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막장'이라는 단어와 가장 많이 조응하는 단어가 드라마다.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분명 한국드라마에 대한 폄하의 의미를 지니지만, 가장 대표적인 막장드라마인 <아내의 유혹>의 시청률은 연일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친구가, 형제자매가, 남편이 뒤통수를 치고 부모가 내 부모가 아니며 내 자식이 남의 자식인 데다 가끔은 나 역시 내가 아니어 버리는 이 어마어마하고도 허술한 세계가 갖는 중독성은 무너지지 않는 시청률로 표출된다.
이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장서희는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뻔뻔한 낯짝의 악은 어김없이 몰락한다. 결국 시청자는 본인이 원하는 결말을 위해서 어느정도의 막장, 그러니까 비현실적인 설정은 어느정도 눈을 감아준다는 말이다. 그런 아량을 어떤 이는 저급하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엔 프로이트가 말한 욕망의 리비도(즉 성적욕구의 매개)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오늘 코엑스에서 제목만 읽고 들어가서 봤던 <투 마더스>는 그야말로 막장 중에 막장이라고 칭할만하다. 이 영화엔 두 가족이 등장한다. 시작은 처음부터 한 가족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시작된다. 슬퍼할 여유도 이유도 없이 바로 또 다른 남편은 다른 직장으로 이동하며 이혼하게 된다. 감독은 호주의 한 해변마을의 고립된 공간에 두 엄마와 그 아들들만 남겨두고 지켜본다. 그리고 두 엄마는 자신들의 아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신과 같은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고.
근데 여기서 오이디푸스가 깜짝 놀랄만한 짓들이 벌어진다. 두 엄마들이 서로의 아이와 섹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은 서로의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과 다름없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또한 청년들은 서로의 엄마에게 자신의 엄마와 같다고 느낀다고 하지만, 그들은 결국 침대위에서 서로를 갈구하는 섹스파트너가 된다. 처음 사실이 발각되었을 땐 당황했지만, 네 사람은 그 격정의 이끌림에 스스럼없이 합의를 한다. 서로에 대한 탐닉 그리고 뜨거운 시선, 어쩌면 질투 혹은 모호한 이끌림이 이 네 사람 사이를 총총거리며 오고가고, 외부적 침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사랑과 전쟁도 탄복할 만한 막장이 아닌가.
막장의 조건은 어떻게 충족시키는가.
사실 나이 차이는 이제 사랑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워낙 10살에서 20살 넘어 까지 결혼하고 연예하는 이 세상에서 그런 소재로는 파격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어렵다. 우리 태지형님도 그랬고, 스칼렛 요한슨 누나도 아버지뻘 남자들과 동거를 하곤 했으니까. 투 마더스의 설정이 우리를 이끄는 막장의 매혹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침입을 허용치 않는 독립적 공간과 환상적인 풍경의 파라다이스 그리고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하는 신화적 구성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사랑과 섹스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의미가 없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꼴이다.
내가 아침 댓바람부터 이 영화를 보면서 내심 놀랬던 이유는 이 영화에 내가 가지게 된 매혹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막장에 매혹을 느끼는 이 불편함을 당신들도 느꼈는가. 이 영화는 막장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한 결과 이 이야기는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신전과 같다고 생각했다.
우선 이 영화의 관계설정이 흥미롭다. 네 사람의 관계 구조에 사이좋은 모자와 절친한 친구, 연인이자 젊은 남자 그리고 엄마이자 섹시한 여자 그리고 두둑한 돈과 그림 같은 풍경의 집, 돈 걱정 없는 전문직의 직종과 미래가 창창한 훈남 아들이라는 비현실적인 화살표들이 쉴 새 없이 오고가고 있다. 이것은 미니멀한 관계구조에 부족함을 주지 않으려는 심산이고,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아늑하게 하는 비현실적인 망상이다. 일종의 모든 욕구들이 충족된 유토피아인 것이다. 오로지 서로에게 탐닉할 수 여건을 갖춘 그들은 막장의 카테고리를 넘어선 관객의 욕망속에서 탐닉된다. 그곳에 아버지가 끼어들 자리는 없고, 막장의 미학이 시작된다. 막장을 소비하고 얻어낸 이 신전에서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은 사랑을 표출한다.
오로지 사랑을 위한 배제가 있을 뿐이니.
