교실들을 마치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모험가가 된 마냥 하나 하나 유심히 살펴본다. 어차피 주말이었고 시간은 남아돌았기에 걱정할건 없었다. (이렇게 말하니까 되게 안되보이기도 하네...)
그때였다.
1학년 3반 교실을 막 지나려는 찰나, 끊어졌던 소리가 다시 내 귓속으로 스며들어왔다. 거리가 한층 가까워진 탓에 소리는 매우 뚜렷해져 있었다. .
["야, 이 신발새끼야! 내말이 우스워? 우습냐고!!"]
정확히 옆반인 1학년 2반에서 들려온 소리였다. 아까 전에 들었던 굵직한 음성은 매우 격해져 있었고, 난 진상을 확인하기 위해 서둘러 몸을 숙인채 1학년 2반의 뒷문으로 다가가 숨을 죽였다.
창문으로 엿볼까도 생각해 봤지만 아무래도 단숨에 들켜버릴것 같아 택한 방법이었다. 문고리에 손을 얹고는 조심스럽게 옆으로 밀자 '끼익' 소리와 함께 작은 틈새가 벌어졌다. 이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교실 내부의 풍경. 다행히 녀석들은 문소리를 눈치채지 못한것 같았다. 책상과 의자등이 어지럽게 쓰러져있는 교실 뒷편에는 4명의 아이들이 고작 넷이서 강강술래라도 할 생각인지 둥글게 둘러서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가장 외소해 보이는 한명을 제법 덩치가 있는 셋이서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딱봐도 어떤 상황인지는 대충이나마 짐작할수 있었다.
교복재킷 왼쪽 가슴 상단에 붙어있는 노란색 명찰을 보니 1학년인건 분명한것 같다. 그렇게 내가 이런저런 상황파악을 하고 있는 와중에 외소한 녀석이 슬며시 입을 열었다. 녀석의 옷은 온통 흙먼지로
가득했고 입술엔 빨갛게 피가 맺혀있었는데 아무래도 이미 몇대 쥐어터진것 같았다.
"하지만...정말이야..."
"이 좃같은 새끼가 그래도!!"
외소한 녀석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3개의 덩치중 하나의 보기만해도 육중한 주먹이 바람을 가른다. '후웅~' 소리와 함께 녀석의 얼굴에 사정없이 꽃히는 주먹. 외소한 녀석은 그대로 공중에 붕
뜬채 날아가 사물함에 내동댕이 쳐진다.
'쾅!!'
'죽진 않았으려나...?' 가장먼저 뇌리를 스치는 생각이었다. 그정도로 덩치의 주먹은 강해보였고 외소한 녀석은 높이 날았다. 마치 한마리의 날렵한 새 처럼.
'설마 죽은건...'
내 마음을 눈치챘는지 외소한 녀석은 아직 살아있음을 과시하듯 몸을 천천히 일으키며 고통섞인 신음을 내뱉었다. 그 모습에 나역시 안도의 한숨을 내뱉는다.
"으윽!!"
그러나 주먹을 날렸던 덩치놈은 생각이 다른 모양이었다. 신음소리조차 신경에 거슬리는듯 성큼성큼 다가가 쓰러져있는 녀석의 멱살을 우악스럽게 움켜쥐곤 번쩍 들어올렸다.
"다시 한번 지껄여봐!! 뭐? 귀신!? 앙?!!!"
얼굴에 덕지덕지 달린 살덩어리가 입을 열때마다 덜렁덜렁 춤을추며 씰룩거렸다. 그런 주제에 살에 파묻혀 잘 보이지도 않는 눈을 힘껏 치켜뜨고 악을 쓰는 꼴이라니 여간 웃긴일이 아닐수 없었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내 입장이었고 멱살이 잡힌 저 외소한 녀석의 입장에서는 덩치놈의 살에 파묻힌 눈도 더할나위 없이 공포스러워 보일것이 자명했다.
난 순간 두가지 선택의 기로에서 고민할수밖에 없었다. 가서 상황을 수습하고 저 녀석을 구해내느냐 아니면 못본채 뒤돌아 이곳을 빠져 나가느냐...구해 내자니 저 3개의 덩치를 확실하게 제압할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앞서고 그냥 못본척 하자니 엄마를 잃은 새끼 고양이를 차들이 질주하는 고속 도로에 버리고 내빼는듯한 뭔가 찜찜한 이 기분.
'아...이럴줄 알았으면 안보는건데...쩝...'
양단간의 선택을 강요당하며 노심초사 하고있던 난 순간 외소한 아이와 눈이 마주쳤다. 덕분에 나도모르게 헛바람을 들이켰다.
'헉!'
내가 보고 있는걸 알고 있었던 건가? 누가봐도 '도와주세요' 라는 강렬한 의지를 내비치는 아이의 두 눈...너무나 부담스럽다. 그런데...
"새끼야 어딜쳐다봐...어?"
덩달아 나머지 덩치들의 시선도 저 외소한녀석의 눈을 따라 자연스럽게 이쪽을 향하고, 정말 짧은 시간에 어느새 모두와 눈을 마주하고 있는 나.
"....."
졸지에 각기 다른 감정이 실려있는 8개의 부담스러운 눈과 마주한채 난 등골이 서늘해짐을 느끼며 마른침을 삼킬 뿐이었다.
'...꿀꺽...'
'좃됐다.'
7부에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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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웃대 -못된야옹-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