유독 네 사람이 같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장면의 많다. 서로의 아들이 있는 공간에 죽마고우가 있고, 연인이 있다. 다소 충격적이게도 그들은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고, 즐겁게 섹스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그들의 관계는 이리도 온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감독은 네 사람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시킴으로 해서 그들 사이에 만들어진 규율을 어기지 않는 이상 이 신전에 비극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신화의 비극은 침범과 배신의 역사 아니던가. 밝은 채광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들 사이에는 사랑과 우정이 평등하게 분배되어있고, 또 다른 아비 혹은 여자 그리고 배신이 있을 것임을 예측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한 사람이 타지로 떠나게 되면서 관계는 깨어지게 된다.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그리고 무슨 19살 아들을 둔 엄마들이 그렇게 섹시할 수 있나. 내가 사랑하는 나오미 왓츠는 여전히 섹시하다. 이 영화가 비현실적인 이유는 투 마더들이 너무 투 영해보이고, 그들의 관계에 위화감이 없다는데 있다. 섹스신은 육체와 쾌락의 진열이 아닌, 사랑을 나누는 의식처럼 보이게끔 깔끔하게 편집한다. 그들의 막장이 극장에 걸려 누군가의 탄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현실적 여건들을 모두 뒤로한 체 오로지 미니멀한 관계에만 매달렸던 그 집중력과 앞서 말한 그들 사이의 외모적인 격차가 매우 좁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투 마더스의 영문제목은 'adore'이다. 사랑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존경과 숭배를 담은 찬사의 표현이다. 앤 폰테인 감독은 작정하고 만든 이 막장의 유토피아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하나의 이상향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겐 그들이 만든 이 신전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으니까. 이 정도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막장이 아닐까.
영화 투 마더스 : 막장드라마가 여전히 유효한 이유
오이디푸스가 탄복할 만한 막장
한국에서 '막장'이라는 단어와 가장 많이 조응하는 단어가 드라마다. 막장드라마라고 하면 분명 한국드라마에 대한 폄하의 의미를 지니지만, 가장 대표적인 막장드라마인 <아내의 유혹>의 시청률은 연일 고공행진을 멈추지 않았다. 친구가, 형제자매가, 남편이 뒤통수를 치고 부모가 내 부모가 아니며 내 자식이 남의 자식인 데다 가끔은 나 역시 내가 아니어 버리는 이 어마어마하고도 허술한 세계가 갖는 중독성은 무너지지 않는 시청률로 표출된다.
이 비현실적인 세계에서 장서희는 점 하나 찍고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며, 뻔뻔한 낯짝의 악은 어김없이 몰락한다. 결국 시청자는 본인이 원하는 결말을 위해서 어느정도의 막장, 그러니까 비현실적인 설정은 어느정도 눈을 감아준다는 말이다. 그런 아량을 어떤 이는 저급하다고 말하지만, 내 생각엔 프로이트가 말한 욕망의 리비도(즉 성적욕구의 매개) 정도로 생각하면 되지 않을까.
오늘 코엑스에서 제목만 읽고 들어가서 봤던 <투 마더스>는 그야말로 막장 중에 막장이라고 칭할만하다. 이 영화엔 두 가족이 등장한다. 시작은 처음부터 한 가족의 남편이 교통사고로 죽으면서 시작된다. 슬퍼할 여유도 이유도 없이 바로 또 다른 남편은 다른 직장으로 이동하며 이혼하게 된다. 감독은 호주의 한 해변마을의 고립된 공간에 두 엄마와 그 아들들만 남겨두고 지켜본다. 그리고 두 엄마는 자신들의 아들을 보며 이렇게 말한다. ‘신과 같은 아우라’를 지니고 있다고.
근데 여기서 오이디푸스가 깜짝 놀랄만한 짓들이 벌어진다. 두 엄마들이 서로의 아이와 섹스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들은 서로의 아들에게 자신의 아들과 다름없다고 웃으며 말했지만, 또한 청년들은 서로의 엄마에게 자신의 엄마와 같다고 느낀다고 하지만, 그들은 결국 침대위에서 서로를 갈구하는 섹스파트너가 된다. 처음 사실이 발각되었을 땐 당황했지만, 네 사람은 그 격정의 이끌림에 스스럼없이 합의를 한다. 서로에 대한 탐닉 그리고 뜨거운 시선, 어쩌면 질투 혹은 모호한 이끌림이 이 네 사람 사이를 총총거리며 오고가고, 외부적 침입은 허용되지 않는다. 이 정도면 사랑과 전쟁도 탄복할 만한 막장이 아닌가.
막장의 조건은 어떻게 충족시키는가.
사실 나이 차이는 이제 사랑의 걸림돌이 되지 못한다. 워낙 10살에서 20살 넘어 까지 결혼하고 연예하는 이 세상에서 그런 소재로는 파격이라는 단어를 붙이기 어렵다. 우리 태지형님도 그랬고, 스칼렛 요한슨 누나도 아버지뻘 남자들과 동거를 하곤 했으니까. 투 마더스의 설정이 우리를 이끄는 막장의 매혹을 가지고 있다면, 그것은 외부의 침입을 허용치 않는 독립적 공간과 환상적인 풍경의 파라다이스 그리고 오이디푸스를 떠올리게 하는 신화적 구성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분명 사랑과 섹스 이외에는 아무런 것도 의미가 없는 망망대해에 떠있는 꼴이다.
내가 아침 댓바람부터 이 영화를 보면서 내심 놀랬던 이유는 이 영화에 내가 가지게 된 매혹적인 감정 때문이었다. 막장에 매혹을 느끼는 이 불편함을 당신들도 느꼈는가. 이 영화는 막장 그것을 넘어선 무언가가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생각한 결과 이 이야기는 우리가 바라는 가장 이상적인 신전과 같다고 생각했다.
우선 이 영화의 관계설정이 흥미롭다. 네 사람의 관계 구조에 사이좋은 모자와 절친한 친구, 연인이자 젊은 남자 그리고 엄마이자 섹시한 여자 그리고 두둑한 돈과 그림 같은 풍경의 집, 돈 걱정 없는 전문직의 직종과 미래가 창창한 훈남 아들이라는 비현실적인 화살표들이 쉴 새 없이 오고가고 있다. 이것은 미니멀한 관계구조에 부족함을 주지 않으려는 심산이고, 우리의 마음을 더욱 더 아늑하게 하는 비현실적인 망상이다. 일종의 모든 욕구들이 충족된 유토피아인 것이다. 오로지 서로에게 탐닉할 수 여건을 갖춘 그들은 막장의 카테고리를 넘어선 관객의 욕망속에서 탐닉된다. 그곳에 아버지가 끼어들 자리는 없고, 막장의 미학이 시작된다. 막장을 소비하고 얻어낸 이 신전에서 그들은 뒤돌아보지 않은 사랑을 표출한다.
오로지 사랑을 위한 배제가 있을 뿐이니.
유독 네 사람이 같이 한 테이블에 앉아 식사하는 장면의 많다. 서로의 아들이 있는 공간에 죽마고우가 있고, 연인이 있다. 다소 충격적이게도 그들은 스스럼없이 애정표현을 하고, 즐겁게 섹스 이야기를 한다. 어떻게 그들의 관계는 이리도 온전할 수 있을까. 어쩌면 감독은 네 사람 사이의 갈등을 최소화시킴으로 해서 그들 사이에 만들어진 규율을 어기지 않는 이상 이 신전에 비극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 신화의 비극은 침범과 배신의 역사 아니던가. 밝은 채광의 집에서 사랑을 나누는 이들 사이에는 사랑과 우정이 평등하게 분배되어있고, 또 다른 아비 혹은 여자 그리고 배신이 있을 것임을 예측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그리고 어김없이 한 사람이 타지로 떠나게 되면서 관계는 깨어지게 된다. 모든 신화가 그렇듯이.
그리고 무슨 19살 아들을 둔 엄마들이 그렇게 섹시할 수 있나. 내가 사랑하는 나오미 왓츠는 여전히 섹시하다. 이 영화가 비현실적인 이유는 투 마더들이 너무 투 영해보이고, 그들의 관계에 위화감이 없다는데 있다. 섹스신은 육체와 쾌락의 진열이 아닌, 사랑을 나누는 의식처럼 보이게끔 깔끔하게 편집한다. 그들의 막장이 극장에 걸려 누군가의 탄복을 이끌어낼 수 있다면, 현실적 여건들을 모두 뒤로한 체 오로지 미니멀한 관계에만 매달렸던 그 집중력과 앞서 말한 그들 사이의 외모적인 격차가 매우 좁다는 것 때문일 것이다.
투 마더스의 영문제목은 'adore'이다. 사랑보다 한 단계 더 높은 존경과 숭배를 담은 찬사의 표현이다. 앤 폰테인 감독은 작정하고 만든 이 막장의 유토피아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하나의 이상향을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적어도 내겐 그들이 만든 이 신전이 무척이나 아름답게 느껴졌으니까. 이 정도면 모두가 수긍할 수 있는 막장이 아닐까.